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4월 17일 목요일 묵상구절 렘34:8-22 <여호와 앞에서 맺은 계약을 어기다>

Jeehyun 2025. 4. 17. 13:25

맥체인성경읽기

레위기 21, 시편 26, 27, 전도서 4, 디모데전서 6

묵상구절

34:8 <여호와 앞에서 맺은 계약을 어기다> 시드기야 왕이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백성과 한 가지로 하나님 앞에서 계약을 맺고 자유를 선포한 후에 여호와께로부터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34:9 그 계약은 사람마다 각기 히브리 남녀 노비를 놓아 자유롭게 하고 그의 동족 유다인을 종으로 삼지 못하게 한 것이라

34:10 이 계약에 가담한 고관들과 모든 백성이 각기 노비를 자유롭게 하고 다시는 종을 삼지 말라 함을 듣고 순복하여 놓았더니

34:11 후에 그들의 뜻이 변하여 자유를 주었던 노비를 끌어다가 복종시켜 다시 노비로 삼았더라

34:12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34:13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너희 선조를 애굽 땅 종의 집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며 이르기를

34:14 너희 형제 히브리 사람이 네게 팔려 왔거든 너희는 칠 년 되는 해에 그를 놓아 줄 것이니라 그가 육 년 동안 너를 섬겼은즉 그를 놓아 자유롭게 할지니라 하였으나 너희 선조가 내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였느니라

34:15 그러나 너희는 이제 돌이켜 내 눈 앞에 바른 일을 행하여 각기 이웃에게 자유를 선포하되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서 내 앞에서 계약을 맺었거늘

34:16 너희가 돌이켜 내 이름을 더럽히고 각기 놓아 그들의 마음대로 자유롭게 하였던 노비를 끌어다가 다시 너희에게 복종시켜 너희의 노비로 삼았도다

34:17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나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각기 형제와 이웃에게 자유를 선포한 것을 실행하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너희를 대적하여 칼과 전염병과 기근에게 자유를 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너희를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어지게 할 것이며

34:18 송아지를 둘로 쪼개고 그 두 조각 사이로 지나매 내 앞에 언약을 맺었으나 그 말을 실행하지 아니하여 내 계약을 어긴 그들을

34:19 곧 송아지 두 조각 사이로 지난 유다 고관들과 예루살렘 고관들과 내시들과 제사장들과 이 땅 모든 백성을

34:20 내가 그들의 원수의 손과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의 손에 넘기리니 그들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먹이가 될 것이며

34:21 또 내가 유다의 시드기야 왕과 그의 고관들을 그의 원수의 손과 그의 생명을 찾는 자의 손과 너희에게서 떠나간 바벨론 왕의 군대의 손에 넘기리라

34:2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 성읍에 다시 오게 하리니 그들이 이 성을 쳐서 빼앗아 불사를 것이라 내가 유다의 성읍들을 주민이 없어 처참한 황무지가 되게 하리라

매튜헨리/옥스퍼드

옥스퍼드 주석

●바벨론의 포로가 될 이스라엘 운명에 대한 예고 (예레미야 34:8-22)

본문에는 앞으로 있을 특별한 사건이 예언되고 있다. 이 예언의 진실성을 밝히기 위하여 이 사건의 과정이 고찰되어야 한다.

Ⅰ. 예루살렘이 갈대아 병사들에 의하여 겹겹이 싸여 있을 때에 왕과 백성들이 개혁하기를 결정한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종들에 관한 것이었다.

