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1월 18일 화요일 묵상구절 레 22:1-16

하나지기 2022. 1. 18. 14:40

맥체인 성경읽기

창세기 19, 마태복음 18, 느헤미야 8, 사도행전 18

 

묵상 구절

2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22:2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내게 드리는 거룩한 것들로부터 스스로 구별하여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않게 하여라. 나는 여호와이다.

22:3 너는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희 대대로 누구든지 너희 자손 중 자신이 부정하면서도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구별하여 드리는 거룩한 것들에 가까이하는 사람은 그 생명이 내 앞에서 끊어질 것이다. 나는 여호와이다.

22:4 아론의 자손 중에 누구든지 나병 환자나 유출 병자는 그가 정결하게 되기까지는 거룩한 제물을 먹지 못하며 또 사체를 만져 부정한 모든 것을 만진 자나 사정한 자나

22:5 사람을 부정하게 하는 모든 벌레나 어떤 부정이든 자기를 더럽히는 사람을 만지는 자,

22:6 곧 이런 것에 닿은 자는 저녁까지 부정하며, 그가 자기 몸을 물로 씻지 않으면 거룩한 것들을 먹지 못한다.

22:7 해가 질 때 그는 정결하게 되고 그 후에 거룩한 것들을 먹어야 할 것이니, 이는 그것이 그의 음식이기 때문이다.

22:8 너는 저절로 죽었거나 찢겨 죽은 짐승을 먹음으로 자기를 더럽히지 마라. 나는 여호와이다.

22:9 그들은 나의 명령을 지켜야 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부정하게 될 때 그것 때문에 죄 짐을 지지 않게 하고, 그것 때문에 죽지 않게 하라.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다.

22:10 일반인은 누구든지 거룩한 것을 먹지 못하며, 제사장의 나그네나 품꾼도 거룩한 것을 먹지 못한다.

22:11 그러나 제사장이 자기 돈을 주고 재산으로 산 자나 그의 집에서 출생한 자는 제사장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

22:12 만일 제사장의 딸이 일반인에게 출가하였으면, 그 여자는 들어 바친 거룩한 것들을 먹을 수 없으나,

22:13 제사장의 딸이 과부가 되거나 이혼을 당하고 자식이 없이 자기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와서 젊은 때와 같게 되면 그 여자는 자기 아버지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일반인은 누구라도 그것을 먹으면 안 된다.

22:14 만일 어떤 사람이 모르고 거룩한 것을 먹으면 그는 그것에다 오분의 일을 더하여 거룩한 것을 제사장에게 주어야 한다.

22:15 제사장들은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드리는 그들의 거룩한 것을 더럽히지 말아야 한다.

22:16 또 그들이 자기들의 거룩한 것을 먹으면 그들은 죄의 형벌을 짊어지게 될 것이다.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다."

 

매튜 헨리/옥스퍼드

 

💡 본문은 제 21,22장에서 주어지고 있는 제사장 성결 관련 규례의 연속 부분입니다. 이러한 본문은 제사장 개인 및 그 가문에 속한 자들의 성물 취식 관련 규례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물 취식 규례는 우리에게 다시 한번 거룩하게 구별된 자로서 성결한 삶을 살아가는 자만이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될 수 있음과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음을 깨닫게 해 주고 있습니다.

 

●제사장들이 부정한 때 (레위기 22:1-9)

날 때부터 흠이 있는 자들은 비록 그들이 제사직에서는 제외되었더라도, 성물은 먹도록 허락했다. 그러나 유대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이런 자들이 "게을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벌레 먹은 제물을 골라내어서 그런 제물이 하나님의 제단에 바쳐지지 않도록 하는 일을 맡았고, 또 다른 일로는 문둥병을 판단하는 일에도 기용되었다" 고 한다.

