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11월 24일 목요일 삼상17:55-18:5 다윗이 사울 앞에 서다

Jeehyun 2022. 11. 25. 08:24

맥체인성경읽기

역대상 19, 20, 베드로전서 1, 요나3, 누가복음 8

묵상구절

17:55 사울은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나아감을 보고 군사령관 아브넬에게 묻되 아브넬아 이 소년이 누구의 아들이냐 아브넬이 이르되 왕이여 왕의 사심으로 맹세하옵나니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하매

17:56 왕이 이르되 너는 이 청년이 누구의 아들인가 물어보라 하였더니

17:57 다윗이 그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그 블레셋 사람의 머리가 그의 손에 있는 채 아브넬이 그를 사울 앞으로 인도하니

17:58 사울이 그에게 묻되 소년이여 누구의 아들이냐 하니 다윗이 대답하되 나는 주의 종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이니이다 하니라

18:1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니라

18:2 그 날에 사울은 다윗을 머무르게 하고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였고

18:3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18:4 요나단이 자기가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자기의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

18:5 다윗은 사울이 보내는 곳마다 가서 지혜롭게 행하매 사울이 그를 군대의 장으로 삼았더니 온 백성이 합당히 여겼고 사울의 신하들도 합당히 여겼더라

매튜헨리/옥스퍼드

● 다윗이 유명하게 되었다.
다윗은 전에 궁전에 있었던 일이 있었건마는 한동안 떠나 있었기 때문에(15절), 사울은 그에 대한 것을 잊어버렸다. 사울은 정신착란증에 걸렸던 것이며, 또 도저히 그 노래하던 소년이 이처럼 늠름한 용사가 되리라고도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울은 전에 한 번도 다윗을 만나본 일이 없는 듯이 그가 누구의 아들이냐고 물었다. 아브넬은 다윗을 알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다윗을 사울에게로 데리고 갔다(57절). 다윗은 겸손하게 자기에 관한 말을 하였다(58절).

이제 다윗은 전보다 훨씬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으로서 궁전에 들어가게 되었다. 다윗은 거기서 하나님의 손이 자기의 모든 일을 성취시켜 주심을 고백하였다.

👉 사울은 다윗이 누구인지 아는데 전혀 모르는 것처럼 질문했는가?
어떤 이유로 사울이 다윗에 관하여 질문하고 있는지 성경에 나타나지 않지만, 당시 긴박한 상황에서 사울은 아브넬에게 다윗에 관한 여러 가지 질문을 하였고 그 절문 가운데 다윗의 가문을 묻는 질문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질문들 가운데서 저자가 ‘이 소년이 뉘 아들이냐' 란 가장 기본적인 질문만을 발췌하여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골러앗과 싸우기 위해 나간 다윗이 아직은 이스라엘에서 그 가문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임을 드러내려는 저자의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다윗의 상황은 왕이 되기 전부터 이미 유력한 집안의 자식이었으며 사람들이 보기에 그 용모가 준수하였던 것으로 묘사된 사울의 상황과 대조를 이룬다(9:2). 저자는 사울의 이러한 질문을 통해서 다윗을 미약한 존재로 소개하고 동시에 그 미약한 존재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구원을 이루시는 여호와의 능력을 드러내고 있다. 다음 본문에 나타나는 아브넬의 대답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다윗의 모습은 원수 골리앗의 머리를 ‘손에’ 들고 나타남으로써 이스라엘을 구원한 용사의 모습으로 당당하게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다윗의 변화된 모습은 다윗이 왕으로서의 자질을 갖추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동시에, 사울과의 본격적 갈등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누구의 아들이뇨’
히브리인은 지파나 혈연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가문을 확인하는 것으로 공식적 대화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큰 공을 세우거나 큰 죄를 짓는 것 모두가 가문의 영광 및 수치와 관련되기 때문에 사울도 볼레셋과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다윗을 재접견한 자리에서 그의 가문에 대해서부터 묻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울은 지금 다윗의 가문을 물음으로써 그 가문을 영광스럽게 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당시 사울은 큰 공을 세웠던 다윗에게 이 질문 외에도 여러 질문을 했을 것이지만, 저자가 이 질문과 이에 대한 다윗의 대답만을 기록한 것은 그만큼 다윗이라는 인물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미천하고 낮은 자׳ 였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결국 이는 하나님이 ‘낮은 자를 들어 높이신다'는 성경의 원리가 다윗에게서 입증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2:7).
👉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본장은 여호와의 신이 떠난 사울의 운명과 여호와의 신이 함께하는 다윗의 운명을 16장에 이어 또다시 비교하여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본장에서 이스라엘을 모욕하는 볼레셋의 장수 골리앗 앞에서 떨며 도망가는 사울의 군대와 오직 믿음만을 가지고 골리앗과 맞서 싸워 승리한 다윗을 대조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전쟁에 앞서 사울과 다윗의 근본 신앙 및 행동을 대조시켜(31-40절), 다윗과 함께하시는 여호와의 구원 사역 속에 사울이 철저히 배제되고 있음을 암시했다.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왕권을 고수하려 했던 사울을 버리시고, 목동 출신이지만 여호와의 이름만을 의지하여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을 선택하심으로써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인도하시는 진정한 왕은 다윗의 배후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임을 본장은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다윗에 대한 요나단의 사랑(사무엘상 18:1-5)