1. 하나님의 율법의 한 가지 특별한 규정 같은 율법에는 같은 동족으로서 종이 된 사람들을 7년 이상 부리지 못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종으로서 그들이 7년의 연한을 채우면 그들은 의무를 다한 것이 되어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이스라엘이 동족에게 종으로 팔리는 경우는 빚을 값기 위한 경우이거나 또는 범죄하였을 경우 그에 대한 처벌로서 재판관이 그들을 팔아 넘기는 경우였다. 그러나 동족들과 이방인들 사이에는 그 규정의 차이가 있었다. 즉 다른 민족들로서 전쟁 포로로 잡혀왔거나 팔려온 사람들은 영구적인 종으로 부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동족들은 길어야 7년 이상은 부릴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언약을 그들의 "선조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 그들과 맺은 언약이라고 부르신다(13,14절). 이 법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최초의 형법이었다(출 21:2). 이 율법이 재정된 데는 그럴 말한 이유가 있었다.

(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명예로운 일을 이루셨다. 그리고 그는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그 명예로 보존케 하고자 하셨다. 그리하여 그는 이스라엘과 다른 민족 사이에 차별을 두신 것이다.

(2)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애굽의 종되었던 곳에서 이끌어 내셨다. 따라서 그는 그들이 이 큰 사랑에 대한 감사의 염을 품게 하기를 원하셨다. 즉 애굽인들이 그들의 조상들에게 항하였던대로 그들이 행하지 말고 종된 자들을 그들의 집으로 돌려보냄으로 이 사실을 기억하기를 원하셨다. 그러므로 본문에 그 율법의 근거로 이 해방의 사실이 언급되고 있다(13절).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또한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도록 강권하신다. 우리는 우리가 석방된 것처럼 형제들에게 자유를 주어야 하며 용서받은 것처럼 또한 용서해야 한다. 또한 위로받은 것처럼 위로해야 한다. 이것을 언약이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요구된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사랑을 계속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2. 이 율법을 그들과 그들의 조상들이 파기하였다. 하나님의 계명과 언약보다는 세상적인 욕심이 더욱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들의 종들이 7년을 종노릇하였을 때 그들은 종을 처음 두었을 때보다 생활이 윤택해진 것을 재빠르게 계산해 보았다. 그리고 하나님 자신이 율법으로 종들을 자유하게 명하셨음에도 그들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러므로 본문에 "너희 선조가 나를 듣지 아니하였다" 고 하였다(14절).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의 조상 적부터 이 같은 범죄를 저지른 것이었다. 그들은 조상들도 그렇게 했으니까 자기들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 법이 이렇게 폐지되었으므로 그들의 종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마련해 주신 법의 혜택을 맛볼 수 없었다. 그들이 이렇게 하나님의 특별법을 위반하였으므로 그들 자신이 하나님의 규정한 조항이나 관례법에 호소할 수 없었다. 그들과 그들의 조상들의 이 죄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이방의 종이 되게 하셨고 그것은 마땅한 형벌이었다.

3. 그들이 갈대아 군대들에 의하여 포로가 되어 꼼짝 못하게 되었을 때 그들이 이 일에 잘못한 사실을 전해 들었으면 즉시 회개하고 하나님이 정하신 율법에 의하여 자유를 얻을 자격을 갖춘 그들의 종들을 즉시 석방해야 했었다.

바로도 재앙이 그에게 닥쳤을 때 "백성들을 가도록 허락하였고" 이스라엘과 그렇게 하리라는 언약을 맺었었다. 그러므로 그들도 그렇게 해야 마땅한 것이었다.

(1) 예언자들은 꾸준하게 이스라엘이 지은 죄에 대하여 그들을 경호했다.

그들은 예언자들로부터 동족인 히브리 노예들을 석방해야 한다는 사실을 들었다(10절). 그들은 스스로 율법책에서 이 사실을 읽고 깨달아야 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읽지도 않았고 그 말씀을 읽어야 된다는 사실을 유의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예언자들이 율법에 어떻게 기록되었는가를 그들에게 알려 주었다. 여기서 우리는 말씀을 전할 의무를 깨닫게 된다. 백성들이 설교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은 그들이 기록된 말씀을 읽고 그대로 행하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2) 상하 일체가 되어 모든 사람들이 이 개혁안에 찬성하였다.