 

💡 2절,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이 내게 드리는 성물에 대하여 스스로 구별하여

  • 여기서 ‘그들’은 아론과 그 아들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을 가리킴.
  • ‘드리는’으로 번역된 단어는 — ‘마크띠쉼’: ‘거룩하다’란 뜻의 동사 ‘카다쉬’의 사역형 분사로서, ‘거룩하게 구별하는’, ‘거룩하게 드리는’이란 뜻이다. 더욱이 ‘내게’ 란 뜻의 단어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드린 예물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 따라서 본문에는 ‘거룩함’을 의미하는 어근이 두 번이나 사용되어 하나님께 드려진 예물이 ‘거룩하게 성별된 성물’임을 강조하고 있다.

본문이 말하는 것은 예물 중에 여호와께로만 돌려야 했던 제물을 의미하는 것인가(민18:11~19, 26~29)? 아니면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이스라엘 자손의 예물 중 제사장의 몫을 의미하는 것인가?

  • ‘내게 드리는 성물’이란 표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언뜻 보기에는 여호와께로만 돌리는 예물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21:22에서 살펴본 것처럼 제사장이 먹을 수 있는 하나님의 식물 곧 하나님께 드려진 예물에 대해서도 본문에 쓰인 ‘코데쉬’ 즉 ‘거룩한 것’이란 용어를 사용할 수 있었고, 제 4절과 7절에는 이 예물을 먹는 규례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본문이 말하는 ‘성물’은 하나님께만 돌리는 예물을 의미하기보다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께 구별하여 드린 것 중 제사장의 몫으로 돌아가는 예물을 언급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또한 제사장의 몫으로 되어 있는 것 중에서 21:22에서 설명했듯이 ‘지성물’ 즉 ‘지극히 거룩한 것’은 제사장만 먹을 수 있었던 반면, ‘성물’ 즉 ‘거룩한 것’은 제사장의 가족이 함께 나눌 수 있었다. 그런데 본장 11,13절에는 제사장의 가족이 함께 성물을 먹는 규례가 나오기 때문에 본문이 말하는 성물은 특별히 화목 제물과 첫 소산과 첫 새끼의 예물 중에 제사장의 몫으로 구별되어진 부분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10:14,15).

본문이 먹을 수 있는 성물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면, 왜 본문은 그 예물을 가까이하지 말라고 한 것인가?

  • 이는 어떠한 경우라도 가까이하지 말라는 의미로 쓰인 것이 아니라 3절 이후로 제시된 바와 같은 조건에 해당될 때만 가까이하지 말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
  • 3절 이하에서 다루는 것은 성물을 먹는 문제였기 때문에 ‘가까이하지 말라’는 말은 ‘스스로를 구별하여 성물을 먹지 말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 더불어 본문은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그 예물이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께 거룩하게 구별하여 드리는 성물’이기 때문이다. </aside>

Ⅰ. 그러나 자기들의 잘못으로 병에 걸려 성례에 결함을 지니게 된 자는, 그 부정이 계속되는 동안은 성물을 먹을 수 없다.

💡 3절, 그 몸이 부정하고도

  • 직역하면, ‘그리고 그의 부정이 그의 위에 (있다)’. 원어상 본문이 말하는 부정함은 선천적이고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후천적이고 일시적인 것을 암시.’
  • 이로 볼 때 본문은 21:16 이하에 나온 바와 같이 선천적인 흠이 있는 제사장 가문의 아들들에게만 적용되는 규례가 아니라 모든 제사장에게 적용되는 규례이다. 이는 4절 이후에서 다루는 부정함의 종류를 살펴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 성물을 다루고 있는 대상이 되는 자가 거룩한 제사장이며 또한 ‘그의’ 란 뜻의 남성 단수 접미어로 표기된 것으로 보아 제사장 개개인들도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결코 부정하게 될 수 있는 가능성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자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는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의인이라 칭함 받았으며(롬 3:24) 영적인 제사장으로 세움 받았지만, 우리 역시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넘어지기 쉬운 부족한 자들이기 때문에 날마다 자신을 거룩케 하며 구원을 지키려고 부단히 죄와 싸워야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빌 2:12).

