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11월 23일 목요일 묵상구절 스2:1-70 <돌아온 사람들(느 7:4-73)>

Jeehyun 2023. 11. 23. 15:33

맥체인성경읽기

역대상 18, 야고보서 5, 요나 2, 누가복음 7

묵상구절

[1-35절 : 제1차 포로 귀환자들 중 일반인들의 가계별과 귀환지별 귀환자들의 수효]

2:1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갔던 자들의 자손들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 도로 돌아와 각기 각자의 성읍으로 돌아간 자

2:2 곧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야와 스라야와 르엘라야와 모르드개와 빌산과 미스발과 비그왜와 르훔과 바아나 등과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이러하니

가계별 귀환자들의 수효(3-20절)

2:3 바로스 자손이 이천백칠십이 명이요

2:4 스바댜 자손이 삼백칠십이 명이요

2:5 아라 자손이 칠백칠십오 명이요

2:6 바핫모압 자손 곧 예수아와 요압 자손이 이천팔백십이 명이요

2:7 엘람 자손이 천이백오십사 명이요

2:8 삿두 자손이 구백사십오 명이요

2:9 삭개 자손이 칠백육십 명이요

2:10 바니 자손이 육백사십이 명이요

2:11 브배 자손이 육백이십삼 명이요

2:12 아스갓 자손이 천이백이십이 명이요

2:13 아도니감 자손이 육백육십육 명이요

2:14 비그왜 자손이 이천오십육 명이요

2:15 아딘 자손이 사백오십사 명이요

2:16 아델 자손 곧 히스기야 자손이 구십팔 명이요

2:17 베새 자손이 삼백이십삼 명이요

2:18 요라 자손이 백십이 명이요

2:19 하숨 자손이 이백이십삼 명이요

2:20 깁발 자손이 구십오 명이요

▶출신지 혹은 귀환지별 귀환자들의 수효(21-35절)

2:21 베들레헴 사람이 백이십삼 명이요

2:22 느도바 사람이 오십육 명이요

2:23 아나돗 사람이 백이십팔 명이요

2:24 아스마웻 자손이 사십이 명이요

2:25 기랴다림과 그비라와 브에롯 자손이 칠백사십삼 명이요

2:26 라마와 게바 자손이 육백이십일 명이요

2:27 믹마스 사람이 백이십이 명이요

2:28 벧엘과 아이 사람이 이백이십삼 명이요

2:29 느보 자손이 오십이 명이요

2:30 막비스 자손이 백오십육 명이요

2:31 다른 엘람 자손이 천이백오십사 명이요

2:32 하림 자손이 삼백이십 명이요

2:33 로드와 하딧과 오노 자손이 칠백이십오 명이요

2:34 여리고 자손이 삼백사십오 명이요

2:35 스나아 자손이 삼천육백삼십 명이었더라

[36-63절 : 제사장을 비롯한 성전 봉사자와 기타 귀환자들]

▶귀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가계별 수효 (36-42절)

2:36 제사장들은 예수아의 집 여다야 자손이 구백칠십삼 명이요

2:37 임멜 자손이 천오십이 명이요

2:38 바스훌 자손이 천이백사십칠 명이요

2:39 하림 자손이 천십칠 명이었더라

2:40 레위 사람은 호다위야 자손 곧 예수아와 갓미엘 자손이 칠십사 명이요

2:41 노래하는 자들은 아삽 자손이 백이십팔 명이요

2:42 문지기의 자손들은 살룸과 아델과 달문과 악굽과 하디다와 소배 자손이 모두 백삼십구 명이었더라

▶ 성전 봉사자인 느디님 사람들과 솔로몬 종의 자손들 중 귀환자들의 가계와 수효 (43-58절)

2:43 느디님 사람들은 시하 자손과 하수바 자손과 답바옷 자손과

2:44 게로스 자손과 시아하 자손과 바돈 자손과

2:45 르바나 자손과 하가바 자손과 악굽 자손과

2:46 하갑 자손과 사믈래 자손과 하난 자손과

2:47 깃델 자손과 가할 자손과 르아야 자손과

2:48 르신 자손과 느고다 자손과 갓삼 자손과

2:49 웃사 자손과 바세아 자손과 베새 자손과

2:50 아스나 자손과 므우님 자손과 느부심 자손과

2:51 박북 자손과 하그바 자손과 할훌 자손과

2:52 바슬룻 자손과 므히다 자손과 하르사 자손과

2:53 바르고스 자손과 시스라 자손과 데마 자손과

2:54 느시야 자손과 하디바 자손이었더라

2:55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은 소대 자손과 하소베렛 자손과 브루다 자손과

2:56 야알라 자손과 다르곤 자손과 깃델 자손과

2:57 스바댜 자손과 하딜 자손과 보게렛하스바임 자손과 아미 자손이니

2:58 모든 느디님 사람과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이 삼백구십이 명이었더라

▶ 기타 귀환자들 (59-63절)

2:59 델멜라와 델하르사와 그룹과 앗단과 임멜에서 올라온 자가 있으나 그들의 조상의 가문과 선조가 이스라엘에 속하였는지 밝힐 수 없었더라

2:60 그들은 들라야 자손과 도비야 자손과 느고다 자손이라 모두 육백오십이 명이요

2:61 제사장 중에는 하바야 자손과 학고스 자손과 바르실래 자손이니 바르실래는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의 딸 중의 한 사람을 아내로 삼고 바르실래의 이름을 따른 자라

2:62 이 사람들은 계보 중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도 얻지 못하므로 그들을 부정하게 여겨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지 못하게 하고

2:63 방백이 그들에게 명령하여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전에는 지성물을 먹지 말라 하였느니라

[64-70절 : 제1차 포로 귀환자들의 재산 합계와 성전 재건을 위한 족장들의 예물 봉헌]

2:64 온 회중의 합계가 사만 이천삼백육십 명이요

2:65 그 외에 남종과 여종이 칠천삼백삼십칠 명이요 노래하는 남녀가 이백 명이요

2:66 말이 칠백삼십육이요 노새가 이백사십오요

2:67 낙타가 사백삼십오요 나귀가 육천칠백이십이었더라

2:68 어떤 족장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 터에 이르러 하나님의 전을 그 곳에 다시 건축하려고 예물을 기쁘게 드리되

2:69 힘 자라는 대로 공사하는 금고에 들이니 금이 육만 천 다릭이요 은이 오천 마네요 제사장의 옷이 백 벌이었더라

2:70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백성 몇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이 각자의 성읍에 살았고 이스라엘 무리도 각자의 성읍에 살았더라


매튜헨리/옥스퍼드

서론

💡 본장 개관

  1. 1-20절 : 제1차 포로 귀환자들의 가계와 수효를 밝히는 서문과 가계별 귀환자들의 수효.
  2. 21-35절 : 출신지 혹은 귀환지별 귀환자들의 수효.
  3. 36-39절 : 귀환 제사장들의 가계별 수효
  4. 40-42절 : 귀환 레위인의 가계별 수효
  5. 43-58절 : 성전 봉사자인 느디님 사람들과 솔로몬 종의 자손들 중 귀환 자들의 가계와 수효
  6. 59-63절 : 기타 귀환자들
  7. 64-67절 : 제1차 포로 귀환자들과 그들이 소유한 재산의 합계
  8. 68-69절 : 성전 재건을 위한 족장들의 예물 봉헌
  9. 70절 : 제사장, 레위인, 백성 일부, 노래하는 자, 문지기, 느디님 사람들이 자기 본성들에 거하고 일반 백성들 역시 자기 본성들에 거하였음을 언급.

이러한 본문에 의하면 제1차 포로 귀환자들의 총수는 노비들과 노래하는 자들을 포함하여 49, 897명이었다.

  • 이들 중 제사장과 레위인, 느디님 사람, 노비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과거 남유다에 속하였던 유다와 베냐민 지파 사람들의 자손들이었다(1:5).
  • 그러한 이유로 저자는 귀환자들의 수효를 기록함에 있어 굳이 지파별로 기록하지 않고 가계별과 출신지 또는 귀환지별로 기록하고 있다.

이후 이스라엘 자손들은 흔히 유대인으로 불리는데,

  • 이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귀환지가 과거 남유다의 땅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 또 다른 이유는 포로 귀환이 유다 지파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편 이스라엘 자손들의 포로 귀환은 그들의 포로가 전 3차로 이루어졌던 것처럼 역시 3차에 걸쳐 이루어졌다.

  1. 이 중 제1차는 B.C. 537년에 세스바살과 스롭바벨의 영도 하에 이루어졌으며, 본서 제1,2장에 기록.
  2. 제2차는 B.C. 458년 에스라의 영도하에 이루어졌으며, 1,775명이 귀환 하였다(7, 8장).
  3. 제3차는 B.C. 444년에 느헤미야의 영도 하에 이루어졌으며, 귀환자의 수효는 알 수 없다.

이렇게 포로 귀환이 한번에 이루어지지 않고 3차에 걸쳐 이루어진 것은?

  • 이스라엘 자손들이 포로 생활 중에 나름대로 그곳에서 적응하여 살면서 현재의 편안한 삶을 포기하고 황페화된 유다 땅으로 둘아가는 것에 대하여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1차로 귀환한 사람들은 황폐화된 나라를 재건하고 성전을 다시 세우면서
주변 족속들의 핍박과 열악한 환경으로 등으로 인하여 엄청난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그러한 점에서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기억하고, 또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기 위하여 바벨론에서의 자기들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일차로 귀환한 사람들은 —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한 자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본문에 언급된 귀환자들 가운데 제사장들의 수효를 보면
-> 4.289명으로 레위인 341명에 비하여 열 배 이상이나 많고, 전체 귀환자의 약 1/10에 해당합니다.

