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1월 9일 주일 묵상구절 14:1-32 나병환자를 정결케 하는 법

하나지기 2022. 1. 10. 05:25

맥체인성경읽기

창세기 9, 10, 마태복음 9, 에스라 9, 사도행전 9

 

묵상구절

14: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14:2 "이것은 나병 환자가 정결하게 되는 날의 규례니, 곧 그를 제사장에게 데려갈 것이며,

14:3 제사장은 진영 밖으로 나가 살펴보고, 그 나병 환자에게서 나병 환부가 나았으면,

14:4 제사장은 명령하여 정결하게 될 자를 위해 살아 있는 정결한 새 두 마리와 백향목과 홍색 실과 우슬초를 가져오게 하고,

14:5 또 제사장은 명령하여 그 새 한 마리를 질그릇 안의 생수 위에서 잡게 해야 한다.

14:6 살아 있는 새는 제사장이 그 새와 백향목과 홍색 실과 우슬초와 함께 가져다가 생수 위에서 잡은 새의 피에 찍어서,

14:7 나병에서 정결하게 될 자에게 일곱 번 뿌려 그가 정결하게 되었다고 선언하고, 살아 있는 그 새를 들판에 놓아 주어야 한다.

14:8 정결케 되는 자는 자기 옷을 빨고 모든 털을 밀고 물로 몸을 씻어야 정결하게 될 것이니, 그 후에 진영에 들어와 자기 장막 밖에서 칠 일을 머물고,

14:9 제칠일에 그는 모든 털, 곧 머리털과 수염과 눈썹을 밀어야 하며, 또 자기 옷을 빨고 자기 몸을 물에 씻어 정결하게 하고,

14:10 여덟째 날에 흠 없는 어린 숫양 두 마리와 일 년 된 흠 없는 어린 암양 한 마리와 고운 밀가루 십분의 삼 에바에 기름 섞은 곡식 제물과 기름 한 록을 가져와야 한다.

14:11 정결케 하는 제사장은 정결하게 될 그 사람과 그 물건들을 회막 문 여호와 앞에 두고,

14:12 또 제사장은 어린 숫양 한 마리를 가져다가 기름 한 록과 함께 속건 제물로 그것을 드리되, 여호와 앞에 흔들어 바치는 제물로 그것들을 흔들고,

14:13 제사장은 그 어린 숫양을 속죄 제물과 번제물을 잡는 곳, 곧 거룩한 장소에서 잡아야 한다. 속죄 제물과 같이 속건 제물은 제사장의 것이므로 그것은 지극히 거룩한 것이다.

14:14 제사장은 속건 제물의 피를 조금 가져다가 정결하게 될 자의 오른쪽 귓불과 오른쪽 엄지손가락과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바르며,

14:15 또 제사장은 그 한 록의 기름을 조금 가져다가 자기 왼쪽 손바닥에 붓고,

14:16 오른쪽 손가락으로 왼쪽 손에 있는 기름을 조금 찍어 그 손가락으로 그 기름을 여호와 앞에 일곱 번 뿌려야 한다.

14:17 손에 남은 기름은 제사장이 정결하게 될 자의 오른쪽 귓불과 오른쪽 엄지손가락과 오른쪽 엄지발가락 위의 속건 제물의 피 위에 발라야 한다.

14:18 또 제사장의 손에 남은 나머지 기름은 정결하게 될 자의 머리에 바르고,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서 속죄해야 한다.

14:19 제사장은 속죄제를 드려 자신의 부정함에서 정결하게 될 자를 위하여 속죄하고, 그 후에 번제물을 잡아야 한다.

14:20 그리고 제사장이 그 번제물과 곡식 제물을 제단에 드려라. 그리하여 제사장이 그를 위해 속죄할 것이니, 그가 정결할 것이다.

14:21 그러나 만일 그가 가난하여 그 힘이 미치지 못하면, 그는 흔들어서 자기를 속죄할 속건 제물로 어린 숫양 한 마리와 곡식 제물로 고운 가루 십분의 일 에바에 기름 섞은 것과 기름 한 록을 가져오고,

14:22 그의 힘이 미치는 대로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가져다가 한 마리는 속죄 제물로, 또 한 마리는 번제물로 삼아야 한다.

