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 성경읽기
창세기 18, 마태복음 17, 느헤미야 7, 사도행전 17
묵상구절
2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일러라. 제사장은 자기 백성 가운데 죽은 자로 인하여 자기를 더럽히지 말아야 한다.
21:2 그러나 자기에게 가까운 친족인 자기 어머니나 아버지나 아들이나 딸이나 형제나
21:3 남편 없이 자기에게 가까이 있는 처녀 누이가 죽은 경우에는 자기를 더럽힐 수 있다.
21:4 제사장은 자기 백성 가운데서 어른이므로 자기를 더럽혀 부정하게 해서는 안 된다.
21:5 그들은 자기 머리를 대머리가 되게 하지 말며, 자기 옆 수염을 깎지 말고, 자기 살을 절대로 베지 말며,
21:6 그들의 하나님께 거룩하고 그들의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여호와의 화제, 곧 그들의 하나님의 음식을 드리는 자들이므로 거룩하여야 한다.
21:7 그들은 창기나 부정한 여자나 자기 남편에게서 쫓겨난 여자를 아내로 삼지 말아야 한다. 이는 그가 자기 하나님께 거룩하기 때문이다.
21:8 너는 제사장을 거룩하게 여겨야 한다. 이는 그가 네 하나님의 음식을 드리기 때문이다. 그는 네게 거룩하니, 이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기 때문이다.
21:9 어떤 제사장의 딸이 창기 짓을 하여 자기를 더럽히면 그것은 자기 아버지를 더럽힌 것이므로 그 여자를 불로 태워야 한다.
21:10 자기 형제들 가운데 가장 손위로서 그 머리에 기름 부음을 받고 위임되어 예복을 입은 대제사장은 자기 머리를 풀거나 자기 옷을 찢지 말고,
21:11 어떤 사체에도 가까이하지 말며,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로 인해서도 자기를 더럽히지 말고,
21:12 성소에서 나오지 말며, 자기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히지 말아야 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성별하여 그 위에 기름을 부으셨기 때문이다. 나는 여호와이다.
21:13 그는 처녀를 아내로 삼아야 한다.
21:14 그는 과부나 이혼한 여자나 창기 짓을 한 더러운 여자를 아내로 삼아서는 안되고, 다만 자기 백성 중에서 처녀를 아내로 삼아
21:15 그의 백성 중에서 그의 후손을 더럽히지 않아야 한다. 나는 그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다."
21: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21:17 "너는 아론에게 말하여라. 네 자손 중에서 대대로 몸에 흠이 있는 사람은 자기 하나님의 음식을 드리기 위해 나와서는 안 된다.
21:18 몸에 흠이 있어서 가까이 나아오지 못하는 사람은 맹인이나 다리 저는 자나 얼굴이 일그러진 사람이나 몸 부위가 제대로 생기지 않은 사람이나
21:19 발 부러진 사람이나 손 부러진 사람이나
21:20 곱사등이나 난쟁이나 눈에 백태가 있는 사람이나 가려움증 환자나 버짐이 있는 사람이나 고환이 상한 사람 등이다.
21:21 제사장 아론의 자손 중에 몸에 흠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와 화제를 드릴 수 없으니, 그는 몸에 흠이 있으므로 음식을 드리기 위하여 자기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서는 안 된다.
21:22 그는 그의 하나님의 음식, 곧 지성물이나 성물을 먹을 것이나
21:23 휘장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하며 제단에 가까이 나아가서도 안 된다. 이는 그의 몸에 흠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내 성소를 더럽히지 말아야 할 것은, 내가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기 때문이다."
21:24 이와 같이 모세가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말하였다.
매튜헨리/옥스퍼드
💡 본 단락부터 21,22장 사이의 총 5 문단
- 제사장들이 일상생활 중에서 주로 자신들의 제사장으로서의 특별한 직무와 관련하여 지켜야 할 성결 규례가 제시됨.
앞서 일반 백성들의 성결 규례에서도 그랬듯이 여기 제사장들의 성결 규례들도 이상의 규례들만이 제사장들의 성결을 유지하기 위한 모든 규례의 총집합인 것은 아니다. 이는 다만 제사장들에게도 그들의 일상 생활 중에서 특히 그들의 제사장 직무와 관련하여 성결을 유지할 필요가 있음과 그 정도의 기준을 보여 주기 위한 몇몇 실례들일 뿐이다.
제사장(the Priest)이란 다름 아니라 전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여, 또한 하나님과 이스라엘 회중 사이의 중보자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제사 업무를 독점한 자들이었다.
그리고 이 아론 계열의 제사장 직무는 하나님에 의하여 직접 위임되었으며 또한 하나님에 의하여 종신 세습직으로 인정 및 허가되었다. 따라서 제사장들은 일반 선민 이스라엘 회중 중에서도 다시 더 특별히 구분된 하나님의 종이요 백성들의 종교 지도자였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당연히 일반 백성들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더욱 고도의 철저한 성결이 요구되었다.
그러나 제사장들에게는 일반 백성들보다 가일층 강화된 수준의 성결이 요구되었다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그 근본 의의는 일반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결 규례와 동일하다.
즉 일반 백성들의 성결 규례에 뒤이어서 하나님의 종이요 민족의 종교 지도자로서 하나님 앞에서 일반 이스라엘 회중(Congregation) 전체를 대표하고 있는 제사장들에게 더욱 고도의 성결이 요구된 것도 결국 넓은 문맥에서 볼 때에는 하나님의 백성 전체는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거룩해야 함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제사장들에게 주는 율법 (레위기 21:1-9)
제사장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분별하는" (10:10, 11) 일에 관한 법도를 백성들에게 가르쳤다. 그런데 그들 자신도 그 율법을 모두 지켜야 한다는 전제가 주어져 있다. 교훈을 주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훈계는 물론 모범도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딤전 4:12).
