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사무엘하 11, 고린도후서 4, 에스겔 18, 시편 62, 63
묵상구절
1 솔로몬이 여호와의 전과 자기의 궁궐을 이십 년 동안에 건축하기를 마치고
2 후람이 솔로몬에게 되돌려 준 성읍들을 솔로몬이 건축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거기에 거주하게 하니라
3 솔로몬이 가서 하맛소바를 쳐서 점령하고
4 또 광야에서 다드몰을 건축하고 하맛에서 모든 국고성들을 건축하고
5 또 윗 벧호론과 아랫 벧호론을 건축하되 성벽과 문과 문빗장이 있게 하여 견고한 성읍으로 만들고
6 또 바알랏과 자기에게 있는 모든 국고성들과 모든 병거성들과 마병의 성들을 건축하고 솔로몬이 또 예루살렘과 레바논과 그가 다스리는 온 땅에 건축하고자 하던 것을 다 건축하니라
7 이스라엘이 아닌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남아 있는 모든 자
8 곧 이스라엘 자손이 다 멸하지 않았으므로 그 땅에 남아 있는 그들의 자손들을 솔로몬이 역군으로 삼아 오늘에 이르렀으되
9 오직 이스라엘 자손은 솔로몬이 노예로 삼아 일을 시키지 아니하였으니 그들은 군사와 지휘관의 우두머리들과 그의 병거와 마병의 지휘관들이 됨이라
10 솔로몬 왕의 공장을 감독하는 자들이 이백오십 명이라 그들이 백성을 다스렸더라
11 솔로몬이 바로의 딸을 데리고 다윗 성에서부터 그를 위하여 건축한 왕궁에 이르러 이르되 내 아내가 이스라엘 왕 다윗의 왕궁에 살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궤가 이른 곳은 다 거룩함이니라 하였더라
12 솔로몬이 낭실 앞에 쌓은 여호와의 제단 위에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되
13 모세의 명령을 따라 매일의 일과대로 안식일과 초하루와 정한 절기 곧 일년의 세 절기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드렸더라
14 솔로몬이 또 그의 아버지 다윗의 규례를 따라 제사장들의 반열을 정하여 섬기게 하고 레위 사람들에게도 그 직분을 맡겨 매일의 일과대로 찬송하며 제사장들 앞에서 수종들게 하며 또 문지기들에게 그 반열을 따라 각 문을 지키게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전에 이렇게 명령하였음이라
15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국고 일에든지 무슨 일에든지 왕이 명령한 바를 전혀 어기지 아니하였더라
16 솔로몬이 여호와의 전의 기초를 쌓던 날부터 준공하기까지 모든 것을 완비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전 공사가 결점 없이 끝나니라
17 그 때에 솔로몬이 에돔 땅의 바닷가 에시온게벨과 엘롯에 이르렀더니
18 후람이 그의 신복들에게 부탁하여 배와 바닷길을 아는 종들을 보내매 그들이 솔로몬의 종들과 함께 오빌에 이르러 거기서 금 사백오십 달란트를 얻어 솔로몬 왕에게로 가져왔더라
매튜헨리/옥스퍼드
●솔로몬이 세운 도성들(역대하 8:1-11) (옥스퍼드)
서론
💡 지금까지 1-7장에서는 성전 건축 준비와 진행 그리고 마감이라는 틀을 중심으로 솔로몬의 통치가 기술되었다.
이제 본장(8장)은 솔로몬의 기타 건축 사업과(1-11절) 그의 경건한 신앙적 면모와 대외 교역을(12-18절) 다룸으로써 이스라엘이 대내외적으로 번영과 영광을 구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역대기 저자의 관점, 특징
본서의 저자는 열왕기 저자와는 달러 다윗의 언약과 성취라는 관점하에서 — 시종일관 솔로몬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부언하면 역대기 기자의 관점에서 이러한 솔로몬의 번영에 대한 기록은
⇒ 솔로몬의 충성된 섬김으로 인해 하나님이 그에게 축복을 부어주신 증거라 할 수 있다.
❖ 1-6절 솔로몬 신정통치의 최전성기를 이루는 강성한 면모
💡 1 솔로몬이 여호와의 전과 자기의 궁궐을 이십 년 동안에 건축하기를 마치고
📌 왕상9:10 강해,
본단락
이 단락은 성전 건축이 시작되기 직전의 상황에서 이루어진 양자간의 조약이 체결된 사실을 다룬 5:1-12 단락과 대구를 이루면서, 치세 초기와는 달라진 솔로몬 왕국의 변화를 보여준다.
처음의 관계(5:1-12)가 평등과 만족의 관계로 규정될 수 있다면,
본단락에 나타난 관계는 불평등과 불만족의 관계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이다.
⇒ 그런 의미에서 이 단락은 솔로몬 왕국이 최고 번영기를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죄악을 암시하는 불안한 요소를 내재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할수 있다.
히람에 대한 솔로몬의 보상이 이루어진 시간적 배경
솔로몬이 성전과 궁전 건축을 마감한 시점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는 성전 봉헌에 즈음해 드린 솔로몬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 의 응답이 성전 완공 직후에 주어지지 않고 왕궁 건축까지 완료된 이후에 주어졌던 사실(1절)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다. 즉 저자는 솔로몬 왕국의 외교적 문제점이 성전 건축과 왕궁 건축이 완료된 시점에서 점진적으로 발생하였음을 의도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외교적 문제점은 솔로몬의 이기심과 부덕함에서 발생한 것으로서, 급기야 하나님과의 언약도 어길 수 있 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는 것이다.
2 후람이 솔로몬에게 되돌려 준 성읍들을 솔로몬이 건축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거기에 거주하게 하니라
⇒ 솔로몬이 성전과 궁전 건축을 마감하고 후람이 돌려준 성읍들까지 재건했던 업적을 나타냄.
💡3 솔로몬이 가서 하맛소바를 쳐서 점령하고
⇒ 솔로몬 왕의 이방 원정 정벌 기사
‘쳐서 점령하고’
▶︎ 이스라엘 왕국의 강성함
본문에는 솔로몬이 하맛소바를 단순히 점령한 사실 뿐만 아니라 솔로몬이 강력한 군사적 능력과 정치적 역량까지 발휘했다는 사실까지 함축되어 있다.
‘하맛소바’
하나의 지명이 아니라, ‘소바' 왕국과 + ‘하맛' 왕국을 결합하여 표현한 것(Payne).
