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창세기 1, 마태복음 1, 에스라 1, 사도행전 1
묵상구절
11:1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
11:2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11:3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
11:4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11:5 그 여인이 임신하매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임신하였나이다 하니라
11:6 다윗이 요압에게 기별하여 헷 사람 우리아를 내게 보내라 하매 요압이 우리아를 다윗에게로 보내니
11:7 우리아가 다윗에게 이르매 다윗이 요압의 안부와 군사의 안부와 싸움이 어떠했는지를 묻고
11:8 그가 또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내려가서 발을 씻으라 하니 우리아가 왕궁에서 나가매 왕의 음식물이 뒤따라 가니라
11:9 그러나 우리아는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고 왕궁 문에서 그의 주의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잔지라
11:10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아뢰되 우리아가 그의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나이다 다윗이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가 길 갔다가 돌아온 것이 아니냐 어찌하여 네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11:11 우리아가 다윗에게 아뢰되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야영 중에 있고 내 주 요압과 내 왕의 부하들이 바깥 들에 진 치고 있거늘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 내가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기로 왕의 살아 계심과 왕의 혼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나이다 하니라
11:12 다윗이 우리아에게 이르되 오늘도 여기 있으라 내일은 내가 너를 보내리라 우리아가 그 날에 예루살렘에 머무니라 이튿날
11:13 다윗이 그를 불러서 그로 그 앞에서 먹고 마시고 취하게 하니 저녁 때에 그가 나가서 그의 주의 부하들과 더불어 침상에 눕고 그의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니라
11:14 아침이 되매 다윗이 편지를 써서 우리아의 손에 들려 요압에게 보내니
11:15 그 편지에 써서 이르기를 너희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그로 맞아 죽게 하라 하였더라
11:16 요압이 그 성을 살펴 용사들이 있는 것을 아는 그 곳에 우리아를 두니
11:17 그 성 사람들이 나와서 요압과 더불어 싸울 때에 다윗의 부하 중 몇 사람이 엎드러지고 헷 사람 우리아도 죽으니라
11:18 요압이 사람을 보내 그 전쟁의 모든 일을 다윗에게 보고할새
11:19 그 전령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전쟁의 모든 일을 네가 왕께 보고하기를 마친 후에
11:20 혹시 왕이 노하여 네게 말씀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성에 그처럼 가까이 가서 싸웠느냐 그들이 성 위에서 쏠 줄을 알지 못하였느냐
11:21 여룹베셋의 아들 아비멜렉을 쳐죽인 자가 누구냐 여인 하나가 성에서 맷돌 위짝을 그 위에 던지매 그가 데벳스에서 죽지 아니하였느냐 어찌하여 성에 가까이 갔더냐 하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왕의 종 헷 사람 우리아도 죽었나이다 하라
11:22 전령이 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요압이 그를 보낸 모든 일을 다윗에게 아뢰어
11:23 이르되 그 사람들이 우리보다 우세하여 우리를 향하여 들로 나오므로 우리가 그들을 쳐서 성문 어귀까지 미쳤더니
11:24 활 쏘는 자들이 성 위에서 왕의 부하들을 향하여 쏘매 왕의 부하 중 몇 사람이 죽고 왕의 종 헷 사람 우리아도 죽었나이다 하니
11:25 다윗이 전령에게 이르되 너는 요압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이 일로 걱정하지 말라 칼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삼키느니라 그 성을 향하여 더욱 힘써 싸워 함락시키라 하여 너는 그를 담대하게 하라 하니라
11:26 우리아의 아내는 그 남편 우리아가 죽었음을 듣고 그의 남편을 위하여 소리내어 우니라
11:27 그 장례를 마치매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를 왕궁으로 데려오니 그가 그의 아내가 되어 그에게 아들을 낳으니라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매튜헨리/옥스퍼드
●다윗의 범죄(사무엘 하 11:1-5)
Ⅰ. 다윗의 영광이 나온다(1절).
