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레위기 11, 12, 시편 13, 14, 잠언 26, 데살로니가전서 5
묵상구절
56:1 <다윗의 믹담 시, 인도자를 따라 요낫 엘렘 르호김에 맞춘 노래, 다윗이 가드에서 블레셋인에게 잡힌 때에>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사람이 나를 삼키려고 종일 치며 압제하나이다
56:2 내 원수가 종일 나를 삼키려 하며 나를 교만하게 치는 자들이 많사오니
56:3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56:4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56:5 그들이 종일 내 말을 곡해하며 나를 치는 그들의 모든 생각은 사악이라
56:6 그들이 내 생명을 엿보았던 것과 같이 또 모여 숨어 내 발자취를 지켜보나이다
56:7 그들이 악을 행하고야 안전하오리이까 하나님이여 분노하사 뭇 백성을 낮추소서
56:8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56:9 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들이 물러가리니 이것으로 하나님이 내 편이심을 내가 아나이다
56:10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56:11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56:12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서원함이 있사온즉 내가 감사제를 주께 드리리니
56:13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매튜헨리/옥스퍼드
(저자 : 다윗, 분류 : 비탄시)
서론
💡 제56편은 다윗의 비탄시입니다.
이러한 본시는 표제에 언급된 것처럼 신정 왕국 이스라엘의 왕에게 절대적으로 요구되었던 여호와 신앙의 순수성을 상실한 사울을 대신할 세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이 혁혁한 전공과 업적에도 불구하고 인본주의적 정권욕에 사로잡힌 사울의 시기와 핍박을 받아도피 생활을 하던 중 블레셋의 가드 땅으로 피신하였다가 그곳에서 어려움을 당하였을 때 지은 시입니다.
다윗이 블레셋의 가드로 괴신하였을 때의 사건은 사무엘상 21:10~15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보던 다윗은 사울의 핍박을 피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갔으나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 위기틀 맞이하였다가 머친 체 함으로써 겨우 목슴을 부지하고 추방된 것으로 나읍니다. 이 내용만 보면 다윗은 비록 가드에서 위기에 처하기는 하였지만 비교적 수월하게 위기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본시에 의하면 상황어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았던 것으로 보업니다. 아마도 다윗은 가드에서 사로잡혀 상당한 심문과 문초를 당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윗은 사울을 피하려고 가드로 갔는데 그것이 사실은 곰을 피하려다가 사자의 소굴로 들어간 셈이 되고 만 것업니다.
본시는 바로 그러한 절박한 위기 상황에서 지은 시인 것입니다.
1-4절
원수들이 다윗 자신을 해하고자 하는 위기 상황을 하나님께 아뢰고 구원을 호소하며 그러한 위기 상황에서도 자신은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고백하는 내용업니다.
5-9절
원수들의 불의함에 대한 공의의 보응과 원수들의 핍박으로 유리 방황하는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아 주시기를 호소하는 내용입니다.
10~13절
자신이 의지하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을 받게 될 것임을 확신하며, 그러한 구원의 확신에 근거하여 자신이 서원한 감사제를 드릴 것임을 아뢰는 내용입니다.
●압제 속에서 도움을 구하는 기도(시편 56:1-7)
다윗은 이 시편에서 믿음으로써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손에 내어 던지고 있으며, 심지어 그가 두려움과 어리석음으로 인해 자기 자신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내어 맡겼을 때에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때는 다윗은 사울이 두려워 가드로 도망해 있던 것이다. 그리나 그들은 곧 그때의 사실을 그에게 상기시켜 주었다(삼상 21:10). 그러자 그는 태도를 바꾸었으나, 조금도 당황하는 기색없이, 그때 그는 이 시편과 제34편을 지었던 것이다. 이 시편은 "믹담-황금시"라 불리우고 있다. 다른 시편들도 이렇게 표제를 달고 있으나, 이 시편은 그 표제 안에 특유한 것을 담고 있다. 그것은 "말없이 저 멀리 날아가는 비둘기"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요낫 엘렘 르호김"에 맞춘 노래였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날아갈 수 있는 비둘기의 날개를 원했던 다윗 자신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는 비둘기처럼 순진하고 악의가 없었고, 온유하고 참을성 있었다. 그러나 이 당시 그의 보금자리, 그 성소에서 쫓겨났으므로(84:3), 멀리 헤매어 다니면서, 먼 곳에 있는 피난처를 찾아야 했다. 거기에서 그는 골짜기의 비둘기처럼 처량하고 우울했으나, 하나님께 불평하거나 그의 환란의 도구(대적들)에게 투덜거리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여기에서 그는 양 같았고, 자기 옷을 나누는 자들 앞에서 잠잠하셨던 그리스도의 모형이 되고 있으며, 어디에서 어떤 해를 당하든지 비둘기처럼 잠잠해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모본이 되고 있다. 이 시편의 전반부에서는 이런 것을 엿볼 수 있다.
