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창세기 42, 마가복음 12, 욥기 8, 로마서 12
묵상구절
2:36 왕이 사람을 보내어 시므이를 불러서 이르되 너는 예루살렘에서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거기서 살고 어디든지 나가지 말라
2:37 너는 분명히 알라 네가 나가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는 날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니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가리라
2:38 시므이가 왕께 대답하되 이 말씀이 좋사오니 내 주 왕의 말씀대로 종이 그리 하겠나이다 하고 이에 날이 오래도록 예루살렘에 머무니라
2:39 삼 년 후에 시므이의 두 종이 가드 왕 마아가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도망하여 간지라 어떤 사람이 시므이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의 종이 가드에 있나이다
2:40 시므이가 그 종을 찾으려고 일어나 그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가드로 가서 아기스에게 나아가 그의 종을 가드에서 데려왔더니
2:41 시므이가 예루살렘에서부터 가드에 갔다가 돌아온 일을 어떤 사람이 솔로몬에게 말한지라
2:42 왕이 사람을 보내어 시므이를 불러서 이르되 내가 너에게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게 하고 경고하여 이르기를 너는 분명히 알라 네가 밖으로 나가서 어디든지 가는 날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도 내게 말하기를 내가 들은 말씀이 좋으니이다 하였거늘
2:43 네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두고 한 맹세와 내가 네게 이른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느냐
2:44 왕이 또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네 마음으로 아는 모든 악 곧 내 아버지에게 행한 바를 네가 스스로 아나니 여호와께서 네 악을 네 머리로 돌려보내시리라
2:45 그러나 솔로몬 왕은 복을 받고 다윗의 왕위는 영원히 여호와 앞에서 견고히 서리라 하고
2:46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에게 명령하매 그가 나가서 시므이를 치니 그가 죽은지라 이에 나라가 솔로몬의 손에 견고하여지니라
매튜헨리/옥스퍼드
●시므이의 최후(열왕기 상 2:35-46)
💡 개관
앞선 아도니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본서 저자는 시므이가 처형에 이르는 과정을 상당히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무엇보다 솔로몬의 지혜로움과 합법적인 처리 방식이 부각되고 있다.
시므이의 과거 다윗과의 관계, 솔로몬의 지혜
-시므이는 바후림에 사는 베냐민 지파의 사람으로 초대 왕 사울을 배출한 자기 지파에 대해 상당한 우월 의식을 갖고 있었으며 동시에 사울을 이어 왕이 된 유다 지파의 다윗에 대하여 큰 불만과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다윗이 압살롬의 반란을 피해 도망갈 당시 모욕과 비방을 서슴지 않았었다(삼하 16:5-8). 그러나 다윗은 이러한 시므이를 당시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으로 인해 처단하지 못하고(8절) 그의 처단을 솔로몬에게 부탁했다(9절).
-부친 다윗으로부터 이러한 유언을 들은 솔로몬은 시므이를 처형하기 위해 결코 경솔하게 행동하거나 불법적인 방식을 사용하지 않고 지혜로써 대처하였다. 그 방법은 본절에서 38절에 나타나는 바와 같이 시므이의 거주지를 제한하는 강요된 합의를 통한 것이었다.
Ⅱ. 시므이를 제거하게 된 경과가 나와 있다.
그는 바후림에 있는 자기 집에서 솔로몬 왕이 보낸 사자를 통해서 소환령을 받았다. 그때 그는 자기의 운명도 아도니야의 운명과 별다를 바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다윗의 집에 대해 품은 자기의 적대감을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솔로몬은 죄와 죄인을 구분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다윗은 자기 생전에는 시므이의 목숨을 살려 줄 것을 약속한 바 있다. 솔로몬은 그 약속에 구애받지는 않으나, 그 약속을 정면으로 위배하지는 않을 것이다.
1. 솔로몬은 시므이의 주거를 예루살렘에 한정시키고, 기드론 강 건너 그 성읍을 나가지 못하게 했다(36, 37절).
솔로몬은 시므이가 그의 이웃들간에 불행한 일을 할까봐 그를 계속 고향에 살게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를 예루살렘으로 보내, 그 속에서만 살도록 하였다. 따라서 시므이의 주거 제한은 자기 자신에게는 편안한 생활이 될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은 그 위치가 아름다웠고, "온 땅의 기쁨이요," 왕이 있은 성읍이요, 거룩한 성읍이었기 때문이었다(그는 그와 같은 천국에 갇혀 있으므로 그것을 불평할 이유가 없었다).
