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사사기 19, 사도행전 23, 예레미야 33, 시편 3, 4
묵상구절
12:1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거니와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
12:2 선인은 여호와께 은총을 받으려니와 악을 꾀하는 자는 정죄하심을 받으리라
12:3 사람이 악으로서 굳게 서지 못하거니와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아니하느니라
12:4 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의 뼈가 썩음 같게 하느니라
12:5 의인의 생각은 정직하여도 악인의 도모는 속임이니라
12:6 악인의 말은 사람을 엿보아 피를 흘리자 하는 것이거니와 정직한 자의 입은 사람을 구원하느니라
12:7 악인은 엎드러져서 소멸되려니와 의인의 집은 서 있으리라
12:8 사람은 그 지혜대로 칭찬을 받으려니와 마음이 굽은 자는 멸시를 받으리라
12:9 비천히 여김을 받을지라도 종을 부리는 자는 스스로 높은 체하고도 음식이 핍절한 자보다 나으니라
12:10 의인은 자기의 가축의 생명을 돌보나 악인의 긍휼은 잔인이니라
12:11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거니와 방탕한 것을 따르는 자는 지혜가 없느니라
12:12 악인은 불의의 이익을 탐하나 의인은 그 뿌리로 말미암아 결실하느니라
12:13 악인은 입술의 허물로 말미암아 그물에 걸려도 의인은 환난에서 벗어나느니라
12:14 사람은 입의 열매로 말미암아 복록에 족하며 그 손이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
12:15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
12:16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12:17 진리를 말하는 자는 의를 나타내어도 거짓 증인은 속이는 말을 하느니라
12:18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
12:19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잠시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
12:20 악을 꾀하는 자의 마음에는 속임이 있고 화평을 의논하는 자에게는 희락이 있느니라
12:21 의인에게는 어떤 재앙도 임하지 아니하려니와 악인에게는 앙화가 가득하리라
12:22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하게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
12:23 슬기로운 자는 지식을 감추어도 미련한 자의 마음은 미련한 것을 전파하느니라
12:24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
12:25 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하게 되나 선한 말은 그것을 즐겁게 하느니라
12:26 의인은 그 이웃의 인도자가 되나 악인의 소행은 자신을 미혹하느니라
12:27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하나니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니라
12:28 공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나니 그 길에는 사망이 없느니라
매튜헨리 주석
●훈계와 징계(잠언 12:1)
여기에서는 우리가 은혜의 수단에 영향을 받고 있는지를 탐문해 봄으로써 은혜를 소유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시험해 보라고 가르쳐 주고 있다.
- 은혜와 사람을 가진 자들이라면 자기들에게 주어지는 모든 훈계, 즉 그것이 교훈이나 권고나 책망을 통해 주어진 것이든, 하나님의 말씀과 섭리를 통해 주어진 것이든 모든 훈계를 기뻐할 것이다. 그들은 선한 교육을 귀하게 생각할 것이며, 엄하고 근신을 요구하는 규율 아래 있는 것을 고역이라 여기지 아니하고 행복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충실한 목회를 사랑하고 그것을 귀하게 여기며 즐겨 그를 듣는 자들은 자기들이 "지식을 좋아한다는" 것을 나타내 주는 셈이 된다.
- 자기 잘못을 지적해 주면 모욕당하는 것으로 여기고 자기 본분을 상기시켜 주면 자기 자유에 대해 부담을 지우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은 스스로 은혜없는 자임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몰상식을 폭로하는 셈이 된다.
"징계를 싫어 하는 자는" 어리석은 것에 그치지 않고 "짐승과 같아서" 지혜가 없는 말이나 노새와 다름 없으며 매를 보고 발길질 하는 소와 매한가지이다. 본문의 "짐승같은 자"란 말씀은 무질서한 가정과 문란한 사회에서 살기를 원하는 자들을 두고 하는 말씀이다. 그런 가정이나 사회에서는 그들이 굴레벗은 망아지처럼 아무속박을 받지 않고 거침없이 행동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양심의 확신을 질식시키며 진리를 말해 주는 자들을 원수로 여기는 자들이다.
●선인과 악인에 대한 은총과 정리(잠언 12:2)
- 우리는 하나님과 하며 그러한 대로 실존하고 있다.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자는 비록 세상이 자기들을 빈축하며 사람들에게서는 거의 애고를 받지 못하더라도 행복하고 참으로 행복하며 영원히 복된 자이다. 하나님의 은총 안에는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은 모든 선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하여 "그에게 정죄하심을 받는"자들은 아무리 인간들한테서 박수 갈채와 환호를 받는 자라고하더라도 비참한 자이다.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서 정되받는 이들을 둘째 사망으로 정죄하시기 때문이다.
