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신명기 20, 시편 107, 이사야 47, 요한계시록 17
묵상구절
제13연: 명철의 원천인 말씀을 향한 사랑의 열정 토로
119:97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
119:98 주의 계명들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들이 나를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119:99 내가 주의 증거들을 늘 읊조리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나으며
119:100 주의 법도들을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나으니이다
119:101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119:102 주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내가 주의 규례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119:103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119:104 주의 법도들로 말미암아 내가 명철하게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14연: 역경 중에서도 희락의 원천인 말씀 사랑의 열정 토로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119:106 주의 의로운 규례들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
119:107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119:108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 입이 드리는 자원제물을 받으시고 주의 공의를 내게 가르치소서
119:109 나의 생명이 항상 위기에 있사오나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나이다
119:110 악인들이 나를 해하려고 올무를 놓았사오나 나는 주의 법도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119:111 주의 증거들로 내가 영원히 나의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
119:112 내가 주의 율례들을 영원히 행하려고 내 마음을 기울였나이다
매튜헨리/옥스퍼드
💡
앞선 제12연에 해당하는 89~96절 단락에서 시언은 하늘과 땅을 소재로 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완전성을 찬양하고, 그 찬양의 내용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여 말씀에 대한 의지와 구원에의 간구를 표현하였다.
이에 이어지는 본절 이하 120절까지는 명철의 원천어며 역경 중에도 희락의 원천이 되며 심판의 기준인 말씀 사랑의 열정을 피력하는 내용이다.
먼저 이를 시작하는 본절 이하 104절까지는 각 절이 ‘멤'으로 시작하는 본시의 제13연에 해당하며 명철의 원인인 말씀을 향한 사랑의 열정을 토로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특히 이 부분은 고난에 대한 탄원이나 구원에의 간구 없어 오적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찬양과 사랑의 고백으로 채워져 있는 특정을 지닌다.
그리고 이어지는 14연과 15연 역시 이러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데, 이 세 연은 각각 ‘지혜', ‘역경', ‘심판'이라는 소재와 관련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다양한 측면으로 찬양하고 그에 대한 열정을 고백한다.
이러한 찬양과 열정의 고백의 다양한 스펙트럼은 한편으로
- 말씀에 대한 시인의 사랑과 열정의 깊이를 잘 보여주며,
- 이와 동시에 앞선 11연에서 강조된 하나님의 말씀의 완전성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이해될 수 있는 본연은
-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시인의 강렬한 사랑의 고백으로 시작한다.
-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은 말씀에 대한 시인의 사랑이 드러나는 실제적 삶의 모습과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오는 가치와 효용이라는 내용이 두 개의 축으로 맞물려 진행된다(98-100절).
- 이어서 시인은 말씀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말미암은 말씀 준행의 모습과 말씀 사랑의 결정적 이유를 고백하고(101, 102절),
- 다시 말씀의 유익으로 말미암은 말씀에 대한 사랑의 고백을 반복하며 본연을 마무리한다(103, 104절).
또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본연의 첫머리에 고백된 말씀에 대한 사랑은 98-100절에서는 긍정문을 통하여 표현되며 101,102절에서는 부정문을 통해 강조적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첫머리에 고백된 말씀에 대한 사랑 역시 본연의 마지막 절에서 거짓된 것에 대한 미움으로 표현되고 있다.
시인은 같은 내용을 긍정문으로 또한 부정문으로 대비적으로 표현하여 그 주제를 보다 분명하게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대조는 히브리 지혜 문학에서 매우 즐겨 사용되는 표현 기법이다.
●사랑과 묵상(시편 119:97)
💡 119:97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
1.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다윗의 사랑이 있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그는 거룩한 열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의 애정을 증언한다. 그는 자신의 본성의 타락과 세상의 유혹을 생각하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그에게 행하신 은총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마음속에 말씀에 대한 사랑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는 약속을 사랑하였을 뿐만 아니라 율법도 사랑하였고 속 사람을 따라 그것을 즐거워하였다.
