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11월 26일 화요일 묵상구절 사35:1-10 <거룩한 길>

Jeehyun 2024. 11. 27. 11:34

맥체인성경읽기

묵상구절

35:1 <거룩한 길>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35:2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

35:3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며

35:4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35:5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35:6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35:7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승냥이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35:8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며

35:9 거기에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받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

35:10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


매튜헨리/옥스퍼드

 📖서론


복음이 주는 축복 (이사야 35:1-4)

이 구절들 속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Ⅰ. 사막이 꽃이 된다.

📖35:1 <거룩한 길>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35:2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


앞 장에서는 번화하고 풍요한 땅이 끔직스러운 광야로 변한 것을 보았다. 여기에서는 그것 대신에 광야가 기름진 땅으로 변한 것을 볼 수 있다. 유다 땅이 앗수르 군대로부터 자유로워졌을 때, 그들이 범한 약탈과 폭행으로 인해 광야가 되었었던 그 나라 여러 지역들은 회복되기 시작했고, 다시 즐거워 보이며, 장미같이 피기 시작했다. 이방 민족들은 하나님께 열매를 내지 못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광야처럼 되었었으나, 이제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자 기쁨이 기들에게 들어왔다(시 67:3, 4; 96:11, 12). 그리스도가 사마리아에서 전파되자, "그 성에 큰 기쁨" 이 있었다(행 8:8). 어두움 가운데 앉아있던 자들이 크고도 기쁜 빛을 보았고서, 그때 그들은 꽃을 피었다. 결실에 대한 풍요한 희망을 가졌다. 왜냐하면 "가서 열매를 맺게" 하는 것(롬 1:13; 골 1:6)이 복음 전도자들이 목표하는 바이기 때문이다(요 15:16). 비록 꽃이 열매를 맺지 못하고 흔히 살패하여 무익한 존재가 되어버리는 일이 있을지라도, 꽃은 열매를 위해 있는 것이다.

회심시키는 은혜는 "광야" 였던 영혼이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무성하게 피어" 나도록 만든다. 이 번영하는 사막은 그 백향목의 강인성과 장중함을 지니고 있는 "레바논의 영광과" 또 그것과 더불어 곡식과 가축 가운데 있는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 을 얻을 것이다. 모든 제정(制定) 속에 있는 값진 모든 것이 복음 속으로 들어온다. 유대 교회의 모든 아름다움은 기독교로 들어왔고, 사도가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상세히 부여 주고 있는 것처럼 그것은 거기서 그 완전한 모습을 나타내었다. 모세의 율법 가운데 훌륭하고 바람직한 것은 무엇이나 복음의 원리로 이양되었다.

Ⅱ. 하나님의 영광이 빛나고 있다.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로다" 고 했다. 하나님은 친히 인류에 대한 그의 은혜와 사랑을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나타내실 것이며(그것이 그의 영광이며 아름다움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들에게 그것을 볼 수 있는 눈과 그것에 온당히 감동될 수 있는 마음을 주실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막을 꽃피게 할 그것이다. 우리가 믿음으로써 여호와의 영광과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면 볼수록, 우리는 더욱 기쁘고 풍요케 될 것이다.

Ⅲ. 연약하며 낙심 가운데 있는 자가 격려를 받는다(3, 4절).

하나님의 예언자들과 사역들은 그들의 직책으로 인해 특별히 "약한 손을 강하게 할" 책임이 있다. 즉 앗수르 군대에 의해 받은 두려움에서 아직 벗어날 수 없었던 자들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제 긍휼을 다시 베풀어 주시리라는 확신으로써 안위해 줄 책임을 맡고 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의도이다.

1. 연약한 자들을 강하게 해 주고 그들을 - 손이 연약하여 일하거나 싸울 수 없으며 기도하기 위해 손을 들어올릴 수조차 없는 자들과 무릎이 떨려 서거나 걸을 수 없고 우리 앞에 놓여진 경주를 감당해 내기에도 부적합한 자들을 - 굳게 해 주는 것이다.