그런데 이처럼 두 지역을 ‘하맛소바'라고 하나의 지명처럼 언급한 이유는 역대기 당시에 이 지역이 페르시아(Persia)에 의해 하나로 합쳐졌기 때문으로 추정된다(Payne).
‘소바' 왕국 : 다메섹의 동복 방향, 하맛의 남쪽에 위치한 수리아 사람들의 왕국(대상 18:3).
‘하맛' 왕국 : 소바 왕국과 인접한 아람 사람들의 왕국으로 다윗 시대에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고 계속 조공을 바쳐왔다(삼하 8:9-12).
본문은 열왕기 병행 문단에는 없는 기록.
오히려 열왕기는 이 부분에서 애굽 왕 바로가 이스라엘 일부 지역을 침략한 사실 기록하고 있다(왕상 9:16). 이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평화의 사람•으로 상정되었던 솔로몬 왕이(대상 22:9) 군사적 정복을 단행하였다는 본문의 기록은 모순된 것으로서 역대기 기자가 없는 사실을 꾸며내어 삽입한 것이라고 말한다(Kittel, Curtis). 그러나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 영역이 이미 ‘하맛'까지 미쳤고(7:8) ‘소바' 왕국이 다윗 때부터 조공을 받쳤던 사실을 미루어 보건대(삼하 8:9-12), 하맛소바가 이전의 봉신관계를 어기고 반역했기 때문에 솔로몬이 정벌에 나선 것으로 본문을 이해할 수 있다(Keil, Payne).
4 또 광야에서 다드몰을 건축하고 하맛에서 모든 국고성들을 건축하고
‘다드몰’
당시 다메섹 동북방 약 240km, 즉 유브라데 강변에 있는 마리(Mari)에 이르는 대상로 한가운데 위치한 대상무역 도시(Payne).
로마 시대에 는 ‘팔미라(Palmyra)’ 라는 이름으로 알려짐,
‘팔미라’ 는 대추야자나무의 일종. 이는 ‘다드몰' 이 사막 한가운데 대추야자나무, 즉 중려나무가 우거전 오아시스에 위치했음을 암시한다. 따라서 이 지역은 왕국의 북동 지역을 위한 전초기지로 최적의 장소였을 것이다.
‘하맛에서 모든 국고성들을 건축하고’
하맛 솔로몬이 국고성을 건설한 장소인 ‘하맛 (Hamath) '은 이미 앞서 언급되었다(3절). ‘하맛’은 당시 중요한 육상 무역을 위한 거점 도시였다. 역대기 기자는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 영역이 ‘하맛'까지 미쳤다고 여러 차례 기록하고 있는데 이 역시 이 도시가 당시 중요한 거점이었음을 암시한다(7;8; 대상 13;5; 18;3). 국고성 ‘나라의 필요한 물품들을 비축하는 장소', 본문에서는 양곡 및 무기를 보관했던 장소로 추정된다.
➤ 이처럼 본절에서 역대기 기자는 솔로몬이 장악한 무역로를 기록
메소포타미아와의 무역을 위해 ‘사막의 지름길' 이었던 ‘다드몰(Tadmor)'과 중요한 ‘육상 무역로'에 위치한 ‘하맛'을 점령하였던 것을 강조해서 기록하고 있다. 이
러한 무역로의 장악은 바로 ⇒ 솔로몬의 부와 명에로 어어졌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5 또 윗 벧호론과 아랫 벧호론을 건축하되 성벽과 문과 문빗장이 있게 하여 견고한 성읍으로 만들고
‘벧호론’
‘호론신의 집’ 이란 의미, 에브라임의 딸 세에라가 세운 성읍으로 소개된다(대상 7:24). 이곳은 에브라임과 베나민 지파 사이의 접경 지대에 위치, 예루살렘 서북쪽 약 16km 지점에 위치한 성읍이었다. 또한 두 성읍은 상호 3km가 떨어져 있었으며 고도에 있어서는 180m정도 상하로 구별되어 있었다. — 이 때문에 본문과 같이 ‘윗 벤호론과 아래 벨호론'으로 불려졌으며 이와 관련하여 ‘올라가는 비탈(수 10:10)'과 ‘벧호론의 비탈에서 내려갈 때(수 10:11)'라는 표현까지 사용되었다.
이른바 ‘왕의 대로(King's High Way) '로 알려진 ‘국제 해변로'와 예루살렘을 연결시켜 주는 중요한 지역이었다. 또한 이곳은 예루살렘으로 접근할 수 있는 가장 인접한 지역이어서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했다.
➤ 이처럼 벧호론은 경제적,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솔로몬은 성문이 딸린 견고한 성을 쌓았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6 또 바알랏과 자기에게 있는 모든 국고성들과 모든 병거성들과 마병의 성들을 건축하고 솔로몬이 또 예루살렘과 레바논과 그가 다스리는 온 땅에 건축하고자 하던 것을 다 건축하니라
▶︎ 본문 역시 솔로몬 왕국이 군사적으로 강성했음을 단적으로 증거함
바알랏
‘여주인들’이란 뜨을 가진 단 지파에 속한 성읍의 명칭 (수19:44) 카일(Keil)은 이곳이 블레셋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 세워진 전략적 요새였다고 말한다.
자기에게 있는 모든 국고성들, 모든 병거성들, 마병의 성들을 건축함
솔로몬이 소유한 모든 국고성들. = 병참부와 병기고가 이는 군사 기지였을 것.
💡 1-6절 단락 요약
이상 1절부터 본절에 이르는 단락을 통해 역대기 기자는 솔로몬이 당시 중요한 거점 도시를 점령하고 요새화함으로써 국력을 확장시켜 나가는 면모를 다각도에서 비춰주고 있다. 이는 솔로몬의 주도 면밀한 통치의 양상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신정 통치에 의해 최전성기에 이른 이스라엘의 영광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 7-10절 건축 사업을 위한 솔로몬의 역군 차출 및 조직 편성
💡 7 이스라엘이 아닌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남아 있는 모든 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정복하기 전부터 거주하였던 다양한 이방 원주민들에 대한 언급으로, 이들이 솔로몬의 건축 사업에 전적으로 동원되었음을 나타낸다.
그런데 소위 가나안 일곱 족속 중에 ‘기르가스 족속'과 ’가나안 족속’이 빠져 있다(신 7:1).
⇒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정복을 끝냈을 때에도 가나 안에 살던 원주민들을 다 쫓아내지 못하였음을 의미한다(삿 1:21-26). 그들은 노예의 신분으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잔존하였던 것이다(수 9:23).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방 종교를 전염시킨 장본인들,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시와 올무가 되기도 했다(삿 2:3).
