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역대상 18, 야고보서 5, 요나 2, 누가복음 7
묵상구절
17:41 블레셋 사람이 방패 든 사람을 앞세우고 다윗에게로 점점 가까이 나아가니라
17:42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
17:43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의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17:44 그 블레셋 사람이 또 다윗에게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살을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하는지라
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17: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17: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17:48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빨리 달리며
17:49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가지고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의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17:50 다윗이 이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
17:51 다윗이 달려가서 블레셋 사람을 밟고 그의 칼을 그 칼 집에서 빼내어 그 칼로 그를 죽이고 그의 머리를 베니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용사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는지라
17:52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이 일어나서 소리 지르며 블레셋 사람들을 쫓아 가이와 에그론 성문까지 이르렀고 블레셋 사람들의 부상자들은 사아라임 가는 길에서부터 가드와 에그론까지 엎드러졌더라
17:53 이스라엘 자손이 블레셋 사람들을 쫓다가 돌아와서 그들의 진영을 노략하였고
17:54 다윗은 그 블레셋 사람의 머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고 갑주는 자기 장막에 두니라
매튜헨리/옥스퍼드
Ⅱ. 이제 그들이 마주서고 나서 어떻게 하였는가를 보자.
- 골리앗은 매우 거드름을 피웠다.
(1) 그는 그의 상대를 매우 경멸하였다(42절).
그는 키가 크고 힘이 센 사람이 나오리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상대가 매우 보잘 것 없는 외모를 가진 사람인 것을 알고 그를 몹시 업신여겼다. 그는 다윗이 그와 같은 용사와는 도저히 짝이 될 수 없으며, 그런 자를 이긴다고 해서 조금도 영광스러운 일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골리앗은 다윗의 외모만을 보았다. 그는 도저히 힘을 쓸 것 같지 않아 보이는 젊은이이며, "붉고 용모가 아름답기" 때문에, 싸움에 내보낼 것이 아니라 (당시에도 사교춤이 있었다면) 춤 추러나 같이 가기에 알맞는 이스라엘의 처녀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다윗의 차림새를 보고 대단히 분개하였다.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네가 네 양치는 개를 다루듯 나를 그 막대기로 쉽사리 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 골리앗은 다윗을 ‘보았다(나바트)’
여기서 ‘나바트’ 는 주의를 기울여 자세히 관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삼상16:7에서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사람의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고 말씀하셨을 때에도 사용된 단어이다. 당시 사무엘이 사람의 용모와 신장만을 보고 그릇된 판단을 했듯이 여기서도 ‘나바트׳ 동사를 사용하여 골리앗이 다윗의 용모와 신장만을 바라보고 있음을 나타낸다. 결국 외모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다윗을 업신여기는 교만으로 이어지고, 사람의 중심을 바라보시는 여호와와 함께하는 다윗에게 죽임을 당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골리앗의 조롱
골리앗은 누구나 위암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거인 용사로서 어린 소년이 자신과 싸우겠다고 나온 것을 어이가 없어 하며 조롱하는 동시에 무기도 없어 목동이나 쏘는 막대기를 들고 나온 사실에 대해서는 모욕감마저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때 다윗이 가지고 나간 막대기는 당시 근동의 목동들이 사용하는 일종의 지팡이였는데, 이것은 언덕을 오를 때 도움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관목 숲을 해치는 도구가 되었다.
그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함
⇒ 대개 이방인들은 자신의 힘으로 신들의 의지를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골리앗도 자신이 섬기고 있는 신들을 통해서 다윗에게 멸시의 저주를 내린 것이다. 블레셋이 섬기는 대표적인 신으로 ‘다곤’ 은 이미 언약궤 사건을 통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 앞에 철저히 패배하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5:4). 그러므로 골리앗의 저주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서 이미 그 무능력함이 드러난 다곤과 같은 거짓 신을 통해 이루어진 것으로 다윗에게는 아무런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45절에서는 ‘만군의 여호와’ 라는 이스 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명칭이 구체적으로 나오지만, 본문에서는 블레셋의 신들이 익명으로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본문은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일 뿐 아니라, 블레셋의 거짓 신들과 이스라엘의 참 하나님 사리에 벌어전 영적 전투임을 암시한다. 그러나 이 싸움은 아무 능력도 발휘할 수 없는 죽은 신과 살아 있는 만군의 여호와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그 승리가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가는 너무나 자명하다.
