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6월 11일 주일 왕하23:36-27:7 유다 왕 여호야김

Jeehyun 2023. 6. 15. 00:12

주일본문

23:36 여호야김이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스비다라 루마 브다야의 딸이더라

23:37 여호야김이 그의 조상들이 행한 모든 일을 따라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1 여호야김 시대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오매 여호야김이 삼 년간 섬기다가 돌아서 그를 배반하였더니

2 여호와께서 그의 종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갈대아의 부대와 아람의 부대와 모압의 부대와 암몬 자손의 부대를 여호야김에게로 보내 유다를 쳐 멸하려 하시니

3 이 일이 유다에 임함은 곧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들을 자기 앞에서 물리치고자 하심이니 이는 므낫세의 지은 모든 죄 때문이며

4 또 그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려 그의 피가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사하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니라

5 여호야김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6 여호야김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7 애굽 왕이 다시는 그 나라에서 나오지 못하였으니 이는 바벨론 왕이 애굽 강에서부터 유브라데 강까지 애굽 왕에게 속한 땅을 다 점령하였음이더라


●36-37절

 👀 여호야김이 왕으로서 통치한 11년의 기간은(B.C. 609-598년) 바벨론이 강대국으로 급부상하고 앗수르가 쇠퇴하는 등 국제 정세가 급변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시기적 형편을 감안할 때 남유다에서 탁월한 리더십을 지닌 통치자가 더더욱 필요하다는 것은 자명한 것이었다. 그러나 여호야김은 그런 인물이 되지 못하였다.

이는 그가 본래 여호아하스보다 나이가 위인 형이었음에도 유다 백성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즉 그는 정치적 능력이나 인품 등의 측면에서 동생보다 뛰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따라서 백성들은 그를 외면하고 그의 동생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삼았는데 그런 그를 애굽 왕 바로느고가 자신의 꼭두각시처럼 사용하기 위해 괴뢰 정권의 왕으로 선택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악화되어가는 남유다의 정치적 현실과 이후 이루어지는 여호야김의 악정에 대한 묘사를 통해 본서 저자는 남유다의 최종적 운명에 대하여 훌다가 예언했던 말씀(22:16~20)들이 현실화되어 가는 것을 암묵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 23:37 여호야김이 그의 조상들이 행한 모든 일을 따라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본절은 남유다 제 18대 왕 여호야김의 행적에 대한 간략한 평가.

본장에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여호야김의 악행은 렘 22:13; 26:20-23; 36:9-26에 잘 나타나 있다.

[렘22:13, 15] 13 불의로 그 집을 세우며 부정하게 그 다락방을 지으며 자기의 이웃을 고용하고 그의 품삯을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15 네가 백향목을 많이 사용하여 왕이 될 수 있겠느냐 네 아버지가 먹거나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 때에 그가 형통하였었느니라

[렘26:20-23] 20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한 사람이 있었는데 곧 기럇여아림 스마야의 아들 우리야라 그가 예레미야의 모든 말과 같이 이 성과 이 땅에 경고하여 예언하매 21 여호야김 왕과 그의 모든 용사와 모든 고관이 그의 말을 듣고서 왕이 그를 죽이려 하매 우리야가 그 말을 듣고 두려워 애굽으로 도망하여 간지라 22 여호야김 왕이 사람을 애굽으로 보내되 곧 악볼의 아들 엘라단과 몇 사람을 함께 애굽으로 보냈더니 23 그들이 우리야를 애굽에서 연행하여 여호야김 왕에게로 그를 데려오매 왕이 칼로 그를 죽이고 그의 시체를 평민의 묘지에 던지게 하니라 

