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 성경읽기
창세기 22, 마태복음 21, 느헤미야 11, 사도행전 21
묵상구절
23:3 너희는 육일 동안 일하여라. 그러나 제칠일은 완전히 쉬는 안식일로서 성회가 있다. 너희는 아무 일도 하지 마라. 이 날은 너희 모든 처소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다.
매튜 헨리/옥스퍼드
💡 **제칠일은 완전히 쉬는 안식일로서 성회가 있다.**
1) ‘쉴 안식일’ = 문자적으로는, ‘일을 그치는 것’이란 뜻. 이는 하나님께서 육 일 간 천지 창조를 마치시고 제 칠 일째 되는 날에 취하신 행동을 나타낼 때로 쓰인 단어로서(창2:2) ‘쉬다’란 의미를 가진다.
2) 그러나 무의미하게 쉬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을 완성하시고 모든 일로부터 자유롭다’는 뉘앙스를 가진다. 이러한 의미는 본절에서 ‘무슨 일이든 하지 말라’는 명령이 뒤따라 나오는 것에서도 확인된다.
안식일이 어떤 날인가?
1) 안식일 또한 2절에서 설명한 바 있는 ‘미크라 코데쉬’, 즉 성회로 소개되고 있음. 그러므로 안식일은 혼자서 쉬며 조용한 시간을 보내는 날이 아니라 앞 문장에서 설명했듯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모이는 날.
2) 또한 하나님의 부르심의 대변자들이 되어 서로에게 그 부르심을 크게 알리는 날이었음을 알 수 있다.
3) ‘너희 모든 처소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다’ ⇒진정한 안식은 그날 하루 동안 온전히 여호와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그분을 향하여 그리고 그분의 뜻대로 온전히 지내는 날이다.
4) 본문은 ‘여호와게 속한 안식일’이란 의미를 강조하기보다는,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이 안식일을 지킬 때에 누구를 향하여 그 절기를 지켜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기 위해 ‘라이흐와’ 라는 말을 썼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에 ‘여호와께 향하는’이 더 적합한 것이다. 안식일은 그저 아무 일도 안하고 지내는 날이 아니다.
‘너희 거하는 모든 처소에서’
= ‘이스라엘 백성이 살고 있는 땅 전역’을 의미함.
이 말이 ‘여호와께 향하는 안식일’이란 말과 함께 나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이 있는 모든 처소에서 여호와께 향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즉 여호와께서는 성막 안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며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처소에서 그들을 지켜보시는 분이시다.
이러한 본문의 표현은 안식일이 유월절이나 칠칠절과 같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한 곳에 모으지 아니하시고 그들 삶의 각 처소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신 날임을 알게 한다. 이는 안식일이 단지 종교적인 집회가 있는 날에 머무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의 실제적인 삶을 지배하는 날이었음을 말해 준다.
이러한 사실은 한걸음 더 나아가 안식일 규례가 일주일의 하루만을 특별하게 구별해 드리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대표하는 바 일주일 전체, 즉 우리의 삶 전체를 지배하시는 이가 누구신지를 바로 가르쳐 주시기 위해 제정하신 하난미의 특별한 계시의 날임을 알려 준다. 따라서 우리는 안식일에 대한 바른 인식을 통해 안식일의 영적 의의를 계승한 주일은 물론이고 일주일 전체를 하나님의 시간으로 알고 우리의 삶 전체를 그분께 온전히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1. 카페자료
안식일의 의미
(1)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창조주의 하나님으로 믿는 믿음의 고백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것을 엿새 동안 만드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기 때문에 그 날을 거룩하게 하기 위하여(출20:11) 그 백성 이스라엘은 안식일을 지켜야만 한다고 말씀하신다.
a)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의 오랜 노예 생활 속에서 그들은 애굽의 다신교 숭배문화에 젖어 있었다(출32:8).
b) 그들이 들어갈 가나안 땅 역시도 온갖 우상들이 난무하는 그야말로 우상의 소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따라서 가나안에 정착하면서 접하게 될 가나안의 토속신들에게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들과 여호와 신앙을 함께 갖는 혼합 종교의 성격에 휩싸인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창조주되심과 그분의 창조 역사를 상기시켜주는 안식일 계명이야말로 하나님과 이방 신들과의 차이를 극명하게 확인시켜 주며 오직 하나님만이 경외할 분임을 가장 확실하고 든든하게 정립할 수 있는 계명이 아닐 수 없었다.
