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31:31 <새 언약>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1: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1: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1: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1:3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셨고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정하였고 바다를 뒤흔들어 그 파도로 소리치게 하나니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31:36 이 법도가 내 앞에서 폐할진대 이스라엘 자손도 내 앞에서 끊어져 영원히 나라가 되지 못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1:37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위에 있는 하늘을 측량할 수 있으며 밑에 있는 땅의 기초를 탐지할 수 있다면 내가 이스라엘 자손이 행한 모든 일로 말미암아 그들을 다 버리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1:38 보라, 날이 이르리니 이 성은 하나넬 망대로부터 모퉁이에 이르기까지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1:39 측량줄이 곧게 가렙 언덕 밑에 이르고 고아로 돌아
31:40 시체와 재의 모든 골짜기와 기드론 시내에 이르는 모든 고지 곧 동쪽 마문의 모퉁이에 이르기까지 여호와의 거룩한 곳이니라 영원히 다시는 뽑거나 전복하지 못할 것이니라
매튜헨리/옥스퍼드
Ⅲ. 하나님께서 그들과 계약을 갱신하실 것이라 한다. 그러므로 이제 그들이 갖게 된 모든 축복은 섭리에 따른 것일뿐 아니라 이제 약속에 의한 것이 되었다.
이제 그들은 행복과 안정을 누리게 된다. 이 계약은 후에 실현될 복음의 시대로 상징한다. 사도들은 이 계약을 복음의 은총으로 후에 이해한다(히 8:8, 9 등). 히브리서 8장 8,9절에서 본문의 구절 이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자들과 맺어질 은총의 계약의 핵심으로 인용되고 있다.
이제 다음과 같은 사실을 고찰해 보자.
1. 누가 누구와 맺은 계약인가?
계약의 대상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 곧 그리스도 복음의 교회요, "평강이 머무는 하나님의 이스라엘" (갈 6:16) 곧 믿음의 아브라함과 기도의 야곱의 영적인 자손들이다. 유다와 이스라엘은 둘로 분열된 왕국이었다. 그러나 포로에서 돌아온 후 그들은 연합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같은 사랑을 그들에게 부어 주신다. 또한 그리스도의 교회와 계약에 있어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이같이 연합된다.
2. 계약의 본질.
이것은 "새 계약" 으로 "그들의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하다." 즉 시내산에서 그들과 맺은 계약 같지도 않으며 아담을 창조할 때의 그들과 맺은 계약과 같지도 않다. 이 새 계약은 본질상 은총의 계약이다. 복음 시대에 있을 새 계약에 비하면 옛 계약은 소극적인 사면에 불과하다. 이 새 계약에 근거하여 죄인들도 회개하면 구원을 받는다. 또 장차 올 메시야에 대한 신앙과 그의 피에 대한 신앙이 이 계약을 확증시켜 준다. 이러한 새 계약은 율법적인 희생 제사에 기초한 옛 계약에 의하여 모형이 제시되었었다(출 24:7, 8). 이외에도 이 계약은 그전 것에 비교할 때 여러 가지 면에서 새 계약이라 칭할 만하다. 예법과 약속들은 더욱 영적이요, 천상적으로 되고 있으며 나타날 일들은 더욱 분명해진다. 하나님이 전에 그들과 맺었던 계약은 그들이 장님이나 절름발이나 노약자이기나 했던 것처럼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리라" 는 계약이었다. 이 "언약을 그들은 파하였다." 옛 계약을 맺으신 분도 하나님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깨뜨린 것은 인간이었음을 기억하자. 이로 보건대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요, 우리들 자신에게는 죄와 파멸밖에는 없음을 기억하자. 하나님은 "그들에게 남편이 되셨다." 하나님이 자진하셔서 그들과 혼인관계를 맺으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 계약을 파기하였다. 그 계약은 하나님과 그들 사이에 이루어진 결혼 계약이었는데 그들은 우상을 섬김으로 그 계약을 파괴했고 이런 행위는 곧 영적인 간음 행위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비하고 상냥하며 보살펴 주시는 남편이시었다. 그는 우리에게 신실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그에게 거짓되었다. 이것으로 하나님과의 비극적인 이별이 이루어진 것이다.