다윗은 암몬 족속과의 전쟁을 속행함으로써 영광을 얻는다(2절). 우리는 이제껏 다윗의 업적을 관찰하면서 즐거움을 느꼈는데 여기에 나오는 큰 승리에서 기쁨을 느낄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 큰 승리의 아름다움은 곧 죄로 더럽혀지고 추한 것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않았더라면 우리는 그의 강타에서 지혜와 용맹을 주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전장에서 암몬인을 패주시켰었지만 해가 바뀌자 곧 더 많은 군대를 파견하여 그 나라를 황폐화시키며 전일 자기 사신의 수모에 대한 설욕을 하려고 한다. 암몬족의 수도 랍바는 완강한 저항을 하면서 오랫동안 버티고 있었다. 다윗이 죄에 빠진 것은 바로 랍바성을 공략하고 있을 때였다.
Ⅱ. 다윗의 치욕이 나온다.
그는 자신의 욕망의 포로가 되어 정복당하였다. 그가 범한 죄는 간음죄로서 제7계명을 어긴 것이었다. (족장시대의 재판으로는) 간통죄는 극형에 해당하는 죄였고 재판장에게 벌받을 죄였으며(욥 31:11), 자기 영혼을 망하게 하고 상함과 능욕을 받고 다른 어느 죄보다 부끄러움을 씻을 수 없게 하는 죄(잠 6:32, 33)였다.
- 이 간음죄에 이르게 한 것은 무엇인지 살펴 보자.
(1) 그는 업무에 대해 태만했다.
여호와의 전쟁을 하면서 자기 부하와 같이 전장에 나가 있어야 할 때 그는 고생과 걱정을 남에게 맡기고 자신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었다(1절). 아람인과의 전쟁에서는 친히 출정했던 그였다(10:17). 그가 전군의 총수로 자기의 사령탑에 나가 있었더라면 이런 유혹을 피할 수 있었을 터였다.
(2) 그는 안일을 탐하고 게으름을 마음껏 피웠다.
"저녁 때에 다윗은 그 침상에서 일어났다" (2절). 자기 향상을 위해서든 남을 위해서든 무슨 일로 시간을 보내야 할 그가 침상에서 한 나절을 낮잠으로 소일했다는 것부터가 화근이었다. 환란날에는 아침 저녁 뿐만 아니라 낮에도 기도하곤 하던 다윗이었다. 그 날 낮에 기도를 궐한 것은 두려워해야 마땅한 일이었다. 게으름은 유혹자에게 큰 기회를 만들어 준다. 시궁창 곁에 섰으면 오물이 묻기 마련이다. 나태한 자의 침상은 왕왕 욕망의 침상으로 판명된다.
(3) 그의 발길과 시선은 배회하였다.
"왕궁 지붕 위에서 거닐다가 그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고 있었다." 이 여인은 아마 율법을 따라 모종의 의식적 오염을 세정시키기 위해 목욕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와의 경우에서와 같이 죄는 눈을 통해 왔다. 그는 기를 쓰고 그 여인을 보려고 했을 것이다. 적어도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소서" (시 119:37)라는 기도대로 행하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다. 또 자기 아들의 경고대로 행하지도 않은 셈이다. "너는 포도주가 붉을 때 그것을 보지 말라" (잠 23:31). 그는 욥과 같이 "자기 눈과 언약을 세우지 않았거나" (욥 31:1) 아니면 그것을 잊어버렸을 것이다.
2. 죄의 여러 단계.
그는 밧세바를 보자 즉시 정욕이 동하였다.
(1) 그는 그 여인이 누구인지 탐문하였다(3절).
이것은 아마 그 여인이 미혼이라면 아내로 데려오려는 의도에서 한 짓이었을 것이다. 그는 실제로 여러 아내를 취했었다. 그러나 그 여인이 유부녀라면 달리 흑심을 품지는 않았을 것이다.
(2) 부패한 욕망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더욱 맹렬해졌다.
그는 그녀가 유부녀라는 것과 누구의 아내라는 것까지 보고 받았다. 그런데도 그는 그녀를 부르러 사자를 보냈던 것이다. 그랬다고 해도 그는 그 여인을 동반하여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자신을 즐겁게 하려는 의도만 지녔을 것이다.
(3) 그러나 그 여인이 오자 그는 "더불어 동침했다."