왕과 귀족들과 모든 백성들이 그들의 행동에 의하여 아무리 큰 손해와 피해를 입는다 할지라도 노예들을 석방하기로 합의하였다. 왕과 귀족들이 이 훌륭한 사업을 시작하자 백성들은 그대로 따랐다. 지도적인 인물들의 모범과 영향력은 가장 뿌리깊은 부패를 능히 근절시킬 수 있는 것이다.

(3) 그들은 이 일을 행하리라고 언약을 맺었고 또한 엄숙히 선서함으로 자율적으로 규제 조치를 취하였다.

이렇게 함으로 그들은 하나님과 또 저희들끼리 규약을 맺은 것이 되었다. 하나님이 계율을 통하여 우리를 규제하고자 하시는 것들은 이 사실에 대해 우리들끼리 서로 약속함으로 구속력을 발동시키는 것이 유익하다. 이 계약은 매우 엄숙한 것이었다. 그들은 성전 곧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서 내 앞에서" 언약하였다(15절). 즉 하나님의 특별하신 임재 아래서 맺은 것이요 성전 안에서의 이러한 선서는 그들에게 경외감을 안겨 주는 것으로 그들로 하나님에게 매우 진실히 서약하도록 하는 효과가 있었다. 그 일은 의미있는 상징적인 행위에 의하여 효력이 발생하였다. 그들은 "송아지를 둘로 쪼개고 그 두 사이로 지나서 언약을 세웠다." 그때 그들은 다음과 같은 끔찍한 저주를 선포하였다. "만일 우리가 지금 약속한 것은 실행하지 않을진대 우리들도 이 송아지처럼 둘로 쪼개질지어다" 라고 하였다. 이 송아지는 아마도 하나님에게 희생 재물로 드려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하나님이 이 계약에 증인으로 참석하셨다는 의미가 된다.

하나님께서 아브함과 계약을 맺으셨을 때 그 계약의 효력이 발생되었다는 뜻으로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갔다" (창 15:17). 이것은 동맹을 맺는 의식이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를 효율적으로 감당하기 위해서는 진노와 저주에 대한 공포심을 우리에게 경고로 삼는 것도 유익한 일이다. 만일 우리가 이 진노와 저주를 멸시하며 살아간다면 우리는 당장 그 속으로 빠져들고 만다. 그 진노는 죄인들을 찌르는 진노이다(마 24:51, 공동 번역 성경 참고). 또한 이와 같이 구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표정은 그 인상을 깊게 그리고 지속적이게 하는데 효과적이다.

(4) 이로서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과 또한 그와 맺은 계약에 자신들을 복종시켰다. 이번 한 번에 불과하였지만 그들은 종들을 돌아가게 하였다. 그러나 이때는 성이 포위되었고 따라서 그들은 마지 못해 그렇게 하였다. 여하간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정당히 행하였다(15절). 비록 곤경 때문에 억지로 그렇게 하였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이 일로 인하여 기뻐하셨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이 기회에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기며" 가난한 종들을 불쌍히 여겼다면 그들의 평안함이 보다 연장될 수도 있었으리라(단 4:27).

Ⅱ. 포위망이 풀리고 위험이 물러가리라는 희망이 엿보이자 그들은 자신들이 돌이킨 행위를 후회하고 그들이 행한 선을 폐기하고 석방한 종들로 다시 전처럼 종노릇하도록 강요하였다.

1. 지금은 "바벨론 왕의 군대가" 그들에게서 떠나 있었다.

애굽 왕 바로는 바벨론 왕의 승승장구의 행진을 저지하려고 그 군대를 이끌고 왔다. 이 소식이 전하여 지자 갈대아인들은 우리가 37장 5절에서 볼 수 있는 것같이 한동안 포위망을 풀었던 것이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물러갔다." 개전의 징후만 보였는데도 하나님은 즉시 그의 심판을 멈추시었다. 노하기는 더디하시고 긍휼을 내리시는 데는 빠르신 하나님을 본문에서 우리는 발견한다. 그들이 그들의 종들에게 자유를 주자마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유를 주셨다.