14:23 제팔일에 그는 자기의 정결을 위하여 그것들을 여호와 앞 회막 문에 있는 제사장에게 가져 가고,

14:24 제사장은 속건제의 어린 양과 기름 한 록을 가져다가 그것들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 바치는 제물로 흔들어야 한다.

14:25 제사장은 속건제의 어린 양을 잡아서 그 속건 제물의 피를 조금 가져다가 정결하게 될 자의 오른쪽 귓불과 오른쪽 엄지손가락과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바르며,

14:26 제사장은 그 기름 일부를 자기 왼쪽 손바닥에 붓고,

14:27 또 제사장은 오른쪽 손가락으로 왼쪽 손에 있는 기름을 조금 찍어 여호와 앞에 일곱 번 뿌려야 한다.

14:28 제사장은 자기 손에 있는 기름 일부를 정결하게 될 자의 오른쪽 귓불과 오른쪽 엄지손가락과 오른쪽 엄지발가락 위 속건 제물의 피를 바른 곳에 바르며,

14:29 제사장은 자기 손에 남은 기름을 그 정결하게 될 자의 머리에 바르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서 속죄할 것이다.

14:30 그는 자신의 힘이 미치는 대로 산비둘기 한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한 마리를 드릴 것이니,

14:31 곧 그의 힘이 미치는 대로 한 마리는 속죄 제물로, 한 마리는 곡식 제물과 함께 번제물로 드려야 하고, 제사장은 정결하게 될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속죄해야 한다.

14:32 이것은 자신의 정결을 위해 그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나병 환자를 위한 규례이다."

 

매튜헨리/옥스퍼드

●문둥병자의 정결 의식 (레위기 14:1-9)

Ⅰ. 문둥병이 불치병은 아니라고 생각되고 있다.

웃시야는 실제로 죽는 날까지 계속 문둥병에 걸려 있었고, 게하시는 그의 자손에까지 그 병을 물려주었다. 그러나 미리암의 문둥병은 7일 동안만 계속 되었었다. 세월이 지나다 보면 문둥병이 낫는 수도 종종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나님은 오랫동안 싸우시나 "영원히 다투지는 아니하실 것이다" (사 57:16).

Ⅱ. 병의 판결과 마찬가지로 치유의 판결도 제사장이 해야 했다.

제사장은 진밖에 문둥병자에게로 나아가서, 그 문둥병이 치료되었는지를 살펴야 했다(3절). 제사장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문둥병자에게 가까이 가도 의식법상 부정이 감염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제사장들을 그들에게 나아가라고 특별히 명령한 사실은, 가엾은 문둥병자들에게는 하나의 자비스러운 일이었다. "제사장들의 입술은 지식(정보)을 퍼뜨리지 말고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말 2:7). 또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 고통을 견디는 법과 그 고통으로 은혜를 얻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으며, 징계와 동시에 그들을 돌이켜 회개시킬 말씀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병든 자들에게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들이 그들의 해석자로 "하나님의 공의를 그들에게 보인다면" (욥 33:23), 그것은 그들에게 다행한 일이다. 문둥병자는 금지되어 제사장들에게로 갈 수가 없는 때에도, 제사장들이 그들에게 갈 수 있었다는 것은 매우 다행스런 일이다.

" 너희 중에 앓는 자가 있느냐? 장로들에게, 곧 교역자들에게 데려가라" (약 5:14). 이러한 사실을 죄라는 영적 문둥병에 적용한다면 순종치 아니하는 자가 있을 때는 그들에게서 물러나 그들을 부끄럽게 하되, 원수처럼 생각지 말고 형제처럼 그들을 권면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살후 3:15).