밧세바는 너무 쉽사리 몸을 허락했다. 이는 다윗이 위대한 인물이었고 인자심이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다윗 같은 인물이 하는 일은 죄될 리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죄의 길이 얼마나 내리막길인지 명심하자. 사람이 일단 악을 행하기 시작하면 스스로 멈출 수가 없다. "다툼의 시작" 처럼 정욕의 시작도 "방축에서 물이 새는 것과 같다" (잠 17:14). 그러므로 귀찮게 간섭하기 전에 중단하는 것이 지혜롭다. 미련한 파리는 날개 짓에 열중하지만 촛불 주변에서 놀다가 결국 자기 생명을 날려버린다.
3.이 죄를 가중시키는 여러 가지 사실.
(1) 그는 노년에 접어들었다. 적어도 쉰은 넘어섰을 것이다. 혹자는 그 나이를 더 많이 보기도 한다. 젊은이라면 몰라도 초로의 늙은이가 왕성한 정욕을 느낀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2) 그에게는 자신의 처첩이 많이 있었다. 12장 8절에서는 이 점이 강조되고 있다.
(3) 그는 우리아에게 몹쓸 짓을 했다. 우리아는 다윗에게 소중한 자 중 하나였고 명예와 덕을 겸비한 자였다. 우리아는 다윗이 가 있어야 할 전장의 고지에서 자기 목숨을 걸고 군무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는 군주와 국가의 명예를 위해서 그리고 안전을 위해서 싸우고 있었다.
(4) 그가 타락시킨 밧세바는 평판 좋은 귀부인이었다. 그녀가 다윗에게 이끌려 악행에 휩쓸려 들기 전에는 틀림 없이 자기의 순결을 보존했을 것이다. 그녀는 자기가 "소시의 짝을 버리며 그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릴" 정도로 악행을 하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잠 2:17). 아마 이 세상에서 다윗을 제외하곤 어느 누구도 그녀를 함락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간음하는 사람은 자신의 영혼을 파멸시키고 더럽힐 뿐만 아니라 남의 영혼에게도 최대의 피해를 준다는 것을 명심하자.
(5) 다윗은 하나님께로부터 정의의 칼과 법의 시행을 위임받은 왕이었다. 그는 다른 범법자 특히 간음자에게 법을 추상같이 시행해야 할 자였다. 간음자는 법에 의해 처단될 범법자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법의 시행자 자신이 그런 죄를 범한다는 것은 다른 행악자들에게 공포가 되기는커녕 행악의 본보기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 자신의 죄의식을 느끼는 터에 무슨 낯으로 남의 죄를 책망하고 범할 것인가?(롬 2:22 참조) 이 죄를 가중시킨 것을 말하려고 하면 아직 얼마든지 더 있다. 다윗의 이 범죄에 대해 단 한 가지 변명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딱 한 번 그랬다는 것뿐이다. 간음은 그의 관행이 아니었다. 시험이 엄습함으로 말미암아 말려 든 것뿐이다. 예레미야 선지는 "그들이 살찌고 두루 다니는 수말같이 각기 이웃의 아내를 따라 부르짖는다" (렘 5:8)고 불평했지만 다윗은 그런 부류는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에게 하셨듯이 꼭 한 번 그를 떠나사 이렇게 자기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셨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로 자기 심중에 어떤 것이 있는지 알게 하셨다(대하 32:31). 만일 다윗이 전에 이런 말을 들었다면 하사엘처럼 "무엇이라고요? 주의 종이 개니이까?" 하고 항변했을 것이다. 이 사례를 통해 우리는 날마다 시험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며 시험을 들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소서."
●자기 죄를 은폐시키기 위한 다윗의 간계(사무엘 하 11:6-13)
우리는 우리아가 암몬족 토벌전을 수행하느라고 수 주간이나 아내 곁을 떠나 있었으며, 그 원정이 끝날 때까지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었다고 상상할 수 있다. 그래서 밧세바의 임신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밝히 드러내게 될" 터였다(고전 4:5). 우리아가 돌아와 임신한 아내를 보면 얼마나 모욕감을 느낄 것인가! 여기서 다음과 같은 가상을 할 수 있다.
