묵상구절

12월 22일 목요일 삼하5:1-5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다(대상 11:1-3)

Jeehyun 2022. 12. 22. 17:48

맥체인성경읽기

역대하 26, 요한계시록 13, 스가랴 9, 요한복음 12

묵상구절

5:1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니이다

5:2 전에 곧 사울이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하신 분은 왕이시었고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5:3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매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니라

5:4 다윗이 나이가 삼십 세에 왕위에 올라 사십 년 동안 다스렸으되

5:5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더라

대상11:1-3

11:1 <다윗이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이 되다(삼하 5:1-10)> 온 이스라엘이 헤브론에 모여 다윗을 보고 이르되 우리는 왕의 가까운 혈족이니이다

11:2 전에 곧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출입하게 한 자가 왕이시었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11:3 이에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있는 왕에게로 나아가니 헤브론에서 다윗이 그들과 여호와 앞에 언약을 맺으매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니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통하여 전하신 말씀대로 되었더라

매튜헨리/옥스퍼드

●전(全) 이스라엘의 왕 다윗(사무엘 하 5:1-5)

💡 본문은 사울의 사후부터 다윗이 전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하고 수도틀 헤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천도하기까지의 역사와 사건을 다루고 었는 제 1-5장의 연속 부분. 여기서는 레갑 바아나의 이스보셋 암살과 다윗의 이스보셋 암살자 처형에 대하여 보도하고 있는 4:5-12에 이어 다윗의 통일 이스라엘 왕 즉위와 그의 통처 기간에 대하여 보도하고 있음.

여기에 보면 이스라엘 모든 지파는 헤브론에 모여 다윗에게 기름을 붓고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습니다(1-3절). 그런데 북쪽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을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운 것은 한편으로 아브델과 이스보셋의 죽음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도 여겨집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브넬과 이스보셋이 살아 있을 때에도 다윗을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기를 희망했었습니다(3:17). 그런데 이제는 이스보셋과 아브넬이 다 죽고 그들의 죽음이 다윗과 무관한 일임을 깨닫게 되자 아무 거리낌 없이 자발적으로 다윗에게 나아와 그에게 기름을 붓고 그를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은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면서 한 말로도 입증됩니다. 즉 그들은 다윗을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는 이유에 대하여

첫째, 다윗이 그들과 한 골육이라는 것,
둘째, 사울이 왕이었을 때에도 자기들을 거느리고 전쟁에 출전한 자는 다윗이라는 것,
셋째, 하나님께서 다윗으로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겠다고 말씀하신 사실을 들고 있는데 이것은 다윗을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는 그들의 행위가 당연함을 나타낸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다윗을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으로 세우시고 그를 통하여 신정적 왕정 체제를 확립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은 그 성취를 위한 거보를 내딛게 되었습니다.

한편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한 것은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때로부터 무려 22년, 유다의 왕으로 즉위한 때로부터 7년 6개월이 지난 후였습니다. 그 사이 다윗은 숱한 시련과 어려움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약속이 파기된 듯한 상황에 놓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끝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함으로써 마침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린 것은 모두 하나님의 섭리의 결과였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다윗으로 하여금 신정 왕국의 왕으로서 갖추어야 할 지도자적 소양과 신앙을 갖추도록 하기 위하여 오랜 세월 동안 그를 연단하셨던 것입니다.

Ⅰ. 온 지파들이 다윗에게 나아와, 자기들이 왕이 되어달라고 간청한다(당시 이들은 목자없는 양같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선 그를 자기들의 왕으로 인정한다.

다윗이 결단코 이스보셋의 살해를 찬성하지는 않았겠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생긴 유리한 조건들을 선용하여 자기에게 주어진 제의를 수락했다. 유다 지파는 이미 7년 전부터 다윗을 자기들의 왕으로 모시고 있었다. 그리고 다윗 치하에서 그들이 누렸던 평안과 행복은 다른 지파들도 다윗에게 궁정을 바치도록 종용했던 것이다.

각 지파에서 몇 명이 나왔으며, 어떤 열의와 성의로 나왔으며, 헤브론에서 3일을 지내면서 그들이 어떤 대접을 받았는가, 그때 그들은 모두 한 마음이 되어 다윗을 왕으로 삼았다-하는 이야기가 자세히 나와 있다(대상 12:23-40). 여기서는 그들의 연설 요지와 다윗을 왕으로 삼으려는 그들의 이유가 나와 있다.