복음은 우리에게 강하게 해 주는 생각들을 제공해 주며, 우리를 위한 힘이 어디에 있는가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 참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에도 약한 손과 떨리는 무릎을 갖고 있는 자들, 즉 그리스도 안에 있는 어린 아기에 지나지 않는 자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우리 형제를 굳게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므로(눅 22:32), 우리는 연약한 자들에게 참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견고케 해야 한다(롬 15:1; 살전 5:14).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힘을 증진시키고, 그것을 발휘하여, "피곤한 손을 일으켜" 우리 자신을 또한 강하게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35:3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며


2. 겁많고 의기소침한 자들을 활기있게 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연약함과 그 대적들의 강함 때문에 "겁내는 자에게" 이르라, "성급한 자에게" (문자 그대로), 즉 첫 번째 경보에 놀라서 소송을 포기하는 자에게 또 성급하게 "우리가 끊어져 망하였도다" (시 31:22)고 말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이 두려움들을 잠잠케 할 만한 것이 복음 가운데 충분히 있다 하라. "너는 굳세게 하라. 두려워 말라" 고 그들에게 이르고 그들은 이것을 자기 자신에게와 서로에게 말하게 하자. 두려움은 연약함이다. 우리가 두려움과 투쟁하면 할수록, 싸우는 데에나 견디는 데에 더욱 강해진다. 그리고 우리로 분투하도록 격려하기 위해, "굳세게 되라" 고 말씀해 주신 분이 권능있는 자를 통해서 우리에게 도움을 주신다.

Ⅳ. 구세주가 다가오시리라는 확신을 주고 있다.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복수하실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해 나타나시어 너희 원수를 치실 것이며, 그들의 불법과 너희의 손실을 갚으실 것이다." 때가 이르렀을 때, 메시야가 오시어 흑암 권세를 복수하시고, 그 권세를 밝히 드러내실 것이며, 시온에서 애통하는 자들에게 풍성한 위로로 갚아 주실 것이다. "그가 오사 우리를 구하시리라" 는 이 소망으로써, 구약의 성도들은 그들의 약한 손을 강하게 하였다. 그가 마지막 때에 불꽃 중에 싸여 오셔서 환난을 받게 한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 받은 자들에게는 안식으로, 즉 그들의 모든 고통의 종결이 될 뿐 아니라 그것에 대한 충분한 보답이 될 그 안식으로 갚으실 것이다(살후 1:6, 7). "하나님의 궤로 인하여 마음을 떠는" 자들, 그리고 세상에 있는 그의 교회를 돌보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 일을 그의 수하에 두리라는 것으로써 자기들의 두려움을 진정시킬 수 있다.


📖35:4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복음의 축복 (이사야 35:5-10)

"너희 하나님께서 곧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이 세상에 그의 나라를 세우실 때 (모든 예언자들이 이것을 증거하고 있으며, 특히 교회의 현세적 구원에 대한 그들의 예언의 결론이 그러하며, 이 복음 예언자들은 특히 그것을 증거하고 있다), 그 때에 큰 일들을 보게 되리라."

Ⅰ. 기적들이 봉통의 나라에나 은총의 나라에 모두 일어날 것이며, 긍휼의 기적들이 사람의 자손들 위에 일어날 것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 오시는 자는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충분히 명시해 줄 것이다.

1. 이적(wonder)이 사람들의 몸에 생길 것이다(5, 6절). "소경의 눈이 밝아질 것이다."

이것은 우리 주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한 마디 말씀으로 자주 행해졌던 바이다. 그는 소경으로 "태어난" 자의 눈을 뜨게 해 주셨다(마 9:27; 12:22; 20:30; 9:6). 그의 능력에 의해 에바다 - 열리라는 한 마디 말에 귀머거리의 귀가 또한 열렸다. 앉은뱅이였던 많은 자들이 매우 완전하게 그 수족을 다시 쓸 수 있게 되었으므로 그들은 걸어 갈 뿐만 아니라 뛸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매우 기뻐서 그들은 그 앉은뱅이처럼 기쁨을 참지 못하고 뛰었다(행 3:8). 벙어리도 또한 말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때에 그들에게 기뻐 찬송하고픈 마음이 일어난 것은 기이한 일이 아니다(마 9:32, 33).