1.우리아는 자기 아내를 고소하여 율법대로 돌에 맞아죽게 할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 남편 특히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남편은 투기하여 분노하며 이렇게 피해를 입은 자는 원수를 갚는 날에 용서하지 아니하는 때문이다(잠 6:34). 밧세바는 이 점을 염려하여 다윗에게 자기의 잉태를 알렸고 다윗의 보호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녀는 다윗이 만일 보호해 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다면(이 얼마나 왕권의 남용인가!) 몸을 허락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벌받지 않고 무사히 넘어갈 가망만 있으면 누구나 용기가 나서 죄지을 것이다.
2.우리아가 법으로는 다윗을 고소할 수 없으므로 달리 복수하는 방법을 모색하여 반란을 일으킬 것도 우리는 예상할 수 있다. 자기 신하의 아내를 범하여 그들의 격분을 사고 급기야 자기 왕관까지 잃는 예는 적지 않다. 이런 이중적 화를 방지하기 위해 다윗은 태어날 아이를 우리아 자신의 소생으로 은폐시킬 궁리를 한다. 그래서 그는 우리아를 소환시키려고 사람을 보낸다. 이것은 일단 돌아오면 하루나 이틀쯤 자기 아내와 머물게 하려는 계산에서이다. 다음을 주목하자.
Ⅰ. 음모는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우리아는 전선에서 집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안 되었다. 겉으로 내세운 명분은 싸움의 어떠한 것 즉 랍바 공략의 경과를 다윗에게 보고하라는 것이었다(7절). 이와 같이 다윗은 자기 마음 속에서는 추호도 생각이 없으면서 자기 군대에 대한 일반적 관심 이상의 것은 전혀 내색하지 않는다. 만일 그의 마음에 별다른 음모만 개재되어 있지 않았다면 전황 보고쯤이야 우리아보다 훨씬 미미한 존재가 급사로 파견되어도 괜찮을 터였다. 다윗은 자기 흉계를 은폐하기에 필요할 정도로 우리아와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 받은 뒤 그를 자기 집으로 보냈다. 우리아가 자기 소시의 아내와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윗은 뒤따라 음식까지 하사하였다(8절). 첫날 밤은 이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다. 먼 길을 달려온 우리아에게는 음식보다 잠이 더 필요했기에 왕궁 수비병 숙소에서 밤새껏 자버렸기 때문이다. 다음날 밤 다윗은 우리아를 취하게 했다(13절). 그가 우리아를 유쾌하게 만들어 정도 이상 과음하도록 유혹한 것은 우리아로 하여금 자기 맹세를 잊게 하여(11절) 집으로 돌아가 자기 아내와 동침케 하기 위해서였다. 의식이 없어질 만큼 대취케 할 수만 있었다면 다윗은 그를 그의 집 침상으로 떠메고 가라고 명령했을 터였다. 어떤 의도에서든 사람을 취하게 만든다는 것은 매우 악한 일이다. 이웃을 취하게 하는 자는 화있을진저!(합 2:15, 16) 다른 사람의 손에 취함의 잔을 쥐어 주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떨림의 잔을 쥐어 주실 것이다. 사람에게서 이성을 빼앗는다는 것은 돈을 강탈하는 것보다 더 악한 행위이며, 사람을 죄중에 끌어들인는 것은 다른 어떤 고통속으로 끌어들이는 것보다 더 나쁘다. 모든 선한 자들 특히 모든 행정관들은 과음하는 자들에게 권면하고 절제시키며 잔을 돌리지 않음으로써 이 죄를 방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술취함을 촉진시키는 것은 악마의 일을 행하는 것이며 악마의 대리자 노릇을 하는 셈이다.
Ⅱ. 이 흉계는 자기 처와 자지 않겠다는 우리아의 굳은 결의로 인해 수포로 돌아간다. 그의 아내는 다윗 못지 않게 그의 남편에게 돌아오도록 채근하고 강요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아는 연 이틀 밤을 왕궁 위병들과 같이 잤다(9, 12절).