⇒ 이는

  1. 제사장들이 포로 귀환에 얼마나 열심이었는가를 증거하여 주며,
  2. 이스라엘 백성들이 70년의 포로 생활 중에도 선민으로서의 민족적, 종교적 정통성을 상실하지 않았던 데에 — 이들 제사장의 역할이 지대하였음을 암시하여 준다.
  3. 아울러 이들의 귀환은 앞으로 재건될 이스라엘이 성전 중심의 신정 국가로 서게 될 것임을 강력하게 시사하여 준다. 

포로의 귀환(에스라 2:1-35)

 💡 서론

앞선 1장은 근동을 제패하였던 바벨론을 꺾고 근동의 새로운 강자로 등장한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포로 귀환 및 예루살렘 성전 재건 허가 칙령을 내리고 그 칙령에 따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귀환 준비를 한 사실과 원주민들이 재물을 주어 이스라엘 자손들의 귀환을 도운 사실, 그리고 고레스가 성전 기명을 반환한 사실을 기록하였다.
이제 이에 이어지는 본장은 제1차 포로 귀환자들의 가계와 수효 및 그들의 재산과 예물 헌납에 대하여 보도한다.


우리는 여기서 다음의 내용을 관찰할 수 있다.

Ⅰ. 포로에서 돌아온 가족들에 대한 기록과 각 가족의 수에 관한 기록이 보존되어 있었다.

이것은 그들의 신앙과 용기와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신념과 자기 고국땅에 대한 애착의 대가요, 그들의 명예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선한 모범을 따르는 다른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우기 위한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영광을 받을 것이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의 초청을 맞아들인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의 이름은 이것보다 더 신성한 기록인 "어린 양의 생명책에서" 영예롭게 발견될 것이다. 포로에서 돌아온 가족들의 명부가 보존된 것은 역시 후손들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즉 후손들은 그 기록을 통해서 자기들의 근원과 가족 관계를 알 수 있었다.

1. 그들은 "도(道)의 거민" 이라고 불리워지고 있다.

유다는 한때 혁혁했던 왕국이요, 다른 여러 왕국들이 그 나라의 부속 도였다. 그래서 그 부속 도들은 유다에 종속되어 의존했었다. 그러나 이제 유다 자체가 하나의 도가 되어서 바아사왕으로부터 법률과 직권을 위임받게 되었고, 바사왕에게 의존하게 되었다. 의는 민족을 존귀케 하나, 죄는 민족을 왜소하게 만들고 비참하게 한다는 것을 깨달으라. 그러나 이와 같이 그들이 종이 됨으로써(약속으로는 자기들의 땅이었던 곳에서 나그네 노릇을 한 족장들처럼) "더 좋은 나라" "사라져 버릴 수 없고" 한 부속 도가 될 수 없는 "거룩한 나라" (히 11:16)를 회상하게 되었다.

2. 그들이 "각각 본성(本城)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즉 이전에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지정해 준 도성을 말한다. 적어도 그 때에 지정된 그 비슷한 도성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이의가 있을 법도 한데, 자기들의 도성이 없다고 항의한 자들은 없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 2:1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갔던 자들의 자손들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 도로 돌아와 각기 각자의 성읍으로 돌아간 자

이스라엘에 귀환한 이들이 어떤 자들인가?

그들은 대부분이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하여 포로로 잡혀간 자들의 자손이었다.

느부갓네살

  • B.C. 604-562년 신바벨론 제국을 통치한 인물.
  • 당시 신바벨론 제국을 고대 근동의 실질적 패권국으로 부상시킨 걸정적 사건은 B.C. 605년 애굽과 바벨론 간에 있었던 갈그머스 전투였다. — 느부갓네살은 이 전투 승리의 주역이었다.
  • 물론 그는 이 전투 당시 정식으로 왕위에 오르지 않은 황태자 신분이었다. 그러나 이 전쟁에서 대승을 거둠에 따라 느부갓네살은 부왕 나보폴라살(Nabopolassar, B.C. 625-605년)로부터 왕위 계승자로 확정받았고 실질적인 왕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 받았다. 이런 이유로 그는 정식으로 즉위하기 전인 B.C. 605년에 이미 왕으로 호칭되기도 하였다(단 1:3).
  • 한편 느부갓네살은 바벨론 영토를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의 남부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팔레스틴, 시리아, 애굽의 일부까지 확장시켜 바벨론을 명실공히 당시 세계 최강대국으로 부상시켰다. — 이 과정에서 그는 많은 식민지의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 본국으로 이송시켰다.
    특히 남유다는 B.C. 605년, 597년, 586년 세 차례에 걸쳐 느부갓네살에 의해 포수되어 왔는데 본문은 바로 이러한 과거의 역사를 상기시키는 표현이다.
  • 한편 고레스의 포로 귀환 칙령이 반포된 B.C. 538년을 기준으로 할 때 이스라엘 자손이 바밸론에 포수되어 있었던 기간은 길게는 70여년, 짧게는 50여년이 된다. 따라서 포로 귀환은 포로 2세 혹은 3세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며 본절에서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갔던 자의 자손׳ 이란 표현은 바로 이들을 일컫는 표현이다.

포로 귀환민들의 정착한 지역 : 예루살렘과 유다도

예루살렘과 유다도로 돌아와 각기 본성에 이른 자’

  • 여기서 예루살렘과 유다를 하나의 나라와 그 나라의 수도로 표현하지 않고 ‘도’(KJV, province) '라고 표현한 이유
    : 고레스 왕이 당시 페르시아를 20개의 도로 나누어 통치하고 있었는데 예루살렘과 유다는 그 가운데 제5도에 속하였기 때문.

‘돌아와’ (’슈브’)

  1. 일차적으로 물리적인 이동과 관련해서 쓰였다.
    • 즉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벨론의 이스라엘인 거주 지역에서 예루살렘으로 성전을 재건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이주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2.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의 귀환의 내적 의미는
     단순한 물리적 이동만이 아니라 과거의 불순종의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살고자 하는 영적인 회귀이기도 하다.

특히 선지서에서 ‘슈브'는 언약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며 악으로부터 돌아서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나타낼 때 자주 사용되었다(겔 14:6).

이와 마찬가지로 포로 귀환 시대의 선민 이스라엘의 회복 과정을 다루는 에스라, 느헤미야서의 경우에서도 ‘슈브׳ 동사

  1. 포로 생활에서의 귀환이라는 일차적인 의미와 더불어,
  2. 언약 백성으로의 회귀의 개념을 전달한다.

그리고 사실상 여기에서 이 두 개념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 왜냐하면 이스라엘 자손들의 포로 귀환은 궁극적으로 볼 때

  • 고레스의 정치적 목적에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돌을 회복시키시려는 구속사적 계획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1:1)

3. 지도자들이 첫째로 언급되어 있다(2절).

스룹바벨과 예수아는 그들에게 있어서 모세와 아론이었다. 전자는 그들의 우두머리 방백이고, 후자는 우두머리 제사장 격이었다. 느헤미야와 모르드게가 여기에 언급되어 있다. 혹자는 우리가 뒤에 가서 볼 수 있는 그 유명한 사람들과는 동명이인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마 동일한 사람이었으나, 후에 자기들의 나라를 섬기기 위해 궁정으로 되돌아 갔을지도 모르겠다.


💡 2:2 곧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야와 스라야와 르엘라야와 모르드개와 빌산과 미스발과 비그왜와 르훔과 바아나 등과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이러하니

본문은 스룹바벨을 강조하고, 나머지 인물은 그의 영도 아래 바벨론에서 나왔다는 의미를 전달함.

스룹바벨

  • 유다 왕의 직계 혈통,
    • 이름 뜻 : ‘바벨론에서 태어난'
    •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는 데 앞장서고 성전 제사를 회복한 인물(3:1-9).
  • 느부갓네살에 의해 포로가 된 여호야긴 왕의 장자 스알디엘의 아들(3:2; 학 1:1, 12).
    • 그런데 스룹바벨은 본서 3:2에서 여호야긴 왕의 장자인 스알디엘의 아들로 기술된 것과 달리 대상 3:19에서는 여호야긴 왕의 세번째 아들인 브다야의 장자로 기술되어 있다.
    • 이러한 기록의 차이는 여호야긴 왕의 장남 스알디엘이 무지하여 조카인 스룹바벨이 법적 후사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형이 자손 없이 죽었을 때 동생이 형수를 취하여 대를 잇게 하는 계대결혼법에 따라 스룹바벨이 태어났기 때문일 것이다(신 25:5-10).
    • 그런데 대상 3:19의 기록과 달리 본서 3:2에서 스룹바벨을 여호야긴 왕의 장자 스알디엘과 관련시켜 기술하고 있는 것은 ⇒ 그가 다윗의 정통성을 잇는 후손임을 강조하려는 저자의 의도로 말미암았을 것.
  • 아마도 페르시아 왕 고레스는 이를 감안하여 그를 이스라엘 포로 귀환 공동체의 지도자로 세웠을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반감을 사지 않는 정통성 있는 지도자를 세웠다는 점에서 이는 매우 현명하고 효과적언 정책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피지배 민족에 정통성 있는 지도자를 세움으로써 지배 민족에 대한 저항과 반역으로 이어진 경우가 많옴을 생각할 때 이는 메우 놀라운 정책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레스가 이러한 정책을 편 것은
 이스라엘과 다윗에게 하셨던 언약을 지키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의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 삼하 7:16의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셨던 약속, ״네 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고 하신 말씀
     결코 폐기되지 않았으며
    하나님께서 이를 성실히 이루어가고 계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 과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그 나라를 잃어버리고 말았다(대하 36:11-21).
  •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사
    • 다윗 왕조의 후손을 끊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은혜의 보호 속에서 그 명맥이 유지되게 하셨으며,
    • 이제 다윗의 후손을 지도자로 세우셔서 신정 국가 이스라엘을 회복게 하시는 것이다.
  • 실로 하나님은 구속사의 중심에 그리스도를 세우시고 그리스도를 세상에 오게 하시기 위하여
    • 다윗의 가문을 선택하였을 뿐 아니라
    • 다윗의 가문으로 하여금 구약 선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전통을 지키는 데 일익을 담당하게 하셨던 것이다.