그의 감금은 솔로몬에게 더욱 안전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예루살렘에서는 늘 자기가 볼 수 있는 곳에 두어 그의 모든 행동을 감시할 수 있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솔로몬은 분명하게 그에게 만일 그가 왕의 지배를 벗어나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했다. 이것이야말로 그의 복종을 위한 공정한 심판이며 그가 불평할 이유가 없는 충순함을 시험하는 것이기도 했다. 시므이는 아주 경미한 조건으로 생명을 얻고 있는 것이었다. 즉 그는 예루살렘에서 살기를 만족하여 여기기만 하면 그의 목숨은 부지할 수 있게 되었다.
💡 시므이의 주거를 제한한 이유는?
-반역에 대한 사전 방지의 측면, 정치적 연금.
-솔로몬은 시므이의 거주지를 예루살렘으로 제한하였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본문의 솔로몬의 명령은 시므이에게 근거 있는 정치적 연금의 형태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즉 친사울계 인사인 자신을 사울의 출신 지파인 베냐민 사람이 모여 살고 있는 자신의 고향 바후림으로부터 격리시킴으로 반역을 방지한다는 의미로 이해될 만한 것이었다.
-사실 시므이에게는 사울 가계의 부흥을 도모한다는 의심을 살만한 이유가 있었다. 다윗을 향한 시므이의 비난의 내용은 바로 사울에 대한 충성심을 반증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시므이 스스로도 자신의 행적과 관련하여 솔로몬이 이러한 의혹을 갖는 것을 타당하게 여겼을 것. 그리고 설혹 솔로몬의 조처에 대하여 불만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아도니야와 아비아달 및 요압에 대한 솔로몬의 처벌을 보았으므로 항변할 수 없었을 것이며 오히려 자신이 가벼운 처벌을 받았음에 대하여 안도하였을 것이다.
친족들로부터 단절이 갖는 의미는?
-시므이에 대한 솔로몬의 이러한 명령은 시므이의 고향 바후림에 있는 그의 친족들로부터 그를 단절시키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의 고향에 있었을 그의 땅은 이제 직접 관리할 수 없게 되었으며 이는 종들에 대한 의존이 커졌음을 의미한다.
-즉 그의 종들은 단순히 노동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시므어의 대리인의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 이런 상황에서 종이 도망을 가는 것은(39절) 시므이에게 치명적일 수 있었다.
37절, 솔로몬의 경고성 명령.
-솔로몬은 시므이에게 매우 강력하고 엄중한 경고성 명령을 주었고, 이는 시므이가 계속해서 살기를 원한다면 절대로 잊어서는 안될 삶의 지침이었다.
2.시므이는 감금 생활에 복종하고 이러한 조건으로 그의 생을 감사하게 누렸던 것이다. 그는 사형에 해당하는 형벌하에서도 예루살렘을 교란시키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고 왕의 말이 옳다고 자책했다.
💡 38절, ‘이 말씀이 좋사오니’ ⇒ 시므이의 반응
본문의 표현은 솔로몬의 명령어 올바르고 정당하며, 자신이 솔로몬의 명령을 어길 경우 죽어도 좋다는 조건에 합의한 것. 이로써 솔로몬과 시므이와의 계약이 체결되었다. 조건은 시므이가 예루살렘 바깥으로 나가지 않으면 목숨을 해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므이는 이를 정치적 목적으로 베냐민 지파에 속한 바후림 사람들과 접촉을 하지 않으면 목숨을 보장해 주겠다는 의미로 이해하였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시므이의 이해는 그의 죽음을 가져오게 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그렇다면 솔로몬은 약삭빠른 시므이로 하여금 자기 꾀에 넘어가도록 유도하여 그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게 하였던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시므이는 솔로몬과의 약속을 잘 수행하였으며 정치적으로 반역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그를 처벌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런 생활을 한다면 솔로몬은 결코 시므이를 벌할 수 없었다.
솔로몬은 앞선 36절에서 매우 분명하게 예루살렘을 벗어나던 죽음의 형벌을 당할 것임을 명시적으로 밝혔다. 그러므로 시므이의 죽음은 우선적으로 시므이의 부주의와 계약 위반에 그 책임이 있는 것이며, 한편으로는 매우 간교한 지혜로 자신의 죄책을 벗어나려 했었던(삼하 19:16-20)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 형벌을 피할 수 없었던 측면도 있다고 하겠다.
멸망하는 자들도 용서와 생명의 조건이 예상 밖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기들의 머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인정해야 한다. 시므이는 한계 구역 바깥에는 나가지 않겠다는 서약을 했다(42절).