👉 18:1-9 에서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다윗의 우정의 언약과 사울의 시기에 대하여 다룬다. 골리앗을 무찌른 다윗의 믿음과 용맹은 사울의 아들이었던 요나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요나단은 그날 이후로 다윗을 자기 생명처럼 사랑하였고 다윗과 우정의 언약을 맺었다(1-4절). 이는 이후 다윗에 대한 사울의 걷잡을 수 없는 시기와 질투를 배경으로 하여 눈물겹도록 아름답게 전개되는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 아야기의 도입과 같은 역할을 한다.

사울과 다윗 간의 진지한 대화가 있었다
사실 다윗은 이전에도 악신으로 인하여 번뇌하는 사울을 수중들어 수금을 연주함으로써 그로부터 악신이 떠나게 하였으며(16:14-23) 골리앗과의 전투 이전에도 사울과 만나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러나 다윗이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에게 승리한 이후 둘 사이의 대화는 더욱 진지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사울은 다윗의 가계와 성장 과정 및 그의 신앙에 대하여 자세히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본문은 다윗과 사울의 대화가 끝나고 새로운 사건이 시작됨을 보여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즉 본서 저자는 이후 다윗이 신본주의적 자세를 갖춘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으로 즉위함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요나단과의 사이에서 싹튼 아름다운 우정을 보여주기 위하여 사울과의 기사를 여기서 종결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는 본절 후반절에 나오는 다윗을 향한 요나단의 뜨거운 우정이 단순히 골리앗을 무찌른 다윗의 용맹함에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다윗과 사울과의 대화에서 나타난 다윗의 순수하고 성숙한 신앙 인격에 기인함을 암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다윗은 사울의 머리에 있는 왕관을 이어받도록 기름부음을 받았다. 그 왕관은 요나단이 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다음과 같은 장면을 본다.

Ⅰ. 현재 왕관을 소유하고 있는 사울은 다윗을 신임하고 그를 발탁하여 궁전에 머물게 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 이루어진 것인데 다윗에게 장래의 일을 준비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통해 다윗은 신정 왕국의 왕이 되기를 앞서 자연스럽게 왕궁의 법도를 배우며 정치적 감각을 익힐 수 있었을 것이다. 어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본격적으로 들어 쓰시 기 전에 그를 훈련시키는 하나의 과정이었다.

사울은 다윗을 데리고 자기 궁전으로 갔으며 다시는 그를 자기 집으로 돌아 가도록 허락하지 않았다(2절). 그리고 다윗은 군인들과 함께 싸우러 나갈 때마다 그들보다 훨씬 두각을 나타내었다. 그리하여 "사울은 그로 군대의 장으로 삼았다" (5절). 그러나 군대의 장관으로 삼은 것은 아니었다(왜냐하면 아브넬이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시위대의 대장으로 삼았을 것이다. 또 우리는 사울이 다윗의 큰 공로에 보답하기 위해 장관과 같은 높은 지위를 주었을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사울은 다윗에게 국사를 맡겼다. 그리고 "다윗은 사울의 보내는 곳마다 가서" 용기 있는 자처럼 자기의 의무를 다하였다. 다스리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자신이 복종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다윗이 전에는 자기 아버지 이새의 충실한 아들이었는데, 지금은 그의 주인 사울의 충실한 종이 되었다. 어느 하나에 잘하면 또 다른 하나에게도 잘하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

Ⅱ. 왕위의 계승자였던 요나단은 다윗과 친교를 맺었다. 그것은 경쟁자가 친구가 되게함으로 다윗의 길을 밝히 드러내 보여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꾸며 놓으신 일이다.