복음 시대에 있을 새 계약에 비하면 옛 계약은 소극적인 사면에 불과하다. 이 새 계약에 근거하여 죄인들도 회개하면 구원을 받는다. 또 장차 올 메시야에 대한 신앙과 그의 피에 대한 신앙이 이 계약을 확증시켜 준다. 이러한 새 계약은 율법적인 희생 제사에 기초한 옛 계약에 의하여 모형이 제시되었었다(출 24:7, 8). 이외에도 이 계약은 그전 것에 비교할 때 여러 가지 면에서 새 계약이라 칭할 만하다. 예법과 약속들은 더욱 영적이요, 천상적으로 되고 있으며 나타날 일들은 더욱 분명해진다. 하나님이 전에 그들과 맺었던 계약은 그들이 장님이나 절름발이나 노약자이기나 했던 것처럼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리라" 는 계약이었다.
이 "언약을 그들은 파하였다."
옛 계약을 맺으신 분도 하나님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깨뜨린 것은 인간이었음을 기억하자. 이로 보건대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요, 우리들 자신에게는 죄와 파멸밖에는 없음을 기억하자.
하나님은 "그들에게 남편이 되셨다." 하나님이 자진하셔서 그들과 혼인관계를 맺으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 계약을 파기하였다. 그 계약은 하나님과 그들 사이에 이루어진 결혼 계약이었는데 그들은 우상을 섬김으로 그 계약을 파괴했고 이런 행위는 곧 영적인 간음 행위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비하고 상냥하며 보살펴 주시는 남편이시었다. 그는 우리에게 신실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그에게 거짓되었다. 이것으로 하나님과의 비극적인 이별이 이루어진 것이다.
3. 새 계약의 특성.
이제 그들은 모두 영적인 축복을 받게 된다. "내가 너희에게 가나안 땅을 주겠고 여러 가지 조목의 축복을 내리리라" 는 그러한 축복이 아니다. 그 대신 그들에게 "용서와 평안과 은혜와 좋은 생각과 아름다운 마음을 주시겠다" 고 하신다. 그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약속하신다.
그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약속하신다.
(1) 그들로 하여금 맡은 바 임무에 자진하여 충성하도록 하게 하시겠다고 하신다.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겠다" 고 하신다.
내가 그들에게 새로운 율법을 주겠다고 하신 뜻이 아니다[가테이커씨(Mr. Gataker)가 이 사실을 바르게 지적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도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케 하러 왔다" 고 하셨다. 다만 같은 율법을 전에는 돌 판에 새기었으나 이제는 성령의 손가락으로 그들의 마음 판에 새기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율법을 모든 믿는 자들의 마음에 새기시사 그들로 하여금 이 율법에 친숙하게 되고 또 사건에 준비가 되게 하신 다. 그것이 마음에 새기어졌으므로 그것을 적용해야 할 때 손쉽게 적용하게 하신다(잠 3:3).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율법을 주의 깊게 지키도록 하신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 마음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더욱 그것을 사모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복종하는 마음을 주신다는 말이다. 본문에 이러한 내용이 약속되고 있다. 그러기에 이 축복을 기도로써 간구해야 한다. 우리는 주어진 의무로 의식적으로 또한 기쁨으로 완수해야 한다.
(2)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 자신과 교분 관계로 맺게 하겠다고 하신다.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하신다."
즉 하나님은 그들에게 만사에 충족하신 분이 되실 것이며 백성들은 하나님에게 충성스러운 백성이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모든 행복의 핵심은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 되심에 있다. 하늘에 있는 본향은 세상 나라에 비할 것이 못된다(히 11:16; 계 21:3). 우리가 그의 백성이 되는 것은 우리편에서 갖추어야 할 조건이다(참으로 기꺼이 하나님에게 백성되기를 자원하는 사람들 그들에게만이 하나님은 하나님되신다). 이 약속은 한 걸음 더 나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의 은총에 의해서 그의 백성으로 삼으시겠다고 하신다. 그들은 마지못하여 그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자원하는 백성이 된다. 누구든지 그의 백성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 것이다.
