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5월 15일 월요일 왕하 15:13-16 이스라엘 왕 살룸

Jeehyun 2023. 5. 15. 23:17

맥체인성경읽기

민수기 24, 시편 66, 67, 이사야 14, 베드로전서 2

묵상구절

15:13 유다 왕 웃시야 제삼십구년에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사마리아에서 왕이 되어 한 달 동안 다스리니라

15:14 가디의 아들 므나헴이 디르사에서부터 사마리아로 올라가서 야베스의 아들 살룸을 거기에서 쳐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15:15 살룸의 남은 사적과 그가 반역한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

15:16 그 때에 므나헴이 디르사에서 와서 딥사와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사람과 그 사방을 쳤으니 이는 그들이 성문을 열지 아니하였음이라 그러므로 그들이 그 곳을 치고 그 가운데에 아이 밴 부녀를 갈랐더라

매튜헨리/옥스퍼드

💡 13절,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 왕이 되어 … 치리하니라

본절은 앞선 12:19에서 밝힌 대로 열왕기에 일관되게 등장하는 왕의 ‘등극 공식' 문구의 서두이다. 그런데 우리는 본문에서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모반에 의해 왕어 된 살룸어 겨우 한달 동안만 왕위에 머물렀음에도 불구하고 본문에서 왕의 ‘등극 공식' 문구를 통해 살룸의 등극을 보도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즉 어떤 의미에서 모반을 통해 왕어 된 자들, 그것도 살틈과 같어 기껏 한달밖에 왕의 자리를 지키지 못한 자들도 공식 적인 왕으로 인정할 수 있는지 의문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

이같은 의문과 관련해 성경은 본문의 ‘등국 공식' 의 적용을 통해 그런 이들도 왕으로 인정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전달한다. 그리고 이러한 반역자이면서 단명한 통치자에 대한 등극조차도 빠짐없이 기술함으로써 이 모든 일의 배후에 하나님의 주권이 작용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즉 살룸이 모반하여 왕으로 등극한 것 역시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하심 가운데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본문에 나타난 살룸의 즉위 연대인 ‘웃시야(아사랴) 39년' 은 앞선 15:8에서 스가라의 즉위 연대인 ‘아사랴(웃시야) 38년'과 비교해 볼 때, 스가랴가 1년 간 왕으로 있었던 것으로 생각 할 수 있으나 정확한 기간은 육개월이다(8절). 그리고 스가랴의 6개월 통치에 뒤이어 왕이 된 살룸의 통치 기간 한달은 북이스라엘에서 제5대 왕 시므리가 7일 동안 왕 노릇한 기간 다음으로 짧은 기간이다. 이처럼 북이스라엘 왕들의 짧은 재위 기간은 북이스라엘이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정했음을 보여준다.

남유다가 다윗 왕조의 정통성을 이어받음으로써 합법적인 왕위 계승이 이루어진 데 반해 북이스라엘은 정통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계속적으로 모반에 의해 왕조가 뒤바뀌는 정번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기에 왕의 통치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한 ‘한달'밖에 안되는 살룸의 통치 기간은 극에 달한 북이스라엘의 내분과 반역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북이스라엘의 멸망이 얼마남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 14절, 가디의 아들 므나헴의 반란

‘므나헴'은 살룸을 죽이고 북이스라엘의 제16대 왕이 되어(B.C. 752-742년) 북이스라엘에 제7왕조인 므나헴 왕조를 세웠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므나헴은 북이스라엘의 제14대 왕인 스가랴의 장군으로서 북이스라엘의 초기 수도였으며 요새였던 디르사(왕상 14:17)에 주둔하고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그가 살룸 왕에 대항하여 반역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북이스라엘이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군사 군주제(military monarchy)' 국가였을 뿐 아니라 당시 왕이었던 살룸이 왕위 찬탈자로서 왕권이 매우 취약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살룸은 북이스라엘을 통치한지 불과 한 달 만에 죽임을당하고 말았는데 이러한 사실은 예후 왕조가 붕괴된 이후 이스라엘 내 왕권이 매 우 약화되어 었었음을 보여준다.

