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6월 4일 주일 왕하 22:1-2 유다 왕 요시야(대하 34:1-2)

Jeehyun 2023. 6. 5. 14:09

맥체인성경읽기

신명기 8, 시편 91, 이사야 36, 요한계시록 6

묵상구절

[왕하22:1-2]

1 요시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팔 세라 예루살렘에서 삼십일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디다요 보스갓 아다야의 딸이더라

2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


[병행구절: 대하34:1-2]

1 요시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팔 세라 예루살렘에서 삼십일 년 동안 다스리며

2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길로 걸으며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매튜헨리/옥스퍼드

매튜헨리 주석

1.요시야의 경건한 통치(열왕기 하 22:1-10 중 1,2절 부분 )

 💡 남유다 제16대 왕 요시야의 통치

1-2절: 요시야의 통치 개요와 그에 대한 저자의 기본 평가 보도
통치 개요: 8세에 즉위, 31년간 다스림(B.C. 640-609년)
평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조상 다윗의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다.

요시야에 관하여 우리는 여기서 다음의 사실들을 듣고 알게 된다.

Ⅰ. 그는 불과 8세의 어린 나이에 통치하기 시작했다(1절).

솔로몬은 이렇게 말했다. "네게 화로다! 어린 아이가 네 왕인 땅이여!" 영국에도 한 때 그런 어린아이였던 왕 에드워드 6세가 있었다. 어린아이였던 요시야는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에게서 아무런 나쁜 영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일찍부터 그들의 과오를 보았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에게 은총을 베푸사 그들로 하여금 경고를 삼도록 하셨다(겔 18:14 이하 참조).

Ⅱ.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다" (2절).

하나님의 은총의 절대성을 보라-아버지는 죄 속에 살다가 멸망받았으나, 그 아들은 선택된 그릇이 되었다. 은총의 승리를 보라-요시야는 악한 아버지에게서 태어났고 좋은 교육도 좋은 모범도 받지 않았으며, 그의 주위에 많은 사람이 그에게 아버지의(악한) 발자취를 밟을 것을 조언했고, 거의 아무도 그에게 좋은 의견을 제시해 주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은총이 그를 뛰어난 성도로 만드셨다.

즉 "그를 돌감람나무에서 베어내어 참감람나무에다가 접붙였도다" (롬 9:24)고 하겠다. 그 같은 은총이 할 수 없이 어려운 일이란 아무 것도 없다. 그는 정직한 길로 행했다. 그리고(처음에는 잘 했으나 그렇지 못했던 그의 선조들 중 어떤 왕들같이)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았다. 양편에 모두 과오가 놓여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바른 길로 인도하셨다. 즉 그는 미신이나 불경건에 빠지지 않았다.

▶열왕기하 22:3-10

매튜 헨리 주석 (1-2절과 연결되는 부분)

Ⅲ. 그는 성전의 수리를 위하여 애썼다.

이 일은 그가 재위 18년에 했다(3절. 대하 34:8 과 비교하라). 역대하 34장 3절에 나타난 대로, 그는 훨씬 전부터 "여호와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개혁사업이 서서히 진행되거나 많은 반대에 부딪칠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그가 완전히 실권을 장악하기까지는, 자기가 계획하고 원하는 사업을 실행할 수 없었다. 어렸을 적에 우리가 불가피하게 잃어버린 시간을 생각하면, 우리가 나이 먹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사업을 훨씬 더 열성적으로 행해야겠다는 자극을 받게 된다. 우리가 늦게 시작했다면, 열심히 일할 필요가 있다.