[렘36:9-26]
9 유다의 요시야 왕의 아들 여호야김의 제오년 구월에 예루살렘 모든 백성과 유다 성읍들에서 예루살렘에 이른 모든 백성이 여호와 앞에서 금식을 선포한지라 10 바룩이 여호와의 성전 위뜰 곧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새 문 어귀 곁에 있는 사반의 아들 서기관 그마랴의 방에서 그 책에 기록된 예레미야의 말을 모든 백성에게 낭독하니라 11 사반의 손자요 그마랴의 아들인 미가야가 그 책에 기록된 여호와의 말씀을 다 듣고 12 왕궁에 내려가서 서기관의 방에 들어가니 모든 고관 곧 서기관 엘리사마와 스마야의 아들 들라야와 악볼의 아들 엘라단과 사반의 아들 그마랴와 하나냐의 아들 시드기야와 모든 고관이 거기에 앉아 있는지라 13 미가야가 바룩이 백성의 귀에 책을 낭독할 때에 들은 모든 말을 그들에게 전하매 14 이에 모든 고관이 구시의 증손 셀레먀의 손자 느다냐의 아들 여후디를 바룩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백성의 귀에 낭독한 두루마리를 손에 가지고 오라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두루마리를 손에 가지고 그들에게로 오니 15 그들이 바룩에게 이르되 앉아서 이를 우리 귀에 낭독하라 바룩이 그들의 귀에 낭독하매 16 그들이 그 모든 말씀을 듣고 놀라 서로 보며 바룩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모든 말을 왕에게 아뢰리라 17 그들이 또 바룩에게 물어 이르되 너는 그가 불러 주는 이 모든 말을 어떻게 기록하였느냐 청하노니 우리에게 알리라 18 바룩이 대답하되 그가 그의 입으로 이 모든 말을 내게 불러 주기로 내가 먹으로 책에 기록하였노라 19 이에 고관들이 바룩에게 이르되 너는 가서 예레미야와 함께 숨고 너희가 있는 곳을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 하니라 20 그들이 두루마리를 서기관 엘리사마의 방에 두고 뜰에 들어가 왕께 나아가서 이 모든 말을 왕의 귀에 아뢰니 21 왕이 여후디를 보내어 두루마리를 가져오게 하매 여후디가 서기관 엘리사마의 방에서 가져다가 왕과 왕의 곁에 선 모든 고관의 귀에 낭독하니 22 그 때는 아홉째 달이라 왕이 겨울 궁전에 앉았고 그 앞에는 불 피운 화로가 있더라 23 여후디가 서너 쪽을 낭독하면 왕이 칼로 그것을 연하여 베어 화로 불에 던져서 두루마리를 모두 태웠더라 24 왕과 그의 신하들이 이 모든 말을 듣고도 두려워하거나 자기들의 옷을 찢지 아니하였고 25 엘라단과 들라야와 그마랴가 왕께 두루마리를 불사르지 말도록 아뢰어도 왕이 듣지 아니하였으며 26 왕이 왕의 아들 여라므엘과 아스리엘의 아들 스라야와 압디엘의 아들 셀레먀에게 명령하여 서기관 바룩과 선지자 예레미야를 잡으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그들을 숨기셨더라

그는 애굽 왕에 의해 유다의 왕으로 즉위한 관계로 애굽의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고 백성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고 자신을 지지하는 애굽 왕의 선심을 얻기 위한 정책을 고수했다. 그는 자기를 위하여 백성들에게서 혈세를 뜯어내 궁을 짓고 선지자들과 의인들을 협박하고 죽이기까지 하였다(렘 22:13, 15).

예레미야는 이런 그를 가리켜 무죄한 피를 흘리고 압박과 강포를 행하려 할 뿐이라고 맹렬히 비난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런 선지자의 비난과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두루마리를 듣고 칼로 잘라 불살라 버림으로 하나님 말씀을 철저히 무시하고' 회개의 기회마저 상실했던 것이다(렘 36:21-32).