(2) 그는 자기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그는 그의 우상의 나약한 복수를 기원하면서 그의 신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였다. 그는 불덩어리라도 나와서 다윗을 내리쳐서 그의 말이 사실임을 증거해 줄 듯이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그는 다윗을 죽일 듯한 힘을 그에게 퍼부었다(44절). "내게로 오라.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에게 주리라. 저들이 맛 있게 먹으리라." 이처럼 어리석은 자들의 헛된 안심과 추측이 그 자신들을 멸망으로 이끈다.
👉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겠다 라는 표현을 하는 이유
시체를 매장하지 않고 짐승들의 먹이가 되게 하겠다는 의미로서 이는 시체가 매장되지 못하는 것을 큰 저주로 여기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대단한 공포가 아닐 수 없었다(시 79:2.3).
본문은 대결의 살벌한 분위기를 적절히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한 명만이 생존할 것이고 다른 한 명은 죽을 뿐만 아니라 야수들에 의해 먹이로 찢겨 흔적마저 사라질 것이라고 하는 처절한 전쟁 참상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이러한 저주를 통하여 골리앗은 다윗의 사기를 저하시키려 하고 있다.
2. 다윗은 매우 경건한 자세를 취했다. 그의 말에는 조금도 자기 자랑이 들어 있지 않았다. 오직 하나님만을 내세웠다(45-47절).
(1) 그는 그의 권위를 하나님께로부터 이끌어왔다.
"나는 하늘의 지시와 명령을 받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그는 이 일을 위하사 나를 부르시고 기름을 부어 주신 분이다. 그는 만군의 여호와시라. 원하시는 일을 모두 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셨느니라. 그분은 또 특별한 은혜의 계약으로 맺은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이시며 따라서 그의 능력으로 저들을 보호하시며, 저들을 모욕한 너 같은 자를 처치하게 하신다."
골리앗은 칼과 창을 의지하였고,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였다(시 20:7; 118:10, 11 참조).
👉 45절,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하나님은 이미 요나단과 병기 든 소년을 통해서 블레셋 병사 20명을 도륙하심으로써 ‘여호와의 구원이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않았다(14:6)’ 는 사설을 입증하셨던 것처럼, 제대로 된 군사적 무기를 갖추지 못한 다윗으로 하여금 완전하게 무장한 골리앗을 물리치게 하심으로써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않다’(47절)는 사실을 또 한번 입증하실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 골리앗은 칼, 단창, 창과 같은 무기를 가지고 싸우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 으로 싸우겠다는 표현이 서로 대비되면서, 영적으로는 세상의 것과 하늘의 것, 그리고 속된 것과 신령한 것이 대결하는 상황을 드러내준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이 자연계로는 천체에 미치고 영적으로는 천군 천사에 미치며 현실적으로는 전쟁을 승리로 이끄시는 것으로 나타남을 찬양하는 표현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이름으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은 ‘전쟁의 전문가’이다. 골리앗은 어려서부터 용사였고 현재 강력한 무기로 무장하고 있지만, 정작 그의 싸움을 지도할 신은 존재하지 않는 거짓 신이었다. ↔ 그러나 다윗은 비록 어린 소년이고 제대로 된 무기조차 없지만, 전쟁의 전문가이신 살아었는 여호와가 그를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결국 본장의 싸움은 다윗과 골리앗만의 싸움이 아니라, 전쟁 경험과 무기를 앞세운 이방 세력과 만군의 여호와를 섬기는 이스라엘 전체의 영적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2) 다윗은 그의 성공을 하나님께 의탁하였다(46절). 다윗은 마치 골리앗이 이미 땅에 쓰러진 것과 같은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그는 신앙 가운데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네 시체뿐 아니라 블레셋 군대의 시체들로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들에게 주리라."
👉 ‘오늘’ (하이욤 핫제) 여호와게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오늘’
화자가 진술하는 사건 당일만을 의미하지 않고, 사건이 일어난 상황 전체를 나타낸다.
→ 즉 ‘오늘׳ 은 다윗과 골리앗이 싸움을 하게 된 그 시점만을 의미하지 않고 사건이 일어나게 된 원인, 경과, 결과까지를 모두 포함하는 표현인 것.