제사장들은 백성 중에서 어느 누구보다도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가야 했고, 성물과 더욱 친숙해야 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조건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즉 모든 사람들이 더러운 일을 삼가야 되지만, 특히 제사장들은 더욱 철저하여 자기들의 제사장직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Ⅰ. 제사장들은 죽은 자들을 애곡하는 동안 자신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죽은 자를 위해 곡하는 모든 사람들은, 아마 시체에 직접 손을 댈 정도는 아니더라도 시체에 가까이 갔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죽은 시체에 2m 안으로 접근하는 것은 의식법상으로 부정한 것이라" 고 한다. 뿐만 아니라 죽은 사람의 천막에 들어가는 사람은 모두 7 일 간 부정하다고 되어 있다(민 19:14). 그러므로 장례식에 참여하여 곡하는 모든 사람들은 자기를 더럽히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자들은 7 일간 성소에 들어가는 것을 금지당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다음 명령이 내려졌다.
💡 이 명령은 ‘결코 네 자신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는 매우 강력한 부정 명령이다. 본문에서 이 동사는 3인칭 단수형, 제사장 개개인에게 개별적으로 적용되는 규정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제사장들이 성막을 떠나 있을 때에 각자의 생활환경에서 준수해야 할 명령인 것.
왜 성소에서 일하는 제사장과 죽은 자의 접촉을 엄격하게 금하시는가?
- 하나님 당신께서 결코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심을 알리시기 위함이었고(눅20:38),
- 죽음이 죄의 결과로 임하는 것이었고, 시체와 접촉된 자는 의식적으로 더럽혀진 것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제사장은 죄의 오염으로부터 철저히 구분되어야 함을 교훈하시기 위하여 이러한 규례가 주어졌다고 볼 수 있다. </aside>
1. 제사장들은 자기들의 골육지친이 죽은 경우가 아니고는 그런 일을 하면(애곡을 하고 장례에 참예하면) 성소에 들어올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1-3절).
부모나 자식, 혹은 형제나 미혼 누이들을 위해서는 상을 치르는 것이 제사장들에게 허용되었다. 그러므로 확실히(이것은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그의 아내를 위해서도 허용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제사장인 에스겔은 특별한 금지 조항이 없는 한, 그의 아내를 위해서 곡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겔 24:17).
이러한 일을 허용해 둠으로써, 하나님은 인간의 본성적인 애정을 존귀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시사, 7일 간은 당신의 종들(제사장들)에게 집무 수행을 면제해 주시기까지 하셨다. 그래서 제사장들은 그 기간 동안에는 그들의 친족의 죽음에 대해 애도의 뜻을 표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기간을 지나서도 곡하는 것은 금하셨으니, 그것이 씨 뿌리는 것(장례)을 방해하기 때문이요, 또 친척에 대한 애정 때문에 성소에서의 예식에 불참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죽었을 때에는, 전혀 애곡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이 해석하는 바대로, "백성 중의 주요 인물" 중의 한 사람이 죽었을 때에도 아니 된다. 제사장들은 그들의 친족이 아니라면, 자신들을 그런 일로 더럽혀서는 안 되었다. 대제사장일지라도 역시 안 된다.
세상에 "어떤 친구들은 형제보다 친밀하다" (잠 18:24). 그러나 제사장들은 자기의 친족 외에는 자기와 가장 절친한 친구가 죽었을지라도 존경의 염을 표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만약에 한 친구에게 그렇게 하고 나면, 다른 친구들도 그렇게 해 주기를 원할 것이요, 마침내는 종종 집무를 빼먹는 사례가 생기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까운 친족들에게는 그러한 특별한 애정을 표시할 수 있도록 허용되었다. 그런 자들이 죽으면 자연히 거기에 마음이 쏠리고 동화되어 영향을 받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도 죽음이 다가오고 있으며, 그들의 뒤를 따라갈 준비를 우리도 해야 한다는 경고로 삼아야 되는 것이다.
💡 2절,
- 1절에서 죽은 자로 인해 스스로를 부정하게 하지 말 것을 명령하신 것과 달리 규정의 예외 사장을 언급해주신다. 제사장과 그의 직계 가족 간의 밀접한 연합을 표현하는 말을 사용하여 그들이 죽었을 경우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제사장이 그들과 접촉할 수 있음을 나타내 준다.
3절
- 출가하지 않은, 처녀 자매에 대해서 예외 조항이 적용된다. 이미 한 남자에게 속한 자매는 더 이상 가족 구성원으로 취급하지 않았던 것이 고대 이스라엘의 관습이었으나 미혼의 여성은 가족 구성원으로 여겨졌으며 그 남자 형제는 그녀의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하여야 했기 때문이다.
- ‘더럽힐지니라’ 가 무슨 뜻인가?
- 원어 성경은 ‘~그녀를 위하여’, 란 뜻으로. 제사장이 무엇 때문에 스스로를 더럽혀야 하는지 잘 나타내 주고 있다.
- 2,3절에 열거된 자들은 제사장의 직계 가족들로서 그들이 죽으면 그들을 장사 지낼 책임이 제사장에게도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죽었을 경우 제사장은 자기의 책임을 결코 회피할 수 없었다. 따라서 ‘너의 책임을 다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4절, 제사장이 스스로 더럽혀 욕되게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원문을 해석하면, ‘그는 그의 백성 가운데 남편으로서 스스로 더럽게 됨으로써 스스로를 부정하게 만들지 말라’
- 본문의 전통적 견해는, 제사장이 결혼으로 인해 맺어지는 인척들의 죽음을 가까이하지 말아야 된다는 해석이다(Cazelles, Kilian, Hartley). 이 견해에 따라 본문을 의역하면, “제사장은 그 백성들 중에서 남편으로서 결혼으로 맺어진 처가 인척들의 죽은 자로 인하여 스스로를 더럽게 함으로써 자신을 부정하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처가 친척들은 제사장이 직접 나서지 않더라도 죽은 자를 처리할 자들이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지닌다.
2. 그러나 가장 가까운 친족이 죽었을 때라도 도에 지나치게 슬퍼해서는 안 된다(5절). 그들의 슬픔은
(1) 이방인들이 자기들이 믿는 바대로 죽은 사람 가운데에 살고 있는 신(그들은 그렇게 생각한다)을 찬양하기 위하여 머리털을 자르고 피를 흘리는 관습을 가지고 있었는데(팔레스틴 주변 국가에서 장례시 행하는 관습), 제사장들이 그들의 관습을 좇아 미신적인 짓을 해서는 안 되며, 죽은 친구들을 위하여 단지 도에 맞게만 슬퍼해야 한다.
