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신명기 10, 시편 94, 이사야 38, 요한계시록 8
묵상구절
23:1 왕이 보내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를 자기에게로 모으고
23:2 이에 왕이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매 유다 모든 사람과 예루살렘 주민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노소를 막론하고 다 왕과 함께 한지라 왕이 여호와의 성전 안에서 발견한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무리의 귀에 들리고
23:3 왕이 단 위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께 순종하고 그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 하매 백성이 다 그 언약을 따르기로 하니라
23:4 왕이 대제사장 힐기야와 모든 부제사장들과 문을 지킨 자들에게 명령하여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일월 성신을 위하여 만든 모든 그릇들을 여호와의 성전에서 내다가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밭에서 불사르고 그것들의 재를 벧엘로 가져가게 하고
23:5 옛적에 유다 왕들이 세워서 유다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 주위의 산당들에서 분향하며 우상을 섬기게 한 제사장들을 폐하며 또 바알과 해와 달과 별 떼와 하늘의 모든 별에게 분향하는 자들을 폐하고
23:6 또 여호와의 성전에서 아세라 상을 내다가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시내로 가져다 거기에서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어 그것들의 가루를 평민의 묘지에 뿌리고
23:7 또 여호와의 성전 가운데 남창의 집을 헐었으니 그 곳은 여인이 아세라를 위하여 휘장을 짜는 처소였더라
23:8 또 유다 각 성읍에서 모든 제사장을 불러오고 또 제사장이 분향하던 산당을 게바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더럽게 하고 또 성문의 산당들을 헐어 버렸으니 이 산당들은 그 성읍의 지도자 여호수아의 대문 어귀 곧 성문 왼쪽에 있었더라
23:9 산당들의 제사장들은 예루살렘 여호와의 제단에 올라가지 못하고 다만 그의 형제 중에서 무교병을 먹을 뿐이었더라
23:10 왕이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의 도벳을 더럽게 하여 어떤 사람도 몰록에게 드리기 위하여 자기의 자녀를 불로 지나가지 못하게 하고
23:11 또 유다 여러 왕이 태양을 위하여 드린 말들을 제하여 버렸으니 이 말들은 여호와의 성전으로 들어가는 곳의 근처 내시 나단멜렉의 집 곁에 있던 것이며 또 태양 수레를 불사르고
23:12 유다 여러 왕이 아하스의 다락 지붕에 세운 제단들과 므낫세가 여호와의 성전 두 마당에 세운 제단들을 왕이 다 헐고 거기서 빻아내려서 그것들의 가루를 기드론 시내에 쏟아 버리고
23:13 또 예루살렘 앞 멸망의 산 오른쪽에 세운 산당들을 왕이 더럽게 하였으니 이는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시돈 사람의 가증한 아스다롯과 모압 사람의 가증한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가증한 밀곰을 위하여 세웠던 것이며
23:14 왕이 또 석상들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들을 찍고 사람의 해골로 그 곳에 채웠더라
23:15 또한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제단과 산당들을 왕이 헐고 또 그 산당을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며 또 아세라 목상을 불살랐더라
23:16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산에 있는 무덤들을 보고 보내어 그 무덤에서 해골을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불살라 그 제단을 더럽게 하니라 이 일을 하나님의 사람이 전하였더니 그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되었더라
23:17 요시야가 이르되 내게 보이는 저것은 무슨 비석이냐 하니 성읍 사람들이 그에게 말하되 왕께서 벧엘의 제단에 대하여 행하신 이 일을 전하러 유다에서 왔던 하나님의 사람의 묘실이니이다 하니라
23:18 이르되 그대로 두고 그의 뼈를 옮기지 말라 하매 무리가 그의 뼈와 사마리아에서 온 선지자의 뼈는 그대로 두었더라
23:19 전에 이스라엘 여러 왕이 사마리아 각 성읍에 지어서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산당을 요시야가 다 제거하되 벧엘에서 행한 모든 일대로 행하고
23:20 또 거기 있는 산당의 제사장들을 다 제단 위에서 죽이고 사람의 해골을 제단 위에서 불사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
(참고)
[왕상13:1-2]
1 보라 그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유다에서부터 벧엘에 이르니 마침 여로보암이 제단 곁에 서서 분향하는지라
2 하나님의 사람이 제단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으로 외쳐 이르되 제단아 제단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서 제물로 바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서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병행 구절)
[대하34:3-7]
3 아직도 어렸을 때 곧 왕위에 있은 지 팔 년에 그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찾고 제십이년에 유다와 예루살렘을 비로소 정결하게 하여 그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제거하여 버리매
4 무리가 왕 앞에서 바알의 제단들을 헐었으며 왕이 또 그 제단 위에 높이 달린 태양상들을 찍고 또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어 제사하던 자들의 무덤에 뿌리고
5 제사장들의 뼈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하게 하였으며
6 또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시므온과 납달리까지 사면 황폐한 성읍들에도 그렇게 행하여
7 제단들을 허물며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며 온 이스라엘 땅에 있는 모든 태양상을 찍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
[대하34:29-33]
29 왕이 사람을 보내어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를 불러 모으고
30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매 유다 모든 사람과 예루살렘 주민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모든 백성이 노소를 막론하고 다 함께 한지라 왕이 여호와의 전 안에서 발견한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무리의 귀에 들려 주고
31 왕이 자기 처소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언약의 말씀을 이루리라 하고
32 예루살렘과 베냐민에 있는 자들이 다 여기에 참여하게 하매 예루살렘 주민이 하나님 곧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의 언약을 따르니라
33 이와 같이 요시야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모든 땅에서 가증한 것들을 다 제거하여 버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으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였으므로 요시야가 사는 날에 백성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복종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매튜헨리/옥스퍼드
💡 18-25장 개관 (옥스퍼드)
앗수르에 의한 북왕국 이스라엘의 멸망으로 남북 분열 왕국의 역사가 종결되고 남유다만 남은 상황에서 남유다가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하기까지의 열왕들의 사적을 기록. 이 시대 남왕국을 통처한 왕은 제13대 왕 히스기야부터 제20대 왕 시드기야까지 총 8명이다. ⇒ 그 가운데 본장에서는 제16대 왕 요시야와 제17대 왕 여호아하스 및 제18대 왕 여호야김 통치 시기의 남왕국 역사를 다룸. 요시야 왕의 사적은 22:1부터 23:30까지 무려 50절에 걸쳐 기록됨. ⇒ 이는 그가 유다 왕국의 멸망이 확정된 상황에서나마 위대한 종교 개혁을 일으켜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의 유보 및 새로운 회개의 기회를 얻어낼 정도로 하나님의 뜻에 합한 선한 삶을 살 았기 때문.
[1-7절]
1-7절 : 요시야 왕이 남유다 온 백성을 예루살렘에 모아 율법책을 낭독하고 언약을 갱신하며 이어 성전을 숙정한 사실
성전을 수리하던 중 율법책을 발견한 요시야는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해 그의 신하들을 파견하였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예언한 여선지 훌다를 통해 들려진 하나님의 메시지는 유다에 대한 엄중한 심판 선고였다. 이에 하나님 앞에서 자신과 유다가 처한 급박한 상황을 깨달은 요시야는 거국적인 개혁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의 언약을 새롭게 갱신할 필요가 있음을 절감하였다. 그리하여 요시야는 백성들을 한 자리에 모으고 성전에서 발견한 율법책을 낭독함으로써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사이에 맺은 시내산 언약(출 24:1-8)을 갱신하였다.
[8-20절]
성전 숙정에 이어 이스라엘 전역으로 확장된 요시야의 종교 개혁에 대해.
8,9절: 요시야가 유다 전역에 흩어져 산당에서 분향하던 제사장들을 소집한 뒤 그들이 분향하던 산당들을 훼파하고 산당 제사장들로 하여금 성전의 제단에 올라가지 못하게 하되 다른 제사장들과 함께 무교병만은 먹을 수 있도록 조치한 사실.
10절: 인신 제사를 동반하는 몰록 승배가 행해지던 도벳을 더럽게 함으로써 더 이상 몰록 승배가 행하여지지 못하도록 조치한 사실.
11-14절: 유다의 역대 여러 왕들이 세운 각종 우상의 제단과 우상들을 파괴한 사실.
15-18절: 요시야가 개혁의 범위를 북이스라엘 지역으로 까지 넓혀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금송아지 우상을 위한 산당과 그 단을 제거하고 아세라 목상을 불사른 다음 산에 있는 무덤에서 해골을 가져다가 벧엘 제단에서 볼사르게 하여 단을 더럽힌 사실과 자신의 개혁을 예고하였던 하나님의 사람의 무덤을 보존케 한 사실.
19,20절: 요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우상의 산당들을 파괴하고 산당의 제사장들을 그 제단에서 죽여 불사른 다음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사실.
[영적교훈 서론부 정리]
요시야 종교개혁의 광범위함과 그 철저한 시행.
실로 요시야의 종교 개혁은 그 이전의 여호야다의 주도로 이루어진 요아스의 종교 개혁(11:17-12:3)이나 히스기야의 증교 개혁(18:1-8)보다도 훨씬 더 철저하고도 광범위하게 시행되었습니다.
요시야의 열심과 유다왕국의 타락상.
우리는 이러한 요시야의 개혁 조치를 보면서 그의 하나님께 대한 열심이 얼마나 크고 뜨거웠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역으로 유다 말기의 왕국의 타락상이 얼마나 극심하였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유다가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요시야의 종교 개혁 조치가 북이스라엘 지역까지 확대된 사실에 주목
이것은 일찍이 300여년 전에 유다의 한 익명의 선지자가 예언한 것이 그대로 성취된 것으로서(왕상 13:1, 2)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정확하게 성취되는가를 명시적으로 보여주는 사건.
문제는 요시야가 어떻게 해서 북이스라엘 지역에까지 개혁 조치를 단행할 수 있었느냐는 것 - 이것은 당시의 국제 정세와 관련이 있음.