열왕기 기자와 기록 관점의 차이
역대기 기자는 오히려 솔로몬 당시 가나안 원주민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건축 사업에 동원된 사실만을 언급함으로써, → 솔로든 통치의 우월성을 입증하고 있다.
반면 열왕기 기자는 솔로몬의 건축 사업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배제되고 이방인들만 동원된 사실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8 곧 이스라엘 자손이 다 멸하지 않았으므로 그 땅에 남아 있는 그들의 자손들을 솔로몬이 역군으로 삼아 오늘에 이르렀으되
► 앞절에 언급된 이방 족속들의 후손들이 솔로몬에 의해 역군으로 동원되어음
역군 ⇒ ‘정복당한 사람에게 부과된 특별한 강제 노동이나 부역’
‘그들의 자손들을’ (’민 뻬네헴’)
‘민 뻬네헴’
‘가나안 원주민들의 자손들' 전체가 아니고 ‘그들 중에서 선택된 일부분의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
결국 원어적으로 해석하면, 솔로몬이 ‘가나안 원주민 전체'를 강제 노동에 동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병행 구절 왕상 9:21에는, ‘그들의 자손들' 전체가 부역에 동원된 것처럼 기록되어 있다. 결국, 열왕기는 가나안 자손들 전체가 역군으로 동원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반면, 역대기는 가나안 자손들 중에 일부분의 사람들만 강제 노동 에 동원된 것이라는 기록상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사실 가나안 자손들이라고 해도 그 일에서 제외된 자들이 있었을 것이며 ‘나이 어린 자녀들'까지 힘든 건축 사역에 동참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불어 역대기 저자는 솔로몬을 ‘평화의 사람' 이라고 언급하고 있다(대상 22:9).
➤ 이러한 맥락에서 역대기 저자는 비록 가나안 자손들이라도 솔로몬이 모든 사람을 노예화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9 오직 이스라엘 자손은 솔로몬이 노예로 삼아 일을 시키지 아니하였으니 그들은 군사와 지휘관의 우두머리들과 그의 병거와 마병의 지휘관들이 됨이라
‘오직 이스라엘 자손은… 시키지 아니하였으니’
▶︎ 솔로몬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로 삼지 않았던 이유는?
율법의 교훈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레 25:39-43).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애굽의 노예 생활로부터 해방시켜 주신 구속의 백성들이었으며, 따라서 ‘하나님의 종'은 될 수 있어도 ‘사람의 종' 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레 25:43). 그것은 왕과 백성의 관계라고 해도 예외일 수가 없었다. 즉 이방인의 왕들은 백성들을 노예처럼 부리지만(삼상 8:10~17), 언약에 의해 백성들을 통치해야 할 이스라엘의 왕 ⇒ 오히려 백성들을 섬기는 자, 즉 ‘백성들의 종’이 되어야 했다(왕상 12:7). 아마도 역대기 기자는 솔로몬이 엄청난 건축 사업 중에서도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하려는 의지가 있었던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이런 내용을 기술하였을 것이다.
‘그들은 .. 군사의 지휘관의 우두머리들과 그의 병거와 마병의 지휘관들이 됨이라’
▶︎ 이스라엘 백성들이 강제 노역에 동원되지 않았던 이유를 밝힘
군사의 지휘관의 우두머리 : ‘사령관’
➤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소유한 신분은 앞서 언급한 가나안 자손들의 신분과는 극명하게 대조되고 있다.
즉 이스라엘 자손들이 상당한 특권과 지위, 그리고 그에 따 른 자유를 누렸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
그런데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와 같은 특권을 누렸지만 부역에서 완전히 면제된 것은 아니었다. 열왕기의 기록에 의하면 성전 건측 때에도 이스라엘 자손 삼만이 동원되었으며(왕상 5:13,14) 솔로몬의 통치가 오래될수록 더 많은 건축 공사가 진행되었고 이에 따라 더 많은 강제 노역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부과되었다. 다만 그들은 왕에 예속되어 신분적으로만 ‘노예'가 아니었을 뿐이다.
본문에 대한 부정적 의미에 대해서는 왕상 9:22의 강해를 참조.
📌 왕상9:22 강해,
본절에서 솔로몬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로 세우지 않고, 그 대신 그들을 군사와 신하와 방백과 대장, 그리고 병거와 마병의 장관으로 세웠음을 밝힌다. 이는 이스라엘 자손 들이 노예 역군으로 사역하였던 가나안인들에 비해, 특권적 지위와 자유를 누렸던 것처럼 보이게 한다.
하지만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역에서 완전히 면제된 것은 아니었을(5:14)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그 부역은 더욱 가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르호보암 앞에서 터져나온 솔로몬 왕국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이 ‘부역’에 관한 것이었는 사실 (12:4)과 그 불만은 감역관 아도니람에 대한 살인으로까지 이어졌다는 사실(12:18)에서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한편, 본절에서 열거된 신분들은 대체로 전쟁과 연관된 것이다.
➤ 결국 솔로몬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배제한 상태에서 가나안 이방인들만을 노예 역군으로 삼은 궁극적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군사적 업무에 적극 기용하기 위함이었다. 긍정적 측면 이러한 인력 운용 정책은 솔로몬 왕국이 이방인들과 자국민들을 구별해 기용하여 제도적 안정을 추구하고 있다는 긍정적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부정적 측면 동시에 솔로몬이 군사적 문제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불안과 염려를 불러일으킨다.
10 솔로몬 왕의 공장을 감독하는 자들이 이백오십 명이라 그들이 백성을 다스렸더라
솔로몬 왕의 공장을 감독하는 자들 : 감독들의 지배자, 상당한 지위가 있는 ‘고급 관리들’
왕상 9:23과 본문의 차이 (열왕기서는 550명으로 기록)
본문은 솔로몬이 뽑은 550명의 고급 관리 중에 이스라엘 출신의 250명만을 언급한 것. 고급 관리 550명 중에 절반 이하인 250명만이 이스라엘 백성이었다는 사실은
⇒ 솔로몬이 개방된 정치적 태도를 가지고 있었고 출신과 상관없이 인재들을 등용하여 쓸 줄 아는 왕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11절 솔로몬이 바로의 딸을 위해 왕궁을 건축함
💡 11 솔로몬이 바로의 딸을 데리고 다윗 성에서부터 그를 위하여 건축한 왕궁에 이르러 이르되 내 아내가 이스라엘 왕 다윗의 왕궁에 살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궤가 이른 곳은 다 거룩함이니라 하였더라
‘솔로몬이 바로의 딸을 데리고…’
▶︎ 바로의 딸이 이동하는 데 있어서 솔로몬 왕의 뜻이 더 적극적으로 작용했음
본문을 직역하면 ‘그리고 솔로몬이 바로의 딸을 다윗의 성으로부터 올라오게 하였다’
→ ‘바로의 딸을 올라오도록 시켰다’라는 내용. (열왕기는 ‘다윗성에서부터 올라와’)
⇒ 이는 바로의 딸이 이동하는 데 있어서 솔로몬 왕의 뜻이 더 적극적으로 작용했음을 나타낸 다. 이 역시 솔로몬에 대해 긍정적 입장을 취하는 본서 저자의 의도를 반영하는 표현으로 생각할 수 있다.