장례식에서 옛부터 사용되어 오던 미신적인 의식은, 영혼 불멸을 믿고 그 영혼이 다른 세계에서 존재한다고 하는 고대인의 신앙을 시사해 준다. 그러나 이런 의식은 하나님의 율법으로 금하여졌다. 그런 것은 거짓 신을 섬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은 자들에 대한 고상한 존경심은, 우리가 죽은 자들을 영원히 잃어버린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지시해 주며, 이것은 인간의 본능이 가르쳐 주고 있는 바요, 또 율법이 부정하고 있는 바도 아니다.
💡 제사장이 직계 가족의 죽은 자를 접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상을 숭배하던 주변 국가의 관습을 좇아 자신을 학대하며 지나치게 애도하는 일을 해서는 안됨을 엄히 명하고 있는 것(19:27,28; 신14:1).
💡 6절은, “그들이 거룩한 상태로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미완료형, 지속적 상태의 의미)
- 왜? 제사장이 이미 거룩하게 구별된 자들이었기 때문에 그 거룩함을 유지하고 지켜 가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음.
- 제사장들은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것을 향하여 거룩해지려고 해서는 안 되며 오직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그 거룩함을 유지하려고 애써야만 했던 것이다. 따라서 제사장들은 자신들이 거룩하게 되었다고 해서 자신 안에서 거룩이 솟아날 수 있다는 교만한 생각을 가져서는 안되며 언제나 하나님을 향하고 있을 때에만 그 거룩함이 유지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께 날마다 마음과 행실을 드려야만 했던 것이다.
- 거룩은 다른 곳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방향을 맞출 때에만 거룩을 유지하고 보전할 수 있는 것이다.
- 이런 의미에서 본문을 다시 의역하면 ‘너희는 하나님께 방향을 맞추어 그분을 항상 바라봄으로써 너희들이 지니고 있는 거룩함을 유지하고 지켜 나갈지라’ 가 된다. 제사장이 자신의 생명과 같은 거룩함을 하나님을 바라봄으로써 지켜 갈 수 있었듯이 그리스도로 인하여 제사장직을 가지게 된 성도들도 그리스도만을 바라봄으로써 결국 거룩한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어 구원에 이르게 됨을 명심해야 한다(히 12:1-13).
그러므로 그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아야 할 것
- 18:21, 19:12 참조. 특별히 제사장과 관련하여 다시 한번 본문의 문구가 반복된 것은 제사장과 하나님과의 관계, 특히 제사장이 하는 남다른 역할과 깊은 관련을 갖는다.
(2) 또한 그 슬픔은 격정적이고 무절제한 애곡이 되어서도 안된다. 주의할 것은,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가족을 잃고 슬퍼하는 괴로움에 잠긴 자들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왜 그들이 "소망 없는 자들과 같이 슬퍼하지 말아야" 하는지(살전 4:13) 그 이유를 남보다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현저하게 안정되고 침착하게, 그들이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있는 자답게 남들을 위로해 주어야만 한다.
일반 사람들에게도 죽은 자들을 위해 미신적인 의식을 행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19:27, 28). 그들에게 반율법적인 일이라면, 제사장들에는 더욱 범법적인 일이 되리라. 우리는 그들이 각별히 조심하여 자신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는 이유를 알고 있는데, 그것은 그들 자신이 "하나님의 식물" 을 먹고, 심지어 하나님의 집과 식탁에 음식이 되는 예물 곧 "여호와께 화제" 를 드리는 자들이기 때문이다(6절).
💡 본절은 하나님의 식물을 드리는 일을 하는 제사장들이 그 식물을 부정하게 드리거나 제사장 자신이 부정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경고하고 있는 것.
제사장이 하는 예식들 중 특히 ‘하나님의 식물’을 드리는 일을 특별히 언급한 데 있는 중요한 의미가 무엇인가?
- 여기서 ‘하나님의 식물’ 이란 말을 결코 하나님께서 이방의 신처럼 음식에 의존한다든지 음식 제물을 원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식물’ 로 번역된 ‘레헴’ 이란 단어는 화목제와 관련해서만 나오는 단어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식물’ 이란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과 함께 나누시는 화목제의 식물이란 표현이다. 이때는 온 백성이 함께하였기 때문에 제사를 집행하고 제물을 나누는 제사장의 행동은 일반 백성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따라서 본문에서 특별히 하나님의 식물을 수종하는 제사장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거룩과 연관시키고 있는 것은 백성들의 본이 되어야 할 그들의 역할을 부각시키기 위함이었음을 알 수 있다.
- 오늘날 교회에서도 한 지도자가 어떤 행동을 보이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존귀하게 될 수도 있고 욕되게 될 수도 있음을 마음에 새기고 직분을 맡은 자들은 ‘하나님께 대하여’ 거룩하도록 힘써야 한다.
- 그리고 화목제의 예물은 제사장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 가운데 유일하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예물이었고 하나님께서는 그 희생 예물을 나누는 자리에 함께하심으로 화목을 같이 나누시길 원하셨다(신 12:7).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매우 존중을 받았다. 그러므로 감정의 노예가 되어 자신들을 더럽혀서는 안 되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거룩한 일에 종사해야 하며, 그들의 소명에 부적합하거나 어울리지 않는 일은 하지 말아야 되었다. 만일 그들이 자신들을 더럽히면,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 자신을 더럽히는 것이 된다. 만일 종들이 조잡한 짓을 하고 잘못된 행실을 저지르면, 그들의 주인에게까지 욕을 돌리게 된다. 주인이 자기 집안의 규모와 질서를 잘 다스리지 했기 때문이다.
주의할 점은, 하나님께 제사드리거나 제물을 먹는 자들은 모든 대화의 예법에서도 거룩해야 되며, 만일 그렇지 못하면 그들은 그들이 거룩히 여기는 그분의 이름을 더럽히고 만다는 것이다.
