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7월 23일 화요일 묵상구절 잠1:20-33 <지혜가 부른다>

Jeehyun 2024. 7. 23. 08:24

묵상구절

1:20 <지혜가 부른다>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1:21 시끄러운 길목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이르되

1:22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1:23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1:24 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폈으나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1:25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1:26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1:27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 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 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1:28 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하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1:29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1:30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니라

1:31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1:32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1:33 오직 내 말을 듣는 자는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안전하리라


매튜헨리/옥스퍼드

서론

 


지혜에 대한 주목을 촉구(잠언 1:20-33)

솔로몬은 이제까지 사탄의 유혹에 귀를 기울인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 주었는데 이제 여기에서는 하나님이 부르심을 경청하지 않는 것은 얼마나 위험스런 일인지를 말해 주고 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경솔히 여기다가는 영원히 그것을 후회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다음 사실들을 살펴 보자.

Ⅰ.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통해 우리를 부르시는가? - 즉 "지혜를 통하여." "밖에서 부르"는 것은 바로 "지혜"이다.

이 단어는 "지혜들"(wisdoms)이라고 복수형으로 표기돼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는 무한하신 지혜가 있음과 아울러 "온갖 지혜"가 있는 까닭이다(엡 3:10). 하나님께서는 온갖 종류의 지혜로써 인간들에게 말씀하시는데, 하나님의 모든 의지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그의 모든 말씀에도 권고가 있으시다.


 💡 1:20 <지혜가 부른다>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1.인간의 오성은 지혜이며, 본성이 빛이요 법이며, 이성의 능력이요 기능이며, 양심의 직분이다(욥 38:36).

이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말씀하시며 타이르신다.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인간은 어디로 가나 자기 뒤에서 "이것이 길이다"라고 말하는 목소리를 듣는다. 양심의 소리는 하나님의 음성이며, 그것은 항상 작은 소리로 작은 소리로 말하는 것만은 아니고 때로 그것은 부르짖기도 한다.

2.시민의 정부는 지혜이다.

지혜는 하나님의 율례이며 장관들은 그의 대리인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통하여 "오만한 자에게 오만히 행치 말라"(혹은 "우매자에게 우매하게 행치 말라"). 말씀하셨던 것이다(시 75:4). 법정이 베풀어지던 "성문 어귀"에서 국가의 지혜인 재판관들이 하님의 이름으로 악인들을 불러 회개케 하며 개심시킨다.

3.하나님의 계시는 지혜이다.

계시의 모든 훈령과 법은 지혜 그 자체와 꼭같이 지혜롭다. 하나님께서는 기록된 말씀에 의하여서나, 우리에게 축복과 저주를 제시하는 모세 율법에 의해서, 또 지식을 담고 있는 제사장의 입술로나 자기 종된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리고 이 말씀의 모든 사역자들을 통하여 자기 마음을 죄인들에게 선언하시고 길거리나 사법 재판소에서 소리 높여 선포하듯 명백히 그들에게 경고를 하신다. 하나님은 자기 말씀 안에서 사건을 상의하실 뿐만 아니라 인생들과도 그 일에 대해 토론하신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사 1:18)

4.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지혜"이시고, 또 "지혜들"이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숨겨져 있으며," 그는 모든 신적 계시의 중심이시고 "본질적 지혜"이실 뿐만 아니라 "영원하신 말씀"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영원하신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또 그에게 모든 심판을 맡기셨다. 그러므로 죄인을 위해 변론도 하고 그들에게 판결도 하시는 분은 바로 그리스도이시다. 그는 자기 자신을 "지혜"로 칭하신다(눅 7:35)


Ⅱ. 그는 우리를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부르시는가?


💡 1:20 <지혜가 부른다>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1:21 시끄러운 길목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이르되


1.매우 공공연하게.