💡 ‘사랑하는지요’
- ‘아하브’ (사랑)
- 여기서 ‘아하브’, ‘사랑’ 이란 -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태도로(신 6:5) 인격적 관계에서 그 이상의 표현을 찾아볼 수 없는 최상의 관계성을 나타낸다.
- 하나님 자신과의 인격적 관계에 근거한 것이다(102절).
- 즉 사실상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랑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며,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는 구체적인 방범이기도 하다. 시인의 율법에 대한 사랑은 바로 이러한 의미를 함측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이것에 대해서 제거할 수 없는 증거가 있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생각하고 싶어한다. 이것에 의해서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의 "묵상"이라는 것이 증명되는 것이다. 그는 율법서를 읽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읽은 것을 그의 생각속에서 소화했고 옥토에 넣는 것같이 머리에 넣었다. 그의 묵상은 조용하고 고독하고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는 밤에만 이뤄진 것이 아니라 사업과 동료로 가득찬 낮에도 행해졌다. 아니 "종일" 묵상하였다. 어떤 좋은 생각은 그의 일상의 생각으로 짜여 있으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해 있었다.
💡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
●가장 큰 지혜의 근원(시편 119:98-100)
우리는 여기에서 다윗의 배움에 관한 설명을 본다. 그것은 애굽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실로 이스라엘 사람들"의 것이다.
Ⅰ. 그가 그것을 얻은 좋은 방법을 보자.
그는 젊었을 때 시골에서 목동으로써 하던 일을 기억했다. 그의 소년 시절부터 궁정과 진영에서 하던 일을 모두 기억했다. 그의 소년 시절부터 궁정과 진영에서 하던 일을 모두 기억했다. 그런데 어떤 방법으로 그가 크게 배울 자료를 얻었는가? 그는 여기에서 그가 어떻게 거기에 도달했는지를 말해 주고 있다. 그는 그것을 조물주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얻었다. "주께서 나를 지혜롭게 하시나이다." 모든 진정한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그의 계명에 의해서," "그의 증거에 의해서" 지혜를 얻었다. 이것들은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를 주며 모든 선한 행실을 위해 하나님의 사람을 양육케 한다."
1.다윗은 이것을 그의 영원한 동반자로 삼았다.
"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 하며 영원히 나의 마음과 나의 눈에 있나이다." 선한 사람은 그가 어디에 가든지 성서를 가지고 있다. 손에 가지고 가지 않더라도 그의 머리와 마음 속에 지니고 다닌다.
💡 119:98 주의 계명들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들이 나를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2.그는 이것들을 그의 생각의 즐거운 주제로 삼았다.
그것들은 학자들이 즐거움을 위한 명상의 대상으로 그들의 사상을 연구하는 것과 같은 "묵상'일 뿐만 아니라 사업가들이 올바른 경영에 관심하면서 자신들의 사업을 가장 좋은 방법으로 경영하기를 생각하는 것과 같이 그의 "묵상"이 되었다.
💡 119:99 내가 주의 증거들을 늘 읊조리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나으며
- 본문은 어떠한 방면의 일을 성취하는 데 경험어 많아 시인을 가르칠 수 있는 전문가들보다도 시인이 자신의 마옴의 소원을 성공적으로 이루고 형통하게 가꾸었음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시인이 그의 모든 스승보다 명철함이 승하게 된 이유
- ‘주의 증거들’을 늘 읊조렸기 때문.
- 시인의 묵상, 즉 그의 생각과 사고의 방향이 오로지 말씀을 향하고 었으며 말씀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3.그는 이것들을 그의 모든 행동을 다스리는 규범으로 삼았다.
"내가 주의 법도를 지키나이다. 즉 내가 모든 일에서 나의 의무를 인식하나이다." 지식을 증진하는 가장 좋은 길은 모든 진지한 거룩함에 있고 거기에만 풍부한 것이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의 뜻을 행한다면 그는 그리스도의 교훈을 알게 될 것이며," 그것을 더욱 더 잘 알게 될 것이다(요 7:17). 진리를 사랑하는 것은 진리의 빛을 준비하는 것이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다."