1.혹자는 우리아가 자기 아내의 왕궁 출입 소문을 듣고 의심한 끝에 아내를 가까이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만일 우리아가 그런 식으로 의심했다면 요압에게 갖다 주라고 부친 다윗의 편지를 틀림없이 뜯어보았을 것이다.
2.우리아가 눈치를 챘든 못챘든 간에 그가 이런 의사를 굳히고 끝까지 아내를 가까이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뜻에서 나온 일이었다. 이것은 다윗의 죄를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간음을 위장하려는 계교가 실패함으로써 다윗으로 하여금 양심의 소리를 듣고 깨달아 죄를 자백하고 참회케 하기 위해 하나님은 이렇게 행하신 것이다.
3.이 보기 드문 극기와 금욕에 대해 우리아가 내세운 이유는 아주 고귀한 것이었다(11절). 전우들이 전쟁터에서 야영하고 있는 터에 어찌 자기만 안일하게 자기 집 침상에서 자겠느냐는 것이다. 법궤가 국내에 즉 다윗의 집 천막에 있는지 아니면 국외에 즉 요압의 병영에 있는지 확실하지 않다. "요압과 이스라엘의 모든 용사들이 딱딱하고 불편한 잠자리에 누우며 비바람과 원수에게 시달림을 받고 있는데 어찌 나 혼자만 내 집에서 편안과 즐거움을 찾으리이까." 우리아는 결단코 그렇게 하지 못 하겠노라고 항변한다.
(1) 이 결심은 우리아의 폭넓은 마음을 증명하였다. 이로써 보건데 우리아는 단체 정신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담대하고 굳센 사람이었으며 관능의 즐거움에 극기하는 인물이었다. 여러 사람이 곤란과 위험을 맞고 있을 때 자기만은 안온한 가운데서 편히 쉬거나 쾌락 속에서 딩군다는 것은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다. 수산성은 어지러운데 왕과 하만은 앉아서 술만 마셨으니(에 3:15) 이 또한 우리로서 취할 행동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가 부득이 어려움을 당할 때 자진해서 그 곤란을 감수해야 한다.
(2) 그의 이런 결심은 다윗의 양심을 일깨우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었다. 다윗은 우리아의 이런 결심에 가책을 받고 자기가 행한 일에 대해 가슴을 치며 통회해야 마땅했다.
[1] 다윗은 우리아 같은 용사를 야비하게 모욕하고 학대했던 것이다 그는 왕과 왕의 나라를 위해 그토록 충정어린 사람이었으며 다윗 자기를 위해 그토록 엄격히 행동하는 자였던 것이다.
[2] 다윗 자신은 우리아와 달랐던 것이다. 우리아는 국가의 어려움과 위험을 인식하고 합법적 즐거움을 멀리했음에 반해 국가적 위기와 보다 밀접한 관련이 있는 다윗은 불법적 쾌락조차 멀리하지 못했다. 우리아의 지독한 극기는 다윗으로 하여금 자기 방종을 부끄러워하게 했다. "네가 대적을 치러 출진할 때에 모든 악한 일을 삼갈지니라" (신 23:9)는 것이 율법이었다면 우리아는 이 율법보다 더 엄한 것까지도 지켰음에 반해 다윗은 이 율법을 어겼던 것이다.