솔로몬의 애굽과의 외교 관계
솔로몬은 통치 초기에 애굽과의 정치적인 화평을 목적으로 바로의 딸을 취하여 정략적으로 결혼을 했다(왕상 3;1:9:16).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 사실에 대해 역대기서는 특별한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 왕상9:24절,
바로의 딸이 다윗성에서부터 올라와 본절은 솔로몬이 역군을 일으켜 이스라엘 전역에 퍼져 있는 전략적 요충지를 요새화하는 단락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저자가 이와 같은 결론부에서 밀로 건축과 바로의 딸을 연관시키고 있는 의도는 무엇인가?
밀로는 예루살렘성에 수축된 것으로 솔로몬 왕국의 안전을 담보하는 상징이며, 바로의 딸은 정략 결혼의 산물로서 애굽에 의존하고 있는 솔로몬 왕국의 불안정한 미래를 상징한다. 따라서 저자는 솔로몬이 비록 밀로와 같은 건축물로 왕국의 안전을 도모하려 했지만, 하나님만을 의지하지 않고 애굽과 같은 세상 나라에 의존하는 비신앙적 태도로 인하여 왕국은 여전히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암묵적으로 전달하기 위하여 별로 상관없어 보이는 일을 병행하여 기록한 듯하다.
‘내 아내가 이스라엘 왕 다윗의 궁에 거하지 못하리니’
솔로몬은 바로의 딸과 결혼한 후(왕상 3:1) 그녀를 위한 궁이 완성될 때까지 일시적으로 다윗성에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녀를 위한 궁이 완성되자 다윗의 성에서 옮겨 살도록 하였던 것이다.
열왕기 병행 문단에는 없는 내용
역대기 기자가 자신의 집필 의도에 따라 삽입한 것.
사실 솔로몬은 바로의 딸을 포함한 많은 이방 여인들과 정략 결혼을 하여 수많은 아내들을 두었다(왕상 11:3).
솔로몬은 이와 같은 결혼으로 정처적인 이득을 얻기도 했지만 그의 아내들이 가지고 들어 온 수많은 우상 숭배의 늪에 빠져, 마침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배반하게 되었다(왕상 11:1-4).
이러한 솔로몬의 범죄는 나라가 두동강나는 참상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다(왕상 11:12- 14).
따라서 본문의 표현은 왕상 9:24의 내용과는 전혀 상반된 뉘앙스를 담고 있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즉 역대기 기자는 비록 솔로몬이 ‘바로의 딸'로 말미암아 죄를 범하였으나, ‘바로의 딸' 을 ‘다윗의 성'에 머물지 못하도록 할 만큼 영적으로 층분히 깨어 있었다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솔로몬의 단점을 감추고 그를 미화하고 있는 것이다(Payne).
‘이는 여호와의 궤가 이른 곳은 다 거룩함이니라’
► 바로의 딸이 다윗성에 영원히 머물 수 없는 이유
다윗성이 거룩한 장소인 이유
예루살렘에 성전이 완성되어 그곳에 안치되기 전까지 여호와의 궤는 임시로 다윗성에 보관되었다(5:2). 여호와의 궤는 여호와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임으로 그것이 보관되었던 다윗성 역시 거룩한 장소로 여겨졌다.
솔로몬은 바로 이 거룩한 장소에 부정한 이방 여인이 머무를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겔 44:9).
솔로몬이 자신의 아내인 바로의 딸을 위해서 궁전을 건축했다는 부정적 뉘앙스를 전달하는 열왕기(왕상 9;24)와는 달리, 역대기 저자는 본문을 통해서 부정한 이방 여인이 거룩한 장소에 머무르지 못하게 하는 방법의 일환으로 솔로몬이 궁전을 건축했음을 나타냄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동일한 사실에 대헤 긍정적 입장으로 이해하도록 서술하고 있다.
❖ 병행구절과의 차이점
💡 영적 교훈 부분 중,
병행구절과의 주요 차이점 2가지
1.첫째, 본문 역대기서는 두로왕 후람의 이야기를 생략함.
a. 열왕기서에서는 솔로몬이 두로왕 후람에게 자신의 건축 사업에 협조한데 대한 보상으로 납달리 북쪽의20성읍을 주었으나 후람이 그것을 자기에게 무익한 것으로 여겨 불만을 표시한 사실을 비교적 자세히 언급
→ 이는 왕정 시대의 이스라엘의 역사를 비판적 관점에서 기록한 열왕기서 기자가 솔로몬이 후람에게 성을 준 행위가 신의적인 면에서나 하나님의 언약적 측면에서 볼 때 옳지 못한 일어었음을 지적하는 차원에서 기록한 것.
b. 본문에서는 단지 솔로몬이 후람에게서 성읍을 받아 건축하였음을 단 한절로 간단하게 언급하고 있다는 것.
→ 이스라엘의 역사를 다윗 왕조를 중심으로 하여 비교적 긍정적으로 기록하고자 하였던 역대기서 기자. 솔로몬의 업적의 하나로서 그 성들을 건축한 사실을 밝히고 있는 데서 비롯된 차이점.
2.둘째, 본문은 열왕기서에 언급된 바 바로가 솔로몬 당시까지 가나한 족속이 차지하고 있던 게셀을 쳐서 취하여 솔로몬에게 자기 딸을 시집 보내면서 예물로 준 사실을 생략함.
이는 아마 솔로몬 당시까지도 약속의 땅 중에서 미정복지가 남아 있었다는 것과 그것을 이방인인 바로가 쳐서 솔로몬에게 주었다는 부정적 사실을 굳이 드러내지 않으려는 저자의 의도가 반영된 결과일 것입니다.
매튜헨리 주석
우리는 이것을 열왕기 상 9장 10-24절에서 읽었으므로, 여기에서는 단지 다음과 같은 것들만 살려보기로 하자.