💡 56:1 <다윗의 믹담 시, 인도자를 따라 요낫 엘렘 르호김에 맞춘 노래, 다윗이 가드에서 블레셋인에게 잡힌 때에>
‘요낫 엘렘 르호김에 맞춘 노래’
- 직역하면, ‘멀리 있는 것들의 침묵의 비둘기를 따라서’
- 당시 잘 알려진 곡이 었었는데 본시가 그 곡조에 맞추어 불려졌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거나 본시의 저자 다윗이 자신이 성소에서 멀리 떨어진 블레셋에 있어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할 수 없는 상황을 침묵의 비둘기, 즉 울지도 못하는 비둘기의 처량함에 비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Ⅰ. 다윗은 그의 대적들의 악의와 사악함을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으며, 그가 왜 그들을 두려워하는가를, 무슨 이유로, 무슨 필요성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쳐부수기 위해 나타나셔야 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1절).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이 기원은 우리가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 구하는 모든 선한 것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가 거기서 긍휼을 얻는다면, 우리는 우리가 바랄 수 있는 모든 것을 얻게 되며,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더 이상 다른 것은 필요하지 않다.
이것은 또한 우리의 가장 훌륭한 청원, 즉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 그가 값없이 풍부하게 주시는 긍휼을 암시하고 있다. 그는 사람들에게서는 어떤 긍휼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가 사울의 잔인한 손에서 도망했을 때,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빠지게 되었다. "주여"(그는 말하고 있다) "주께서 이제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그렇지 않으면 나는 파멸합니다."
— 하나님의 긍휼은
- 우리가 어려움과 위험으로 사방을 포위 당할 때, 우리가 도망하여 의지할 수 있는 곳이며,
- 믿음으로 간구할 수 있는 것이다.
💡 56:1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사람이 나를 삼키려고 종일 치며 압제하나이다
본시의 시작부터 시인은 자신의 형편을 긍휼히 여겨달라고 호소한다.
- 이러한 표현을 통해 시인은 대적의 땅 블레셋으로 내려간 후 자신이 얼마나 다급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지를 부각시키고 있다.
- 이같은 위기에 처한 것은
→ 그가 과거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골리앗을 죽였을 뿐 아니라 블레셋을 패배시킨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시인이 부르짖는 ‘하나님’
-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하면서 ‘엘로힘'이란 신 명 을 사용한다.
- ‘엘로힘'은
-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전능하신 면모를 부각시킬 때,
- 하나님의 능력과 위엄을 강조할 때 사용하는 신명이다.
‘사람이’
- 사람 = ‘아나쉬’
- 도덕적으로 부패할 뿐 아니라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로서의 인간을 표현하는 단어.
- 시인은 유한하고 제한적인 사람에 불과한 블레셋 사람들의 사악하고 파괴적 행동을 묘사한다.
- 다윗은 지금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무리들이
→ 비록 강하게 보일지라도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너무나 약한 존재이며,
→ 결코 자신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을 대적하여 이길 수 없는 존재들임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에노쉬 사람’ ↔ ‘엘로힘 하나님’
- 시인은 혹독한 고난 중에 처해 있었지만 ‘엘로힘'과 ‘ 에노쉬'의 의미가 지닌 이러한 표현 가운데는 자신을 삼키려 하고 박해하는 이들 악인들의 행동이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 앞에 무력화될 것임을 의미하고 있다.
- 즉 시인은 본시 시작부터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대적들로부터 자신을 능히 도우시며 건지실 하나님의 구원과 승리의 역사에 대한 확신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종일 치며 압제하나이다’
- 시인의 위와 같은 구원의 확신에 대한 암시가 본시 시작부터 깔려 었는 것은 분명하지만 현실적인 정황은 그렇지 못했다.
- 악인들의 압제와 추적, 박해는 일순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계속되고 있었다.
1. 그는 그의 대적들이 매우 많다고 호소하고 있다(2절).
"나를 치는 자가, 그리고 수효로 나를 압도하려고 생각하는 자가 많사오니, 지극히 높으신 주여, 이것을 살피시고 그들이 교만히 행할 때에 주께서 그들보다 더 높으심을 나타내 시옵소서."
많은 사람들이 대적하는 한 사람을 돕는다는 것은 명예로운 일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편이 되신다면, 우리를 치려는 자들이 그보다 더욱 많이 있다고 자부한 근거 위에서, 우리에게 있는 자들이 그보다 더욱 많이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왜냐하면(저 큰 대장이 말했듯이) "우리가 그를 몇 사람으로 계산하겠는가?"
2. 그들이 매우 야비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그들은 "나를 삼키려고 합니다"(1, 2절).