●우리아를 모살하는 다윗(사무엘 하 11:14-27)
자신이 만든 아이를 우리아의 소생으로 돌리려던 다윗의 계획은 보기 좋게 실패했다. 시일이 경과하면 우리아가 이 몹쓸 학대를 알게 될 것은 뻔한 노릇이었다. 악마는 다윗의 귀에다 우리아의 복수를 방지하려면 그를 제거해야 한다고 속삭였고 다윗은 마음이 움직였다. 다윗은 우리아만 없애버리면 자기나 밧세바가 안전할 것이고(고발자가 없는데 어찌 고발이 있을 수 있는가?) 게다가 거치장스런 우리아만 없다면 밧세바가 영원히 자기 소유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음은 종종 살인을 부른다. 한 가지 악을 안전하게 은폐시키기 위해서는 또 다른 악이 필요한 때문이다. 우리는 죄의 시초를 경계하고 두려워해야 한다. 죄가 어디서 끝이 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다윗의 흉중에는 우리아가 죽어야 한다는 생각이 굳게 자리잡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다윗이 그런 악한 생각을 품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결백하고 용감하고 기개 있는 우리아는 자기 군주의 명예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려고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는 자기 군주의 손으로 죽음을 당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다윗도, 밧세바도 범죄했다. 그런데 이 양인은 우리아에게 죄를 지었다. 이것은 그가 죽어야 할 이유였다. 다윗은 그가 꼭 죽어야 한다고 굳게 다짐한다. 이 사람이 사울의 옷자락을 베었다고 해서 가슴 아파한 자란 말인가? Quantum mutatus ab illo-즉 그가 얼마나 변했는가! 이 자가 자기의 모든 백성에게 공평과 정의를 행하던 인물이란 말인가? 그런 자가 어떻게 이토록 불의한 일을 할 수 있는가? 육신의 욕망은 얼마나 치열하게 영혼과 다투며 그 전쟁에서 얼마나 가공할 파멸을 일으키는지 모른다. 육욕은 눈을 멀게 하고 마음을 강퍅케 하며 양심을 마비시키고 사람들에게서 모든 정의감과 염치심을 빼앗아버린다. 부녀와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서(잠 6:32) 명철을 완전히 상실해버린다. 간음을 행하는 자는 자기 영혼을 망하게 하는 자이다. 그러나 간음자의 눈처럼 살인자의 손도 숨기려고 노력한다(욥 24:14, 15). 어두운 일은 빛을 미워한다. 다윗이 용감히 골리앗을 거꾸러뜨렸을 때 그 일은 공공연히 행해졌고 다윗 자신도 그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그러나 그가 우리아를 야비하게 죽이는 일은 비밀리에 시행되어야 했으니 이는 그가 그 일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다. 감히 자기가 한 일로 시인하려고 않는 일을 행하고자 하는 자는 누구인가? 독 있는 뱀답게 다윗의 마음에 우리아를 살해할 생각을 넣어 주었던 악마는 간교한 뱀답게 살해 방법까지도 다윗의 머리 속에 넣어 주었다. 그것은 자기 종들에게 암논을 암살하라고 명령한 압살롬의 방법과도 달랐고 무고에 의해 나봇을 살해한 아합의 방법과도 달랐다. 그것은 우리아를 적군 가까이에 최전방에 배치하는 방법이었다. 이것은 양심이나 세상 사람 보기에도 별반 치소꺼리가 되지 않을 터였다. 왜냐하면 군인이 위험과 죽음을 대면하는 것은 결코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아가 그 위험한 부서를 맡지 않는다면 다른 어느 누구라도 그 자리에서 싸워야 했다. 우리아로서는 소위 운수를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그가 만일 용감히 싸운다면 아마 전사하기 쉬울 것이고 그가 죽으면 그것은 명예로운 곳에서 죽는 죽음이 될 것이었다. 군인이라면 명예로운 싸움터에서 죽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일은 고의적 살인, 계획적 살해임이 분명하다.
Ⅰ. 다윗이 요압에게 보낸 명령은 우리아를 가장 치열한 전선에 배치하였다가 그를 적군의 손에 죽도록 내버려 두라는 것이었다(14, 15절). 이것이 바로 우리아를 제거하려는 다윗의 계교였고 그것은 그의 의도대로 성공하였다. 이 살인의 나쁜 점은 여러 가지다.
1.그것은 치밀한 계산에 의한 살인이었다. 그는 시간을 두고 이 일을 심사숙고했다. 또 그는 이 일에 대해 편지를 쓸 정도로 깊이 생각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고 이 일이 시행되기 전에 취소 명령을 내릴 시간도 있었지만 그는 이 악한 계획을 고집했다.
2.그는 우리아의 손으로 이 편지를 요압에게 전하게 했다. 이보다 비열하고 야만적인 일은 없었다. 다윗은 우리아를 우리아 살해의 공범자로 삼았다. 우리아는 그 취지를 알아서는 안 될 편지를 가져가려고 할만큼 다윗을 신뢰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신뢰를 받던 다윗이 이토록 악의를 품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역설적인 일인가!