예수아

  • ‘여호와께서 구원하셨다’ 란 이름 뜻. (’여호수아’와 동일한 의미)
  • 사실 본문의 ‘예수아’ 가 학개서와 스가랴서에서는 ‘여호수아׳로 볼리운다.
  • 이 인물은 포로 귀환 후 재건된 예루살렘 성전에서 봉직한 최초의 제사장.
    • 립나에서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살해당한 제사장 스라야의 손자 (왕하 25:18 이하),
    • 여호사닥의 아들
    • 그의 아버지 대에 바벨론에 끌려왔고(대상 6:14,15) 그 이후 바벨론에서 출생하여 자랐다.
  • 그는 포로 귀환 후 다른 사람들과 힘을 합하여 하나님의 단을 만들었고, 여호와의 전 재건을 독려하였다(3:2-9; 슥3:1-10; 6:11-13)

예수아를 제외한 나머지 9명의 지도자들

  • 각 지파의 족장들로 보이나 본문 이후에 이들의 활동에 대한 별다른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느헤미야

  • 이름 뜻 : ‘여호와께서 위로하셨다'.
  • B. C. 444년에 이루어진 제3차 포로 귀환의 주역으로서 하가랴의 아들이며 (느 1:1) 유다 총독으로 많은 활약을 한 느헤미야와는 동명 이인이다.

스라야

  • 이름 뜻 : ‘여호와께서 주권자가 되셨다’, ‘여호와께서 권세를 잡으셨다’
  • 병행구절 느7:7에는 ‘아사랴’

르엘라야

  • 이름 뜻 : ‘여호와를 두려워하게 하다’
  • 느7:7의 ‘라아먀’

본절 이하 :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를 구체적으로 밝힘

이스라엘에 돌아온 백성들의 수효가 가계별이나 출신지 혹은 귀환지별로 자세하게 기록된 이유

  1. 첫째, 그들의 귀환이 단순한 지리적 이동을 넘어 선민 이스라엘 공동체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
  2. 둘째,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과 이스라엘 공동체의 회복은 어느 특정한 지도자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 자손 전체가 함께 일구어 낸 합작품이었기 때문.

귀환자들의 수효를 지파별로 기록하지 않고 가계별과 출신지 혹은 귀환지별로 기록하는 이유

  • 귀환자들의 대부분이 과거 남유다에 속하였던 유다와 베냐민 지파 사람들의 자손들이었으므로 굳이 지파별로 기록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
  • 긴 세월 동안 기반을 닦아왔던 생활의 근거지를 뒤로하고 폐허와 다름없는 유다 지역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 큰 희생이 요구되는 일이었는데,
    과거 신정 왕국의 정통성을 지닌 남유다에 속하였던 유다와 베냐민 지파 사람들은 → 북이스라엘 지파 사람들에 비해 아브라함 이래 거듭된 선민 언약과 과거 여러 선지자들을 통하여 주신 이스라엘 선민 공동체의 회복 약속에 대한 굳은 믿음을 지녔기에 이 일에 적극적일 수 있었던 것.

이스라엘 귀환자들의 가계 및 수효를 느 7장에 다시 언급하는 이유

  • 이 두 명단은 등장 인물 몇 명이 차이가 나고, 동일인의 이름 표기가 약간 다르며, 숫자상의 조금 차이가 있을 뿐 대부분의 내용이 동일하다.
  • 이러한 반복
    1. 포로 귀환 사건이 지니는 중요성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 한동안 단절되었던 선민의 역사를 재개시키는 주역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성경은 이들의 명단을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 사실상 이들은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훼파된 성전을 재건한 주체였으며 하나님 임재의 상정적 처소인 성전을 구심점으로 한 순수한 여호와 신앙을 회복한 자들이었다.
    2. 뿐만 아니라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의 저자들은 각각 하나님의 궁극적 관심이 하나님 백성 하나하나에 있음을 보여주기 위하여 상세한 명단의 기록을 남겼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이를 가계별로 정리하여 기록한 것은

  • 이들이 이방 땅에서의 긴 포로 생활에도 불구하고
    • 자신들의 민족적 정통성을 상실하지 않았으며
    • 종교적 정통성 역시 유지하고 있었음을 암시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 그리고 이는 하나님은 죄를 범함으로 심판을 받아 이방의 포로가 되었던 바로 그 가문의 사람들을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는 분임을 부각시킨다. 즉 하나님은 과거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영원히 그의 후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대로(창 12:1-7) 아브라함의 혈통을 이은 그 후손들을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올 수 었게 하셨던 것이다. 

★ 3-20절 : 가계별 귀환자들의 수효

 💡 기록 방식

  • 기록 형식: ‘~의 자손이 ~ 명이요׳ → 가계를 먼저 밝힌 후 그 가계에 속한 자들의 수효를 제시하고 있는 것.
  • 그런데 제1차 포로 귀환자들의 가계와 수효를 밝히는 이 부분에 등장하는 가계의 이름은 이후 다른 단락에서도 반복.
    1. (8장 1-14)제2차 포로 귀환자들의 가계와 수효를 밝히는 단락.
    2. (느10장) 예루살렘 성곽 완성 후 이스라엘 자손들의 거주지를 재배치 하는 내용이 기록.
    ⇒ 이로 보아 이 부분에 등장하는 가계는 제1차 귀환 당시의 가계 대표자들의 이름을 딴 것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조상의 이름을 딴 것으로 보는 것이 보다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 부분에 나오는 이름 가운데는 생소하거나 이방식 이름들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본단락의 인물의 정확한 가계를 추적하기는 어렵다.

가문 구성원까지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의 관심

본절에서부터 20절까지는 가문 중심으로 사람들의 명단을 정리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에스라를 통해 2차로 귀환한 각 가문의 이름을 기록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그 가문에 속한 귀환자들의 수까지 상세하게 기록하게 하셨다.

⇒ 이를 통하여 깨닫는 하나님의 마음

  • 가문의 족장에게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가문을 구성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도 귀하게 여기심을 알 수 있다.
  • 그리고 하나님은 성전 건축 자체가 아니라 바벨론 포로로부터 돌아와 성전 건축에 참여하게 될 한 사람 한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셨음을 확인할 수 있다. 

4.이들 중

  1. 어떤 가족들은 그들 조상들의 이름을 따라 이름을 지었고, 또
  2. 어떤 가족들은 자기들 이전에 살던 지명을 따라 불리우고 있다. 우리들에게도 많은 성(姓)이 사람들이 이름을 따르거나 지역의 이름을 따르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5.여기에 기록된 가족들 중 어떤 가족의 숫자는 느헤미야 7장의 기록과 다소간 차이가 있다.
느헤미야 7장에서도 이 목록이 반복되어 있는데, 그것은 여기에서 따간 것일지 모른다. 그래서 처음에 기록된 자들의 이름 중 어떤 것은 나중에 가서 빠졌을지 모른다. "가겠습니다" 해 놓고 "가지 않는" 자손이 생겼다면, 그런 경우에는 그들이 속했던 가족의 숫자는 감소되었을 것이다. 또 이와 달리 처음에는 사양했던 자들이 "후에 회개하고 갔을" 지 모른다. 그런 경우에는 숫자는 증가되었을 것이다.

6.여기에는 "엘람의 자손" 이라 불리는 가족이 둘 있다(하나는 7절, 다른 하나는 31절).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두 가족의 숫자는 다 같이 1254명이라.

7."높으신 주" 라는 뜻의 이름인 아도니감의 자손은 바로 "짐승의 숫자" 인 666이다(계 13:18). 계시록에서는 이 수를 "사람의 수" 라고 말하고 있다. 휴 브러턴 씨(Mr. Hugh Broughton)는, 그 숫자가 본문의 아도니감과 관계된 것이라고 본다.


💡 3절, 바로스 자손 2170명

가문의 수효가 유독 많음

  • 다른 가문의 자손들은 아무리 수가 많아도 천명을 약간 상회하는 것에 반해 바로스 자손은 2.172명에 이르고 있다.
  • 또한 2차 포로 귀환 때에도 스가냐 자손이라고도 불러우는 바로스 자손의 귀환자 수는 다른 자손들보다 많은 150명이었다(8:3).

이렇게 많은 자들이 귀환한 것은

  • 이들 자손이 매우 번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매우 특별했음을 보여준다.

한편 느 3:25에는 바로스의 아들 브다야가 우세의 아들 발랄과 함께 성벽을 건축하는 일을 담당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브다야가 바로스의 아들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1차 포로 귀환과 성벽 재건 사이에 시간적 간격이 90년이 넘는다는 점에서 본다면 바로스의 후손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개연성이 있다.
이들 가문 가운데 일부는 훗날 이방인 아내를 취하였다가 에스라의 개혁 조처에 따라 공동체에서 내보냈으며 (10:25), 느헤미야의 언약 갱신 때 이 가문은 언약에 인을 치고 율법대로 살 것을 맹세하기도 했다(느 10:14).


💡 4절, 스바댜 자손 372명

  • 스바댜 : ‘여호와의 심판’
  • 이 자손은 1차 귀환 때 372명이 귀환하였고 2차 귀환 때는 에스라의 지도 아래 80명이 귀환하였다(8:8).

5절, 아라 자손 775명

  • 아라의 자손과 관련해서는 후에 스가냐가 이스라엘의 대적으로서 예루살렘 성벽 중건 공사를 훼방하였던 암몬 사람 도비야를 사위로 삼았다(느 6:18)는 기록이 발견된다.