본장에서 ‘하이욤 핫제' 란 표현은 모두 3회 등장한다. 처음에는 10절에서 골리앗이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한 시점을 표현하고 있고, 본문에서는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승리를 허락하시는 시점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본절 후반부에서 이 용어는 블레셋 군대의 패배와 관련되어 등장한다. 그러므로 다윗이 말하는 ‘하이욤 핫제' 는 이스라엘과 더불어 하나님을 모욕했던 골리앗을 여호와께서 다윗 자신의 손에 붙이심으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특별한 날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붙이시리니 — ‘닫다, 폐쇄하다
‘여호와께서 다윗의 손안에 골리앗을 가두어 놓을 것이다’ 라는 뜻. 골리앗의 목숨이 완전히 다윗 자신의 손에 맡겨져 살아날 가능성이 전혀 없음을 구체적으로 강조한다. 본문은 다윗이 여호와를 의지하는 믿음에 근거하여 골리앗에 대한 완전한 승리를 확신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시체로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44절에서 골리앗이 다윗을 비난한 것과 유사한 내용. 골리앗은 다윗에게 ‘네 고기’ 를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겠다고 위협했는데, 다윗은 블레셋 군대 전체의 ‘시체’ 를 그렇게 하겠다고 응수했다.
(3) 다윗은 찬송과 영광을 모두 하나님께 바쳤다.
다윗은 골리앗과 같이 자기의 영광을 구하지 아니 하였고, 이 일이 분명히 성공할 것을 믿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을 생각하였다.
[1] 온 땅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살아계신 참 하나님이시며, 다른 모든 신들은 헛된 거짓 신들임을 알게 되리라고 하였다.
👉 다윗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
골리앗이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한 것은(10절) 이스라엘의 외적인 군사력만을 보고 그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여호와의 존재를 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을 통하여 온 세상은 여호와가 과연 이스라엘에 존재하시며, 그가 어떤 분이신 줄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다윗은 자신의 명예를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알리려는 거록한 목적으로 골리앗의 싸움에 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온 이스라엘 "무리로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리라" 고 하였다(47절). 그리고 하나님은 칼과 창이 없이도 그것들과 싸워 이기신다고 하였다(시 46:9).
👉 이러한 본문은 그 내용상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옴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는 요나단의 신앙 고백 (14:6) 과 맥락을 같이한다. 다윗과 요나단은 모두 여호와의 구원이 객관적인 군사력에 달려 있지 않고 오직 여호와의 개입과 역사하심에 달려 있음을 고백하는 성숙한 신앙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이미 여러 사건을 통해서 분명하게 입증되었다.
여호와와 법궤로 인하여 블레셋의 여러 도시들이 재앙을 받은 사건(5장), 사무엘을 통한 블셋과의 전쟁 승리(7장), 사울을 통한 암몬 족속과의 전쟁 승리 (11장), 요나단을 통한 블레셋과의 전쟁 승리(14장) 등은 모두 전쟁이 여호와께 속했다는 사실을 자명하게 입증하는 사건이었다. 본문은 전쟁의 결과가 인간의 노력이나 군사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에 달려 있음을 고백하는 내용이다.
이때 다윗은 이스라엘 군대라 하지 않고 "무리" 또는 교회라고 하였다.
그것은 지금은 이스라엘 회중이 성전에서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임금이신 여호와께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때 다윗은 나라의 원수와 싸우러 나가는 한 군인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존전에 희생의 제물을 바치러 나가는 제사장과 같은 심정으로 이 싸움에 임했다고 보여진다.
👉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이스라엘과 블레셋 전체의 싸움이라는 사실을 나타낸 것이다. 다윗 개인의 구원이 이스라엘 전체의 공동체적 구원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골리앗은 블레셋의 대표이고 다윗은 이스라엘의 대표이기 때문에, 그들의 싸움은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실제로 블레셋 군사들은 그들의 용사인 골리앗이 다윗에게 죽임을 당하자 도망을 쳤다(51절).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승리케 하심으로 이스라엘 전체를 블레셋의 손에서 구원하실 것이라는 확신에 찬 고백을 드리고 있다.
●골리앗을 죽인 다윗(사무엘상 17:48-58)
1.두 용사 간에 접전이 있었다(48절).
이 접전을 위해 블레셋 사람은 한 난쟁이를 만난다는 생각에, 흔히 거인들이 자기 허세를 부리듯, 위풍만을 내세우며 천천히 걸어나왔다. 그가 걸어나오는 모습의 표현에서 우리는 그러한 뜻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왔다." 그것은 마치 놋과 절로 덮어 씌운 큰 산이 걸어오는 것 같았다.