3.이 살인은 자기 왕과 국가를 위한 피살자, 자신의 충성심과 용맹을 이용하려 한다. 우리아의 용기와 열성은 최대의 찬사와 보상을 받아야 마땅한데도 그 때문에 그는 보다 쉽사리 죽음을 당하게 된다. 만약 그를 이렇게 위험한 전선에 배치하라는 명령만 없었던들 우리아는 요압이 위험한 데 보낼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기꺼이 최전선에 나갔다. 이 고귀한 정열의 불꽃이 그 자신을 불태워 버리도록 계획하고 이용한 것이 바로 이 살인의 가증하고 배은망덕한 점이었다.
4.이 범죄에는 많은 사람이 연루되었다. 장수인 요압은 이 일을 행할 하수인이었다. 그는 자기 부하 특히 훌륭한 용사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장수에게는 그 부하의 피가 얼마나 고귀한지 모른다. 그러나 요압은 이 일을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우리아를 사지에 버려두고 퇴각해야 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양심상 그를 원조해야 마땅하였다. 요압과 이 모든 자들은 우리아 살해의 공범자들이 되어야 한다.
5.우리아 혼자만 죽는 것도 아니다. 그의 휘하에 있는 무리들도 그와 함께 멸절될 위험에 있었고 또 실제로 그렇게 판명되었다. 일부 군사들, 심지어 다윗의 심복들조차(그들의 생명을 그토록 아끼지 않은 다윗의 죄를 더욱 무겁게 하기 위해 다윗의 신복이라고 하고 있다) 우리아와 함께 엎드러졌다(17절). 아니, 우리아를 원수에게 내어 줄려는 이 악행은 전군(全軍)에 치명적 결과를 줄 수도 있었고 랍바성의 포위 작전이 실패로 돌아갈지도 몰랐다.
6.이 일은 암몬인을 기쁘게 하고 의기양양하게 만들 것이다. 암몬인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원수로 맹세된 자들인데도 이 일로 크게 만족을 얻게 될 것이다. 다윗은 사람의 손에 빠지거나 대적에게 쫓기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삼하 24:13, 14). 그럼에도 그는 자기 신복 우리아를 암몬인에게 팔면서 자기 손의 불의에 대해서는 아무 회한이 없다.
Ⅱ. 요압은 이 명령을 실시한다.
그는 바로 그 다음 공격에서 우리아를 가장 위험한 부서에 배치시키고 농성군에게 격퇴될 경우에는 자기가 구원해 줄 것이라고 격려한다. 이를 믿고 우리아는 불퇴전의 결의로 공격을 감행하지만 구원군은 이르지 않아 중과부적으로 그는 전사한다(16, 17절). 요압이 이유도 알지 못하면서 편지만 믿고 이런 짓을 했다는 것은 이상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1.요압은 우리아가 모종의 중대 범죄를 저질러서 다윗이 이를 조사하기 위해 그를 소환했고 그를 공개적으로 처벌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그를 처형하려고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2.요압은 피 흘리는 죄를 범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즉 요압은 다윗도 자기처럼 무죄한 살인죄에 빠지는 것을 보고 무척 기뻐했으며 아주 기꺼이 그를 도와줌으로써 계속해서 그의 총애를 받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악인이 타인의 악행을 보고 기뻐하며 그 악행을 방조하는 일은 항용있는 일이며 그 타인이 종교계에서 저명한 사람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아니면 다윗은 요압이 우리아에게 원한을 품고 있어서 기어이 복수하려 한다고 알았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야 정당한 명분이 있을 때는 왕의 명령이라도 논박하던 요압이 어찌 이런 일을 행했겠는가?(삼하 19:5; 24:3).
Ⅲ. 요압은 다윗에게 사람을 보내 이 일의 하회를 보고한다. 그는 이스라엘이 입은 수치와 손실을 보고하기 위해 특사를 즉시 급파했다(18절). 그러면서도 이 사건을 위장시키기 위해 사자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한다.