1. 요나단은 다윗에 대해 특별한 친절과 애정을 느꼈다(1절).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쳤을 때" 요나단은 그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때가 전쟁 전에(34,37절) 사울을 만났던 때 인지 혹은 전쟁 후에(58절) 만났을 때의 일인지 분명하지는 않다. 다만 나중의 경우는 성서의 기록보다는 훨씬 더 많은 말을 주고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 경우에 모두 다윗은 매우 신중하고 겸손하며 그리고 경건하게 말했으며, 또 매우 용감하면서도 감미롭게 이야기하였고, 아주 자연스럽게 이야기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더욱이 그가 배운 것도 없고 생김새도 도무지 그런 말을 할 것 같지 않은데 그와 같은 이야기를 할 때 듣는 사람들을 매우 놀라게 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요나단의 마음이" 즉시로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었다."

요나단도 전에 다윗이 오늘날 블레셋의 거인을 쳐부셨던 것과 같은 신념과 용기를 가지고 블레셋 군대를 공격하였던 일이 있다. 그리하여 그들 두 사람 사이에는 똑 같은 마음과 기질과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마치 두 몸이면서도 한 마음인 것처럼 그렇게 쉽게, 빨리 그리고 그렇게 가깝게 마음과 마음이 연락될 수 있었다.

요나단이야말로 다윗을 가장 싫어 하여야 할 사람이었다. 그의 차지가 될 왕관을 넘겨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도 다윗을 가장 아끼는 사람이 되었다. 하나님의 지혜와 은혜로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은 그의 마음의 연합이 어떤 세속적인 것 때문에 갈라지는 일이 없다. 위대한 생각이 다른 하찮은 것들을 모두 극복하게 만들어 준다.

 👉구약 성경에서는 요나단과 다윗의 경우를 제외하고 개인 사이에 ‘언약’ 을 맺었다는 표현은 전혀 사용되고 있지 않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요나단과 다윗 두 사람 사이의 언약은 비록 사람 사이의 언약이었으나 하나님 앞에서 행해진(23:18) 언약으로서 신성한 것임을 잘 보여준다. 즉 상호간에 약속 정도가 아니라 법적 구속력을 가지고 철저하게 지켜져야 하는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한편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원문에는 요나단이 주도적으로 언약을 맺은 것으로 나와 있다. 이는 물론 요나단의 연령이 더 높았기 때문으로(삼하 1:26) 볼 수도 있으나 당시 신분상 왕자였던 요나단이 주도적일 수밖에 없었으며 실제 상대를 향한 사랑의 정도에 있어서도 다윗보다 요나단이 더욱 강렬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때 맺은 요나단과 다윗의 언약은 단 한 차례의 변절도 없이 계속 유지되어 역사에 빛나는 우정의 모범으로 기억되고 있다. 요나단은 수차례에 걸쳐 다윗의 목숨을 구해 주었고(19:5; 20:1-23), 다윗은 요나단이 죽었을 때 몹시 슬퍼하며 애가를 지어 그 죽음을 애도했을(삼하 1:17-27) 뿐 아니라 죽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극진하게 돌보았다(삼하 9:7)

2. 요나단은 여러가지 좋은 선물들을 다윗에게 줌으로 자기의 사랑을 밝혀 주었다(4절).