디르사에서부터 올라가서..대신하여 왕이 됨
므나헴이 디르사에서부터 사마리아로 올라왔다는 본문의 보 도는 므나헴의 권력 기반이 디르사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었음을 암시한다. 만약 므나헴이 디르사 출신이었다면 그는 므낫세 지파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 아마도 당시는 북이스라엘의 왕권이 취약한 가운데 있었으므로 왕권을 차지하기 위한 각 지파간의 경쟁 역시 치열했을 것이다.
 💡 15절, 살룸은 남은 사적과 “그 모반한 일"은 … 기록되니라

본문의 죽음 공식 문구는 다른 왕들의 경우와 달리 모든 행한 일'이란 표현이 들어갈 자리에 ‘그 모반한 일'이란 말이 자리잡고 있다.
⇒ 이는 살룸이 왕이되어 통치한 기간이 불과 한 달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그가 왕으로서 아무런 업적을 남기지 못했음을 반영한 표현. 뿐만 아니라 ‘그 모반한 일'을 굳이 기록하고 있는 것은 스가랴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일이 궁극적으로는 예후 왕조를 4대로 끝내려는 하나님의 섭리 때문이었으나(10:30), 살룸 개인에 있어서는 권력욕에 의해 일어난 모반이었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
살룸에 관한 평가(13-15절)에서는 북이스라엘 왕들에게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떠나지 아니하였더라'란 문구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는 재위 기간이 한 달 밖에 안되었기에 여호와께 범죄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인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저자는 살룸이 폭력적인 방법으로 왕위를 찬탈했다는 사실(10절)과 그의 통치 기간이 한달밖에 안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살룸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왕이었음을 독자들 스스로 충분히 판단할 수 있기에 그러한 문구를 생략한 것이다.
💡 16절, 그 때에 므나헴이 … 딥사와 … 그 사방을 쳤으니

이는 므나헴이 반역을 일으켜 살롬을 죽인 후 행한 첫번째 일.
원문에 의하면, ‘딥사’에 대한 공격이 매우 격렬했고, 또한 지속적이었음을 암시한다. 또한 므나헴이 ‘모든 사람과 그 사방을 쳤다’ 는 표현은 그가 딥사를 완전 멸절시키려 했음을 나타낸다.

이는 저희가 성문을 열지 아니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치고 .. 갈랐더라

⇒ 본문은 므나렘어 왕어 된 후 다른 일에 앞서 딥사를 징벌한 까닭 및 딜사에 대한 므나힘의 응징을 다룸.
이러한 본문을 직역하면 ‘왜냐하면 그들이 열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그가 아이를 밴 모든 여인을 치고 그가 찢었다’ 이다.
⇒ 그들이 문을 열어주지 않았음은 원문의 늬앙스로는 딥사 지역의 사람들이 므나헴의 통치에서 벗어나려고 맹렬하게 저항했음을 암시한 말이다. 이처럼 딥사 지역 사람들이 므나헴에 대해 굳게 저항했다는 본문의 보도는 ⇒ 잦은 왕위 찬탈로 인해 북이스라엘이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불안정했을 뿐만 아니라 구성원들간에 알력이 심각했음을 암시 한다.

아이 밴 부녀를 갈랐더라

이 표현은 ‘아이 밴 부녀의 자궁을 갈기갈기 난도질하였다’ 란 의미를 가진 잔혹한 표현이다. 또한 원문은 한글 개역 성경의 번역과 달리, ‘모든’ 이란 뜻을 가진 단어로 므나헴의 잔학 행위를 수식해 주고 있다.
⇒ 이는 므나헴이 립사에 사는 모든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갈랐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가 자기에게 저항하는 자들에게 얼마나 잔언한 대응을 하였는지를 보여준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이러한 잔학 행위가 이스라엘 곧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서 벌어졌다는 본문의 보도는 므나헴의 잔인성 뿐만 아니라 북이스라엘이 얼마나 심각하게 이방의 악습에 오염되어 있는지를 함축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본서 저자는 북이스라엘에서 벌어진 결코 있어서는 안될 이같은 잔혹한 장면을 생생하게 표현하면서 이러한 북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심판이 불가피하다는 것과 북이스라엘이 이제는 멸망의 시점에 도달해 있음을 암묵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사가랴와 살롬의 통치(열왕기 하 15:8-31)