💡 119:100 주의 법도들을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나으니이다
- 앞선 98.99절에서 각각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한다고 고백한 시인은
- 이어지는 본문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함께 함과 묵상을 전제로 하면서 말씀을 층실히 준행함을 표현하고 있다.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나으니이다
- 이 지혜는 앞선 99절에 표현된 지혜와 같이 어떠한 일을 성취하는 단편적 기슬이나 전문 분야의 지식이 아니라 오랜 인생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달관한 자의 올바른 판단 능력과 예민한 통찰력 흑은 그 지식을 잘 활용하는 능력으로서의 지혜이다.
- 성경에서 이 나이든 자들은 모략이 있으며(겔 7:26), 옳은 결정으로 호히중을 인도하며(렘 26:17), 존경의 대상으로(레 19:32; 애 5:12) 표현된다. 그런데 시인은 자신의 명철함이 그들보다 승하다고 고백한다.
- ‘명철함’
- 인간의 모든 문제들을 본질로부터 파악하여 올바르게 판단하고 그에 근거하여 사람이 올바르게 살아가게 하는 지혜.
- 이는 본절 하반절에서 분명히 밝혀지는 바와 같이 말씀을 준행함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 즉 하나님의 말씀 준행이 인생을 앞서 살아간 ‘노인'들보다도 더 인생을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 노인이란 시간을 희생하여 지혜를 얻은 자들로 인간으로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자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은
⇒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완전하고 탁월한 지혜를 부여하는지를 강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Ⅱ. 그가 그 깨달음으로써 성취한 위대한 탁월성을 보자.
하나님의 계명을 연구하고 실천함으로써, 그리고 그것을 그의 규범으로 삼음으로써 그는 "그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는"(삼상 18:1) 법을 배웠다.
1.그는 그의 대적자들을 능가하였다.
하나님은 이러한 방법으로 그를 대적자들보다 더 현명하게 하여, 대항하는 그들의 계책을 좌절시키고 패배당하게 했다 .하늘의 지혜는 마침내 세속적인 정책에 대한 문제점에도 미친다. 우리는 계명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을 우리 편에 두고, 그를 우리 친구로 삼고 거기에서 그를 적으로 삼는 자들보다 확실히 지혜롭게 될 것이다. 우리는 계명을 지킴으로써 우리의 대적자들이 우리에게서 빼앗아 간 마음의 평화와 고요를 되찾을 수 있으며, 그들보다 더 현명하게 될 것이다.
2.그는 그의 "스승"을 능가하였다. 그리고 그들 모두보다 더 많은 것을 이해하였다.
그는 그의 행위를 책망하고 그에게 가르쳐 준 그의 스승들을 능가하고(그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그의 문제를 처리했고, 결국 그는 올바른 방법으로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처리했으나 그들은 좋지 않게 처리했다) 또한 모세의 의자에 앉아서 입에는 지혜를 담았으나 율법 연구를 소홀히하고 자기들의 영광과 수입만을 생각하고 종교의 형식만을 유지하려고 했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같은 그의 스승들을 능가하였다. 그러므로 성경을 연구했던 다윗은 그들보다 더욱 지혜롭게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어렸을 때의 스승들을 능가했을 것이다. 그는 그들이 쌓았던 기초 위에서 성서의 도움으로 잘 성장해서, 그들을 가르칠 수 있게 되었고, 그들 모두를 가르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이제 젖을 필요로 하는 유아가 아니라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게 되었다"(히 5:14). 실제적으로 스승들보다 승하도록 발전하는 것은 우리 스승에 대한 수치가 아니라 그들에 대한 영광이 된다. 우리는 묵상함으로써 자신들을 가르치며 '명철함이 우리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우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3.그는 "노인들"을 능가했다.
그 시대의 노인들은 물론(그는 젊었고, 엘리후와 같이 그들은 매우 늙었지만 그는 많은 연장자들보다 하나님의 율례를 지킴으로써 더욱 지혜를 쌓았다. 욥 32:7, 8), 그 이전 시대의 노인들보다도 승하였다. 그는 노인들의 금언을 인용하였지만(삼상 24:13) 하나님의 말씀은 그에게 전승에 의해서 배울 수 있는 것과 선조로부터 전해내려오는 모든 학식보다 더욱 많은 것을 이해하게 해 주었다. 간단히 말해서 씌어진 말씀은 교회의 박사와 교부들, 모든 스승과 노인들보다도 하늘로 인도하는 확실한 안내자가 된다. 그리고 거룩한 문서들은 모든 문서들보다 더 많은 지혜를 가르켜 준다.