요나단은, 그처럼 위대한 정신이 거기에 상당한 훌륭한 육체에 깃들어 있기는 해도, 그것들을 감싼 옷이 매우 보기가 너절한 목동의 옷이란 것을 보고 매우 마음이 불안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즉시 조정 신하의 옷을 입혀 주기 위해 자기의 겉옷를 주었고, 군인의 옷차림을 위해서는 막대기와 물매대신, 자기의 칼과 활을 그리고 목자의 주머니 대신에 자기의 허리띠 또는 어깨띠를 주었다. 그리고 마치 요나단 자신이 입은 것 모양으로 모든 것이 꼭 맞았기 때문에 그 선물은 퍽 어울리는 선물이 되었다. 그리고 기록으로 보면 요나단이 다윗에게 주기 위해 자기 옷을 벗어서 주고 자기 자신은 벌거벗은 것 같다. 사울의 옷은 다윗에게 맞지 않았다. 그러나 요나단의 것은 맞았다. 그들의 몸의 크기가 같았고 그만큼 그들의 마음도 같았다고 볼 수 있다.

사울이 다윗에게 영광의 표시로서 그에게 무장을 입혀 주었을 때는 그것들을 벗어 버렸다. 왜냐하면 처음 입어보는 것이라 거북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그가 왕자와 그리고 군인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한 마당에서는 그것들을 입는 것이 부끄럽지 않았다.

다윗이 요나단의 옷을 입었다. 다윗에게서 우리는 제2의 요나단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우리 주님께서도 자기의 옷을 벗어서 우리를 입히시고, 우리를 부하게 하시기 위해 자신을 가난하게 하신 그러한 사랑을 보여 주셨다. 아니 우리 주님은 요나단보다 훨씬 더한 일을 하셨다. 요나단은 다윗의 옷을 입지 않았지만, 우리 주님은 우리가 입었던 누더기를 입으셨다.

👉 요나단이 벗어준 겉옷: 본문에서는 왕족임을 표시하는 옷을 가리킴.

요나단이 다윗에게 왕자의 신분을 나타내는 의복을 벗어준 행동은 15장에서 사울이 사무엘의 옷자락을 찢은 사건과 24장에서 다윗이 사울의 옷자락을 벤 사건과 더불어 후에 다윗이 왕위를 넘겨받는 것에 대한 암시가 숨겨진 표현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또한 요나단이 다윗에게 준 물건들이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준 물건들은 모두 군사용 무기들이었으며 매우 귀한 것들이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 ‘칼’ 을 가지고 이었던 자는 사울과 요나단뿐이었다는 점을 상기해 볼 때(13:22) 칼을 포함한 무기 일체를 요나단이 다윗에게 준 것은 얼마나 대단한 결심이었는지를 알게 한다. 특히 이 물건들은 전쟁에서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필수 장비들이다. 따라서 이를 주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의탁한다는 상징적 의미까지 지닌다. 즉 요나단은 자신의 생명을 의탁할 정도로 다윗을 깊이 신뢰하였던 것이다.

3. 요나단은 이 우정을 영속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들은 처음 보자마자 대단히 만족함을 느끼고 서로 언약을 맺었다(3절).

그들의 사랑은 매우 진실하였다. 진실한 마음은 서로를 믿는다. 참다운 사랑 항상 계속되기를 바란다. 그리스도를 그의 마음 충심으로부터 사랑하는 자는 그와 영원한 계약을 맺기를 원하여야 한다.

Ⅲ. 궁중에서 그리고 온 나라에서 모두가 다윗을 축복하였다.

서로가 다 좋아 하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다윗은" 온 백성이 합당히 여겼고,(놀랍게도) 사울의 신하들도 합당히 여겼다" (5절). 백성들은 마음으로 부터 그를 사랑하였다. 사울의 신하들은 그들 자신이 부끄러워서라도 다윗을 칭찬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다윗과 함께 하였다는 증거이다. 그리하여 그는 그에게 갑자기 쏟아지는 존경과 명예를 겸손하게 잘 받아낼 수 있었다. 그처럼 빨리 올라가는 자는 머리를 잘 쓰고, 마음도 잘 써야 한다. 내려가기 보다는 올라가기가 더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빠른 출세는 사람들로 하여금 시기를 불러일으키기 쉽다. 그러나 다윗의 경우는 일반 백성들 뿐만 아니라 일종의 경쟁의 관계에 있는 사울 측근들에게까지 그 언사의 타당성이 인정되었다. 저자는 하나님이 다윗에게 탁월한 능력을 주어 새로운 지도자로 부각시킴은 물론 백성들과 관료들도 이러한 다윗을 거부감 없이 수용하였음을 밝힘으로써 이제 곧 다윗의 시대가 도래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