- 우리가 사람들과 함께 있고 이 세상에서 교제하듯이 하나님과도 함께 있다.
우리의 천부께서는 자기 자녀를 판단하심에 있어 그들 사이의 행동에 매우 많이 의존하신다. 그러므로 긍휼히 여기며 자선을 좋아하고 선을 행하는 "선인은" 자기 기도로써 "여호와께 은총을 받으리라." 그러나 자기 이웃을 해하려고 악을 궁리하는 해로운 인간은 "여호와께서" 자기 나라에 발들여 놓은 가치도 없는 자로서 "정죄하실" 것이다.
●의인과 악인의 견고함(잠언 12:3)
- 사람이 흉계로 출세할 수 있긴 하지만 그런 옳지 못한 계교로써는 기반을 든든히 할 수도 없고 안전을 도모할 수도 없다.
그들의 큰 재산을 회득할 수도 있으나 영속적인 그런 재산은 얻을 수가 없다. "사람이 악으로 굳게 서지 못하느니라." 악인은 악으로써 높은 곳에 오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높은 곳은 미끌어지기 쉬운 곳이다(시 73:18). 죄를 수단으로 하여 쌓아올린 번영은 모래 위에 세운 것과 같으며, 그 사실은 곧 나타날 것이다. - 착한 사람은 이 세상 것을 조금밖에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조그마한 것은 오래 지속할 것이며, 정직하게 얻은 것은 오래갈 것이다. 비록 가지는 휜다고 하더라도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아니하느니라."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자들은 굳게 착근(着根)하고 있어서 움싹달싹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위로와 행복은 그리스도 안에서 너무나 깊이 뿌리 박고 있으므로 결코 뽑히지 않는 것이다.
●어진 여인과 욕된 여인(잠언 12:4)
- 훌륭한 아내를 얻는 복을 받은 자는 왕위에라도 오른 듯이 마냥 즐겁기만 한데 이는 그런 아내가 자기에게는 "면류관"에 못지 않기 때문이다. "어진 여인"은 경건하고 분별이 있으며, 재간 많고 근면하여 가족을 위해 활동적이며 가사를 거뜬히 돌본다. 모든 점에서 자기 의무를 본분으로 삼는가 하면 활달한 여장부여서 소란을 피우지 않고도 십자가를 가질 수 있다. 그런 현모양처는 남편을 자기 머리로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그녀는 남편에게 "면류관"이 된다. "면류관"이 장식물인 것같이 남편의 영예와 존귀가 될 뿐만 아니라 "면류관"이 권세의 상징이듯 자기 가정 안에서 남편의 권위를 세워주며 유지시켜 주기까지 한다. 그 여인은 남편에게 순종하고 신실하며, 자기가 본을 보임으로써 자녀와 종들도 그렇게 되도록 가르친다.
- 악처로 골치 썩이는 자는 마치 똥더미 위에 올라 앉은 듯이 불행하기만 하다. 악처는 "그 지아비로 뼈가 썩음 같게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불치의 고질병이다. 게다가 그 여인은 "지아비에게 욕을 끼치기"까지 한다. 미련하고 게으르며 낭비벽이 심하고 들뜨기 쉽고 성질 사나우며 입버릇이 고약한 아내는 남편의 위안이 되기는커녕 명예조차 망쳐 놓고 만다. 그가 밖에 나가면 그의 머리가 푹 숙여지고 만다. 그의 아내가 저지른 잘못이 자신의 치욕으로 변하는 까닭이다. 그렇다고 집 속에만 들여 박혀도 그의 마음은 우울하기만 하다. 그는 계속 불안하다. 그것은 심령을 좁먹는 고질병인 것이다.
●의인과 악인의 생각(잠언 12:5)
- 하나님의 말씀은 심중의 생각과 의도를 구별해 내며 그것을 판단하신다. 우리가 만일 생각은 자유라고 상상한다면 잘못이다. 생각조차 하나님의 인식하에 있으므로 하나님의 명령 하에 있는 것이다.
- 우리는 자기 심중의 생각과 의도를 감시하는 관찰자가 되어야 하며 그로써 자신을 심판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생각은 영혼의 장자이며 영혼의 형상은 대부분 가식없이 적나라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악한 꾀와 의도를 보면 그가 악인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듯이 올바른 생각은 의인에 대한 최선의 증명이 된다. 착한 사람도 자기 마음 속에 그릇된 상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그 못된 상상이 악한 계획과 결심으로 영글도록 방임하거나 계속 품고 있지는 않는 것이다.