[렘36:21-32] 21 왕이 여후디를 보내어 두루마리를 가져오게 하매 여후디가 서기관 엘리사마의 방에서 가져다가 왕과 왕의 곁에 선 모든 고관의 귀에 낭독하니 22 그 때는 아홉째 달이라 왕이 겨울 궁전에 앉았고 그 앞에는 불 피운 화로가 있더라 23 여후디가 서너 쪽을 낭독하면 왕이 칼로 그것을 연하여 베어 화로 불에 던져서 두루마리를 모두 태웠더라 24 왕과 그의 신하들이 이 모든 말을 듣고도 두려워하거나 자기들의 옷을 찢지 아니하였고 25 엘라단과 들라야와 그마랴가 왕께 두루마리를 불사르지 말도록 아뢰어도 왕이 듣지 아니하였으며 26 왕이 왕의 아들 여라므엘과 아스리엘의 아들 스라야와 압디엘의 아들 셀레먀에게 명령하여 서기관 바룩과 선지자 예레미야를 잡으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그들을 숨기셨더라 27 왕이 두루마리와 바룩이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 기록한 말씀을 불사른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8 너는 다시 다른 두루마리를 가지고 유다의 여호야김 왕이 불사른 첫 두루마리의 모든 말을 기록하고 29 또 유다의 여호야김 왕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이 두루마리를 불사르며 말하기를 네가 어찌하여 바벨론의 왕이 반드시 와서 이 땅을 멸하고 사람과 짐승을 이 땅에서 없어지게 하리라 하는 말을 이 두루마리에 기록하였느냐 하도다 30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유다의 왕 여호야김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그에게 다윗의 왕위에 앉을 자가 없게 될 것이요 그의 시체는 버림을 당하여 낮에는 더위, 밤에는 추위를 당하리라 31 또 내가 그와 그의 자손과 신하들을 그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벌할 것이라 내가 일찍이 그들과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에게 그 모든 재난을 내리리라 선포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32 이에 예레미야가 다른 두루마리를 가져다가 네리야의 아들 서기관 바룩에게 주매 그가 유다의 여호야김 왕이 불사른 책의 모든 말을 예레미야가 전하는 대로 기록하고 그 외에도 그 같은 말을 많이 더 하였더라

●포로가 된 여호야김 왕(열왕기 하 24:1-7)

💡 [본서 18-25장 개관]

앗수르에 의한 복왕국 이스라엘의 멸망으로 남북 분열 왕국의 역사가 종결되고 남유다만 남은 상황에서 남유다가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하기까지의 열왕들의 사적을 기록.

이 시대에 남왕국을 통치한 왕은 제13대 왕 히스기야부터 제20대 왕 시드기야까지 도합 8명이다.

그 가운데 본장(24장)과 본서의 마지막 장인 25장은 바벨론의 침공으로 남유다마저 역사에서 사라지고마는 남유다의 멸망기의 세 왕인 제18대 여호야김과 제19대 여호야긴, 제20대 시드기야 왕의 통치 시기의 암울했던 남유다의 역사를 다룬다.

앞선 22장과 23장에서는 제16대 왕 요시야의 철저한 종교 개혁의 과정을 소개하면서, 그의 그러한 종교 개혁에도 불구하고 제14대 왕 므낫세 때에 선포되어진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돌이킬 수 없었음을 보도하였다.

이제 이에 이어지는 본장은 요시야 이후 남유다 말기의 세 왕들의 거듭된 악정과 하나님의 징계의 도구로 사용된 바벨론 제국의 3차에 걸친 침입 사실을 보도으로써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예언(22:16-17)이 구체적으로 역사 가운데 실현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본장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1-7절 : 남유다 제18대 왕인 여호야김 시대의 2차에 걸친 바벨론의 침공에 대해서,
8-17절 : 남유다 제19대 왕인 여호야긴 시대의 제3차 바벨론 침공과 남유다 포로 이송에 대해서,
18-20절 : 바벨론에 의해 세워진 남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의 통치 개요와 기본 평가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특히 18-20절은 바벨론의 제4차 침공과 남유다의 최종적 멸망이 기록된 제25장과 밀접한 연관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24장의 의의]

본장은 이러한 남유다 왕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일찍이 선지자를 통한 예언과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의 성취임을 여러 차례 거듭 기술하여 강조(2.3.13.20절).

이처럼 본서 저자가 본장에서 므낫세 때에 확정된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의 성취라는 측면에서 거듭 강조하는 이유는 이렇게 심판을 선언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악을 자행하는 유다 말기 왕들의 죄악을 더욱 극명하게 부각시켜 주는 기능을 수행.

[이러한 본문의 표현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은] 때가 되면 반드시 구체적으로 성취된다는 사실을 드러내 주는 것이기도 하다.



[당시 역사적 배경/국제정세]

여호야김 시대의 2차에 걸친 바벨론의 남유다 침공 사건을 다루고 있는 1-7절의 내용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좀더 자세한 지식이 필요하다.