●악한 길과 의의 길(시편 119:101)
1.죄의 행실을 피하려는 다윗의 관심이 나타나 있다. "내가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나이다. 악한 길은 내게서 옆으로 비켜섰나이다. 내가 유혹에 빠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나는 나 자신을 교정하고 뒤로 물러섰나이다." 그것이 비록 넓은 길이었고 푸르른 길이며 많은 사람들이 걷는 길이라고 할지라도 죄된 길이기 때문에 그것은 악한 길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길로부터 발을 금하고 그 길의 끝을 예측하고 있다. 그의 관심은 우주적인 것이었다. 그는 모든 악한 길을 멀리 했다. "나는 주의 입술의 말씀을 쫓아 스스로 삼가서 강포한 자의 길에 행치 아니하였나이다"(17:4)
2.의무의 길을 찾으려는 그의 관심이 있다.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하며 그것을 범하지 아니하나이다." 그가 죄를 삼간 것은
(1) 의식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그것을 그의 규범으로 삼았다는 증거가 되었다.
(2) 그것은 경건을 훈련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방편이었다. 왜냐하면 죄 아래 있거나 곁길로 갈 때는, 어떤 위로나 담대성을 가지고 그의 말씀을 지키기 위하여 거룩한 의무에서 하나님을 모실 수 없기 때문이다.
💡 119:101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하나님의 말씀을 고수함(시편 119:102)
1.여기에 다윗이 자기 종교에 충실한 모습이 나타나 있다. 그는 "주의 규례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 이외의 다른 규범을 선택하지 않았고 고의적으로 그 규범에서 이탈하지 않았다. 시험의 때에도 하나님의 법도를 끊임없이 고수하는 것은 우리의 성실에 대한 좋은 증거가 될 것이다.
2.그 불변성의 이유가 있다. "주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즉 그것은 내가 배운 하나님의 교훈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 가르침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사실을 만족스럽게 여깁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것을 고수합니다. 그러한 가르침을 받도록 해 주신 것은 내 마음에 하나님의 은총이었나이다."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을 배웠다. 왜냐하면 이해(명철)를 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배운 자들, 그리고 그들만이 그들이 배운 것들을 끝까지 지릴 것이다.
💡 119:102 주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내가 주의 규례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꿀보다 더 단 말씀(시편 119:103,104)
1.다윗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취한 놀라운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 그것은 "맛이 달아서 꿀보다 더 달았다."
영적인 맛과 내적인 향기와 하나님의 것에 속한 풍미가 있으며,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줄 수 없는 경험에 의해서 우리 자신들에게 그 증거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친히 그의 말씀을 들었다"(요 4:42). 이러한 성서의 맛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달고 매우 달며 어떤 육욕의 만족보다도, 심지어는 가장 맛있는 것들보다도 더 달다. 다윗은 하나님의 뜻과 은 발견에서 얻게 된 만족을 표현할 말이 없다는 듯이 말한다. 어떤 즐거움도 그것과 비교할 수 없다.
💡 119:103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2.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얻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이득과 도움이 있다.
(1) 그것은 그에게 좋은 머리를 주었다. '주의 법도로 인하여 내가 진리와 거짓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도록 명철케 되었나이다. 그리하여 내 자신의 삶의 행위에서 실수하지 않고 남을 권면하는 데에 실수하지 않게 되었나이다.
(2) 그것은 그에게 좋은 마음을 주었다. "그러므로 내가 진리를 이해하였기 때문에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나는 견고하게 그리로 다시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하였나이다."
[1] 죄의 길은 거짓된 길이다. 그것은 그 길을 따라 걷는 모든 자들을 기만하며 파멸시킬 것이다. 그것은 나쁜 길이지만 사람에게는 옳은 길처럼 보인다(잠 14:12).