6절, 바핫모압 자손 (예수아와 요압 자손) 1812명

  • 바핫모압 : ‘관리자’
    • 예수아와 요압은 바핫모압 자손을 구성했던 두 계파인 것으로 보임.
  • 바핫모압 자손들의 조상은 모압 지역의 관리였었을 것으로 추측.
  • 이 가문의 사람들 중 일부는 훗날 이방인 아내를 취하였다가 에스라의 개혁 조치에 따라 내보냈으며(10:30), 느헤미야의 언약 갱신 때에는 언약에 인을 치고 율법대로 살 것을 맹세하기도 했다(느 10:14).

7절, 엘람 자손 1254명/ 8절, 삿두 자손 945명 / 11절, 브배 자손 624명 / 12절, 아스갓 자손 1222명 / 13절 아도니감 자손 666명 / 15절, 아딘 자손 454명/ 17절, 베새 자손 323명/

  • 이 가문의 사람들 중 일부는 훗날 이방인 아내를 취하였다가 에스라의 개혁 조치에 따라 내보냈으며, 느헤미야의 언약 갱신 때 이 가문은 율법대로 살 것을 맹세하는 신앙적 면모를 보였다.
    (느헤미야의 언약 갱신 때에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겠다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언약식에 참여하여 인을 치며 서약을 한 것)

10절, 바니 자손 642명

  • 느헤미야의 언약 갱신 당시 이들 가문도 언약에 인치고 율법대로 살 것을 맹세하였다(느 10:14)

16절, 아델 자손 곧 히스기야 자손

  • 다른 여타 가문에 비해 98명이라는 적은 인원이 귀환함.
  • ‘히스기야’ (’여호와께서 강하게 하셨다’) 는 성경에 다른 곳에서도 나오는 신앙적 이름.
  • 남유다 13대 왕과 관계 없음.

19절, 하숨 자손 223명

  • 이 가문 가운데 일부는 후에 에스라의 개혁 조치에 따라 이방 여인을 내어보내고(10:33), 느헤미야의 언약 갱신 당시 율법대로 살기로 맹세한 가문(느 10:18).
  • 느 8:4에서 에스라의 좌편에 서 있었던 자와 동명 이인. 

★ 21-35절 : 귀환자들의 출신지별 or 귀환지별 수효 보도

 💡 여기에서는 베냐민 지파에 속한 지역 출신의 사람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점이 하나의 특징으로 발견된다.

  • 즉 23절의 아나돗, 24절의 아스마웻, 25절의 그비라와 브에롯, 26절의 라마와 게바, 27절의 믹마스, 33절의 로드와 하딧, 오노 등은 모두 베냐민 지파에 속한 지역들.

  • 사사 시대에
    • 베냐민 지파는 그들의 범죄로 인하여 거의 멸절된 상태에 있었다(삿 20,21장).
  • 그러나 이로부터 약 600년어 지난 포로기 이후 시점에서는
    • 오히려 귀환자들의 상당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 이것은 하나님께서 미약한 자를 번성케 하신 특별한 은혜를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 저자는 이러한 사실을 확인케 하여줌으로써 본서의 일차 독자인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힘을 북돋우어 주고 있다.

 

8. 베들레헴 사람(21절)이라는 명칭의 사람들은-그 도성이 다윗의 도성이었지만-불과 123명뿐이었다. 베들레헴은 "유다의 수천 성읍들 중에서도" 작은 도성이었다. 그러나 거기에서 메시야가 나오게 되어 있다(미 5:2).


💡 21절, 베들레헴 사람 223명

베들레헴이 이처럼 다른 지명들에 앞서 기술되고 있는 이유는,

  • 이곳이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통치자이자 이상적 지도자로 여겨지던 다윗 왕의 고향이기 때문일 것이다(삼상 17:58).
  • 이곳 베들레렘은 다윗의 자손으로서 인류를 죄의 포로에서 해방시킬 예수 그리스도가 나실 곳이기도 하다(미 5:2).
  • 베들레헴은 유다 지파의 기업에 해당하는 지역이므로 본문의 123명의 사람들은 유다 지파 사람들로 보아야 한다 

9. 아나돗은 베냐민 족속에게 유명한 곳이었다. 그러나 그 가계에 속한 사람은 128명뿐이었다(23절).

이것은 아나돗 사람들이 그들 도성에서 난 예레미야를 박해함으로써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남은 자가 없으리라. 내가 아나돗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곧 그들을 벌할 해이니라" 는 저주이다(렘 11:21, 23). 그리고 "가련하다. 너 아나돗이여" 라고도 했다(사 10:30). 선지자를 박해하는 것은 파멸을 가장 빨리 가져오는 길이다.


💡 22절, 느도바 사람 56명

  • 이곳은 유다에 속한 성읍으로 다윗의 용사들 중 이곳 출신이 있었다(삼하 23:28,29; 왕하 25:23).
  • 대상 9:16의 기록에 의하면 이곳에는 포로기 이후 레위 자손이 거주한 곳으로 나온다.

23절, 아나돗 사람 128명

  • 이곳은 남유다의 멸망 전에 유다의 죄악과 멸망에 대해 예언했던 선지자 예레미야의 출신지이기도 하다(렘 1:1).
  • 이 성읍이 상대적으로 컸음에도 불구하고 귀환자의 수효가 그리 많지 않았던 이유는
    ㅡ 과거 이 지역 사람들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집요하게 박해함으로써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기 때문으로 여겨건다(사 10:30; 렘11:21,23).

28절, 벧엘과 아이 사람

  • ‘벧엘’ :
    • ‘하나님의 집׳ 이란 뜻을 가진 에브라임에 속한 성읍.
    • 성경에서 예루살렘 다음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장소.
    • 예루살렘 북쪽으로 19km 가량 떨어져 있다.
    • 이곳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창 12:8)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고 돌단을 쌓은(창 13:3; 31:13) 곳으로 역사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유서가 깊은 도시.
    • 그러나 반역을 통해 북이스라엘을 수립한 여로보암이 자신의 왕권을 공고허하기 위해 이곳에 우상을 둔 사당들을 세웠다(왕상 12:28-13:32).
      그 결과 벧엘은 우상 숭배의 중심지가 되고 말았다. 때문에 아모스나(암 4:4; 5:5.6) 예레미야(렘48:13) 같은 선지자들은 우상의 전당이 되어버린 벧엘에 대해 심판을 예언하였다.
    • 그러나 바벨론 포로에서 벧엘로 돌아온 귀환자들은(느 11:31)
      과거 조상들이 우상 숭배의 죄를 반복하지 않고 새로 복원된 예루살렘 성전 중심의 삶을 살았다(슥 7:2).

32절, 하림 자손 320명

  • 이들 자손 중 일부는 귀환 후 이방인 아내를 얻었다가(스 10:31) 에스라의 개혁 조치에 따라 내보냈으며 느헤미야의 언약 갱신 때에 참여하였다(느 10:27).

34절, 여리고 자손이 345명

  • 여리고성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시 여호수아의 지휘 아래 완전히 진멸되었으며(수 6:16 이하), 여호수아를 통한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재건되지 못하였고(수 6:26), 이후 벧엘 사람 히엘에 의해 다시 재건되었으나(왕상16:34) B.C. 587년 바밸론에 의해 다시 완전히 파괴되었다.
  • 이스라엘에 다시 귀환한 여리고 출신의 백성들은 느헤미야를 도와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세우는 일을 도왔다(느 3:2).
  • 예수께서는 이곳에서 눈먼 자의 눈을 뜨게 하는 기적을 행하기도 하셨다(마 20:29).

35절, 스나아 자손 3640명

  • 스나아 자손은 예루살렘 성벽 재건에 있어서 어문의 들보와 문짝의 빗장과 자물쇠 등을 만드는 일을 했다.

돌아온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스라 2:36-63)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설명이 있다.

Ⅰ. 돌아온 제사장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들의 수가 현저하게 많았었다.

귀환자 전체의 약 10분의 1이 된다. 전체 수가 42,000명 정도(64절)인데, 4제사장 가족들의 수가 4,200명이 넘고 있다(36-39절). 이 수는 하나님의 몫인 열 중 하나-즉 축복된 비율이다. 여기에 기록된 제사장들 가족들 중 세 가족은 그 반열의 우두머리였다(대상 24:7, 8, 14). 네 번째 가족이 바스훌이었다(38절). 이들이 예레미야를 학대한 바스훌(렘 20:1)의 후손이라면, 그렇게 악한 사람이 이렇게 선한 씨를 얻고 그 수도 많아졌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 36절, 제사장들은 …

귀환한 제사장 가문은 단 네 개밖에 언급되지 않았지만 계보에 속한 사람의 수는 4,289명이다.

이는 귀환자들의 총수인 42, 360(64절)의 10분의 1정도가 되는 수효이다.

  • 이전 출애굽 시대에 제사장 가계가 속한 레위 지파의 인구가 이스라엘 전체의 30분의 1 정도(민 3:39; 1:46)였음을 감안할 때 포로 귀환 시대에 이들 제사장의 비율은 매우 높은 것이 아닐 수 없다.
  • 귀환자들이 과거 남유다에 속한 자들 중심으로 이루어졌음을 염두에 두더라도 포로 귀환 공동체의 10%라는 비율은 매우 높은 것으로
    1. 제사장 가문이 매우 번성했고
    2. 예루살렘 귀환에 매우 적극적이었음을 보여준다. 

💡 37절, 임멜 자손

  • 임멜 : 다윗 시대에 16번째 제사장 반열에 속하였음.
  • 임멜 자손 중에 하나니와 스바댜가 이방 여인을 아내로 취하였으나 에스라의 권고에 따라 이들은 이방인 아내와 이혼하였다(10:20).
  • 과거 선지자 예레미야의 대적이었던 여호와의 집 유사장 바스훌이 임멜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렘 20:1).