그는 말씀의 혜택을 받으려 하는 자는 누구든 환영하시고 또 모두가 다 그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관심을 가지셨으며, 귀를 가진 자는 누구든지 들을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부르셨다. 지혜의 규칙은 "바깥 길거리에서" 공포된다. 비단 학교나 제왕의 궁전에서만 지혜의 비결이 전달되는 게 아니라 "훤화하는 길 머리에서," "성문 어귀와 성중"을 오가는 갑남을녀에게도 선포된다. 이것은 고기가 많은 곳에서는 몇 마리라도 잡히라는 바램으로 편안히 던지는 복음의 그물이다. 이 일은 우리 주 예수님에게서 성취되었다. 그는 성전이나 사람이 운집한 곳에서 공공연히 가르치셨고, "은밀히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으셨으며"(요 18:20), 그의 사역자들에게도 "집위에서" 그의 복음을 "전파하라"고 당부하셨다(마 10:27). "나는 은밀히 말하지 아니하였노라"(사 45:19).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지혜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에는 말이나 언어도 없다." 진리는 구석진 곳을 찾지 않으며, 미덕은 미덕 자체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법이다.

2.매우 애처롭게 지혜는 "소리 치며," 간절히 바라는 자처럼 또 다시 "소리 지르고 있다."

"예수께서는 서서 부르셨다."

지혜는 "그 소리를 발하며," 가능한 대로 분명하게 그리고 애정이 뚝뚝 떨어지게 "자기 말을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듣고 귀 기울이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Ⅲ.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부르심은 무엇인가?

1.그는 죄인들에게 그들의 어리석음과 그들이 우매를 완고히 고집하고 있음을 꾸짖으신다(22절).

여기에서 다음 사실을 살펴 보자.

(1) 지혜가 여기서 꾸짖고 충고하는 대상은 누구인가?

일반적으로 그들은 "어리석은" 범주에 드는 자들로서 괄시를 받을 만한 자들이다. 또 그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는" 그런 부류이어서 전혀 가망이 없는 자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거의 희망이 없다고 여기는 자들에게 대해서 조차 어떻게 든 방법을 강구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작용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부르는 대상은 세 부류의 사람들이다.

[1] "어리석음을 좋아 하는 어리석은 자들."

죄는 어리석음이며 죄인들은 어리석은 자들이다. 그들은 어리석게 행동하며 매우 우매한 짓을 저지른다. 그리고 그들의 상태는 매우 악화된 것으로서 그들은 어리석음을 사랑하고 선악에 대한 자기들의 우둔한 견해를 좋아하며, 하나님의 길에 대한 저희의 어리석은 편견을 애호한다. 그들이 능사로 알고 하는 것은 곧 넋빠진 일을 행하는 것이며, 기껏 잘한다고 하는 것은 자기 기만 속에서 희희낙낙하고 저희 악함 속에서 자화자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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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거만을 기뻐하는 거만한 자들."

그들은 자기 주변 사람들에게 큰 소리치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는 교만한 사람들이며, 모든 인류를 희롱하고 자기 구역에 들어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놀려대는 실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특히 여기서 지목하는 것은 신앙 생활을 비웃는 무리들이다. 이들은 가장 죄인들로서 그리스도의 진리와 법에 승복하는 일을 우습게 알고 그의 말씀의 견책과 권면에 코웃음치며, 신성하고 진지한 모든 일을 무시해 버리는 데에서 자부심을 느끼는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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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식을 미워하는 미련한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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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한 자 이외에 지식을 미워하는 자는 없다. 경건한 신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만이 오직 종교의 적이다. 그리고 우매자들 중 가장 못된 자들은 훈계받고 개선되기를 싫어하는 자들이며 진지한 경건에 대해 고질적 반감을 품고 있는 자들이다.


💡 1:22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2) 책망은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가?"