그는 내무장관 사반을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보내어, 이 용도를 위하여 문지기가 수집한 돈을 계산하게 했다(4절). 그들은, 요아스가 취했던 방법(12:9)을 택하여 돈을 많이 지출했던 것 같다. 백성들은 한 번에 조금씩 헌금하여, 그 짐을 느낄 수 없을 만큼 가벼웠다. 그리고 그 기부는 자발적이었으므로, 아무런 불평을 사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모금된 돈은 성전 수리를 위하여 쓰라고 명령했다(5, 6절). 그러나 그 때 공인(工人)들이(요아스의 시대처럼) 자기들의 임무를 아주 성실히 다하였으므로, 그들에게 맡겨진 돈은 "계산해 보지 않았다" (7절). 그리고 분명 이 말은 공인들을 칭찬하는 구절일 것이다. 이렇듯 그들은 정직하다는 명성을 얻었는데, 그들을 고용한 자들은 무슨 칭찬을 받았는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자기 아버지에게서 돈을 받고도 세어 보아야 한다고들 말한다. 그러므로 "공인들에게 맡긴 돈을 계산" 해 보았더라도 그것이 잘못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야 남들도 그 공인들의 정직함을 수긍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Ⅳ. 다행히도 성전을 수리하는 중에 율법책이 발견되어 그것을 왕에게 가져갔다(8, 10절).

어떤 사람은, 이 책이 모세가 친히 가지고 있던 모세 오경의 원본이든가 아니면 친필 사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단지 퍽 오래되고 신빙성 있는 사본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책은 모세의 명령에 의하여 지성소에 보관되었던 것일 공산이 크다(신 31:24 이하).

1.이 율법책을 분실한 후 찾아내지 못했었던 것 같다. 아마 그 책의 진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마치 어떤 사람이 성경을 집어 던지듯이) 부주의로 구석진 곳에다가 놓아 둔 후 그 사실을 잊게 되어, 결국 그곳에 그대로 있게 되었던 것 같다. 혹은 악의를 지닌 우상 숭배적 왕이나 그의 대리인에 의해서 고의적으로 숨겨졌을 것이다. 그들은 그 책을 불사르거나 파괴하고 싶어도 하나님의 섭리나 양심의 가책 때문에 못하고, 다시는 눈에 띄지 않기를 바라면서 묻어버렸을 것이다. 혹은 어떤 사람은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그 책을 아끼는 어떤 사람이 조심스럽게 그것을 보관하여, 원수의 손에 들어가지 않게 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 책을 보존하는 데 누가 도구로 쓰였든지, 우리는 그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이것이 그 당시에 존재했던 것 중 인증된 유일한 오경 사본이었고, 그 생명이(이렇게 말할 수 있으리라) 너무나 어려운 고비를 넘겼으나 파멸 직전에 있었다면, 엘리의 법궤 때처럼 모든 선한 백성들의 마음은 그 성스런 보물로 인하여 두려워 떨었을 것 같다. 그리고 분명히 우리는 무릎을 꿇고 이 자비로운 섭리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힐기야 "그는 구하지 않았으나" (사 45:1), 그 자비로운 섭리가 그를 통하여 이 책을 찾아내셨기 때문이다. 만일 성경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었다면, 오늘날에까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돌보고 계신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성경에 그만큼 관심을 두고 계신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 주는 것이다.

2.이것이 당시에 유일한 인증된 사본이든 그렇지 않든, 그 속에 들어 있는 내용들은 왕 자신에게나 대제사장에게나 새로운 것이었던 것 같다. 왕이 그것을 읽고서 자기 옷을 찢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왕에게 율법의 사본을 쓰라고 했던 명령이나 매 7년마다 그 율법을 백성에게 읽어 주라고 했던 명령(신 17:18; 31:10, 11)은 오랫동안 준수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신앙을 보존하는 제도적 방편이 무시되면, 신앙 자체까지도 곧 부패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반면에, 만일 율법책이 분실되었다면,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옳은" 일을 행함에 있어서 기준을 삼아야 될 법칙을 결정하는 일과, 그리고 제사장과 백성들이 그들의 종교 의식을 준수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일은 힘들었을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백성들은 모두 오늘날 우리들의 법전 요약집과 같은 율법 발췌문을 만들었던 것 같다. 제사장들이 율법책을 자세히 읽고 쓰려는 자들의 곤란을 덜기 위하여 그러한 발췌문을 만들어 그들에게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발췌문은 그들의 종교적 의식을 지도해 주는 일종의 의식법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제사장들이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생락했으며, 특히 하나님의 약속이나 경고는(레 26장; 신 28장 등) 그 발췌문에는 생략된 것 같다. 왜냐하면 바로 그러한 내용들이 요시야에게 너무나 큰 감동을 준 율법의 한 부분들이었고, 그러한 것이 그에게 새로운 내용이었다는 것을 주목할 수 있기 때문이다(13절). 성서에서 뽑은 어떠한 요약문, 발췌문, 혹은 선집물(물론 그런 것도 사용될 수는 있다)도 하나님의 지식과 뜻을 성서 자체만큼 실제로 그렇게 충실하게 전하고 보존할 수는 없다.