3.시므이는 자기의 서약을 망각하고 말았다. 이것은 솔로몬 왕이 예상했던 바였다. 하나님은 의로우사 시므이가 그의 옛 죄값을 받게 하시기 위하여 그로 하여금 그 서약을 망각하게 하셨다.
💡 이러한 내용에서 시므이가 솔로몬과의 약속에 대하여 부주의하였음과 우연한 듯이 보이는 이러한 사건의 뒤에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하였음을 발견하게 된다.
시므이가 솔로몬과 약속을 깨뜨리게 된 직 • 간접적인 원인을 본서 저자는 숫자를 통하여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즉 솔로몬과 약속한 후 ‘삼' 년의 세월이 흘렀을 때 시므이의 종 ‘둘'이 도망하였으며, 익명의 ‘한' 사람이 시므이에게 와 이 중들이 있는 곳을 가르쳐 주었다고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이 ‘3년’의 세월은 시므이에게 과거의 과오를 회개하는 기간이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는 그 기간 동안 마음을 느슨하게 했다. 그리고 거주지 제한 명령으로 고향에 있는 땅의 관리에 있어서 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시므이의 입장에서는 한 명도 아닌 두 명의 중의 도망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한 익명의 사람이 제공한 정보에 의하면 도망한 종들이 기드론 시내가 있는 예루살렘 북동쪽이 아닌 정반대의 남서쪽에 있다는 것이었다.
→ 이곳은 솔로몬이 언급한 기드론 시내(37절)를 건널 필요 없어 힌놈 계곡을 건너가면 되는 곳이었다. 이러한 요소들이 어울려서 시므이가 솔로몬과의 약속을 파기하게 된 것이었다.
악인은 이처럼 잘못을 합리화함으로 결코 빠져 나올 수 없는 그물에 스스로 걸려들게 되는 것이다(시 11:6).
시므이의 종들이 가드로 도망갔으며 그 소식이 시므이에게 다시 전달되었다는 것은 이 종들이 상당한 업무 수행 능력을 가진 종들, 즉 사울의 시종 시바와 같이 관리 능력을 갖춘 유능한 종들이었음을 암시한다.
여러 상황들을 미루어 볼 때 이들의 부재가 시므이에게 심각한 문제가 될 정도로 어 종들은 시므이 집안의 중요한 중간 관리자였음이 틀림없다. 그렇기 때문에 시므이는 그 두 종을 찾으러 직접 나선 것이다.
40절, 일어나 안장을 지우고.. 종들을 데리고 옴
⇒ 시므이의 안일한 생각, 솔로몬의 명령을 소홀히 여기는 사고방식의 반영
-시므이의 이런 행동은 두 종의 도망 소식을 듣고 어떠한 망설임도 없이 즉각적이었다(와우법).
-이는 시므이가 그처럼 엄하게 강조되었던 솔로몬의 명령을 자기 위주로 잘못 이해하고 있었거나 너무 소홀히 생각하였음을 반영하는 것이며, 두 종이 없어짐으로 말미암은 물질적인 타격에만 정신을 팔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시므이에게 기다리는 것은 오직 형벌과 파멸뿐이었다.
-가드는 솔로몬이 예루살렘의 경계로 언급한 동쪽에있던 기드론 시내와는 다른 방향인 서남쪽에 있는 성이었다(37절). 따라서 시므이는 힌놈 골짜기를 통과하여 서남쪽으로 가는 것에 대하여는 소홀하게 생각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 시므이는 도망간 두 종을 끌고 예루살렘으로 즉시 돌아왔는데, 이는 시므이가 결코 정치적 목적으로 행동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시므이는 자신의 이 행동이 정치적 성격이 전혀 없으므로 주거 제한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았다면 시므이는 결코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지 아니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시므이의 안이하고도 자의적인 생각이었다.
사실 도망간 종들을 잡으러 가기 전에 솔로몬의 양해를 얻을 수도 있었다. 만약 그러했다면 사건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었을지도 모른다. 당장 눈앞의 이익만을 바라보고 내렸던 시므이의 성급한 판단과 생각은 결국 약속을 어긴 것이 되어 죽음이라는 비극적 결과를 가져오게 하였다.
그의 종들 중 두 사람(그는 죄수였지만 그를 수종드는 자들과 함께 살았던 것 같다)이 그에게서 블레셋 땅으로 도망해 갔다(39절). 그는 거기까지 그들을 쫓아가서, 그들을 예루살렘으로 데려 왔다. 그는 몰래 나귀를 타고, 아마 밤에 떠났던 모양이다. 그는 집에 돌아와서 들키지 않았으리라 생각했다.