그리스도께서는 자기가 하나님께로서 오셨다는 것을 증거하시기 위해 이런 이적들을 역사하셨다(요 3:2). 아니, 그 자신의 능력에 의해 그리고 자기 자신의 이름으로 그것들을 역사하심으로써, 그는 자기가 하나님이시라는 것, 즉 제일 처음에 사람의 입과 듣는 귀와 보는 눈을 만드신 그 분과 동등한 자라는 것을 증명하셨다, 그는 요한의 제자들에게 자기의 거룩한 선교의 사명을 증거하려 했을 때에, 이러한 종류의 이적으로써 그것을 행하셨다. 그로써 이 성경말씀이 이루어졌다.


 📖35:5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2. 이적, 곧 더 큰 이적들이 사람들의 영혼에 일어날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에 의해, 영적으로 눈먼 자들이 밝히 보게 되었고(행 26:18), 하나님의 부르심에 귀먹었던 자들이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청종케 하신" 루디아처럼(행 16:14), 쾌히 그 부르심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선한 일에는 무능했던 자들이 거룩한 은혜로 인해 선행을 할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행하고, 하나님의 계명의 길을 달려가게 된다. 또한 벙어리가 되어 하나님에 대해 또는 하나님께 하는 말을 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던 자들이 하나님을 알도록 그 자각이 열렸을 때, 그것에 의해 그 입이 열러 그를 찬미케 될 것이다. 벙어리의 혀는 기쁨을, 하나님의 구원의 기쁨을 노래할 것이다. 찬송이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입에서 온전케 될 것이다.

Ⅱ. 성령이 높은 곳에서 부어질 것이다.

"물과 시내," 곧 생수의 강이 있을 것이다. 우리 구주께서 이것을 성경의 성취(아마 분명 이 구절을 가리켰을 것이다)로 말씀하셨을 때, 복음서 기자는 이사야 예언자처럼(32:15), "그가 그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셨다" 라고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다(요 7:38, 39).

여기에 잇는 것과 마찬가지로(6절) 사람들이 거의 기대하지 않았던 "광야에서 물이 솟을 것이다." 이것은 "성령이 말씀을 듣는 이방인들에게 내려 왔을" 때(행 10:44) 이루어졌다. 그 때에 생명의 샘이 열렸고, 그곳에서 샘물이 흘러 땅을 풍족히 적셨다.

이 물이 솟는다고 적혀 있는데, 이것은 이방 사람들이 새로운 세계로 들어오는 그 놀라운 즐거움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것의 복된 결과는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源泉)이 되리라" (7절)는 것이다. 죄짐 아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 그리고 거룩한 진노의 느낌으로 그슬린 자들은 안식과 원기, 그리고 복음 속에 있는 풍성한 위안을 발견했다. 물, 곧 규레가 없어 "마르고 곤핍하던 땅" 에는(시 63:1) 샘물 곧 복음의 사역이 있게 될 것이고, 그것을 통해서 순수하고 풍성한 복음의 온갖 규례 - 이것은 "하나님의 성을 기쁘게 하는 시내" 이다(시 46:4) - 가 있게 될 것이다. 뜨겁고 메마른 땅에 거처를 택한 "용(한글:"사랑")의 굴에" (34:9, 13) 이 시내물이 흘러 들어가 거기를 차지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 즉 유용한 산물들이 풍성히 "날 것이다." 기독교가 이방인들의 성읍에 심어져 크게 융성했을 때가 바로 이와 같았다. 그 성읍들은 여러 세대 동안 바벨론처럼(계 18:2) 용, 아니 오히려 귀신의 처소가 되어 왔던 것이다. 우상들의 신전의 성질이 바뀌었을 때, 그리고 그들이 기독교의 신앙으로 개종했을 때, 그 때에 용의 굴이 변하여 열매 풍성한 땅이 되었다.