39절, 하림 자손

  • 다윗이 세운 제사장 24반열 중 3째 반열에 속함(대상24:8).
  • ‘하림’ : ‘바쳐진’, ‘헌신된’
  • 하림 자손 중 마아세야, 엘리야, 사스마야, 여히엘, 웃시야가 이방 여인을 아내로 취하였으나 에스라의 개혁 조치에 따라 내어보내고 회개하였음(10:21) 

💡 38절, 바스훌 자손

  • 바스훌 : 1)찢어짐 2) 평화
  • 역대기의 기록에는 나오지 않고 렘 20장과 21장에서만 발견됨. 본래 독립된 제사장 가문을 이루지는 못하였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바스훌은 남유다 제18대 왕 여호야김 시대 성전 제사장이었던 임멜의 후손(렘 20:1)으로 그의 가계에 종속되어 있었던 것이다.
  • 그러나 바스홀의 자손은 포로 귀환 후 그 가계가 번성하여 별도의 반차에 배정되었던 것으로 보인다(Keil).

렘20:1-6

20:1 <예레미야와 바스훌> 임멜의 아들 제사장 바스훌은 여호와의 성전의 총감독이라 그가 예레미야의 이 일 예언함을 들은지라

20:2 이에 바스훌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때리고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베냐민 문 위층에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으로 채워 두었더니

20:3 다음날 바스훌이 예레미야를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에서 풀어 주매 예레미야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네 이름을 바스훌이라 아니하시고 마골밋사빕이라 하시느니라

20:4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너로 너와 네 모든 친구에게 두려움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그들의 원수들의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네 눈은 그것을 볼 것이며 내가 온 유다를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그들을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옮겨 칼로 죽이리라

20:5 내가 또 이 성읍의 모든 부와 그 모든 소득과 그 모든 귀중품과 유다 왕들의 모든 보물을 그 원수의 손에 넘기리니 그들이 그것을 탈취하여 바벨론으로 가져가리라

20:6 바스훌아 너와 네 집에 사는 모든 사람이 포로 되어 옮겨지리니 네가 바벨론에 이르러 거기서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너와 너의 거짓 예언을 들은 네 모든 친구도 그와 같으리라 하셨느니라

바스훌 가문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과 회복

바스훌의 과거 = 예레미야 핍박한 사람

  • 과거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예레미야를 때리고 착고에 채우며 일종의 감옥이라 할 수 있는 구덩이에 가두고 괴롭혔던 사람(렘 20:13)
  • 이런 바스훌의 행동은 비록 왕의 명령을 따른 것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참된 선지자를 알아보지 못한 영적 무지에서 비롯된 소행이었다.
    때문에 예레미야는 이 인물에 대하여 바벨론에 끌려가 죽게 될 것어라고 예언하였다(렘 20:4-6).

이렇듯 하나님의 선지자를 핍박한 바스훌을 조상으로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스훌의 자손들이 포로 귀환 후 제사장 24반열 가운데 남은 네 계보 중 하나를 차지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회복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Ⅱ. 레위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나는 이들의 수가 적음에 대해 이상히 생각지 않을 수 없다.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을 합쳐서 350명이 되지 못했다(40-42절).

옛적에는 레위 족속들이 대제사장들보다 더 그들의 직무에 열성이었다(대하 29:34).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경건한 열심을 가졌다는 평판은 시대와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바람은 임의로 불어" 방향을 바꾼다.


💡 40절,

본절에 기록된 제사장을 보좌하는 일반적인 레위인들은 칠십사명이었으며, 성가대 출신의 아삽 자손은 일백이십팔명(41절), 문지기의 자손들 일백삼십구명(42절)으로 모두 합해 삼백사십일명.

이처럼 귀환 레위인의 수효는 귀환 제사장들의 수효와 비교할 때 현저하게 적었다.

  • 이는 레위인들이 제사장 가문처럼 번성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 하나님을 향한 열심을 내지 못하고
  • 생계를 위해 그들의 직무를 포기했음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포로기 전 히스기야 시대에는 레위 족속들이 제사장들보다 그들의 직무에 더 열성적이기도 하였었다(대하 29:34).
그러나 포로 귀환 당시의 레위인들은 그러한 열심을 다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제2차 포로 귀환 때에도 레위인들은 본래 한 명도 동참하지 않다가(8:1-14) 에스라의 촉구와 동원을 통해 뒤늦게 참여하였다(8:15-20).

한편, 레위인들은 특별한 기업을 받지 못했고 다른 지파들 가운데 흩어져 각 지파로부터 거두어들인 십일조를 통해 생계를 꾸려나갔었다(민 35:2-7; 신 14:27).
그러다가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나뉜 후 북이스라엘의 레위인들은 여로보암이 우상을 만들어 섬기게 하자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기를 원하는 백성들을 이끌고 남유다로 이주해 왔다(대하 11:15.16).
그리하여 많은 레위인들은 앗수르에 의한 민족 혼합 정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후에 남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할 때 남유다 백성들과 함께 그들도 바벨론으로 끌려가긴 하였으나 결국에는 고레스의 포로 귀환 칙령에 따라 스룹바벨의 지도 하에 혈통을 유지한 채 바벨론으로부터 돌아올 수 있었다.


💡 40절, 호다위야 자손 예수아와 갓미엘 자손 74명

예수아 갓미엘 : 각 가문을 대표하는 족장의 이름.

  • 이들은 본장 3:9에서 여호와의 전 재건 공사 때 성전 건축 일을 감독하며 대제사장 예수아를 도운 것으로 기술됨.
  •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를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모든 이방 사람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열조의 허물을 자 복하는 날에 대에 올라서서 큰 소리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한 사람의 명단과(느 9:4) 언약 갱신에 참여한 자들의 명단에도(느10:9) 포함되어 있다.

 💡 42절, 문지기의 자손들

레위 지파에 속한 이들 문지기들의 주된 임무

  • 성전의 각종 출입문을 관리하는 것. 성전 안의 곳간과 모든 방들을 관리하는 임무도 수행했었다(대상 9:26). 문지기 자손 중에는 므셀레마계, 오벧에돔계, 호사계가 있는데, 오렌에돔계가 가장 많았다(대상 26:1-19).

살룸, 아델, 달문

  • 포로에서 귀환한 문지기 자손들의 조상이 아니라 당시 각 가문을 대표하는 지도적 인물. 

Ⅲ. 느디님 가족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들은 생각건대 기브온 사람들로 추측된다. 기브온 사람들은 처음에 여호수아에 의해(수 9:27) 생명이(이름의 뜻대로) "주어졌고", 그 후에는 사울에게 추방되었다가 다시 다윗이 하나님의 전을 섬기는 레위인들에게 붙여 나무 베는 자와 물긷는 자로 삼았던 자들이다. 그리고 솔로몬은 자기의 종들과 그들이 같이 일하게 하였으며(외간상으로는 유대인인지 이방인인지 나타나 있지 않다), 여기서 성전 하속들 중에 들어 있고, 느디님 사람이란 명칭으로 계수되어 있다(55, 58절). 비록 천한 위치에서 일할망정 하나님의 전에 속해 있다는 것은 명예롭다는 것을 기억하자.


💡 43절, 느디님 사람들

느디님 : ‘주어진 사람들’, ‘드려진 사람들’

이들 족속은 이름 그대로 레위인들의 일을 돕기 위해 주어진 사람들.

하지만 이들은 포로 귀환 이전의 사건들과 관련된 기록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으며 포로 귀환 이후의 기록들에만 나타난다. 때문에 느디님 사람들의 기원에 대하여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이들의 기원과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두가지 유력한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1. 첫째, 느디님 사람들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한 뒤에 살려준 기브온 거민들을 가리킨다는 견해가 있다.
    가나안 정복 전쟁 당시 가나안 족속의 하나였던 기브온 거민들은 가나안 족속들이 이스라엘에 의해 멸절의 위기에 처하게 되자 여호수아를 속이고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었다.
    하지만 그들의 거짓말은 곧 드러났다. 여호수아는 기브온 거민들의 거짓이 드러났음에도 그들과 맺은 언약으로 인하여 그들을 멸하지 못하고 생명을 보존하여 주었다.
    대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성막에서 레위인을 도와 여러 가지 잡다한 일들, 즉 주로 물을 긴고 나무를 페는 일을 하게 하였다(수 9:21-27). 대개의 학자들은 이들의 후손이 느디님 사람들이라고 본다.
  2. 둘째, 율법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 중에 얻은 전리품의 일부를 레위인에게 주도록 했는데(민 31:28-30) 포로로 잡은 이방인들도 오십 분의 일을 여호와의 성막을 맡은 레위인들에게 일꾼으로 주도록 하였다(민 31:47).
    이렇게 주어진 포로들이 레위인들을 도와 성전에서 필요한 잡일이나 막노동을 담당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들 역시 기브온 사람들과 더볼어 느디님 사람들로 볼려졌을 것으로 본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느디님 사람들은

  1. 포로 시대 이전까지는 한낱 성전 노예들로서 그들에 대한 호칭조차 언급되지 않을 정도로 미미한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포로 귀환 이후에 그들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본장에서는 제사장과 레위인과 더불어 나란히 소개되고 있다.
  2. 또한 그는 비록 비천한 일을 감당하였지만 제사장, 레위인과 마찬가지로 세금도 면제되었으며(7:24), 이스라엘 회중의 일원으로 언급되어진다(느 10:28.29).