Ⅱ. 제사장들은 결혼을 하는 일에 있어서도 잘못하여 자기들의 품위를 떨어뜨려서는 안 된다(7절).
제사장들은, 평판이 나쁘거나 죄를 지었거나 죄가 있다고 의심이 가는 여자와 결혼할 수 없었다. 그들은 창녀와도 결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가볍게 처신하고 부정한 행동으로 자신을 더럽힌 여자와도 결혼할 수 없었다. 더구나 이혼한 여자와도 결혼할 수 없었는데, 그녀에게는 이혼하게 된 어떤 결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사장들은 이런 결혼을 해서 자신들을 경멸하는 일을 범해서는 안 된다. 물론 그런 결혼이 일반인들에게는 허용되어 있었다.
💡 본문에서 말하는 이는, 특별히 이방의 제사의식에 참여하여 성적으로 문란한 행위를 하는 ‘성창’을 묘사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본문의 의미는, ‘창녀의 일을 하는 여자 곧 성창의 행위로 더럽혀진 여자를 그들은 취하지 말 것이다’ 란 뜻.
이 사실은 19:29에서 볼 수 있듯이 딸을 ‘기생’ 곧 ‘창녀’가 되게 하는 것은 곧 그 땅을 ‘더럽히는’ 것과 동일한 행위로 간주하고 있는데 이것은 곧 딸을 이방 제사 의식의 ‘성창’으로 주는 것을 묘사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점에서도 입증된다(19:29).
원어 성경을 보면 본절이 3 부분으로 나눠지는데,
- 첫째, 둘째 부분: ‘그들은 ~한 여인을 취하지 말 것이다’ 란 뜻을 나타내는 문장.
- 셋째 부분: 취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 ‘왜냐하면 ~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전체적으로는 모두 성적으로 부정한 여인을 언급하는 것이지만 세부적으로 볼 때 1) 첫 부분은 특히 종교적으로 부정한 여인을, 2) 둘째 부분은 사회적, 법률적으로 부정한 여인을 언급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
- 이러한 여인을 하나님의 율법 안에서는 ‘부정한 여인’으로 봤으나, 이방인의 눈에는 ‘거룩한 여인’으로 인식되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문화에 젖어 타락을 길을 걸어갈 때 제사장마저도 이방신을 음란히 섬기는 성창과 결혼하는 등의 일을 자행할 수 있음을 하나님께서는 미리 내다보시고 본문과 같은 명령을 주신 것이라 할 수 있다.
이혼당한 여인을 취하지 말아야 하는데,
- 한글 성경에서는 ‘이혼당한 여성’이라고 표현했는데, 원어의 문자적 의미는 ‘쫓겨난, 던져 내쳐진’ 이란 의미.
- 이 단어로 보건대 고대 사회에서 여인이 그 순결을 의심받을 때에 당할 수 있는 대우가 오늘날과 같이 법적인 소송에 의해 이뤄지듯 그렇게 점잖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내몰린 여인은 실제로는 아무리 결백했다 하더라도 그러한 대우를 받은 것 자체가 그 여인의 평판에는 치명적인 것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제사장은 그러한 여인과의 결혼을 금해야 했다.
- 그러나 실제 본문은 결백함에도 불구하고 억울하게 쫓겨난 여인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앞에서도 말했지만 본문은 종교적으로 부정한 여인에 대비되는 사회적, 법적으로 부정한 여인을 언급하는 것으로 실제 행동이 부정하여 남편으로부터 이혼당한 여인을 지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그 일로 인하여, 그들의 직무가 당장 질책을 받게 되고 불경건한 자들을 더욱 불경스럽게 만드는 계기가 되며 성실한 자들에게 슬픔을 주게 되기 때문이다.
신약성서에 의하면, 사역자의 아내는 "단정하여 절제함으로써 집무에 책망할 것이 없도록" 하라고 했다(딤전 3:11).
- 또한 가족들에게 오명을 주어서도 안 된다. 제사장의 직분과 명예는 그들의 자손들에게 세습적으로 전해지게 되어 있었다. 그들은 선을 도모하여 좋은 결혼을 함으로써, 그들의 자손이 "거룩한 씨" (말 2:15)가 되어 혈통이 부정해지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
" 너는 하나님을 거룩케 하라. 그러면 그가 너에게 거룩하여질 것이다"라는 말이 부가되어 있다. 즉 "모세여, 너뿐 아니라 온 이스라엘이여, 너희가 이 율법을 실행하여 제사장의 명예를 보존케 하라. 그리하여 제사장들은 자기들의 직분을 잃을 만한 일을 삼가라. 그(제사장)는 그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니라(7절). 그러므로 그가 너희에게도 거룩하니라"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이름을 존귀케 해 준 자들의 이름은 우리도 존경해야 한다. 따라서 복음의 사역자는 이런 법칙에 따라서 "그들의 일 때문에 그들이 지극히 존귀히 여김을 받으며" (살전 5:13),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각자 자기들의 명예를 지키는 수호자들이 되어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 본문은 제사장의 결혼에 엄격한 규제가 따르는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다.
- 원어 성경은 제사장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부각시키기 위해 ‘그의 하나님께’란 표현을 쓰고 있다. 이는 그가 이방 신들의 제사장들과 다르게 ‘그의 하나님’의 율례만을 따르는 제사장임을 강조하는 말이다.
- 즉 본문은 이스라엘의 제사장이 다른 이방 신을 섬기기 위하여 거룩을 추구하는 자가 아니라 자기를 거룩하게 만들어 주신 거룩하신 그의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거룩함을 입게 되었으며, 또한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거룩함을 유지해야 하는 자임을 지적하는 것이다.
- 또한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제사장이 된 신약 시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무수한 가치 기준에 우선하여 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하는지 그 이유를 보여 준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속한 백성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며, 따라서 하나님을 향할 때만 거룩하신 하나님 안에서 거룩한 존재가 될 수 있고, 또 하나님을 향할 때만 그리스도인이라는 신분을 유지할 수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이 규제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선택 사항이 아니라 절대적 명령임을 알아야 한다.
