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창세기 44, 마가복음 14, 욥기 10, 로마서 14
묵상구절
3:16 그 때에 창기 두 여자가 왕에게 와서 그 앞에 서며
3:17 한 여자는 말하되 내 주여 나와 이 여자가 한집에서 사는데 내가 그와 함께 집에 있으며 해산하였더니
3:18 내가 해산한 지 사흘 만에 이 여자도 해산하고 우리가 함께 있었고 우리 둘 외에는 집에 다른 사람이 없었나이다
3:19 그런데 밤에 저 여자가 그의 아들 위에 누우므로 그의 아들이 죽으니
3:20 그가 밤중에 일어나서 이 여종 내가 잠든 사이에 내 아들을 내 곁에서 가져다가 자기의 품에 누이고 자기의 죽은 아들을 내 품에 뉘었나이다
3:21 아침에 내가 내 아들을 젖 먹이려고 일어나 본즉 죽었기로 내가 아침에 자세히 보니 내가 낳은 아들이 아니더이다 하매
3:22 다른 여자는 이르되 아니라 산 것은 내 아들이요 죽은 것은 네 아들이라 하고 이 여자는 이르되 아니라 죽은 것이 네 아들이요 산 것이 내 아들이라 하며 왕 앞에서 그와 같이 쟁론하는지라
3:23 왕이 이르되 이 여자는 말하기를 산 것은 내 아들이요 죽은 것은 네 아들이라 하고 저 여자는 말하기를 아니라 죽은 것이 네 아들이요 산 것이 내 아들이라 하는도다 하고
3:24 또 이르되 칼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칼을 왕 앞으로 가져온지라
3:25 왕이 이르되 산 아이를 둘로 나누어 반은 이 여자에게 주고 반은 저 여자에게 주라
3:26 그 산 아들의 어머니 되는 여자가 그 아들을 위하여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왕께 아뢰어 청하건대 내 주여 산 아이를 그에게 주시고 아무쪼록 죽이지 마옵소서 하되 다른 여자는 말하기를 내 것도 되게 말고 네 것도 되게 말고 나누게 하라 하는지라
3:27 왕이 대답하여 이르되 산 아이를 저 여자에게 주고 결코 죽이지 말라 저가 그의 어머니이니라 하매
3:28 온 이스라엘이 왕이 심리하여 판결함을 듣고 왕을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그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봄이더라
- 사11:2-411:3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 11:4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 11: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 엡1:17-191: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 1: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 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 골1:9
-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 잠15:33
-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 전8:1
- 누가 지혜자와 같으며 누가 사물의 이치를 아는 자이냐 사람의 지혜는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나니 그의 얼굴의 사나운 것이 변하느니라
매튜헨리/옥스퍼드
●빛나는 지혜(열왕기 상 3:16-28)
여기서 솔로몬의 지혜의 한 사례가 있다. 그것은 이제 막 그에게 주어진 그 은사가 그에게 현실적인 힘이 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 증거가 주어졌다. 그것은 그 나라의 어떤 비법이나 고문기관의 정책-분명 그것들도 우수했을 것이다-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소송 사건의 판결로부터 주어졌다. 왕들은 그런 사건은 재판관들에게 맡길 수 있지만, 자기들이 직접 사실을 심리한다고 하여 그것이 자기들의 존엄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다음 사실을 살펴 보자.
Ⅰ. 법관들이 아니라 당사자들에 의해서 소송이 제기되었다. 그 당사자들은 여자였으나, 솔로몬과 같은 통찰력 있는 눈으로는 옳고 그름을 본인들의 태도로 보아 구별하기는 쉬웠다.
이 두 여인들은 창기들이었으며, 공동 주택에서 살았다. 그리고 그들이 남편에 대한 말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들의 아기들은 사생아일 것이라고 보는 자들도 있다. 이 사건은 솔로몬 앞에까지 오기 전에 이미 하급 법정에서 다루어졌음에 틀림 없다. 그 재판관들이 결정할 수가 없어서 솔로몬의 지혜로 그것을 결정하는 것이 급기야 더 잘 처리되는 것으로 여겼다.
이 두 여인은 같은 집에 살고 있으면서, 서로가 3일 간격으로 아들을 낳았다(17, 18절).
💡 본문에서 이들의 남편이 전혀 언급되지 않으며 그 두 여인이 한 집에 살고 있다는 점(17절), 그리고 ‘창기'에 해당하는 ‘조노트'가 성경에서 모두 ‘매춘부'나 ‘음행'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점(겔16:33; 호4:11 ; 6:10) 등을 감안할 때 본문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직업적인 창녀로 보는 것이 타당함.