남유다 제 18대 왕 여호야김이 등극한 B.C. 609년의 시기는 애굽, 앗수르 연합군과 바벨론의 군대가 서로 메소포타미아의 패권을 놓고 각축을 벌이던 시기였다. 그런데 B.C. 605년 바벨론은 유브라데 서편의 갈그미스 전투에서 앗수르를 도우러 온 애굽 군대와 맞서 싸워 대승함으로써, 앗수르를 멸망시키고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패권을 차지할 수 있었다. 즉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은 애굽의 바로느고와 앗수르를 격파함으로써 당대 최고의 강대국이 된 것이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남하하면서 남유다를 비롯한 팔레스틴의 각국을 침공하였는데, 바로 이때 남유다에 대해 이뤄진 공격이 바벨론의 제1차 유다 침공이다. 당시 바벨론은 이 지역에서의 애굽의 영향력을 제거하여 이곳을 자신의 세력권 하에 두기 위하여 팔레스틴의 각 나라들을 침공하였다. 이러한 국제 정세는 애굽의 봉신 여호야김으로 하여금 새로운 열강인 바벨론에게 굴복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대하 36:5-8).

특히 대하 36:6에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와 치고 저를 쇠사슬로 결박하고 바벨론으로 잡아가고'란 언급이 나온다. 이 구절과 관련하여서는 크게 다음의 세가지 견해가 있다. 여호야김이 쇠사슬에 결박되어 바벨론까지 잡혀갔다는 견해도 있고, 둘째로 당시 순회 중에 었었던 느부갓네살에게 끌려갔다는 견해도 있으며, 마지막으로 협박하기 위하여 단순히 쇠사슬로 결박하였을 뿐이라는 견해도 있다. 여호야김이 계속하여 유다를 다스렸고 또 바벨론을 배반하였던 것으로 보아 여호야김을 포로로 골고간 것은 그를 위협하기 위한 시도 정도로 풀이된다.

그리고 대하 36:7과 단 1:1-7에 나와 있듯이 이때 성전의 기물이 탈취당하고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등 왕족과 귀족들이 바벨론에 볼모로 잡혀갔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제1차 바벨론 포수이다. 이러한 바벨론의 강력한 압박을 계기로 유다는 바벨론의 봉신 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이로부터 3년이 지난 B.C. 602년 느부갓네살의 애굽 공격이 실패하자 여호야김은 에굽에 원조를 기대하여 바벨론에 반역하고 말았다. 당시 애굽은 비록 바벨론의 공격을 막아내기는 하였으나 혼란스러운 국내 정세로 인하여 바벨론에 반역한 남유다를 도울 만한 힘이 없었고, 결국 남유다는 멸망의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이처럼 여호야김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애굽의 도움을 기대하여 바벨론을 반역한 것은 → 궁극적으로 느부갓네살을 남유다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의 결과로 볼 수 있다.
 💡 [24:1 — 바벨론의 제1차 침입]

여호야김은 23:34에 기록되어 있듯이, 애굽의 바로느고에 의해 추대되어 왕위에 오른 자였다. 따라서 그는 애굽의 강한 영향력을 통치 기간 내내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반바벨론 정책을 취하였고 느부갓네살은 이에 대하여 크게 불쾌하게 생각하여 유다를 침입하기에 이르렀던 것.

여호야김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봉신이 되었음. 이는 그가 바벨론의 무력 앞에 완전히 굴복했음을 보여준다. 
 💡 [24:2-4 바벨론 2차 침공]

그런데 그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봉신이 된지 3년 만에(B.C. 602) 그를 배반하게 된다. 이는 여호야김의 심리적 변화에 따른 것이 아니라, 당시 국제 정세의 변화 때문으로 볼 수 있다. B.C. 602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군사를 일으켜 애굽의 바로느고 2세와 전쟁을 벌였는데, 일차적으로 이 전쟁은 애굽의 우세로 진행되었으며 바벨론은 많은 군사적 손실을 입었다. 친애굽 성향이 강하였던 여호야김은 바로 이 시기를 바벨론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희로 판단하고 반(R)바밸론 정책을 편 것이다. 그러자 느부갓네살은 같대아 연합군을 편성하여 남유다를 재침공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남유다에 대한 바벨론의 2차 침공이다.