당시 북이스라엘을 멸망시켰던 앗수르는 신홍 강대국으로 급부상한 바벨론에 의해 패하여 겨우 그 명맥만을 유지하고 었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 앗수르의 지배하에 있던 북이스라엘 지역에는 통치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시야는 바로 이러한 틈을 이용하여 자신의 통치권을 복이스라엘 지역으로까지 확대하였고, 그러한 이유로 그는 북이스라엘 지역에까지 개혁 조치를 단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찾은 하나님의 말씀(열왕기 하 23:1-3)
요시야는 하나님에게서 메시지를 받았으나, 예루살렘의 멸망은 막지 못하고 자기의 영혼만을 구원해야 했다. 그러나 그가 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없다고 절망 가운데 주저 앉아서, 자기의 나라를 위하여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지는 않았다. 그는 오히려 자기 의무를 다하려고 했고, 그 일을 하나님께 맡겼다.
공적인 개혁 사업은 이미 결의된 사실이었다. 만일 어떤 일이 이미 경고된 그 파멸을 막을 수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이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여기서는 그 개혁 사업을 위한 준비를 엿보게 된다.
1.그는 총회를 열었다.
즉 대신들과 장로들과 장관들, 혹은 유대와 예루살렘의 대표자들을 소집하여 "여호와의 전에서," 제사장들과 예언자들, 곧 일반 사역자들과 특별 사역자들을 총망라하여 함께 모았다. 그래서 그들이 모두 그 일에 개입함으로써, 그 일이 국가적 행사가 되게 했다.
따라서 더욱 국가의 심판을 막을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출석하라는 소환을 받았다(1, 2절). 그래서 그 사업은 보다 엄숙하게 될 수 있었고, 그들이 모두 그 일을 돕고 조언할 수 있음으로써, 나아가 그 일에 반대하였던 자들도 이제는 다른 반대를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 1절, 왕이 보내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를 자기에게로 모으고
당시 요시야가 소집령을 내린 이들은 관리들이라기보다는 백성의 대표자로 추앙을 받는 자들이었으며 마을의 대소사를 관장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으로 추정.
그러면 왜 요시야는 이들을 소집하였을까? — 요시야 왕의 지혜로움.
각 지역에서 지도자적 위치에 있었던 장로들을 소집한 것은 단순한 정기적 모임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적 위기를 맞이하여 난관을 극복하기 위한 대책 희의를 갖기 위해서. 즉 패역함으로 말미암아 멸망의 위기에 직면한 나라의 운명과 그에 대한 대책으로 종교 개혁을 시도하려는 자신의 계획을 소개하며 그들의 조언을 구하고 협조를 요청하기 위해 백성들의 대표인 장로들을 모은 것으로 볼 수 있다. ⇒ 이러한 사실은 요시야 왕이 자신이 주축이 되어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되, 그 자신의 의사대로 독단적으로 하지 않고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민의를 결집시켜 그들과 함께 일을 수행해 나가는 지혜로운 왕이었음을 잘 보여준다.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를”
본문을 간략하게 즐여 ‘모든 장로를'로 고쳐 쓰더라도 그 내용에 있어서는 훼손됨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서 저자가 굳이 ‘유다와 예루살렘의' 란 표현을 삽입한 것은 종교 개혁에 대한 요시야의 열정과, 앞으로 소개될 언약 갱신이 남유다 전체의 총회에 의한 거국적 행사였음을 강조하기 위해서 즉 본서 저자는 요시야가 편의에 따라 가까이에 있는 예루살렘의 장로들만 소집한 것이 아니라 유다 전역의 장로들을 소집하였고, 자신과 의사가 잘 통하는 장로들만 부른 것이 아니라 모든 장로들을 다 불렀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밝힘으로써 요시야의 강력한 종교 개혁 의지와 남유다 전체의 지지 사실을 보다 명확히 전달하고자 하였던 것
💡 2절, 이에 왕이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매 유다 모든 사람과 예루살렘 주민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노소를 막론하고 다 왕과 함께 한지라 왕이 여호와의 성전 안에서 발견한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무리의 귀에 들리고
비록 본서 저자가 기록을 생략하고 있지만 앞절에서 장로들을 소집한 요시야 왕은 그 회집을 통해서 장로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 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본문은 그 여세를 돌아 유다 모든 거민들과 예루살렘 백성들을 소집하여 여호와의 전 앞으로 모이게 하였음을 보여주고 었다.
[언약 생신의 대상과 장소]
언약 갱신의 대상 — 모든 백성, ‘작은 자나 큰 자를 포함하는 모든 백성’
여기에는 앞서 제시한 ‘유다 모든 사람', ‘(모든)예루살렘 거민’, ‘제사장들, ‘선지자들'이 모두 포함된다. 본서 저자는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여 요시야 왕의 언약 갱신이 백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언약을 지키는 주체에 — 신분이 높고 영향력이 큰 자 뿐만 아니라 신분이 낮고 영향력이 미약한 자들도 포함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언약 갱신의 장소 — 성전
여호와의 전인 성전이 선택되어진 것은 성전이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적 처소로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을 갱신하는 데 가장 적합한 장소였기 때문.
2.왕은 이 협의회에서 연설을 하는 대신 그들에게 율법책을 읽어 들려 주라고 명하였다. 아니 그 자신이 그것을 읽었던 것 같다(2절).
율법에 큰 감동을 받은 자들은, 역시 자기들도 읽어 보고 싶어하는 법이다. 요시야는 자기가 율법을 낭독한다고 하여 자기 자신을 격하시킨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솔로몬도 자기가 설교자가 되는 것이 자기를 격하시킨다고 생각지 않았으며, 다윗도 자기가 하나님의 집 문지기가 되어도 격하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이렇게 요인들의 협의회를 여는 외에는, "유다의 사람들과 예루살렘의 거민들" 의 회합을 열어 그 율법을 읽어 듣게 하였다. 제왕들이 자기 나라 안에 성경의 지식을 장려하는 일은 진실로 그들의 이익이 된다.
만일 요시야가 율법에 의해 통치하려는 결심처럼 그 백성들도 그렇게 확고하게 율법을 좇아 순종하기로 결심하게만 된다면, 그 나라는 행복하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성경을 알려고 애쓴다. 그리고 권세 잡은 모든 자들은 그 지식을 보급하려고 애써야 한다.
💡 [요시야 왕이 율법책을 낭독함]
- 읽다 = ‘큰소리로 외치다’라는 의미도 내포.
- 이는 언약 갱신을 위한 자리에 참여한 모든 군중들이 들을 수 있도록 요시야가 큰소리로 낭독하였다는 의미.
- 당시 이 자리에는 대제사장 힐기야도 있었을텐데 왕이 굳이 나서서 계약의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였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어 보인다. 이는 22장과 23장에 걸쳐 소개되고 있는 종교 개혁들이 왕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것처럼 언약의 갱신 또한 왕의 주도하에 이루어졌음을 강조하기 위한 본서 저자의 의도적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본문은 가나안 입성시 율법을 낭송하고 그것을 승인하는 절차를 나타낸 신 27장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 이는 요시야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입성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출발하는 신 27장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지금 자신들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출발하기 위한 언약 갱신의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기록에 남긴 것은 본서가 신명기적 정신을 이어받은 저자에 의해 기록되었음을 보여준다.
- 특히 앞서 발견된 ‘율법책’을 본문에서는 ‘언약책의 모든 말씀’으로 표현,
- ⇒ ‘율법’ 과 ‘언약’ 이 사실상 하나라는 점을 강력하게 부각시킴.
3.그는 그들에게 그들의 의무를 확증하기 위해 율법을 제안하는 대신에, 그들이 모두 일심으로 하나님과 약속해야만 할 한 회합을 제안했다(3절).
그 율법책은,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면,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을 약속한 계약의 역할을 다하기로 약속했다. 물론 그때에는 하나님도 당신의 역할을 다하시리라는 것을 결코 의심치 않았다.
💡 3절, 왕이 단 위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께 순종하고 그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 하매 백성이 다 그 언약을 따르기로 하니라
언약(뻬리트): ‘약속’, ‘계약’ 이란 뜻. 구약 성경에서 인간과 인간 쌍방의 약속 또는 계약을 뜻하기도 하지만 더 많은 경우 하나님께서 인간의 구속을 위해서 주시는 약속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된다.
[언약의 엄정함]
인간 사이에 맺어지는 언약어나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맺어지는 언약이나 ‘언약'은 반드시 준수되어야 하는 매우 엄정한 것이었다.
1.‘언약’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뻬리트’의 어원에서도 잘 드러남. —> 2가지 견해.
a. ‘자르다’란 의미의 동사 ‘빠라’에서 유래하여 본래 ‘자른 것’이란 의미를 지닌다고 보는 견해.
고대 근동 사람들이 언약을 체결할 때 그 증표로 동물을 자르고 그 가운데로 언약의 당사자가 지나가는 의식을 행하였던 것과 관련시키는 견해. 이 견해는 언약 체결자가 이를 파기할 경우 그 동물과 같은 운명에 처해진다는 맹세가 담긴 것으로 보는 것. 따라서 목숨을 걸고라도 언약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뜻을 부각시켜 준다
b.‘족쇄를 채우다’란 뜻을 가진 아카드어에서 유래했다고 보는 견해.
언약은 족쇄처럼 그 언약 당사자의 모든 삶을 지배한다는 의미가 내포.
2.언약을 “세우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라트’에도 언약의 엄정함이 잘 드러남.
이 단어의 1차적 의미: ‘베다, 자르다’.
이는 앞서 ‘언약'을 나타내는 명사 ‘뻬리트'가 ‘자르다'란 뜻과 관련되었다고 보는 견해를 소개하면서 설명하였듯이 체결된 언약을 어기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는 사상이 내포되어 있다.