그 결과, 내 앞에서 끊어지리라, 나는 여호와니라

  • 끊어지리라 — 레위기에서 이 동사는 하나님의 형벌을 의미하는 단어인데, 본문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는 문맥에서 쓰였다. (7:20, 22, 25, 27; 17:4, 9, 10, 14; 18:29; 19:8; 20:3,5,6,17,18; 23:29). 그리고 이 모든 경우는 제사장을 포함한 모든 이스라엘 자손에게 다 적용되는 규례에서 주어진 형벌로서, 공동체에서의 추방 내지는 육체적인 죽음을 의미했다.
  • 내 ‘앞에서’ — ‘얼굴’을 뜻하는 단어. ‘내 얼굴에서부터 베어 냄을 당하리라’란 뜻.
  • 이는 제사장이 지킬 규례를 다루는 문맥 가운데서 나온 말이기 때문에 앞에서 쓰인 용례와는 달리 ‘여호와를 섬기는 일에서 내어 쫓김을 당할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즉 부정한 제사장이 부정한 중에 성물을 다루었다면 그가 제사장직을 박탈당하여 다시는 여호와의 임재가 계시고 여호와의 얼굴이 지켜보고 계시는 성막에 들어올 수 없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는 하나님의 규례를 어겨 죽임을 당한 나답과 아비후의 경우에서 보듯이 육체적인 죽음을 포함하는 규례라 할 수 있다(9절; 10:1-7).

‘나는 여호와니라(아니 예흐와)’

  • 이 말이 말이 뒤따라오는 것은 ‘나는 네가 가벼이 생각할 수 있는 그러한 이방의 잡신이 아니라 거룩히 섬김을 받아야 할 여호와 하나님이라’ 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 이러한 규례는 비단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제사장 역할을 감당하는 교역자들도 항상 자신의 행실이 과연 하나님과 성도들 앞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을 감당하기에 합당한지를 살펴야 하는 것이다. 만약 합당치 못한 모습이 발견될 때는 그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게 되기까지 스스로를 낮추며 근신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뚜렷한 흠이' 있는 자가 예배를 집전함으로 예배의 거룩함이 훼손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1. 문둥병이나 유출병 같은 지속적인 불결이 있을 때에 바로 그러하다(4절). 그런 병들은 일반 사람들도 성소에 참예하지 못하게 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제사장들이 그런 질병에 걸리면 그것은 더욱 가증스러운 일이 되므로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시고자 하셨다.

💡 시체로 인하여 부정한 모든 것.. : 원어 성경은 시체를 만진 제사장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시체를 인하여 부정하게 된 것은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을 만진 제사장 역시 부정하게 되어서 거룩한 성물을 먹지 못하게 됨을 밝히는 것이다. 이러한 규례는 제사장들이 얼마나 철저히 부정한 것에서 스스로를 멀리해야 하는지 보여 주는 동시에 여호와 하나님께 드려진 예물이 얼마나 거룩한 것인지 간접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1. 시체를 건드리거나 그 밖의 부정한 것을 만지면 일시적인 부정에 걸리게 된다. 그런 부정은 물로 씻으면 다시 깨끗해질 수 있었다(6절). 그러나 그러한 부정에 걸린 자는 하나님의 "성물을 먹지 못할 것이라" 고 했다. 그러한 흠도 하나님께서는 몹시 불쾌히 여기시기 때문이다. ****

💡 본문은 부정한 것에 접촉한 ‘자, 사람’을 ‘네페쉬’라는 단어로 사용.