홀(Hall)주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그의 종들을 찾으려 했으나, 자기 자신을 잃었다.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은 우리의 종들이며, 또 종이어야 한다. 우리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율법 테두리를 벗어나서 땅의 것을 추구하다가 드디어 자기들의 영혼이 무서운 심판을 자초하는 사실을 얼마나 자주 보는가!"
4. 솔로몬은 그의 생명을 몰수했다. 시므이가 범법했다는 정보가 솔로몬에게 입수되었다(41절). 왕은 사람을 보내 그를 불러서
(1) 그의 현재의 범죄를 책망했다(42, 43절).
즉 그는 하나님과 왕의 권위와 진노를 크게 무시했다. 또 그는 "여호와의 맹세" 를 파기하고 왕명에 불복종했다. 그리고 이로써 그의 정신상태가 입증되었다. 즉 그는 감사와 양심의 굴레를 모르는 자이다.
만일 그가 솔로몬에게 출타해야 할 사정이 긴박함을 진언하고, 허가를 간구했더라면, 솔로몬은 아마도 허가를 내려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솔로몬이 모르고 있는 것과 묵인하고 있는 것을 기화로 삼는 것은 그를 최대로 모욕하는 것이었다.
💡 왕은 사사로운 감정으로 시므이를 처벌한 것이 아니라, 왕으로서 고으이에 입각하여 처벌하였음.
‘내가 너로 … 경계하여(우드) 이르기를’
-‘우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계시는 시내산에 호기심으로 오르려 하다가 죽을 것을 염려하여 모세로 하여금 강하게 제재할 것을(출 19:21) 명하는 문맥에서도 사용된 단어이다. 즉 이 단어는 생명에 연관된 강한 경고의 의미를 지닌다.
→ 솔로몬은 시므이에게 주거 제한의 명령을 내릴 때, 그것이 시므이의 생명과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사항임을 시므이에게 강조하여 경고하였던 것.
-이처럼 솔로몬은 시므이가 잘 알아 듣도록 명확하고 분명하게 경고하였으므로 시므이는 아무런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이제 자신이 맹세한 그 말씀에 의거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2) 솔로몬은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하고, 그가 다윗성에서 환란을 당하고 있을 때 돌을 던진, 이전의 죄를 비난했다. 다시 말하면 그 죄란 "네 마음이 아는 모든 악이었다" (44절).
이제는 그 사실의 증거를 입증할 증인을 세울 필요도 없었다. 그 대신 양심이 그 자신의 수천 명의 증인이 되었다. "죄 값이 자기 머리 위에 돌아갈 것을 뻔히 알고도 마음만이 홀로 알고 있는 악" 은 그 사람을 혼란으로 충만시키기에 충분하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이 그것을 알고 있다면, 하나님은 그 마음보다 더 위대하시며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이다.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한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은 별도로 하고라도 시므이 자신은 그가 다윗을 저주할 때 보여 준 증오심과 적개심, 그리고 자기가 복종했던 것은 허례 아니면 억지로 한 것 등 그 악의 요인을 알고 있었다.
💡 시므이의 양심이 스스로 알고 있는 그의 과거
-사실 과거 시므이는 압살롬의 반란을 피해 도망가는 다윗을 심한 말로 저주하였을 뿐 아니라 다윗의 예루살렘 환궁 시에는 다윗에게 용서를 구하여 당시의 상황을 이용하여 다윗으로부터 생명을 해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받아내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시므이는 이러한 다윗의 맹세를 방패 삼아서 뻔뻔하게 솔로몬의 주위에서 (8절) 활개처며 살았다. 그래서 이러한 악을 행한 시므이 자신도 자신이 죽어 마땅한 자임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적 의도 없이 이루어진 시므이의 주거 제한 명령 위반 사건을 통해 시므이를 처형하는 솔로몬의 지혜는 시므이가 행한 간교함에 대한 통렬한 보응이라 할 수 있다.
-시므이는 간교한 방식으로 자신의 죽음을 연장할 수는 있었지만 결국은 죄에 대한 보응으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44절, 시므이의 ‘모든 악’
-악: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함으로 여호와를 격노케 하는 행위(왕하17:11), 인간의 내적 상태나 꼐획의 부적절함(창6:5) 교만(욥35:12), 노함(잠15:10), 반항(느9:5) 등의 부정적 태도를 나타낼 떄도 사용.