또한 하나님께서 은총을 베푸사 불명예스럽게 성도의 교제에서 차단되었던 자들을 회개케 했었을 때에는 친절과 기쁨과 신실한 사랑으로 그들을 다시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도 가르쳐 주고 있다. 마찬가지로 바울 사도께서도 출교당한 고린도인이 회개의 증거를 보이면 그를 용서하고 다시 받아 위로하며, "그에 대한 저들의 사랑을 굳게하라" 고 명령하고 있다(고후 2:7, 8). 또한 우리 주님께서는 사역자들에게 맬 수 있는 권능뿐만 아니라 놓임을 선포할 수 있는 권능도 위임하셨다. 이 두 권능은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하고 공평하게, 사람의외 모를 보지 말고, 하나님의 인도를 기도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을 선도한다는 성실한 태도로써 수행될 때 한다. 그러면서도 죄인들에게는 너무 많은 동정을 베풀어 교만해지지 않도록 병자들에게는 너무 가혹히 대하여 사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적당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런 문제는 지혜와 성실로 지도하는 것이 유익하다.

Ⅲ. 문둥병이 치료된 것이 밝혀지면, 제사장은 특별한 식을 갖추어 그 사실을 공표해야 한다. 문둥병자나 그의 친구들은 이 선포식을 위해 두 마리의 새를 붙들어 오고(어떤 새이든 정결한 종류의 들새들이었다), 또한 백향목과 홍색 실과 우슬초를 준비해야 했다. 이 모든 것들은 그 의식에 사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1. 문둥병자에게 뿌릴 피와 물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새 한 마리(이 새는, 유대인들의 말에 의하면, 다른 종류이며 둘 중 더 크고 좋은 새를 취하여 해야 한다)는 솟아나는 물위에 질그릇을 준비하고 그 질그릇 안에서 죽였다. 그렇게 되면 그 새의 피가 그 물을 피빛으로 변색케 했을 것이다. 이것은(여러 가지 다른 상징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완결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때, 그의 옆구리에서 물과 피가 나왔다고 했다(요 19:34).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는 영혼을 치유하고 깨끗케 하시려고 세상에 오셨으되, "물로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요일 5:6) 깨끗케 하시러 오셨던 것이다.

  1. 살아 있는 다른 한 마리 새는 우슬초 가지와 함께 백향목 나무 막대기에다 가는 주홍색 털실로 단단히 묶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그 물과 피에 담갔다. 그리고 그 피와 물을 문둥병자에게 뿌리면 그가 깨끗해진다(6, 7절).

이 백향목나무는 문둥병자의 건강이 회복되었음을 상징해 주는 것이었다. 그것은 정결케 할 능력이라고는 없는 나무의 일종이었기 때문이다. 주홍색 실은 그의 혈색이 회복되었음을 상징해 준다. 문둥병이 나면 사람의 피부가 눈같이 희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슬초는 흔히 문둥병에서 따라오는 불쾌한 냄새가 제거되었음을 뜻한다. 백향목은 가장 품위 있는 나무요, 우슬초는 가장 초라한 나무이니, 이것들이 이러한 귀중한 일에 같이 사용된 것이다(왕상 4:33  참조).

교회의 최하급 계열에 있는 사람들도 그들의 위치에 따라서 소용이 있는 자들이니, 가장 이름 난 위치에 있는 자들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고전 12:2). 어떤 사람들은, 죽임당한 새는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살아 있는 새는 "우리의 의를 위하여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한다(롬 4:25). 살아있는 새를 죽임당한 새의 피에 담그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의 의(義)가 되게 하는 효험을 준 바, 그리스도의 죽음의 공로를 말해주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의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시사, 거기서 죽임당한 어린양처럼 자신을 헌신하셨다.

백향목, 주홍색 실, 그리고 우슬초는 모두 그 피에 담가져야 했었다. 말씀과 규례(제 의식), 그리고 성령의 모든 역사는 우리를 깨끗케 하는 효험이 있으나 그 효험은 그리스도의 피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둥병자에게 "7번" 피를 뿌리라 했다. 이것은, "나를 말갛게 씻으소서" 하고 기도한 다윗과 마찬가지로(시 51:2), 완전한 정결을 의미한다. 나아만도 "7번" 물에 들어갔다 나오라고 명령받았다(왕하 5:10).

  1. 그런 후에, 그 살아있는 새는 들판에 자유로이 풀어 주라고 했다.