2. 이스라엘은 그들을 포위하였던 군사들에게서 안전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게 될 만하자 다시 종들을 불러 그들을 섬기도록 강요하였다.

이 사실은 11절에 말씀되었고 다시 16절에 말씀된다. 이 행위는 그들의 종들을 크게 모욕하는 것이었다. 종들에게 있어서 자유의 즐거움을 잠간동안 맛본 후 다시 종노릇한다는 것은 죽기보다 못할 일이었다. 종노릇을 하는 데다가 마음의 평정도 지닐 수 없다면 이 얼마나 괴로운 일이겠는가. 그러나 무엇보다 이 행위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함으로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은 어떠한 위력도 없는 것처럼 그가 그들에게 명한 계명을 무시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고 싶은 대로 계명을 지킬 수도 있고 파할 수도 있다고 여겼다.

또한 이러한 행위는 그들의 하나님과 맺은 계약을 경멸하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이번 처사는 그들이 계약을 위반할 경우 그들에게 임할 진노를 경멸하는 행위였다. 이 사건은 또한 하나님이 거짓된 약속에 의해 속아 넘어가기나 하는 것처럼 전능하신 분을 우롱하는 행위였다. 그들은 자기들의 이익만 얻고 그 이상의 책임은 지지 않으려고 하였다. 이러한 짓은 입으로는 하나님을 속이고 혀로는 그에게 아첨하는 행위였다. 마찬가지로 이 일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멸이었고 심판을 무시하는 것이었다. 심판이 잠깐 중단되었을 뿐인데 그들은 심판이 다시는 계속 되지도 않고 재발되는 일도 없는 것처럼 여겼다. 집행 유예라는 것은 죄의 사면과는 성격이 다른 것이다. 만일 집행유예를 받은 죄이니 자중하지 않고 형의 유예로 용기를 얻어 범죄를 다시 저지르면 더욱 가중한 형벌이 가해지는 법이다.

Ⅲ. 하나님에 대한 이 끔찍한 범죄 때문에 그들은 본문에서 엄중한 심판의 경고를 받는다. 그러므로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단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니라" (갈 6:7) 하였다.

거짓된 회개와 사기성을 띤 계약 또한 일시적인 회심에 의하여 하나님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결국에는 스스로를 속이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왜냐하면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 이시기 때문이다(출 34:14).

본문에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깊은 불쾌감이 감도는 분위기 속에서 심판이 경고되고 있다.

1. 이스라엘이 그들의 종들을 그들이 원하는 대로 가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으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들에게 무제한으로 모든 심판을 내리시는 자유를 행사하신다고 한다(17절).

그러므로 "너희가 형제와 이에게 자유를 선언한 것을 실행치 아니하였도다" 라고 본문에 기록되고 있다. 실상 그들이 종들에게 자유를 주기는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그 상태를 지속시키지 못하고 다시 번복시켰기 때문에 참으로 그 종들을 놓아 준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즉 factum non dicitur quod non perseverat-즉 끝까지 지속되지 않는 것은 실천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란 말과 같다. 중도에서 그쳐버린 의로운 행위는 곧 잊혀질 것이며 또 전혀 그런 일이 있지도 않은 것처럼 여겨지고 말게 된다(겔 18:24).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자유를 선언하여 너희로 나를 섬기지 못하게 하겠고 너희를 나의 보호의 대상에서 제외하리니 이는 내게 충성을 저버린 연고라. 이제 너희를 칼과 염병과 기근에 붙여 흩으리니 이제 너희가 이 세 가지 심판 가운데 하나를 고르도록 하라" 고 말씀하신다. 여러 심판 가운데 한 가지를 택하는 자유는 다윗에게도 주어진 것이었고 이 선택의 문제는 다윗을 큰 곤경에 처하게 하였다(삼하 24:14). 하나님의 율법에 스스로 복종하려고 하지 않는 자들은 이로써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에 복종할 수밖에 없음을 기억하자. 그러나 이 사실은 죄를 범하는 자유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보여 준다. 그 결과는 견딜 수 없는 심판을 자초하는 길일 따름이다.