한편 다윗은 일을 꾸미기 시작하는 자가 아니라, 마무리짓는 자로서 즐거움을 가지고 날쌔게 뛰어나갔다. 그는 차림새가 가벼웠기 때문에 "블레셋 사람을 향해 빨리 달려갔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스스로 자멸의 길로 기쁘게 뛰어드는 젊은이를 측은한 마음과 연민의 정을 가지고 바라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가 어떤 분을 믿고 있으며, 어떤 분을 위해 일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2.이 접전에서 골리앗이 쓰러졌다. 그는 그다지 서둘지 않았다. 그는 조금도 두려움이 없었고, 잠시 후에는 그의 일격으로 상대자의 머리를 두 조각으로 낼 수있다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골리앗이 장엄하게 그런 준비를 하는 동안, 다윗은 아무런 허식이 없이 일을 효과적으로 진행시키고 있었다. 다윗은 순식간에 돌 하나로 물매를 던져 골리앗의 이마를 명중시켜 그를 땅에 쓰러뜨렸다(49절).
골리앗은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는 물매질을 잘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 사실을 잊어 버렸든지 아니면 뻗대는 마음으로 그의 투구의 면갑을 올렸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몸에서 유일하게 그 얼굴을 노출시켰었는데, 다윗의 기술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섭리가 그 곳에 명중하게 하였고, 그 굳은 이마를 뚫고 들어가게 하셨을 것이다.
👉 한글 성경이 해석을 생략한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을 정확히 번역해야 원문의 어감이 확실히 살아난다.
‘땅으로 그의 얼굴 위에 엎드러지니라‘
안면이 땅에 부딪치면서 고꾸라지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일차적으로 본문은 마치 큰 나무가 쓰러지는 것과 같이 거구의 몸이 체중을 이기지 못하여 순식간에 앞으로 쓰러졌음을 묘사하는 생생한 표현이다. 그러나 얼굴을 땅에 대는 것은 고대 사회에서 항복을 나타내는 행동이었다는 점에서 볼 때 어는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던 골리앗이 이제는 여호와 앞에 항복할 수밖에 없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의 생명이란 이처럼 덧 없고 불확실한 것이다. 자기 자신은 튼튼하다고 생각하는 그 때에도 그처럼 빨리 또 그처럼 쉽게 그리고 매우 하찮은 일을 통해서도 그 생명이 빠져 나가고 죽음이 들어 온다. 골리앗도 "생기를 주장하며 생기로 머무르게 할" 능력이 없었다(전 8:8) . 강한 자도 그 강한 힘을 자랑하지 말고 무장한 자도 그의 무장을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와 그의 백성들을 모욕한 자의 교만을 꺾으시며, 그들을 멸시하시는가를 보라. 골리얏이야말로 하나님께 대해 그의 마음를 가장 강퍅하게 가졌던 자였다.
한 이스라엘의 랍비는 골리앗이 다윗에게 "내게로 오라.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에게 주리라" 고 말했을 때, 급히 하늘을 쳐다 보다가, 투구를 떨어뜨렸기 때문에 그의 넓은 이마가 다윗의 멋진 표적이 되었다고 말한 바가 있다.
👉 다윗의 골리앗을 이긴 수단은 하찮은 ‘물매와 돌’ 이었다. 다윗의 승리는 ‘칼과 창’에서 비롯되지 않고 그의 믿음과 그를 도우신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다.
사울은 다윗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칼을 제공하였으나, 다윗은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이 칼을 사용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 이스라엘에서 칼을 가지고 있었던 자는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뿐이었다(13:22). 당시에 목숨을 건 싸움에서 칼이 없다고 하는 것은 가장 치명적인 약점일수 었었는데, 저자는 모든 사건이 종결된 이후에 다윗에게 칼이 없었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다시 상기시킴으로써 다윗의 승리가 칼과 같은 인간적 무력에서 비롯되지 않고(47절), 전적으로 여호와를 의지한 그의 믿음과 여호와의 함께하심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다윗은 그의 작업을 완결 짓기 위해서 두 손으로 골리앗의 칼을 빼어들고 그의 머리를 베었다(51절).
👉골리앗이 ‘서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조롱한 것은 결국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모욕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사용하여 그 패역함을 갚으셨고, 그와 같은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다윗은 골리앗의 위에 ‘서서’ 그를 밟음으로써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한 자의 결과가 무엇인지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다윗은 단 한 번만 칼을 쓰면 되므로 적의 칼로도 충분히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는데 무엇 때문에 자기의 칼을 가지고 오려고 했을까?
다윗은 교만한 적의 목을 그 자신의 칼로 내려치고, "저희의 혀가 저희를 해하게" (시 64:8) 함으로 하나님께 더 크신 영광을 돌려 드렸다.
다윗의 승리는 사탄과 모든 어두움의 세력에 대한 다윗의 자손(예수)의 승리의 예표였다. 다윗의 자손은 "어두움의 세력을 밝혀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다" (골 2:15). 그리고 우리도 그를 통하여 "승리한다."