율법책이 백성들에게 그렇게 희귀하게 되었을 때, 그들이 그렇게 타락했다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오는 비전이 있는 백성은 망하지 않았다. 그들을 타락시키려고 애쓰던 자들은 필경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써서 그들의 손에서 그 책을 빼앗아 내려고 했을 것이다. 로마 교회도 성경 사용을 금지시키는 방법 외에는 우상의 사용을 지속시킬 도리가 없었다.

3.그 율법책이 그렇게 시기 적절한 때에 나타나서, 요시야가 시작한 축복된 개혁 사업을 지도해 주고, 촉진시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요, 또 요시야와 그의 백성들에게 좋은 것을 약속해 주는 징조이기도 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이 찬미 받고 존경받게 하고, 그들이 성경 지식을 많이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위해서 자리를 쌓아 두고 계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하나의 징표이다. 민중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했다는 사실은 로마 교회에서 떠나온 저 종교개혁의 영광이요, 장점이요, 기쁨이었다.

그들이 율법책을 발견한 것은, 그들이 성전을 수리하고 선한 사업을 하려고 했을 때였다는 사실을 주목할 수 있다. 자기들의 지식에 따라서 의무를 이행하는 자들에게는 그들의 지식도 증가될 것이다. 자진 자는 더욱 가지게 될 것이다. 율법책은 성전 수리에 대한 그들의 모든 수고와 내용에 해당하는 풍성한 보상이었다.

4.제사장 힐기야는 그것을 발견하고 기뻐 어쩔 줄 몰랐다. 그는 사반에게 "오! 나와 기뻐하자. 내가 율법책을 찾았음이로다. 내가 찾았도다. 내가 찾았도다. 헤아릴 수 없을 값어치의 보물을!" 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것을 왕에게로 가져갔다. 그것이야말로 그의 왕관이 지닐 수 있는 가장 값진 보석이다. 왕 앞에서 율법서를 읽으라. 그러면, 그는 그의 조상 다윗의 길로 행하리라. 그리고 만일 그 왕이 다윗과 같다면, 그는 그 율법책을 사랑하고 그리고 환영할 것이다. 그것이 그의 기쁨이요 조언자가 될 것이다.

옥스퍼드 주석 정리

 💡 남북 왕국 분열 이후
남왕국 유다는 도합 20명의 왕이 다스림.

부정적 평가(다윗의 마음과 같지 않았다)를 받은 왕: 12명
긍정, 부정 평가(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였다 + 산당은 제거하지 않았다, 아니면 다윗과 같지 않았다) 를 동시에 받은 왕: 6명
긍정적 평가(다윗같이 여호와 보기에에 정직했다)만을 받은 왕: 2명(히스기야, 요시야).
부분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은 10대 왕 예후 제외한 나머지 18명 모두 전부 부정적 평가를 받은 북이스라엘 왕들과 비교됨. 남왕국이 북왕국보다 더 오래 왕조를 유지할 수 있었던 하나의 이유이기도 함. 

1 요시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팔 세라 예루살렘에서 삼십일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디다요 보스갓 아다야의 딸이더라