이것은 문둥병자가 이미 깨끗하게 되었으므로 더 이상 규제와 감금의 상태에 놓일 필요가 없으며 그가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는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것을 상징해 준다. 그러나 그 새가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는 사실은, 이제 깨끗해진 그 문둥병자는 이후로부터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며, 하나님께서 그에게 새로이 회복해 주신 그 새 생명을 이 세상적인 일을 추구하는데 소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것은, 은총에 의하여 피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에서 깨끗하여져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스런 자유를 또한 상징한다. 전에는 "진토에 구부리고 있어서" (시 44:25) 슬픔과 공포 속에서 살던 영혼이 이제는 자유의 창공을 날고, 신앙과 희망과 거룩한 사랑과 기쁨의 날개를 달고 높이 치솟을 수 있게 된 것이다.

  1. 이러한 모든 절차를 끝내고 나서는 제사장은 그 문둥병자가 깨끗해졌다고 공표해야 한다.

이것은 의식을 갖추어 거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그 문둥병자가 자기를 고쳐 주신 하나님의 긍휼에 더 큰 감동을 받을 수 있고 다른 사람들도 마음놓고 그와 사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제사장이시다. 하나님 아버지는 모든 심판을, 특별히 문둥병의 심판권을 그에게 위탁하셨다. 그의 명백한 선고로 말미암아, 회개치 아니하는 죄인들은 거룩한 도성 밖으로 쫓겨나 부정한 자의 몫을 영원히 차지하고 말 것이다(욥 36:14). 그리고 그의 은총에 의하여 치유되고 깨끗케 된 모든 자들은 성도의 진에 다시 받아들여질 것이며 무엇이나 부정한 것은 그 진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정결하다고 선언한 자가 참으로 정결한 자들이다. 또한 그들은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뭐라고 말하는가에 귀 기울일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의를 위하여 이 율법의 마침" 이 되셨지만(롬 10:4), 그는 육체로 계실 때 "율법 아래" 계셨다. 그 율법은 그 때까지도 폐기되지 않았으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기적으로 문둥병을 고쳐 주고 나서, 그 문둥병자에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라", 그리고 "모세가 명한 율법대로 예물을 드리라" 고 말씀하셨던 것이다(마 8:4; 눅 18:14). 모형은 원형이 올 때까지는 보존되어야 한다.

  1. 문둥병자가 깨끗해졌다는 선언을 받으면 그는 자기 몸과 옷을 씻고, "그의 모든 털을 밀고" (8절), 진밖에 계속 7일 간 더 머물다가, 안식일이 되면 그런 절차를 다시 반복하라고 했다(9절).

제사장이 깨끗하다고 선언했으므로, 그 자신도 그 병의 모든 잔유물을 가능한 한도까지 스스로 깨끗이 하고, 모든 불결한 것을 제거하도록 해야 하며, 그런 일을 하기 위한 내면적 여유가 그에게 있어야 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피가 양심에 뿌려져서 죄에서 깨끗해졌다는 위로를 받은 사람들은, 최선의 관심과 주의를 기울여 "육과 영의 온갖 더러움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고" (고후 7:1), 철저하게 "옛 죄악을 버려야 한다." "그 안에서 이 희망을 가진 자마다" "자기를 깨끗케 하는" 데에 관심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요일 3:3)


●정결케 하는 제사 (레위기 14:10-20)

Ⅰ. 문둥병자의 정결을 완전케 하기 위하여, 제 8일에, 앞에서의 공표식을 진 밖에서 거행한 후에, 그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기에 앞서서-아마 그런 것 같다-" 회막 문에" 참예해야 한다. 그리고 거기서 예물과 함께 "여호와 앞에 헌신해야" 한다(11절). 여기에서는 이런 사실을 관찰할 수 있다.