"너희가 어느 때까지 그러하겠느냐?" 이것은 하늘이 하나님께서 죄인들의 회심과 개선을 바라시며 그들의 파멸을 원치 않으셨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또 이 말씀은 하나님이 그들이 고집과 지체함을 즐거워하시지 않으시며, 은혜를 베푸시게 될 때를 기다리시고 이 사건을 그들과 기꺼이 변론하려 하신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2.그는 그들에게 회개하여 지혜자가 되라고 인도한다(23절).

(1) 그 교훈은 간명하다.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만약 우리가 악한 것으로부터 선한 것에로 돌이키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책망을 올바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그 책망은 바로 돌이키라는 목적을 위해서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돌이키라, 즉 너의 정상적 마음으로 돌아오라.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네 의무를 돌아서며, 돌아서서 생명을 얻으라.


 💡1:23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2) 주어지는 약속들은 매우 고무적이다.

어리석음을 좋아하는 자들은 자신이 자기 자신의 마음과 길을 변화시키기에 전혀 도덕적 무능력 상태하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능력으로써는 도저히 돌이킬 수 없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신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나의 신(영)을 부어 주리라. 너희는 너희가 할 수 있는 일에 착수하여라. 그리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네안에서 나와 함께 작용하실 것이고 너로 하여금 선한 의지와 선한 행위를 아울러 소유할 수 있도록 역사하실 것이다. 만약 이 은혜가 없다면 너는 능히 이것을 행할 수 없으리라."

네 스스로 도우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너를 도와 주실 것이다. "네 마른 손을 내보이라." 그리하면 그리스도께서 그 손을 강하게 하며 고쳐 주실 것이다.

[1] 이 은혜이 공급자는 성령이시며, 또 그렇게 해 주실 것이 약속되어 있다.

"내가 나의 신을 너희에게 기름처럼, 물처럼 부어 주리라." 너희는 성령을 충만 충만히 받을 것이며 생수의 강이 흘러날 것이다(요 7:38). 우리의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구하는 자들마다 성령을 주실 것이다."

[2] 이 은혜의 수단은 말씀이다.

우리가 그것을 올바로 받아 들이기만 한다면 그것은 우리를 돌이키게 해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약속이 주어진다. "내가 나의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해 줄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이 너희에게 알려지도록 하겠으며, 너희가 그것을 이해하도록 해 주겠다." 진실된 참회에는 특별하신 은혜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은혜는 그것을 정직히 구하고 그것에 승복하는 이들에게는 누구를 막론하고 주어질 것이다.

3.그는 이러한 모든 은혜의 수단과 방법에 대해 계속하여 완강히 버티는 자들의 운명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규모가 크고 매우 무서운 것이다(24-32절).

죄인들을 돌아오라고 불렀던 지혜는 그 부름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 살펴 보기 위해 잠시 숨을 돌이켜서 "귀를 기울이고 듣는다." "그러나 그들이 정직히 말하지 않으므로"(렘 8:6) 지혜는 그들에게 종국에 가면 어떻게 될지를 계속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1) 죄악이 상세하게 논술되는데, 그것은 극히 노엽게 하는 죄들이다.

저 큰 날에 주제넘은 죄인들에게 내릴 심판이 어떠한 것인지 살펴 본다며 그들이 그와 같은 일을 당해야 마땅하며 여호와께서는 그 일에 있어서도 의로우시다고 말할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그리스도와 그의 은혜를 거부하고, 그의 복음의 말씀들을 거절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들은 "하나님이 율법"의 저주와 "죄의 율법"의 지배로부터 그들을 해방시켜 주는 것이었는데도 그들은 마다 하였던 것이다.


 💡 1:24 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폈으나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1]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부르시고 그들에게 위험을 경고해 주셨다.