 👉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각 지파의 대표성을 띠고 있기에 본문에서 말하는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들’은 이스라엘 전체 백성을 나타내는 것을 생각해도 무방하다. 한편 이스라엘 지파의 대표들과 장로들이 자발적으로 다윗에게 먼저 나올 수 있었던 것온 과거 아브넬이 그들을 회유하여 다윗에게로 향하도록 길을 닦아 놓은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3:17-19).

‘모든’(콜) 지파 → 3,5절에서도 언급
⇒ 다윗왕을 중심으로 세워질 새로운 왕국이 진정한 이스라엘의 통일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

1.다윗에 대한 그들의 관계가 다소 동기가 되었다.

"우리는 당신의 골육이니이다(1절). 당신은 우리의 골육이요, 이방인이 아니며, 율법에 따라 무조건적으로 왕이 될 분일 뿐만 아니라(신 17:15) 우리는 당신의 것이옵니다." 즉 "우리는 당신이 우리를 당신의 골육으로 여기실 뿐만 아니라, 사울과 그의 집과는 달리, 사람이 자기 집안 사람들에 대하여 갖는 그런 지극한 사랑을 우리에게 대하여 가지고 있음을 아나이다. 우리는 당신의 골육이니이다. 그러므로 이 오랜 내란을 종식하는 것을 당신도 기뻐하리이다. 그리고 당신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오며, 보호하시고, 우리의 안녕을 위해 최선을 다해 주옵소서."

👉 ‘왕의 골육’
-왕의 골육 ⇒ ‘당신의 뼈와 당신의 살’
-이는 서로 혈육으로 맺어진 사이임을 나타내는 관용어로서, 자신들이 다윗과 혈육지간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의미가 있다(19:12,13; 창29:14).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는 선결 조건은 같은 민족으로서의 ‘형제됨'이기 때문에(신 17:15) 이러한 고백은 필요하였다. 특히 다윗은 한동안 사울을 피하여 블레셋 땅에 거했기 때문에 백성들로부터 그 형제됨을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었으므로 이러한 선언은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즉 이스라엘 지파의 대표들은 그 동안 사울 왕가의 몰락과 다윗의 선정을 목도하면서 다윗에 대한 오해를 풀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려는 목적을 가지고 이 말을 하였던 것이다.

그리스도를 자기들의 왕으로 삼는 자들은 그에게 이런 환원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주의 골육이니이다. 주는 모든 점에 주의 형제들에게처럼(히 2:17) 되었나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통치자가 되시옵고 이 멸망을 주의 수하에 두옵소서" (사 3:6).

2.그가 이전에 민중에 행한 훌륭한 봉사는 더 한층 좋은 동기가 되었다(2절).

"사울이 왕이었던 때에도, 그는 그림자였고, 당신이 실상이었으니, 이스라엘을 주관하신 자는 당신이었나이다. 그리고 당신은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가져온 자이니이다. 그러므로 이 공식 중의 보좌에 당신보다 더 적합한 자 누구오리까?" 작은 일에 충성한 자는 보다 큰 일을 맡게 된다. 우리에게 베풀어진 이전의 훌륭한 직능들은 기회가 있는 대로 고마운 마음으로 기억하는 것이 좋다.

👉 1절에서는 다윗의 왕될 자격을 같은 민족으로서 ‘형제됨’에 두었는데 2절에서는 그 이외에 다윗이 왕이 되어야 하는 이유들을 덧붙여서 말하고 있다.

이 때 원문상 ‘깜’ 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는 ‘참으로!’ 라는 단어로서, 그들은 다윗의 지난 행적에 대한 감탄의 심정을 표현한다.

-또한 다윗 앞에 나온 이스라엘 지파의 대표들은 사울이 왕으로 있었던 기간 전체를 회상하면서 오히려 그 모든 시대가 사울의 시대라기보다는 다윗의 시대였음을 묘사하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한 자는’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이스라엘 지파의 대표들은 다윗이 대적들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승리로 이끌어 온 나라의 실질적 구원자였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삼상 18:30).
-실제로 사울은 다윗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이래로 백성들을 위하여 전쟁을 수행하는 왕으로서의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오직 질투의 화신이 되어 다윗의 생명을 해하는 데 급급하였다. 이스라엘 지파의 대표들이 본문과 같은 말을 다윗에게 전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아브넬과 이스보셋이 죽었기 때문에 그 대처 방안으로 다윗을 통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울 생전에도 다윗의 진가를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3.하나님의 명령은 가장 중요한 동기가 되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일지니라." 즉 너는 그들을 다스리라. 방백들은 목자처럼 자기 백성을 먹이며, 매사 그들의 편익을 도모해야 하며, 먹어야 한다. 그들을 탈취해서는 안 된다. "너는 평화시에 다스리는 왕이 될 뿐 아니라, 전시에는 전쟁 사령관이 될지니, 진영의 온갖 수고와 위험에 대처할지니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고, 이제 마침내 필요성에 의해서 그들이 그리로 나아가게 되었으니, 말도 역시 그렇게 하게 된 것이다.