  1. 하나님의 긍휼은 우리 자신을 그에게 바치라는 의무를 준다(롬 12:1).
  2. 하나님께서 우리를 질병이나 거리 상의 문제, 기타 어떤 방법으로든 우리를 그의 규례에 못 참예케 하셨다가, 다시금 규례에 참예하는 자유를 회복시켜 주셨다면, 우리는 되찾은 자유를 부지런히 선용함으로써, 먼저 하나님께 대한 의리의 경외심을 보이는 시간을 가져야 하고, 하나님의 성소에 대한 우리의 애착심을 실증하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한 무능력한 인간을 치유해 주셨을 때, 그 치유받는 자는 곧 "성전에 나타났다" (요 5:4). 히스기야가 "내가 여호와의 집에 다시 올라갈 수 있는 표적이 무엇이냐?" 고 물었을 때, 그의 말은 "내가 고쳐진 표적이 무엇이냐?" 고 물었던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자기를 고쳐 주신다면, 그는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을 것이고, 그 때에는 제일 먼저 여호와의 집에 들어가리라고 한 것을 뜻한다.
  3. 우리가 하나님 앞에 헌신 할 때는 예물을 드려야 한다. 곧 우리의 재물과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우리 자신과 함께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4.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예물은 모두 우리를 깨끗케 한 제사장 곧 우리 주 그리스도에 의하여 여호와 앞에 드려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우리는 물론, 우리의 예물도 열납될 수 없다.

Ⅱ. 깨끗해진 문둥병자는 소제물과 기름 한 록(약 ¼리터)과 함께 어린 양 3 마리를 바치라 했다.

  1. 이 예식 중에서 가장 특별한 것은 제일 먼저 어린양을 드리는 속건 제물에 관한 것이다(12절).

속건제를 드리는 보통 의식 외에도, 그 피의 일부를 깨끗해진 문둥병자의 귀와 엄지손가락, 엄지발가락에 칠하라고 했다(14절). 이러한 절차는 제사장들 성별식에 사용되었었다(8:23, 24). 문둥병을 깨끗케 하는 정결 예식이 자기들과 꼭 같은 예식임을 본다는 것은 제사장으로서는 굴욕적인 일이었다. 유대인들은 말하기를, 문둥병자는 회막 문밖에 서 있었고, 제사장은 안에 서 있어서 그 의식은 문을 통과하여서 거행되었으므로, 이제는 그 병자도 다른 이스라엘인들처럼 다시 하나님의 뜰에 참예할 수 있도록 허락되며, 전과 같이 환영되었다는 것을 의미해 주었다고 한다. 그가 전에는 문둥병자였지만, 그리고 아마 그 이름이 일생 동안 그에게 붙어 다녔을 것이지만(문둥병에 걸렸다가 깨끗해진 자로 여겨지는 한 사람을 우리 주 예수께서 나중에도 문둥이 시몬이라고 불렀다는 기록과 마찬가지이다. 마 26:6), 그는 자유로이 전처럼 하나님과 사람들과 더불어 교제할 수 있도록 허용되었다.

그는 먼저 그 제물의 피를 제사장이 손에 찍어서 전신을 포괄하고 있는 신체의 끝 부분에 칠하고 난 다음에, 자기가 가져온 기름의 일부를 먼저 흔들어 하나님 앞에 뿌리고, 그런 후에 다시 피를 뿌렸던 그 자리에 먼저 번처럼 바르라고 했다. (박학한 패드릭 주교의 말에 의하면)" 그 피는 용서의 표시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은 먼저 "우리의 죄악을 용서해 주신" 다음에 우리의 질병을 고쳐 주시기 때문이다(시 103:3 . 사 38:17  참조).

그리스도의 피가 의롭게 하는 능력을 나타내는 그 곳에, 성령의 기름이 성결케 하는 역사를 나타내신다. 이 두 가지는 분리할 수 없으며, 두 가지가 모두 우리들이 하나님께 열납되는 데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회개를 함으로써 문둥병에서 고쳐졌다면, 그 옛날의 문둥병이 이 영광스러운 특권을 누리는 데에 조금도 장애물이 되지 못한다. 깨끗해진 문둥병자들은 성별된 제사장들과 마찬가지로 그 피와 기름에 영접된다. "너희 중에 이런 자가 있었으나……, 너희는 씻김을 얻었느니" (고전 6:11). 문둥병자에게 물이 뿌려졌을 때, 그 물 속에는 피가 있었고(5절), 기름부음을 받았을 때에도 기름의 밑에 피가 있었다. 위에 있는 기름은, 성령의 은총과 정결케 하고 존귀케 하는 성령의 모든 역사가 그리스도의 죽음(밑에 있는)에 힘입는다는 사실을 상징해 준다. 우리가 성화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로써만이다.