그는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기 위해 "자기 손을 펼치셨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비참한 상태에서 구출해 내시려고 "자기 손을 내미셨으나" 그들은 거절하였고, 아무도 돌아보지 않고 주목하지도 않았다. 또 어떤 자들은 악의에 차 있었고 고의적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의사를 듣지 않을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단단히 부인하고 배격하였던 것이다(24절). 그들은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좋아하셨으며 지혜있는 자가 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을 회복시키려고 취하신 모든 방법에 대하여 한사코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에게 부여하신 자비 속에 "그의 손을 펴셨다."그러나 그들이 자기들이 잘못을 고쳐 주려는 그 손의 역사를 원하지 않으니 모든 것은 허사였던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 손의 운행을 그 입의 선포와 마찬가지로 간주하였고 그의 입의 선언을 거부하듯 이도 배척하였다.

[2]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책망하시고 그들에게 충고하셨다.

그들이 잘못 행동한 데 대해 견책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더 잘 행할 수 있도록 권면도 하셨으나(이들은 "교훈의 책망"이요 사랑과 호의의 표징이었다) 그들은 "그의 모든 교훈을"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멸시하였다." 마치 그에게 꾸중받는 일은 자기들의 체면에 손상에 가고 자기들답지 않는 일이라도 되며 자기들은 책망받을 만한 일이라곤 도무지 행한 기억도 없다는 듯이 "그의 책망을 받지 않았다"(25절). 이 말씀은 30절에도 반복되어 있다. "그들은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권면을 멸시하며 배척하였다. 그들은 책망을 비난이라고 불며 그것을 모욕으로 간주하였다.(렘 6:10). 아니, 그들은 내 모든 책망을 농담이라도 되는 듯이, 주목할 만한 가치도 없는 말인 듯이 모두 멸시하였다."

책망과 선한 교훈에 귀머거리가 되는 자들은 멸망의 낙인이 찍힌 자들이 되는 것이다.


💡 1:25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3] 그들은 정당한 이성이 지배와 경건한 신앙에 복종하도록 권면을 받았으나, 이러한 것에 모두 반감을 품었다.

  • 첫째, 그들은 지식을 미워하였기 때문에(29절) 이성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 또한 그들이 신적 진리의 빛을 증오하였던 까닭은 그 빛이 저희의 악한 행위를 그들에게 들어내 주기 때문이다(요 3:20). 그들은 자기들이 알면 견딜 도리가 없는 것을 듣기 싫어하였던 것이다.
  • 둘째, 그들은 경건한 신앙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고," "저희 마음과 저희 눈"에 보기 좋은 대로 행하기를 택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들 앞에 항상 하나님을 두도록" 요구받았으나 그들은 오히려 그를 내쫒고 여호와의 경외를 "자기들 뒤에"두려고 하였다.
    "여호와의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않는 자들은 결국 자기들에게 "지식이 없다"는 것을 말 해주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

(2) 선고가 내려지는데 그것은 분명한 파멸의 언도이다.

하나님의 통치에 승복하려 하지 않는 자들은 정녕 그의 진노하심과 저주 아래에서 멸망을 당하고 말 것이며, 복음 그 자체로도 그들을 구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비로운 은혜가 자기들 앞에 제공되었을 때 그것을 받으려 하지 않았으므로, 그들이 그의 공의의 희생물로 전락함은 당연하다(잠 29:1). 여기에 나오는 위협적인 경고는 저 큰 날의 심판에 가서 완전히 성취될 것이며, 참회하지 않는 자들은 그 때에 영원한 불행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현재의 심판에서도 다소 그 전조를 보이고 있다.

[1] 목하 죄인들은 평온무사한 가운데 번영을 누리고 있다. 그들은 평안한 생활을 누리며 슬픔이나 근심같은 것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보라!

  • 첫째, 그들에게 "재앙이 이를 것이다"(26절). 병이 찾아올 것이니 그 질병들은 바로 그들이 죽음의 구속 영장이나 명부의 사자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그 밖에 마음이나 재산에도 여러 가지 재난이 덮쳐 하나님을 멀리 둔 그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줄 것이다.