  • 일반적으로 ‘남자, 사람’을 뜻하는 ‘이쉬’가 쓰인 것과 달리 ‘네페쉬’가 쓰인 것은 이 단어가 단순히 사람의 ‘육체’만을 가리키는 단어가 아니라 ‘전인격체’를 의미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2:1 참고). 또한 이 규정의 대상이 되는 자들이 제사장들(2절)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네페쉬(여성명사’로 나타낸 것은 그들이 제사장이기 이전에 일반 사람들과 똑같이 부정하게 될 수 있는 ‘사람’ 임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 즉 부정에 접촉한 자를 ‘네페쉬’로 나타냄으로써 그러한 접촉이 그의 육체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영혼을 포함한 그의 전인격체에 영향을 주어서 그의 전인격이 하나님 앞에 부정하게 됨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저녁까지 부정하다고 하는 이유는,

  • 히브리 사람들의 새 날은 저녁이 되면서 시작하기 때문에, ‘저녁까지’ 라는 말은 새 날이 되기까지 부정하게 될 것을 의미한다. (’저녁이 되면 부정함에서 벗어나게 된다’)

8절, 절로 죽은 동물이나 사람이 도살하지 않고 야수에 의해 죽임을 당한 동물을 먹지 못하게 했던 것은

  • 의식적인 측면에서 볼 때 사체 속에 피가 남아 있어 피를 먹게 될 우려가 있었으며, 또한 죽음 자체를 부정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위생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나는 여호와니라

  • 자신을 더럽게 할 수 있는 것을 먹지 말라고 말씀하는 문맥 속에서 ‘나는 여호와니라’란 계시의 주체에 대한 선언이 다시 나온 것을 볼 때, 이는 제사장이 여호와의 거룩하심을 기억하고 그 일을 하지 말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그러고도 하나님의 성물을 먹는 자는 "나(여호와)의 면전에서 끊어지리라" 고 말씀하셨다(3절). 그러므로 우리가 깨끗지 못한 상태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면 그것은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고 마는 행위이다. 여호와께로부터 불이 나와서 나답과 아비후가 죽은 것처럼, 그럴 경우에는 오히려 "주님의 존전으로부터" (살후 1:9) 멸망이 우리에게 임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더럽힌 자는 그들이 경하게 여긴 그 말씀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게 된다. 그 말씀이 그들을 징벌할 것이다. 이러므로 그들의 몸이 다시 깨끗게 되기 전에 성물을 먹으면 생명에 위험이 따른다는 경고가 다시금 반복되어 있는 것이다. 곧 그것으로 인하여 그들이 "죄를 지고 죽게 될까" 한다고 했다(9절).

다음 사실을 명심해 두자.

(1) 더러운 손으로 성물을 만져 성물을 더럽히는 것은 죽음을 당하는 범죄이다. 성물을 먹는다는 것은 그 성물이 주는 속죄의 혜택을 입는 것이다. 그러나 깨끗지 못하면서 성물을 먹는 것은 오히려 자기의 죄를 중하게 하고 업신여기는 것이다. 그런 자들은 "죄를 짓는" 것이 된다.

(2) 만일 무한한 자비가 죄를 막아 주지 않는다면 죄를 지은 죄인은 멸망되고 말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죽게" 될 것이다. 제사장이라 할지라도 부정하거나 무례히 행하면 반드시 멸망되고 만다.

 

💡 9절, 그들은 나의 명령을 지켜야 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부정하게 될 때 그것 때문에 죄 짐을 지지 않게 하고, 그것 때문에 죽지 않게 하라.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다.

  • 그들은 나의 명령을 지켜야 한다 : 명령. ‘내가 지키라고 한 것을 너희들은 지키라’. 본문의 구체적 뜻은 ‘(예식에 있어서 제사장의) 직무나 책임’, 또는 ‘의무’.
  • 따라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자기의 생각이나 의지대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섬김을 받으시는 하나님께서 제시해 주신 그 방법대로 그분을 섬겨야만 할 의무가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로 보건대 바울이 우리 몸을 산 제사로 드릴 것을 말할 때에 곧 이어서 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고 명령했는지 그 이유를 깨닫게 된다(롬 12:1,2).
  • 그들(성물)이 부정하게 될 때... 죽지 않게 하라 : 본문을 다시 번역하면, ‘그리고 그들로 그 성물들 가운데 어떤 것으로 인하여도 죄를 당하게 하지 말라. 그러나 만일 그들이 그 성물을 욕되게 하면, 그 성물 안에서 즉 그 성물의 거룩함 때문에 그들은 죽을 것이다’
  • 성물을 더럽히는 제사장은 결코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말한다. ‘죽을 수도 있다’란 유보적 의미의 뉘앙스가 아니다.