16절, 그들이 ‘왕에게 와서 그 앞에 서며’ ⇒ 당시 솔로몬 통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부분
-이 두 여자는 왕인 솔로몬의 권위를 인정하고 재판을 받으러 왔던 것.
-이는 솔로몬이 사회 구조와 권위에 대해 반감을 가질 수도 있었을 최하층민들에게까지 왕으로서의 권위를 인정받았을 뿐만 아니라 공의를 기대하기조차 힘든 소외된 최하층민에게까지도 솔로몬의 자비로운 다스림이 미치고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사실 고대 세계에서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창녀는 무시와 비난의 대상이다. 이러한 창녀들이 한나라의 최고 통치자이며 재판장인 왕 앞에 설 수 있었다는 것은 가히 놀라운 일이다. 당시 소송은 일차적으로 하급 재판관들에 의하여 다루어지며, 설혹 그 재판 결과에 불만을 제기하여 항소한다 하더라도 왕에게까지 나아오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이들의 재판도 처음에는 하급 지방 재판관들에 의하여 다루어졌겠지만 마침내 왕에게까지 올라오게 된 것으로 볼 때
1)솔로몬 시대의 재판은 신분이 낮은 자들에게까지 공정하게 이루어졌다는 사실과 더불어
2)솔로몬이 공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백성들의 사소한 문제에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쓰는 매우 자비로운 왕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너무나 가난하여서 하녀나 간호할 사람이 없었다. 또 그들은 창녀들이어서 멸시를 받았으므로, 친구나 친척을 동반할 수가 없었다. 그들 중의 한 여인은 밤중에 어린이를 깔아 죽이고 나서, 다른 아이와 바꾸었다(19, 20절). 이에 다른 여인은 곧 크게 속았음을 알고 시비를 가리려고 공의에 호소했다(21절).
💡 17-21절: 첫째 여인의 법정 진술
⇒ 본 사건이 해결되기 어려운 성격의 것임을 잘 보여주는 부분.
17절, 첫째 여인의 억울함을 토로함
‘내 주여’ : 첫째 여인이 사건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는 첫 단어 ‘삐’는 불변사, ‘제발’ ‘청컨대’(창44:18; 출4:10) 등의 뜻을 지닌다.
한글 개역 성경에 번역되지 않은, 간절한 호소를 나타내는 이 표현은 그녀의 억울한 심정을 표현할 뿐 아니라 재판을 청구하는 그녀가 판단을 위한 적절한 외적 증거나 혹은 신뢰할 만한 신분적 위치에 있지 않음을 간접적으로 암시한다.
18절, 이 소송 사건이 판결하기 어려운 난제임을 드러냄. ⇒ 증인이 없기 때문.
재판을 받고자 하는 두 여인이 한 집에 서로 계속 함께 있었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서 무척 잘 알고 있었을 것이며 바로 그러한 사실은 진위를 구별하기 어려운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경우 제삼자의 증언에 의해 판단을 헤야 하지만 본 사건에서는 그러한 기대조차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집에는 두 여인 외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소송의 당사자들에게 남편이 없다는 것과 그들이 일반적으로 거짓말쯤은 손쉽게 할 수 있는 도덕성이 낮은 창녀라는 사실 역시 이 사건의 판결이 무척 까다로움을 드러내고 있다. 아마도 이 사건은 이전에 다른 재판관들에 의해서도 다루어진 적이 있었으나 이처럼 객관적 증거나 증인이 없고 두 당사자의 의견이 너무나 팽팽하여 판결을 내릴 수 없었기 때문에 왕이며 최고의 재판관이었던 솔로몬에게까지 넘어왔을 것이다.
19절, 20절: 고소자의 목격담이 아니라 단지 논리적 추측일 뿐.
19절 직역하면 ‘그리고 그녀가 그 위에 누웠으므로 그 여자의 아들이 밤에 죽었다’
이 표현은 문제의 그 여인이 곤히 잠자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기를 깔아뭉개어 질식사 하게 하였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고소자가 말하는 이 피고인은 자신의 아이 위에 누웠으면서도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자신의 아기에 대해 무감각하고 부주의한 여인이 된다. 그러나 이 고소자의 진술이 맞는지 그 진위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고소자가 아기를 깔아뭉개 죽여 놓고 거짓으로 증언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20절, 고소자는 와우 계속법을 거듭 사용하여 피고인이 아무도 알아챌 수 없을 만큼 신속하고 민첩한 행동으로 자신의 살아 있는 아이와 그의 죽은 아이를 바꿔치기 했다고 실감나게 주장하고 있음. 그러나 자신이 직접 목격하지도 않았던 일을 이처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오히려 증언의 신빙성을 떨어뜨린다. 아울러 이렇게 남발되는 신빙성 없는 증언 역시 판결을 내려야 할 솔로몬의 판단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었다.