- 말이나 행동이 엉뚱하게 나오거나 시기에 맞지 않으며 적어도 오해를 받는다고 해도 그 의도가 정직하고 그 생각만 올바로 가진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명예가 된다. 그러나 늘 함정 파놓은 거짓말을 하고 거짓되게 행동하며, 하나부터 열까지 다 계산된 술책과 책략으로 속이며 행동한다는 것은 인간의 수치가 된다.
●의인과 악인의 말(잠언 12:6)
본문 5절에서는 악인과 의인의 생각을 비교하였는데 여기에서는 그들의 "말"을 대조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말이란 곧 마음에 있는 대로 나오는 것이다.
- 악인은 제 이웃에게 해로운 말을 한다. "엿보아 피를 흘리자"고 말하는 자는 참으로 악한 자이다. 그들의 혀는 저희에게 방해되는 자와 저희가 미워하고 핍박하는 선인에게는 칼이나 다름없다(눅 20:20, 21 참조).
- 그러나 선인은 자기 이웃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한다. "정직한 자의 입"은 억압받는 자의 송사를 위해 즉시 열리며(잠 31:8), 그들을 위해 변호하고 증언하여서 그들을 구원하며, 특히 악인이 "엿보아 피를 흘리고자"한 자들을 구출한다. 사람은 때때로 선한 말 한 마디로 매우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 의인과 악인의 견고함(잠언 12:7)
우리는 건과 같이(3절과 10장 25,30절) 다음의 가르침을 받는다.
- "악인의 기뻐함은 잠간이라"는 것. 그들은 잠시 동안 높임을 받을 수 있으나 얼마 안 있어 "엎드려져서 소멸되어" 버린다. 그들의 환란은 그들의 전복을 증명해 주며, 크게 뽐내던 자들이 사라지고 그들이 있던 장소도 그들을 더 이상 알지 못한다. "악인을 돌아 보라. 그들은 소멸되었느니라." 그들은 너무나 미끌지기 쉬운 장소에 서 있기 때문에 마치 소돔의 사과처럼 극히 작은 환란에 접하기만 해도 무너져 내린다. 소돔의 사과는 겉은 아름다우나 손이 닿기만 하면 먼지로 화하고 말았던 것이다(사해 근처에 나던 사과로 이 같은 전설이 전해 내려옴:역주).
- 의인의 번영은 그 기초가 튼튼하여 오래 간다는 것. 죽음이 그들을 옮겨 가겠지만 "그 집은 서 있을" 것이며 그 가족은 존속하고 정직한 자의 자손은 복될 것이다.
●칭찬과 멸시(잠언 12:8)
본문은 우리에게 훌륭한 이름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를 말해 주고 있다. 명성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주 중시하고 크게 집착하는 것이다. 이게 다음 사실은 확실한 것이다.
- 최선의 명성이란 미덕과 진실된 경건과 사려깊은 처세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파단에 준하여 지혜롭고 선한 모든 것으로 인하여 "칭찬을 받으리라." 그것은 확실히 "진리에 의해" 내리는 판단이며, 사람의 재물이나 지위나 재주나 간교함을 따라 내리는 칭찬이 아니라 "그의 지혜대로," 그의 정직한 계획과 그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의 명철한 선택에 따라 주는 칭찬이다.
- 악을 따르고 선의 반대로 따르는 것은 최악의 수치이다. 굽은 길로 비껴 가며 완악하게 그 길로 계속 행하는 자는 "마음의 패려한 자"로서 "멸시를 받으리라." 섭리가 그를 빈궁하게 하고 천대 받도록 하실 것이며, 명예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는 자라면 그를 상종할 만한 가치가 없고 신뢰하기에 부적합한 자로서, 인류의 오점과 불명예가 되는 자로서 멸시할 것이다.
● 종을 부리는 자(잠언 12:9)
-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은 밖에 나가면 크게 두각을 나타내고 싶어하며 지명 인사의 위치와 풍채를 유지하기에 급급하나, 막상 집에서는 궁색하기가 이를 데 없어 빚을 갚고난 한 조각의 빵조차 살 형편이 못 되는 경우도 있다. 아마 의복이 날개이고 보니 신수를 훤하게 차리자면 배꼽이 등에 가 붙을지도 모를 일이다.
- 그러나 이들보다는 하류 인생이긴 하나 만족하고 지내는 자들의 처지와 특성이 어느 모로 보든지 더 낫다. 그들은 보다 낮은 영역에서 수수한 의복을 입고 미미한 자리에 있다고 하여 비천히 여김을 받지만 이렇게 함으로써 자기 가정에서는 필요한 것뿐만 아니라 편리한 것까지도 누릴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 빵도 있지만 시중들고 자기들의 일까지도 도와 줄 하인까지 두고 있는 것이다. 집에서 풍족하고 편안하게 살려고 꾀하는 자들은 자기 허우대 하나 유지할 것도 없는 주제에 외부에서 근사한 풍모를 보이려고 꾸미는 것밖에 모르는 자들보다 낫다. 그러한 자는 그 처지가 비천한데도 마음은 겸비하지 못한 자들이다.