(2) 안식일 계명 준수는 구속이란 은혜의 사건과도 관련되어 있다. 특별히 신5:15에서는 안식일 준수의 이유를 종 되었던 애굽으로부터의 한아님의 구원 사역과 관련시키고 있다.
출애굽의 진술이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안식일 준수의 근거를 두고 있는 반면
신명기의 진술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안식일을 준수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식하고 그분만이 유일하신 참 신임을 인정하는 것이며, 또 한편으로는 그분만이 세상의 온갖 죄악 세력으로부터 그 백성을 구원하실 수 있는 참된 구원자이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과 구세주 되심을 믿는 믿음이 없이는 온존한 안식일 준수가 이루어질 수 없다. 때문에 성경에서는 그토록 안식일 계명을 중요시하고, 본장에서도 이러한 안식일 계명의 준수를 언약 관계의 회복의 핵심으로 진술하고 있는 것이다.
(3) 아울러 안식일 준수는 단지 대신관계, 즉 하나님과의 관계에만 제한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대인관계 즉 이웃과의 관계에까지 연결되어 있으며 더 나아가 세상, 곧 피조 세계와도 긴밀한 관련을 지니고 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이 하나님의 창조주되심과 구원자되심을 기억함으로 거룩히 지킬 것을 선민들에게 명하셨지만 그 구체적인 안식일 준수의 방식은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이들과 긴밀하게 연결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20:10)는 안식일의 구체적 준수 방법에 대한 명령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즉 안식일 계명은 자기 자신만 아니라 그 가족, 그리고 그 가속 뿐 아니라 가축과 잠시 머무는 객에 대해서까지도 쉼을 갖는 것을 통해 구체적으로 준수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안식일 준수 계명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지키는 것, 하나님의 대한 사랑의 계명으로 분명하게 규정되는 첫째에서 셋째 계명과, 이웃과의 바른 관계, 이웃 사랑의 계명으로 규정되는 다섯째에서 마지막 계명 사이에 위치하여 이 두 가지 범주들을 포괄하는 것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면에서도 안식일 준수 계명은 특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안식일 계명 준수 요구에는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한 참 하나님이시며 모든 다른 이방의 신들은 거짓되고 허망된 신임을 믿는 믿음의 요청이 수반되어 있는 것이다.
2. 출처: 성도 로웰 그린에게 보낸 1934. 10. 14의 아더 핑크의 서신 중에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아더 핑크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 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 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출 20:8-10)
이것은 주 하나님께서 돌판에 친히 쓰신 십계명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성격과 권위를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다른 아홉 가지의 계명을 범하는 것이 잘못된 것처럼, 안식일에 이를 범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십계명 중에서 바로 이 계명만이 ‘기억하라’로 시작되는 것은 특이한 중요성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이는 인간이 잊어버리는 경향이 아주 많기 때문입니다.
이 **‘기억하라’**는 말은 안식일 계명이 시내산에서 처음으로 주어진 것이 아님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세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에 그들이 듣지 않은 것을 기억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언급함은 오늘날 많은 잘못된 교사들이, 안식일이 전적으로 유대교적인 것이라고 가르치며, 모세시대에 시작되고 끝나 버린 것으로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큰 잘못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명령은 시내산에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서두의 ‘기억하라’는 말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기억하라’는 말은 창세기 2장 2-3절로 되돌아가게 하는데, 거기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신 바로 직후에 세 가지 일을 하셨습니다.
[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 이더라 -창 2:2-3 ]
첫째, 그는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피곤해서 일까요?
물론 아닙니다.
이유는
그의 모든 피조물들에 대한 모범으로서입니다.
둘째, 주 하나님께서는 일곱째 날을 축복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은 그를 따르는 자들을 인정하신다는 사실을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셋째, 하나님이 그날을 거룩하게 하심은
그날을 특별한 목적을 위해 정해놓았기 때문입니다.
‘거룩하게 했다.’는 것이 성경 안에서 의미하는 것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이처럼 창세기 2장 2-3절에서 하나님은 거룩한 안식일을 정해놓았는데,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 이르기 2천년 전입니다.