8절, ‘그는 너에게 거룩할 것이니라’(He shall be holy unto thee)
- 말하자면 제사장은 모세나 이스라엘 자손이 거룩히 여기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이미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 거룩해진 자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 앞에 존재하게 될 것이라는 뜻.
제사장의 신분이 거룩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 ‘왜냐하면 너희들을 거룩하게 하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기 때문이다’
- 이는 거룩의 근원이 여호와 하나님 한 분께 있음을 가르쳐 주는 말임과 동시에 그 하나님께서 ‘너희’ 즉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룩하게 하시기 위하여 제사장을 거룩하게 하셨음을 분명히 드러내는 말이다.
- 그러나 제사장이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함을 잃어버리고 거룩하지 못하면 이스라엘 백성 자체를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 이자 ‘거룩한 백성’ 이 되게 하시려고(출 19:5.6) 준비한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과 은혜를 이스라엘은 누리지 못하게 된다.
- 그러나 문맥상 분명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거룩하게 하는 자는 제사장이 아니라 근원적으로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하지만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없는 자들이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제사장의 거룩함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함을 입게 되는 것이다.
구약 제사장의 이러한 사역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제사장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사이에 중보자가 되어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 그러나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을 온전히 거룩케 하는 제사장직을 완전하게 수행하시고 성취하신 분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따라서 그분이 우리에게 거룩하신 분으로 계신 이상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지속되며 우리가 그분에게서 멀어지면 그 순간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거룩하게 하시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하신 주님을 가까이 함으로 그분을 닮아 하나님의 거룩함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요 17:19).
Ⅲ. 제사장의 자녀들도 자기들을 경멸케 하는 일에 조심해야 한다. "만일 제사장의 딸이 행음을 했다면" (9절) 그녀는 중죄인이 된다.
💡 9절, 본문은 제사장의 딸이 일시적으로 간음을 행한 경우가 아니라 자원하여 지속적으로 간음을 행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이는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범하는 행음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특히 그 당시 가나안 이방 종교의 풍습에 따라 성창의 신분이 될 목적으로 자신의 몸을 우상 앞에서 파는 것을 염두에 둔 명령이라 볼 수 있겠다.
그녀는 자신을 부정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을 모독한" 것이다. 다른 여인들은 제사장의 딸이 지니고 있는 그런 명예를 지니고 있지 않으므로, 그들에게는 잃을 명예도 상대적으로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제사장의 딸은 거룩한 음식을 먹고, 남보다 높은 교육을 받았다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아니 그것은 **그녀가 "그녀의 아버지를 모욕한 것이다."**그 영향이 아버지에게까지 이르고, 사람은 아버지가 그 딸을 교육시키지 않은 것을 비난하게 될 것이다. "왜 그는 자기 딸을 잘 교육시키지 못했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온의 죄인들은 그 제사장 된 아버지를 욕하고, "여기 당신들의 제사장의 딸이 있소!" 하고 말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가 받을 형벌도 특히 가중해야 했다. "그녀는 불에 태워 죽일 것이라" 고 했다. 즉 모든 제사장의 딸들에게 경고의 본보기를 주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모든 제사장의 자녀들은 더러운 행실을 피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2 중적인 추행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이 지은 죄는 "질투하는 자" 라는 이름을 가지신 하나님의 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 그러나 딸의 행위는 아비의 거룩함을 지속적으로 더럽힐 수 있음을 의미. 따라서 그 딸에게 주어질 수 있는 형벌은 죽음밖에 없었으며, 그것도 돌로 친 후에 불사름으로써 부정의 불씨를 완전히 제거해야만 했다(20:14). 이처럼 제사장의 거룩은 그 가족에 의해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이는 신약 시대에 장로를 세울 때 결코 그 장로될 사람 한 사람의 자질만 보고 뽑지 않고 특별히 그 자녀들의 행실도 보고 뽑았던 것과 깊은 유사성을 지니는 것이라 할 수 있다(딛 1:6).
이로 보건대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사역자는 자기 가정에 대해 깊은 책임감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의 본이 될 수 있도록 가정을 잘 돌보아야 한다.
●대제사장에게 주는 율법 (레위기 21:10-15)
제사장들에게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이 기대되었다. 그러나 대제사장에게는 일반 제사장들보다도 더욱 많은 것이 요구되었다. 왜냐하면, 그의 머리에는 "거룩한 기름이 부어졌고, 예복" 을 입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10절). 이것은 우리 주 예수의 기름부음과 단장의 상징이었다. 곧 주님은 성령의 은혜와 은사로 한량없이 기름부음을 받으셨고 옷입으셨다.
그 기름은 "하나님의 거룩한 관유” 라고 불려졌다(12절). 왜냐하면, 성령의 기름 부으심은 그것을 받는 모든 사람에게 "영광의 관" 이며 "아름다움의 화관" 이기 때문이다(사 28:5). 이리하여 대제사장은 뛰어난 위엄을 그 몸에 지녔던 것이었다.
Ⅰ. 그러므로 그는 죽은 사람 때문에 자신을 부정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는 "부모로 인하여서도" 더구나 자녀나 형제와 같은 가장 가까운 인척의 죽음을 인하여서도 부정해질 수 없다(11절). 대제사장은 자기의 "머리를 풀고 옷을 찢는" 따위의 일반적인 슬픔을 나타내서도 안 된다(10절).
그는 생활 속의 십자가나 위안을 온전히 감추고 생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지한 자들에 대한 동정과 그들의 죄악에 대한 아픔, 하나님의 집을 돌아보는 배려 속에 자기의 온갖 감정을 묻어 버려야 한다. 그는 그러한 일을 다스리는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우림과 둠밈을 위탁받은 자이므로 "부모까지도 몰라야 한다" (신 33:8, 9).
💡 대제사장은 관유를 기름부음을 받는 자. 대제사장은 슬픔을 당하여도 머리를 풀지 말아야 한다.
- 10절의 의미는 문자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유는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을 때 사용하는 수단이 손이기 때문이다.
‘예복’
- 대제사장의 옷은 거룩한 대제사장의 신분을 나타내는 성의로서 대제사장의 위임식에서 성의 착용식은 하나의 주요 의식이었다.
