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출애굽기 40, 요한복음 19, 잠언 16, 빌립보서 3
묵상구절
46:1 <고라 자손의 시, 인도자를 따라 알라못에 맞춘 노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46:2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46:3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셀라)
46:4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존하신 이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46:5 하나님이 그 성 중에 계시매 성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46:6 뭇 나라가 떠들며 왕국이 흔들렸더니 그가 소리를 내시매 땅이 녹았도다
46:7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46:8 와서 여호와의 행적을 볼지어다 그가 땅을 황무지로 만드셨도다
46:9 그가 땅 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시는도다
46:10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46:11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매튜헨리/옥스퍼드
- 환난과 전쟁을 그치게 하시는 여호와 찬앙
(저자: 고라 자손, 분류: 찬앙시)
서론
💡 제46편
: 극도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피난처와 힘으로 묘사하며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아름다운 시로 표현.
- 고라 자손이 지은 찬양시로 환난과 전쟁을 그치게 하시는 여호와에 대한 찬양입니다.
저작배경
이러한 본시의 저작 배경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으므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본시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히스기야 왕 시대에 앗수르 왕 산헤립의 침공을 받아 남유다의 온 성읍이 함락되고 이제 예루살렘성마저 함락의 위기에 처하였을 때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사건 (B.C. 701-699년, 왕하 18:13-19, 37)을 배경으로 한다는 데 대부분의 학자들어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본시는 선민의 수도인 예루살렘의 보존과 관련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온시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특별히 여타의 찬양시들이 대부분 개인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찬양하는 것과 달리 본시는 하나님의 선민의 자손인 남유다 전체의 멸망이라는 대위기 속에서 선민 공동체 전체가 구원받은 사실로 인하여 찬양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그 내용에서 보면,
- 여타의 개인 찬양시들이 대부분 하나님의 인자, 긍휼, 공의, 신실하심 등을 노래하는 반면,
- 본시는
- 세계 만민 중에서 특별히 선민으로 택하신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구속사를 전개하여 가시는 중에 역사 속에서 선을 위하여 나타내 보이신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장엄함과 권능 및
- 전세계 만민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과 그분 자체의 절대성과 전능성을 → 찬양의 주 내용으로 하면서
- 그러한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섬기는 선민이 누리는 안전과 평안을 노래하는 차이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본시 구성
- 이러한 본시는 그 구성에 있어서 ‘셀라’라는 음악 용어를 중심으로 세 연으로 구분되는데,
- 각 연은 땅, 산, 바닷물, 열방, 세계 등 크고 장엄한 이미지를 담은 단어들을 거듭 사용하여 하나님의 위엄과 권능 및 선민을 위한 구원 역사의 위대함을 강하게 부각시킴으로써 매우 박진감 넘치는 시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1-3절
선민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의 능력에 대하여 노래하고 있습니다.
4-7절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중에 함께하시며 성을 이방 군대의 위협 속에서 구원하신 사 실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8-11 절
대적을 멸하여 전쟁을 그치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에 대한 찬양을 중심으로 그분의 우주적 통치권과 택한 백성에 대한 그분의 절대적 보호에 대하여 다시 한번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의 백성을 보호하시는 하나님 (시편 46:1-5)
여기에서 시편 기자는 그 자신을 본보기로 하여 우리를 가르치고 있다.
1연(1-3절) : 환난 중에 도우시는 피난처되신 여호와를 찬양
Ⅰ. 하나님 안에서 그리고 우리에 대한 그의 관계와 임재 속에서 개가를 부르도록 가르치고 특히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 되신 새로운 경험을 했을 때 그렇게 하도록 가르치고 있다(1절).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우리는 그가 그러하다는 것, 그리고 그가 그렇게 되시겠다고 약속했다는 것, 그리고 그가 영원히 그렇게 되시리라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가 쫓기고 있는가?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가 도망할 수 있고, 또 그 안에서 안전하며 우리 자신이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우리의 피난처이시다. 견고한 토대 위에서 안전케 하라(잠 18:10).
우리는 고난에 눌리고 있는가? 우리는 할 일이 있고 또 싸워야 할 대적이 있는가?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짐을 견디게 해 주며, 모든 봉사와 고난에 합당케 해주시는 우리의 힘이시다. 그는 은혜로써 우리에게 힘을 주실 것이며 우리는 그에게 우리 자신을 체류시킬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환난 가운데 있는가? 그는 우리가 궁핍할 때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행해주시는 도움,(단어 그대로) "현재의 도움," "발견할 수 있는 도움"이다. 그는 우리가 그러하다는 것을 발견할 자로서, 그리스도가 "시험한 돌"이라 불리우는 것처럼(사 28:16), probabum est- 즉 그것이 시험되도다라고 기록할 수 있는 도움이다. 혹은 그는 "가까이에 있는 도움" 즉 결코 구할 필요가 없이 항상 옆에 있는 도움이다. 또는 "충분한 도움," 모든 경우와 위기에 적합한 도움이다. 우리는 그보다 더 나은 도움을 바랄 수 없으며 또한 어떤 피조물 속에서도 그와 같은 것을 결코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 46:1 <고라 자손의 시, 인도자를 따라 알라못에 맞춘 노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알라못에 맞춘 노래’
- 여러 견해 중 일반적 이해 : 여성 합창단에 의해 불린 노래임을 나타내는 표현.
‘하나님은’ (엘로힘)
본시는 천지를 창조하신 능력의 하나님되심을 나타내는 신명 인 ‘엘로힘'을 서두에 내세우며 바로 그 능력의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라는 위대한 신앙 고백으로 시작되고 있다.