본 주제에 관해 오늘날 성경교사가 크게 잘못하고 있다는 증거는 주 예수의 분명한 말씀 속에 드러나 있습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막 2:27)
유대인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0장 8-11절로 돌아가서 그 내용을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안식일이니라.”
성경은 (안식일이) 한 주간의 일곱째 날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제 칠일 안식교의 잘못입니다.
어떤 날이라고는 규정하지는 않고 육일동안은 일하고 일곱째 날은 안식하는 날입니다.
유대인들은 일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하고 우리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합니다.
다른 주제들과의 관련에서 배운 것처럼 성경의 한 구절은 독립적으로 있지 않고, 성경은 성경을 해석합니다.
‘안식일 날에는 어떤 일도 하지 말라’는 말씀도 그러합니다.
4복음서에서 그리스도 자신의 가르침과 모범에 비추어 보아 반드시 필요한 일과 자비의 행위는 허락되지만, 다른 일들은 안 됩니다.
이사야서 56, 58장과 같은 말씀을 참조할 때,
우리 본성의 쾌락은 거룩한 안식일에 버려두어야 하고, 우리의 모든 생각과 시간이 주님의 일을 위하여 드려져야 합니다. 인간의 역사는 안식일을 엄격히 지켰던 모든 나라들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부강했었음을 매우 강조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가정이나 개인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18년간 우리가 누려왔던 현실적인 축복들은 우리가 안식일을 엄격히 지켰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 기간동안 안식일에 저의 아내는 결코 더운 식사를 짓지 않았습니다.
남자와 마찬가지로 여자도 한 번 철저한 휴식의 한 날을 필요로 합니다.
아내는 토요일에 음식을 준비하고, 우리는 주일날 더운 차를 제외하고는 찬 음식을 먹습니다.
일요일 날의 신문과 세속적인 일들은 안식일에는 엄격히 금지되어야 합니다.
형제가 원하면 이 주제에 대한 관한 저의 소책자가 있습니다.
그 책자는 실제적인 면이라기보다는 교리적인 면에서 취급한 것입니다.
아직도 이 문제가 분명하지 않다면, 다음의 글을 소개합니다.
“안식일을 잘 보내면 한 주간이 만족스럽다. 또한 내일의 수고를 위해 힘을 얻는다.
그러나 안식일을 범하면, 무엇을 얻을지라도 슬픔이 찾아올 것이다.”
3. 칼빈의 안식일 개념 카페자료
4. 웨민 신앙고백서 21장
제 21장 예배와 안식일
(Of Religious Worship and the Sabbath Day)
1. 자연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 하나님은 만물에 대하여 통치권과 주권을 행사하신다. 그는 선하시며, 만물에게 선을 행하신다. 그러므로 인간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를 경외하며, 사랑하며, 찬양하며, 부르며, 신뢰하며, 그리고 섬겨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참되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합당한 방법은 그 자신이 친히 정해 주셨으므로 그 자신의 계시된 뜻 안에 한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상상이나 고안, 또는 사탄의 지시에 따라 어떤 가견적인 구상을 사용하거나, 성경에 규정되어 있지 않는 다른 방법을 따라서는 하나님을 예배할 수가 없다.
(롬 1:19-20; 렘 10:7; 시 19:1-6; 행 17:24; 시 119:68; 막 12:33; 신 12:32; 마 15:9; 행 17:25; 출 20:4-6; 골 2:20-23)
2. 종교적 예배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께 드려야 하며 또한 오직 그에게만 드려야 한다. 천사나, 성자들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에게도 드려서는 안 된다. 그리고 아담의 타락 이훌는 중보가 없이 드릴 수가 없고, 또한 다만 그리스도 이외의 어떤 다른 중보로도 그럴 수가 없다.
(마 4:10; 요 5:23; 고후 13:13; 골 2:18; 계 19:10; 롬 1:25; 요 14:6; 딤전 2:5; 엡 2:8)
3. 감사함으로 드리는 기도는 , 종겨적 예배의 한 특별한 요소로서,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요구하신다. 기도가 열납됟록 하기 위해서는 성자의 이름으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사려 분별과 경외심과 겸손과 열심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를 가지고 하되, 만일 소리를 내어 하는 경우에는, 알 수 있는 말로 해야 한다.