그들은 그를 집어 삼키려고 노렸다. 그 이외의 것은 결코 하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먹이를 노리는 짐승처럼 매우 분기충천하여 그의 살을 먹으려고 그에게 왔었다(27:2). "사람이, "그와 같은 인간이, 그가 인정을 기대했던 사람이 그를 삼키려 했다. 굶주린 짐승들도 그들과 같은 종족은 먹지 않는다. 그러나 악한 사람은 수만 있다면 선한 사람을 집어삼키고자 한다. "그들은 연약하고 덧없는 사람입니다. 저들로 그러한 것을 알게 하소서"(9:20).
💡 56:2 내 원수가 종일 나를 삼키려 하며 나를 교만하게 치는 자들이 많사오니
- 시인을 적대하는 자가 무수히 많았다.
- 또한 이처럼 많은 대적들, 계속되는 어려움, 가중되는 공격은 시인이 직면한 현재 상황이 얼마나 고통스런 것인지를 읽을 수 있게 한다.
블레셋 사람들의 계속되는 가혹한 공격과 압제, 그리고 그들의 고압적인 자세는 외로운 도피자 다윗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다.
3. 그들의 뜻이 모두 일치하고 있다는 점을 호소하고 있다(6절).
"저희가 또 모이나이다."
비록 그들의 수효가 많고 또 각자 다른 관심을 가지고 모였을지라도, 다윗의 자손들을 치려던 헤롯과 빌라도처럼, 다윗을 치고자 힘을 합하고 결속하였다.
4. 그들이 매우 강력하여, 하나님께서 자기를 돕지 않으신다면 자기로서는 겨루기에 너무 힘든 상대인 것을 호소하고 있다.
"저희가 나를 치며(2절) 나를 압제하나이다(1절). 나는 거의 그들에 의해 압도당하고 위축되었으며 극한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5. 그들이 매우 교활하고 간교한 점을 호소하고 있다(6절).
"저희가 숨었나이다. 저희가 부지런히 그들의 계획을 감추어, 그것을 더 효과적으로 집행하고 수행하고자 하나이다. 저희가 비판적인 눈으로 내가 말하고 행하는 모든 것을 살펴 나를 고소할 미끼를 찾고자 하나이다.(이처럼 그리스도의 대적들도 그를 염탐했다. 눅(20:20)."
또는 "저희가 내 모든 동작을 주시하여 내게 해를 끼칠 기회를 얻으려 하며 내게 씌울 올무를 놓고자 합니다."
6. 그들이 매우 심술궂으며 악의에 찬 점을 호소하고 있다.
그들은 그가 말한 것이 아무리 정직한 의미를 가지고 있고 또 신중하게 표현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모두 불쾌하게 해석한다(5절).
"저희가 내 말을 곡해하여 결코 그 말속에 없는 것을 억지로 붙이기 위해 그것을 고문대 위에 놓고 있나이다." 그리하여 그의 맘을 사울에게 오도하고, 그것을 더 중하게 하여 그를 치려는 사울의 마음을 더 자극하여, 범죄자로 만들었다(사 29:21). 그들은 다윗을 멸망시키는 것을 그들의 전업(專業)으로 삼았다. 그들의 모든 생각은 다윗에게 불리했고, 그것은 그의 모든 말을 나쁘게 해석하도록 만들었다.
💡56:5 그들이 종일 내 말을 곡해하며 나를 치는 그들의 모든 생각은 사악이라
7. 그들이 매우 끊임없이 지칠 줄 모르고 악을 행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그들은 항상 다윗의 생명을 엿보았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생명, 귀한 생명이었다. 그들이 갈망하는 것은 죽음이었다(6절). 그들은 매일 그를 쳤고 매일 그를 삼키려 했으며, 날마다 그의 말을 곡해했다(5절). 그들의 악의는 그들의 팔이나 그들의 적대 행위가 멈추는 것을 조금도 허용하려 하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끊임없이 그를 밀었다.
이러한 것이 그리스도의 나라와 그의 거룩한 믿음의 사업을 대적하는 사탄과 그의 부하들의 적의이다. 우리가 진심으로 그 사업에 열중하는데도 그러한 대우를 받는다면, 우리에게 어떤 이상한 일이 일어난 것처럼 그것을 이상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우리보다 더 나은 자들도 이러한 대우를 받았다. 이처럼 그들은 선지자들을 박해했던 것이다.
💡56:6 그들이 내 생명을 엿보았던 것과 같이 또 모여 숨어 내 발자취를 지켜보나이다
Ⅱ. 다윗은 하나님 안에서 그리고 그의 약속과 능력과 섭리 안에서 그 자신을 격려하고 있다(3,4절).
그가 호소하는 도중에, 그리고 그의 대적들에 대해 그가 말해야 할 것을 이야기하기 전에, 그는 그 거룩한 보호 속에서 개가를 부르고 있다.
💡 앞선 1,2절에서 다윗은 원수의 땅에서 자신을 적극적으로 박해하는 원수들을 만나자 매우 다급하게 하나님의 긍휼을 호소하며 그들의 압제를 고발하였다.
