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라. 너희가 성회로 모일 여호와의 명절들, 곧 나의 명절들은 이러하다.
매튜헨리/옥스퍼드
●안식일 공포 (레위기 23:1-3)
Ⅰ.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거룩한 절기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이 있다(2절). 절기를 거룩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뿐이다. 왜냐하면 그가 절기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시간의 수레바퀴를 굴러가도록 설정하신 이래로 줄곧, 다른 날보다 어느 하루를 신성하게 하시고 축복하신 그분이시다(창 2:3).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좋은 날들을 누릴 수가 있다(에 4:19). 그러나 거룩한 날을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대권이다. 어떤 것도 그분이 설정하신 명령이 없이 거룩해질 수 있는 것은 없다. 본래 신성한 모든 것들은 그의 특별 은총에서 기인하는 것처럼, 파생적으로 신성한 모든 것들도 역시 그의 특별 지시에 의한 것이다.
자! 여기에 제정되어 있는 거룩한 절기에 대하여 관찰해 보자!
이것들은 절기(feast)라고 불리운다. 이들 중 하나인 속죄일은 금식의 날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절기는 희락과 즐거움이 약속된 날이었으므로, 일반적으로 절기(잔치)라고 불렀던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 말을 "이것은 나의 회중이다" 라고 해석한다. 절기를 나타내는 히브리 문자는 집회와 일치하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나의 제전이다"라고 해석하고 싶다. 사실상 성경 중에는 그렇게 해석되어 사용된 곳도 있다. 즉 시온은 "우리 제전(절기:개역)의 성"이라는 말이 있다(사 33:20). 그렇게 본다면 속죄일은 다른 모든 절기처럼 가장 위대한 제전 중의 하나가 된다.
절기들은 모든 여호와의 잔치(나의 절기)이다. 그의 명령에 복종하여서, 그의 이름에 영광 돌리기 위해서 드려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성소에 출입하는 제사장들에 의해서만 거행될 것이 아니라, 모든 백성들이 다 같이 거행해야 될 날이라고 공포되어졌다. 그리고 이 선포는 시편 34편 15절에서 "이것을 아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라고 외치듯이 기쁨의 포고이었다.
절기에는 거룩한 집회(성회)를 열어 신성하고 엄숙히 거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 절기의 예식이 거룩하고 영예롭게 지켜지면 지켜질수록 그것을 수행하는 백성들은 더욱더 굳게 결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가 정하신 제도를 기념하는 것으로서, 공공연하게 거행되어야 하며 또 그럼으로써 그 제전의 순수성이 잘 지켜질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각 절기에는 성회를 열도록 되어 있는데 그것은 백성들을 사랑으로 교화시키기 위함이다.
Ⅱ. 먼저 안식일 율법이 다시 반복된다. 모든 자들이 매년 성소에 참예해야 하는 절기들이 중요시되지만 그렇다고 그런 절기들이 결코 안식일의 영광을 조금이라도 흐리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3절).
안식일에는 모든 세상적인 일에 손을 떼야한다. 그것은 "안식의 날" 로서, 죄에서부터 우리 영혼이 안식을 찾고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너희는 그날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다른 모든 성일에도 그들은 노동을 금지당했다(7절). 그러나 안식일과 속죄일(이 날도 안식일이라고 불려졌다)에는 전혀 아무 일도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심지어는 고기를 먹는 일도 금했다.
안식일에는 그들이 오직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만 전무해야 했던 것이다.
(1) 그날은 성회이다. 즉 그날이 다가오면 "너희는 경건한 집회를 열어 그날을 거룩히 지내라. 될수록 많은 사람들이 회막 문에 모이라. 다른 사람들도 각자 있는 곳에서 모여 기도와 찬송과 율법을 읽는 일에 전념하라"는 것이다. 예언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예언자들의 학교에서 사람들이 모였었고, 그 후에는 회당에 모였던 것과 같은 집회이다. 그리스도께서도 신약의 안식일이 오순절(레위기 23:15-22), 여기에는 오순절 또는 칠칠절(신 16:10)의 절기가 제정되어 있다. 이것은 유월절 후 50일 혹은 7주 후에 행하여진다. 이 날은 또한 수장절(추수절) (출 23:16)이라고도 불려진다. 첫 곡식단을 바침은 수확의 시작이요 곡물에 낫을 대라는 허락으로 여겨진다면 이 오순절은 그들의 곡식의 수확을 완료했음을 알리는 절기이다.