  • 1-11절: 남유다 제16대 왕 요시야의 사적. 요시야의 행보에 었어서 크게 영향을 미친 성전 보수와 율법 책의 발견을 보도하는 내용.
    • 1절: 요시야 왕의 통치 개요.
    • 당시 국제 정세: 고대 근동의 최강국이었던 앗수르의 세력이 급격히 약화되고 메대 제국이 태동하던 시기. 그리고 신흥 강대국으로 급부상한 바벨론 제국이 세력을 키워나가던 시기.
      • 이러한 국제 정세의 혼란과 강대국간의 각축전으로 인하여 이 시기에 유다는 비교적 외세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요시야가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자유롭게 종교 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국제 정세가 형성되었기 때문.
  • 요시야
    • 이름: '기초를 놓다'라는 뜻의 '아슈야' + '여호와'의 신명 압축형 '야' 에서 유래함. **'여호와께서 기초를 놓다'**라는 의미.
    • 아몬이 24세 때 아들 요시야가 8세였음. 요시야는 아몬이 16세 때에 나은 아들이 된다. 이로 보아 요시야는 아몬의 맏아들이었을 가눙성이 높으며, 따라서 요시야는 적자의 자격으로 왕위에 추대되었을 것이다.
    • 그는 상당 기간 동안 주위 사람들의도움을 받으며 나라를 통치하였을 것
      • 그 역시 7세에 왕위에 오른 요아스처럼 신실한 여호와 신앙을 가진 자로부터 신앙 지도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됨.
      • 요시야에게 이러한 영향을 끼친 인물은 성경에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지만 동시대에 선지자로 활동하던 스바냐가 그 역할을 감당했던 것으로 추측.
      • → 스바냐의 우상 종교 심판 예언(습 1:4-18:3:1-8)과 요시야의 행적이 상당 부분 일치함.
      • → 그가 왕족으로서 요시야의 조카벌이지만 (습 1:1) 당시 요시야보다 연상이었던 것과 관련하여 추측되어지는 견해.
  • 요시야 모친 여디다.
    • 남유다 왕의 즉위 공식 문구에는 모친의 이름과 그 출신이 언급됨. (요람, 아하스 제외) -다윗 직계 혈통으로 이어지는 유다 왕조의 전통성과 연속성에 대한 본서 저자의 관심.
    • 여디다(사랑을 입다, 사랑스럽다 라는 뜻 ‘예디드’에서 유래한 이름.-사랑하는 자, 사랑스러운 자라는 뜻)
      • 보스갓: 애글론 동남쪽 3.9km에 위치한 유다 성읍

2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

  • 요시야 통치 전반에 대한 본서 저자의 평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
    • 이 평가를 받은 왕: 제3대 아사, 제4대 여호사밧, 제8대 요아스, 제9대 아마사, 제10대 아사랴, 제11대 요담, 제13대 히스기야.
    • 본서 저자가 왕을 평가하는 기준: 세속적 업적이 아닌 여호와 신앙과 종교 정책에 달려 있음.
    • 요시야가 이런 평가를 받은 이유:
      • 성전을 수리함.
      • 율법책을 발견한 즉시 회개하였음.
      • 백성들로 하여금 언약을 갱신하게 하는 등 므낫세와 아몬의 악행으로 소멸되어 가던 여호와 신앙을 다시금 회복시킴.
  •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 저자는 요시야가 ‘다윗의 길’로 행했다고 극찬.
    • 열왕기 저자는 남북 왕조 열왕을 평가할 때 악한 왕들에 대해서는 ‘여로보암의 죄’를, 선한 왕에게는 ‘다윗의 행위’를 그 평가 기준으로 함.
    • 다윗의 길로 행했다는 평가를 들은 왕: 아사, 히스기야, 요시야
  •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함.
    • 요시야가 하나님 말씀만을 기준으로 삼아 나라를 다스렸음을 의미.
    • 이런 평가는 요시야와 히스기야에게서만 발견됨.
    • 요시야가 신앙적 측면에서 이와 같이 극찬을 받을 수 있던 이유
      • 당시 여러 선지자들의 영향이 컸음.
        • 나훔(B.C. 663-612):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 니느웨 멸망과 남유다 구원을 집중 선포.
        • 스바냐(B.C. 640-630): 만연한 우상 숭배와 극심한 타락을 질타, 여호와의 날에 있을 심판과 구원을 선포.
        • 예레미야(B.C.627-586): 눈물의 선지자, 심판의 선지자
        • 하박국(B.C. 612-605): 요시야 이후 활동했을 것이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임을 역설하던 사색의 선지자도 그의 통치 기간과 겹침.
      • 이런 여러 신앙의 거장들의 행적은 요시야의 개혁 운동 실천에 상승 작용을 했을 것이며, 이로 인해 요시야가 이스라엘 역사상 유례없는 신정 통치를 구현할 수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