그러나 본절과 4절에서는 그 내용이 반전을 이룬다.
→ 즉 여기서 다윗은 인간적인 많은 시련과 역경 그리고 위기 상황 속에서도 결코 낙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겠다는 굳은 결의를 보여주고 있다.
1. 그는 상황이 매우 위태하게 되고 그가 신뢰하던 모든 것들이 수포로 돌아갔을 때에도 하나님을 신뢰하기를 결심하고 있다. (3절)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외적으로 매우 놀라며 내적으로는 기겁을 하는 두려운 날에도, 주를 의지하리이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내 두려움은 진압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도 특별히 두려워해야 하는 때가 종종 있다. 이러한 때에도 그들은 하나님을 자기들의 하나님으로 의지하고, 그들이 의지해 온 자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하며, 그것이 또한 그들에게도 유익하다. 그러면 마음을 고정시키어 평안케 할 것이다.
💡 56:3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 인간적이고 물리적 힘 앞에서 아주 인간적으로 두렵고 불안한 상황 속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의지하리이다’
- 이는 ‘두려움’과는 정반대의 의미로,
다윗이 환난과 역경에 처하여 있었지만,
하나님을 믿고 담대하게 살아가는 신앙적 삶을 견지하고 있었음을 가르쳐준다.
‘의지’한 표현을 다윗은 이어지는 4절, 10,11절에서 6회나 반복한 사실.
- 이에 담긴 다윗의 신앙의 모습은,
- 다윗이 이방인들의 위협과 공격이라는 심각한 위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을 잃지 않았음을 반영한다.
- 더 적극적이고 간절한 자세로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던 다윗의 성숙하고도 굳건한 신앙을 반영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가 행하신 그의 사업뿐만 아니라 그가 말씀하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약속이 아직 이행되지 않았을지라도, 그것에 대해 주께 감사하리라. 하나님을 의지하고(그의 힘 속에서 그리고 그의 도움에 의해) 내가 그의 말씀을 영화롭게 하고, 그 영광을 그에게 돌리리라. "
어떤 사람들은 "그 말씀"을 그의 섭리, 그가 명하고 정하시는 모든 일들로 해석하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읽는다.
"내가 하나님께 대해 좋게 말할 때 나는 그가 행하신 모든 것에 대해 고와 함께 좋게 말하리라."
💡 56:4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본문을 직역하면
- 하나님 안에서 내가 그의 말씀을 찬송하올지라(KJV, In God I will praise his word)’ 가 된다.
- 다윗 자신은 지금 (‘창조주이신 전능하신 엘로힘’)하나님의 보호 안에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
다윗이 어떻게 찬송의 다짐을 할 수 있었는가?
- 비록 원수들이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으나,
전능하신 하나님의 보호 안에 있다는 자각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었다.
여기서 시인이 다름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겠다고 한 데에는 특별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 ‘그 말씀’
→ 원형 ‘따바르’- ‘말씀’이란 의미뿐 아니라, 본문처럼 하나님과 관련해서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언약의 말씀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 따라서 본문의 ‘말씀’은,
-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며 위기 가운데서 구원하여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의미한다.
- 특히 하나님이 베푸신 언약, 곧 다윗이 여기서 찬송하겠다는 ‘그 말씀'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자들에게 반드시 이루어질 말씀이다.
⇒ 따라서 다윗이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고 말하는 것은
- 하나님의 말씀 속에 포함되어 있는 백한 자를 보호하시겠다는 그 내용과
- 그 약속을 반도시 이루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찬양하겠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3. 이처럼 도움을 받은 모든 대적하는 권세 자들에게 도전할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나는 안전하고 편하며 두려워 아니하리니, 혈육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혈육을 가진 사람에 불과한 자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아니,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팔이 우리 편이될 때 우리가 그것을 의지해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팔이 우리를 치려고 뻗쳐졌을 때에도 우리는 그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 56:4b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 하나님을 의지하고 자신에게 베푸신 언약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을 확신한 데 따른 결과를 피력.
- 굳게 세워진 다윗의 신앙적 기개/내적 확신
‘내가 .. 의지하였은즉’
- 완료형 : 다윗이 국한 곤경과 위기 속에서도 이미 하나님을 확실하게 믿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주고 있다.
-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신앙은 → 자기 앞에 전개되고 있는 위협과 공격에 대해 결코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영적인 결의로 표출되고 있다.
Ⅲ. 다윗은 자기를 치는 자들, 그리고 악한 행실을 하면서도 자기들은 견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이 멸망할 것으로 예견하고 있으며, 또 예고하고 있다(7절).
"저희가 죄악을 피하오리까?"