●의인의 자녀와 악인의 잔인함(잠언 12:10)
- 여기에서 선한 자의 자비심을 어느 정도로까지 큰가 살펴보자.
착한 사람은 아무리 비천한 지경에 처한 인간에게 측은한 마음을 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육축의 생명"까지도 중히 여긴다. 그것은 짐승이 자기를 섬기는 종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이며, 또한 "사람과 짐승"을 다 "보호"하시는 섭리를 따르기 때문이다. 우리의 보살핌 아래 있는 짐승은 부족한 것이 없도록 해 주어야 하고 음식과 잠자리를 편안하게 마련해 주어야 하고 어떤 경우에도 학대하거나 혹사해서는 아니 된다. 발람은 자기 나귀를 차고 꾸중을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율법은 소를 보호하였다(신 25:4). 그러므로 짐승에게 공평하지 못한 자는 불의한 사람이다. 짐승에게 맹렬히 노하며 야만적이며 대하는 자는 스스로의 잔학한 습성을 노출시키고 공고히 하는 자이며, 피조물이 탄식하도록(롬 8:22) 조장하는 자이다. - 악인의 무자비함은 어느 정도일까 살펴 보자. "악인"은 "긍휼"조차도 "잔인"하다.
인간으로서 그의 안에 있는 본성적인 동정심은 사라져 버리고 타락의 힘으로 말미암아 완악한 마음으로 변해버렸다. 빌라도가 무죄하신 그리스도께 대해 "내가 그를 때려서 놓아 보내리라"고 결심을 하였던 것과 같이 악인이 측은지심의 대신으로 통용하는 것조차 참으로 잔인한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가장된 친절한 잔인한 의도를 호도(糊塗)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 경작하는 자와 방탕한 자(잠언 12:11)
- 자기 사업에 전심하고 정직한 직업을 따르는 것은 인간의 지혜이니,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에 의하여 생계를 꾸려 나가게 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소유주이든 소작인이든 간에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자기 일에 열중하며 설령 그로 인해 재산을 불리지 못한다고 하더라도(꼭 그래야 할 필요가 있을까?) 기꺼이 수고하려는 자이다. 그는 "먹을 것이 많거니와 자기와 자기 가족에게 알맞는 식물을 얻을 것이고 세상살이의 비용을 넉넉히 부담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진노하신 선고에서 조차 "너는 네 얼굴에 흐르는 땀으로 얻어야 할 망정 떡을 먹게 되리라"는 자비 조항이 들어 있다. 그러나 가인에게는 이런 자비가 거부되었다(창 4:12).
분주하라. 이것이 편안하게 되는 비결이다. 네 상점을 지키라. 그리하면 네 상점이 너를 지켜 주리라. "너는 네 손이 수고한 것을 먹을지니라." - 자기 사업에 태만한 자는 어리석은 자이다. 그런 자는 "지혜가 없는" 자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한가한 무리들과 어울리게 되어 악한 길로 좇아가다가 먹을 것이 없게 된다. 최소한 자기가 먹을 떡도 없게 되고 보면 딴 사람의 입에서 떨어지는 떡 부스러기에 의존하게 되는, 남에게 부담을 주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악인과 의인의 결과(잠언 12:12)
다음 사실을 관찰하자.
- 여기서의 악인의 관심과 목표는 무엇인가?
그는 나쁜 일을 저지르고자 한다. 그는 "불의의 이를(혹은 악인의 그물질한 것을) 탐하느니라." "오! 내가 그 사람만큼만 교활하다면 내가 상대한 자들을 등쳐 먹을 수 있으련만! 내 사기술이 그의 재주만큼만 되어도 좋으련만! 내가 그 사람만큼만 효과적으로 원수진 놈을 복수해 줄 수 있다면 좋겠는데!
그는 해를 끼치면서도 안전히 행동할 수 있도록 하려고 악인의 "성채"나 "요새"를 탐낸다(이렇게 해석하는 자도 있음). 이는 그 해가 자기에게는 돌아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 선인의 관심과 목표는 무엇인가?
"의인은 그 뿌리로 말미암아 결실하느니라." 이것은 그의 힘과 안정성을 말한다. 그가 바라는 일은 선을 행하는 것과 착한 행실로 고정되고 굳게 되는 것이다. 악인은 자신을 위해 고기를 낚을 그물만을 바라지만, 의인은 타인의 유익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열매 맺기를 소원한다(롬 14:6).