이러한 첫구절에서 잘 드러나듯이 본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노래하고 있다.
그런데 본시의 이러한 고백은 개인적인 고백이 아닌 민족적 • 공동체적 고백이다.
- 이러한 사실은 본시에 거듭 사용된 ‘우리'란 표현에서 잘 드러난다. 즉 시인은 ‘우리'라는 표현을 거듭 사용하여 이스라엘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신앙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 그들이 가진 신앙이란 - 다름 아닌 하나님이 가장 안전한 피난처이시기 때문에 그분과 함께하는 민족은 결코 요동하거나 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시는 루터의 시라고 할 정도로 종교 개혁가 루터가 좋아했던 시이다.
그는 이 시편에 영감을 받아 찬송가 ‘내 주는 강한 성이요(A Mighty Fortress Is Our God)'를 작사, 작곡했다. 그리고 그가 부패한 로마 교황청을 상대로 끝까지 싸워 종교 개혁을 완수할 수 있었던 것도 본시로부터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 종교 개혁의 내용이 롬 1:17이라면,
- 종교 개혁을 끝까지 완수할 수 있도록 루터를 붙들어 준 말씀은 바로 본시였다.
당시 로마 가톨릭은 루터로서는 극복하기 어려운 대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본시를 통하여 하나님이 그의 피난처요 힘이 되신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비록 보름 스에 있는 기팟장만큼 악마가 많아도 나는 가리라"는 용기를 얻고 나아가서 승리하였다.
오늘 본시에서 하나님은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될을 알지어다"라고 말 씀하고 계십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심으로 당신이 하나님 되심을 스스로 증거하시겠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도우심으로 당신이 하나님되심을 증거하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떤 위기를 만나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용기틀 얻고 소망 중에 거하기 바란다.
‘피난처’ : 이러한 본시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 가운데 하나.
본시는 ‘셀라'란 표현을 기준으로 1-3절, 4-7절, 8-11 절 이상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본시의 후렴 (refrain)에 해당하는 7절과 11절에서 ‘피난처' 란 의미의 단어가 반복적으로 사용된 사실을 통해서도 이 단어가 본시의 핵심 단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첫번째 연에서는 똑같은 형태의 후렴구는 아니지만 비슷한 내용이 바로 본절에 등장한다.
‘피난처' (‘마하쎄')
- 의미
- 문자적으로 : 비바람과 같은 위험을 피할 수 있는 장소를 가러킨다.
- 여기서 이 단어는 당신의 백성을 환난과 위험으로부터 지켜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비유적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 사실 많은 시인들이 하나님을 피난처로 노래했다(61:3; 62:7.8; 71:7; 73:28; 91:2,9; 142:5). 그러나 본시처럼 시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이 피난처되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시는 드물다.
Ⅱ. 가장 큰 위험을 극복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힘이시니," 즉 우리에게 모든 것을 충족케 하시는 하나님이시니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거룩한 경외감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놀라움을 갖고 음부나 세상의 권세를 두려워해야 할 필요가 조금도 없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대적하리요." 누가 우리를 해하리요?
이처럼 두려움 없이 되는 것은 우리의 의무며 동시에 특권이다.
💡 1절, ‘힘이시니’
- 하나님만이 인간을 지켜주실 수 있는 참되고 안전한 도피처시며 하나님 안에 있는 안전과 평강을 방해할 수 있는 존재는 이 땅에 아무도 없다는 고백.
- ‘피난처’ 가 방어적 차원에서 성도틀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의 면모를 비유적으로 나타낸 것이라면 ‘힘'은 - 공격적 차원에서 환난 및 대적과 싸워 어길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의 면모를 비유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 즉 시인는 본시 서두에서 하나님은 원수의 공격으로부터 성도를 보호해 주실 뿐만 아니라 적을 쳐서 이길 수 있는 험을 주시는 분임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환난 중에 만날’
- ‘만날 ‘ :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예기치 못하게 만난 것을 나타냄.
- 사실 하나님은 항상 성도들 가까이 계시지만 성도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이런 점에서 성도에게 환난은 -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게 되는 통로라고도 할 수 있다.
- 그러다가 고난이라는 환경과 맞닥뜨리면 - 그제서야 하나님의 임재와 도움을 발견하고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큰 도움이시라’
- 게다가 시인은 하나님의 도움을 - ‘큰 도움'이 라고 표현하고 있다.
- ‘크다’ 라는 말은 도움이 환난의 상황보다 커서 환난에서 충분하게 빠져나갈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하나님은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다'라는 이러한 고백은
- 시편에 매우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믿음의 선진들의 체험적 고백이며,
- 우리 역시 질곡 많은 이 세상에서 올릴 수밖에 없는 신앙적 공감을 자아내는 고백이라 할 수 있다(22:19; 27:9; 40:13; 44:26; 63:7).
여러분은 이러한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계십니까? 환난 날에 하나님을 우리의 피난처로 삼기 위해서는 평상시 그분과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썰렁한 관계에서 도움을 요청하던 냉대만 받을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깊은 신뢰와 사랑의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런 관계가 되었을 배 비로소 하나님은 어떤 도움을 요청해도 기쁘게 수락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분과 깊은 신뢰의 관계를 맺은 자가 환난을 만날 매 피난처와 큰 도움이 되어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저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시33:2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새게 하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불들리라” (사41:10)
정직한 마음을 갖고 하나님과 그의 섭리와 약속에 대해 생동하는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양심이 깨끗하다는 증거이다. "땅이 변하고, 피조물에 대한 우리의 모든 기대가 우리를 실망시키고 좌절시킬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고라에게 그러했던 땅처럼" 우리를 부축해야 하는 땅이 우리를 삼키려고 위협하더라도 두려워 아니하리로도다."(2절)
그의 아들들을 위해 이 시편이 지어졌으며, 어떤 사람의 견해대로 그들에 의해 지어졌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철저히 따르고, 그가 우리편이 되시는 한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두려워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우뢰 를 통해 쥬피터의 무서운 팔이 창공을 찢게 하라. 세상이 무너진 그 밑에서 아래서 그는 담대히 타나나리도다.