[2] 죄의 길을 미워하며, 그것이 거짓된 길이기 때문에 미워하는 것이 모든 선한 사람의 성격이다. 그는 그 길에서 발을 금할 뿐만 아니라(101절) 그것을 "미워하며" 그것에 대한 혐오감을 가지며 그것을 무서워한다.
[3] 죄를 죄로서 미워하는 자들은 모든 죄를 미워하게 될 것이며, 모든 거짓된 길을 미워하게 될 것이며. 왜냐하면 모든 거짓된 길은 파멸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4]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많은 명철을 얻으면 얻을수록 죄에 대한 우리의 증오가 더욱 깊게 될 것이다("악을 떠남이 명철이라" 하였기 때문이다. 욥 28:28). 그리고 우리가 성서를 더욱 가까이 하면 할수록 시험에 대처할 수 있도록 잘 양육될 수 있다.
💡 119:104 주의 법도들로 말미암아 내가 명철하게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빛을 주시는 말씀(시편 119:105)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살펴 볼 수 있겠다.
1.하나님의 말씀의 본질과 그것을 세상에 주는 커다란 목적이 있다.
그것은 "등이요, 빛이다." 그것은 우리가 다른 방법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을 하나님과 우리 자신들에 대해서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 무엇이 어긋나는 것이며 위험스럽게 될 것인지를 보여 준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과업과 걸어야 할 길을 인도해 준다. 실로 세상은 그것 없이는 어두운 장소가 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곁에 두어야 할 등이며, 우리가 특별히 사용하기 위해 우리의 손에 들어야 할 등이며, 우리가 특별히 사용하기 위해 우리의 손에 들어야 할 등이다(잠 6:23). 계명은 성령의 기름으로 계속 불타오르는 등이다. 그것은 마치 성소에 있는 등과 같으며 이스라엘에게 비추어진 불기둥과 같다.
💡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2.우리에겐 그것을 유용하게 사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것은 "우리의 눈에 빛이며 두 눈을 즐겁게 해 주고, 우리의 머리를 무상으로 채울 뿐만 아니라 우리의 발과 우리의 길에 빛이라." 우리의 대화의 올바른 질서를 가르쳐 주며 우리가 걷는 일반적이고도 특수한 발걸음을 스스로 택하게 하여, 우리로 하여금 거짓된 길로 가지 못하게 하거나 올바른 길을 거짓된 발걸음으로 걷지 않게 한다. 우리가 진실로 그러한 등과 빛을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인식할 때 우리는 그것을 우리의 발과 우리의 길을 인도하는 안내자로 삼게 될 것이다.
●선한 의무와 맹세(시편 119:106)
1.다윗의 종교에 관해서 이해한 생각이 있다. 종교란 "하나님의 의로운 규례를 지키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은 그의 규례이며 무한한 지혜의 강화(講和)이다. 하나님의 규례는 의로운 규례이며 영원한 공평의 규범에 일치한다. 그것들을 주의 깊게 지키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2.스스로 종교적이 되기 위해 부과한 의무가 있다. 그는 의미 하나님의 교훈에 의해서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의 약속으로 자신에게 의무를 지웠다. "내가 맹세하고"(내가 여호와께 내 손을 들었고 내가 되돌아갈 수 없나이다) 앞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내가 그것을 지키리이다."
다음의 사실들을 주목하여 보자.
(1) 종교적이 되기 위하여 우리 자신들을 엄숙한 맹세에 결속시키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하다. 우리는 이 약속에 대한 진지성에 대해서 하나님께 간구하고 충성의 의무를 약속하며, 우리가 그것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저주받기가 쉽다는 것을 고백하면서, 신민으로써 여호와의 주권에 충성할 것을 맹세해야 하나다.
(2) 우리는 종종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맹세를 기억해야 하며, 우리가 맹세한 것을 상기해야 한다.
(3) 우리는 우리가 한 서약을 여호와께 주저하지 말고 수행해야 한다(정직한 자는 그의 말씀과 같이 선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결코 우리 자신의 마음에다 맹세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우리의 상처가 될 것이다.
💡119:106 주의 의로운 규례들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
●고난 중의 탄식(시편 119:107)
1.여기에 다윗이 처한 슬픈 상황에 대한 표현이 나타나 있다.