-본문은 직접적으로 다윗에 대한 저주(삼하 16:7, 8)를 포함한 모든 부적절한 생각이나 태도를 가리킨다. 그러나 더 나아가 여기에는 그러한 악들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는 솔로몬의 명령을 거역한 불성실함(36절), 여호와의 이름으로 한 맹세를 어김으로 하나님을 모독한 것(42절) 등의 죄악들도 모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44절, ‘여호와께서 … 돌려보내시리라’
⇒ 하나님의 절대 공의, 보응의 결과 ⇒ 이에 대한 성도의 합당한 태도
-본문에서 솔로몬은 시므이에 대한 처벌이 솔로몬 자신의 개인적인 보복이 아니라 그가 행한 악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보응의 결과임을 명확히 한다.
-다윗은 하나님께 기름부음 받은 왕인 자신을 저주한 시므이를 죽이는 것이 마땅했으나(레 24:14) 오히려 분노하여 그를 즉석에서 죽이려는 아비새를 만류하고 여호와께서 원통함을 감찰해 주실 것이라고 말했었다(삼하 16:12). 그리고 과연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전적으로 신뢰하였던 다윗의 성숙한 신앙적 통찰 그대로 시므이의 죄악은 하나님에 의하여 심판 받게 되었다.
-이처럼 본문은 악인이 행한 모든 악행들에 대해 하나님께서 반드시 갚아주신다 는 하나님의 절대 공의를 보여주고 있다. 비록 그 징벌이 즉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보응하신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부러워하거나 낙담할 필요가 없다(잠 23:17).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당신의 때에 당신의 공의를 드러내시기 때문이다(사 30:18; 슥 9:9).
(3) 그는 자기 자신과 왕권을 축복했다(45절).
분노와 낙담으로 시므이가 한 무력한 저주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왕은 복을 받으소서" 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마음껏 소리를 냈다. 즉 "그들이 저주하려면 저주하게 하라." 너는 "복을 빌라."
💡 솔로몬은 시므이가 하나님에 의하여 멸망 받는 비참한 운명에 처하게 된 것과 달리 신정 왕국의 통치자로서 하나님의 공의를 실행한 자신은 하나님께 복을 받게 됨을 강조하고자 하였던 것.
결국 본문은 시므이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법집행을 통해 솔로몬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성공, 번영, 생산, 장수 등과 같은 충만한 축복을 받기를 원함을 기원하는 것이다. 솔로몬은 개인적인 복수심에서가 아니라 의의 하나님이 다스리는 신정 왕국 이스라엘의 대리 통치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악인을 처단한 것이었으므로 하나님께로부터 축복을 받아 누리게 되기를 기원하고 있는 것이다.
"다윗의 위는" 그를 전복하려는 자를 제거함으로써 "견고히 설지어다."
교회의 원수들의 악을 생각해 보면 그들이 아무리 격노한다 하더라도 그들이 상상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그리스도의 왕좌는 견고히 설 것이니, 원수는 이를 흔들 수가 없다.
💡 솔로몬은 여기서 ‘여호와 앞에서'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솔로몬이 사람이 아니라 여호와 앞에서 견고히 서는 것이 자신 뿐 아니라 자신의 후손들이 받을 최고의 복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영원히'란 표현까지 사용하여 솔로몬은 과거 다윗 언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란 약속을(삼하7:13) 굳게 신뢰하였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실로 이 약속은 다윗과 솔로몬의 후손이 계속하여 유다의 왕이 됨으로 일차적으로 성취되었고 궁극적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만왕의 왕이 되심으로 완전하게 성취된다.
(4) 솔로몬은 시므이를 즉시 처형할 명을 내렸다(46절).
모든 심판은 예수께 맡겨졌다. 따라서 주 예수님이 평화의 왕이긴 하지만 그는 역시 정의의 왕이심이 알려지리라. 그리고 머지 않아 예수의 통치를 기뻐하지 않던 모든 원수들에게도 그러한 그의 명령이 내려지리라. "그들을 데리고 와서 내 앞에서 쳐 죽이라" 는 것이다. 예수를 모독한 자들의 죄값은 자기들의 머리 위에 떨어져 영원한 저주를 받을 것이다.
💡 본문에서 발견되는 우연성 → 하나님의 섭리
두 종들의 도망, 그것도 정치적 움직임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베냐민 지파쪽이 아니라 정반대 방향인 가드로 도망간 것. 이로 인하여 시므이가 예루살렘을 떠나게 된 것.
⇒ 우연적 요소의 배후에는 시므이의 죽음이 필연적인 것이 되도록 역사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솔로몬의 손에 견고하여지니라’
솔로몬이 하나님의 공의대로 행한 결과 왕권이 안정되고 나라도 굳건하게 되었다. 솔로몬의 모든 숙정 작업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