📖35:6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Ⅲ. 신앙과 경건의 길이 열리게 될 것이다.

그것은 여기에서 "거룩한 길," 즉 거룩한 예배와 거룩한 교제의 길이라 불리우고 있다(8절). 거룩함이란 하나님의 본성과 의지에 맞는, 인간의 본과 의지의 정직이다. 거룩한 길이란, 하나님의 영광과 그를 즐거워하는 중에 누리는 인간들 자신의 지복을 바라보면서, 인간들이 걸어나아가야 하는 종교적 의무의 경로를 말한다. "우리의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실 때, 그는 그의 복음에 의해서 우리를 이 길로 이끄실 것인데, 그것은 앞에서 한 번도 묘사된 적이 없다."

1. 그것은 지정된 길이 될 것이다. 묵인의 길이 아니라, "대로" (大路) 곧 우리가 하나님의 권위를 지시를 받고 또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보호받는 그 길이 될 것이다.

그것은 왕의 대로, 곧 왕 중 왕의 대로이다. 따라서 우리가 그 길에서 잠시 쉴 수 있으나, 중단할 수는 없는 길이다. "거룩한 길" 은 하나님의 계명의 길이다. 그것은 (대로가 보통 그러하듯이) "옛적부터 있었던 선한 길" 이다(렘 6:16).


📖35:7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승냥이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35:8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며


2. 그것은 전용길, 곧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위해 택하실 길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깨끗지 못한 자는" 그 길을 더럽히거나 그곳을 가는 자들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지나가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세상의 길과는 구별된 단독적인 길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 세상에서 분리되어 있고 세상과는 일치하지 않는 길이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택하신 자들을 위한 것이 될 것이다" (시 4:3). 즉 그것은 그들을 위해 예비되어질 것이다. "구속함을 얻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 그들이 이 "즐거운 길" 에서 얻은 만족은 악한 세상의 방해가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을 것이다.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깨끗한 길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있는 부정을 피한" 자들이 그 길을 갈 것이며, 그들은 "그 길에서 더럽혀지지 않는" 자들이다.

3. 그것은 곧은 길이 될 것이다. 그곳을 지나기로 택한 "이 길의 행인은" 다른 일에서는 능력이 부족하여 "우매하나," 이 길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부터 아주 명백한 지시를 받기 때문에 "실로(失路)치 아니할 것이다" (한글은 난외).

그들이 자기들의 행위에 있어서 아무런 과오도 범하지 않게 된다거나 아무 일에도 실수가 없으리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죽음에 이르는 어떤 치명적인 비행을 범하지 않게 될 것이며, 그들의 길을 잃지 않으므로 그것을 다시 되찾아 그 여행을 잘 끝마치게 되리라는 것이다. 좁은 길에 있는 자들은 비록 어떤 사람은 이 골목으로 또 어떤 사람은 저 골목으로 치우쳐가며, 그 모두가 똑같이 옳은 길은 아니지만, 마침내는 모두 같은 목표점에서 만날 것이다. 따라서 결코 다시 넓은 길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진리의 성령께서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진리로 그들을 인도하실 것이다. 하늘 가는 길은 평평하여, 찾기 쉬운 길임을 명심하자. "하나님은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시어" 구원에 대해서 지혜롭게 만드셨다. "지식은 이해하고 있는 자에게는 쉽다."

4. 그것은 안전한 길이 될 것이다. "거기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도 없을 것이며" (9절), 아무 것도 "해하거나 멸하지" 않을 것이라 했다.

이 길을 철저히 지키는 자들은 사탄, 곧 그 울부짖는 사자가 미치지 못하며 그 악한 자가 건드리지 못한다. 거룩한 길로 가는 자들은 아무 것도 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 마음의 거룩한 안전과 평정을 계속 지닐 수 있다. 즉 그들은 재앙의 두려움을 이기고 평온할 것이다.