 💡 1:26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 둘째, 그들의 재앙은 그들에게 큰 공포를 가져다 줄 것이다. 불안이그들을 사로잡아 그들은 일이 설상가상으로 악화되지 않을까 걱정하게 될 것이다. 심판의 공의가 널리 발효될 때 "시온에 있는 죄인들은 두려워하며, 무서움이 사특한 자들을 놀라게 하리라." 죽음은 그들에게 "왕처럼 두려움"을 줄 것이다(욥 15:21 이하;18:11 이하). 이러한 불안이 그들을 끊임없이 고문할 것이다.
  • 셋째, 그들이 두려워하는 대로 두려움이 그들에게 닥칠 것이다. 그들에게 "두려움이 임할 것이다"(그들이 불안해 하던 일들이 그들에게 일어날 것이다). 그 두려움은 거대한 힘을 지닌 홍수가 자기 앞에 있는 모든 것을 휩쓸 듯이 "광풍처럼 임하리라." 그것은 그들의 "멸망"이 될 것이며, 그들의 전체적이고도 최종적 멸망이 될 것이다. 그것은 "폭풍처럼" 임할 것이니 그것은 모든 겨를 갑작스럽고도 강하게 싹 쓸어가 버릴 것이다.
    여호와 경외하기를 용납하지 않는 자들은 자기 자신을 다른 모든 공포에 무방비상태로 노출시킨다. 그리고 그러한 그들의 두려움은 타당한 것이다.
  • 넷째, 그렇게 되면 그들의 두려움은 절망으로 변할 것이다.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라"(27절). 그들은 자기들이 무서워하던 함정에 떨어졌고 탈출할 길도 찾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사을은 "고통이 내게 임하였다(들었다)"(삼하 1:9)고 절규한다. 그리고 지옥에는 괴로움으로 "슬피 울며 이를 갊고 있고," 죄인의 "영혼에게는 환란과 곤고,"즉 "의로우신 하나님의 진노와 분노"의 열매가 있다(롬 2:8, 9)

💡 1:27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 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 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2] 지금은 하나님께서 저희의 어리석음을 불쌍히 여기시지만 그 때에는 "그들이 재앙을 마날 때에 웃으실" 것이다(26절).

"너희가 나의 교훈을 비웃었던 것같이 나도 너희의 곤란을 비웃을 것이다."

경건한 신앙을 조소하는 자들은 그것으로 인하여 온 세상 앞에서 스스로 조소당하게 될 것이다. 의인들도 "저희를 비웃"을 것이다(시 52:6).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고 웃으시는 까닭이다. 이것은 저희가 하나님의 동정으로부터 영원히 차단되어 버릴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자비에 대항하여 너무나 오랫동안 죄를 지었으므로, 이제는 그 죄 때문에 자비를 아주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의 눈이 보아도 아까워하지 않으실 것이며 긍휼히 여기지도 않으실 것이다."

비록 저들이 "돌이켜서 살게"되기를 원하셨지만, 이제 그의 공의는 그들의 멸망으로 빛나실 것이며 그는 저희 파멸을 기뻐하시게 될 것이다. "아! 내가 내 대적들에게서 나를 편하게 하리라."

[3] 지금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즉시 들으시며 그들이 자기에게 구하려 하기만 한다면 자비로써 그들을 기꺼이 맞으신다. 그러나 그 때에는 문이 닫혀질 것이며 소리쳐도 소용없게 될 것이다(28절).