3.이로 말미암아 블레셋 군대도 패망하였다.
그들은 전적으로 그들의 용사의 힘을 의지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골리앗이 죽는 것을 보고, 골리앗이 제안했던 그대로 무기를 버리고 이스라엘의 종이 되도록 굴복하지는 않았지마는(9절), 기가 꺾였고 그런 용사 앞에서는 도저히 당해낼 수 가 없다고 생각하고 줄행랑을 쳤다. "그들은 도망하였다" (51절).
이것이 이스라엘에게 생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일어나서 블레셋 사람들의 성문까지 쫓아갔다" (52절). (다윗은 아마 이 추격을 이끌었을 것이다.)그들은 추격에서 돌아오면서 블레셋의 진을 노략하여 많은 짐들을 가지고 왔다.
👉 그가 죽자 블레셋 군사들은 도망하기에 바랐는데, 이것은 골리앗이 제안했던 조건을 위반하는 것이었다.
골리앗은 단독 대결을 제안하면서 패하는 민족은 승리를 거둔 민족의 종이 될 것이라고 장담했었다(9절). 그러한 골리앗의 장담은 이스라엘 백성 뒤에 여호와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망각했던 교만의 결과였다. 본문에 나타난 블레셋 사람들의 모습은 결국 육신적인 시각에서 강한 것을 의지하지만, 결국 그것이 사라져 버리면 도망해 버리는 세상적인 힘의 허무함을 보여준다.
52절과 다음절은 다윗의 승리의 후속 조치로서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이 블레셋을 추격하여 큰 전과를 올렸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본장에서 이스라엘의 군대를 말하는 중에 ‘유다' 사람들을 따로 언급하고 있는 것은 상당히 독특한 것이다(11:18). 이는 골리앗을 물리리친 다윗이 유다 지파의 일원이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으며, 이 전쟁을 치르고 있는 접경 지역이 블레셋과 유다 지파 거주 지역의 경계 지역이었다는 점과도 무관하지 않다(1절). 저자가 이스라엘이 적들을 공격하기 위해 일어난 장면을 기록하면서, 이스라엘 민족 속에 유다 지파를 포함시키지 않고 접속사 ‘와우’를 사용해 대등하게 연결시키고 있는 것은 다윗의 승리로 인해 그가 속한 유다 지파가 장래에 이스라엘 전체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표현을 통해 본서가 유다 지파가 주축이 된 남유다가 북이스라엘과 분리된 남북 분열 왕국 초기에 기록되어졌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다.
가이와 에그론 성문까지 쫓음
에그론은 블레셋의 주요 다섯 성읍 중 하나로 꼽히는 곳으로, 본문은 이스라엘의 추격이 블레셋의 심장부까지 미쳤음을 기록함으로써 블레셋에 대한 이스라엘의 승리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나타낸다. 그리고 46절의 다윗의 위협이 그대로 성취되었다. 이스라엘 군대의 추격을 받은 블레셋 사람들은 죽거나 상처를 입어 길거리에 엎어져 짐승들의 먹이가 될 운명에 처했던 것이다.
4. 다윗은 그의 전리품을 다음과 같이 처리하였다. 그는 블레셋 사람의 머리를 예루살렘에 가지고 갔다. 그것은 시온성을 장악하고 있는 여부스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아마 다윗은 다른 성읍에 개선할 때도 이를 들고 갔을 것이다. "갑주는 자기의 장막에 두었다." 그리고 칼만은 하나님께 봉헌하여, 그의 영광으로 승리한 것을 기념하듯 성전에 있는 에봇 뒤에 보관해 두었다(21:9).
👉 ‘전리품을 획득함’
그런데 본문에서 합법적인 전리품 획득을 나타낼 때 주로 쓰이는 ‘솰랄’이 아니라, 불법적 약탈의 의미가 강한 ‘솨싸스’가 쓰인 것은(렘30:16; 슥14:2) 당시 이스라엘의 전리품 획득에 문제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즉 저자는 이스라엘 백성을 모욕했던 블레셋을 심판하는 목적을 지닌 여호와의 전쟁을 끝까지 종결하지 않고 전리품에만 관심을 갖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어리석음과 불신앙을 보여주기 위하여 이 단어를 사용했던 것이다. 이것은 아말렉에 대한 멸절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전리품에만 관심을 두었던 사울 왕의 모습과 유사하다(15장). 본문은 다음 절에서 전리품에 관심을 두지 않고 골리앗의 머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감으로써,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모욕을 제하는 데에만 관심한 다윗의 신앙적 열정과 대조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