  1. 이 외에도 속죄제와 번제로 각각 어린 양 한 마리씩 바쳐야 했다(19, 20절). 이 어린양들은, 각각 제사장들이 "그를 위하여 속죄할" 것이라고 했다.

(1) 그의 도덕적 죄책이 사라지는 것이다. 문둥병을 가져온 죄가 용서될 것이요, 그가 병중에 범한 모든 죄가 용서되는 것이다. 어떤 외적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우리에게 2중적인 위안을 준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즉 그것은 그와 동시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다는 확증을 주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구속함을 받았으면" 기뻐해야 하리로다(롬 5:11).

(2) 그의 의식법상의 불결함이 사라진다. 이것 때문에 그는 아무런 성물에도 참여하지 못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불결함도 "위해 속죄하는 것" 이라고 했는데, 그것은-여기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특권을 우리가 회복함은 순전히 그리스도의 위대하신 대속에 힘입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속죄가 이루어졌다면 그는 깨끗할 것이요, 그 자신의 기쁨도 찾았거니와 이웃들간에서의 명성도 되찾은 것이다. 그는 자신의 위신과 위안을 되찾을 것이라 했으므로, 참된 회개 자들은 이 두 가지를 차지할 권리를 가지며 또 속죄 제물에 힘입어서 평안과 기쁨까지도 차지한다. 속죄제를 드려 속죄 한 다음에는,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긍휼에 감사하는 번제를 드려야 했다. 병이 나는 것에나 병이 낫는 것에나 하나님의 손길이 보다 직접적으로 역사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분께 영광을 돌려야 할 이유를 그만큼 더 풍성히 지니는 셈이다. 그리고 우리 구주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깨끗하게 됨을 증거 해야 할 것이다(막 1:44).


●가난한 문둥병자의 결례 (레위기 14:21-32)

" 가난한 문둥병자" 를 정결케 하기 위하여 제정된, 특별한 은총을 베푼 율법을 대하게 된다. 어린 양 세 마리와 가루 3/30에바를 바칠 능력이 없는 자는, 어린 양 한 마리와 1/10에바의 가루와, 두 마리의 어린 양대신에는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바치라 했다(21, 22절). 여기에서 이런 사실들을 엿볼 수 있다.

  1. 가난하다는 이유로 제물을 전혀 바치지 않는다는 것은 허용 될 수 없다. 아무도 자기들이 가난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기들은 아무런 봉사도 할 필요가 없다고 하시리라는 생각은 갖지 말자.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고려하시어서, 아무리 가난한 자라도 능히 바칠 수 있는 것을 요구하셨기 때문이다.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라(잠 23:26). 그리하면 네 입술의 송아지(호 14:2)가 외양간 송아지(말 4:2)를 대신하여 열납되리라."
  2. 하나님은 가난한 자에게는 그들의 능력에 맞게끔 요구하신다.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일 5:3). 또한 그는 우리를 예물로써 섬기도록 만드시지도 않으셨다. 가난한 자는 부자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제단에 영접된다. 그리고 즐거운 마음과 정결한 마음이 미리 준비되어 있다면, 그들이 가져올 수 있는 최선의 것이었던 두 마리의 비둘기도 두 마리의 어린양처럼 하나님께 열납될 수 있다. 하나님은 "가진 자나" 못 가진 자에게 각각 그 형편에 따라 요구하시기 때문이다(고후 8:12).

그러나 가난한 자들에게서는 보다 하찮은 제물을 받으셨지만, 그들에게 사용되는 의식만은 부자들에게 사용되는 의식과 꼭 같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가난한 자들의 영혼도 마찬가지로 귀중하며,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은 부한 자나 가난한 자에게 똑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가진" 자들은 "사람을 외모로 취급하지 말자" (약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