[본문의 언약의 성격]
본문의 경우는 처음으로 언약을 맺는 것이 아니라 이미 체결되어 구속력을 갖게 된 언약을 언약의 형식을 통하여 강화하는 경우.
— 이 경우 언약의 새로운 추가적 이행 조건이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체결된 언약의 내용에 대한 재확인 및 의무의 이행에 대한 맹세가 주된 내용을 이룬다.
본문에서도 요시야 왕이 중재자가 되어 종주권 언약으로서의 성격을 지니는 시내산 언약(출 24:1-8)을 갱신하고 있는데, 어떤 새로운 의무나 책임이 추가적으로 언급되기보다는 이전 언약의 내용을 그대로 이행하겠다는 맹세가 주된 내용을 이룬다.
[출24:7의 모세의 행위와 이스라엘 자손들의 반응과의 유사성]
본문의 2,3절에 기록된 요시야의 행위와 백성들의 반응은 출 24:7에 나오는 모세의 행위와 이스라엘 자손들의 반응과 거의 유사한 형태. 이는 당시의 상황과 출애굽의 상황을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주도록 해줌과 동시에 지금 요시야가 행하는 일이 과거 시내산 언약 체결에 근거하고 있음을 드러내기 위한 표현.
백성들의 반응: ‘그 언약을 쫓기로’ 다짐함
‘쫓기로 하니라’= 기본의미는 ‘서다’
문자적으로 ‘그 안에 서다’. → ‘확고하게 이행하다’(전8:3; 겔17:14)라는 의미를 나타냄. 즉 당시 백성들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고 요시야 왕이 언약하자, 다 그 언약을 확실하게 지키기로 다짐하였던 것.
(1) 그 계약은, 그들이 여호와를 좇아 행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그의 뜻과 규례와 섭리에 응하여 그의 모든 부르심에 응답하고, 그의 모든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 그들은 하나님의 모든 계명 곧 도덕적, 의식적, 재판상의 모든 계명들을 인식하고,
- "마음과 정성" 을 다하여, 모든 가능한 관심과 주의, 성실과 열심, 용기 그리고 결단력을 다하여 그것을 준수해야만 하고,
- 나아가 이 계약의 약속에 의지하면서 이 계약의 조건들을 성취해야 한다.
💡 본문에서 요시야는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키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이 일을 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을 통해 언약 갱신을 촉구하는 요시야의 단호함이 묻어난다.
→ 중언법적 표현을 통해 이를 알 수 있음.
1.‘여호와를 순종하고’, ‘그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두 표현은 그 의미가 동일한 중언법적 표현. 여호와를 순종하는 것이 = 곧 여호와깨서 주신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키는 것임을 나타낸다.
2.‘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역시 중언법적 표현. 직역하면, ‘모든 마음으로 그리고 모든 영혼으로’ 인데, ‘마음'과 ‘영혼' ⇒동일하게 인간의 내적 성향 혹은 전인격을 의미하므로 반복적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여호와께 순종하되, 형식적 순종이 아니라, 전인격을 통한 전폭적 순종이어야 함을 강조.
3.‘계명', ‘법도’, ‘율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주셨던 모든 명령, 모든 율법을 가리키는 중언법적 표현.
요시야가 중언법적 표현을 거듭 사용하여 언약 준수를 강조한 이유
이미 심판이 확정된 상황에서 언약을 갱신하고 이를 준행하는 것만이, 장차 있을 심판의 상황 속에서도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간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되기 때문. 요시야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키는 것과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는 것을 관련시키고 있다.
요시야는 ‘언약책’의 말씀에 나타난 심판의 말씀을 듣고
일차적으로 자기 자신이 옷을 찢고 회개하였을 뿐 아니라 이와 관련하여 백성들 모두를 언약 앞에 세우고 그들과 더불어 언약을 갱신하였다. 이미 심판의 말씀이 선언된 것을 알고도 요시야가 백성들에게 언약 갱신을 촉구하고 이에 대하여 본절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단호하고 철저하게 백성들 앞에서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킬 것을 촉구하는 것은 ⇒ 그것이 언약의 말씀을 먼저 알게 된 자신이 취할 최선의 조치라고 여겼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 아울러 여기에는 자신의 순종과 관련해 심판의 상황 속에서도 장차 남겨진 자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달라는 하나님께 대한 기원의 의미도 포함되어 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
이후 요시야가 얼마나 철저하고 단호하게 율법에 근거해 남유다를 개혁해 나갈지에 대한 예고라고 할 수 있다.
(2) 먼저 계약을 한 자는 왕 자신이었다.
그는 기둥 곁에 서서(11:14 절), 자기는 이 계약에 동의한다는 뜻을 공표했다. 그래서 그는 그들에게 모범을 보이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보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통할과 특히 그들이 순종하면 하나님의 권능이 그들에게 줄 수 있었던 모든 장래를 확신시켰다.
하나님께 구속되는 것이 군주 자신들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리하여 또 "모든 백성들이 그 계약을 좇기로 했다." 즉 계약에 대한 그들의 승인을 나타냈고, 그것을 지키기로 약속했다.
최대한으로 엄숙하게 우리 자신의 의무를 지키는 것이 좋다. 그리고 특히 이 악명 높은 죄와 타락에로의 퇴행이 있은 후에 시기 적절하게도 이 일이 있었다는 사실은 좋은 일이다. 정직한 생각을 품는 자는 적극적인 계약에서 물러서지 않는다. 즉 단단히 단속하면, 잃는 법이 없다.
●우상 숭배의 타파(열왕기 하 23:4-20)
우리는 과거 유대 역대 왕들의 전 역사를 통해서 일찍이 당면해 보지 못했던 개혁에 관한 기록을 보게 된다. 그것은 모두 가증스런 것들을 제거해 버리고 영광스러운 선(善)을 수립해 나가는 개혁인 것이다.
💡앞선1-3절: 요시야 왕이 남유다의 온 백성을 예루살렘 성전으로 소집하여 율법책을 낭독하고 언약을 갱신한 사건을 보도.
4-25절: 이러한 언약 갱신에 뒤이은 요시야 왕의 후속 조처로서 본격적인 개혁 작업이 기록된다.
이는 3절에 기록된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는 요시야의 개혁 의지 표명에 따른 자연스런 귀결이다. 그 가운데 제일 먼저 한 일은 4-7절에 기록된 성전 숙정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나는 두 가지 사실을 의아하게 생각지 않을 수 없다.
1.여기에 제거된 것으로 나타난, 그렇게 수많은 사악한 것들이 허용되어 왔고 또한 그처럼 오래도록 지속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2.이런 사악한 것들을 제거해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이 희망적인 정리 사업에 의해서 그처럼 행복한 전망을 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이 2~3년 내에 완전히 멸망해 버렸고, 이러한 개혁조차도 예루살렘을 구원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결국에는 대부분의 백성들이 개혁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단련하는 자의 일이 헛되게 되느니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그들을 내어버린 은이라 칭하리라" (렘 6:29, 30).
여기서 다음의 사실들을 살펴 보자.
Ⅰ. 수많은 사악한 것들이 그 당시 유다와 예루살렘에 있었다.
그것은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들이다. 하나님이 알려졌던 유다에, 그의 명성이 떨쳐졌던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거하셨던 살렘이나 시온에 그와 같은 가증한 것들이 있다면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요시야 왕은 18년 간 통치했고, 그 자신이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었고, 율법에 따라 신앙을 유지했다. 그러나 그가 우상 숭배를 조사하고 나서 파괴해 버린 그 엄청난 쓰레기더미는 좀처럼 믿을 수 없을 정도이다.
1.솔로몬이 세웠던 성전으로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고 예배를 드리는 여호와의 집에서까지도 바알과 "아세라 상 및 하늘의 일월성신" 에게 제사를 드리는 데 사용된 그릇이나 여러 가지 용기들이 발견되었다.
비록 요시야 왕이 우상 숭배를 금지했지만, 여전히 우상 숭배를 위해 제작된 그릇들은 성전에서조차도 귀중히 보존되었고, 금령이 해제되면 언제나 다시 사용될 수 있도록 보관되었다. 아니 아세라 목상도 성전에 여전히 그대로 있었다(6절). 어떤 사람은 그것을 아세라 목상과 같은 비너스의 상이라고 생각한다.
2. 바로 "여호와의 전의 입구에" 종교적인 목적에 쓰이는 말들을 위해 마구간(생각이나 할 수 있으랴!)을 마련했다.
마치 "달리기를 기뻐하는 용사" (시 19:5)에게 말이 필요하듯이, 태양에게도 말이 필요한 양 "태양을 위해 드린" (11절) 거룩한 말들을 위한 마구간이 있었다. 어쩌면 그들이 그토록 감탄해 마지 않던 그 태양의 신속성을 그런 식으로 과시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앙은 없더라도 조그마한 철학(생각)이라도 지니고 있는 자라면 능히 알아채고 부끄러워할 그런 수치들, 곧 태양의 병거에 대한 시적 공상에다 자기들의 신앙을 맞추었던 것이다.
어떤 자들은 말하기를, 그들이 그 말들을 매일 아침마다 솟아오르는 태양을 추앙하기 위해 타고 나갔었다고 한다. 그들은 태양을 향해 달리는 전차를 몰고 나갔으며, 그 전차들을 숭상했다. 이상한 것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가지고 있는 자들까지도 이처럼 "그 생각이 어리석어졌다" (롬 1:21)는 점이다.
3. 바로 "여호와의 전 옆에 소돔 사람들의 신당들이 있었다."
그 신당에서는 가장 변태적인 여러 가지 음탕하고 더러운 행위들이 자행되었으며, 심지어 종교 의식이란 구실 아래서 그들의 불결한 신들을 기념한다는 명목으로 자행되었다. 육체적이고 영적인 매음 행위가 함께 자행되었으며, 백성들이 단념하게 되었던 그 부도덕의 결과는 결국 그들의 망상에 대한 형벌이 되었다. 그들의 하나님을 욕되게 한 자들은 그들 자신들을 욕되게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으니 그것은 당연한 귀결이다(롬 1:24 이하).