Ⅰ. 솔로몬은 매우 박식한 자였지만, 묵상하는 일이 아니라 행동하는 일에 나날을 썼으며, 자기의 서재가 아니라 국가 건설에, 즉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평화시에는 성을 건축하고 요새화하는 일로 나날을 보냈다. 이것은 여름에 겨울 양식을 준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에게 매우 큰 일이다.
Ⅱ. 그는 사업가였고, 자기 자신의 안일을 추구하지 않았듯이, 매우 많은 일손들을 고용하여 많은 백성들이 계속 일할 수 있게 했다. 될 수 있는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산업을 촉진시키고 장려하여 백성들이 나태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은 나라의 큰 유익이 된다.
이스라엘에는 이방인들이 매우 많았고, 그 가운데는 가나안 사람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들이 거기서 사는 것은 환영받았으나 아무 것도 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었다. 하는 일 없이 살아가던 라이스 사람들은 쉽게 침입자들의 먹이가 되었던 것이다.(삿 18:7).
Ⅲ. 솔로몬이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기 시작하고 선한 사업을 만들고 그 사업을 촉진시켰을 때, 그의 모든 일은 형통했다.
그래서 "그는 건축하고자 하던 것을 다 건축했다" (6절).
건축에 재능이 있는 자들은, 한 가지 설계가 또 다른 설계를 요구하며 후자는 전자를 수정하고 계량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이제 다음을 살펴보자.
- 하나님의 섭리는 솔로몬의 기호까지도 충족시켜 주었다. 그가 건축해야 했던 건물과 또한 자기의 유익을 위해 건축하는 그 모든 사업뿐만 아니라 그가 건축하고자 마음먹었던 그 모든 일들까지도 성공케 했다. 하나님 아버지는 당신을 섬기는 자녀들의 순수한 소망을 때로는 이렇듯 열심히 이루어 주신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는 약속을 주심으로써 야곱을 기쁘게 하셨다.
- 솔로몬은 자기의 욕망을 제한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기 욕망을 한없이 확대시켜 아무리 해도 만족을 누리지 못하는 자들에게 속해 있지 않았다. 그는 언제 욕망의 고삐를 당겨야 하는 지를 알고 있는 자였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가 바라던 모든 것을 필하고는 더 이상 아무 것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알렉산더가 더 이상 정복할 땅이 없었을 때 했던 것처럼 주저 앉아서 더 건축할 성이 없다고 불평하지 않았다(합 2:5).
Ⅳ. 솔로몬은 왕후를 위해 일부러 궁궐을 건축하고 그녀와 그녀의 궁을 그리로 옮겼는데, 거기에는 한 가지 이유가 있다. 곧 그녀가 "다윗의 궁에 거하는" 것은(11절) 결코 합당한 것이 못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다윗의 궁은 매우 경건한 장소가 되어 왔으나, 아마도 그녀의 집은 매우 허황된 곳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녀는 유대교로 개종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녀의 모든 종들은 어떠했는지 의문이다. 아마도 그들 가운데는 애굽의 우상이 있었을 것이며 불명예스러움과 방탕함이 매우 많았을 것이다. 솔로몬은 거기에서 잘못되어지는 것을 금하고 처벌할 열의와 용기를 충분히 갖고 있었을지라도 그는 그의 아버지의 명성을 지극히 고려하였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의 궤가 있었고, 또 거룩한 다윗이 훌륭한 기도를 많이 했고 감미로운 시를 많이 읊었던 그 장소를 이처럼 더럽히려 하지 않았다. 궤가 있었던 모든 장소가, 너무 거룩해서 속된 용도에 사용될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아비나달과 오벳에돔의 집은 그렇게 속된 목적에 사용되어야 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매우 오랫동안 있었고, 또 공적으로 그 법궤를 모신 장소는 매우 신성했으므로, 그처럼 허황된 장소가 되기에는 합당치 않았고, 또 바로의 딸이 지켰던 궁중에서 발견될 수 있었던 것처럼 그곳에서 불의를 말할 수도 없었다. 고대인들은 신성한 것과 속된 것 사이에 경계표를 두어 구별했다. "여인의 궁" 이 있었던 곳은 성전 바깥 뜰이었다.
●솔로몬의 헌신(역대하 8:12-18) (옥스퍼드)
❖ 12-16절 : 솔로몬의 각종 정기 제사 준수와 제사 직무 정비에 관하여
💡 12 솔로몬이 낭실 앞에 쌓은 여호와의 제단 위에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되
병행구절과의 차이⇒ 그동안 강조된 역대기 저자의 제사장 중심적 입장을 반영하는 것.
솔로몬이 드린 제사
본절에서 솔로몬은 여호와께 번제만 드런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데, 병행 구절인 왕상 9:25에서는 ‘번제와 감사제를 드렸다' 라고 되어 있다.
제사를 드린 장소
또한 열왕기는 제사를 드린 장소를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쌓은 단'이라고만 기록하고 있다. 반면 본절에서는 이 단이 ‘낭설 앞에 쌓인' 것이라고 더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 왕상9:25,
25절, ‘여호와를 위하여 쌓은 단’ 위에
→ 저자는 솔로몬이 이 단을 ‘여호와를 위해서 지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지적은 솔로몬이 하나님을 버리고 타락할 위험 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되, 아직은 여호와를 완전히 떠나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본문은 이후 솔로몬이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신들을 위하여 산당을 짓는’ 행위와 명확한 대조를 이룬다(11:7). 본문은 앞의 본문에서처럽 솔로몬이 신정 왕국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본연의 입무에 충실하 고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을 드러낸다. 하지만 말년에 솔로몬은 믿음이 변질되어 ‘이방 신들을 위 해서 산당을 짓고 제사를 드리는’ (11:8) 가증한 행위를 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하나님 을 섭기는 데 있어서는 영적 긴장을 항상 늦추지 않는 자세가 필수적임을 알 수 있다.
본서 저자는 솔로몬이 매년 세 번씩 각종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비로소 성전이 최종적인 완성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성전의 최종적인 완성을 솔로몬의 제사 행위와 직결시키고 있는 것, 성전이란 하나님께 올리는 제사가 온전히 이루어질 때에 비로소 그 가 치가 완전히 부여된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이와 같이 성전 건축은 건물의 완성이 아니라, 성전의 본래 기능인 온전한 예배가 수행될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의 완공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본문은 솔로몬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섬기지 않을 경우에는 아무리 거룩한 성전이라도 전혀 의미가 없음을 암시한다.