그들은 자기들이 사람의 심판을 피하는 것처럼, 폭력과 속임수 그리고 불의와 배신의 방법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피하게 될 것인가? 아니다. 그들은 결코 그렇게 되지 못한다. 죄인들의 죄는 그들의 보호자가 되어 주지 못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무례함이나 사곡함이 그들이 하나님의 공개 법정으로 불려오는 것을 면케해 주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진노로 이러한 백성들을 멸하시고 제하실 것이다.(롬 2:3). 하나님의 공의가 그들의 권위와 신뢰를 떨어뜨릴 수 없을 정도로 높이 들려지거나 견고히 자리잡고 있는 자들은 아무도 없다.
"누가 하나님의 노의 능력이" 얼마나 높게 미칠 수 있는가를 그리고 얼마나 강하게 때릴 수 있는가를 "알리오?"
💡 56:7 그들이 악을 행하고야 안전하오리이까 하나님이여 분노하사 뭇 백성을 낮추소서
- 악한 자들을 보호하지 않고 던져 벌하여 달라는 호소.
- 한걸음 더 나아가서 대적들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언하여 낮아질 수 있도록 간청함.
하나님이 악인들을 낮추시는 이유
⇒ ‘분노하사’
- 분노: 원형’아프’
- ‘콧구멍’ =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을 표현.
‘뭇 백성을 낮추소서’
- ‘던져버리다, 파멸시키다, 떨어뜨리다’
- 이는 단순히 낮아지거나 비천해지는 것 뿐만 아니라 파멸의 의미까지 지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다윗이 여기서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을 지금 자신을 괴롭히는 블레셋 사람으로 한정하지 않고 ‘뭇백성'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은
→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을 거스르고 악을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한다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함이라 할 수 있다.
●고통 아래서의 위로(시편 56:8-13)
다윗은 여기에서 자기의 환란과 두려움의 날에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사실로 자신을 위로하고 있다.
Ⅰ.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탄식과 모든 슬픔을 특별히 주목하셨다는 사실(8절). 그 탄식과 슬픔은
1. 그의 불리한 상황에 대한 것이었다.
"나의 유리함." 곧(옛번역대로) 나의 "날아다님을 주께서 계수 하셨나이다."
다윗은 지금(30세 미만인) 젊은이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는 그의 아버지 집에서 궁으로, 거기에서 야영지로 여러 차례 옮겨다녔고, 이제는 그가 마땅한 장소를 발견할 수도 없고 또 쉴 수도 없는 곳으로 쫓겨났다. 그는 산에 있는 자고처럼 추적을 당했다. 끊임없는 공포와 올가미가 그를 쫓아다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동작을 일일이 기록하시고, 그의 피곤한 모든 발걸음을 밤낮으로 계수해 주셨다는 사실은 그를 위로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의 고통을 인지하신다. 그리고 사람들이 교제와 대화를 끊어버린 자들에 대해서도 그는 배려와 사랑을 끊어버리시지 않는다.
2. 그의 마음에 이처럼 찍혀진 그 모든 자국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유리하는 동안, 자수 울었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기도하고 있다.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그리하여 그것이 보존되고 살펴질 수 있게 하소서. 아니, 나는 그것이 주의 책에, 주의 기억의 책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죄 때문이거나 환란 때문에 흘리는 눈물을 담고 기록해 둘 그릇과 책을 가지고 계신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1) 하나님은 그들을 연민과 자상한 관심을 가지고 보살피신다.
그는 그들의 환란 속에서 괴로움을 함께 당하며, 그들의 영혼이 곤경 속에 있음을 알고 계신다. 그의 성도들의 피와 그들의 죽음이 주님이 보시기에 귀한 것과 같이, 그들의 눈물도 그러하며, 그 한 방울도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네 눈물을 보았노라" (왕하 20:5). "에브라암이 스스로 탄식함을 내가 들었노라"(렘 31:18).
(2) 우리는 우리가 기록한 사실들을 기억하는 것처럼 그는 그것을 기억하시고 살피실 것이다.
바울은 디모데의 눈물을 생각했었다(딤후 1:4). 그리고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의 슬픔을 잊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핍박받는 백성들의 눈물은 병에 봉인되어 하나님의 창고에 보관될 것이다. 그리고 이 책들이 펼쳐지게 될 때, 그것들은 진노의 병이 되어, 그 진노가 그들을 핍박하던 자들 위에 쏟아질 것이다. 즉, 하나님은 그들이 강제로 그의 백성들의 눈에서 흘리게 했던 모든 눈물을 분명히 자들에게 위로의 샘이 될 것이며, 그들의 베옷이 찬미의 옷으로 변할 것이다. 하나님은 그가 자기 백성들에게 괴로움을 허락했던 시간을 따라서 그만큼 그들을 위로하실 것이며 눈물로 씨뿌리는 자를 기쁨으로 거두게 할 것이다. 뿌려진 눈물은 진주가 되어 나올 것이다.