아름다운 비너스 상을 둘러쌀 천막의 휘장을 짜는 여인들이 있었으며(7절), 그곳에서 우상 숭배자들은 음란한 행위를 행했고, 또한 "하나님의 전에서도" 그렇게 했다.
그러한 행위들은 바로 아버지의 집을 장사꾼의 집으로 만들어버린 사악한 행위였고, 더욱 나쁜 것은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버린 것이며, 최악의 것은 하나님과 성전의 거룩성을 뻔뻔스럽게 무시해 버리고 창녀의 소굴로 만들어 버린 데 있다(Horredum dictu!-말하기도 무섭도다!). 바울 사도가 그들을 "가증스러운 우상 숭배자들" 이라고 칭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4. 궁전에서나 "아하스의 다락방 지붕에서" (12절) 발견된 수많은 우상 숭배의 제단들이 있었다.
그들의 지붕은 평평했기 때문에, 집들을 산당으로 만들어 우상 숭배 제단(렘 19:13; 습 1:5), 즉 가정 제단을 만들었다. 유다 왕들도 그렇게 했으며, 요시야 왕도 가령 제단을 사용치는 않았지만 여전히 그 당시까지 그것들은 잔존해 있었다. 므낫세 왕은 하나님의 전 안에다 우상을 위해 제단을 세웠다. 그가 회개하고는 그 제단을 옮겨서 "도시 바깥으로 내 버렸지만" (대하 33:15), 그 모든 제단들을 파괴하지는 않았으며, 그 아들 암몬이 아마 그 제단을 성전 뜰로 다시 가져왔을 것이다.
그런데 요시야는 그 제단들을 발견하고는 "그들을 파괴해 버렸다" (12절).
5. 예루살렘 바로 근처에 있는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도벳" 이란 데가 있었는데, 거기에는(음란하게 더럽고 잔인한 신) 몰록의 상이 세워져 있었다.
그 몰록의 상에다 희생 제물로서 자기들의 자녀들을 불 속을 통과하게 하는 자들이 있었으며, 다른 자들은 자녀들을 바쳐서 불에 타 죽게 했다. 이것이야말로 "불탈 것으로 수고하는" 것이다(합 2:13). 도벳(Tophet)은 북이라는 뜻의 toph에서 왔을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자기 자녀들을 불태우면서 그 비명을 듣지 않으려고 북을 쳤기 때문이리라.
6. "예루살렘 앞에 솔로몬이 세운 여러 산당들이" 있었다(13절).
그 산당들에 있는 제단과 주상들은 아마도 선대의 경건했던 왕들이 옮겨 놓았거나 솔로몬 자신이 죄를 회개하고 나서 옮겨 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건물들의 일부는 요시야 왕 때까지도 그대로 존속해 왔다. 종교에다가 타락을 끌어들이는 자들은 그 타락이 얼마나 멀리까지 미치며, 또 얼마나 오래도록 계속되는가를 알지 못한다. 유구하다는 것이 진리의 확실한 증거는 아니다.
전국에 걸쳐 산당이 있었으니, "게바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며" (8절), "통치자 집의 문전 입구와 성문에도 산당이 있었다." 이러한 산당에서 우상을 숭배하는 왕들은(패트릭 주교의 생각에 의하면) 성읍의 보호를 수호신에게 부탁하여 빌면서 번제를 드렸다. 아마도 성읍의 통치자에게도 자기의 penates-가정 수호신을 위해 개인적인 제단이 있었을 것이다.
7. 우상 숭배를 하는 제사장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이 모든 우상 숭배의 제단에서(5절) 그 마림 곧 검은 사람들-검은 옷을 입은 자들을 시중했다(습 1:4 참조).
오시리스 신에게 희생 제물을 드리는 자들, 또는 담무스를 위해 애곡하거나(겔 8:14) 지옥의 신들을 숭배하는 자들은 애도자처럼 검은 옷을 입었다. 유다의 왕들은 우상 숭배하는 제사장들을 기용하여 "산당에서 번제를 드리도록 임명했다." 아마도 그들 중에 아론 집안의 제사장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 하여서 자기들의 신을 모독했다. 그리고 전혀 제사장직의 권리를 가지지 못한 자들도 임명되었는데, 그들은 바알에게 분향을 드렸다.
8. 마술사와 박수, 그리고 "신접한 자" 와 같은 자들이 있었다(24절).
마귀를 자기들의 신으로 예배하는 자들이 마귀들의 신탁을 따른다는 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Ⅱ. 의로운 요시야 왕은 우상 숭배의 온갖 유적을 철저하게 파괴했다.
이와 같은 처사는 만군의 여호와께 대한 충성심과 그 하나님을 거스리는 모든 것들에 대한 거룩한 의분에 의한 것이었다.
하나님을 거스리는 것은 어떤 것도 그 앞에 설 수 없다. 율법은(신 7:5) 가나안 족속의 우상 숭배 유적들을 모두 철저히 파괴하라고 명령했는데, 하물며 이스라엘 족속의 우상 숭배 유물이야 어떠했겠는가? 이스라엘 민족의 우상 숭배 유적들은 보다 더 사악하고 속되고 불경스런 것들이었다.
1. 그는 힐기야와 다른 제사장에게 성전을 깨끗이 청소하라고 명령했다. 이것은 그들이 해야할 직분이었다(4절).
💡 23:4 왕이 대제사장 힐기야와 모든 부제사장들과 문을 지킨 자들에게 명령하여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일월 성신을 위하여 만든 모든 그릇들을 여호와의 성전에서 내다가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밭에서 불사르고 그것들의 재를 벧엘로 가져가게 하고
성전 숙정은, ‘대제사장 힐기야와 모든 버금 제사장들과 문을 지키는 자들'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졌다.
버금 제사장
이들이 어떤 자들인지에 대헤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문을 지킨 자들
성전이나 성읍의 문을 지키도록 임명받은 자. 다윗은 4천 명의 문지기를 임명하였는데(대상 23:5; 26-1-32) 이들들은 모두 레위 지파 사람들이었다(대상 23:3-5). 성전의 문지기들의 직무가 중요하게 여겨졌다는 사실은 본서 25:18나 렘 52:24에 3명의 문 지키는 자가 대제사장과 부제사장과 함께 언급되어 있는 데서 잘 드러난다. → 이는 문을 지키는 자의 직무가 매우 중요하였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처럼 성전 문을 지키는 자가 중요하게 여겨진 것은 : 하나님 임재의 상징적 처소인 성전의 거룩함을 지키는 책임이 막중하였기 때문이다.
바알을 위해 만들어졌던 모든 그릇들은 다 내다 버렸다.
그런 그릇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에 다시는 사용될 수 없었고, 더욱이 일상적인 용도로도 다시는 사용되지 않게 했다. 그들은 모두 불태워졌으며, 그 재는 모두 벧엘에다 뿌렸다.
벧엘은 우상 숭배의 공통적인 원천이 되어 왔었다. 그 이유는 그 곳에 송아지 우상이 하나 세워지자-그곳은 유다 가까이 있었다-그 나쁜 영향이 나라 전체에 퍼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시야 왕은 벧엘을 우상의 쓰레기장으로 만들었다. 즉 모든 오물을 그리고 갖다 쌓았다. 아마 그러한 처사는 우상 숭배를 즐겨오던 사람들에게는 불쾌한 일이었을 것이다.
💡 그의 첫 명령
여호와의 전에 있는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일월성신을 위하여 만든 기명을 불살고, 그 재를 벧엘로 가져가는 것.
이러한 요시야 왕의 행위의 근거
신 7:25의 율법에 따른 것. 요시야가 기드론 밭을 우상을 위한 기명들을 불사르는 장소로 택한 것은 ⇒ 그곳이 예루살렘에서 지리적으로 가까울 뿐 아니라 이 일을 하기에 적합하였기 때문.
‘기드론' 지역은 ⇒ 예루살렘 성벽과 감람산 사이에 위치한 약 5km 정도의 계곡으로 예루살렘성보다 낮은 곳에 위치해 있으면서 상당한 크기의 웅덩이가 었어 그것들을 가져다가 불사르는 데 적합하였던 것. 이러한 지형적 특징으로 과거 아사 왕과 히스기야 왕도 이곳에서 우상을 불태웠다(왕상15:13; 대하 29:16).
불사른 재를 벧엘로 가져간 것은 ⇒ 하나의 상징적 행위로 이해할 수 있다.
벧엘은 ⇒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이 금송아지 우상을 세운 곳으로(왕상 12:28) 그 이후 북이스라엘이 멸망할 때까지 우상 숭배의 본거지가 되었다. 따라서 우상 숭배와 관련된 물건들을 태운 후 그 재를 우상 숭배의 본거지였던 벧엘로 가겨갔다는 것은,
⇒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열심히 우상을 숭배하였으나 결국 멸망하고 말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킴으로써 우상의 거짓됨과 무력함을 사람들로 뼈저리게 느끼게 하여 보다 효과적으로 우상 숭배를 척결하기 위함.
[위 명령으로 알 수 있는 사실]
당시 여호와의 전은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고 온갖 우상의 기명들이 만연한 종교 혼합주의의 처소로 심각하게 더럽혀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 우상을 숭배하던 제사장들을 모두 축출해 버렸다.
💡 23:5 옛적에 유다 왕들이 세워서 유다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 주위의 산당들에서 분향하며 우상을 섬기게 한 제사장들을 폐하며 또 바알과 해와 달과 별 떼와 하늘의 모든 별에게 분향하는 자들을 폐하고
유다의 각 고을과 예루살렘에 있던 산당들에서 우상을 섬기던 제사장들을 폐함.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외 뜻에 맞게 바로 이끌어야 할 신정 왕국 유다의 왕들이 이처럼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산당 제사를 활성화시키기 위하여 거짓된 제사장들까지 세웠다는 본문의 보도는 남유다 왕들의 망령됨과 더불어 남유다가 돼 멸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단면이라 할 수 있다.