    이러한 사실은 느디님 사람들이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 내에서 매우 비중 있는 존재가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많은 이스라엘 자손이 순수한 여호와 신앙을 상실한 포로 시대에 있어서도,
    • 느디님 사람들은 신앙을 지켰을 뿐 아니라
    • 굳이 이스라엘 땅으로 귀환하지 않고 자신들이 거주하던 곳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자손들과 함께 귀환하여 성전 재건에 동참하고 이전과 동일하게 성전에서 봉사하는 것은 물론
    • 선민 이스라엘의 재건에 많은 공헌을 하였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IV. 55-57절 : 솔로몬의 종들 중 귀환자들 가문

 💡 55절, 솔로몬의 신복의 자손

언약 자손의 범위 : 혈통적 이스라엘에 머무르지 않음

솔로몬의 종들이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르키는지에 대하여는 이견이 있으나 다음과 같은 사람들로 추정해 볼 수 있다.

  1. 첫째,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할 당시 이스라엘 군사들이 진멸하 지 아니한 자들(삿 1:21-36).
    그 이후에도 이스라엘에 계속 거주하였고 솔로몬에 의하여 종이 된 이스라엘 거주 외국인들의 후손들로 볼 수 있다(왕상 9:20, 21).
  2. 둘째, 솔로몬이 전쟁에 나가 패배시킨 나라들의 포로들.
    고대 근동에서 패전국의 포로들을 승전국의 사람들이 종으로 삼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는 점에서 위의 두가지 견해는 모두 타당성이 있다.

이렇게 조상 대대로 이스라엘 내에서 종의 위치에 있었던 이들의 자손들은 모두 열 개 가문이다.

이들은

  • 이스라엘에서 이방인이었을 뿐더러 종의 신분이었지만
  • 바벨론에서의 안정된 삶을 버리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이스라엘로 돌아온 믿음 좋은 사람들이었다.

⇒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빛이

  • 혈통적인 이스라엘 자손에게만 머물지 않고
  • 믿음으로 그 언약의 백성 안에 들어온 모든 자에게 다 비추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58절, 느디님 사람과 솔로몬 신복의 자손 총계

💡이상에서 살펴본 바대로 느디님 사람들의 가문이 35개, 솔로몬의 종의 가문이 10개로 총 45개의 가문이 성전에서 레위인을 도와 일했다.
이들의 총수가 392명이었으므로 이들의 한 가문당 평균 7.8명의 사람들어 바벨론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왔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느디님 사람들과 솔로몬의 종들은 모두 이방인 출신으로 이스라엘에 거주하였다.

이 두 부류 가운데 그 명단이 보다 앞서 기록되었을 뿐 아니라 대부분이 여호수아 시대에 이스라엘 공동체에 편입된 기브온 거민들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는 느디님 사람들이,
보다 나중에 소개되며 주로 솔로몬 시대에 이스라엘에 편입된 솔로몬의 종들의 자손들보다 조금 더 나은 계층에 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오랜 바벨론 포로 생활을 끝내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시점에서 계급적 차별은 없었을 것이다.


V. 어떤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이요, 또 제사장들로 간주되었으나, 그런 영예로운 호칭이 불분명한 자들도 있었다.

1. 자칭 야곱의 자손이라고 하나 이스라엘인임을 입증할 수 없는 자들도 상당히 있었다(59, 60절).

그러나 그런 자들이 자기의 가문을 밝힐 수는 없었지만 하나님의 전과 그 백성에 대한 애착은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들도 예루살렘에까지 올라가고자 했던 것이다. 이들은 참으로 "유다의 근원에서 나온" (사 48:1) 참 이스라엘의 씨들이었지만, 그 물의 맛을 잃어버린 그런 자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 59절, ‘그 종족과 보계가’ 불분명한 자들

‘종족’ = ‘씨’

  • ‘씨’
    = 우리말 ‘종족'이 의미하는 것처럼 일차적으로는 혈통을 통해 이어지는 자손을 의미하지만 더 깊은 의미도 지닌다.
  • 즉 구약 성경에서
    1. 첫째,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의 언약을 계승할 선택된 자손을 가리킬 때 주로 사용된다(창 12:7; 13:15; 15:13).
    2. 둘째,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로 세상에 오시는 분을 가리킬 때도 사용된다(창 3:15).
    그러므로 본문에서 몇몇 종족의 근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내용은
    1. 그들이 이스라엘의 육적인 혈통을 이어받았는가에 대한 여부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2. 더 나아가서는 그들이 하나님의 씨(제라으)로서 언약의 자손의 범위 안에 있는지에 대한 여부를 나타낸다(롬 2:29).
    ⇒ 따라서 이렇게 언약 자손으로서의 근원이 뚜렷하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
    • 그들이 비록 제사장이라고 할지라도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없도록 하였다(61절).

‘이스라엘에 속하였는지는 증거할 수 없으니’

  • 사실 어려운 난국을 거처면서 간혹 자신의 계보를 알지 못하는 자손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바벨론에 끌려간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고 힘든 세월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자신들의 족보를 간직하고 있었다는 점은 놀랍다.

    그들은 무엇을 믿었을까?
    • 자신들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임과
    •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이방 포로 생활에서 구해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에
    자신의 계보를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3-58절).

  • 하지만 그들 가운데서도 일부 사람들은 자신의 계보를 잃어버렸으며, 알지 못하였다.
    그것은 아마 바벨론에서 혼혈이 이루어졌거나 어린 시절 부모가 죽음으로 인하여 생겨난 결과일 것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제1차 포로 귀환의 대열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 그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부심성전 재건의 사명감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 60절, 들라야 자손, 도비야 자손, 느고다 자손

이들은 바벨론으로부터 이스라엘 자손들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위해 귀환하였지만 자신의 계보를 확인할 수 없어 자신이 이스라엘 자손인지 아닌지를 알지 못하는 자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포로 귀환 공동체는 이들을 추방하거나 소외시키지 아니하고, 새로 재건된 성전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위 세 자손의 신앙적 이름

  • 세 자손이 참 이스라엘 백성인가 하는 것에 대해 의심을 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이름이 모두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보여준다는 사실이 특이하다.
  1. 들라야 : 여호와께서 자유롭게 하셨다
  2. 도비야 : 여호와는 선하다
  3. 느고다 : 구별된. 

2. 또 여기에는 제사장임을 입증할 수 없으나, 사실은 아론의 씨라고 생각해야 될 사람들도 있었다.

문자로 보존되지 아니한 것은 얼마 안 가서 잊혀지는 수가 허다하다. 이제 우리는 여기서 다음 몇 가지를 들을 수 있다.

(1) 그들은 어떻게 하여 자기들의 증빙자료를 상실했는가?

그들 조상 중 한 사람이 다윗 때에 훌륭한 사람이었던 바르실래의 한 딸과 결혼했다. 그래서 그는 이 훌륭한 가문과의 결연을 자랑했고, 제사장의 가족으로서의 이전 명칭보다 바르실래의 가문을 더 좋아하여 그 가문의 이름을 따라 그의 후손이라고 불리기를 원했다. 그렇게 되자 그들의 족보도 아론의 계보가 아니라 다윗 계보에 들어가게 되어, 결국은 가계를 상실하고 말 것이다.

바벨론에서는 제사장 직분으로 인해서 오는 특권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므로 제사장 계보에 드는 것에 대해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자기들의 사역직이나 사역자와 자기들과의 인척 관계가 자기 자신을 경멸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내가 나의 직무를 존귀케 하리라" 고 말씀하신 분이 누구인지를 모르는 것이다.

(2) 그들이 그 결과를 잃은 것이 무엇인가?

그들은 자기들의 제사장 직임을 증거할 수 없게 되자, 제사장이 될 수 없었었고 제사장 직위에 쫓겨나며 제사장 직분을 모독한 자로 여겨졌다.

이제 제사장들은 자기들의 권리를 회복했고, 제단도 다시 섰으므로 점차 본래의 직위가 회복될 터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천부의 권리를 인간적인 영광과 바꾸었다. 그러므로 이들은 마땅히 그 직위에서 쫓겨나고 "지성물(至聖物) 먹는 것이" 금지되어야 한다.


💡 62절, ‘보계 중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도 … 제사장의 직분을 행치 못하게 하고’

본문은 ‘제사장직으로부터 제외하다’ 라는 뜻.

세 가문에 대해 제사장적 수행 금지 명령을 내린 사설은 가혹한 듯이 보이지만 제사 제도의 거룩성의 유지를 위해서는 곡 필요한 조치였다.

이 세 가문에 대해 제사장직을 수행하지 못하게 한 이유

  1. 하나님께서 제사장직은 레위 지파의 특정한 계보의 사람들만이 감당하도록 정하셨던 그 명령을 범하지 않기 위해서(민 16:10 이하; 신 31:9).
  2. 그리고 그들이 제사장 가문에 속한 자라 할지라도 거룩한 특권을 가진 제사장의 족보를 잊어버린 것은 ⇒ 그들의 불경건함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속한 제사장 가문의 가계도를 찾지 못한 자는 제사장직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한편 이 세 가문은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이스라엘 공동체로부터 추방 당하지는 않았다.


 

그리스도는 당신을 부끄럽게 여기며 당신을 섬기는 일을 부끄럽게 여기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실 것이다. 그들의 제사장 직분을 몰수 한사람은 총독이었다. 혹자는 현재의 총독 스룹바벨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은 느헤미야였다고 생각한다(느 8:9; 10:1 에는 그를 총독이라 했다. 그리고 그가 몇 년 후에 돌아와서 이 명령을 전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금령은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다만 일시적인 정지에 불과했으며, 이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 볼 수 있는 "우림과 둠밈을 가진" 대제사장이 나올 때까지일 뿐이었다. 그런 때가 오기를 바랬다. 그러나 제2 성전에서 대제사장은 있었지만, 그런 시기는 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들은 우림보다도 더 훌륭한, 완전한 표준 구약 성서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신탁이 없어지자 가장 위대한 신탁인 메시야를 대망하도록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 우림과 둠밈이란 메시야라는 신탁의 한 모형에 불과했다. 제2 성전에는 법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또 있었다면 옛 것인지 새로 만든 것이었는지 확실치 않다. 실체가 다가오게 되자, 점차 그림자들은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예언자 예레미야를 통해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법궤가 없다는 것 때문에 어떤 손상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암시하고 계신다(렘 3:6, 17). "그 때에, 곧 예루살렘을 여호와의 보좌라고 부르는 날에, 모든 민족이 그리로 모이는 그 날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다시는 이야기되거나 기억되지 아니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없이도 그들이 만사를 잘 해나갈 것이기 때문이니라.