본문은 위임 예식을 통해 거룩해진 대제사장의 머리와 손과 옷의 정결함을 결코 흐트리지 말 것을 엄히 경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글 개역 성경은 머리와 예복에 관해서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번역하였지만 손이야말로 실제로 직접 머리를 풀고 예복을 찢는 행위를 하는 데에 쓰이기 때문에 앞에서 지적했둣이 여기에는 ‘손’ 도 포함되는 것이다.
대제사장은 위임식을 통하여 이 세 부분에 있어 일반 사람들이 경험할 수 없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대제사장이 이 세 부분의 정결함을 해치는 행위를 하는 것은 곧 그의 거룩을 잃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이로 보건대 신약 시대에 대제사장이 예수님을 심문하면서 예수님의 말로 인해서 사람들 앞에서 대제사장의 예복을 찢은 것은(마 26:65)
- 단지 외형상으로 자신의 의분을 사람들에게 보이려는 외식이었을 뿐. 실제로는 오히려 그 자신이 율법에 나타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스스로 대제사장의 본분을 망각하여 경거 망동을 한 것이었고 그래서 결국 스스로 거룩을 잃어버리는 행동을 저지른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2. 그는 어떠한 시체에도 가까이 가서는 안 된다(11절).
만일 하급 제사장들이 의식법 상의 부정에 처하게 되면 다른 제사장들이 그 직무를 벌충할 수 있다. 그러나 대제사장이 부정해지면, 그의 직무를 대신할 자가 없게 된다. 그리고 슬픔을 당한 집이나 장례식에 참예치 못하게 하는 것은, 그가 위탁받은 직분의 존엄성을 백성에게 알리기 위함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신앙 고백을 받으시는 위대한 대제사장이 되시지만, 그는 야이로의 죽은 딸을 만지셨고, 과부의 죽은 아들과 나사로의 무덤을 만지셨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의 성질을 변경시키고 죽음의 권세를 깨뜨림으로써 죽음의 공포를 제거하셨음을 시사해 주는 일이다. 그러나 죽음의 권세를 깨뜨릴 수 없는 자는 주검으로 신성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
💡 대제사장은 어떤 경우, 어떤 대상이든 죽은 사람에게 다가가서는 안됨을 보여 주고 있다. 다른 일반 제사장의 경우와 대조됨.
이는 대제사장의 직분이 얼마나 철저히 하나님께 헌신해야 하는 위치인지를 보여 줌과 동시에 그에게 있어서는 언제나 하나님을 향한 헌신이 가족에 대한 의무보다 앞서는 것임을 보여 줌.
우리가 이 말씀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이다.
- 이 우선 순위 문제만큼은 모든 성도의 삶에 분명하게 정해져 있어야 한다. 이는 우리의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께서도 이미 친히 보여 주신 적이 있다(마 8:21,22 ; 12:49.50).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가족에 대한 책임을 다하되 항상 하나님께 대한 우선 순위를 잊지 말고 살아야 할 것이다.
3. "대제사장은 성소 밖으로 나갈 수 없다" (12절).
언제든지 그가 성소에 참예하여 하나님의 일을 돌보고 있는 중에는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그는 그동안 늘 성소에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그동안에는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하나님 앞에 계속 머물러 있어야 했다. 심지어 죽어가고 있는 자기 가족을 만나 마지막 말을 전해 줄 수도 없었다. 그가 성소에 참예하는 동안에 성소를 떠난다면 그것은 신성모독이다. 여하한 일이 벌어져도 그런 일을 범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보다 자기의 일을 하는 데에 더 열중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어떤 일보다도 하나님의 일에 전무해야 한다.
이와 같이 우리 주 예수께서도 "그의 모친이나 형제와 대화를 하기 위해서" 설교를 중단하신 적은 없으시다(마 12:8).
💡 12절, 본문을 직역하면, ‘왜냐하면 그의 하나님의 부으신 기름의 헌신이 그의 위에 있기 때문이다’
- 대제사장만큼은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위해 ‘성별’ 되었기 때문임을 분명히 말해 주고 있다. 말하자면 하나님을 향한 헌신이 그의 삶에서는 우선순위였던 것이다.
Ⅱ. 대제사장은 이혼한 여인과 창녀는 물론 과부와도 결혼할 수 없었다(다른 제사장들은 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13,14절). 이것은 결혼 문제에 있어서도 일반 제사장들과 대제사장 사이에는 차이를 두기 위해서이다.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고 있는 바와 같이) 대제사장은 그리스도의 한 모형이었기 때문이었다.
교회도 "순결한 처녀" (고후 11:2)로서 그리스도에게 바쳐져야 했다(겔 44:22 참조). 그리스도는 마땅히 우리의 첫사랑을 받아야 하며 우리의 순결한 사랑, 완전한 사랑을 받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처녀들은 주를 사랑하고" (아 1:3), 그런 자들만이 "어린양을 따르기에" 적합한 자들이다(계 14:4).
💡 13절, 거룩하게 구별된 대제사장은 다른 남자에게서 구별되어 있는 여인, 즉 처녀성을 간직한 여인을 취해야 한다. ‘처녀’라는 신체상의 조건 자체에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그녀가 구별됨을 몸에 지니고 있다는 의식적인 의미가 더 큰 것을 알 수 있다.
14절, 대제사장이 취해야 할 여인의 범주가 매우 신중하게 고려되었다.
- 여인의 영적, 사회적, 육체적 순결함에 대해 이토록 세밀하게 다루시고 있는 것은 그 여인이 대제사장과 한 몸이 될 자였으며 다음 세대의 대제사장과 제사장의 어머니가 될 자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가정의 아내나 어머니의 거룩함이 전제되지 않고는 그 가정이 거룩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Ⅲ. 대제사장은 자기의 자손을 백성들 가운데서 부정하게 해서는 안 된다(15절).