21절, 본사건의 가장 핵심적 사실을 증언함
고소인의 이러한 증언은 앞서 그가 추측 설명한 피고인의 범행에 대한 유일한 증거. 즉 죽은 어린 아들이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한 집에 있는 자신 외의 유일한 산모인 피고가 아들을 바꿔치기 했다는 사실에 대한 유일한 증거로 제출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본 사건에는 증인이 없으며 (18절), 심지어 어 모든 일은 자기 자신조차도 잠들어 있는 상황(1 9절)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 그러나 이러한 고소인의 증거가 참되다는 사실을 입증할 길 역시 없다. 따라서 이 사건이 난제임이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 22절: 둘째 여인의 팽팽히 맞서는 진술 ⇒ 문제 해결의 어려움을 암시함
-피고 여인이 고소인의 팽팽히 맞서 상충되는 주장을 펼침.
-‘왕 앞에서 쟁론함’
이 두 여인이 솔로몬 왕 앞에서 각기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주장하였음. ‘왕 앞에서' 쟁론하였다는 것은 그들이 법정에서 팽팽한 의견의 대립을 보였다는 의미이다. 사실 이러한 행동은 무거운 책임을 수반하는 것이었다. 율법에 의하면 재판을 위해 왕 앞에 서는 것은 하나님 앞에 서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므로(신 19:17), 법정에서의 거짓말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로 여겨졌던 것이다. 특히 본 사건에서는 자식과 관련해 거짓말이 행해지고 있으므로 본재판에서 거짓말을 하는 여인의 죄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중대한 범죄로 취급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과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이러한 중대한 죄는 솔로몬이 반드시 이를 지혜롭게 재판해야 하는 이유로 작용하며 동시에 앞서서 제시된 사건 해결의 어려움을 암시하는 여러 가지 정황들과 (17- 22절) 맞물려 사건이 어떻게 해결될 것이냐에 독자들의 귀추를 주목시키고 있다.
1.어린애들 때문에 야기되는 근심이 얼마나 많으며, 또 그들의 생명이 얼마나 불확실하며, 그리고 그들은 얼마나 많은 위험을 끊임없이 당하고 있는가를 알자. 유아기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이다. 그리고 처음으로 켜진 그 생명의 등불은 곧 꺼지기 쉽다. 기르는 중에 죽는 자들이 거의 없다는 것은 일종의 놀라운 기적이 아닐 수 없다.
2.그 당시의 사생아들은 오늘날 흔히 겪는 형편보다는 훨씬 좋았다. 그 당시 창녀들은 자기 아이들을 사랑하고, 보살피고, 그들과 떨어져 있는 것을 퍽 싫어했다. 한편 오늘날 사생아들은 먼데 보내어지고 유기되고 죽음을 당한다. 그러나 그것은 예언된 일이다. 즉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그때에 사람들은 본성적인 애정도 잃을 것이라고 했다(딤후 3:1, 3).
Ⅱ. 사건 해결의 난점은 무엇인가?
최종적으로 판정을 내려 주기를 호소하는 문제는 살아있는 어린이의 어미가 누구냐 하는 것이다. 바로 그 문제가 법정에 제기 된 것이다. 두 어미는 맹렬하게 권리를 주장하며, 이에 크게 우려하고 있었다. 두 여인이 다 같이 고집에는 완강했다. 한 여인은 "이 애는 내 아이다" 라고 말하는가 하면 다른 여인은 "아니요, 이 애는 내 애요" 라고 주장했다. 어느 누구도 살아있는 애를 기르는 것보다는 죽은 애를 매장하는 것이 비용이 덜 들건만, 죽은 애를 갖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들이 애써 주장하는 것은 살아 있는 애였다. 살아 있는 애는 부모의 소망이 되기 때문에 부모의 기쁨이 된다. 그런데 죽은 애도 그들에게 기쁨과 소망이 될 수 있을까?(렘 31:17 참조)
그런데 문제는 어느 편에도 증거가 없다는 사실이다. 가령 이웃 사람이 아이들의 출생과 할례를 지켜 보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들을 구별할 수 있을 만큼 자세히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사자들에게 고문을 가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야만적인 것이 되었을 것이다. 정당한 사람이 아니라 가장 완고한 여자가 자기에게 유리한 재판을 원한다. 위증을 제시하는 편에는 가책조차 없다. 재판관이나 배석 판사들은 이처럼 거짓이 숨겨져 있을 때 진실성을 발견할 지혜가 필요하다.