"나의 고난이 막심하다." 영적으로 고난을 받고 있다. 그는 그 상태를 특별히 비천하게 여기는 것 같다. 그는 큰 실망으로 고생했다. 그는 싸움을 하고 있지 아니할 때에도 두려움에 빠져 있었다. 이러한 경우는 많은 훌륭한 성도들도 종종 당하고 것이다. 그러므로 때때로 그러한 상황이 우리에게 닥치더라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2.그는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의지해야 했다.
그는 하나님의 은총을 간구했다. '여호와여 나를 소성케 하소서. 나를 살게 하시며 나를 기쁘게 하소서. 나의 활동에 더 큰 부지런함을 주시사 고난에서 나를 소성케 하소서. 나를 소성케 하소서. 즉 나를 고난에서 건지소서. 죽은 자로부터 생명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간구하며 거기에 그의 소원을 두고 희망을 정초시킨다.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 다윗은 하나님께 그의 약속을 행할 것을 결심한다(106절). 그러므로 그는 겸손한 담대함을 가지고 하나님께 그의 말씀을 자신에게 선하게 이루어 주실 것을 간구할 수 있었다.
💡 119:107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자유와 기쁨으로 드리는 예배(시편 119:108)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의 종교적 행사에 대해서 두 가지 간구할 것을 배우고 있다.
1.그 행사가 열납되기를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종교적으로 행하는 모든 일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다. 참석했든지 부재중이든지 여호와께 용납되어야 할 것이다. 다윗이 여기에서 용납되기를 진지하게 기도하는 것은 그의 지갑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의 "입"과 기도와 찬양의 "낙헌제"이다. "숫송아지를 대신한 입술"(호 14:2) "입술의 열매"(히 13:15), 이러한 것들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인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영적인 제사이다. 그것들은 "낙헌제"(자원하여 드리는 제물)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것들을 풍부하고 즐겁게 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받아 주시는 것은 기꺼이 드리는 마음인 것이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자유와 기쁨으로 이룩되면 될 수록 그것이 그에게는 더 큰 즐거움이 될 것이다.
2.그것들을 보조(補助)해 줄 것을 기도해야 한다.
"주의 규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우리는 그가 기뻐받으실 것이라고 생각할 만한 어떤 것을 하나님께 드릴 수 없다. 그러나 그가 기뻐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을 따라서 우리가 행할 수는 있다. 우리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택을 열심히 간구하듯이 우리 안에 작용할 하나님의 은총도 열심히 사모해야 할 것이다.
💡119:108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 입이 드리는 자원제물을 받으시고 주의 공의를 내게 가르치소서
●죽음과 삶의 사이에서 드리는 탄식(시편 119:109,110)
1.다윗은 그의 생명을 잃을 위험 속에 처했음을 여기에서 말한다.
그와 죽음 사이에는 한 발자국이 거리밖에 안 될 만큼 밀착되었다. "악인이 그를 해하려고 올무를 놓았기 때문이다." 사울이 여러 번 그렇게 행했다. 그의 경건심으로 해서 그를 미워했었기 때문이다. 그가 어느 곳에 있을지라도 그의 생명을 앗아가려는 계략을 발견하였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노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힘으로 달성할 수 없었던 것을 배반으로 에워싸기를 희망했다. 그리하여 다윗으로 하여금 "나의 생명이 항상 위경에 있다"고 말하게 하였다. 그것은 한 "인간"으로써 그에게 항상 있었다. 사실 우리 모두에게도 그렇다 우리가 어느 곳에 있을지라도 죽음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의 수중에 있는 것도 폭력에 의해서 쉽게 강탈되거나, 우리의 인생이 모래와 같아서 그것은 저절로 우리의 손가락을 빠져 흘러 내린다. 또 그는 "전쟁에 능한 사람"이요, 병사(兵士)였지만, 광야의 높은 곳에서 종종 생명이 위태로운 경우를 당했다. 특히 "하나님의 마음을 따르는 자"로서 미움을 당하고 박해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항상 죽음에 넘기우고"(고후 4:11) "하루 종일 죽임을 당했다."