어떤 사람들은, 이 말은 대제사장이 그 집안의 품위를 떨어뜨릴 만한 하급 계층의 사람과 결혼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한다. 여호야다는 그의 족속을 떠나서 결혼하였으나 그것은 왕족과의 결혼이었다(대하 22:11). 이것은, 대제사장이 자기의 직분을 교만되이 자랑하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순결하게 여기고 그의 일이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일을 하도록 훈계하기 위함이다. 뿐만 아니라 대제사장은 자녀 교육에 크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이기도 하다. 그는 자식들을 합당치 못하게 결혼시킴으로써 자식들을 부정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사역자들의 자녀들이 불신자와 부당하게 멍에를 같이 메면, 그것은 자신을 부정하게 만드는 일이다.
💡 15절, 직역하면 ‘그리고 그는 그의 백성 안에서 그의 씨를 더럽히지 말라’
- 이는 대제사장직을 물려받아야 될 자식이 부정한 여인에게서 태어남으로써 그 직분을 이어받지 못하고 오히려 부정한 자로 전락하게 될 위험이 있음을 지적하신 것.
- 자손(씨): 당대에 태어난 아들이나 딸을 의미하기보다는 가계의 혈통을 지속적으로 이어받고 태어나는 ‘씨(창4:25), ‘후손’(창3:15)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에 본문의 표현은 그 대제사장 가문의 혈통 자체가 그 백성 중에서 더럽혀짐을 의미한다
- 즉 본문은 그 대제사장 이후에 출생하는 모든 아들들이 제사장이 근본적으로 지녀야 하는 혈통의 순수성을 상실하고 결국 대제사장이나 제사장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게 될 위험을 경고하신 것이다.
●신체적으로 부정한 자들 (레위기 21:16-24)
제사장직은 특정한 집안에만 주어진 직분이다. 또 대대로 그 집안의 자손들에게 세습된다. 제사장의 가계에도 선천적인 흠이 있는 자나 불구자나 태어날 수 있다. 제사장직의 명예가 그런 참화를 막아주지는 못하는 법이다. 그런 일은 누구나 당하는 공통적인 일이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몇 가지 흠들이 여기에 명기되어 있다. 어떤 흠은 맹인과 같이 일생 동안 당하는 것이며 또 어떤 흠은 몸의 때와 같이 씻겨지면 그 능력을 회복할 수 있는 잠정적인 것도 있었다.
💡 16절~ 마지막 절 까지는 제사장이 될 수 없는 육체적인 결함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이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장소인 성소에서의 임무를 수행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Ⅰ. 신체적 흠이 있는 제사장에 관한 율법을 살펴보자.
💡 17절, ‘흠'
- 여기서 ‘흠’에 해당하는 ‘뭄’은, ‘육체적 결함’ 뿐만 아니라 ‘도덕적 결함’ 까지도 포함하는 말이다(신32:5; 욥31:7). 하지만 본문에서는 ‘육체적 결함’ 만을 의미하므로 문맥으로 볼 때는 ‘온전하지 못함’으로 번역하는 것이 어울린다.
11장에서 정한 동물과 부정한 동물의 차이를 다룰 때에 주된 기준은 어떤 동물이 외형상으로 그 동물의 종이 지니고 있어야 할 온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느냐 아니냐 하는 사실이었다.
다시 말해 본절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결함 자체를 다루시려고 하신 것이 아니라 단지 사람이기 때문에 가지는 외형상의 온전한 모습이 하나님의 성소와 희생 예물의 온전함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음을 알리시려고 하신 것이다. — 즉 하나님께서 결함 있는 사람을 가치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거나 결함을 트집잡으려고 이러한 주제를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동물과는 달리 사람의 경우에는 비록 신체상 부족함이 있다 할지라도 그를 부정하다고 하지 않으셨다는 사실과 성소로 들어가는 일 이외에는 장애를 가진 자들이 여전히 제사장의 음식을 먹는 등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는 사실에서 확실하게 확인된다 (22 절).
- 그들도 "제단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22절).
즉 진설병이나 속죄 제물, 십일조, 첫 열매, 화목 제물의 분배물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신체적 결함이 있어서 자기 힘으로 일하여 먹고 살 수 없는 자들도 굶어 죽어서는 안 된다. 아무도 신체적인 결함 때문에 인격이 무시될 수는 없음을 주목하자. 북구의 자식도 그 집안에서 자녀로서의 목을 차지해야 한다.
- 그러나 그들은 "제단에서 일할 수는" 없으며 제사장들이 희생제물을 드리거나 향을 피울 때 도와 줄 수도 없었다(17, 21, 23절).
💡 여기서 말하는 ‘그의 하나님의 식물’ :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 제물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
하나님의 식물을 드리려고 가까이 오지 못할 것
- 지금까지 레위기 전체에서 설명된 희생 예식의 절차나 21, 23절의 내용에 비추어 볼 때 번제단과 성소에 가까이하지 못할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결함을 가진 자는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희생 예식에 참여할 수 없음을 암시한다. 이 또한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최대한 온전하게 나타내고자 하신 것이지 결함 있는 자의 부족함을 들추어내어 그 사람의 가치를 떨어뜨리려고 하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18절~20절, 신체의 어떤 부분이 기형적인 모양을 가지고 있는 것, 즉 신체적 불완전함을 가진 자 모두를 포함.
21절,
- 결함 있는 제사장에게 금지된 것은 예식 수행일 뿐 만약 그가 예배자의 입장으로 예물을 드리기를 원한다면 언제라도 여호와께 나아올 수 있음을 암시해 준다.
22절,
- 직역하면 ‘그의 하나님의 식물 즉 그 거룩한 것들의 거룩한 것들(the most holy) 중의 어떤 것과 그 거룩한 것들 중의 그 어떤 것을 그는 먹을지니라’
- 구약 성경의 여러 곳에서는 불로 태워지지 않고 남은 것에 대해 ‘지극히 거룩한 것’이라고 부른다(6:29; 7:6; 10:17; 14:13; 민18:9). 그렇게 부른 이유는 ‘거룩한’ 제사장이 ‘거룩한’ 성소에서 먹는 것으로서 거룩하게 취급해야 하는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즉 그 음식에는 두 가지 거룩한 개념이 들어 있는 것. 따라서 그 음식은 제사장 이외의 사람들, 심지어 그의 가족이나 종들도 먹을 수 없었다(10:17; 14:13; 겔 42:13).
