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11월 28일 목요일 묵상구절 사37:1-7 <왕이 이사야의 말을 듣고자 하다(왕하 19:1-7)>

Jeehyun 2024. 11. 28. 07:28

맥체인성경읽기

역대상 24, 25, 베드로전서 5, 미가 3, 누가복음 12

묵상구절

37:1 히스기야 왕이 듣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으로 갔고

37:2 왕궁 맡은 자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어른들도 굵은 베 옷을 입으니라 왕이 그들을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내매

37:3 그들이 이사야에게 이르되 히스기야의 말씀에 오늘은 환난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으려 하나 해산할 힘이 없음 같도다

37:4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랍사게의 말을 들으셨을 것이라 그가 그의 상전 앗수르 왕의 보냄을 받고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훼방하였은즉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그 말로 말미암아 견책하실까 하노라 그런즉 바라건대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시더이다 하니라

37:5 그리하여 히스기야 왕의 신하들이 이사야에게 나아가매

37:6 이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렇게 말하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들은 바 앗수르 왕의 종들이 나를 능욕한 말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라

37:7 보라 내가 영을 그의 속에 두리니 그가 소문을 듣고 그의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며 또 내가 그를 그의 고국에서 칼에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매튜헨리/옥스퍼드

히스기야의 전갈 (이사야 37:1-7)

📖서론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살펴 볼 수 있다.

1. 우리를 치려는 적의 악의에 찬 계획을 좌절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그것으로 인해 우리가 하나님과 우리의 의무로 돌아와, 전화위복을 만드는 것이다.

랍사게는 히스기야를 놀라게 하여 여호와에게서 떠나게 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었으나 그것은 그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도망하게 하는 결과가 되고 있다. 바람은 나그네의 외투를 벗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더욱 단단히 감싸입도록 만드는 것이다. 랍사게가 하나님을 비방할수록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가해진 치욕에 대해 그의 옷을 찢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위해 그의 성소에 감으로써, 그를 영예로우시게 할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37:1 <왕이 이사야의 말을 듣고자 하다(왕하 19:1-7)> 히스기야 왕이 듣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으로 갔고

  • 히스기야 왕의 신앙심의 표현


왕하19:1 해설

 💡 18:17-35까지 이어진 앗수르 군장 랍사게의 혐박과 조롱에 대하여 히스기야가 즉각적으로 보인 신앙적 반응을 인상적으로 기록한다.

  • 이런 사실은 원문에서 본절은 ‘히스기야 왕이 듣고’에 해당하는 ‘와예히 키쉬모아으 함멜레크 히즈키야후’로 시작한다.
    한글 개역 성경은 단순히 ‘듣고’로 번역하였으나, 이에 대응되는 ‘와예히 키쉬모아으’에서 ‘와예히’는 앞장 마지막절과 본절의 내용이 이어짐을 보여준다. (“이에 ~이 발생하였다”란 의미)
    → 이는 앞장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태를 히스기야 왕이 보고받은 일이 앞으로 일어날 새로운 사태의 도입이 됨을 보여주는 구문이다.
  • 그리고 이 구문 바로 뒤이어 ‘찢고’가 나옴. → 히스기야 왕이 신하들의 보고를 듣자마자 바로 옷을 찢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은 채 성전으로 들어가는 히스기야의 모습은 앗수르의 제1차 침공시 신속하게 전쟁 배상금을 바쳐 위기를 모면하려 했던 그의 불신앙적 태도와는 매우 대조적이다(18:13-16).
  • 히스기야가 이러한 신앙적 행동을 취한 것은
    앗수르에게 재물을 바치는 것이 문제의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즉 1차 침공시 히스기야는 문제 해결의 방편으로 앗수르에게 많은 재물을 바쳤지만 또다시 동일한 상황에 직면하여서는 모든 인간적 방법들을 포기하고 오직 여호와께 매달리는 신앙적 방법을 취하게 되었던 것이다.
  • 인간의 나약한 본성
    하나님이 모든 문제 해결의 근원임을 알고 있다 할지라도 막상 큰 위기가 닥치게 되면 먼저 인간적 방법으로 해결을 시도하려는 것이 나약한 인간의 본성이다.
  • 하나님의 뜻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이런 인간 스스로의 나약함을 극복하고 성숙한 신앙을 갖도록 하시기 위해 때로 더 커다란 위기와 시련을 허락하기도 하신다. 히스기야가 이 경우에 해당한다. 그는 처음에 인간적인 방편을 통해 문제를 헤결하려 했으나 재차 위기에 봉착하자 과거 자 신의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께 회개하였다. 그리고 자신 앞에 놓인 위기를 여호와를 의지하여 극복함으로 더 성숙한 신앙을 지니게 되었다.