👉 이미 여호와께서 다윗을 통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다는 사실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란 표현을 볼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대표들은 아브넬에게 들은 말을 다윗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3:18,19) 여호와의 말씀을 직접 인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 내용에 있어서도 본절의 표현은 아브넬의 말과 유사하기는 하지만 정확하게 동일한 인용은 아니다. 이로 보건대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적 말씀은 비록 성경에 명시적으로 기록되진 않았지만 이스라엘 전역에 걸쳐 잘 알려져 있었다고 볼 수 있으며, 기록으로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얘기 속에서 각각 달리 표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다윗이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되리라는 것만큼은 공통적인 요소라는 것이다. 본문에서 이스라엘 지파의 대표들은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는 이러한 말을 명시적으로 발설함으로써 다윗의 왕권이 신적 근거를 가지고 있음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로써 다윗은 왕으로서의 정치적 자질과 그 신적 근거를 백성들로부터 인정받음으로써 신정 왕국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손색이 없게 되었다.

‘목자가 되며’
이스라엘 사회에서 하나님께 대하여 이러한 빙가 사용된 적은 있으나(창48:15; 49:24) 왕에게 사용되기는 다윗이 처음이다.
-하나님께서 ‘목자’로 비유되는 사실을 볼 때에(시23:1; 74:1; 77:20; 78:52; 80:1; 95:7) 사람에게 이 비유가 사용되는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백성을 통치할, 하나님에 의하여 택함 받은 왕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이스라엘 지파의 대표들이 여호와의 말을 빌어서 다윗을 ‘목자’ 로 내세운 것은 그들을 다스릴 왕에 대한 이상적인 모습을 다윗이 실현할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가졌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본문은 과거 일개 목동이었던 다윗이(삼상 17:15,34) 이제 여호와의 택하심으로 인하여 백성들을 양처럼 돌보는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이 될 것을 암시한다.

아무튼 이후로도 다윗 왕은 목자의 이미지를 갖는 전형적인 인물로 등장한다(시 78:70-72; 겔 34:23; 37:24). 그런 의미에서 후에 나단 선지자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연관된 다윗의 범죄를 지적하기 위해서 다른 비유를 하지 않고 “목자와 양에 대한 비유” 를 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12:1-4).

‘주권자(나기드)’ (사역형)
-이스라엘의 주권자는 스스로 권위를 차지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공적으로 ‘지명되어진 자’
-일반적으로 본문의 ‘나기드'는 동사
’나가드’ 에서 유래한 명사로 보는데 본문에서도 이러한 의미를 취할 때 다윗이 백성들 앞에 나선 자가 아니라 신정 왕국 이스라엘의 진정한 통치자이신 하나님의 대표들이나 장로들이 다윗에게 와서 이러한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Ⅱ. 다윗의 공식적이고 엄숙한 취임(3절).

각 도성의 대회가 소집 되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들이 다윗에게 나아왔다. 계약이 체결되었다. Pacta conventa-즉 계약들이 세워지고, 쌍방이 서명을 했다. 다윗은 평화시에는 그들의 사사로서, 전시에는 그들의 사령관으로서 그들을 보호하겠다고 했다. 그는 그들의 "동맹자가 되었고." 하나님이 그 증인이 되셨다. 그리고 장로들은 그에게 복종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동맹은 "여호와 앞에서" 맺어진 일이었다. 이리하여 그는 세 번째로 왕으로서 부름을 받았다. 그의 승진은 점진적이었다. 그래서 그의 신앙이 시련과 연단을 받았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리하여 그의 나라는 메시야의 나라의 한 예표가 되었다. 메시야의 나라도 점차적으로 절정에 달하게 된다. "우리는 아직 만물이 그에게 굴복한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히 2:8). 그러나 마침내는 그런 일을 보게 되리라(고전 15:25).

👉 ‘그 왕’ 이란 정관사를 붙인 표현이 본장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 이로 다윗이 유다와 이스라엘의 절대저이고 유일한 왕임을 나타내고 있다.