💡 46:2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 이스라엘이 당한 극심한 환난. 상상할 수 없는 공포와 두려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환경.
땅이 변하는 것
- 이스라엘 민족이 당면하고 있는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큰 재난. 땅의 형태가 변하는 것. (큰 지진 현상)
= 즉 이는 삶의 터전이 상실되는 것으로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멸망할 것 같은 큰 환난을 의미한다.
흔들려.. 빠지든지
- 이는 가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무시무시한 재난으로 사람들에게 엄청난 공포와 두려움을 자아내는 일.
- 이처럼 견고함을 상정하는 산이 흔들려 바다에 빠진다는 것은
→ 하나님께서 세우심으로 견고하리라 믿었던 이스라엘이 이방 나라에 의해서 침락을 당하는 것을 상징한다. - 이로써 시인은 산과 같이 견고하다고 여겨겼던 신정 왕국이 - 한 순간에 흔들리고 사라져 버릴 수 있는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해 있음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다음을 살펴보자.
1. 그 위협은 얼마나 긴박했는가?
우리는 땅이 변하여 바다에 던지워지고, 심지어 땅의 가장 튼튼하고 견고한 부분인 산까지도 깊이를 잴 수 없는 대양에 묻히우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바다가 노호하고 성난 것과 무서운 소시를 내는 것, 그리고 "산이 요동할" 정도로 (3절) 매우 격렬하게 해안을 침입하는 그 거품이든 파도를 짐작할 것이다.
비록 왕국과 나라가 혼란 가운데 있고 전쟁에 휩쓸리며 폭동으로 시달리어 그들의 통치가 끊임없이 변혁되더라도-비록 그것들이 능력을 합하여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며 그들의 멸망 이상의 것을 노리고, 또 그들의 목적을 매우 가까이 성취하게 되었다 할지라도-우리는 이 모든 환난에 교회에 유익하도록 끝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93:4 참조).
땅이 변한다면, 땅에 보화를 쌓아두고 거기에 마음을 둔 자들은 두려워할 수밖에 없을 것이나, 보화를 하늘에 쌓아 두고, "땅과 거기에 있는 모든 것들이 불살라질" 때 매우 행복하게 되리라고 기대하는 자들은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부유(浮游)하는 토대 위에 신뢰를 세운 자들은 물이 요동할 때 괴로워하는 것이 마땅하나, "그것보다 높은 바위"로 인도받고 그 바위가 견고한 발판이라는 것을 발견하는 자들은 괴로워하지 않을 것이다.
💡 46:3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셀라)
- 이방인 대적들의 위협적인 군사적 공격을 상징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 파도가 위협적으로 몰려오는 것처럼 - 이방인의 군대가 이스라엘 백성을 삼킬 듯이 공격하는 모습.
- 집채 같은 큰 파도가 물이 끓는 것같이 흰 거품을 일으키며 연이어 다가오는 무시무시한 장면.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 바닷물이 밀려들어와 산을 덮어버리듯어 돌진하는 이방인의 포위 공격 앞에서 언제 함락당하고 패망될지 모르는 이스라엘의 운명
- 시인은 대적의 공격으로 인해 삶의 기반이 흔들리는 상황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이 당신을 의지하는 자를 보호하지 못할 큰 재앙이 없다는 확신.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셀라)
- 원문에는 본문이어 2절 서두에 기록되어 있다. 즉 원문은 1 절에 나오는 바 하나님께서 우리의 피난처이시며 힘이시고 큰 도움이심을 믿는 신앙으로 인하여 2절과 3절에 나오는 인간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큰 환난이 임한다 할지라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을 것임을 문장 서두에서 강조하고 었는 것이다.
- 본절은 어떠한 상황이 일어날지라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시인의 위대한 믿음을 보여준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8:35)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사12:2)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히13:6)
본시에서 ‘셀라' 의 기능
- 각 연을 구분하는 기능과 더불어 각 연의 마지막 부분에 시인의 감정을 고조시키는 주요한 내용이 담겨 있다는 표시의 기능까지한다고 볼 수 있다
2연(4-7절) 거룩한 성에 거하시는 피난처되신 여호와를 찬양함
💡 2연에서는 1연과 달리
→ 고요하고 평온한 이미지의 단어들이 나와서 하나님으로 인한 그 백성의 평화와 안전을 느끼게 한다.
특히 본절에서는 하나님의 성 곧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장막의 성소를 기쁘게 하는 한 시내에 대하여 묘사한다. 즉 한 시내가 기쁨의 원천으로 제시되는 것이다.
이처럼 시내를 기쁨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표현하는 것온 물이 귀한 팔레스틴 지역에서는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여기서 기쁨의 원천으로 묘사된 이 한 시내는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상징한다.