히스기야 왕이 그의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음

  • 옷을 찢는 행위: 이스라엘 사회에서 참회나 깊은 슬픔 또는 애도를 나타내는 상징적 행위로 성경에 자주 언급됨(2:12; 수 7:6; 삼상 4:12; 삼하 1:11; 스 9:3; 욥 1:20).
  • 베옷을 입는 것: 기존의 의복이 상징하는 자신의 신분과 직분을 부정하고 자신을 낮춤으로써,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구하는 겸허한 자세를 나타냄.
  • 히스기야 왕은 신속하고도 자발적으로 굵은 베옷을 입었다. 특히 왕이 옷을 찔고 굵은 베를 입는 것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만 취하는 행동이었다(왕하 5:7; 사 22:12). 이러한 이해와 관련해 본문에 나타난 히스기야의 행위는
    • 랍사게가 거룩하신 하나님을 이방신들과 동류로 여기고 그것들에 빗대어 말하는 모독적인 발언에 대해 비분강개하는 그의 심정을 표현하는 것인 동시에
    • 이전에 앗수르의 1차 침공 당시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고 앗수르 왕에게 은금을 바쳐 물질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자신의 불신앙적 자세에 대해 회개하는 의미 또한 포함된 것어라 할 수 었다.
    • 그리고 이러한 그의 행위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능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자신들을 구원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다는 믿음의 표현으로 이해될 수 었다.

2. 높은 자들 선한 사람들과 선한 사역자들의 기도를 원하는 것이 합당하다.

히스기야는 이사야가 현재의 사건에 대해 얼마나 명확하게 예언했는가를 기억하고서, 그의 기도를 부탁하기 위해 사신들과 존귀한 자들과 제일인자들을 그에게 보냈다. 아마도 그는 이 예언이 이루어진 것을 보고서 그 일의 결과도 다행스럽게 되리라는 것만은 의심치 않았으나 기도의 응답으로 그러한 결과를 얻게 되기를 원했을 것이다. "오늘은 환날의 날이니 이 날이 기도의 날이 되도록 하자."


📖37:2 왕궁 맡은 자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어른들도 굵은 베 옷을 입으니라 왕이 그들을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내매


3. 우리가 매우 어려운 상태에 있을 때에는 아주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이제 "아이를 낳으려하나 해산할 힘이 없으니" 기도가 이루어지도록 필사적으로 돕자. 고통이 가장 클 때 가장 강렬하게 기도하자. 그리고 우리가 가장 큰 역경에 부딪힐 때, 그것은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을 꼭 붙잡도록 분기시켜야 할때이다. 기도는 긍휼이 나오도록 도와주는 산파인 셈이다.


📖37:3 그들이 이사야에게 이르되 히스기야의 말씀에 오늘은 환난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으려 하나 해산할 힘이 없음 같도다


4. 우리가 긍휼에 대해 약간의 소망밖에 가지지 않았을지라도 그것을 기도하도록 하는 격려가 된다(4절).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들으셨을 것이다."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실 줄 누가 알겠느냐?" (욜 2:14)축복의 안식처에 대한 일말의 전망으로 기도의 노를 두 배로 열심히 젓도록 해야 한다.

 📖37:4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랍사게의 말을 들으셨을 것이라 그가 그의 상전 앗수르 왕의 보냄을 받고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훼방하였은즉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그 말로 말미암아 견책하실까 하노라 그런즉 바라건대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시더이다 하니라


5. 남은 자가 있을 때, 단지 남은 자만이 있을 때 우리는 그 남은 자를 위해 기도를 올리도록 해야 한다(4절).

하늘에 이르는 기도는 강한 믿음으로써, 간절한 소망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직접적인 의도로써 올려져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마지막 궁지에 몰렸을 때 이 모든 기도는 민활히 이루어져야 한다.

6. 하나님을 적으로 삼는 자들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그들은 파멸할 운명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위협하는 소리를 낼지라도, 해할 수는 없는 것이다. 랍사게는 하나님을 모독했다. 따라서 히스기야는 그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6절). 그는 그의 독설로써 하나님을 그 사건에 관여하게 했다. 그러므로 심판이 그에게 반드시 임할 것이다. 하나님은 필연코 그 자신의 송사를 변론하실 것이다.


📖37:5 그리하여 히스기야 왕의 신하들이 이사야에게 나아가매


📖 37:6 이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렇게 말하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들은 바 앗수르 왕의 종들이 나를 능욕한 말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라


7. 죄인들의 두려움은 그들의 멸망의 서막에 불과하다.

산헤립은 그의 군대가 살륙당한다는 "풍성을 들을" 것이며, 그것은 그로 하여금 그의 고토로 돌아가게 만들 것이고 거기에서 그는 살륙당할 것이다(7절). 산헤립을 쫓는 무서운 것은 그를 마침내 "무서움의 왕" 에게로 끌어갈 것이다(욥 18:11, 14). 죄인들을 쫓는 저주가 결국 그들을 덮칠 것이다.


📖37:7 보라 내가 영을 그의 속에 두리니 그가 소문을 듣고 그의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며 또 내가 그를 그의 고국에서 칼에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