(3)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할 것이며 이 지식으로 말미암아 온갖 선한 축복의 파급 효과가 있게 되리라 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올바르게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바라며 그를 섬길 것이요, 그를 신뢰하게 될 것이다(34절). 그러므로 본문에 "다 나를 앎이니라" 하신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알기를 기뻐할 것이며 그를 아는 방법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제 그를 아는 길이 온 땅에 알려질 것이다. 오랫동안은 유대만이 하나님을 알았다. 구약 시대는 이방인들에게는 무지의 시대였다. 그들에게 참 하나님은 알지 못하는 신이었다. 그러나 구약 시대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 복음의 시대에 이르러 하나님께 속한 일들은 더욱 분명하고 알기 쉽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백성들이 모세를 쳐다볼 수가 없으므로 모세가 "얼굴을 천으로 가리웠던 것" 이상으로 가장 천한 사람들도 이와 같이 그를 알게 되리라고 하신다. 이렇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일반화되므로 이전처럼 교육을 시킬 필요가 없게 된다. 어떤 이들은 이 말씀을 과장된 표현법으로 여긴다(그리고 유대인들의 무감각한 상태를 깨우기 위하여 이러한 표현법이 필요한 것이라고 한다). 그들에 의하면 이 말씀은 복음 시대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율법 시대에 그들이 하나님을 알았던 것이 이상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과장되게 표현했다고 본다.
어떤 이들은 또 이렇게도 생각한다. 즉 복음시대에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 는 위임을 받은 사람들에 의한 공중 설교가 율법 시대 보다 훨씬 많고 또 계속될 것을 뜻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전처럼 가족이나 이웃끼리의 소규모의 복음 전달 방법의 의미가 감퇴된 것으로 본다. 제사장들은 가끔 성전에서 비교적 적은 무리에게 가르쳤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인들의 집회가 자주 개최되므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교회의 여러 기관들을 통하여 아름다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가르쳐질 것이라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이렇게 생각한다[가테이커씨(Mr. Gartaker)가 이 사실을 말하였다]. 즉 하나님에 속한 일에 대한 이해가 이같이 명백해진 것은 교훈이라는 간접적인 방법에 의하지 않고 어떤 직접적인 계시에 의하여 가르침을 받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론적인 얘기는 모두 하나님의 속한 일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하여 전보다 더 분명하여졌다는 말이다(딤후 1:10). 또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리스도의 은총에 의하여 전보다 더욱 분명히 하나님에게 속한 일들을 깨닫게 되었다는 의미이다(엡 1:17, 18).
(4) 이 모든 축복들을 얻기 위하여 먼저 죄가 용서될 것이라 한다.
죄의 용서가 다른 모든 축복의 근원이 된다. 그러므로 "내가 그들의 죄를 사하겠다" 고 하신다. 즉 그들에게 죄를 묻지도 않으시며 죄를 따라서 그들을 다루시지도 않겠다는 말이다. 용서하시고 아주 잊으실 것을 말씀한다. 그러므로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고 하셨다. 우리에게 축복이 보류되는 것은 죄 때문이다. 죄가 하나님 사랑을 막아 버린다. 용서하시는 자비를 힘입어 죄를 내어버리자. 장애물들이 제거될 때 하나님의 은혜가 강처럼, 급히 흐르는 하수처럼 쏟아지는 것이다.
●선교의 약속 (예레미야 31:35-40)
앞에서는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장차 이루어질 영광스러운 사실들이 취급되었다. 포로에서 돌아옴으로 시작되었던 유대 교회의 신기원은 결국 그리스도의 교회의 시작으로 종료되었고 그때에 제시되었던 모든 약속들은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완성되었다. 그런데 과연 우리들은 이 약속들을 믿어도 좋은가? 본문에는 그에 대한 답변으로 그 약속들이 다시 재기되고 있다. 그리고 그 약속 가운데서 포함된 축복들이 영원할 것을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확증해 주고 있다. 본문에서 약속된 가장 큰 사실은 세상이 있는 동안 하나님은 이 세상에 교회를 유지하실 것이라는 것이다. 때때로 교회가 낮아질 때도 있으리라. 그러나 그것은 다시 솟아오를 것이며 교회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될 것이라 한다. 교회는 "반석 위에 세워진 연고로 지옥의 세력이 그것을 넘어뜨리지 못한다." 이 일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확고히 해 주기 위하여 본문에 두 가지 사실이 언급된다.
Ⅰ. 세계라는 건물의 존재. 그리고 그 건물의 견고함과 영속성은 그의 교회의 설립을 착수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신실하심의 증거가 된다.