왜? ‘나는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다’

  • 본문이 전달하는 의미는 ‘나는 그들을 끊임없이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데 그들은 오히려 더럽히는 일을 행하기 때문에 죽임을 당한다’
  • 이처럼 그 백성과 제사장들을 거룩하게 하신 그 여호와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행 26:18) 성령 안에서 그의 진리로(요 17:17 ; 롬 15:16) 이끄심으로 끊임없이 거룩하게 하고 계신다.

Ⅱ. 이 율법의 목적은 무엇인가?

  1. 제사장들은 주의를 기울여 자기들의 순수성을 지키며 혹시 자기들을 더럽히는 일이 있지 않나 두려워하게 하는 것이다. 성물은 저들의 생계 터전이었다. 만일 그들이 성물을 먹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도 부정해짐으로써 우리의 위로와 명예를 잃게 되면 될수록 더욱 우리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애써야 할 것이다.
  2. 이것은, 제사장들까지도 성물을 성별하도록 조심하는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일반인들이 성물을 더욱 경외하도록 강조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당신께 시중드는 자들을 이토록 엄격히 훈련시키시는 그런 하나님은 자신도 무한한 순수성을 지니고 있음이 명백하다.
  3. 또한 우리에게 도덕적 타락을 주의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 준다. 우리는 도덕적 타락 때문에 하나님의 위로를 받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가 관습적으로 악을 저지르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실제로 부정해지면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데서 오는 기쁨을 잃고 만다. 그러므로 "발을 깨끗이 씻어야 할" 자는 (요 13:10) "손도 씻어야 하며", 또한 "제단에 두루 다녀야 한다" (시 26:6).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성물로 인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2절) 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될 필요를 알게 된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체하다가 하나님을 모독하고 그를 기쁘시게 하는 대신 그를 진노케 한다면 우리는 곧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한답시고 부정한 짓을 하면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요, 죄를 짓는 것이 된다.

💡 2절, 내 성호를 욕되게 하지 말라..

  • 부정한 가운데 성물을 가까이하지 않도록 해서 ‘그 결과 그들이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않도록 하라’는 의미.
  • 뒤에 ‘아니 예흐와’ , 즉 ‘나는 여호와니라’는 말을 써 줌으로써 그들이 더럽히지 말아야 할 이름이 바로 ‘여호와’ 임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제사장이 먹는 성물과 여호와의 이름은 어떤 관계가 있길래 성물을 잘못 먹으면 여호와의 이름이 더럽혀지게 되는가?

  •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유는 ‘여호와’ 란 이름이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에 그들이 희생을 드려야 할 대상으로 알려진 이름이란 사실이다(출 5:3). 즉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별하여 내시고 자신에게 예물을 가져오게 하심으로써 그들이 섬기는 여호와가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만방에 나타내시고자 하신 것이다.

이처럼 여호와란 이름이 희생 제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예식을 주관하는 제사장이 부정하게 그 예식을 행하거나 부정하게 된 제사장이 예물의 일부를 먹게 되면 결국 그 예식은 다른 이방 신을 섬기는 예식과 다를 바 없게 되며 이는 결국 예식과 연관되어 있는 거룩하신 여호와란 이름을 더럽히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이스라엘 백성들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까지도 그 이름을 거룩하게 여기지 않게 되어 여호와란 이름이 만민 가운데 더럽혀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자신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어떻게 경배하고 섬기느냐에 따라 그 하나님의 이름의 명예가 세상 가운데 존귀하게 될 수도, 욕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 하나님의 여호와 이름 앞에 우리의 합당한 반응은 무엇인가?