1.그는 다윗이 그의 무모한 작전에 역정을 낼 것이며 왜 성벽에 그토록 가까이 접근했는지 힐문할 것이고 아비멜렉이 그런 식으로 공격하다가 죽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느냐고 할 것이라고 가정한다(21절). 아비멜렉 기사는 사사기 9장 53절에 나오는데 아마 사사기는 사무엘 당시에 거룩한 역사의 일부로 출판되었을 것이다. 그들의 태도는 주목할 만하다. 그들은 심지어 군인들조차 성경에 정통해 있었고, 성경 기사를 쉽사리 인용할 수 있었으며 치명적 전철을 밟지 말라는 훈계로 사용할 수 있었다. 이런 태도에 우리는 찬사를 보내야 한다.
2.그는 사자에게 우리아도 죽었다는 말로 다윗을 위안시키라고 넌지시 지시한다. 이것은 사자는 물론이려니와 다른 사람들에게도 다윗이 이 사실을 들으면 크게 기뻐하리라는 노골적 암시가 된다 살인은 언젠가 세상에 알려질 것이다. 그런 비열한 짓을 하는 사람은 자기 아랫 사람에게도 놀림감과 비난거리가 된다는 것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자는 명령대로 이 사실을 전달했다(22-24절). 사자는 농성군이 먼저 공격군에게 출격했다고 서두를 꺼내고("그 사람들이 우리를 향하여 들로 나온고로") 공격군이 용맹을 다해 반격했다고 묘사한 뒤(" 우리가 저희를 급서 성문 어귀까지 미쳤더니" -우리가 저희를 황급히 퇴각하도록 밀어 부쳤더니) 성벽 위에서 쏜 화살에 큰 피해가 있었다는 가벼운 언급으로 보고를 끝낸다. "왕의 신복 중 몇 사람이 죽고 특히 유명한 장교 헷 사람 우리아도 전사자의 명단 서두에 있나이다."
Ⅳ. 다윗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이 보고를 받는다(25절).
다윗이 노여워하지 않으니까 요압은 마음을 불편하게 가지지 않아도 된 셈이다. 다윗은 요압의 지휘를 탓하지도 않고 성벽에 너무 가까이 접근하는 우행을 범했다고 나무라지도 않는다. 다윗은 그들이 잘못했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우리아가 제거되었으니 만사가 잘 된 셈이다. 그는 자기가 목적하던 바를 달성했으므로 그까짓 손실쯤이야 안중에도 없다. 그는 "칼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죽이느니라" 는 변명으로 패전을 일축할 수 있었다. 한 번 실수는 병가의 상사라는 말로 요압을 위로하면서 요다음 전투는 이기라고 당부한다. 그는 자기 죄로 전쟁 능력을 약화시키고 하나님을 격노하시게 하여 공격을 실패로 돌아가게 했으면서도 요압에게는 더욱 힘써 싸우라고 명령하고 있다.
Ⅴ. 그는 곧 우리아의 미망인을 아내로 맞아들인다.
밧세바는 관습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되도록 단시일에 우리아를 위한 장례를 지냈다(26절). 그리고 나자 다윗은 밧세바를 궁으로 데려왔고 그에게서 아들을 얻었다. 우리아의 복수는 그의 전사로 방지되었으나 결혼 뒤에 태어난 그 아이는 그들의 범죄를 세상에 널리 알린 셈이다. 죄에는 수치가 따라 온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다윗의 소위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우리아의 일(왕상 15:5) 전체 곧 간음과 허위와 살인과 마지막의 결혼까지 모두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다. 그는 이 일로 자신을 즐겁게 했을지 모르나 하나님을 불쾌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죄를 보시며 미워하신다는 점을 유의하자. 하나님께 가까운 자일수록 그 죄는 하나님 보시기에 더욱 악한 죄가 된다. 딴 사람의 죄보다 그런 자의 죄는 더욱 더 배은망덕하고 패역하며 수치스럽게 간주된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다윗의 본을 보고 힘을 얻어 죄짓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는 다윗처럼 죄짓는 자들은 다윗처럼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떨며 범죄치 말고(시 4:4) 다윗의 흉내를 내어 범죄치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