2절, ‘배반하였더니’

배반하였더니
이에 해당하는’와이므라드’의 원형 ‘마라드’는 **‘반역하다’, ‘모반하다’**는 의미. 이 동사는 사람에 대한 반역과 하나님에대한 반역을 나타낼 때 모두 사용되나, 사람과 관련하여서는 특히 왕권에 대한 반역을 묘사하는 데 주로 사용됨. 본몬의 여호야김의 행동이나 더 나아가 바벨론에 항거하는 시드기야의 행동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도(20절; 대하 36:13; 렘 52:3; 겔 17:15) 이러한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본서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예레미야서에 의하면 → 당시 예레미야는 여호야김에게 바벨론을 섬기라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였다.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친애굽파의 의견을 좋아 바벨론에 항거한 것은 다름아닌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본문에 사용된 ‘와이므라드'에는 이러한 부정적 의머가 포함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앞선 부분: 바벨론의 제1차 침공시 항복하였던 여호야김이 3년이 지나 바벨론이 일시적으로 힘이 약하여지자 배반하였음을 기록하였다.
이제 2-4절: 이에 바밸론이 연합군을 구성하여 남유다를 친 사실을 보도.

본서 저자는 — 이를 단순히 국제적인 분쟁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므낫세의 악행에 대한 여호와 심판 예언의 성취라는 신학적 입장에서 해석한다. 본절은 유다를 쳐 멸하는 주체가 바벨론이 아니라 여호와란 사실과 더불어 여호와께서 이미 그 종선지자들로 하여금 유다에 대한 심관을 예고하셨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

⇒ 이 세상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라는 것과
⇒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에게는 축복이 임하고 불순종하는 자에게 재앙이 임한다는 본서 저자의 신명기적 역사관이 잘 드러난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유다를 괴롭혀서 고통을 당하게 하는 데는 두 가지 의도가 있었다.

1. 므낫세의 죄악을 벌하시려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은 그의 죄를 "삼 사대에서" 벌하시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혹시 회개하는지를 알아보시기 위해서, 그들을 벌하기 전에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리셨던 것이다.

그러나 요시야 왕이 그들을 개혁하려는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조금도 뉘우치지 않았으며, 오히려 옛날로 돌아가 과거의 우상 숭배를 다시 끌어들이고 있었다. 이제 그들이 옛 습관으로 옷을 갈아 입게 되었으니, 옛 심판을 다시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쌓아두시고" "그의 곳간에다 봉인하셨던" 바를 다시 꺼내 놓으신 것이다(신 32:34; 욥 14:17). 또한 그것을 기억함으로써 하나님은 유다를 당신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하셨고, 온 세상에 "시간이 죄악의 형벌을 없어지게는 못한다" 는 사실을 알게 하셨다. 그리고 집행 유예는 결코 용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세상에다 알게 하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므낫세가 행한 모든 악행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특히 "그가 흘렸던 무죄한 자들의 피" 를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 중의 대부분이 "하나님의 증인들과 예배자들의 피" 였을 것이다. "여호와는" 그런 죄를 "용서하실 수 없다."

그렇다면,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다만 성령을 거역하는 불경죄 외에도 또 있다는 것인가? 여기서 말하는 용서란 현세적 형벌에 대한 용서를 뜻한다. 므낫세는 회개했다. 그러므로 그가 범죄한 종교적 박해나 살인죄는 당연히 용서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그는 닥쳐 올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제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죄들은 민족적인 죄악들이었으므로, 그 나라가 책임을 져야 하며, 민족적 심판은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아마 당시에 생존해 있는 자들 중에는 그같은 범행에 협력했던 자도 있었을 것이다. 예레미야 22장 7절에 나타난 바대로 당시의 왕도 또한 무죄한 사람들의 피를 흘리는 죄악을 범했던 것이다. 살인죄란 하나님을 얼마나 분노케 하는 죄악이며, 얼마나 큰 소리로 그리고 얼마나 오랫동안(그 복수를) 울부짖는 죄악인가를 깨닫자. 민족들이 자기들의 선조의 죄악으로 인하여 형벌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 선조들의 죄악을 얼마나 애통해야 하는가를 분명히 알자.

이로써 하나님은 예언의 성취를 의도하셨던 것이다.

이러한 사건은 바로 "여호와께서 그의 종 예언자들을 통해서 하신 여호와의 말씀에 따라서" 된 일이었다.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가 땅에 떨어지기보다는, 유다가 "하나님의 눈 앞에서 사라지게 되고" "천지가 없어지는" 것이 더욱 쉬운 일이다. 죄인들이 회개하여 막지 않는다면, 경고도 약속처럼 확실히 실현되고 말 것이다.