  • 이로 보건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을 향해 바르고 거룩하게 경배를 드리는 것임을 알 수 있다.
  • 그런데 만약 거룩하신 하나님을 향해 아예 경배조차 드리지 않거나, 경배를 드리되 세속의 행실을 그대로 답습한다면 이는 세상의 웃음을 사게 됨과 동시에 그 경배의 유일한 대상이 되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욕되게 만드는 결과만을 낳게 될 것이다.

●성물을 먹을 수 없는 자들 (레위기 22:10-16)

성물은 제사장과 그 가족들만 먹게 되어 있었다.

Ⅰ. 이방인은 이 성물을 먹지 못하며 제사장이나 그에게 속한 사람 이외에는 그 누구도 먹을 수 없었다(10절).

제사장은 이방인에게 이 성물을 먹도록 허용함으로써 성물을 더럽히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16절). 즉 제사장들이 자기들의 권리 이상의 일에 간섭하여 스스로 죄 짓는 일이 없도록 율법으로 금했던 것이다.

이 사실은 능히 일반인에게도 이해되고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죄짓는 일을 피해야 할 뿐만 아니라, 남들이 죄를 짓는 일도 막아 주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또 우리는 우리의 형제들이 죄를 "짓는 것" 을 막을 뿐 아니라, 가능한 한 그들이 죄를 "당하지" 않도록 하는 데까지 주의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 다른 뜻이 있다. 제사장들이 속죄 제물을 먹는 것은 "백성의 죄를 대신 지는 것이요, 그들을 위하여 속죄를 하는 것이다" (10:17). 그러므로 이방인에게는 특히 성물 먹는 것을 금해야 할 것이며 그리하여 "죄를 짓지" 않게 주의해야 할 것이다. 성물을 먹도록 지정된 자 외에는 누구든 그것을 먹으면 그 일로 인하여 큰 범죄를 짓는 것이다.

그러나 죄를 대신 담당하는 일은 그리스도에게만 약속된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제사장이신 그리스도 외에 다른 중보자들을 두면 그것은 "죄를 짓게" 하는 일이요, 그리스도의 명예를 모독적으로 찬탈하고 그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다. 우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의를 믿어 감히 하나님 앞에 불손히 나아가게 하지 말 것이며 오직 그리스도의 의만을 믿고 나아가라고 경고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스스로) 죄를 짓지 않게" 경고해 주는 일이 된다. 죄라는 짐은 너무나 무거워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것임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Ⅱ. 또 율법에 관한 해설이었다. 즉 제사장의 가문에 속한 자로서 영광을 받아야 할 자와 그럴 수 없는 자가 각각 누구인가를 밝혀 주고 있다.

  1. 제사장의 집에 머무는 기류자나 일꾼들은 영원히 그 집에 속하는 것이 아니며, 또 그 가족 중에 머무르나 가족 자체가 아니므로 거룩한 음식을 먹을 수 없다(10절). 그러나 제사장의 집에서 태어났거나 돈을 주고 사온 종들은, 그들이 종의 신분일지라도 상속의 권한이 있으므로, 거룩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11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집으로 "영원히 안식처" 를 삼고 또 "그 일생 동안 그 안에서 살기로" (시 23:6) 결심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집의 평안을 누릴 자격이 있다. 오직 잠시 동안만 믿고 당분간만 봉사하는 사람은 기류자나 고용인이므로, "그 일에는 관계도 없고 분깃이 없다(행 8:21)" 는 것을 알아야 한다.

💡 ‘제사장이 그의 돈으로 값을 치른 소유 재산’.