●입술의 허물과 유익함(잠언 12:13)
-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내버려두실 때 악인은 자기 미련함에 의해 환란 가운데에 스스로 얽혀 든다. 악인은 흔히 "입술의 허물로 인하여 그물에 걸리고" 자신의 혀로 인해 목을 베이게 된다. 그들은 "존귀한 자들의 욕함"으로 말미암아 사직 당국의 철퇴 앞에 자신을 드러낸다. 나쁜 말로인해 그들은 사감(私感)을 면할 길이 없게 되며, 명예 훼손죄로 고소를 당하고 말기 때문에 소송을 제기 당하게 된다. 이 세상에서 많은 사람이 자기 입술의 허물 때문에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혼이 나며, 자기 혀에 재갈을 물리지 못해 등에 매질을 당하는 자 또한 부지기수이다(시 64:8).
-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구원하러 오실 때 의인은 자기 지혜대로 환란에서 빠져나온다. "의인은"악인이 제 스스로 거꾸로 쳐박히는 그런 "환난에서 벗어나느니라." 이것은 의인도 아마 환란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암시되고 있다. 그러나 "의인이 비록 실족하나 완전히 엎드려지지는 아니하리라"(시 34:19).
●옳은 말과 행실(잠언 12:14)
이 말씀은 우리가 온갖 착한 말과 행실을 하도록 촉진시키기 위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신시켜 주고 있다.
- 선한 말은 선한 계산을 받게 될 것이다(14절).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즉 그의 경건한 담화와 사려깊은 권고로 행하는 선으로써 "복록에 족하느니라."(즉 그는 현재의 위로인 참된 만족이 되는 내적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이다). 우리는 남을 가르치는 사이에 우리 자신도 배울 수 있으며 남에게 떼 주는 생명의 떡을 우리 자신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 선한 행실은 한층 더 풍족하게 보상받을 것이다. "사람은 그 손의 행하는 대로 받느니라." 그가 행한 모든 일과 사랑의 수고,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과 자기 세대의 유익을 위해 행한 모든 것이 자신에게 되갚아질 것이며 그는 심은 대로 거둘 것이다.
이 말씀은 또한 공의의 일반 법칙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리라"(롬 2:6).
●미련한 자와 지혜로운 자(잠언 12:15)
- 우매자를 지혜로와지지 못하게 막는 것은 무엇인가?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느니라." 그는 자기가 행하는 모든 일이 옳은 줄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는 권고를 구하지 않는다. 즉 그는 자기에게는 충고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는 자기가 길을 안다고 자신하며 그 길을 잘못 들어설 리가 없다고 믿으므로 길을 묻지도 아니한다. 그가 행할 때 의지하는 규준은 "자기가 보기에 바른"것을 행한다는 것이요, 자기 마음의 길대로 행한다는 것이다. Quicguid libet, licet-즉 그는 자기 뜻을 자기 법으로 삼고 있다.
이처럼 자기 양심의 지배를 받지 않고 자기 눈의 지배를 받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다. - 지혜로운 자를 우매하지 못하도록 방지해 주는 것은 무엇인가?
그는 자신의 판단을 자신하지 않고 지혜롭고 선한 자의 지도를 존중하여, 기꺼이 충고를 받고 자기에게 주어진 교훈을 받아들이고 싶어하며 "권고를 듣느니라." 자기 귀를 선한 충고에 항상 열어 두고 있는 자는 지혜로운 자다(그것은 그가 지혜롭다는 증좌이며 그가 계속 지혜로운 가능성을 지닌다는 표시이다).