💡 24:2 여호와께서 그의 종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갈대아의 부대와 아람의 부대와 모압의 부대와 암몬 자손의 부대를 여호야김에게로 보내 유다를 쳐 멸하려 하시니

[본절에서 말하는 ‘선지자들’과 하나님 예언의 성취]

남유다의 멸망을 예언했던 선지자들 곧 이사야, 미가, 하박국, 예레미야, 스바냐, 홀다 등을 가리킨다.
그런데 본절 기사는 정작 남유다 멸망 자체를 기록한 구절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유다 멸망을 에언한 선지자들로 하신 말씀을 상기시키는 것은 본문에서 여호야김이 느부갓네살을 배반하여 같대아 연합군의 침입을 당한 것이 남유다 멸망의 전조가 되고 있음을 암시하기 위함이다(20:17). 즉 오래 전부터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된 남유다에 대한 심판이 이제 바밸론 1차 침공에 이어 제2차 침공으로 서서히 성취되고 있옴을 나타낸다.

[본문은 여호와께서 직접 연합군을 여호야김에게 보내신 것으로 기록]

본문은 바벨론의 제2차 유다 침공이 갈대아, 아람, 모암 그러고 암몬의 대규모 연합군에 의하여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여기에 나열된 국가는 이미 바벨론의 속국으로 전락한 국가들로서 남유다 원정시 바벨론에 의하여 동원된 군대들이다.
그런데 본문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이들 군대를 파견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이 연합군을 여호야김에게 보내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호야김에게로” ‘~에 대항하여(against)’ + 여호야김을 지칭하는 3인칭 남성 대명사 접미어 → 여호와께서 여호야김을 대적하시기 위해서 갈대아 연합군을 보내셨음.
본문은 표면적으로는 당시 근동의 최강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역사를 좌지우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단지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할 뿐 실제로는 만군의 여호와가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보여준다. 또한 이처럼 여호와께서 그의 소유된 백성들을 치시는 것은 앞서 언급한 대로 므낫세의 범죄에 대한 심판인 동시에, 여호야김의 악행에 대한 심판이기도 하다. 공의의 하나님께서 거듭되는 범죄를 용서치 않으시고 당대 최강대국인 바벨론을 들어 그들을 쳐 멸하심으로 그들을 철저히 응징하신 것이다.

“멸하려 하시니”
여호야김 시대에 내려진 하나님의 심판은 근본적으로 남유다가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임. 
 💡 24:3 이 일이 유다에 임함은 곧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들을 자기 앞에서 물리치고자 하심이니 이는 므낫세의 지은 모든 죄 때문이며

‘이 일이 유다에 임함은’
여기서 저자는 하나님께서 바벨론 연합군을 통해 남유다를 치신 것은 남유다 제14대 왕 므낫세의 죄악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음을 명확히 한다. 남유다에 임한 바벨론의 연합군의 침공이란 충격적 사건이 21:10-15에 예언된 바대로, 므낫세로 대표되는 남유다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결과로 발생한 것임을 명확히 보여주기 위하여 사용된 표현.

‘곧 여호와의 명하신 바로’
직역하면, ‘단지 여호와의 입술로 인하여’
여기서 한글 개역 성경이 정확히 번역하지 않은 ‘단지’ —‘오로지’라는 뜻. 다른 경우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기능.

‘여호와의 입술로 인하여'
신인동형론적 표현. 이는 남유다에 임한 충격적 상황이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술로 전해진 분명하고 생생한 명령에 의해 발생한 결과임을 나타낸다.

‘저희를 자기 앞에서 물리치고자 하심이니’
본문은 남유다 백성들을 여호와 당신의 면전에서 떠나게 만들겠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는 바벨론에 의한 유다 침공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에서 유다 백성들이 떠나게 되는 포로 사건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에 더이상 거하지 못하고 이방에 포로로 골려간다는 것은 =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특권 상실을 의미 하나님께서는 이미 북이스라엘을 외면하신데 이어 여호와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사람이 세운 것을 따랐던 남유다까지 외면하여 노략군의 손에 붙이시며 당신 앞에서 쫓아내시기로 작정하셨던 것이다(17:19,20).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의 택한 백성들을 당신의 면전에서 떠나게 하시는 것은 완전히 그들을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이방 포로 생활을 통해 그들로 하여금 당신의 유일하심과 사랑을 깨닫고 돌아오도록 하려는 교육적인 목적에 따른 것이다.