여호와 앞에서 저희와 언약을 맺음
언약을 세우는 주체=다윗.
1.‘저희와’
= 이는 다윗과 이스라엘 장로들간의 상호 동등한 언약이 아니라 다윗의 우월성이 전제된 가운데 다윗이 장로들을 위하여 베푸는 언약을 맺었음을 알 수 있다.
2.그러나 그것은 ‘그들을 위하여’ 세운 언약
= 다윗의 일방적인 전제 정치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맹종을 전제하는 언약으로 볼 수 없다. 즉 이는 다윗 자신도 스스로에게 그 언약 어행의 의무를 지움으로써 자신이 충실하게 그들을 인도해 가고 지키며 보호할 왕이 될 것을 맹세한 언약이었던 것이다.
3.‘여호와 보는 앞에서’
이러한 표현은 비록 다윗이 이스라엘의 유일한 왕으로 행동하고 있지만 그 모든 것이 여호와의 언도와 그분의 축복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대명제하에서 행해진 것임을 밝히 보여주고 있다. 이스라엘이란 나라의 정체성은 여호와의 임재함이 없이는 결코 세워질 수 없는 신본주의적언 신정 왕국이므로 다윗 역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왕권을 행사하여야 했던 것이다.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음
-이렇게 기름부음을 받는 대상은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에서 중재의 역할을 감당하는 왕, 선지자, 제사장으로 제한되어 있었음.
-그러므로 이들이 기름부음을 받은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성별되었다는 의미를 갖는다. 본문의 다윗도 하나님을 위하여 왕으로 구별되었음을 나타내는 의식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던 것이다.

한편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의 공식적인 왕으로 등극한 사건을 다루고 있는 본단락(1-3절)은 대상 11:1-3과 평행을 어루고 있는데, 역대상 기자는 본단락의 사건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전하신 말씀이 이루어진 것’ 이란 해석을 덧붙이고 있다. 이는 다윗의 등극이 다윗 자신의 정치적 자질 향상이나 대세의 흐름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님에 의해서 계획되고 실행된 결과였음을 드러낸다.

Ⅲ. 그의 치적과 연한에 대해서 일반적인 기록이 나와 있다.

그가 왕이 될 때 나이는 30 이였고, 그 때 사울이 죽었다(4절). 바로 그 나이에 레위인들은 비로소 자기들의 공무를 수행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민 4:3). 다윗의 자손 예수도 그 나이쯤에 공무를 시작했다(눅 3:23). 그때에야 사람은 판단력에 있어서 완전히 성장하는 것이다.

👉 30세
: 요셉이 애굽의 바로앞에 총리가 되었을 때 나이(창41:46),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셨을 때 나이(눅3:23), 회막에서 레위인들이 일할 수 있는 나이(민4:3 이하).
→ 이러한 점에서도 암시되듯이 다윗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왕성하고 값있는 나이에 왕이 되었다.

40년간 통치함
: 이는 사울의 통치 기간(행 13:21)과 솔로몬의 통치 기간과 일치한다(왕상 11:42).
-40년의 세월은 완전한 한 세대의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다윗은 완전한 한 세대의 기간 동안 왕으로서 이스라엘을 통치했던 것이다.
-또한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라’고 한 모세의 말을 생각할 때(시 90:10), 다윗은 왕으로서 역량을 잘 발휘할 수 있는 삼십 세에 왕이 되어 인생의 기력이 다하는 칠십 세까지 왕위에 있었던 점으로 보아 이상적인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다윗의 칠십 년 인생을 삼십 세의 ‘다스림’ 에서 시작하여 칠십 년의 ‘다스림'으로 마감했옴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숫자의 제시는 아마도 다윗의 다스림의 인생을 앞으로 임할 이상적인 왕의 다스림에 대한 예표로 본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상적인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완전한 한 세대만을 다스릴 왕이 아니라 모든 세대틀 영원토록 완전하게 통치하실 왕이시다.

그는 도합 40년 6개월을 통치했다. 그 중 7년 반은 헤브론에서 33년은 예루살렘에서였다(5절). 헤브론은 유명했었다(수 14:15). 그곳은 제사장의 성읍이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더욱 유명해져야 했고, 더욱 거룩한 도성이 되어야 했다. 위대한 왕들은 각기 자기의 도성을 세우고 싶어한다(창 10:11, 36:32-35). 다윗도 그러했다. 예루살렘이 바로 다윗의 도성이었다. 그것은 성경의 끝까지 유명한 이름이다(계 21장). 거기에 보면 새 예루살렘이란 것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