💡 63절, 방백이 저희에게 명하여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전에는 지성물을 먹지 말라 하였느니라

방백 : 스룹바벨로 볼 수 있음.

우림과 둠밈

  •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할 때에 우림과 둠밈을 사용하였다. 즉 우림과 둠밈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기 위하여 전통적으로 대제사장이 사용하였던 도구이다(출 28:30).

그러나 본문의 뉘앙스로 보아 당시에는 우림과 둠밈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 우림과 둠밈을 담은 대제사장의 의복마저 소실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백은 소실된 우림과 둠밈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묻는 제도를 복원하려고 하였다.
  • 그리고 공식적 제사장 계보에 명단이 없는 하바야 자손이나 학고스 자손, 또는 바르실래 자손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하나님의 뜻을 물으려고 하였다.

한편 방백은 이런 일이 시행될 때까지는 세 가문에 속한 자들이 지성물을 먹지 못하도록 조치하였다.
→ 이는 지성물은 오직 거룩한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

만약 그들이 지성물을 먹은 후 제사장 가문이 아닌 것으로 판명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손한 결과가 되므로 이런 위험을 원천적으로 봉쇄하였던 것이다


 

수행자들의 총계(에스라 2:64-70)

💡 저자는 사실 본장에 기록된 복잡한 족보의 내용은(3-60절) 모두 생락하고 그들의 총수가 42, 360명이란 64절의 내용만 기록해도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보를 따라 각 자손의 수와 그들의 조상의 이름을 상세히 기록한 이유는

  • 바벨론으로부터 돌아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죄악과 불순종으로 점철되었던 그들의 조상들과 단절된 사람들이 아니고 새로이 부름 받았던 사람들도 아니며 조상들과 연속선상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계보를 따라 계속 이어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볼 때 우리는 이러한 포로 귀환의 역사를 통하여

  • 한때는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 그들을 심판하셨지만,
  • 때가 되어 다시 회복시키시고 거룩한 백성으로 만들어가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본서의 저자가 귀환자들의 계보를 조상의 이름을 따라 낱낱이 기록하고 있는 목적

  • 당신이 택한 백성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거룩한 백성으로 만들어 가시는
  •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여기에서는 다음의 내용을 볼 수 있다.

Ⅰ. 바벨론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총계가 나와 있다.

앞에 나온 전체 숫자는 실제로 3만 명에도 이르지 못한다(29,818명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계수에 들어오지 못한 자가 만 2천 명 이상이었다. 이들은 아마 다른 이스라엘 족속, 즉 유다 족속과 베냐민 족속 이 외의 사람들로서, 그들의 가족이나 그들이 속했던 성읍을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는 이스라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1. 이 수는 느부갓네살이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간 숫자의 두 배가 넘는다. 이것을 볼 때, 애굽에서와 같이 고난의 때가 그들의 수효가 증가하는 때였다.
  2. 그 민족의 출발은 극소수였다. 그러나 그들의 열조에게 주어진 약속으로 말미암아, 그 후 거의 500년이 지나, 로마에 의해 최후로 멸망받기 전에는 대단히 큰 숫자의 백성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생육하고 번성하라" 고 하실 때는 "하나의 작은 자가 천 명이 될 것이다."

Ⅱ. 그들을 따른 수행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종과 다름없는 대우를 받는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종들이 비교적 소수이고(65절) 짐을 진 짐승들의 수효가 그와 비슷하다는 것은 이상할 게 없다(66, 67절). 그들의 형편은 과거와 같지 않았다. 그들 중에 "노래하는 남녀" 가 200명이었다는 사실이 명시되어 있다. 이들은 아마 "그들의 애통을" 보조하기 위한 자라고 생각된다(대하 35:25 에 있는 자들과 같이). 이런 때가 오면 그들이 애가를 부르며 "울며 행하리라" 는 것이(렘 50:4) 미리 예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 65절, 그 외에 남종과 여종이 칠천삼백삼십칠 명이요 노래하는 남녀가 이백 명이요

남종과 여종의 수효

회중의 총 합계(64절)에 포함되지는 않았으나 공동체의 일원으로 편입함.

이렇게 보는 이유

  1. 첫째, 문맥적 이유 때문.
    • 본문의 그 외에도(밀레바드) 라는 표현을 감안하면 남녀 종들의 수를 별개로 취급하였음을 알 수 있다.
  2. 둘째, 사회 배경적 이유 때문.
    • 고대 근동의 관습에 의하면 이방인 중들의 수는 전체 회중의 수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들의 수효는 따로 계수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이런 점에서 볼 때 본절의 노비는 43절의 느디님 사람들이나 55절의 솔로몬의 종의 자손과 구별되는 자들임이 분명하다.
    1. 43절의 느디님 사람들과 55절의 솔로몬의 중의 자손은
      ⇒ 혈통 상으로는 이방인이 분명하였지만, 여호와 신앙 고백과 할례를 통해 이스라엘 공동체에 완전히 편입되었기 때문에 동족의 일부로 본 것.
    2. 반면 본절의 노비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데 필수적인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 고백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할례도 받지 않았을 것이다.
      •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주인의 영향을 깊이 받았으며,
      • 주인이 섬기는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하셨으므로 기꺼이 바벨론을 떠나 주인의 귀환에 동참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종의 수효를 통해 보는 당시 이스라엘의 생활상과 그들의 믿음의 상관관계

종들의 수효는 — 대략 앞서 64절에 나오는 포로 귀환민의 총수인 42,360명의 6분의 1정도.

이를 66절 이하에 나오는 포로 귀환민들의 재산과 더불어 생각하여 볼 때 당시 포로 귀환민들의 생활은 곤궁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 다시 말하면 포로 귀환민들은 바벨론에서 구축한 생활의 터전을 버리고 직선 거리로만도 900km정도나 떨어진 황폐한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것이다.

이방 땅에서 육체적 안락을 누리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의 성전과 신정 왕국을 재건하고자 하는 열정이 앞섰기 때문에 이들은 바벨론에서 갖은 고생을 하며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을 버리고 귀환을 감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노래하는 남녀

본문에 등장하는 자들은 41절에 등장하는 노래하는 자들과는 별개.

  • 41절의 노래하는 자는
    • 레위 지파 가운데 아삽 자손에 속하는 자들로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가대였다.
  • 반면 본절의 노래하는 자들은
    • 이방인들로서 세속적 노래를 부르는 자들을 가리킨다.
    • 이들은 고대 근동의 보편적인 풍습에 따라 혼례나 상례 혹은 기타 행사 시에 고용되어 노래를 불렀다. 

💡 66절, 말, 노새의 수효

이 말과 노새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효였다.

  • 말은
    • 뛰어난 기동력을 가진 값비싼 운반 수단이었다.
  • 반면 노새는
    • 말보다 더 저렴하면서 지구력이 있었다.
    • 주로 산악 지형으로 이루어진 팔레스틴 지역에서는 말보다는 노새가 운송 수단으로 사용하기에 더 적합했다.
    • 즉 노새는 ‘암말과 수나귀 사이에서 태어난 중간 잡종으로 번식력은 없으나 말과 나귀의 장점을 받아 힘이 세어 험악한 지형에 유리했기 때문에 말보다 더 선용되었던 것이다.

67절, 약대, 낙타의 수효

‘약대’ 즉 낙타’

  • 팔레스틴에서는 잘 이용되지 않는 운반 수단이었다.
  •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포로 생활을 하던 바벨론 지역에서는 장거리 여행을 위하여 자주 사용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직선 거리로만 900km나 되는 머나먼 귀환길을 위하여 상당수의 약대를 가지고 나왔다.

나귀

  • 나귀는 약대가 성경에서 60번밖에 언급되지 않은 데 비해 149번이나 언급될 정도로 이스라엘 백성들과 친근한 짐승이었다. 1차 포로 귀환 당시에도 이스라엘 자손들은 다른 가축에 비하여 압도적으로 많은 수효의 나귀를 가지고 나왔다.


적지 않은 가축의 수효

말 736마리와 노새 245마리 그리고 약대 435마리와 나귀 6,720마리는 4만명 정도 되는 1차 포로 귀환 공동체에게 적은 수효가 아니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렇게 많은 가축을 소유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바벨론에서 어느 정도 여유로운 삶을 살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곳을 떠날 때 원주민들로부터 상당한 재산을 받아 왔으며 (1:6) 또한 고레스가 선물로 준 것들도 상당수 포함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Ⅲ. 그들이 성전 건축을 위해 바친 공물.

이 내용은 68, 69절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되어 있다.

1. 그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전으로 올라왔다" 고 했다.

그러나 거룩하고 아름답던 그 전이 지금은 폐허가 되었고 쓰레기 더미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같이, 제단이 없어지자 "그 제단이 있던 장소" 에서 제사를 드렸다(창 13:4). 그리고 바로 이런 태도가 "성전의 티끌까지도" 사랑하는(시 102:14) 참 시온의 아들들의 자세이다.


💡 2:68 어떤 족장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 터에 이르러 하나님의 전을 그 곳에 다시 건축하려고 예물을 기쁘게 드리되

족장들의 모범

어떤 족장들

  • 3절 이하에서 명시적으로 제시되는 각 가문들의 족장들을 가리키는 표현일 것.
  • 그들은 예루살렘에 이르렀을 때 누구보다 먼저 솔선수범하여 하나님께 예물을 바치는 신앙적 모범을 보였다.