"태초에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며" (히 3:4) 그 분이 현재도 만물을 존재하게 하신다. 자연계의 지속적인 영화로운 모습을 보므로 우리는 은총의 나라의 영광이 영원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게 된다. 노아의 홍수 후에 세상을 물로 멸하지 않으리라 맹세하신 것처럼 은혜의 나라는 영속적인 것이다.(사 54:9) 더욱 상세하게 본문을 고찰하여 보자.
1. 자연계의 영광을 말함.
그리고 이 대자연의 하나님을 그들의 하나님으로 영원토록 모시는 자들의 행복이 어떠한가를 말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기억하자.
(1) 천체의 규칙적이고 변함없는 움직임을 기억하자.
하나님은 **자연의 첫 번째 동인(動因)**이시며 그 최상의 감독자이시다. 그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셨다" (35절). 그가 처음에 해를 그렇게 지으셨을 뿐 아니라 지금도 그와 같도록 관할하신다. 태양이 내는 빛, 그 열 그리고 모든 태양의 영향력은 계속 대창조자에게 의존되고 있다. 또한 "그는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규정하셨다." 그들의 움직임이 "규정" 되었다고 하였다. 이 말은 그들이 규칙적이며 법칙에 의하여 움직이기 때문이며 그들은 법칙 아래 결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2) 바다의 운행을 기억하고 또 거만스러운 파도를 저지시키는 힘을 기억하자.
본문은 다음과 같이 전한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바다를 나누시며 파도가 격동할 때에 바다를 좌정시키시도다" (한글 개역과 다소 틀림:역자). 즉 바다가 극심하게 요동칠 때는 하나님께서 그 파도를 규제하시며(22절) 곧 잠잠케 하사 다시 평온케 하신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해야 한다. 그는 천체의 질서를 유지하실 뿐 아니라 바다의 격동을 규제하신다.
(3) 하늘의 광대함과 궁창의 무한함을 기억하자.
위대한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이와 같은 대자연을 운행하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본문은 "위의 하늘을 측량할 수 없다" 고 고백한다(37절).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무한한 우주를 충만하게 채우신다.
(4) 창조의 세계의 신비를 기억하자.
이 피조물계에 우리의 운명도 속해 있고 우리는 이 피조물계와 깊은 관련을 갖는다. "창조자께서 땅을 공간에 다시므로 밑에서 땅의 기초를 찾을 수 없음이여" (욥 26:7)라 하였고(한글 개역과 다소 다름:역자 주) "그 주초는 무엇 위에 세웠는지 우리가 알지 못한다" (욥 36:6)고 하였다. 이렇게 이 세계는 신비로운 곳이다.
(5) 이 모든 자연이 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자(36절). 그러므로 본문은 "이 규정이 내 앞에서 폐할 수 없도다" 라 하였다(한글 개역과 다소 틀림:역자 주).
하나님께서는 천체와 이 땅을 그리고 그것들의 움직임을 항상 보살피신다. 그가 그것들을 지으셨다. "천지가 그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그의 종된 연고이다" (시 119:90, 91). 하늘에는 자주 구름이 덮히기도 하고 태양과 달은 자주 구름에 가리운다. 땅이 흔들리기도 하며 바다가 요동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제 위치를 지키며 움직이고 있으며 경로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를 보고 우리는 창조주의 선하심과 능력과 성실하심을 인정해야만 한다.
2. 하나님의 은혜의 나라가 확고부동하리라는 사실이 언급되고 있다.
우리는 "이스라엘 자손이 영영히 나라가 될 것" 임을 확신해도 좋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교회인 영적인 이스라엘은 "거룩한 나라요, 선택된 백성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벧전 2:9). 육에 속한 이스라엘이 국가로서의 자격을 잃을 때 "약 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으며" (롬 8:8) 그들이 악을 행하였지만 "이스라엘 자손의 행한 모든 일을 인하여 그들을 다 버리지는 않을 것이라" 한다(37절)(한글 개역과 다소 틀림:역자 주).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서 이스라엘을 폐하실 수도 있었지만 그가 그들을 폐하시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들의 조국에서 쫓아냈지만 일시적인 것에 불과한 것이요, 영구히 그들을 추방하신 것은 아니라 한다. 물론 그들 중 몇 명은 추방되었으나 다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바울 사도의 말씀도 이 사실을 말하고 있는(롬 11:1)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고 하였다. 왜냐하면 "이제도 남은 자가 있기 때문이다" (롬 11:5). 이 사실은 비록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불신으로 멸망을 당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모든 씨를 멸하시지는 않으리라" 는 약속을 보증할 만큼 충분한 것이었다.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고찰해 봄으로 이러한 우리의 신념에 확신을 더할 수 있다.