2.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종들을 다시 집에 억류시켰으므로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세계 열방 중에 흩어지게 할 것이라" 하신다.

거기서 그들은 노예로 지내게 될 것이요, 자유민으로의 특권은 바라지도 못하게 된다.

3. 이스라엘이 저주의 맹세로 이룬 계약을 깨뜨렸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계약을 어겼을 경우, 그들 스스로에게 저주한 징벌을 그들에게 내리실 것이라 한다.

그들이 말한 대로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신다. 그러므로 그들의 운명이 맹세한 대로 되고 말게 된다. 그들이 계약 조건을 수행치 않았기 때문에 계약 때 선서된 형벌이 유효하게 된다. 그러므로 어떤 이들은 18절을 이렇게 번역한다. "내가 나의 계약을 어긴 자들을 그들이 둘로 쪼갠 저 송아지처럼 만들어 주리라. 그들이 송아지를 두 동강 내었듯이 나도 그들을 두 동강 내리라" 로 본다.

4. 이스라엘이 그 종들을 수중에서 내어보내지 않았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넘기실 것이라 한다.

유다와 예루살렘의 왕족과 귀족들이라고 환관(내무대신이나 고위 벼슬아치들을 포함한 뜻임)들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들이 다 이에 해당된다(19절). 그들 모두가 하나님에게 갖가지 배신 행위를 저질렀다. 그러므로 예외없이 그들 모두가 같은 "파멸에 직면하게" 되리라 한다. 그들 모두가 적들의 수중에 잡히게 된다. 그리고 적들은 그들에게 재물이나 복종을 요구하지 않고 그들의 생명을 요구할 것이며 또 적들은 그들이 구하는 바를 얻으리라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그들은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생명을 취한 후 그 시체를 매장하지 않고 버려둠으로 모든 보는 사람들에게 끔찍한 기분을 불러일으킬 것이요 결국은 "공중의 새들과 땅 짐승의 식물이 되고 만다." 이것이 그들이 행한 악행의 최종적인 결과이다(20절).

5. 이스라엘이 갈대아 군대가 그들로부터 물러갔다고 하여 계약과는 정반대로 다시금 죄의 길로 돌아갔으므로 하나님이 갈대아 군대들을 다시 그들에게 불러들이겠다고 하신다.

"그들이 너희에게서 떠났으므로 지금은 너희가 놀라지 않고 있으나 내가 그들을 명하여 전처럼 너희 앞에 서게 하리니 그들이 이 성에 다시 돌아와 이 성을 쳐서 취하여 불사를 것이라" (22절) 하신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기억하자.

(1)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구속이 가까웠다는 희망스러운 징조이지만 죄를 태연히 행하는 행위는 멸망이 가까워지는 슬픈 징조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2) 백성들이 그들의 할 바를 채 끝내지도 않고 내버려 두고 있어서 그러므로 그들이 겸손해지지도 않고 새롭게 되지도 않았는데 심판이 그들에게서 물러가면 cum animo revertendi-즉 그것은 다시 돌아올 계획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들은 더 막강한 세력으로 쳐들어오려고 일시 퇴각한데 불과한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당할 자가 없다.

(3) 우리가 우리의 고백과 주장과 그럴 듯한 약속을 통하여 하나님께 의무를 수행하리라 하였던 바를 저버리면 하나님도 그의 선하신 뜻을 따라 베풀고자 하시던 자비를 이행치 않으심으로 우리에게 실망을 안겨 주신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행사는 정당한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우리가 뜻하였던 바 축복을 포기하면 하나님께서도 뜻하였던 바 축복을 포기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사특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리심을 보이시리이다" (삼하 22:27)라고 말씀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