💡 56:8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병에’
- 원형 ‘노드’ 가 이스라엘 사람돌이 물이나 술 또는 기름이나 젖 같은 것을 넣는 데 사용하는 ‘가죽부대'를 의미.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 본절에서 이와 같은 표현을 사용한 것은
- 먼저 시인의 탄식의 눈물을 술이나 기름, 우유와 같이 아주 조심스럽게 보존해 달라는 의미를 함축한다(Craigie).
- 아울러 가죽부대는 대개 그 크기가 컸음을 감안할 때 이는 다윗이 얼마나 크고 무서운 고통과 슬픔에 처해 있는지를 전달해 준다.
→ 즉 이는 많은 눈물로 표현되는 다윗의 처량 하고 딱한 고통과 슬픔을 하나님께서 관심 어린 눈으로 살피시고 그 고통과 슬픔의 현장에 구원의 손길을 보내달라는 애절한 간구가 담긴 상징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왕하 20:5).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 다윗은 수사 의문문을 사용하여 많은 눈물로 표현되는 극심한 자신의 고통이 주의 책에 기록되어 있음을 강조하고 었다.
→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 행적을 세밀히 감찰하시고 이를 기록에 남겨두어 축복과 정벌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성경의 가르침과 일맥 상통하는 표현이다. - 구체적으로 이러한 본문의 표현 역시 자신의 상황을 깊어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우심에 대한 확신에 근거한 표헌이다.
→ 즉 시인은 자신의 고통스런 상황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속히 구원의 손길을 베풀어 주시기를 바라는 간구를 앞선 상반절에 이어 반복적으로 올리고 있는 것어다.
Ⅱ. 그의 기도는 그를 돕고 격려해 줄뿐만 아니라 그의 대적들을 물리칠 수 있을 만큼 강력할 것이다(9절).
"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가 물러가리니, 즉 나는 기도와 눈물 이외에는 다른 무기가 필요 없으리니, 하나님이 나를 도우심인 줄, 그리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고 나를 보호하시며 건지시는 줄 아나이다. 하나님에게는 그들을 위하시면 누가 나를 쳐서 이길 수 있으리요?" 성도들에게는 그들을 위해 주시는 하나님이 있다. 그들은 그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대적들에게 둘러싸였을 때, 그들은 그에게 부르짖어야 한다. 그들이 믿음으로 이렇게 한다면,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을 돕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무릎으로 가장 잘 싸울 수 있는(엡 6:18) 영적 대적들은 후퇴하도록 될 것이다.
💡 56:9 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들이 물러가리니 이것으로 하나님이 내 편이심을 내가 아나이다
자신이 아뢰는 날에 자신의 원수들이 물러갈 것을 확신하는 신앙
다윗은 하나님께 아뢰는 자신의 기도와 그 기도의 응답으로 이루어지는 원수들의 멸망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아뢰는 날’
- 아직 원수의 물러감이 이루어지지 않은 시점이지만,
자신의 기도하는 날 원수들이 반드시 물러갈 것이라는 확고 부동한 신념이 내포되어 있다.
다윗의 확신은 한글 성경에 번역되지 않은 표현 ‘그 때에’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다윗의 확신이 담긴 기도가 연상시키는 바,
- 모세가 기도할 때 아말렉 군대를 파한 사건(출 17:10-13)과
- 사무엘이 여호와께 부르짖음으로 여호와께서 큰 우레를 발하사 블레셋을 어지럽게 하시고 이스라엘 앞에서 패퇴한 사건(삼상 7:9,10)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일들에 대해서는 다윗 역시도 익히 기억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따라서 그는 과거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당신의 백성들에게 승리를 주신 사건을 자신에게 적용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기도의 응답에 대한 확신의 근원
다윗이 자기의 인간적인 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만을 믿고 있다는 것과 깊이 결부되어 있다
Ⅲ. 하나님께 대한 그의 믿음은 그로 하여금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게 만들 것이다(10,11절).
여기에서 그는 그가 말했던 것을(4절) 깊은 열정으로써 말하고 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즉, 내게 약속을 해 주신 그를 위하여-그는 진실하고 미쁘시며, 지혜와 능력과 인자하시사, 그 약속을 지킬 자이다-그 약속을 굳게 의지하리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의 증서를 신용한다는 것은, 그것을 작성한 자를 존경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망설이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에 의지하여 그를 위해 행하고 고난을 당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의 말씀을 찬송하고 그렇게 하여 그를 찬송하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에 그는 사람의 위협적인 능력을 거룩한 경멸로 보고 있다.
"내가 하나님을 오직 그만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아니하리니, 사람이 할 수만 있다면 내게 어떠한 알을 하리라는 것을 내가 잘 알고 있긴 하지만, 사람이 내게 어찌하나이까?"(1,2절)
거룩한 담대함을 매우 잘 표현한 이 승리에 찬 말을 한 사도는 모든 참된 신자들 입에 놓고 있으며, 그는 그들을 기독교의 용사로 만들고 있다(히 13:6).