Ⅲ. 사건의 결말을 보자.
솔로몬은 양쪽이 주장하는 것을 정성껏 듣고 증거를 종합했다(23절). 그러자 온 법정은, 솔로몬의 지혜가 진실성을 찾아내는 데 어떤 과정을 밟는가 하고 기대하고 있었다.
💡 23-25절: 솔로몬의 지혜와 기지.
23절: 솔로몬이 두 여언이 대립하고 있는 핵심 쟁점을 다시 한번 반복하여 정리
이는 이 사건어 정상적인 방범으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는 사건임을 두 여인에게 밝히기 위한 것이다. 이는 솔로몬이 논리적으로는 공정하지만 실제로는 너무나 무자비한 해결책(25절)을 제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수순이라 할 수 있다.
‘왕이 가로되’ :
솔로몬은 인간적 방법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난제를 맞이하고서도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부여 받은 뛰어난 분별의 지혜를 통해 즉각적으로 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사실 앞단락에서 제시된 고소인의 어투는 논리적이거나 세련되지 못하고 다소 수다스럽고 반복적이다. ‘집’, ‘해산’, ‘우리’, ‘아침’과 ‘미명’, ‘그리고 보라!’ 등이 반복되고 있을 뿐 아니라 20절의 잠들었다는 표현은 피고의 행동을 본 것처럼 기술한 이전 문맥의 논리에 맞지 않는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피고의 말은 매우 짧고 단호하다(22절). 이러한 사실은 고소자의 말이 계획적이거나 의도적이지 않으며 고소자가 자기의 아기를 잃고 매우 당황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볼 경우 고소인이 진짜 아기의 어미로 암시되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Richard Nelson). 그러나 반대로 피고가 진설을 말하는 쪽이고 자신의 아이가 죽은 것을 알게 된 고소안이 거짓 증거로서 피고의 아이를 빼앗으려 하기 때문에 진술이 논리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상황만으로는 고소인과 피고인 중 누가 살아 있는 아이의 참 어미인지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26절). 따라서 독자들도 본문까지의 내용만을 읽고는 큰 혼란 가운데 빠질 수 있다.
한편, 솔로몬은 이미 이 고소인과 피고인의 태도와 말을 통해서 사실의 진위를 어느 정도 판단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Matthew Henry). 왜냐하면 솔로몬은 ‘선악을 분변하는' (9절) ‘하나님의 지혜’ 를 받았기 때문이다(28절).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과연 솔로몬이 어떻게 살아 있는 아이의 친모를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방법으로 확증하여 드러내느냐 하는 것에 있다. 솔로몬은 이제 곧 살아 있는 아이의 진짜 어미가 누구인지가 자명하게 드러날 수 있도록 지혜로운 명령을 내린다.
어떤 이는 무슨 말이 떨어질는지 모르고 있는가 하면, 다른 이는 아마도, 제비를 뽑아 결정되는가 하였다. 그러나 솔로몬은 칼을 가져오라고 시켜서 두 쟁론자에게 살아있는 아이를 칼로 잘라 나눠 가지라고 명령했다.
💡 인간의 심리를 깊이 이해한 솔로몬의 지략으로 살아 있는 아이의 진짜 어미를 효과적으로 증명해 내기 위해 구상된 것. 솔로몬은 조금도 머뭇거림 없이 공적 명령을 내려 일을 진행하고 있다. 솔로몬의 이러한 행동은 신적 지혜에 근거한 치밀한 계획에 의한 것이며 결코 궁여지책으로 취해진 것이 아니었다.
두 여인의 목전에 칼을 가져다 두게 한 솔로몬은 누가 살아 있는 아이의 진짜 어미인지 감별해 낼 수 있는 결정적 명령을 내린다. 율법에 의하면 어떤 사실의 옳고 그름을 가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세 사람의 증인이 필요했다(신 19:15).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한 사람의 증인조차 없었다. 따라서 이 사건은 일반적 판결 방법으로는 재판하기가 불가능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 솔로몬은 인간의 본원적인 심성, 즉 모성애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충격적이고도 과감한 명령을 내렸다. 이 명령은 공적 명령으로 진짜 어미의 모성애를 자극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솔로몬이 진심으로 두 아이를 죽이려 한 것은 아닐 것.