히스기야 시대에 열 지파의 포로 사건 얼마 후, 하나님께서는 거기에 정착한 식민지들을 싫어하셨기 때문에, "사자(lion)들을 그들 가운데 보내셨다" (왕하 17:25). 그러나 유다는 그 순전함을 지키므로, 거기에는 사자가 없을 것이다. "거룩한 길로" 행하는 자들은 부정한 것과 포학한 것을 스스로 떠남으로써, "패역한 세대에서 자신을 구원해요" 한다. 구원받은 자에게 속하고 싶은 자들은, "구속받은 자들이 걷는 길" 로 가야 한다.


 📖35:9 거기에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받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


Ⅳ. 이 길의 결국은 영영한 희락이 될 것이다(10절).

평강에 대한 이 귀중한 약속은 이제 곧 영혼의 끝없는 기쁨과 안식으로 끝날 것이다. 여기에 시온의 시민을 위한 희소식, 곧 피곤한 자를 위한 안식이 있다.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 따라서 그가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야 하는 자들이(계 14:4) "돌아오되, 시온에 이를" 것이다.

1. 전투하는 교회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할 것이다.

즉 그들은 바벨론으로부터 그들 자신을 건질 것이며(슥 2:7), "시온의 길을 물을" 것이며(렘 50:5), 결국 "그 길을 발견" 할 것이다(52:12).

하나님은 그들이 사로잡힘을 면할 문을 열어 주실 것이며, 많은 적들이 있을지라도 그 문은 그들에게 충분히 도움을 줄 것이다. 그들은 복음의 교회, 즉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시온 산" 에(히 12:22) 그들 자신을 연합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바벨론에서 건지운 것에 대한 기쁨과 찬미의 노래를 부르며 올 것이다. 바벨론에서 그들은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던 것이다(시 137:1). 믿음에 의해 복음의 시온의 시민이 된 자들은, "기뻐하며 길을 갈" 수 있다(행 8:39). 그들은 여호와의 길에서 노래할 것이며 항상 그를 찬미할 것이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하며 그들의 회개에서 나온 슬픔과 탄식은 거룩하신 위안의 능력에 의해 달아난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라.

2. 교회의 승리 속에서 하나님을 보고 즐길 것이다.

그들의 구속자의 인도 아래 "거룩한 길" 로 행하는 자들은 마침내 시온, 곧 하늘의 시온에 이를 것이며, 모두 한 덩어리가 되어 "그리스도의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설 것이다(유 24; 계 7:17). 그들은 노래하며 올 것이다. 그들이 "그들의 여호와의 기쁨 안으로 들어올" 때, 그것은 이 세상의 어떤 기쁨도 결코 줄 수 없는 기쁨, 즉 섞인 것이나 방해물이나 끝남이 없는 "영영한 희락" 이 될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마음을 채워 그들의 완전하고도 영구한 만족이 될 뿐만 아니라, 은혜의 장식물과 영광의 면류관으로서, 승리의 표적의 화관으로서 "그 머리 위에" 씌워질 것이다. 그들의 기쁨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될 것이다. 여기 이 세상에서처럼 더 이상 비밀의 것이 되지 않을 것이다. 즉 그것은 선포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그들은 그것으로 서로를 격려할 것이다. 그 때, 그들은 이 세상에서는 도저히 기대할 수 없었던 기쁨과 즐거움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해가 떠오르기 전의 밤의 그늘처럼, "슬픔과 탄식이" 영원히 "달아날 것이다."

이처럼 이 예언들은 앗수르 침입에 관한 것으로서, 그 재앙 아래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부축해 주고, 또 그들이 거기에서 건져지는 일에서 보다 더 높은 일을 기뻐하도록 그들에게 지시하면서 끝을 맺고 있다. 영생에 대한 우리의 기쁜 소망과 전망은 현재의 모든 슬픔과 기쁨을 함께 삼켜 버리고 말 것이다.


 📖35:10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