우리 각자는 담대하게, "주는 나를 돕는 잣기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어찌 하리요?"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께서 위에서 주신 것 이외에는 어떤 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 56:10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4절에서는
- 다윗이 하나님을 의지함으로써 두려워하지 아니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는 자신을 혈육에 불과한 사람이 결코 해할 수 없음을 노래한 것이다.
- 자신의 보호를 확신한 것
반면 본절은
-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며(9절) 이러한 승리를 주실 하나님을 더욱더 의지하겠다는 내용어다.
- 그의 승리를 확신한 것 → 4절보다 더 적극적인 시인의 신앙을 피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본절에서 시인은 ‘엘로힘’ 뿐만 아니라 ‘예흐와’란 신명을 교차해 가면서 사용하고 있다.
특별히 다윗어 하나님의 이름을 ‘예흐와'와 ‘엘로힘'으로 바꾸어 가던서 부르는 것은 그 이름 속에 들어 었는 각각의 고유한 의미를 되세기기 위한 것이다.
먼저 사용된 ‘엘로험'
-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전능하신 능력을 강조할 때 사용하는 신명이며,
- 더 구체적으로 모든 세계를 통치하시고 지배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면모를 강조하는 신명이다.
반면 ‘예흐와'는
- 당신의 백성을 선택하시고 언약을 세우시며 그 언약을 성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의 면모를 강조하는 신명.
여기서 다윗은 하나님이야말로 눈에 보이는 흉포한 대적들을 능히 꺾을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며,
기름부어 신정 왕국의 통치자로 선택하신 다윗 자신을 신실하게 보호하셔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실 분임을 확신하는 믿음의 고백으로
이러한 신명을 교차 사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다윗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찬양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어다.
💡 56:11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Ⅳ. 그는 하나님께 약속했다(12절).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서원함이 있사온즉, 그것은 내가 짊어지게 되는 짐으로서가 아니라 내가 영화롭게 되는 견장으로서, 그것에 의해 내가 주의 천한 종이라는 것을 말리는 것으로서-또 나를 감금시키는 족쇄(미신적인 서원은 이러한 것들이다)로서가 아니라 나를 해치려는 것을 억제시키고 내게 내 의무의 길을 지시하는 것으로서 서원한 것입니다. 주의 서원함이 내게 있사오니, 즉 내가 주께 서원하였사오니, 주께서는 그것의 증인이 되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편드시어 나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명하셨고 격려하셨나이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그의 환란과 고통의 날에 특별히 했던 서원을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 그는 그의 공포가 끝났을 때 그 사실을 기억하고 그 의무를 인정했을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서원함” -우리가 그것에 의해 하나님께 맞는 생활을 해야 하는 그 서원함, 즉 성찬 삭에서 새로와지는 우리의 세례의 서원, 우리가 때로 회개와 징계 아래서 하는 서원함이 있다는 것, 우리의 묵상과 기쁨의 주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 56:12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서원함이 있사온즉 내가 감사제를 주께 드리리니
‘주께 서원함’이 있사온즉
- 다윗이 하나님을 향해 많은 서원을 하였다(복수형)
‘내가 감사제를 주께 드리리니’
이처럼 미래의 시점에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들을 드리겠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 자신의 모든 서원들이 다 이루어질 것임을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아울러 본절에서 다윗이 이처럼 자신에게 ‘서원'이 있다는 것과 ‘감사제'를 드리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밝힌 것은
- 믿음이 삶 가운데 구체적으로 구현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 그리고 이러한 기원에는 다윗이 자신의 형편과 환경을 넘어서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능력을 확신하였고 이에 대한 차고 넘처는 기대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 이러한 다윗의 기대에는 현재 당면한 적의 위협에서 벗어나 안전하게 되는 것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바에 따라 신정 왕국의 왕이 되는 축복까지도 포함한다.
이러한 다윗의 서원과 기대는 -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따라 실제 이루어졌고,
이후 다윗 역시도 신실하게 자신이 서원한 바대로 감사의 제사와 찬양을 하나님께 올린다.
Ⅴ. 그에게는 여전히 하나님을 찬송할 경우를 더욱 더 많이 갖게 될 것이다.
"내가 감사제를 주께 드리리다."
이것은 그의 서원함을 실행하는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감사의 서원은 긍휼을 구하는 기도에 마땅히 동반되며, 그 긍휼이 허락되었을 때에는 반드시 그 서원을 실행해야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갚아야 할 것을 연구할 때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제를 드리려는 것은 우리가 결심할 수 있는 가장 적은 것으로서 풍만히 받은 것에 대한 초라한 보답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다음 가지 일로 하나님께 찬송하려 하고 있다.
1.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행하신 것에 대해(13절).