위 제사장들을 따라 분향하는 자들을 폐함.
분향하는 자들: (강의 능동형)
⇒ 강의형 분사 능동형이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볼 때 그들은 우상에게 분향하는 일을 매우 적극적으로 행하였던 자들로 볼 수 있다. 그들이 ‘제사장들'과 병행하여 쓰인 점에서 볼 때 분향 책임자들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아마 그들은 우상 숭배를 중단하고 하나님을 섬기라는 요시야 왕의 요구를 끝까지 거부하였을 것이다.
“폐하다”
한글 개역 성경에는 ‘폐하다’는 단어가 2회 나오나 원문에서는 단 1번 나옴 → 이는 우상에게 분향하는 자들도 이교 우상 제의를 집행하였던 제사장들과 동일하게 취급되었음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폐하다(웨히쉬삐트)
‘솨바트’의 사역능동형+완료형, ‘솨바트’: ‘그치다, 끝내다’란 의미를 갖는 동사. 이는 요시야 왕이 주체가 되어 우상 제의를 집행한 제사장들과 우상 분향 책임자들을 유다 땅에서 그치게 하였음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이 단어가 행위의 완결을 나타내는 완료형으로 쓰여 ⇒ 이 일이 매우 단호하고도 완전하게 마무리되었다는 뉘앙스를 전달.
아론의 집안이 아닌 자들로서 바알이나 거짓 신에게 희생 제사를 드린 자들은 율법에 따라 죽임을 당했다(20절).
요시야 왕은 "그들의 제단에서 그들을 죽였다." 이것은 이제껏 바쳐진 제물 중에서 가장 훌륭한 제물이었다. 즉 하나님의 정의의 제물이 된 그들 자신을 드린 셈이다.
아론의 후손들이면서 참 하나님께도 분향을 했지만, 산당에서 분향을 드렸던 자들에 대해서는 용서했다. 그러나 다시는 여호와의 전에 나가지 못하게 금했다. 즉 그들은 명예를 박탈당했다(9절). 그는 그들이 다시는 옛 우상 숭배 의식을 비밀리에 지킴으로써 그 나라에 재앙을 가져오지 않도록, 그들을 "유다의 성읍 밖으로 몰아내었다" (8절).
그러나 그들에게 "형제와 더불어 무교병(소제물의 빵. 레 2:4, 5)은 먹을 수 있도록" 허락했으니, 그들은 형제와 함께 거룩하게 되었고, 그들의 감시 하에 있음으로써 남들에게서 피해를 입지 않게 되었고 좋은 교육을 받을 수도 있게 되었다. 또한 그 떡, 곧 무교병(딱딱하고 맛이 없는)은 그들에겐 사실상 받을 자격이 없는 훌륭한 양식이었으며, 그들을 살아가게 하는 데 충분했을 것이다.
💡 23:9 산당들의 제사장들은 예루살렘 여호와의 제단에 올라가지 못하고 다만 그의 형제 중에서 무교병을 먹을 뿐이었더라
[산당 제사장들에 대한 조치]
1.여호와의 전에 나가지 못하게 금함
이전에는 산당 제사장과 성전 제사장 사이에 긴밀한 교류가 이어서 산당 제사장들이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장 직분도 감당하였음. 이처럼 성전의 제사장들과 산당 제사장들과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음으로써 여호와 신앙이 타락하는 결과를 가져왔는데 바로 그 점을 요시야는 똑바로 인식하고 산당 제사장들의 종교 제의 집전 자체를 금지시키는 조치를 취한 것.
2.무교병은 먹게 함
제사장의 몫인 어러한 무교병을 산당의 제사장들도 함께 먹었다는 것은 유다의 산당의 제사장은 북이스라엘의 산당의 제사장이 비레위인이었던 것과(왕상 13:33) 달리 레위 가문 출신으로서, ‘형제'라 일컬음을 받을 수 잇었던 자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무교병을 주었다는 것은 ⇒ 제사장의 자격을 잃은 자들은 제사를 직접 집전할 수 없으나 제사장의 음식만은 먹을 수 있다는 율법 조항에 따른 조치였다(레 21:21-23).
의도 : 요시야는 비록 과거 과오를 저지른 제사장이라 해도, 그들이 철저히 회개하고 여호와 신앙을 회복하였을 때에는 그들에게 생계 유지의 수단을 보호하여 주는 아량을 베풀므로써 국민 통합의 기틀을 마련하였던 것.
3. 모든 우상은 산산이 파괴되어 불태워졌다.
아세라 상(6절)과 다른 신상들은 재로 변했고, "그 재들은" 그 성읍의 공동 묘지에 있는 "평민의 무덤에 뿌려졌다." (6절).
💡 23:6 또 여호와의 성전에서 아세라 상을 내다가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시내로 가져다 거기에서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어 그것들의 가루를 평민의 묘지에 뿌리고
4절에서 바알과 아세라와 일월성신을 위하여 만든 모든 기명을 제거한 사실이 기록된 것으로 보아 당시 성전에서는 이러한 모든 우상들에 대한 숭배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아세라 우상을 파쇄한 사실만을 다루는 이유]
당시 우상들 가운데 아세라 숭배가 가장 널리 퍼져 었었을 뿐 아니라 성전에서도 아세라 숭배와 관련된 범죄가 가장 횡행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아세라
‘가나안의 모신’, 므낫세 이후 성전 안에 아세라상이 세워졌다는 기록(대하33:22)으로 볼 때, 성전에서 아세라와 여호와가 짝을 이뤄 함께 섬겨졌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유다 지역의 고고학적 발견에 의하면 여호와가 남신으로, 아세라가 여신으로 함께 섬겨진 혼적을 발견할 수 있는데, 본문에서도 여호와 전과 관련하여 아세라가 특별히 따로 언급된 것으로 보아 성전 안에 남신으로 여호와의 신상이 세워졌고 이에 대응되는 여신으로 아세라 신상이 세워겼으며 이들이 함께 척결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불사르고 … 가루를 만들어’
성전 안의 아세라상은 도금한 목상이었음. 이와 같은 방법으로 우상을 제거하는 방법은 과거 금송아지에 대하여 모세가 취한 방법(출 32:20)이기도 하다. 과거 아사 왕이나(왕상 15:13) 본절의 요시야 왕은 모세의 행위를 기억하고 이와 같은 조치를 취한 것으로 여겨진다.
율법에 의하면, 무덤에 접촉하면 의식법상 부정을 타게 된다. 따라서 그 재를 무덤에 매장함으로써, 이 자리에서 요시야 왕은 그 재는 가장 불결하다고 선포한 셈이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자기들이 부정해지지 않고서는 그 재에 손을 댈 수 없게 되었다.
💡 이 가루를 ‘평민의 묘지'에 뿌렸다는 것은
앞서 이방 우상제의와 관계된 기명들을 태우고 그 재를 우상 숭배로 더렵혀졌던 패망의 땅 벧엘로 가져간 것처럼 아세라 신의 무력함을 공표하고 그 신을 모독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히브리인들의 무덤은 천연 동굴이나 암벽을 깎아서 만든 동굴 형태였는데, 가난한 평민들은 이와 같은 무덤을 마련하지 못하고 대신 그냥 땅을 파서 매장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따라서 하층민들의 마을에는 시체 매장터가 형성되어 있었는데 본문은 바로 그곳에 아세라상을 태운 재를 뿌렸다고 보도하고 있다. 특히 기드론 골짜기는 고대로부터 유다 평민들의 공동 묘지가 형성되어 있었는데 바로 그곳에 재를 뿌림으로써 요시야는 ⇒ 유다 백성들로 하여금 아세라가 무력한 거짓 신일 뿐 아니라 부정한 것이었음을 보여준 것이다.
[기드론의 밭에 뿌린 상징적 의미]
그곳에 있는 묘지 및 부정한 것으로 여겨지던 시체와 관련해 우상이 저주스러운 것이며 멸망에 이르게 하는 것임을 드러내기 위함. 또한 이와 아울러 이러한 우상이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에 결코 존재하지 말아야 할 것임을 부각시키기 위한 목적
- (갈대아역에 의하면) "그는 재를 무덤에다 버렸다." 그것은 그는 모든 우상들을 마치 구역질나는 물건처럼 눈에 보이지 않게 매장하여서, 죽은 자가 잊혀지듯이(14절) 아주 잊혀지게 되기를 원했다는 뜻이다.
- 그는 "사람의 해골로 아세라 목상이 있던 곳을 채웠다." 그는 모든 주상들의 재를 가지고 가서 죽은 사람의 해골과 섞었듯이, 우상들이 세워져 있던 곳에는 죽은 자의 해골을 가져다가 그 빈 터를 메웠다.
이 두 가지 방식은 모두 우상 숭배는 흉칙한 것임을 보여 주기 위함이며, 또한 사람들이 그 우상들의 티끌이나 자기들이 예배하던 그 우상들이 있던 장소까지도 가까이 하지 않기 위함이다. 죽은 자와 죽은 신은 서로 비슷하므로, 같이 있는 게 적합하다.
4. 사악한 모든 집들, 즉 우상 숭배자들을 숨겨 주었던 불신앙의 은신처와 소돔 사람들의 집들을 헐어버렸다(7절).
"그들을 때려 부셔라. 그들을 때려 부셔라. 그들을 밑바닥까지 부셔 버려라."