●분노와 수욕(잠언 12:16)
- 객기를 부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미련한 자는 그 성내는 것으로 알 수 있느니라." (이렇게 해석하는 자도있다)
지혜로운 자라고하여 성낼 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에도 화내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며, 그가 성낼 때는 분노를 억제와 감독 하에 두어 "자기 분노의 주인"이 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우매자의 분노는 우매자 위에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도발당하면 말로든 행동으로든 욱하고 치밀어 올라 점잖지 못한 표현으로 비하하고 격정으로 얼굴이 일그러뜨리고 난폭하게 되어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게 되는 자는 누가 뭐래도 그 이름이 "나발(Nabal)이며 "미련함이 있다." "우매자의 분노는 낮에 나타난다." 그는 자기가 어떤 자들과 함께 있든지 간에 자기의 어리석음을 공포한다. 우매자의 분노는 자극되는 그 날에 바로 나타난다. 그는 자기의 분개를 미루어 나타낼 수가 없다. 극히 작은 불꽃으로도 자기의 노에 급속히 불을 당기는 자들, 곧 화를 잘 내는 자들은 자기의 심령에 대해 마땅히 제어하고 있어야 할 그 금도(襟度)를 지키지 못하는 자들이다. - 온유함은 지혜이다.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1) 그는 자기의 흉중에 있는 격정을 참는다. 그는 자기 "성미가 떨쳐 일어나고" 자기 "마음이 속에서 뜨거워질" 때, 자기 입을 재갈 먹이듯 지키고 분노를 끄고 질식시켜 버림으로써 진압한다. 성내는 것은 수치이며, 지혜로운 자라고해서 분노로부터 완전히 떠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슬기로운 자는 성냄을 부끄러워하고 자책하며 악한 마음이 분노의 말을 하도록 내버려두지는 않는 것이다. 그는 자기에게 가해진 도발이나 성나는 일을 참고 그것을 묵과해 버리며, 될 수 있는 대로 분노에서 벗어나려고 그것을 덮어 버린다. 이는 그가 그런 일 때문에 일어날 분노를 아무리 멀리 데려간다고 해도 오히려 부족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받는 피해나 모욕을 가볍게 생각하고 용서해 주는 것은, 그 일을 더욱 나쁘게 받아들이고 가장 악화시켜 생각하는 것보다(이것은 우리들이 흔히 빠지는 경향이지만)우리 자신에게 친절한 행위이며 마음의 평정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 진리의 표명과 거짓 증언(잠언 12:17)
이 성귀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 정직한 자의 칭찬할 만한 신실한 증언.
"진리를 말하는" 일과 만사를 공명정대하게 표현함을 본분으로 삼는 "자는" 그 경우가 재판에서든, 일상 대화에서든 또 그가 맹세를 하는 경우이든 아니든 간에 "의를 나타내느니라."
그런 자는 자기가 의로운 원리와 법의 지배를 받으며 그것에 따라 실제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자이며, 의로움에 영예를 돌리고 그것의 행사를 위해 봉사함으로써 정의를 진작(振作)시키는 자이다. - 사기로서 정죄받는 거짓 증언.
그는 "궤휼을 말하느니라."
이것은 그가 자기의 관계자들은 속임으로써 얼마나 비양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 일로 얼마나 많은 즐거움을 느끼는지를 나타내고, 자기가 거짓말하는 영에게 사로잡혀 있음을 나타내기도 하는 자이다(렘 9:3-5). 우리는 누구나 거짓말을 두려워하고 혐오하도록 하는 동시에, 정직이란 원리를 간직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말의 폐해와 유익함(잠언 12:18)
혀는 사용하기에 따라 사망도 되고 생명도 되며, 독약도 되고 양약도 된다.
- 말 중에는 "칼로 찌름같이" 짜르고 죽이는 말이 있다.
함부로 내뱉는 독설은 듣는 상대의 심령을 비탄에 잠기게 하고 그 마음을 찢어 놓는다. 중상 모략은 칼과 같이 그 대상자의 명예를 상하게 하며, 아마 회복할 수 없게까지 훼손시켜 버릴 것이다. 수군대는 것과 악한 억측의 말도 칼과 같이, 사랑과 우정의 유대를 산산 조각으로 끊어 버리며 서로 극히 친밀하였던 자를 갈라 놓는다. - 말 중에는 치료하고 고치는 말도 있다.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 이런 말은 험담하는 혀가 만든 상처를 아물게하며, 전체를 다시 건전하게 만들고 화평을 회복시키며 화해에 이르도록 설득한다. 즉 지혜자는 비난과 악담이 빚어 놓은 물의에 대해 적절한 치료책을 강구할 것이다.
● 진실한 혀와 거짓 혀(잠언 12:19)
다음 사실을 관찰하여 저 성스러운 일인 진리에 영예를 돌리도록 하자.
- 진리가 선언되면 그 말은 영구히 효력이 있으며, 누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고 심지어 화를 내든지 간에 그 말은 그 기초를 구축하게 될 것이다.
진리는 위대하며 승리할 것이다. 진실된 것은 언제나 진실 그대로 일 것이다. 우리는 진실에 의거하여 지낼 수 있으며, 그것의 반증이 들어나 창피를 당하게 될까봐 염려할 필요가 없다. - 진리를 부정하면 그 말은 때가 되면 소멸해버리게 될 것이다.