2. 교회가 매우 잘 지켜지고 있다는 점과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는 그 세력을 고려해 볼 때 이 위험에 대한 도전은 얼마나 견고한 토대를 지니고 있는가?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어떤 사적이고 특별한 관심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 곧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장막의 성소"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궤이며, 우리의 마음은 그것으로 인해 떨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의 교회를 위해 위로와 발전을 마련해 두신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확고히 할 수 있는 이유를 발견하게 될 것이며 악한 조류에 대한 두려움을 초월하게 될 것이다.
(1) 여기에 교회의 기쁨이 있다.
그것은 가장 우울하고 슬픈 세대에도 존재한다(4절).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바닷물이 포효하고 그것을 위협할 때라도, 그것을 "기쁘게 하도다." 그것은 "예루살렘 옆을 천천히 흐르는" 실로암 물을 시사하고 있다(사 8:6, 7) 비록 그 물이 그리 깊거나 넓지는 않았지만 히스기야 시대에 예루살렘을 방어하는 데 유용했다(사 22:10, 11).
그러나 이것은 영적으로 풀이되어야 한다. 즉 강은 은혜의 언약이며 시내는 약속이다. 또는 강은 은혜의 성령이며(요 7:38, 39) "시내는 하나님의 소를 기쁘게 하는"위로다.
하나님의 말씀과 의식은 하나님께서 흐리고 어두운 날에 그의 성도들을 기쁘게 만드시는 강과 시내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 자신은 그의 교회에 있어서 "넓은 하수나 강"이 되신다(사 33:21). 하나님의 성을 기쁘게 만드는 시내는 격하지 않고 실로암의 것처럼 유하다. 즉 부드럽고 조용한 속삭임에 의해 성도들에게 전달되는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은 채 오는 영적인 위로는 분노하고 악의에 가득 찬 세상의 가장 크고 소란한 위협을 진압시키기에 충분한 것이다.
💡 46:4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존하신 이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하나님의 백성의 안전
‘하나님의 성’
- 하나님이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도성인 예루살렘성.
- 지존하신 이의 성소.
‘지존하신 이’
- 세상의 모든 신들과 특별히 구별되는 참 신이시며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신 하나님의 일면을 나타내주는 표현이다.
여기서 시인이 직접적으로 ‘예루살렘’ 이란 표현을 쓰지 않고 ‘하나님의 성 곧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장막의 성소' 란 간접적인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 그것은 본절에 나오는 내용이 사실상 이 지상의 예루살렘에만 국한되는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 본문의 이 표현은 물론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는 이 지상의 예루살렘을 가리키지만,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최종적으로 거하게 될 천국을 상징한다.- 즉 본시는 이 땅의 예루살렘 뿐만 아니라 종말에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염두에 둔 에언적 시인 것.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 한 시내가 여러 지류를 가지고 전지역을 고르게 적시고 있음을 보여준다.
- 실제로 산지에 자리잡은 예루살렘에는 이러한 강이 없다. 따라서 본절의 ‘한 시내’ 는 사실적 묘사라기보다는 상징성을 가진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
- ‘한 시내’
→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생명의 물줄기
-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에 임하는 하나님의 풍성한 영적 축복을 가리키며
- 한걸음 더 나아가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성에 거하는 자에게 공급될 마르지 않는 생수와,
- 하나님의 백성들이 누리게 될 안식과 기쁨과 평안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 이 안식과 평안과 기쁨에 대한 소망을 소유한 자는 - 현실적 어려움 또한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이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그 성을 바라보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히11:10).
그러므로 본시는
-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의 안전과 평화를 노래함과 동시에,
- 종말에 모든 성도들이 거할 시온을 노래하고 있는 예언적 시온시(Psalm of Zion)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 교회의 견고함이 있다.
비록 천지가 진동할지라도 "하나님의 그 성 중에 거하시매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다"(5절). 하나님은 그의 교회에게 특별히 임재하실 것과 돌보실 것을 단언하셨다. 그의 존귀는 교회 속에 있으며 그는 그의 장막을 그 속에 세우셨고, 또 그것을 보호해 오셨다. 그러므로 그것은 요동치 아니할 것이다.
[1] 즉 땅이 변할지라도(2절) 그것은 파괴되거나 제거되지 않을 것이다.
교회는 세상보다 오래 남을 것이며 세상이 멸망될 때는 축복 가운데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반석 위에 세워져, 음부의 문도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2] 그 결과를 두려워하여 동요되거나 매우 충격을 받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고 우리와 함께하시면 우리는 우리에게 가해지는 가장 과격한 시련에도 흔들릴 필요가 없다.
(3) 교회의 구원이 된다.
아무리 큰 위험이 있다 하더라도 교회는 구원된다.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따라서 누가 교회를 해할 수 있겠는가? 그는 환난 중에 있는 교회를 도와 쓰러지지 않게 하실 것이다. 아니, 환난 당할수록 교회는 더욱 더 증가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새벽에"-아침에 나타날 때에-환난에서 도울 것이다. 즉 매우 빨리 도울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큰 도움"이시며 (1절) 일이 극한 상황에 이르고 또 위로가 가장 요청되는 때에, 즉 매우 적절한 때에 도우시는 자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믿는 자들 각자에게 적용될 수 있다. 하나님이 그의 말씀에 의해 우리 마음 속에, 우리 한가운데, 우리 안에 풍요하게 거하시면 - 우리는 견고할 것이고 도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가져 두려워하지 않도록 하자. 모든 것은 잘될 것이고 또 그 결과도 좋을 것이다.
💡 46:5 하나님이 그 성 중에 계시매 성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은 외부의 환경과 관계없이 요동치 않는다.
예루살렘이 왜 안전한 피난처가 되는가?
- 하나님의 도성인 이곳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거하시므로 성이 요동치 않기 때문이다.