"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주여, 주여, 우리에게 문을 열어 주소서 라고. 그러나 그때는 너무 늦다. 그 때에는 그들이 거절하고 경시하는 바로 그 자비에게 은혜입기를 사모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대답하지 않겠노라. 이는 내가 부를 때 그들이 대답하려 하지 않은 까닭이다." 그 때의 모든 대답은 한결같이 "내게서 떠나라.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가 될 것이다. 이것은 심지어 사울의 경우에서처럼 이 생에서도 몇몇 사람이 당하는 일이다. 하나님은 "우림"이나 "선지자"로써도 사울에게 응답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그러나 보통 생명이 있는 동안엔 기도할 수 있는 여지와 행운을 빌 소망이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마지막 심판 때의 가차없으신 공의를 언급하는 게 틀림 없다. 그 때에는 하나님을 멸시하던 자들이 "그를 이른 아침에(즉 부지런히, 열심히) 찾아도" 허사일 것이다. "그들은" 그를 만날 만한 때에는 그를 찾지 않았으므로(사 55:6) "그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 지옥에 있는 부자는 구걸하였지만 거절당하였던 것이다.


 💡 1:28 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하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1:29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1:30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니라


[4] 지금은 그들이 자기 자신의 길에 열중하며 자신의 꾀를 좋아하고 있다. 그러나 그 때에는 자업자득("제가 담근 술은 제가 마셔야 한다")이란 격언대로 그들은 자기들이 추구하던 것을 충분히 가지게 될 것이다(31절). 즉 그들은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이다." 그들은 노임은 그들이 한 일 그대로일 것이며 "그들의 운명"은 자신이 선택한 대로 "될 것이다"(갈 6:7, 8).

여기에서 다음 사실에 주목하자.

  • 첫째, 죄는 멸망을 초래하는 자연적 경향성이 있다(약 1:15). 죄인들이 만일 오직 자기 행위의 열매"만을 "먹게"된다면 그들이 비참하게 될 것은 확실하다.
  • 둘째, 망하는 자들은 자기 자신을 탓해야 하며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핑계를 돌릴 수 없다. 그것은 "그들 자신의 꾀"에서 초래된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계책을 자만하였는데 이제 그 결과도 자랑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유혹(혹은 미혹)을 택하여 주신다"(사 66:4)

 💡 1:31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5] 지금은 그들의 자신들의 세속적인 재산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그 때에는 그것이 저희 파멸을 악화시킬 뿐인 것이다(32절).

  • 첫째, 지금은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외면하고 신앙 생활의 제한 조항을 회피할 수 있다는 것을 자랑하고 있지만, 바로 그 일이 그들을 멸망시키게 되며 그것에 대한 기억이 그들의 마음을 찢어 놓을 것이다.
  • 둘째, 그들은 지금 자신의 안보와 육욕성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킬 것이다"(난외주는 그렇게 해독한다). 그들이 보다 안전하게 느끼게 되면 될 수록 그들의 멸망은 보다 확실해질 것이며 보다 더 두려울 것이다. 즉 "미련한 자의 안일 (형통)은 자기를 멸망시키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교만심으로 자신의 번영한 모습을 뻐기고, 자신의 마음을 세상에 집착하고, 자신에게 욕망의 기름을 공급하고, 자신의 악의 길에서 마음을 더욱 강팍하게 함으로 인하여 그들은 멸망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

 💡 1:32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4.그는 지혜의 훈계에 승복하는 모든 자들은 안전하고 행복하다는 것을 확신함으로써 끝을 맺고 있다(33절). "오직 나를 듣고, 나의 다스림을 받는 자는 안연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으리라."

(1) "그는 안전할 것이다. 그는 하늘의 특별하신 보호 아래서 살게 될 것이다. 그래서 어떤 것도 그에게 실질적 위해를 가하지는 못할 것이다."

(2) "그는 편안한 것이며 위험에 대한 어떤 불안함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재앙으로부터 안전할 뿐만 아니라 재앙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는 편안할 것이다." "비록 땅이 옮겨진다 하더라도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우리는 악으로부터 안전하고 재앙의 두려움으로부터 편안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신앙이 언제나 우리를 지배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상담자가 되게 하라. 그것이 바로 이 세상에서 "안연히 살게" 되고, 저 세상에서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편안"하게 되는 길이다.


💡 1:33 오직 내 말을 듣는 자는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안전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