💡 13 모세의 명령을 따라 매일의 일과대로 안식일과 초하루와 정한 절기 곧 일년의 세 절기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드렸더라
► 솔로몬이 규칙적인 제사를 드렸음을 나타냄
‘매일의 일과대로’
이는 ‘제물들에 대한 메일의 요구(NIV, the daily requirement for offerings)’ 를 의미함.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하루에 두차례씩 번제와 소제를 드려야 했으며 번제를 위해 아침과 저녁으로 어린양을 잡아 드렸다(민 28:2-5).
본문은 열왕기 병행 문단에는 등장하지 않는 내용.
역대기 저자는 열왕기보다 자세하게 제사에 대한 내용을 삽입하여 기록하였다.
열왕기서는 ‘1년에 세번씩 번제와 감사제를 드린다'라고 대략적으로 기록하였으나, 역대기는 ‘일년의 세 절기 무교절, 칠칠절, 초막절'(신16:16) 이라고 자세히 명시, 매일 드리는 번제와 안식일, 그러고 월삭에 대해서도 언급함(레 23:1-37;민 28:29). 이는 다시 한번 역대기가 제사장적 관점에서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 14 솔로몬이 또 그의 아버지 다윗의 규례를 따라 제사장들의 반열을 정하여 섬기게 하고 레위 사람들에게도 그 직분을 맡겨 매일의 일과대로 찬송하며 제사장들 앞에서 수종들게 하며 또 문지기들에게 그 반열을 따라 각 문을 지키게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전에 이렇게 명령하였음이라
▶︎ 솔로몬의 성전 직무 제정에 대한 근거가 부친인 다윗의 명령에 있었음.
‘솔로몬이 또 그의 아버지 다윗의 규례를 따라’
직역하면 ‘그리고 그는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적 명령을 따라 지정하였다’
다윗의 규례 (다윗의 법적 명령)
법정에서 결정된 것과 같은 ‘법적 구속력'을 가지는 명령 (미쉬파트 결합형)
⇒ 즉 모세의 율법과 함께 다윗의 명령은 영원히 지켜야 하는 규례가 된 것이다.
본절 역시 열왕기 병행 문단에는 없는 내용.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직분과 관련한 다윗의 명령의 기록은 — 대상 23-26장에 있음.
➤ 이처럼 다윗이 정한 제사장과 레위인에 대한 규례들은 솔로몬 시대에 그대로 시행되었을 뿐만 아니라 신정 국가 재건을 소망하던 포로기 이후에도 적용되었다(느 12.36).
‘이는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전에 이렇게 명령하였음이라’
저자는 다윗 ‘이쉬 하엘로힘’ — ‘하나님의 사람’으로 명칭함
이처럼 다윗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명칭하는 것은
다윗 측면, 다윗이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이상적인 삶을 살았음을 의미한다.
또한 솔로몬의 입장에서는 다윗의 명령을 ⇒ 육신의 아버지의 명령으로 듣지 않고, 마치 하나님이 직접 하신 명령인 것처럼, 절대적으로 순종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역대기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구체적인 이름이 기록된 사람은? ‘모세’ (30:16; 대상23:14)와 ‘스마야' (11:2). 본서의 저자는 솔로몬이 성전 직무 제도 제정에 있어서 기준으로 삼았던 ‘다윗의 규례’를
⇒ ‘모세의 규례' (13절)와 같은 것으로 만들기 위해 모세와 다윗을 ‘하나님 의 사람'으로 동일하게 명칭한 것으로 추정된다.
💡 15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국고 일에든지 무슨 일에든지 왕이 명령한 바를 전혀 어기지 아니하였더라
►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이 솔로몬 왕의 명령에 절대 순종했음
‘국고 일에든지 무슨 일에든지’
본문을 직역하면 '모든 일에 관련해서, 그리고 보물들에 대해서도’
→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감당하는 일이든, 다루는 물품들이든 예외없이 솔로몬 왕의 명령을 준행했다.
그러나 이 표현은 솔로몬이 종교적인 직무까지 관장하였다는 의미는 아니다.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이 명령한 규례는?
이는 앞서 솔로몬이 ‘모세의 명' 을 '쫓아모든 제사를 드렸다는 표현(13절)과 그 부친 ‘다윗의 정규'를 따라 제사장으로 하여금 섬기게 하였다는 표현(14절)과 관련해서 이해해야 함. 솔로몬이 순종했던 ‘모세의 명'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 내리신 명령’ 이었고, ‘다윗의 정규' 역시 성신의 지도함을 받아 전달된 명령이었다.
➤ 이러한 의미를 감안할 때 솔로몬 당시에 제사장들이 왕의 명령에 전적으로 순종했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모든 일에 순종했다는 의미이며, 이 역시 당시 이스라엘이 이상적인 신정 국가를 실현했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 16 솔로몬이 여호와의 전의 기초를 쌓던 날부터 준공하기까지 모든 것을 완비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전 공사가 결점 없이 끝나니라
▶︎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위해 철저한 준비를 했기에 성전 건축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음
‘솔로몬이 … 모든 것을 완비하였으므로’
원어의 의미를 살려 본문을 이해하면, ‘솔로몬이 성전 건측을 위해 ‘모든 노동력과 물품들 및 제반사항'을 완벽하게 준비했다는 의미
열왕기 문단과의 차이
열왕기 병행 문단에서는 단지 ‘전 역사가 마치니라'고만 기록되어 있다(왕상 9:25). 이에 반하여 역대기 저자는 성전이 완전하게 건축된 사항 뿐만 아니라, 성전이 지어진 본래 목적에 따라 제사가 드려지고 절기가 지켜진 내용, 제사장들과 레위인둘이 반차를 따라 섬기고 수종드는 내용에 이르기까지 자세한 언급을 하고 있다. 아울러 본문에서는 이 모든 것이 솔로몬의 철저한 준비 때문이라고 부언한다.
→ 이 역시 본서 저자가 취하는 솔로몬에 대한 궁정적 입장과 제사장적 관점을 반영한다.
‘여호와의 전의 기초를 쌓던 날부터 .. 모든 거을 완비하였으므로’
표면적으로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이룬 전기간을 지칭. 그러나 거기에는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위해 모든 기간 동안 끊임 없이 준비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는 뒤에 이어지는 표현, 즉 ‘결점이 없이 필역하니라’와 연결되는 것으로,
➤ 성전이 완전무결하게 지어질 수 있었던 이유가,
모든 일에 완벽하게 대비한 솔로몬의 준비에 있음을 확연하게 드러내준다.