여호와의 성전 터에 이르러

  • 본서 저자는 바벨론을 출발하여 예루살렘까지 여행하는 데 있어 여러 가지 어려움과 우여곡절이 많았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과정을 생략하고, 족장들이 여호와의 전 터에 이르게 되었다는 사실만을 밝힌다.
  • 귀환한 후 이스라엘 족장들은 제일 먼저 불타버린 성전으로 향했다.
    ⇒ 이는 그들이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성전을 재건토록 하기 위해 귀환시키셨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1:1,5).
  • 당시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황폐한 고토로 돌아와 불타버린 성전 앞에 서게 된 그들의 마음에는 온갖 감회가 교차했을 것이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

    • 아마도 그들은 과거 자신들의 죄악으로 인하여 허물어진 성전을 보며 회개의 심정과 더불어
    • 하나님 앞에 순종하며 살겠다는 각오를 다졌을 것이다.
    • 그리고 지금은 비록 무너진 상태이지만 아름답게 재건될 성전의 모습을 마음에 그리며 자신들의 사명을 새롭게 가다듬었을 것이다. 

2. 그들은 "그 곳에 성전을 세우기 위해" 예물을 즐거이 드렸다.

그들은 먼저 성전을 세우려고 했던 것 같다. 비록 그들이 여행에서 방금 돌아와 삶을 시작하는 입장이었지만, 그들은 성전 건축을 위해 즐거이 예물을 드렸다.

아무도 자기들의 신앙을 위해 드는 비용 때문에 불평하지 말자.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께 바칠 때 그 대가를 다시 얻게 된다는 것을 믿게 하자.

이들의 헌물은 다윗 때에 방백들이 드린 헌물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다윗 시대에는 헌물을 달란트로 바쳤으나(대상 29:7), 지금은 몇 다릭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러한 몇 다릭도 그들의 능력에 비추어 본다면 과부의 동전 두 입과 같이 수천 달란트와 같이 하나님이 받으실 것이다.

금 6만 1천 다릭이란, 컴블란드(Cumberland)의 계산에 의하면, 상당히 많은 파운드에 해당된다. 그의 계산에 의하면, 1마네 60세겔이다(즉 30온스). 이것은 영국 돈으로 7파운드 10온스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본문의 5천 마네는 영국 돈으로 3만 5천 파운드 정도의 돈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바벨론에서 그들의 인원 증가에도 축복하신 것과 같이 재산 증가에도 축복하신 것 같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을 번성케 하신 것과 같이, 그들도 즐거이 하나님 전 건축을 위해 바쳤다.


💡 예물을 기쁘게 드리되

⇒ ‘그들은 예물을 (자원하여) 스스로 드렸다’

동사 ‘나다브'

  • 다른 사람의 요구나 제안에 의헤 드리는 경우가 아니고 자기 스스로 자원하여 하나님께 그 무엇을 드리는 경우에 주로 사용되는 단어.
  • 용례
    • 다윗이 성전 건축자재를 자의로 헌납하는 모습이나(대상 29:5) 성전에 제물을 드리는 모습과 관련하여서도 사용되었다(대하 35:8).
    • 또한 본서 1:6에서는 본국으로 귀환하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포로로 거주하였던 지역의 원주민들이 물질로 도와주는 행동을 묘사하는 데에도 ‘나다브'가 사용되었다.
  • 이러한 용례들을 통하여 포로 귀환 이스라엘 자손들이 예물을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자원하여 드렸음을 알 수 있다.
  •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억지로 마지못해 드리는 예물이 아니라 기뻐함으로 자원하여 드리는 예물을 기뻐 받으신다. 

💡 2:69 힘 자라는 대로 공사하는 금고에 들이니 금이 육만 천 다릭이요 은이 오천 마네요 제사장의 옷이 백 벌이었더라

‘힘 자라는 대로’ (’코아흐’)
= ‘어떤 일을 행할 수 있는 최대한의 능력’

  • 족장들은 성전을 짓기 위해 헌물을 바치면서 자신이 행할 수 있는 최대한의 능력을 모두 발휘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할 수 없는 범위의 물질을 무리해서 드린 것은 아니었다.

‘코아흐’ 가
하나님께 사용될 때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의미함(출9:16; 렘10:12)

  • 사실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비교하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작고 보잘 것 없다.
  •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드리는 경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생각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드리면 될 것이다(욥 37:23).

금 61,000 다릭

  • 다릭 = 당시 세계를 제패한 페르시아의 금본위 화폐 단위(1다릭 = 8.4g=오늘날 약 610억원 가량의 가치)

은 5,000 마네

  • 은 1마네 = 대략 570g.

제사장의 옷에 대한 단위

  • 한글 개역 성경과 달러 원문에는 없고 단지 숫자 백에 해당하는 ‘메아트’ 라는 단어만 기록되어 있다.
  • 제사장의 옷은 율법서에 그 앙식이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으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후에 만들어서 헌물한 것으로 보인다.

제2 출애굽의 영적 의미의 발견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성전 건축을 위해 예물을 봉헌하고 제사장의 옷을 지어 바치는 본문의 내용은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성막을 짓기 위헤 예물을 바쳤던 사건을 기억하게 한다(출 25:1.2; 35:4-9).

본서의 저자는 본문에서 족장들의 헌물 행위를 상세히 묘사함으로써 이스라엘 자손들의 바벨론에서의 귀환이 제2의 출애굽이라는 영적인 의미를 드러내고 있다.


 

3. 그들은 "본성(本城)에" 거하였다(70절).

그들의 도성이 보수되지는 못했지만, 그곳이 하나님이 정해주신 자기들의 도성들이었기 때문에 거기에 사는 것을 만족해 하였다. 또 화려함이나 풍요함이나 권세도 없었지만 자유와 자기 소유에 대해 감사했다. 그들은 대단히 빈곤했으나, 그들의 통일과 단결이 그 빈곤의 결과를 좋게 만들었다. 그들 모두와 모든 재산을 위해 충분한 터가 있었다. 그래서 그들 중에 다툼이 없었고 오히려 완전 조화만이 있었는데, 이것은 그들의 안정을 말해주는 좋은 전조였다. 그와 마찬가지로 후대에 가서 그들이 서로 불화했을 때는 그 불화가 파멸의 전조가 되었던 것이다.


💡 2:70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백성 몇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이 각자의 성읍에 살았고 이스라엘 무리도 각자의 성읍에 살았더라

  • 성전과 밀접하게 관계된 사람들은 : 예루살렘에 거주하였고,
  • 성전 일을 돕는 자들은 : 예루살렘 인근 지역에, 나머지 사람들은 자신들의 조상들의 거주지에 정착했다고 볼 수 있는 것.

이사야 예언의 성취

포로 귀환민들은 각기 자신의 조상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되어 가기 전에 살았던 본성으로 돌아갔으며 유대력으로 7월에 있는 초막절 등의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다시 모이기까지 줄곧 그곳에서 거하였던 것이다.

이스라엘 포로 귀환민들이 자신들의 성으로 들아가서 무너지고 황폐해진 성읍들을 재건하고 다시 거주한 사실은
이미 이사야 선지자가 200여년 이전에 하나님의 신탁을 받아 예언한 내용과 일치한다(사 44:26-28).

사44:26-28

44:26 그의 종의 말을 세워 주며 그의 사자들의 계획을 성취하게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거기에 사람이 살리라 하며 유다 성읍들에 대하여는 중건될 것이라 내가 그 황폐한 곳들을 복구시키리라 하며

44:27 깊음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마르라 내가 네 강물들을 마르게 하리라 하며

44:28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


 

결론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본장 전체는 포로되었던 땅에서 귀환하여 성전 재건에 동참한 이들이 누구인지를 확연하게 보여준다.

즉 본장에서 저자는 제2의 출애굽 물결이 어느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 가계별 귀환자들의 수효(3-20절)와 출신지 혹은 귀환지별 귀환자들의 수효(21-35)를 밝힐 뿐 아니라
  • 제사장(36-39절)과 레위인(40-42절), 성전 봉사자인 느디님 사람들과 솔로몬의 종의 자손(43-58절)
  • 그리고 기타 귀환자들(59-63절)의 가계 및 수효까지 소상하게 밝험으로써 부각시키는 것이다.

저자의 교훈 1 — 포로 귀환민들의 아름다운 신앙을 본받게 함.

사실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시키기 위해서는 이러한 지루한 명단을 생략하고 귀환 시 있었던 사건들을 기록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본서 저자는 오히려 귀환시 있었을 여러 사건들은 완전히 생략하고 귀환의 주체들을 일일이 밝히고 있다.

그 이유

  • 이는 온갖 희생을 무릅쓰고 귀환에 참여한 그들의 아름다운 신앙을 부각시키고,
  • 선민 이스라엘을 재건하는 일에 있어서
    • 그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너무나 소중하며,
    • 그들의 능동적 참여가 필수적임을 부각시키기 위해서이다.

실로 그들은 바벨론에서 이미 구축한 삶의 기반을 버리고 선민 공동체의 회복과 성전 재건을 위하여 스스로를 희생한 신앙의 용사들이었다.

이러한 그들의 결단과 희생은
—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하여 부름받은 오늘날 우리 성도들의 신앙에 있어서도 좋은 귀감이 된다.


저자의 교훈 2 —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영적 이스라엘 백성의 범위

그들을 가계별로 정리하여 조상의 이름을 밝히는 것은

  • 하나님께서는 조상들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택한 백성을 끝내 버리지 않고 회복시키시는 분임을 드러낸다.

이 귀환의 대열에 느디님 사람들과 솔로몬 종의 자손은 물론 노비들까지 참여하였다는 사실은

  • 하나님 나라의 건설은 어떤 특정 인물이나 혈통과 신분에 상관없이
  • 하나님을 주로 고백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동참할 수 있다는 교훈을 전하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