이때 그들은 한 줌의 보리 이삭을 바치고, "두 덩이"의 밀가루 떡을 바친다(17절). 이것은 유교병이다. 유월절에는 무교병을 먹는데 그것은 유월절이 그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급히 나오느라고) 무교병을 먹었던 일을 기념하는 절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오순절에는 유교병을 먹었다. 이것은 하나님께 주신 모든 음식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다.
첫 곡식단을 드릴 때에는, 번제로 어린양 한 마리를 바친다. 그러나 이 첫 곡식의 떡을 드릴 때에는 7 마리의 어린양 과 2 마리의 수양과 소 한 마리를 모두 번제로 드린다. 이것은 땅의 주인이요, 수확물의 주인이신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는 제사이다. 그들은 모두 그 하나님의 은덕으로 살며, 그에게 찬양을 돌리면서 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화목 제물로 두 마리의 어린양을 바쳤다. 이것은 그들이 거두어들인 수확물이 축복된 것이 되도록 복을 비는 것이다(학 1:9). 이것은 전 회중을 위해서 드려지는 유일한 화목제이다. 그리고 다른 화목 제물은 그냥 "거룩한" 것임에 비하여, 이 화목 제물은 "지극히 거룩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본문에는 그 모든 제물이 지정되어 있다(18-20절).
이 외에도 그들은 어린 염소 한 마리를 속죄물로 드린다. 그것은 그 떡을 먹기에 합당치 못한 자기들의 수치를 덮어주며 자기들의 죄가 속량되기를 바라는 간청이다. 저들은 죄로 인하여 저들의 수확물을 전부 몰수당했었고, 수확을 받음에 있어서도 죄를 범하였기 때문이다.
그 하루는 성회로 지켜진다(21절). 이 날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만나며 그들끼리 서로 만나는 날 중의 하루이며, 그 장소는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곳이다. 어떤 사람들은, 무교절의 잔치를 위해서는 7일 간이 충당되는데 오순절의 잔치를 위해서는 오직 하루가 지정되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오순절 시기가 그들에게 있어서 매우 바쁜 기간이고,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속히 시골로 내려갈 수 있도록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이 연례적 잔치는, 그들이 애굽을 떠나온 지 50일 만에 시내산 위에서 율법이 주어졌던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서 정해진 날이었다. 오순절 제정 뒤에는 우리가 이미 보았던 율법(14:9), 즉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밭의 이삭을 남겨두며, 밭 모퉁이에서 자라는 곡식을 그대로 남겨 두라는 율법이 추가된다(22절). 아마도 이것은 제사장들이 백성들에게 첫 열매로 가져올 때에 이 작은 일에 복종하는 것이 희생을 드리는 것보다 더 소중한 일임을 상기시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여기에 삽입된 것 같다. 이런 일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은 자기들의 제사가 열납되기를 바랄 수 없다. 또한 이 삽입구적 율법은 수확의 기쁨이 가난한 자들에게도 전파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며, 가난한 자들도 그 백성의 소유 중에서 자기들의 몫을 갖는 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의 소유 중에서 당신의 몫을 취하심과 동일한 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이 주시는 자비를 느낄 수 있는 자만이 인색함이 없이 가난한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다. 성회가 되도록 하라고 명하셨고, 그의 제자들을 계속해서 주간의 첫날에 모이게 하셨다.
이 축제는 그들이 애굽에 있을 때 이미 하나님께서 광야에 가서 행하라고 명령했었고, 또 영구히 지키도록 명하신 절기이다. 그러나 이 축제의 절정과 완전성은 오순절 날에 사도들에게 성령이 강림한 사건이다(행 2:1). 그때에 믿음의 율법이 주어졌고, 우리의 어린양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희생된 지 50일이 되는 날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날에 (패트릭 주교가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제자들은 "성령의 첫 열매"를 거두었고,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3천 명의 영혼을 구원하였으며 그들을 그리스도 교회의 첫 열매로서 하나님과 어린양께 바쳤던 것이다.
(2) "너희가 성회에 모여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보내게 되든지 못되든지 간에, 너희는 여호와의 안식일을 너희의 지내는 각처에서 거룩하게 지내라. 그것은 여호와께서 창조의 역사를 쉬신 여호와의 안식날이요, 우리에게도 쉼을 약속하신 날이다. 너희가 장막에 거하는 기간 동안에도 그날을 지키라." 주의할 것이 있다. 하나님의 안식일에는 여러 가족이 성회에 모여 함께 지내는 것은 물론이요, 각 개인도 그들의 가정에서 경건히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거하는 곳 어디서든 우리가 지키는 여호와의 안식일은 우리의 아름다움과 힘과 안전이 될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거처를 거룩하게 하고 존귀케 하고 영광되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