산당도 그렇게 허물어져서 결국에는 평지가 되었다(8절). 물론 그 성읍의 지사에게 속했던 산당도 그리되었다. 어떤 사람의 지위나 권력도 그 자신을 우상 숭배나 신성 모독에서 보존해 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통치자들이 먼저 개혁에 복종토록 하라. 그러면 피지배자들은 곧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 23:7 또 여호와의 성전 가운데 남창의 집을 헐었으니 그 곳은 여인이 아세라를 위하여 휘장을 짜는 처소였더라
[예루살렘 성전 기능 상실, 극심한 혼합 종교의 양상]
남창: 고대 가나안 종교의 여성 우상 숭배 의식에서 제의의 한 부분으로 성관계를 맺는 것과 밀접한 관련을 가짐.
이런 의식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행해짐.
‘미동의 집’
천막, 움막의 형태로 성전 뜰에 세워져 있었을 것. 여기에 여인들이 있었고 이들은 아세라를 위하여 휘장을 짰음. 남창들 뿐 아니라 여사제들도 함께 거하였던 것으로 보임. 이곳에 거하는 여사제와 미동들은 상호 성관계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우상을 숭배하려고 나아온 자들과도 성관계를 가졌다. 이때 산당에 나온 우상 숭배자들은 남성이었으므로 미동과의 성행위는 동성과의 성교였다.
하나님은 율법에서 수간과 함께 동성간의 성교를 엄격하게 금지하셨다(창 19:1-14; 왕상 14:24; 롬 1:26).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민 역사 가운데 이는 계속적으로 반복되어 행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적 처소로서 지극히 거룩해야 할 예루살렘 성전이 — 율법상 사형에 해당하는(레 18:22; 20:13) 사악한 범죄였던 이러한 남색과 행음의 소굴로 변하였다는 것은 당시 유다의 우상 숭배가 극에 달해 있었음을 암시하며 이러한 사악한 죄악들로 인하여 하나님이 진노하사 유다에 멸망이 필연적으로 임할 수밖에 없었음을 알게 한다.
요시야는 산당을 훼파했다(8절과 13절).
그는 산당을 증오하는 온갖 일을 다했다. 그리고는 바알의 집이 우상 숭배의 집결지가 되었을 때, 예후가 행한 것처럼(왕하 10:27) 요시야는 산당에 대한 과대망상에서 백성을 건져냈다. 다른 우상 숭배의 장소와는 달리 골짜기에 위치해 있던 도벳-다른 우상 제단은 언덕이나 높은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도 역시 같은 모욕을 당했다(10절). 즉 성읍의 공동묘지가 나와 있다. 거기에는 "그들이 도벳에 장사될 것이라" 고 했다. 그리고 성읍 전체가 도벳과 같이 될 위협에 직면하게 되리라고 했다.
💡 23:8 또 유다 각 성읍에서 모든 제사장을 불러오고 또 제사장이 분향하던 산당을 게바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더럽게 하고 또 성문의 산당들을 헐어 버렸으니 이 산당들은 그 성읍의 지도자 여호수아의 대문 어귀 곧 성문 왼쪽에 있었더라
8,9절에 따르면 요시야의 광범위한 종교 개혁은 유다의 각 지역에 퍼져 있던 제사장들을 소집하고 모든 산당들을 척결한데서 시작됨.
먼저 유다 각 지역, 그리고 예루살렘성에 있던 산당도 제거함. 이유: 산당이 주는 폐해가 그 어떤 것보다도 더 심각하였기 때문.
[산당의 모든 제사장들을 예루살렘으로 불러모아 유다 각 지역의 산당들을 더럽게 했음]
이는 산당 개혁을 통하여 우상을 척결하고 예루살렘 성전의 중앙 성소화를 이루기 위함.
게바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 남유다 북단에서 최남단에 이르기까지
게바: 예루살렘에서 북쪽 약 8km 떨어진 곳. 북왕국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의 중심지였던 벧엘과 인접한 성읍으로 우상 숭배가 극심한 곳.
브엘세바: 남유다 최남단에 위처한 성읍. 이곳 역시 우상 승배가 성행한 곳.
⇒ 남유다 북단에서 최남단에 이르기까지 요시야의 종교 개혁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해서 유다 전지역으로 확대되었음을 의미한다.
‘산당을 “더럽게 하였다”’
‘더럽게 하고’
요시야는 산당을 파괴한 것이 아니라 그 산당들을 부정해지게 함으로써 더 이상 성소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했던 것으로 보인다. 즉 종교적으로 부정한 곳으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그 산당을 더 이상 사람들이 찾지 않는 장소로 만들었던 것. 당시 어떠한 방법으로 산당을 부정하게 만들었는지에 대하여는 구체적언 언급이 없으나 14, 16절을 참조하면 의식상 불결하다고 여겨지던 해골을 채우는 방법을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과거 북이스라엘의 예후가 바알의 왕을 변소로 만들어 모욕한 바 있는데 (10:27) 그 방법이 사용되었을 수도 있다.
[’산당’이란 표현은 요시야 이후 등장하지 않음]
레26:30 — 가나안 땅 거주민들이 우상 숭배 장소로 사용한 산당을 파괴하라는 명령으로, ‘산당’이란 표현이 처음 등장. 그 이후 역사서에서는 삼상 9:12에 등장하기 시작하여 대하24:3에 마지막으로 나온다. 이 부분이 바로 요시야의 종교 개혁을 묘사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역대기에는 요시야와 관계하여 이 단어가 단 1희 나오지만 열왕기에는 무려 9회나 나온다(5, 8, 9, 13, 15, 19, 20절). ⇒ 이는 요시야가 산당을 확실하게 척결하였음을 강조하기 위헤서어다. 사실 열왕기서에서 요시야 이후 ;산당'이란 표헌이 다시 등장하지 않는 것은 요시야가 산당 척결을 그만큼 철저히 하여 그 이후에는 산당이 큰 역할을 하지 못하였음을 반증해 준다.
[예루살렘성에 있던 산당도 제거함]
성전 즉 중앙 성소가 있던 예루살렘에 산당이 있었다는 것도 놀라운 사실이지만 그것이 성문 왼편에 위치해 있었다는 것은 더욱 놀라운 사실이다.
⇒ 이유: 당시 ‘성문은 시장이 형성되어 사람들의 왕래가 가장 번번한 곳이었고 재판과 각종 모임들이 이루어지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에 하나가 아닌 다수의 산당들이 세워졌다는 것은 당시 예루살렘에도 산당 제의가 매우 활성화되어 있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찾았음을 암시한다.
중앙 성소가 있는 예루살렘에도 산당들이 세워져 사람들이 애용하였다는 사실은 당시 남유다 사희가 얼마나 종교적으로 타락하였는지를 반영해 준다. 그런데 요시야 왕은 당시 사람들이 애용하였던 이 산당들을 헐어버렸다.
“헐어버리다”
'산산히 깨뜨리다’는 의미. 이같은 표현은 요시야가 산당을 얼마나 철저하게 파괴하였는지를 극명하게 전달해 준다.
‘부윤 여호수아의 대문’
부윤: 당시 각 성의 책임자. 본문의 ‘부윤’은 : 남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을 다스리던 최고의 책임자.
열왕기 저자의 남유다 왕들의 산당에 대한 태도에 대한 평가
산당과 관련하여 가장 악한 평가를 받은 왕 분열 왕국 초대 왕인 르호보암(왕상 14:22)과 유다 역사상 가장 사악한 왕으로 평가받는 므낫세 (21:1-8). 이들은 모두 남유다를 종교적 타락으로 몰아넣 은 산당을 적극적으로 설립한 자들.
부분적으로는 선하다고 평가받지만 산당을 제거하지 않음으로 인해 부정적 평가를 받은 왕들
아사(왕상 15:11), 여호사밧(왕상 22:43), 요아 스(12:2,3), 아마샤(14:3, 4), 아사라(15:3), 요담(15:34) 등.
선한 평가를 받을 뿐만 아니라 산당을 척결한 왕
히스기야(18:3.4)와 본문의 요시야. 그러나 히스기야의 경우 산당 제거가 완전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아들 므낫세가 다시 산당을 재건함으로 인하여 성공적이지 못하였다(21:3). 따라서 산당을 철저히 척결한 왕은 요시야 한 명 뿐이라 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그의 종교 개혁이 그만큼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다
5. 태양 신에게 드려졌던 말들은 도로 찾아서 일반적 용어로 돌렸다. 그리하여 그 말이 종속되어 있던 그 허망함에서부터 그들을 건져 내었다.
태양의 병거들(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 되어야 할 것들이 그런 꼴이 되었으니 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을 요시야는 불태웠다. 태양이 불꽃이라면, 그 병거들이 불에 타는 병거가 되었을 때에야 진정 태양을 닮았던 것이다.
💡 11-14절은 유다의 열왕들이 세운 각종 우상 제단 및 우상을 파괴하고 모독함으로써 종교 개혁을 수행한 사실을 밝힘.
23:11 또 유다 여러 왕이 태양을 위하여 드린 말들을 제하여 버렸으니 이 말들은 여호와의 성전으로 들어가는 곳의 근처 내시 나단멜렉의 집 곁에 있던 것이며 또 태양 수레를 불사르고
태양신 숭배와 관련
이스라엘에서는 태앙신 경배가 율법에 의하여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옴에도(신 4:19; 17:3) 공공연히 행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실은 본절에 ‘유다 열왕’'란 표현이 등장한다는 데서 확인된다. 열왕들의 사적과 관련하여 태양 숭배가 명시적으로 기록된 경우는 남왕국 제13대 왕 므낫세와(21:3, 5) 북왕국 제19대 왕 호세아(17:16)가 있으나 본절의 표현으로 볼 때 많은 왕들이 태양을 숭배하였옴을 알 수 있다. 렘 8:2에서는 남유다의 재난을 바로 어러한 천체 숭배와 직접 관련시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열왕이 태양신을 숭배하였다는 것은 태양의 성읍 (렘 43:13)이란 뜻을 지닌 ‘벧세메스'란 이름의 성읍들이 존재한 사실로도(수 15:10; 19:22.38) 확인된다
“태양을 위하여 드린 말들, 태양 수레”
당시 미신적 행위에 따른 것.