- 하나님은 성중에 거하시며 요동치 않게 하실 뿐 아니라, 친히 도우신다.
- 이러한 하나님의 방어와 도움, 구원은 지속적이다.(미완료형)
⇒ 즉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에게는 ‘평강’과 ‘하나님의 도우심’이 주어진다.
‘새벽에’ 도우심을 표현한 이유
- 새벽 : 밤의 끝과 동시에 아침의 시작을 나타내는 단어.
- 본문에서는 동이 터오는 시점, 곧 어둠이 물러가고 밝은 아침이 오는 시점으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
- 즉 빛이 들어오는 시점, 어둠이 소멸되는 시점을 → 하나님께서 시온 성중에 거한 자들에게 승리와 구원을 주시는 시점으로 서술한 것.
새벽은 어둠이 막바지에 이른 때. 환난을 당하는 자에게는 가장 어려운 때를 의미한다. 위기가 절정에 달한 때를 말합니다. - 이렇게 위기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에 하나님은 움직이신다. 그러므로 새벽은 하나님의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위기가 절정일 때가 하나님의 시간인 것이다.
- 그러므로 우리는 가장 어렵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에 -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특별히 성경은 마지막 때에는 극한 환난이 있을 것임을 말씀하고 있는데 그 환난이 극에 달하면 주님이 오셔서 성도들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 빛이 비쳐질 때 어둠이 물러가듯이, - 하나님이 도우심으로 모든 악의 세력, 어둠의 세력, 하나님의 백성들을 압제하는 세력이 소멸되는 것이다.
본시가 산헤립의 침공이 있었던 히스기야 당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면 → 본절의 내용은 구체적인 어떤 한 사건을 지시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 히스기야 왕 재위시 앗수르의 산헤립은 유다를 공격했다. 산헤립은 자신들의 군대 앞에 모든 다른 신들이 굴복했다고 자랑하면서 히스기야에게 항복을 촉구했다. 그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서 히스기야에게 서신을 보냈다. 히스기야는 그 서신을 하나님 앞에 펼쳐놓고 간절히 기도드렸다. 이에 하나님은 그날 밤 앗수르 군영에 천사를 보내어 185.000명의 산헤립의 군사를 몰살시키셨다. 유다 백성이 성에서 자고 일어났을 때 이미 모든 대적들은 시체가 되어 있었다.
— 즉 산헤립의 기세 등등한 공격 앞에 풍전등화와 같았던 유다가 새벽에 일어난 하나님의 도움으로 인하여 구원과 승리를 체험하게 된 것이다. - 본절은 바로 이 사건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나님께 대한 확신 (시편 46:6-11)
이 구절은 하나님께 만국의 왕으로서, 그리고 성도들의 왕으로서 영광돌리고 있다.
Ⅰ. 그의 능력과 섭리에 의해 세상을 다스리시고 그의 영광이 되도록 인간의 모든 형편을 지배하시는 만국의 왕으로서, 그는 세상에 거하는 자들 가운데에서 그의 뜻대로 행하신다. 그리고 그 누구도 "주께서 무엇을 하셨나이까?"하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1. 그는 이 세상에서 그와 그의 세력에 대항하는 열방의 노를 저지하시며, 그들의 힘을 꺾으신다(6절).
다윗이 보좌로 오고 다윗 자손의 왕국이 세워졌을 때 "이방이 훤화(喧譁)하였다"(2:1, 2 와 비교). "열국이"분노로 "동하였고, 소란스럽고 분노한 모습으로 그의 왕국에 대항하여 일어섰다. 그러나 하나님은 "소리를 발하시어, 진노로 그들에게 말씀하였고"그들은 또 다른 면으로 동하였고, 혼돈과 놀라움 속에 빠졌으며 균형을 잃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모든 방범은 깨어졌다. 그들을 받히고 있던 땅도 녹았으므로 그들은 확고한 발판을 발견치 못하게 되었다. 그들의 세속적인 마음은 그들을 두려움으로 몰아넣었고, 햇빛을 받는 눈처럼 녹아 버렸다. 이처럼 대적의 마음이 녹는 것이 사사기(5:4, 5)에 묘사되어 있다(눅 21:25, 26 참조).
💡 46:6 뭇 나라가 떠들며 왕국이 흔들렸더니 그가 소리를 내시매 땅이 녹았도다
하나님 앞에서 세상 권세는 무력함 그 자체이다.
2,3절과 같이 여러 민족, 여러 나라가 시인과 선민 이스라엘을 향해 지진처럼 격렬하고 파도처럼 위협적으로 밀려들고 있음을 묘사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악한 무리들, 대적들의 기세는 하나님의 위엄 있는 말씀 한 마디에 무력화되고 만다.
‘그가 소리를 내시며 땅이 녹았도다’
- 이는 하나님의 옴성이 발하여진 결과 악인들의 상태를 함축적으로 전달하는 표현이다.
- 의미
- 기본적인 의미로 보면 : 이는 악인들의 세력 기반이 모두 허물어지고 사라져 버렸음을 의미한다.
- 아울러 이를 상징적인 의미로 보게 되면 : 그들이 기진하고 낙담하여 두려움에 사로잡힌 상태를 나타낸 것이 된다.
- 이러한 표현을 통해 시인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성난 파도와 같이, 공포스런 지진과 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며 위협하던 그들이 → 마치 물처럼 녹아 무기력하게 되었음을 묘사하는 것이다.
- 이는 과거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의 장면을 연상시킨다.
- 당시 가나안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행하신 하나님의 능하신 기적을 인하여 마음이 녹았고 이미 싸우기도 전에 패배감을 맛보고 있었다.