  • 이는 10절에서 말한 외국인이나 객, 즉 일시적인 체류자나 품꾼, 즉 품삯을 받고 일하는 고용인과는 달리 제사장의 집안에서 생활하다 제사장의 소유로 완전히 제사장에게 소속된 신분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의 종들 가운데는 이방인들이 있었다(25:44). 이처럼 혈통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라 할지라도 제사장의 종이 성물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을 이스라엘 사람의 일원으로 취급하였기 때문이다. 이방인이 이스라엘 민족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할례를 받아야 했는데(창 17:12,13), 비록 제사장이 돈을 주고 이방인을 종으로 샀을지라도 그가 언약 백성의 표징(창 17:11)인 할례를 받았다면 언약 백성으로 취급되었으며, 또한 제사장 집에서 숙식을 같이 했기 때문에 그 가족의 일원으로 취급되어 성물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 ~ 자는 제사장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 : 원어에는 목적어 앞에 ‘~ 앞에 ‘란 의미가 있는 전치사를 사용한다. 그렇게 한 특별한 이유는, 제사장이 값을 치르고 산 그 사람이 단순히 음식을 먹을 것이란 의미만을 나타내기 위한 표현이 아니라, 제사장 가족의 ‘반열에 속하여 음식을 함께 나눈다’는 의미를 강조적으로 보여 주기 위함이다.
  1. 제사장 가족의 자녀들에 관하여서는, 아들들은 논쟁할 필요도 없다. 아들들은 실제로 제사장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딸들에게는 제한이 있다. 만일 아버지의 집에 계속 머물면 거룩한 음식을 먹을 것이나, 제사장이 아닌 자와 결혼하면 그들의 권리를 잃게 된다(12절). 그들은 그 결혼을 함으로써 제사장의 가계에서 끊어지기 때문이다.

💡 본문은 제사장 딸이 제사장의 집안을 떠나 이스라엘이든 다른 이방 나라든 다른 집안 남자에게 속하게 된 경우를 말한다.

이 경우 거제물을 먹기 못한다. 이렇게 드려지는 예물은 모두가 화목제에 속한 것으로 제사장의 몫으로 돌려졌다. 다른 집안으로 출가한 딸은 그 집안에 속하기 때문에 더 이상 제사장의 집안에서 그 가족들과 함께 그 예물을 함께 나눌 수 없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만일 제사장의 딸들이 과부가 되었어도 그 자신이 따로 가정을 꾸밀 자녀가 없으면 그들은 더 이상 아내가 아니요, 어머니도 아니므로 제사장의 집에 돌아와서 제사장의 딸로서의 대우를 받으며 거룩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13절)

 

💡 만약 그녀가 나은 자식이 있을 경우에는 그녀 자신의 독자적인 가정을 형성하게 되며 따라서 아무리 그녀가 과부나 이혼녀가 될지라도 그녀의 아버지와는 상관없는 집안이 되기 때문에 다시는 아버지의 집안에 속하여 성물을 먹을 수 없음. 이처럼 자식은 한 집안을 형성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였다.

  1. 성물을 먹을 권한이 없으면서 무의식 중에 먹은 자들은 그 먹은 것에 대하여 배상을 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14절). 만일 그가 오만불손하여 신성을 모독하면서 그런 짓을 행했다면 그는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멸망할 것이며 관원들에 의해서 징벌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가 연약하여 부지중에 이런 일을 했다면 그는 속건제를 드린 후에 그가 먹은 음식에 1/5을 대하여 배상을 해야 한다(5:15, 16).

💡 부지중, ‘무지와 부주의로 인하여 죄를 범한다면’,

  • 아무리 모르고 행한 것이라고 그 무지 자체가 죄의 속성을 반영한 것으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행위이며 그에 합당한 배상을 지불해야 한다. 오분 일에 해당하는 것은 ‘성물(코데쉬’)이라 불렸다. 즉 그 오분 일 역시 제사장에게 돌아가야 할 식물로 여겨졌다는 것은 배상해야 하는 것이 돈이 아니라 자기가 먹었던 예물과 동일한 것임을 암시한다.

5:15,16에서도 성물에 대해 그릇 범했을 경우 규례가 나오는데, 그와 차이점은

  • 그런데 그곳에서는 속건제가 요구되었다. 그 이유는 5:15,16이 다루고 있는 것은 ‘여호와의 성물’ 즉 제사장에게 돌려지는 몫이 아니라 여호와의 것으로 구별하여 드린 예물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에 대해 그릇 범했을 경우에는 더 중대한 의미를 지닌 회복 절차가 필요했던 것이다. 