"거짓 혀는" 사실을 호도(糊塗)하고 은폐하지만, "눈 깜짝일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 거짓말은 그 그릇됨이 밝혀질 것이다. 거짓말쟁이는 세밀한 검사를 받을 때 그 말이 여러 갈래임이 판명될 것이며, 진실을 말하는 자와도같이 자기 자신의 말과 일치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가 거짓말을 한 것으로 판명된다는 그는 소기의 목표를 달성할 수가 없게 되고, 그 후로도 그의 말은 신용될 리가 없는 것이다. 진실은 가리워질 수도 있으나 언젠가는 청천 백일하게 들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거짓말로 자기 피난처로 삼는 자들은 그것 자체가 거짓 피난처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 궤휼과 희락(잠언 12:20)
- 행악을 도모하는 자들은 그 일의 성공을 위해 어떻게 하면 남들을 속일 수 있을까 하고 그 방법을 궁리한다. 그러나 종국에 가서는 그들이 스스로를 기만한 것이란 사실이 판명될 것이다. 우정의 가면 아래 "악을 꾀하는 자들"은 그 악행으로써 얻게될 이런 저런 잇점과 만족감으로 마음이 한껏 부풀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허깨비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이 아무리 교묘한 행악을 꾀한다고 하더라도 속이는 자들은 속임을 당하고 말 것이다.
- 자기 이웃의 이익을 도모하고 평화스럽게 만들기 위한 방책을 연구하며 화평한 충고를 주고, 치유하는 데에 한층 노력을 기울이며 치료하는 방법을 강구하고, 나아가서 자기의 분야에 맞게 공익을 촉진시키는 자들은 그로 인해 신망을 얻을 뿐만 아니라 그 위안도 얻을 것이다. 그들은 아마 자기들의 기대 이상으로 기쁨과 성공을 얻게 될 것이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
●의인의 화평과 악인의 앙화(잠언 12:21)
- 경건은 확실한 방호물(防護物)이다.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신실하고 의로우면 어떤 재앙도 그들에게 임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는 자기 은혜의 권능, 곧 정의의 원리에 따라 그들을 죄의 폐해로부터 지켜 주실 것이다. 따라서 비록 그들이 시험을 받더라도 시험에 정복되지 않을 것이며, 환란에 많은 환란에 직면하게 되더라도 그 환란이 딴 사람들에게 어떻게 화를 입히든지 간에 그들에게는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 할 것이다(시 91:10) 환란은 오히려 저들의 유익이 되도록 번복될 것이다. - 악은 확실한 파멸의 빌미이다.
하나님과 사람을 멸시하며 사는 자들과 재앙을 입히는 일에 열중하는 자들에게는 "앙화가 가득하리라." 그들에게는 한층 화가 많을 것이며 "모든 불의가 가득할" 것이다(롬 1:29). 혹은 그들에게 재앙이 임하여 비참하게 될 것이다. 한편 행악을 기뻐하는 자들은 화를 배부르도록 당하게 될 것이다.
이 구절 전체를 다음과 같이 해독하는 이도 있다. "비록 악인에게는 앙화가 가득하여 그들을 괴롭힐지라도 의인에게는 아무 재앙도 임하지 않으리라." 의인은 지옥 그 자체가 갑자기 덮친다고 하더라도 하늘의 보호로 안전할 것이다.
●거짓 입술과 진실한 입술(잠언 12:22)
우리가 본문에서 받는 가르침은 다음과 같다.
- 거짓말을 혐오하고 가능한 한 그것을 멀리하라. 그 이유는 거짓말이 여호와께 미움을 받는 일일 뿐만 아니라(거짓말 자체가 하나님 법의 위반인 동시에 인류사회를 파괴하는 것이므로) 스스로 거짓말을 허용하는 자도 여호와 보시기에 가증한 자이기 때문이다.
- 우리의 말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행동에서 진실한 것을 본분으로 삼으라. 이는 그 모든 관계에서 성실히, 그리고 "진실히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으며," 그들을 즐거워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뢰할 수 있고 정직한 자들과 사귀기를 기뻐하며 그런 자들이 이로움을 얻고 싶어한다. 따라서 하나님과 사람 모두에게서 은총과 총애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그런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 지식을 전파하는 미련함(잠언 12:23)
- 지혜로운 자는 자기 지혜를 광고하고 싶어하지 않으며 또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그의 명예가 된다.
그는 타인의 훈도에 도움이 될 수 있을 때면, 지식을 전달하나 지식을 나타내는 일이 자신의 칭찬으로 될 때에는 그것을 감춘다. 지식있는 자가 슬기로운 사람인 경우에는 허세의냄새가 나는 모든 일은 애써 피할 것이며, 자기 학식과 박학을 과시할 수 있는 기회는 모두 거부해 버릴 것이고 다만 선한 목적을 위해 자기 지식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만 취할 것이다. 이렇게 될 때에야 "저희 행실을 보고 저들을 칭찬하게 되는" 것이다. ars est celare artem-즉 기술의 완성은 그것을 숨기는 것이다. - 어리석은 자는 자기 미련을 선포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가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그의 치욕이 된다.