"주께서 내 생명을 바로 막 나를 잡으려고 하는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건지셨다면, 또 예방하는 은혜로써 그것을 범하는 것에서 또는 용서하는 긍휼로써 그것의 형별에서 우리를 건지셨다면, 우리는 그것으로써 그가 우리 영혼을 죄의 싹인 사망에서 건지셨다고 우리다 빨리 그리스도와 함께 되어 영적으로 살도록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 56:13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마치 시인이 찬란한 빛 가운데 둘러싸여 있는 듯한 뉘앙스 를 전달하는 본문의 표현은 본시를 기록하는 시인의 현실적 상황과 비교할 때 현격한 대조를 형성하는 내용이다.
현실적으로 볼 때 시인은 앞선 1, 2절과 5, 6절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대적들의 혹독한 공격과 핍박으로 인하여 암울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었다.
시인이 이처럼 자신이 처한 상황과 대조되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표현을 본시의 가장 마지막 부분에 배치한 것은 분명한 의도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시인은 자신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생명과 비추시는 빛 가운데 지속적으로 살아갈 것임을 확증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 생명의 및 가운데 거하는 삶은 - 다름아닌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삶이다.
- 이처럼 하나님 앞에 행하며 하나님이 비추시는 생명의 빛을 따라 살아간 결과
- 다윗은 그가 신뢰하고 찬양했던 하나님 말씀대로 구원을 받았을 뿐 아니라,
-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을 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강국을 건설함으로 어떤 대적도 감히 이스라엘을 넘보지 못하게 하였다.
2.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행하고자 하셨던 것에 대해.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시어 내게 새 생명을 주셨나이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내게 더 많은 긍휼을, 즉 주께서 나를 실족치 않게 하시리라는 것은 일은 행하시지 않을 것이옵니다. 주께서 신한 일을 시작하셨으니 주께서 그것을 수행하고 완성하실 것이옵니다."
이것은 그의 경험을 진술하는 그의 기도의 내용으로서 또는 그의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그의 기도의 내용으로서 또는 그의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그의 찬송의 내용으로서 간주될 수 있는 것 속에서뿐만 아니라 찬미하는 법을 아는 자들은 이미 소유하고 있는 것 속에서뿐만 아니라 약속과 전망 속에 있는 긍휼에 대해서도 하나님께 감사드릴 것이다. 다음을 살펴보자.
(1) 다윗은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그가 그의 양심을 상하게 할 죄 속으로, 또는 그의 대적들이 그의 명성을 해칠 구실이 될 죄의 외형 속으로 실족하지 않게 해 주시기를 바라고 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가장 훌륭한 자들도, 하나님이 그들을 붙드시기를 기뻐하지 않는 다면 더 이상 설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연약하며, 우리의 길은 미끄럽고 그 속에서는 우리가 걸려 넘어지기 쉬운 돌이 많다. 또한 우리의 영적인 대적들은 우리를 넘어뜨리기에 열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성도들의 발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돌보심에다가 믿음과 기도로써 우리 자신을 맡기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2) 그의 이러한 소망은 어디에 근거한 것인가?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고, 그 속에서 주의 능력과 선하심을 높이 드러내셨으며, 주의 그 긍휼을 더 받을 수 있는 역량을 내게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께서 주의 일을 안전케 하시고 유종의 미를 거두기 아니하시겠나이까?" 하나님은 결코 그의 백성들을 광야에서 죽게 하기 위해 그들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지는 않았다. 개심을 통해서 죄처럼 중대한 사망에서 생명을 건지시는 그분은 또한 반드시 "천국에 다 그 생명을" 보존하실 것이다.
(3) 이 소망 속에 있는 그의 의도는 무엇인가? "나로 하나님 앞, 즉 생명의 빛 안에서 다니게 하려 함이라." 즉
[1] "내가 빛과 생명의 유일한 땅인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암흑과 사망이 거하기 때문입니다."
[2] "내가 이 생명이 지속되는 한, 내 의무를 행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우리는 죄와 고통에서 구원받으려는 우리의 모든 소망과 기대 속에서 이것을 목표로 삼아, 우리가 하나님께 더 나은 봉사를 더 행할 수 있도록-"우리가 대적의 손에서 건지워졌으므로, 우리가 두려움 없이 그를 섬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결론
💡이상에서 살피본 본시는 인간이 처할 수 있는 가장 큰 위기의 상황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드높은 신앙의 기개를 드러내는 놀라운 내용을 담고 있다.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 연약한 존재이다.
그러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고국을 버리고 원수의 나라로 갔을 뿐 아니라 거기서도 적대자들에 의하여 목숨을 잃을 심각한 위기 가운데 처하였던 다윗이 거듭하여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라고 외치는 모습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이러한 다윗의 당당한 면모는 암울한 현실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언약에 성실하심을 믿는 신앙에 근거한다.
따라서 이 시는 조그마한 위기에도 위축되어 쉽게 절망에 빠지는 우리 연약한 인생에게 상황을 초극하는 담대한 삶의 길을 지 도해주는 값진 시라 할 수 있다.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기를 원하는 성도라면,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라고 외치는 시인의 기개를 본받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