- 또한 이를 히스기야 당시와 연결해 보면
- 산헤립의 군대를 파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서 이스라엘 주위에 있는 이방 여러 나라 사람들의 마음이 녹아내렸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 그러나 더 나아가 이는 종말론적으로 땅이 풀어지고 녹아 없어지는 말세의 심판을 가러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슥 14:12).
- 즉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가 선고하시는 심판을 통해서 땅은 녹아 없어지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 또한 영원한 형벌에 처해질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는 것이다.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앗수르 왕과 그를 따르는 온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가 그와 함께 하는 자보다 크니” (대하32:7)
3연 (8-11절) 전쟁을 쉬게 하시는 이스라엘의 피난처 되신 여호와를 노래함.
2. 그가 칼을 빼시고 그것에 명을 내리기를 기뻐하실 때, 그는 열국 가운데 큰 위력을 발하시어 열국을 모두 황폐케 하신다(8절).
"와서 여호와의 행적을 볼지어다."
그것은 주시되어져야 하며(66:5). 연구되어져야 한다(111:2). 섭리의 모든 작용은 하나님의 행적으로 간주되어야 하며, 그의 속성과 목적은 그 행적 속에서 주목되어져야 한다. 특히 그가 이스라엘의 땅을 황무케 하려고 생각했던 그의 교회의 대적들 가운데에 있는 "땅을 황무케 하신" 것을 주시하라. 그들이 교회에 대해 계획했던 그 멸망은 그들 자신에게로 돌라온 것이다. 전쟁은 흔히 그것이 행해지던 무대를 파괴하는 비극이다. 따라서 다윗은 전쟁은 흔히 그것이 행해지던 무대를 파괴하는 비극이다. 따라서 다윗은 전쟁을 그 대적들의 나라로 끌고 갔다. 이것은 얼마나 그 나라를 황무케 했는가! 성들은 불탔고 나라들은 황폐케 되었으며 사람들의 팔이 잘리워 산더미를 이루었다. 황폐케 하는 심판의 결과를 와서 보라.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이렇게 말하라. 즉 "주의 일이 어찌 그리 엄위하신지요!"(66:3) 그를 대적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갖고 이것을 보도록 하고, 똑같은 떨림의 잔이 그들의 손에 놓여지리라는 것을 예상하게 하라. 반면에 그를 두려워하고 그에게 의지하는 모든 자들은 기쁜 마음으로 그것을 보도록 하고, 교회를 대적하여 무장한 매우 엄청난 힘을 무서워하지 않도록 하라. 그들이 전투 태세를 갖출지라도 "그들은 산산조각이 될 것이다."
💡 46:8 와서 여호와의 행적을 볼지어다 그가 땅을 황무지로 만드셨도다
여호와의 행적
‘행적’
- ‘이루어진 일 - 어떤 의도를 가지고 원하는 바를 성취한 것.
‘황무지로 만드셨도다’
- 황무지 : 성경에서 주로 전쟁이 휩쓸고 간 상처와 고통스런 상황을 포괄하는 의미.
- 하나님온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시기 위해서 우선 공격하는 원수들의 땅을 황무하게 하셨다. 그리고 더 나아가 9절에 나오는 바와 같이 전쟁을 쉬게 하셨고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셨다.
- 이는 일차적으로는 히스기야 당시 산헤립 군대틀 초토화시킨 사건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 그리고 더 넓게는 이스라엘의 산성이 되신 만군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보 호하기 위해서 역사 가운데 그들의 대적에게 행하신 모든 행적을 가리킨다.
- 그러나 이러한 의미에서서 한걸음 더 나아가 본절은 종말론적인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 그리스도께서 재림하게 될 때 하나님을 대적하던 악인들은 모두 멸망하게 되고 이로 인하여 모든 전쟁이 종식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사 2:4).
‘볼지어다’
- 시인은 이러한 행적을 와서 보라고 하는데,
- ‘볼지어다’ (하주')
- ‘지각을 가지고 바라보다'라는 뜻,
-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눈으로 보면서 마음에 담아두라는 의미이다.
— 즉 시인은 하나님이 행하신 행적을 볼 때 자신들에 대한 만군의 하나님의 완전한 보호를 시인하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3. 그가 칼을 칼집에 넣고자 하실 때는 열국의 전쟁을 끝나게 하시고 그들에게 평화를 부여하실 것이다. (9절).
전쟁과 평화는 바다의 사나움과 잔잔함과 마찬가지로 그의 말씀과 뜻에 달려 있다(107:25, 29). 서로의 오랜 전쟁으로 인해 그들의 숨이 가빠졌을 때, 하나님은 때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저가 땅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시어" 숨쉴 시간을 갖게 하신다. 아마도 양방은 싸움에 지쳐 그것을 종결시키기를 원할 것이다. 수단은 편의를 위해 발견되어진다. 즉 호전적인 왕들은 제거되며 중재자들이 그들의 자리에 배치된다. 그 때에 활은 동의에 의해 꺾어지며, 창은 끊어져 낫이 되고, 칼은 두들겨져 보습이 된다. 그리고 아무런 필요가 없게 된 전쟁을 수레는 불태워진다.