(빌4:6; 시 65:2; 눅 18:1; 딤전 2:8; 요 14:13-14; 롬 8:26; 요일 5:14; 시 47:7; 히 12:28; 창 18:27; 약 5:16; 엡 6:18; 막 11:24; 골 4:2; 고전 14:14)
4. 기도는 합당한 것들과, 모든 종류의 생존하는 사람들이나, 자아 생존하게 될 자들을 위해서 하되, 죽은 자들이나,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지은 것으로 알려진 자들을 위하여는 하지 말 것이다.
(요일 5:14; 딤전 2:1-2; 요 17:20; 삼하 7:29; 삼하 12:21-23; 눅 16:25-26; 요일 5:16)
5. 경건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는 것과, 흠 없는 설교와, 하나님께 순종하여 사려 분별과 믿음과 경외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정성껏 듣는 것과, 마음에 은혜로 찬송을 부르는 것과,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성례를 합당하게 집행하고 값없게 받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통상적인 종교적 예배의 모든 요소들이다. 이것들 외에도, 종교적 맹세와, 서원과, 신성한 금식과, 특별한 경우에 드리는 감사 등은 몇 차례 적당한 시기에 거룩하고 종교적인 방식으로 실시할 것이다.
(행 15:21; 17:11; 계 1:3; 딤후 4:2; 약 1:22; 행 10:33; 히 4:2; 사 66:2; 골 3:16; 엡 5:19; 약 5:13; 마 28:19; 행 2:42; 고전 11:23-29; 신 6:13; 시 116:14; 사 19:21; 느 10:29; 욥 2:12; 마 9:15; 고전 7:5; 엡 4:16; 시 107:1-43; 히 12:28; 요 4:24; 히 10:22)
6. 지금 복음 시대에서, 기도나 기타의 다른 종교적인 예배 행위는 그것이 시행되는 장소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떤 장소를 향하여 드릴 필요가 없으며, 그 장소 여하에 따라 기도나 예배 행위가 더 잘 열납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는 어디에서나, 신령과 진리로 예배 드려야 한다. 각 가정에서, 매일, 그리고 은밀한 중에 개별적으로 드릴 수도 있고, 더욱 엄숙하게 공적인 모임들에서 드릴 수도 있으나, 하나님께서 자기의 말씀이나 섭리에 의하여 기도나 예배를 드리도록 요구하신 때에, 경솔하게 행하거나 고의적으로 소홀히 하거나 저버려서는 안 된다.
(요 4:21; 말 1:11; 딤 2:8; 요 4:23-24; 신 6:7; 욥 1:5; 행 10:2; 마 6:11; 마 6:6; 엡 6:18; 사 56:6-7; 히 10:25; 행 2:42; 눅 4:16; 행 13:42)
7. 일반적으로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하여 일정한 시간을 정하는 것은 자연의 법칙에 합당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통하여 적극적이고 도덕적이며 영구적인 명령으로써,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특별히 이레 중 하루를 안식일로 택정하여 하나님께 거룩하게 지키도록 명하셨다. 그 날은 창세로부터 그리스도의 부활까지는 한 주간의 마지막 날이었으나,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로는, 한 주간의 첫째 날로 바뀌어졌다. 성경에는 이 날이 주의 날로 불리워져 있다. 이 날은 세상 끝 날까지 기독교의 안식일로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출 20:8-11; 사 56:2, 4, 6; 계 1:10; 행 20:7; 고전 16:1-2)
8. 그러므로 안식일은 주님께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을 합당하게 준비하고, 그들의 일상적인 일들을 미리 정돈한 연후에, 그 날에 하루 종일 그를 자신의 일과, 그들의 세상적인 일에 대한 말이나 생각, 그리고 오락을 중단하고 거룩하게 안식할 뿐만 아니라, 모든 시간을 바쳐서 공적으로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과 부득이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일과 자비를 베푸는 일을 해야 한다.
(출 16:23-30; 31:15-16; 사 58:13; 느 13:15-22; 막 23:56; 사 58:13; 마 12:1-13)
출처 : 영적 분별력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