(1) 교회를 보존해 주시기로 약속하신 하나님은 전능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다.
그는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보존하시는 분이며 우리를 도우시는 능력은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의 이름에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으시다.
(2)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돌보실 뿐만 아니라 이 보살핌을 통하여 자신이 영광을 받으시기를 바라신다는 사실이다.
그가 영광을 받으시는 길은 이 세상 속에 교회를 두시고 그의 이름을 찬양할 백성을 확보하심에 있다. 그 외에 그가 영광 받으실 길은 없다.
(3) 만일 창조의 질서가 태초에 확실히 고정되었기 때문에 지금도 변함없이 계속된다면 또 창조의 질서에 어떤 변화가 필요없기 때문에 변경되지 않고 있다면 같은 이유로 은혜를 내리시는 방법도 변치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은총도 태초에 잘 확립되었기 때문이다.
(4) 스스로 교회를 보존하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은 세상의 기초를 든든히 하시겠다고 하신 말씀을 성실히 실행하시므로 교회 보존의 약속도 지키시리라는 사실이다.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영원한 약속" 을 하셨기 때문에 그 계약에 대하여 신실하셨던(창 9:9, 16)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 또한 그의 영적인 자손들과 맺은 계약에도 거짓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후자의 계약 역시 "영원한 계약" 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잘못 저지른 범죄도 그것이 아무리 많다고 하여도 계약이 갖고 있는 자비로운 의도를 제거하지는 못한다(시 89:30 참고).
Ⅱ. 파괴된 예루살렘의 재건과 확장.
이 사업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교회 곧 하늘의 예루살렘을 위하여 행하실 위대한 역사(役事)의 전조가 된다(38-40절). 비록 오래 지연될지는 알 수 없으나 "날이 이르리라" 고 하신다. 그 때에는 아래와 같은 일들이 이루어진다.
1. 예루살렘이 다시 전처럼 웅장하게 건축된다.
그 성전의 면적이 지명에 의해 정확히 설명되고 있고 그것을 통하여 측량줄이 띠워진다. 과연 느헤미야가 세운 성벽은 예언이 그대로 응하여 본문에 언급된 대로 "하나넬 망대" 에서부터 시작되었고(느 3:1) 본문에 언급된 만큼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본문에서 "모퉁이 문과 가렙산" 이라고 칭해지고 있는 곳이 정확히 어디인지는 결정할 수 없다.
2. 성전이 완성되면 그것은 하나님께 봉헌되고 그를 예배하는 데 쓰일 것이다.
고로 본문에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할 것이라" 하였다(38절). 또한 외곽과 성전 뜰까지 "여호와에게 성별될 것이라" 고 한다. 이제 성전은 그전처럼 우상으로 더러워지지 않고 하나님만이 찬양되고 높여진다. 전처럼 온 도성 전체가 곧 성전이며 거룩한 곳이 된다. 새 예루살렘은 이같이 성이 곧 성전이므로 따로이 성전이 필요 없게 된다.
3. 이 성전은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지어졌고 또 그를 찬양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므로 "영영히 다시는 뽑히거나 전복되지 아니한다." 즉 다시 말하면 이 도성은 오래 지속될 것이다.
옛 도성이 다윗왕으로부터 포로기까지 유지되었듯이 새 예루살렘도 그들이 귀향한 때부터 성의 멸망까지는 오랜 시간이 경과될 것이라 한다. 그러나 본문의 약속은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온전히 이루어진다. 이 교회는 영적인 이스라엘이므로 하나님이 멸하지 않으신다. 또한 이 교회는 거룩한 성이므로 인간들의 어떤 힘으로도 "뽑거나 전복시킬 수 없다." 예루살렘처럼 주님의 교회도 때로는 황폐해질 때도 있으리라. 그러나 교회는 다시 회복된다. 주님의 교회는 폭풍우도 견뎌내며 성장하므로 "지옥의 세력이 교회를 당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