또는 그것을 이것과 다른 경우에 그의 백성들에 대한 은총 가운데서 그가 행하시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그들을 대적하여 행해지고 그들의 파멸을 위해 계획되어진 전쟁을 끝나게 하신다. 그는 그들을 대항하기 위해 당겨진 대적들의 활을 꺾으신다. "무릇 시온을 치려고 제조된 기계가 날카롭지 못할 것이다"(사 54:17). 큰 방패와 작은 방패의 완전한 멸망은 예언적으로 그들의 전쟁 무기가 불타는 것으로써 묘사되어 있는데 (겔 39:9, 10), 그것은 또한 전쟁 무기가 소용없게 되어 쌓아 두게 될 정도로 교회가 완전히 안전케 되고 그 평화가 확고히 지속되리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오랜 전쟁이 좋은 결과로 끝나고 것은 바로 하나님의 행적이며, 우리는 이것을 경탄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시하여야 한다.
💡 46:9 그가 땅 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시는도다
하나님의 싸움은 단지 대적둘을 심판하고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데 그 목적이 있지 않다. 하나님이 이러한 싸움을 싸우신 목적은 궁극적으로 전쟁을 쉬게 함으로 평화를 도래케 하는 데 있다. 그러나 이는 지엽적이고 일시적인 평화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보다 보편적이며 종말론적인 의미를 함축한다.
즉, 일시적이거나 제한적인 평화가 아니라 지속적이고도 영구적인 안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역시 하나님만이 이루실 수 있는 온전한 평화의 양상을 함측적으로 나타 낸다.
- 이는 메시야의 영적 전쟁와 그로 인한 승리, 종마렝 임할 완전한 평화를 예표한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 당신의 백성을 압제하는 자들을 파하시고 평화를 도래케 하시는 분이다.
Ⅱ. 성도들의 왕으로서, 그리고 "그의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다"는 것을 우리가 인정해야 한다(계 15:3). 그는 큰 일을 행하시며 또 행하실 것인데, 그것은 다음 두 가지를 위해서이다.
1. 그의 영광을 위해서(10절).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됨을 알지어다."
💡 46:10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너희’가 누구인가? 에 따라 달라지는 해셕
- 의미1 : ‘너희’ = 이방 세력.
-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와 심판의 예언
이는- 일차적으로는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분명히 입증되었고(출 7:5; 삼상 17:46),
- 궁극적으로는 세상 마지막 날 온 인류를 의롭게 심판하심으로 확연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 의미2 : ‘너희’ =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이스라엘
- 이스라엘이 인간적인 방도를 찾지 않고 하나님만을 바랄 때 하나님께서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심으로써 스스로 전능하신 하나님 되심을 입증하시겠다는 의미가 된다.
- 의미2 : 이스라엘이
(1) 그의 대적들로 잠잠히 있어 더 이상 위협하지 말고 그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그들보다 무한히 높으시어 그들이 도저히 겨룰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고 두려워하도록 하라. 그들로 더 이상 분노하지 않게 하라. 그것은 모두 헛된 일인 것이다. "하늘에 계신 자가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그리고 그의 이름과 영광을 대적하는 그들의 모든 무기력한 악의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자산의 백성 가운데에서만이 아니고 열방 중에서 높임을 받을 것이며, 그의 교회에서만이 아니고 이 세계에서 높임을 받을 것이며 그들 자신의 방법을 강구하고 자신의 뜻대로 행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높임을 받으시리라는 것을, 그가 그의 방법을 갖고 자신의 뜻대로 행하시고, 그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시며, "그들이 교만하게 행하는 가운데에서 그들보다 위에 계시며, " 또한 그들로 하여금 그의 그러하심을 알게 하시리라는 것을 깨닫게 하라.
(2) 그의 백성들도 잠잠히 있게 하라. 그들도 조용하고 침착하게 있게 하라. 그리하여 더 이상 떨지 말고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며, 그만이 하나님이시고 열방 중에서 높임을 받으시리라는 사실을 알아 위로를 삼도록 하라. 그라 혼자서 그의 영예를 지탱하시고, 이 세상에서 그의 뜻을 이행하시며 그 자신의 세력을 도우시게 하라. 비록 우리의 사기가 위축될지라도 낙담하지 않도록 하자.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높임을 받으시고 그것이 우리를 만족케 하리라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위대하신 이름을 위해 역사하실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작은 이름이 어떻게 되는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아버지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 하고 기도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것을 간구하셨을 때 그 기도에 대해 주어진 응답을 즉 "내가 그것을 거룩하게 하였고 또 다시 거룩하게 하리라"는 응답을 믿어야 한다. 여호와여, 그렇게 하옵소서, 아멘.
2.그의 백성들의 안전과 보호를 위해서, 그는 앞에서 개가를 울렸다.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10절)
그들은 이에 대해 7절에서, 그리고 다시 11절에서 개가를 부르고 있다. 이것은 노래의 후렴이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도다. 그는 우리 쪽에 서시고 우리 편에 계시며,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의 우두머리가 되시도다.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그리하여 우리가 그에게로 도망갈 수 있고 그를 신뢰하여 우리의 안전을 확신할 수 있다." 모든 믿는 자들로 이 속에서 개가를 부르도록 하라.
💡 46:10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1) 그들은 능력의 모든 능력의 하나님의 임재를 얻고 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도다."
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다. 왜냐하면 그는 "하늘과 땅의 만군'이라 불리우는 모든 피조물을 마음대로 명하시며, 그의 심판이나 긍휼의 도루로서 그가 원하시는 대로 그들을 사용하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최고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의 편이 되시고 우리와 같이 행하신다. 그리고 그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실 것을 약속하셨다.
💡 46:7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만군의 여호와’
- ‘전쟁의 여호와’ : 전쟁의 성패를 주관하시는 모든 군대 위에 계신 하나님을 가리킨다.