이스라엘 왕국의 가장 좋은 시대는 통치권이 예후 가계에 있을 동안이었다. 예후 왕과 다음 3대에 걸쳐, 이스라엘에는 많은 극심한 타락과 비탄이 있었다 할지라도, 왕위는 계승되고, 왕들은 편안히 죽었다. 그리고 공사(公事)도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러한 날들도 끝이 나고, 우리가 본문에서 알 수 있듯이, 약 33년의 역사는 그 왕국들의 일들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극도의 혼란 상태를 맞이했다. 이 때에 어린아이 밴 자들에게 그리고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있으리로다(16절). 그리고 그 때 반드시 큰 환란이 있을 것이니, 그것은 "이 땅의 임금들의 많은 범죄" 로 인함이다.

Ⅰ. 이러한 불행한 혁명과 거기서 오는 참변에 관한 몇 가지 사실을 대략적으로 살펴보자-그 시대는 아마 패역한 시대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1.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공의와 자비로 시험하였고, 그의 종,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 사실을 설명해 주고 또 강조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뉘우침이 없었고 개심되지 않았으므로, 하나님은 공정하게, 모세가 경고했던 바와 같이, 그들에게 이러한 재앙을 내리셨던 것이다. "만일 너희가 거스려 내게 청종치 않을진대 내가 너희 죄대로 너희에게 칠 배나 더 재앙을 내릴 것이라" (레 26:21 이하).

2.하나님은 예후에게 한 약속을 이행하셨다. 그래서 그의 자손은 4대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왕위에 앉았다.
이것은 그의 이전이나 이후의 어떤 왕가(王家)에 나타났던 은총보다 더 큰 은총이었다. 하나님은 그것이 그렇게 되리라고 이미 말씀하셨었다(10:30). 그래서 이 장(章)에서는(12절) 그것이 실현된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이 그의 약속에 대하여 얼마나 엄격하신가를 보라.

이 재난은 하나님께서 오래 전에 이미 이스라엘에게 내리기로 구상하셨던 것이요, 그들은 그들의 재난을 겪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이 완전히 실현되기 전까지는 벌을 받지 않았다. 이리하여 하나님은 아합의 집과 그리고 바알 숭배를 훼파하는 예후의 열심에 보상하셨다. 그러나 예후의 집의 죄가 가득찼을 때는 피흘림으로써 그 죄를 보복하셨다. 그 피를 "이스르엘의 피" 라고 불렀다(호 1:4).

3. 모든 왕들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 하였다" (9절).

서로 달랐지만 이 점에서는 그들이 일치하였다. 즉 왕들이 우상 숭배를 계속했다는 점과 백성들도 그것을 좋아했다는 점이다. 그들이 그릇에서 그릇으로 옮겨졌을지라도 "그 맛은 그들 안에 있었고" "그 냄새는 변하지 않았다."
그들의 정권은 자주 바뀌었으나, 결코 보다 나은 정부는 없었으며, 그러면서도 그들 중 아무에게도 송아지 우상을 파괴하는 일에 대한 열의가 그 우상을 보존하려는 열의보다 컸던 자가 없었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4.이 왕들 중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기들의 선왕을 반역하고 살해했다. 살룸, 므나헴, 베가 그리고 호세아는 모두 반역자들이었고 살해자들이었다. 또한 모든 왕들은 잠깐 동안만 통치했고, 10년 20년, 그리고 9년을 각각 통치했다.
하나님은 잠시 동안 사악한 자들의 부귀영화를 묵인하지만, 조만간 피는 피를 부르게 되고, 배신자는 배신을 당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사악한 자 하나가 다른 악인에게 채찍 노릇을 하게 되고, 마침내는 모든 사악한 사람들이 스스로 멸망의 원인이 되고 만다.