2.다윗은 그의 신앙을 잃을 위험 속에는 있지 않았다.
그가 매 시간 이러한 위험 속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그의 의무에 충실하였다. 이러한 것들은 어떠한 것도 그를 요동치게 할 수 없었다.
(1) 왜냐하면 그는 "법을 잊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그것을 잘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그 자신의 안전에 대한 많은 걱정에서 그 생각과 마음의 여유를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는다. 그리고 그것을 그의 마음 속에서 전과 같이 청신하게 갖는다. 부하게 거하는 곳에서 그것은 "생명수의 샘"이 될 것이다.
(2) 그는 하나님의 법도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떠나지 않을 것을 희망으로 삼았다. 그는 많은 충격을 견디어 내었고 그의 존재의 기반을 지켰으며 지금까지 그를 도운 은총이 그를 죄에 빠지지 않게 앞으로도 그의 방황을 막아 주실 것을 확신했다.
💡 119:109 나의 생명이 항상 위기에 있사오나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나이다
💡 119:110 악인들이 나를 해하려고 올무를 놓았사오나 나는 주의 법도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영원히 즐거운 기업(시편 119:111,112)
시편기자는 여기에서 실로 한 이스라엘 사람답게 가장 열정적인 태도로 하나님의 말씀에 밀착하고, 그것에 의해 살고 죽을 것을 결심하고 있다.
Ⅰ. 그는 말씀 안에서 자기의 상속을 찾고, 거기에서 그의 행복을 추구하며 즐거워할 것을 결심한다.
"주의 증거(주의 말씀의 진리와 약속)로 내가 영원히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 그가 말씀 안에서 취한 현재의 즐거움은 말씀 안에 포함된 좋은 것들이 그의 생각에 가장 좋은 것들이며, 그가 마음에 정한 보화였다는 증거가 된다.
1.그는 하나님의 증거에서 영원한 행복을 기대하였다.
하나님께서 그와 더불어 이루신 계약은 영원한 계약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것을 "영원히 기업으로" 삼았다. 그가 "주의 증거는 나의 기업이라"고 말할 수 없었어도, "내가 주의 증거를 나의 기업을 위해 택했고 결코 이 생의 분깃으로 매혹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17:14, 15). 하나님의 증거는 양자의 영을 반은 모든 자에게 기업이 된다. "자녀라면 곧 후사라." 주의 증거는 "영원한 기업"이다. 그것은 세상의 기업이 결코 아니다(벧전 1:4). 주의 증거를 영원한 기업으로 받아들인 모든 성도들은 주의 증거에 매혹되며 그것에 의해 살아가며 이 세상에서 가난해져도 만족하며 살아 갈 수 있는 것이다.
2.그는 주의 말씀 안에서 현재의 만족을 즐겼다.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원히 나의 기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소유물에서 자기의 분깃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에서 구하는 것은 선한 사람의 마음을 필요로 한다.
💡 119:111 주의 증거들로 내가 영원히 나의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
Ⅱ. 그는 말씀에 의해서 자신을 다스리며, 거기에서 그의 법안을 취하기를 결심한다.
"내가 주의 율례를 행하려고 내 마음을 기울였나이다." 하나님의 증거의 축복들을 받으려고 하는 자들은 그의 율례의 속박 아래에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의무의 길에서만 위로를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의무의 길에서만 위로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의무는
1.완전한 승낙과 만족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내 마음을 기울였나이다. 내가 그것을 싫어하는 마음을 정복하였나이다." 선한 사람은 그의 마음을 그의 일에 기울인다. 그럴 때에 그 일은 잘 이뤄진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은혜로운 성향(性向)은 모든 복종의 훌륭한 원리이다.
2.끝까지 인내로써 수행되어야 한다. 그는 하나님의 율례를 항상, 모든 경우에, 일상 생활의 의무에서, 거룩한 발걸음의 부단한 과정에서 수행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이것을 싫증내지 않고 "끝까지" 수행하기를 원했다. 이것은 완전하게 여호와를 따르는 것이다.
💡 119:112 내가 주의 율례들을 영원히 행하려고 내 마음을 기울였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