- ‘만군의 여호와' 에 담긴 하나님의 행사와 관련한 의미 2가지.
- 첫째는 악인을 징벌하시고 심판하시는 심판자로서의 면모이다.
- 둘째는 자신의 백성을 악인들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보호하시는 보호자로서의 면모이다.
- 본절에 사용된 표현 역시도 악인을 징벌하시고 또 그를 통해 택한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면모를 함축하는 것이라 하겠다.
‘우리와 함께 하시니’
-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임마누엘' 신앙은 —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믿음의 고백이었다.
- 임마누엘 하나님 신앙의 열매
- 전쟁에 능하시며 전쟁을 주관하시는 만군의 하나님께서 자신들과 함께하신다는 이러한 믿음은 - 어떠한 위기 가운데서건, 어떠한 대적 앞에서건 하나님의 보호와 하나님이 주실 승리를 확신케 하였다.
- 즉 이스라엘로 하여금 담대하게 하고 평안을 잃지 않게끔 했던 것이다.
46:11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2) 그들은 언약에 의해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다.
- 하나님은 그들을 도울 능력이 있으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도울 명예와 신실함을 지니고 계신다. 그는 야곱의 하나님, 즉 야곱 개인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야곱의 백성들의 하나님이시다.
- 아니, 모든 기도하는 백성들, 즉 씨름하는 야곱의 영적 후손들의 하나님이시다.
- 그는 또한 우리의 피난처이시므로 우리는 그에 의해 보호를 받고 그의 안에서 만족을 얻는다.
- 그리고 외적으로 싸움이 있을 때 그의 섭리로 우리의 안녕을 지키시며, 내적으로 두려움이 있을 때 그의 은혜로 우리 마음을 평안케 하시고 견고케 하신다.
- 만군의 여호와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또 앞으로도 계실 것이다. — 즉 우리가 피난처가 되셨고, 지금도 되시며, 또 앞으로도 되실 것이다.
💡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7절, 피난처(’미스까브)
- 1절 : (’마하쎄’) ‘피난처, 보호소’, ‘신뢰 등의 의미.
- 7절 : (’미스까브’) 높거나 가까이하기 어려운 장소(낭떠저리), ‘높은 요새’
⇒ 이를 감안할 때 앞선 1절의 표현보다 본절의 표현이 더 구체적이고 분명한 의미를 전달한다. 1절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전제로 한 후 - 그것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확고한 것인지를 강조한다.
야곱의 하나님
시인은 하나님을 가리켜 ‘야곱의 하나님'으로 칭하고 있다.
- 이유1: 야곱이 이스라엘 12지파의 직계 조상이기 때문이다.
- 물론 이스라엘은 정통성을 지닌 선민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이삭의 후손이기도 하지만 그들에게는 선민의 혈통에서 벗어나는 에서에게서 비롯된 에돔 사람들과 같은 이방인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 즉 시인은 언약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이들을 포함시키지 않는 선민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친밀함을 강조하기 위하여 특별히 ‘야곱의 하나님' 이란 호칭을 사용한 것이다.
- 이유2: 또 다른 이유로는 야곱의 생애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과 너무나도 흡사하였기 때문이다.
- 야곱의 인생에는 참으로 많은 고난과 질곡이 있었다. 형 에서와 외삼촌 라 반의 추적, 딸 디나의 추행당함, 가장 사랑하는 부인 라헬과의 이른 사벌, 가장 사랑하는 자식의사망 소식 등등 하나하나 기록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어려움이 그에게 있었다.
- 그러나 이렇게 많은 고통의 순간순간마다 - 하나님은 그의 산성이 되어주셨으며,
- 결국 그의 후손들을 통해 당신의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을 이루게 하셨다.
이렇듯 시인은 질곡 많은 삶을 살았던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에게 있어 피난처가 되셨던 하나님께서 - 지금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도 피난처가 되심을 드러내기 위해 특별히 ‘야곱의 하나님'으로 호칭하고 있는 것이다.
‘야곱의 하나님’이란 호칭의 기능
- 이러한 호칭은 앞선 ‘만군의 여호와'란 호청과 더불어 하나의 쌍을 이루어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어떤 일을 행하시는지’를 보다 확연하게 드러내는 기능을 수행한다.
- ‘만군의 여호와' 란 호칭은
-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싸우시는 분으로서의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전쟁을 수행하는 이미지를 지닌 표현.
- ‘야곱의 하나님'은
- 다소 소극적인 의미를 지닌다.
- 즉 자신들의 연약함과 부족함에도 자신들을 보호하시는 면모를 강조하는 호칭이 할 수 있다.
- ‘만군의 여호와' 란 호칭은
원문은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으며, 거기에 "셀라"라고 덧붙이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이것을 주목하여 그 위로를 취하라. 그리고 이렇게 말하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결론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본시는 환난과 전쟁을 그치게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직접 체험한 시인이 피난처되신 여호와를 찬양하고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을 것을 촉구하는 시이다.
이 시가 독자들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은,
인생은 그 누구나 스스로의 힘으로는 헤쳐나갈 수 없는 위기의 상황에 봉착할 수밖에 없는데, ⇒ 본시는 바로 이에 대한 가장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시가 더욱 큰 가치를 가지는 것은 독자의 시선을 하나님의 영원한 승리가 이루어질 종말론적 상황으로 돌리게 한다는 데 있다.
- 즉 본시는 세상 마지막 날에 성도들에게 베풀어질 하나님의 완전한 보호와 영원한 승리를 예언적으로 노래함으로써
- 현실 가운데서 환난 중에 있는 성도들에게 삶의 용기와 희망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