‘여호와의 전 공사가 결점 없이 끝나니라’
직역하면, ‘여호와의 전은 완전하였다’(KJV, the house of the LORD was perfected)’
결점 없이 끝나니라 (’솰렘)
‘완전한’(창15:16), ‘평화로운’ 이란 뜻. 한글 개역 성경은 그 의미를 다소 소극적으로 표현함. 그러나 ‘솰렘’의 의미는 — 적극적이고 충분한 완전, 온전, 조화.
이같은 의미를 반영하면, 본문은,
여호와의 전이 외형상 결점 없이 완공되었다 는 것에 그처지 않고 다양한 종류의 성전 직무 제도까지 완비되어 온전한 에배가 드려지고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는 의미를 전달한다.
한편 본문은 ‘평화' 혹은 ‘완전’ 이란 뜻의 이름을 가진 ‘솔로몬'이
— ‘완전한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였다는 사실을 전달한다.
여기에서 저자의 탁월한 언어유희(wordplay)가 돋보인다.
❖ 17-18절 : 솔로몬의 해상 무역의 일례 — 이스라엘의 경제적 부흥을 단적으로 보여줌
💡 17 그 때에 솔로몬이 에돔 땅의 바닷가 에시온게벨과 엘롯에 이르렀더니
‘그 때에’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마감한 시점과 — 후람의 도움으로 오빌에서 금을 얻는 시점을 서로 연결시켜 주는 부사. 이 부사는 솔로몬이 성전과 관계된 모든 것들을 완성하자마자 → 금을 축적하는 것과 같은 경제적 축복을 받았다는 뉘앙스를 전달한다.
→ 즉 하나님께서 성전을 완성한 솔로몬에게 경제적 부흥을 허락하셨다는 의미를 전달한다
원문의 뉘앙스를 살려 본절을 다시 번역하면 ‘그 때에 솔로몬이 에시온게벨에 이르렀고, 에돔 땅의 바닷가에 있는 엘롯에까지 이르렀다' 정도로 번역이 가능하다.
➤ 즉 본문은 동일한 지역의 서로 다른 이름을 기록하되, → 엘롯에 대하여는 더 구체적인 설명을 가함으로 바닷 가까지 이른 솔로몬의 외교적 업적을 강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에시온게벨’
‘거인의 잔등'이라는 뜻, 그 지역에 바다로 돌출한 암석 단애가 많았기 때문.
이곳은 이스라엘 남쪽 홍해의 아카바(Aqaba)만 최북단에 위치해 있으며 상업적으로 중요한 항구도시(Payne).
또한 유라시아(Europe-Asia)와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유일한 육상 교량'의 역할을 했던 곳.
➤ 이처럼 솔로몬은 복쪽 지역의 육상 무역로를 장악하였을 뿐만 아니라(4절), 남쪽 지역에 상업상 중요한 ‘해상 무역로'를 확보함으로써 최고의 부를 누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던 것.
그리고 항구도시였던 ‘에시온게벨'에는 아프리카와 해상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더욱이 ‘에시온게벨'에는 고대 근동 아시아에서 가장 큰 동제련소가 있었는데, 솔로몬은 그곳에서 생산된 동을 금이나 기타 물품과 교역하였다(왕상 9:26-28).
‘엘롯’
열왕기 병행 구절에는 기록되지 않은 ‘엘롯(Eloth)'은 ‘높은 나무들의 숲(BDB, grove of lofty trees)' 이라는 뜻으로 ‘에시온게벨'의 또 다른 이름이다(8:17). 이처럼 동일한 지명을 나타내는 서로 다른 두 이름을 계속해서 언급한 것은
⇒ 솔로몬이 취한 왕성한 경제 활동을 더욱 분명하게 강조하기 위한 본서 저자의 의도에 따른 것으로 파악된다.
💡 18 후람이 그의 신복들에게 부탁하여 배와 바닷길을 아는 종들을 보내매 그들이 솔로몬의 종들과 함께 오빌에 이르러 거기서 금 사백오십 달란트를 얻어 솔로몬 왕에게로 가져왔더라
후람
두로의 왕(2:3)
두로 : 바다에 인접해 이던 해안 도시국가, 일찍부터 ‘배를 만드는 것’과 ‘항해술’에 탁월한 나라였다(사32:1,14; 겔27장)
다윗 시대부터 긴밀한 유대를 가지고 었는 이 스라엘에 그 종들을 보내어 솔로몬의 무역에 관한 일을 도왔던 것이다.
병행 구절과 비교
왕상 9:26.27
‘솔로몬이 에시온게벨에서 배들을 만들고 있을 때' 후람(히람)이 솔로몬의 종과 함께 자신의 종을 그 배로 보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에 반하여 본 절에는
‘솔로몬이 에시온게벨에 도착했을 때' 후람이 배와 선원들을 보냈다고 되어 있다.
그래서 페인(Payne)은 다음과 같이 두 본문을 조화시킨다.
솔로몬은 후람이 육로를 통해 에세온게벨로 보내진 물자들로 선박을 건조했다. 그리고 후에 후람이 보낸 선원들은 경험이 적었던 히브리인들을 지도하여 선박을 조정할 수 이도록 3년 간 함께 원정을 다녔다는 것이다(9:12).
어떻게 이해 하든 결국 역대기 기자는
이스라엘이 해상 무역을 할 수 있도록 실제적으로 도왔던 사람어 후람 왕임을 강조하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관계는 솔로몬과 후람 양쪽의 상호 경제적인 이익을 도모한 결과였을 것이다(Dillard).
‘그들이 … 오빌에 이르러’
오빌 : 이곳은 솔로몬 성전의 건축에 사용된 대부분의 금을 공급한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대상 29:4).
‘거기서 금 450 달란트를 얻어 솔로몬 왕에게’
금 1달란트가 약 34.3kg이므로, 본문의 금 450달란트는 약 15론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
고대 근동 아시아에서 ‘금'의 소유 정도는 ⇒ 왕권과 국력을 측정하는 척도로 이해된다.
➤ 그런 면에서 본문은 솔로몬 왕국의 영광이 얼마나 찬란하였는지를 드러내주고 있다.
또한 이렇게 많은 양의 금을 싣고 왔다면 오빌로 항해했던 배의 규모도 상당히 컸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결론부
💡 이상과 같이 본장은 예루살렘 성전 건축 이후 있었던 솔로몬의 다양한 건축 사업과 정기 제사 준수 및 제사 직무 정비, 그러고 대외 교역 사업 등을 다룬다.
➤ 이는 솔로몬 왕국의 신앙과 정치, 경제, 무역 등 번영의 측면들을 망라한 것으로 솔로몬 왕국이 최고 절정에 이르렀음을 나타낸다.