"미련한 자의 마음"은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미련한 것을 전파하느니라." 그런 이들은 선과 악, 존귀와 치욕에 대한 식견이 너무 부족하여 우매함을 감추고 싶어하지 않거나, 아니면 매사의 처리에 있어 분별심이 너무 결핍되어 어리석음을 감출 줄 모르는(전 10:3)것일 것이다.
●부지런한 자와 게으른 자(잠언 12:24)
- 근면은 출세의 비결이다.
솔로몬은 여로보암이 부지런하고 자기 일에 전념하는 청년임을 보고 그를 중용(重用)하였다(왕상 11:28). 애써 연구하고 피땀 흘려 쓸모있게 되려는 자들은 그로 인하여 자기 주위의 모든 사람을 지배할 만한 세력과 명성을 획득하게 될 것이며, 이런 수단에 의해 남달리 입신양명한 자도 많은 것이다. "적은 일에 충성한" 자는 "많은 일을 다스리는 자"가 될 것이다. "말씀과 가르치는 일로 수고"하는 장로들은 그것의 "배로 존경할 만한 자"이다. 젊어서 부지런한 자들은 늙어서 능히 다스리고 평안할 수 있게 하는 것을 얻을 것이다. - 무뢰함은 노예 상태에 이르는 첩경이다. "게으르고" 태만한 자, 아니, 오히려 "속이는 자(단어의 의미는 여기에 가깝다)는 부림을 받느니라." 정직한 직업으로 수고하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 변통하는 수단과 부정직한 기술로 사는 자들은 쇠푼도 없는 거지가 되고 복종받는 자가 될 것이다. 견습기간에 부지런히 하고 정직한 자들은 대가가 될 수 있으나[부지런하고 정직한 도제(徒弟)가 수장인(首匠人)이 된다는 속담에서], 반대로 게으르고 부정직한 자들은 평생동안 "마음이 슬기로운 자의 종"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바보들인 것이다.
● 근심과 즐거움(잠언 12:25)
- 우울증의 원인과 결과.
그것은 "사람의 마음에 있는 근심"이다. 그것은 심령에다 근심, 걱정, 불안, 슬픔의 짐을 실어 주어 마음을 맥풀리게 하고, 일을 행할 때 있어야 할 활기나 강인함으로 노력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것은 그들로 번뇌하게 하며 좌절시키고 소침하게 만들어 버린다. 이처럼 억압되어 버린 자는 의무, 즉 친척이나 신분이나 교제에 있어서 해야 할 본분을 행할 수도 없고 그 모든 관계에서 받을 위안도 받지 못 한다. 그러므로 근심에 기울어지는 자들은 마음을 잘 감시하여 그렇게 되지 않도록 기도드려야 한다. - 그 치료법.
하나님께로서 나온 "선한 말은" 믿음으로 복용됨에 따라 "그것을 즐겁게 하느니라"(랍비 중 한 사람이 말하듯). 그런 말씀으로는 이런 것이 있다. "네 짐을 여호와께 던져버리라. 그러면 그가 너를 떠받쳐 주시리라." 하나님의 선하신 말씀, 특히 복음의 선한 말씀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마음을 기쁘게 만드는 의도를 갖고있다(마 11:28). 목사들은 바로 이 기쁨을 얻도록 도와주는 조력자들이다.
●의로운 길(잠언 12:28)
본문은 신앙의 길을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다.
- 곧고 평탄하며 쉬운 길로서.
그것은 "의로운 길"이다. 하나님의 명령(우리가 의지하고 행해야 할 기준)은 모두가 공평하고 선하며 거룩하다. 경건한 종교는 자기 편에 올바른 이성과 공평함을 지닌다. 그것은 "대로"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구축하신 길이다(사 35:8). 그 길은 높고 길이고 왕도, 즉 왕 중 왕의 길이고 우리앞의 모든 성도가 지나간 길이며, 선한 옛 길이고 양 떼의 발자취가 가득한 길이다. - 안전하고 즐거우며 편안한 길로서.
(1) 그 끝에 생명이 있을 뿐만 아니라 도중에는 생명이 있는 길이며 온갖 참된 위안과 만족이 있는 길이다. 생명보다도 나은 하나님의 은총이 있는가 하면 생명이신 성령도 있다.
(2) 그 길 안에 생명이 있을 뿐만 아니라 "사망이 없으며," 죽음을 만들어 내고 우리의 현재적 기쁨과 생명을 경감시키는 세상의 슬픔도 전혀 없다. 의로운 길에 있는 생명에는 끝이 없다. 이 세상에는 생명이 있으나 사망 또한 있다. 그러나 "의로운 길에는 생명이 있으며 그 길에는 사망이 없고," 생명과 불멸이 있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