기록에 의하면 메소포타미아의 경우 흰말을 태양신을 위해 제물로 드렸으며 축제일에는 말어 끄는 수레가 행진하였다고 한다. 아마 태앙이 말을 타고 동쪽 하늘에서 서쪽 하늘로 이동한다는 미신적 사고에 근거해 말을 제물로 바쳤을 것이며 태앙 수레는 태양신의 숭배자가 태앙신 제의를 드러는 장소로 이동할 때 사용한 도구였던 듯하다.
유다에서 태양신을 숭배하는 관습은 본절에 나타나는 바와 같이 요시야 왕에 의해 일시적으로 근절되었지만 그의 사후 예루살렘 성전에는 다시 태양신을 숭배하는 의식이 성행하였다(겔 8:16).
“제하여 버렸다”
‘솨바트’ 동사의 변형(계속적 와우+ ‘솨바트’ 사역 능동형 의 결합)
솨바트=안식, 안식일을 나타내는 단어의 어원.
본서 저자는 ‘안식’을 연상시키는 단어를 사용하여 우상 숭배와 관련된 기구들의 제거를 통하여 그 땅과 백성들이 참된 안식 가운데 들어가게 되었음을 은연중에 나타내고 있다.
23:12 유다 여러 왕이 아하스의 다락 지붕에 세운 제단들과 므낫세가 여호와의 성전 두 마당에 세운 제단들을 왕이 다 헐고 거기서 빻아내려서 그것들의 가루를 기드론 시내에 쏟아 버리고
⇒ 유다의 역대 왕들 중 하나인 아하스와 므낫세가 세운 단을 철폐하였음.
다락이 우상숭배 장소가 된 이유 다락은 건물 맨 윗층에 있는 방으로서 때로는 집의 지붕에 지어지기도 하였다. 팔레스틴의 뜨거운 여름 기온을 식히기 위해서는 지붕 위에 개방 형태의 다락방이 매우 유용하였다. 천상의 존재들에게 예배드리기 위해서는 보다 높은 장소가 적합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아하스의 다락 지붕에 세운 제단들 일월성신을 예배하기 위해 세워진 단들(렘19:13) 히스기야의 종교 개혁 시기에 제거되었지만 므낫세와 아몬에 의해 다시 복구되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므낫세가 여호와의 전 두 마당에 세운 단' 역시 일월성신을 숭배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충격적인 것은 ⇒ 이러한 이교 제단이 ‘여호와의 전 두 마당'에 세워졌다는 것이다. 겔 40:17-19의 보도에서 암시되는 바와 같이 당시 성견의 뜰이 두 개 이상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을 것인데 바로 이같은 성전 마당에 요시야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교의 제단이 계속 세워져 있었던 것. ‘다 헐고’ ‘파괴하다, 깨뜨리다’, ‘으스러뜨리다’란 의미. 단지 조금의 손상을 주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으스러뜨릴 정도로 단들을 산산조각 내어서 없애버렸음. (부정 과거형) 으로 사용되어, 철저한 파괴가 이루어졌음을 잘 보여줌. 가루로 빻아 4,6절과 동일하게 기드론 시내에 버렸음
[요시야의 이런 조치가 갖는 의미]
그들이 신으로 섬기던 일월성신이 무가치하고 아무 능력도 행사할 수 없는 거짓 우상에 불과할 뿐임을 잘 보여준다.
23:13 또 예루살렘 앞 멸망의 산 오른쪽에 세운 산당들을 왕이 더럽게 하였으니 이는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시돈 사람의 가증한 아스다롯과 모압 사람의 가증한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가증한 밀곰을 위하여 세웠던 것이며
[멸망산 우편에 세운 산당을 더럽게 함]
멸망산 (하르 함마쉬히트)
‘파멸하다’ + ’멸망,파괴’.
이 산은 신약시대에 ‘감람산(기름부음의 산)’으로 불린 그 산.
이 산에는 풍부한 수량으로 인하여 감람나무들이 백백하게 군락을 이루었으므로 ‘감람산' 흑은 ‘기름부음의 산'이란 영에로운 명청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본문에서 이 산은 극히 치욕스러운 이름으로 불려진다. 원래는 ‘기름부음의 산'이란 영예로운 이름으로 불려졌으나 이 산이 멸망을 상징하는 산으로 전락해 버렸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언어 유희 (word play)를 사용하여 ‘하르 함미쉬하'라는 원래 이름을 유사한 발음의 ‘하르 함마쉬히트'로 표현하는 것이다.
본절에서 말하는 ‘멸망산’은 감람산 가운데서도 특별히 한 봉우리를 지목함. 이곳이 멸망산 흑은 범죄산으로도 불러워진 이유는 솔로몬이 이곳에 우상의 산당을 만들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이다(왕상 11:7). — 즉 풍요와 축복을 상징하는 이 산이 솔로몬에 의하여 세워진 이방 신전들과 여기서 저질러진 무수한 악행으로 멸망의 상징이 되었던 것이다. 본서 저자가 바로 이러한 배경을 지니는 멸망산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에는 그곳에 세워전 산당을 비하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히 포함되어 있다. 즉 요시야는 과거 솔로몬이 이방 여인들과 걸흔하면서 우상 숭배에 빠져 이방 신의 산당을 세운 이 장소에 죽은 자들의 뼈를 내다버려 더럽게 함으로써 다시 한번 이곳이 멸망의 산임을 입증하였던 것이다.
6. 신접한 자들과 마술사들은 축출당했다(24절).
아마 요시야는 마술에 걸린 자들도 죽였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마귀 같은 행실을 좇지 못하도록 막았을 것이다. 이러한 모든 일은, 그가 최근에 발견한 "그 책에 기록된 율법의 말씀" (24절)에 진실한 관심을 가지고 행한 것이다. 그는 그 율법을 자기 통치의 법으로 삼았고, 이 개혁을 완수하는 데도 그 율법을 유념했다.
7. 몰록의 제단을 부정케 함으로 몰록 제사를 근절함.
💡 23:10 왕이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의 도벳을 더럽게 하여 어떤 사람도 몰록에게 드리기 위하여 자기의 자녀를 불로 지나가지 못하게 하고
몰록을 숭배하는 자들은 전쟁이나 기근 등을 신의 노여움으로 보고 이를 달래고자 자신의 자녀들을 인신 제물로 바치는 행위까지 서슴지 않았다. 남유다에서 이러한 몰록 숭배 행위는 아하스에 의해 시작되어 므낫세 시대에 와서는 힌놈의 골짜기에 희생 제물을 태우기 위한 거대한 산당 도벳이 세워지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러한 사악한 종교 의식은 요시야 왕 때에 이르도록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힌놈의 골짜기
렘 19:6에서는 힌놈의 골짜기가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살륙의 골짜기로 일컬음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언되고 있다. 신약시대 ‘지옥’을 뜻하는 헬라어 ‘게엔나(마5:22)’ 용어의 어원. ⇒ 이 사실은 당시 이곳이 수많은 살륙이 자행된 악의 온상이었음을 알게 한다.
Ⅲ. 그의 통치권이 미치고 있는 한도 내에 있던 이스라엘의 성읍들에게까지도 그의 열의가 퍼져나가게 되었다.
10지파(이스라엘)는 사로잡혀 끌려갔고, 앗수르의 주민들이 그 나라의 전체를 뒤덮고 있지는 못했으므로, 아마도 많은 이스라엘의 성읍들은 유다 왕들의 보호 하에 있었던 것 같다(대하 30:1; 36:6). 요시야는 자기의 개혁을 수행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성읍을 방문하고 있다. 우리의 영향력이 미치는 한도까지, 선을 행하려는 우리의 노력은 행사되어야 하며 사악한 자들의 악이 종말을 고하도록 애써야 한다.
💡 지금까지는 남유다 지역을 중심으로 종교 개혁이 시행되었으나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단과 산당까지도 요시야 왕이 완전히 정리했음.
남유다의 왕이 북이라엘의 영토에까지 종교 개혁을 단행했다는 이러한 사실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이처럼 요시야가 벧엘 지역에까지 종교 개혁을 단행한 것은 북이스라엘이 이미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하고 앗수르의 속국으로 전락하고 만 상황에서 정치적인 마찰까지 무릅쓰고 한 중요한 결단이었다.
(당시 앗수르 상황)
다른 측면에서 볼 때 당시 앗수르는 급격히 부상하고 있었던 바벨론에 의하여 그 세력이 급속히 약하여지고 있었으며 더 나아가 팔레스틴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려운 입장에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요시야는 종교 개혁의 범위를 북이스라엘까지 넓힐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요시야가 북이스라엘 종교 개혁을 벧엘에서 시작한 이유는]
이러한 정치적 역학 관계를 넘어서 여로보암이 금송아지 우상을 이곳에 세운 이후로 벧엘이 우상 숭배의 중심지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벧엘이 남유다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어 북이스라엘 멸망 후 그곳에 이주해 온 이방인들에 의하여 야기된 벧엘의 종교적 혼합주의가 종교 개혁으로 여호와 신앙을 회복한 유다에 다시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었으므로 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하여 과감하게 이 일을 수행하였을 것이다.
[본문에 등장하는 요시야 왕의 철저한 종교 개혁을 표현하는 동사들]
‘헐고(8절)’, ‘불사르고(4,6절)’, ‘빻아서 불사랐더라(6,12절)’
이는 모두 우상의 철저한 궤멸을 위해 요시야가 계속적으로 취하여 온 행동.
요시야는 이러한 과감한 행동을 남유다에서 뿐만 아니라 북이스라엘 우상 숭배의 중심지 벧엘에서까지 행함으로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화시켜 나간 것
1. 그는 산당과 아세라 목상과 더불어 벧엘에 있던 여로보암의 제단을 파괴해 버렸다(15, 16절).