5.요인들의 야심은 그 국가를 불행하게 만든다. 여기에 이스라엘 성읍인 딥사를 보자. 딥사는 연안을 끼고 있었는데, 왕위를 노리는 한 찬탈자에 의해서 잔인한 파멸을 당했다(16절). 그리고 의심할 여지없이 그 찬탈자들은 모두 피를 흘림으로써 왕위에 올랐을 것이고, 이 왕들 중 어느 누구도 혼자서 조용히 죽어갈 수가 없었을 것이다. 국가의 복리와 안정이 자기들의 복수심과 지배욕에 얼마나 크게 희생되는지를 생각지 않는 그러한 사람보다 나라에 더 큰 재앙은 없으며, 그보다 더 어려운 곤경은 이스라엘에 일찍이 없었다.

6.그 나라가 국내에서 분열로 산산조각이 날 동안, 앗수르의 왕들이 그 나라를 차례로(19,2 9절) 쳐서, 자기들 마음대로 행했다. 내란과 지배권의 쟁탈은 국가를 적에게 손쉬운 먹이로 내어 주는 가장 큰 원인이다. 안정된 나라야말로 행복될 것이다.

7.이것은 그들이 완전히 멸망당하고 포로로 보내어지기 직전의 이스라엘의 상황이다. 그것은 마지막 찬탈자인의 호세아 통치 제9년에 있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이런 혼란과 분규의 시대에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겸비했더라면, 또 하나님의 얼굴을 찾았더라면, 그 최후의 파멸은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는 모든 것을 물리치실 것이다. 그들 가운데 보내어진 악령의 열매인 이 분열들은 포로가 되는 운명을 재촉하였다. 스스로 분열하는 왕국은 곧 폐허가 되기 때문이다.

Ⅱ. 그 자세한 왕대(王代)를 약술하면 다음과 같다.

1. 사가랴는 여로보암의 아들로서 유다 왕 웃시야 혹은 아사랴 38년에 통치하기 시작했다(8절).

가장 비판적인 몇몇 연대 학자들은, 여로보암과 그의 아들 사가랴 사이의 22년 혹은 11년 동안은 그 왕국에 있었던 혼란과 불화 때문에 왕위가 공석이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사가랴가 왕위에 제대로 자리 잡기도 전에 폐위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는 불과 6개월 동안 통치했을 때에, 살룸이 "백성들 앞에서 그를 살해했다." 아마 시저가 원로원에서 살해되었던 것과 같은 꼴이었을 것이다. 범죄인으로서 그를 공공연히 처형했고, 백성들의 시인을 얻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지 그를 증오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리하여 결국 예후의 가계는 끝났다.

2. 그러나 자기의 상전을 살해했던 살룸은 평화를 가졌는가?

전혀 평화를 갖지 못했고(13절), 한 달간이 그의 통치 기간이었고, 그후 그는 제거되었다. 아마 그때 살았던 예언자는 이것을 보고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한 달에 저희와 그 기업을 함께 삼키리로다" (호 5:7). 피와 거짓으로 세워진 지배권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그의 범죄를 보고 분노를 느꼈거나 그의 행실을 보고 힘을 얻었을 므나헴은 살룸이 그의 상전을 대하였던 것처럼 그대로 곧 그를 대하였다. 즉 므나헴은 "그를 살해하고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 (14절). 아마 그는 군대 장관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때는 디르사에서 야영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살룸의 배반과 찬탈의 소식을 듣고는, 서둘러서 그를 처벌하려 했다. 이것은 마치 오므리와 시므리의 관계와 비슷하다(왕상 1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