‘이는 므낫세의 지은 모든 죄로 인함’
므낫세의 모든 죄(21장)를 열거함.

[왜 므낫세 사후 50년이 지난 시점에 멸망하게 하셨는가?]

이는 일차적으로 오래 참으시며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 의 자비하심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와 더불어 열왕기서에서는 명시적으로 기록되지 않았지만 역대기에 기록된 바, 므낫세가 하나님의 치심을 받아 쇠사슬에 결박되어 바벨론에 끌려갔으나 저가 환난을 당하여 크게 희개하였기 때문으로 볼 수도 있다. — 즉 그의 겸비한 회개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는 므낫세가 예루살렘에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하셨을 뿐 아니라 그후 므낫세가 종교 개혁을 일으키는 등 당신의 뜻에 합당하게 살자(대하 33:10-20) 그의 당대에는 심판을 내리시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11과 23:26 및 본절에서 유다 멸 망의 원인으로 므낫세의 범죄를 거듭 언급하는 것은 ⇒ 므낫세의 범죄가 그 어느 왕의 범죄보다 심각하여 유다 백성들로 깊은 죄의 수렁에 빠지게 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면모를 완전히 상실하도록 만둘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문은 므낫세 개인만의 죄악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즉 단순히 므낫세가 범한 과거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무고한 남유다 백성들이 함께 희생을 당한다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본문에서 저자가 ‘므낫세의 죄'를 언급한 것은 단지 심판 받아 마땅한 남유다 전체의 죄악을 므낫세의 이름과 연결시켜 그 죄의 심각함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기 위함이며, 이미 사회 전반에 팽배해 있는 우상 숭배를 므낫세가 조장•주도했다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함이다(21:9). 따라서 여호와의 진노와 그 진노의 결과인 바밸론의 유다 침공은 므낫세만의 책임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므낫세의 죄를 계속 반복하였던 남유다 백성 전체의 책임이다. 
👀 23:4 또 그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려 그의 피가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사하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사하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용서하지 않으시기로 스스로 작정하셨음. 본문이 죄인을 용서하는 데 인색한 하나님이나 인간을 마음대로 다루는 변덕스러운 하나님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본문의 말씀 이전에 왕상 13:23에서 ‘멸하기를 즐겨 아니하시고’ 라는 말씀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먼저 주어졌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조상들과의 언약을 근거로 해서, 이스라엘 백성둘의 거듭되는 죄악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멸하시기보다는 오허려 은혜와 긍휼을 베푸사 그들이 돌이키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거듭되는 은혜와 긍휼에도 이스라엘이 돌이키기는 커녕 더욱 패역해져 가자 결국 하나님은 징계의 채찍을 드신 것이 다. 따라서 본문은 당시 남유다의 죄악이 극에 달하여 심판을 결행하지 않으면 안되는 지경에 처해 있음을 시사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Ⅲ. 애굽 왕도 역시 바벨론 왕에게 정복당했다.

바벨론 왕이 그 나라의 대부분을 점령해 버렸다(7절). 아주 근래에 바로는 이스라엘을 압제하고 있었다(23:33). 그러나 이제는 그 자신이 몰락하여, 잃어버린 영토를 회복하거나 동맹국의 원조를 받기 위해서 아무런 조처도 취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감히 "자기 나라에서 나올 수도" 없었다. 그후 그는 시드기야 왕에게 어떤 구조를 줄려고 시도했었으나,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렘 37:7).

Ⅳ. 여호야김은 자기의 나라가 황폐하게 되고, 자기 자신도 이제 적의 수중에 떨어지게 됨을 알고는, 괴로워하던 나머지(아마 그런 것 같다) 한창 나이에 죽었다(6절). 그래서 "여호야김은 그의 열조와 함께 잠들었다."

그러나 그가 "그들과 함께 장사되었다" 하는 말은 없다. 그 이유는, 예레미야의 예언이 분명히 성취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는 그가 그의 아버지 때처럼 애곡을 받지도 못할 것이요, "나귀같이 매장함을 당하여" (렘 22:18, 19), 그의 시체는 버림을 받으리라고 했었다(렘 3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