확실히 금송아지는 이미 없어진 것 같다. "오 너 송아지 같은 사마리아여, 너는 쫓겨났도다." 그러나 제단은 있었다. 저 유서 깊은 우상 숭배에 결합된 그 제단은 여전히 사용되어 왔던 것이다.
(1) 바로 그것이 더렵혀졌다(16절).
요시야는 그 산당들에 있는 단 위에 의도적으로 해골을 불사름으로 이를 철저히 부정케 만들었다. 이러한 요시야의 조치는 더 이상 그 단이 성소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한 것.
요시야는, 그의 경건한 신앙심의 열성에서, 우상 숭배의 옛터를 샅샅이 찾았고, 산에 있는 무덤까지 수색하였다. 아마 우상 숭배하던 제사장들이 그 무덤에 매장되어 있었고, 그 무덤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들이 집전하던 제단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너무나 그 제단을 좋아했기 때문에 자기들의 유골이 그 제단 옆에 안치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는 그 무덤을 열고 뼈를 끄집어 내어 "제단에서 그 뼈를 불살랐다." 그것은 산 채로 그 제사장들을 발견했을 경우 요시야가 어떻게 그들을 처치했을까 하는 것을 보여 주는 처사였다(20절).
이와 같이 그는 그 제단을 더럽혀 모독했으며, 그 제단을 가증스럽게 만들었다. "그들의 뼈가 태양 앞에서 뿌려질 것이라" 는 경고가 우상 숭배자들에게 주어져 있었다(렘 8:1, 2). 그때 주어진 경고가 여기서 실행된 사실(" 그들의 죄악이 그들의 뼈에까지 사무치리라" 고 했다. 겔 32:27)은 사후의 형벌에 대한 암시이다. 곧 죄를 짓고 살다가 회개치 않고 죽은 자들이 벌을 받으리라는 사실을 예시한 것이다. 그런 자들의 뼈를 태우는 일이 전부라면 그 형벌은 오히려 가벼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더 무서운 불꽃 가운데서 당할 영혼의 고통을 상징해 준 것이라면(눅 16:24) 그 형벌은 정말 무서운 것이다.
요시야의 행동에서와 같이, 이 일은 매우 갑작스러운 결단의 결과인 것 같다. 우연히 그런 결심을 하고 무덤을 수색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제단이 여로보암에 의해 처음으로 세워졌던 350여 년 전에 이미 이러한 사실이 예고 되었었다(왕상 13:2). 하나님은 언제나 미래를 예견하시고, 때때로 우리에게는 너무나 우연하게 생각되는 것도 확실히 예고해 주신다. "왕의 마음은 여호와의 손 안에 있도다." 요시야 왕의 마음도 그러했다. 그래서 그는("부지 중에" 아 6:12) 이 일을 하려는 뜻을 세우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 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 6절, ‘그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되었더라’
직역하면 ‘하나님의 사람이 선포하였던 여호와의 말씀대로’
’전한(카라)’
한글 개역 성경은 단순히 ‘전한’으로 번역하였으나 이에 해당하는 ‘카라'는 ‘반포하다 (출 33:19), ‘외치다’(삼상 26:14)라는 의미를 가진다. 본문에서 이 단어는 과거 하나님의 사람어 예언한 것어 단지 몇몇 사람들만이 아는 일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주지되도록 공포된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여호와의 말씀을 선포한 주체: ‘하나님의 사람’
⇒ 이 말씀이 인간의 입을 통하여 선포된 것이지만 여호와에게 출처를 둔 것이며 이러한 선언의 배후에 자기의 일꾼을 통하여 일하신 하나님이 계셨음을 강조하고 있다.
[왕상13:1,2 예언의 성취]
북이스라엘 초대 왕 여로보암이 벧엘의 단에서 분향할 때 하나님의 사람이 단을 향하여 한 예언.
이 예언이 300여년이 흐른 뒤 요시야에 의하여 문자 그대로 정확하게 성취된 것.
“단아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저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 제사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라는 사실과 더불어 하나님의 에언은 정확하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인간에게 있어서 300년은 매우 장구한 시간이지만 시간의 창조주로서 시간을 초월하여 계시는 하나님에게 있어서 이러한 시간적 간격은 아무런 장애 요인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장구한 미래에 있을 일까지도 정확히 예언하시며 또한 그 일을 그대로 이루실 수 있었던 것이다.
(2) 그 제단은 파괴되었다.
그는 제단과 그에 달린 모든 부속 시설물을 헐어 버리고(15절) 불에 탈 수 있는 것은 모두 태워버렸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므로, 그는 할 수 있는 한 모든 우상들을 말살했다. 그는 "그것을 빻아서 가루로 만들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날려 보냈다고 했기 때문이다.
2. 그는 "사마리아의 성읍에" (19절) 있는 사탄의 모든 회당들, 곧 산당의 온갖 집들을 파괴해 버렸다.
이스라엘 왕들이 이것들을 세웠다. 그러나 하나님은 유다 왕인 요시야를 들어서 그들을 파괴해 버렸다. 이것은 그 10지파가 배반했던 다윗의 옛 집의 영예를 위해서였다. 그가 그 제사장들을 "그들 자신의 제단에" (20절) 제물로 바친 것은 정당한 처사였다.
💡 23:19 전에 이스라엘 여러 왕이 사마리아 각 성읍에 지어서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산당을 요시야가 다 제거하되 벧엘에서 행한 모든 일대로 행하고
벧엘에서 행한 모든 일 = 15절(산당을 헐고 거기에 있던 우상들을 가루로 만들 일)
대하34:6,7 — 북이스라엘의 개혁 대상 성읍들 소개.
요시야 통치 12년에 종교 개혁을 단행한 사마리아 성읍들을 소개. (므낫세, 에브라임, 시므온, 납달리 및 사면 황폐한 성읍)
23:20 또 거기 있는 산당의 제사장들을 다 제단 위에서 죽이고 사람의 해골을 제단 위에서 불사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
[요시야는 남유다의 산당 제사장들과는 달리 북이스라엘의 산당 제사장들을 모두 죽였음]
이에 대하여 혹자는 요시야가 북이스라엘에 대해 차별 대우를 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요시야의 이런 조치는 남유다의 산당 제사장들과 북이스라엘의 산당 제사장들이 근본적으로 달랐기 때문이다.
남유다의 제사장들: 레위 지파 곧 아론의 자손으로서 하나님을 섬겼으나 일시적으로 우상에 빠진 산당 제사장들이었다.
북이스라엘 제사장들: 레위 지파가 아닌 일반 백성들 중에서 제사장으로 세움 받은 산당 제사장들이었으며 처음부터 우상 숭배를 하였다.
이는 레위 지파 중 아론 자손만이 제사장직을 맡도록 규정하는 출 28:1의 율법을 정면으로 어긴 것 또한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는 우상 숭배에 앞장선 것으로서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북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은 철저한 우상 숭배자였기 때문에 요시야는 우상 숭배자들을 척결하는 율법의 규정에 따라 그들을 죽였던 것이다(출 22:20; 신 17:25). 또한 본사건은 앞서 소개한 바 있는 과거 벧엘에서 예언한 남유다 출신의 무명의 하나님의 사람의 예언을 성취한 것이기도 하다(왕상 13:2).
‘죽이고’
‘원형 ‘자바흐’ : ‘제물로 죽이다’, ‘제사드리다’란 의미의 동사. — 제사와 관련되어 사용되는 전문 용어.
본문에서 ‘자바흐'가 사용된 것은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이 아론의 자손이 아니면서도 산당에서 불법적인 제사를 드렸던 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그들이 그 단 위에서 ‘제물로 드려지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명령한 율법의 말씀을 거스르고 비레위계 지파의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을 뿐 아니라 그들을 통해 우상에게 제사한 것에 대한 엄정한 공의의 심판이다.
3. 그는, 유다로부터 나온 한 왕이 이 일을 이루리라는 사실을 예언하기 위해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의 무덤을 주의 깊게 보존했다.
그 무덤은 바로 "벧엘 제단을 향하여(요시야 왕이) 행한 이 일들을 선포했던"(왕상13:2) 그 선한 (무명의) 예언자의 무덤이었다. (그 묘실이 300여년이 지난 요시야 당시까지 보존되며 누구의 무덤인지가 사람들에게 전해져 왔던 것)
그러나 그 예언자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에 사자에게 물려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그 예언자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하심은 그의 죽음으로 인해 끝나 버렸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하나님은 그의 주위에 있는 무덤이 소란을 당할지라도 그의 무덤만은 안전하게 보존되게 하여(17, 18절), 어떤 사람도 그의 뼈를 옮기지 못하도록 했다.
💡 18절, ‘그 뼈를 옮기지 말라’
요시야 왕의 이 명령은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예우적 조치이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당시 요시야 왕 자신이 한 일을 300여년 전에 이미 예언한 그 사실을 통하여 ⇒ 하나님의 역사의 주인되심과 신실하심을 사람들로 하여금 깨닫도록 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그 예언자는 평화에 들어갔다. 그러므로 그는 그의 침대에서 쉬게 되었다(사 57:2).
저 늙은 거짓 예언자가 가능한 한 그 의로운 예언자 근처에 매장되기를 원했던 것은 그가 미리 자기의 운명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즉 그의 티끌도 그 선한 예언자의 티끌과 함께 있음으로 인해서 그 선한 예언자 덕분으로 잘 보존된 것이다(민 23:10 참조).
💡 요시야가 여로보암 당시 유다로부터 올라와서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한 선지자의 묘실을 보호하도록 하는 이러한 조치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는 그가 비록 마지막에 여호와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사자에게 물려 죽임을 당하였지만 그 예언자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하심은 그의 죽음으로 끝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의 묘실 주위에 있는 무덤이 모두 파헤쳐지고 그 해골조차 단에 불살라지는 지경에 처하도록 심판하셨지만, 자신이 택하셔서 사용하신 하나님의 사람의 뼈는 보존케 하심으로 그가 안식에 들어갔음을 암묵적으로 계시하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