Ⅲ. 그러나 이 율법은, 마치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성전의 진설병을 먹은 것처럼 불가피한 경우에는 그 벌을 면해 주기도 했다(삼상 21:6). 그리고 우리 주님도 이것을 정당히 보셨고, 그 이유를 설명하신 적이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우리가 그와 비슷한 경우를 당할 때에, 두고두고 되새겨 볼 규칙을 남겨 준 것이다. "즉 하나님은 희생이 아니라 자비를 원하신다"는 것이다(마 12:3, 4, 7). 의식은 마땅히 도덕에게 우선권을 양보해야 한다.

Ⅳ.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 (고전 4:1)인 복음의 사역자들에게는, 모든 자들에게 아무 구별 없이 성물을 먹도록 허락지 말 것이며 속된 것과 귀중한 것을 구별하라는 교훈을 들려주는 율법이다. 그러므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타락한 자들은 주님의 제사장의 가문에서 떨어져 나간 이방인들이요 나그네들이다. 따라서 자녀들의 떡을 취하여 그런 자들에게 주는 것은 합당치 않다. 거룩한 것은 거룩한 자들을 위한 것이요, 최소한 신앙상으로라도 거룩해진 자들이 차지할 수 있는 것이다(마 7:6).

 

💡 15절, 제사장들은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드리는 그들의 거룩한 것을 더럽히지 말아야 한다.

  • ‘그리고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의 성물들을 즉 그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드리는 것을 더럽히지 말라’ 란 뜻.
  • ‘더럽히지’, ‘드리는’ : 여기서 ‘드리는’으로 번역된 두 번째 동사 ‘야리무’는 ‘높다’란 뜻을 지닌 ‘룸’의 사역형. ***‘높이 들어올려서 드리다’***란 뜻. 보통 이는 거제를 가리키는 표현이나 본문에서는 거제로 드리는 예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예물을 드릴 때 여호와께 경외심을 표하면서 드린다는 의미를 암시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즉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드리듯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운데 예물을 드린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 ‘더럽게 하다’ : 이 단어가 복수형으로 쓰였는데, 과연 이 동사의 주어는 무엇인가? 여러 견해가 있는데, (옥스퍼드 주석 견해는) 가장 자연스러운 것은 10~13절에서 언급된 성물을 먹어서는 안되는 자들을 주어로 보는 것.
  • 이들은 제사장과 같이 있으면서도 제사장의 집안 식구로 여길 수 없는 자들이었기 때문에 언뜻 보기에는 일반적인 이스라엘 자손과 구별되는 자들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자들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자손’의 예물을 더럽히지 말라는 명령은 자신들을 제사장과 특별한 관계에 있는 자들로 여겨서 일반 이스라엘 자손과 분리시켜 성물을 먹는 죄를 범치 말라는 경고인 것이다.

16절, 또 그들이 자기들의 거룩한 것을 먹으면 그들은 죄의 형벌을 짊어지게 될 것이다.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다.”

  •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 본문은 현재 진행형적 의미로 분사형을 사용하여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현재적이고 지속적 속성을 강조 (9절, 21:23).
  • 대상은: 앞서 언급되었듯 제사장의 집안 식구가 아니면서도 그 집안에 거하는 자들. 그렇다면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이란 어떤 의미인가?
    1. 첫째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그러한 은혜를 따라서 스스로를 거룩하게 지켜 가야 한다는 의미이며,
    2. 둘째는 그들이 부지중에 성물에 대한 죄를 지었지만 오분의 일을 더하여 제사장에게 드림으로 그 죄에서 사함을 받을 수 있으며 이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그들을 거룩하게 하여 주신다는 의미이다.
    본문에는 이 두 가지 의미가 다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은 언제나 자신의 행동을 살피는 세심함을 가져야 하며, 부지중에 그 길에서 벗어나게 되었더라도 다른 길에서 해결하려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인도하는 그 길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회복을 바라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그 백성을 거룩하게 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