열왕기 저자는 본장과 동일한 사건을 다른 관점에서 기술 기울어가는 솔로몬 왕국의 전조 현상으로 보고 부정적인 관 점에서 기술했으나,
본서의 저자는 여호와의 언약 성취하에 있는 다윗 왕조의 발전이라는 관점 아래서 모든 사건을 긍정적으로 기술했다. 즉 성전 건축 완성은 솔로몬이 모세와 다윗의 규례를 성실히 따른 것이며, 왕국의 안정과 번영은 그 성실함의 결과인 것으로 부각시켰다.
본장에서 본서 저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본서를 읽는 일차 독자들에게 회복의 구심점과 방향을 제공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당시 본서를 읽는 일차 독자들의 숙원 과제는 바로 솔 로몬 시대와 같은 영광스러운 이스라엘의 재건이었다. 이러한 본서 일차 독자들의 소망에 대하여 본서 저자는 솔로몬 시대의 영광과 번영이 우연히 된 것이 아니라, 그가 성전을 중심으로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고 경외하였기 때문임을 강조하고 있다.
즉 이러한 내용은 본서 독자들에게 선민 영광의 재건을 위해서는
⇒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고 경외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영적 교훈 부분,
특별히 여기서 역대기 기자가 성전 건측과 그에 이어진 일련의 건측 사업 기사를 중심한 솔로몬의 통치 기사를 마감하면서 이스라엘의 영광으 언급하는 내용은
— 2:1-8:11의 성전 건축 기사를 중심으로 솔로몬의 일천 번제와 왕국의 번영에 대하여 다루는 1장의 서론적 내용과 대칭적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1장의 서론적 내용이
솔로몬과 그의 시대가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기에 합당하게 예비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면,
8:12-9:31의 결론적 내용은
예루살렘 성전 건축과 그 성전을 중심으로 솔로몬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른 신앙생활을 한 결과 이스라엘이 전무후무한 영광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이는 본서의 일차 독자들인 포로 귀환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도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바른 여호와 신앙을 회복하면 다시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영광을 회복 할 수 있음을 시사하기 위함이라고 하겠습니다.
본문과 열왕기서의 병행 문단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
기록 의도상의 차이.
열왕기서 기자
이 기사를 솔로몬의 통치와 관련된 단순한 사실 기록의 차원에서 언급.
역대기서 기자
제1장의 솔로몬의 일천 번제와 병거와 말 구입으로 상징되는 이스라엘의 번영과 대칭을 이루게 배치함으로써 → 솔로몬이 성전 건축 이후에도 일생 동안 경건한 신앙을 유지하고 있었음과 그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큰 번영을 누리게 되었음을 보여주고자 하였던 것. 그러한 이유로 열왕기서에는 단지 솔로몬어 3대 절기만을 준수한 것을 기록하고 있으나 본문에서는 솔로몬이 3대 절기 외에 상번제와 안식일, 월삭 등 모세 율법에 기록된 모든 정기 제사를 성실하게 준수하였음과 다윗이 정한 제사장과 레위인의 종교 조직을 성실하게 운용하여 성전 제사 제도가 바르게 유지되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 본문은 열왕기서에 언급되지 않은 16절의 내용을 첨가
이 역시 솔로몬의 여호와께 대한 진실함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매튜헨리 주석
Ⅰ. 솔로몬의 헌신을 보자.
성전을 건축한 것은 성전의 예배를 위한 것이었다. 건물을 세우는 데 아무리 비용을 많이 들였다 하더라도 거기서 해야 할 예배를 소홀히 한다면, 그 건물은 아무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예배를 돕는다고 해서 자기 자신은 예배를 빼먹어도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1. 솔로몬은 이 성전을 건축하고 나서 모세의 율법대로 항상 거룩한 제물을 바쳤다(12, 13절).
그 제단의 음식과 그 제단의 불꽃의 연료를 위한 희생 제물이 꾸준히 바쳐지지 않았다면, 제단을 지은 것이나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왔다는 것이 모두 헛된 일이었을 것이다. 제물을 바쳤고, 안식일에는 주례적(週例的) 제물을 드렸다. 그래서 다른 날의 두 배를 바쳐야 했다. 11월삭에는 "월례적인 제물을 드렸고 매년 3번씩 엄숙한 절기를 맞아 연례적인 제물을 바쳤다. 지금 우리가 날마다 주마다 바쳐야 할 제사는 영적인 제사이다. 그리고 그 제사 방식은 일정하게 정해 놓는 것이 좋다.
2. 솔로몬은 "다윗의 법" 에 따라 거룩한 노래를 항상 드렸다.
여기서 다윗이 모세처럼 "하나님의 사람" 이라고 불리워지고 있는데 그것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이러한 제도를 만들도록 지시받고 또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솔로몬은 "매일 합의한 대로" 그것이 준수되는가를 살폈다(14절).
솔로몬은 비록 지혜롭고 위대한 자였고 성전을 건축한 자였지만,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명한 것에 다른 것을 부과하거나 변경시키려고 하지 않고 오직 그것을 철저히 고수했다.
그리고 그것이 잘 지켜지는가를 살피는 데에 자기의 권위를 사용했다. 따라서 "아무도 무슨 일에든지 왕의 명한 바를 어기지 아니하였다" 고 했다(15절). 그가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하자 모든 사람들은 그의 명령에 복종했다.
성전의 예배가 이처럼 잘 되어가자, "여호와의 전이 결점이 없이 필역하였다" 고 일컬어지고 있다(16절). 그 장소가 아니라 그 사업이 주된 문제였다. 따라서 이 모든 일이 이루어졌을 때에야 비로소 성전이 완성되었다고 했다.
Ⅱ. 솔로몬의 무역을 살펴보자.
그는 친히 엘롯과 에시연게벨이라는 항구 도시를 방문했다. 왜냐하면, 세상 일을 많이 하는 자들은 될 수 있는 한 자기들의 문제를 직접 조사하고 자기들의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17절). 가나안은 산물이 풍족한 땅이었지만, 금을 위해서는 모빌로 가야 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혜롭고 총명한 백성들이었지만, "바닷길을 아는 사람들" 에 대해서는 두로 왕의 신세를 져야만 했다(18절). 그러나 가나안은 하나님이 특별히 여기는 땅이었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이었다. 이것은 금이 아니라 은혜가 가장 훌륭한 재물이며, 예술이나 과학과 사귀는 것보다 하나님이나 그의 율법과 사귀는 것이 가장 훌륭한 지식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