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36:20 <왕이 두루마리를 태우다> 그들이 두루마리를 서기관 엘리사마의 방에 두고 뜰에 들어가 왕께 나아가서 이 모든 말을 왕의 귀에 아뢰니
36:21 왕이 여후디를 보내어 두루마리를 가져오게 하매 여후디가 서기관 엘리사마의 방에서 가져다가 왕과 왕의 곁에 선 모든 고관의 귀에 낭독하니
36:22 그 때는 아홉째 달이라 왕이 겨울 궁전에 앉았고 그 앞에는 불 피운 화로가 있더라
36:23 여후디가 서너 쪽을 낭독하면 왕이 면도칼로 그것을 연하여 베어 화로 불에 던져서 두루마리를 모두 태웠더라
36:24 왕과 그의 신하들이 이 모든 말을 듣고도 두려워하거나 자기들의 옷을 찢지 아니하였고
36:25 엘라단과 들라야와 그마랴가 왕께 두루마리를 불사르지 말도록 아뢰어도 왕이 듣지 아니하였으며
36:26 왕이 왕의 아들 여라므엘과 아스리엘의 아들 스라야와 압디엘의 아들 셀레먀에게 명령하여 서기관 바룩과 선지자 예레미야를 잡으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그들을 숨기셨더라
매튜헨리/옥스퍼드
●두루마리의 소각 (예레미야 36:20-32)
우리는 두루마리 책이 백성들을 거쳐 방백들에게까지 전해진 경로를 고찰하였다. 이제 본문에서는 이 책이 왕에게 전달된 경위가 기록되고 있다. 우리는 본문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Ⅰ. 두루마리에 대한 소식을 듣자 왕은 그것을 가져오게 하여 그의 앞에서 낭독하게 하였다(20,21절).
그는 바룩이 직접 와서 자신이 그것을 낭독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바룩이 한다면 누구보다도 지혜롭게 능력있게 또 열정적으로 낭독하겠기 때문이었다. 또 방백들 중 하나에게 그것을 명령하지도 않았다(물론 가장 높은 방백에게 그 일을 시킨다고 해서 그 방백에게 실례가 될 염려는 없었다). 그렇다고 그것을 선뜻 자신이 읽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는 두루마리를 갖고 와서 대령하여 서 있었던 그의 시종 중 하나인 여후디에게 그것을 읽으라고 명하였다. 아마 여후디는 그 의미를 잘 납득하지 못할 줄 알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왕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경멸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말씀을 증오한다는 사실이 곧 표면에 나타난다. 그들은 말씀을 천히 여길 뿐 아니라 해롭게 생각한다.
Ⅱ. 왕은 방백들처럼 그 내용이 끝까지 읽혀지는 것을 참고 듣지조차 않았다.
그는 서너 장의 내용을 듣고는 노하여 "소도로" 그것을 조각 조각 찢어 "화로" 에 던졌다. 그리고 그것이 타 없어지기를 끝까지 확인하였다(22,23절).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자칫하면 범하기 쉬운 잘못의 하나" 이다. 그러나 이 두루마리는 하나님의 메시지이므로 이런 행위는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에게 가장 불경된 범죄인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그의 다음과 같은 점을 드러내 주고 있다.
- 그가 자기에 대한 비난을 참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죄를 계속 저지려는 마음이 뿌리 깊이 박혔으므로 그의 결점이 들먹여지는 것을 그는 참을 수 없었다.
- 그가 바룩과 예레미야에 대하여 분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가 이렇게 화났을 때에 그들이 그에게 잡힐 수 있기나 하였다면 바룩과 예레미야를 발기발기 찢어 태워 죽이려 했을 것이다.
- 그가 자기에게 주어진 경고의 뜻과 취지에 결코 따르지 않으리라는 오만한 결의를 표명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말씀하셨음에도 자기 하고 싶은 데로 하고자 하였다.
- 그는 어리석게도 자기를 향한 경고를 무시해 버리려 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는 경고의 말씀이 쓰여진 두루마리가 없어지기만 하면 하나님도 형을 집행하실 수 없으리라고 여겼던 것이다.
- 그는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사실들이 더 이상 알려지지 않도록 자기가 효율적으로 처리하였다고 생각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행위는 대제사장들이 복음이 전파되지 못하도록 저지한 행위와 같은 것이었다(행 4:17). 그는 사람들에게서 이 두루마리가 백성들과 방백들 앞에서 어떻게 낭독되었는지에 대하여 들었다. 이 소식을 듣고 그는 다음과 같이 응수한다. "그래! 그렇다면 그것이 다시는 읽혀지지 못하도록 내가 조치를 취하지" 라고 하였다. 육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한이 얼마나 강열한가를 보라. 그럼에도 참으시는 하나님의 인내에 놀라움을 품게 될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행하여지는 이러한 불의도 참으신다.
Ⅲ. 왕이나 방백들 그 누구도 이 말씀을 듣고 마음이 감동되지 아니하였다.
"왕과 그 신하들이 그 말씀을 듣고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다" (24절). 처음 그 말씀을 들었을때는 놀라 떨었던 방백들도 이제는 두려움이 없어졌다(16절). 희망적인 계기는 너무도 빠르고 쉽게 그들에게서 사라졌다. 그들은 어느 정도 관심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왕이 그 말씀을 경시하는 것을 보고 그들은 품었던 관심을 떨쳐 버렸다. 그들은 바로 여호야김의 아버지였던 요시야가 "율법책" 읽는 소리를 듣고 그랬듯이 "그 옷을 찢지 아니하였다." 실상 요시야가 그 내용을 들었던 율법책은 여호야김이 들은 이 두루마리의 내용처럼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적한 것도 아니었고 지금처럼 사건에 즉시 대처할 필요성도 덜한 것이었다.
Ⅳ. 세 명의 방백들이 두루마리를 태우는 것을 막으려 하였으나 허사였다.
아직도 그들에게는 식별력이 있었고 은혜의 능력이 역사하고 있었다(25절). 이들이 지금 보인 것과 같이 당초에 말씀에 자신들이 감동받은 것을 나타낼 수 있었다면 그들은 아마 왕의 마음을 잘 구슬려서 끝까지 참고 들으라고 설득할 수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이런 자들은 종종 그들이 선을 할 수 있을 때는 행하지 않고 그들이 선을 행할 능력 밖에 있을 때는 하고 싶어하기 마련인 것이다.
Ⅴ. 여호야김은 이제 하나님의 사역자들인 예레미야와 바룩을 체포하라는 영장을 발부하였다(26절).
그는 자기를 체로하라는 하나님의 영장을 태워버렸으니 일이 잘된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이제 반대로 하나님의 사역자들을 체포하려 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들을 숨기셨다." 방백들이 예레미야와 바룩 보고 도망가라고 종용한 것은 사실이다(19절). 그러나 그들이 안전할 수 있었던 것은 방백들이 그들을 염려해 주었기 때문도 아니요 또 스스로 자기들이 조심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하나님의 보호로 그들은 안전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피난처를 마련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들을 박해하는 자들이 그들을 아무리 사로잡으려 하여도 때가 이르기 전에는 어림도 없다. 하나님이 바로 그들의 피난처가 되어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