⇒ 결함 있는 제사장이 지극히 거룩한 것을 먹을 수 있었다는 것은 그들이 결코 부정한 자로 여겨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거룩한 자의 신분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암시한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예식을 드리는 일에 그들을 금지시키신 이유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사의 온전함을 반영하기 위함이지 결코 그들의 결함을 탓하려는 것이 아니었음을 확실히 알 수 있다.
- ‘지극히 거룩한 것(지성물)’ : 속죄제, 속건제, 소제 중 제사장의 몫과 진설병.
- ‘그 거룩한 것들(성물)’ 이란 뜻의 단어 : 화목제와 첫 소산과 정결한 짐승 중 첫 새끼로 드리는 예물 중에 제사장의 몫을 가리키는 말(7:31~34; 민 18:12,13,14).
23절,
- 장 안에 들어가지 못할 것: 지성소로 들어가는 유일한 경우는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차례 대속죄 예식을 행할 때였다. 따라서 본문은 결함이 있는 자가 단지 지성소에 들어가지 못하는 규례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결코 대제사장이 될 수 없음도 동시에 암시해 주고 있다.
- 단에 가까이하지 못할 것: 즉 본절에서는 성소를 더럽히지 말 것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번제단이라기보다는 성소 안에 있었던 향단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번제단에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규정은 이미 21절에 내포되어 있다. 향단에 가까이 할 수 있는 사람은 제사장이었다(4:7). 따라서 본문의 규정도 결함 있는 자가 결코 제사장이 될 수 없음을 암시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그가 나의 성소를 ‘더럽히지’ 못할 것
- ‘거룩한’ 과 ‘더럽히다’는 정반대의 개념.
- 사실상 ‘더럽히다’란 뜻의 ‘할랄’은 본장 6,9,12,14,23,25절에서 지속적으로 등장.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과 분명한 대조를 이루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들이 ‘더럽혀지는’ 것을 멀리하고 ‘거룩해지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는 사실을 더욱더 부각시켜 주고 있다.
- 그런데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결함을 가지고 있는 제사장이 부정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성소가 부정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성소에 들어오지 말아야 되는 명령을 어김으로써 성소가 부정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 만약 결함 있는 제사장이 그 결함 때문에 부정한 상태에 있다면 그 결함이 고쳐지지 않는 이상 정한 인생을 결코 한 순간도 살 수 없게 될 것이며 거룩한 음식도 먹어서는 안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지극히 거룩한 것을 먹을 수 있게 하셨기 때문에 그들의 모습 때문에 그들이 부정하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임이라..
- 결함 있는 제사장이 결코 성소에 들어가지 말아야 하는 절대적이고 근본적 이유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하신 속성 때문임을 알 수 있다.
- 거룩함은 곧 온전함(completeness)을 의미하고, 동물들의 경우 그 온전함에서 어느 하나라도 불완전하면 그것이 곧 부정함의 원인이 된다(11:4)
-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창 1:27)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동물처럼 육체적 결함에 의해 부정해지지는 않을지라도 하나님과 그 백성 이스라엘 사이에서 거룩한 사역을 담당할 때에는 그 육체적 결함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온전히 드러내는 데 합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흠이 있는 자는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일이나 성소나 지성소에 들어가는 일이 허락되지 않은 것.
24절, 이스라엘 자손들이 한 사람의 예외 없이 모세가 전하는 말을 다 들었다.
- 그렇게 하신 이유는:또한 이스라엘 자손들도 그러한 제사장들이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함께 보조를 맞춰 주어야 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음을 알려 주는 것이다.
- 따라서 성경을 대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말씀 속에서 개인에게 적용되는 교훈만을 찾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공동체에게 주시는 말씀과 그 가운데서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깊이 묵상하는 일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제사장에 대한 규례를 이스라엘의 온 자손이 들었다는 사실은 결코 제사장의 직분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공동체 안에서 그 의미를 가지며,
세상의 유력자들도 아름다운 자들을 택하여 자기의 종으로 삼듯이, 위대한 하나님의 집의 일에서는 더욱 그러해야 마땅한 법이다. 또 이러한 율법을 지켜야만 하나님께서도 당신의 영광을 외적으로도 나타내시기를 즐겨하시게 된다. 한편 존귀한 사람들은 백성을 위하여 일하는 사역자로 뽑혀서 거룩한 일을 해야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보기에도 저속한 자들이 경거망동하게 집례하는 것보다는 외모로도 아름다운 자가 집례하는 예식을 더욱 경건하고 명예스럽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제단에 신성을 보존하시사, 언제든지 그 신성이 모독되지 않도록 하신다. 그러므로 성소에 나타나는 자들은 선천적으로나 후천적으로나 결함이 없어야 한다.
Ⅱ. 복음의 시대에 있어서는,
- 이러한 결함을 가지고도 하나님께 영적 제사를 드릴 수 있는 것이니, 이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얼마나 감사해야 될지 모른다. 신체적 자격을 갖추지 못했더라도 하나님 섬기는 성직에는 금지되지 않는다. 불구의 몸이지만 아름답고 건강한 영혼을 지니고 있는 자들이 많다.
- 그러나 부도덕한 마음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께 열납되는 제사를 드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 자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울 자격이 없는 자이며, 사역자로 쓰일 수도 없는 자들이다. 그들은 영적으로 볼 때 눈이 멀었고 다리를 절며 곱사등이요, 그들의 죄가 그들을 추악하고 불구의 모양으로 만들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이 드리는 제사는 받지 않으신다.
홉니와 비느하스의 (도덕적) 결함은 앞에서 언급한 (신체적) 결함보다 더 악했었다. 그러므로 도덕적으로 타락한 자들은 더러운 자들이므로 제사장직에는 합당치 않다. 또한 우리 하나님께 영적 제사장이 된 우리는 모두 "거룩하고 흠 없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는 비록 지금 불완전한 상태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부족함이 있지만 불원 간에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그런 어떤 것도 없는" 자로 드러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위안을 삼자(엡 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