-한편 이 재판은 친자 확인 소송이다. 즉 친자를 찾아 어미에게 돌려주기 위한 재판인 것이다. 따라서 솔로몬의 이러한 명령은 두 소송 당사자 간에 분쟁을 종식시킬 수 있지만 어 재판의 본질적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솔로몬의 이러한 명령은 최종적 판결이 아니라 판결을 위한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다. 즉 솔로몬이 정말 이 아이를 죽일 생각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만약 아이를 죽인다면 친어미에게 아이를 돌려줄 수 없을 뿐 아니라 거짓말을 하고 있는 자를 색출할 수도 없으며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1.이것은 그 사건을 우스꽝스럽게 해결하려는 듯이 보였다. 즉 풀을 수 없는 매듭을 칼로 잔인하게 잘라버리려는 듯이 보였다.
명철한 판관들은 "이것이 과연 솔로몬의 지혜란 말인가?" 하고 솔로몬이 의도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도 생각해 보지도 않고 비웃었다. 이렇듯, "왕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잠 25:3). 사실 율법에는 살아있는 황소와 죽은 황소를 반분하라는 법이 있기는 하나(출 21:35), 이것은 이 사건을 해결할 수는 없다.
2.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이 진실성을 발견하는 데 유효 적절한 것이라는 것이 판명되었다. 솔로몬은 두 여인들의 외모와 말하는 투로 보아, 이와 같은 실험을 하기 전에 이미 사실을 분명히 분간했을 거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함으로써 모든 참관자들에게 만족감을 주었고, 거짓 주장자를 잠잠케 할 수 있었다.
참된 어미를 찾아내기 위하여 그는 아이가 어느 여인을 가장 사랑하는 가는 시험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어느 여인이 그 아이를 가장 사랑하는가를 시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실로 두 여인은 모성애를 가장했으나, 그 아이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그들의 성실성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1) 그 아이가 자기애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여인은, 아기가 자기 것이라는 쟁론을 벌이면서도 체면 지키기에 급급하여, 반분한다는 점에 만족하였다. 자기 애기를 깔아 죽인 여인은 진짜 어미가 이 애를 갖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이러한 결과가 가져오는 것이 무엇인가에 관하여 아무런 관심조차 안 가졌다. 즉 "내 것도 네 것도 되지 못하게 하도록 나누게 하소서" 하였다.
이리하여 그 여인은 자기의 본심이 폭로된 것은 조금도 모르고 자기의 권한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는, 솔로몬이 그러한 사실을 알면 어떻게 하나 두려워한 것 같다. 그러나 솔로몬은 참으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에 이 여인이 참된 어미였더라면, 그녀는 이와 같은 피비린내 나는 결정에 그렇게 빨리 동의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2) 그러나 어린애가 자기애라고 알고 있은 여인은, 어린애가 도살을 당하는 것보다는 그 애를 자기의 대적자에게 주어 버린다. 그 여자의 우는 소리는 얼마나 애처로운가? "오! 내 주요, 그 산 아이를 저에게 주소서" (26절). "그 애를 전혀 못보게 되기보다는 차라리 그 여인의 것으로 되게 하소서."
그 어린애에 대한 이와 같은 순정으로 보아 그 여인은 어린애 깔아 죽인 여인과 같은 무정한 어미가 아니라 살아있는 아이의 참된 어미이며, 자기가 낳은 자식에 대한 애정 때문에 차마 죽음을 볼 수 없는 참된 어미였음이 판명되게 되었다.
💡 친어미의 반응
⇒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즉시 아이를 포기하고 상대방에게 아이를 주라고 왕에게 애원했음.
-마음: ‘라함’ — 창자.
고대 히브리인들은 창자를 감정이 표출되는 장소로 여김.
-불붙는 것: 이 단어는 요셉이 오랜 동안의 고난 끝에 그의 사랑하는 동생 베냐민을 만나 격한 감정으로 눈물을 참을 수 없게 되었을 때(창 43:30), 또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죄악으로 인하여 멸망하는 현장을 바라보시고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사 불쌍히 여기심으로 마음이 아프심을 표현할 때(호11:8 )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그녀의 창자가 끓어올랐기 때문에'라고 직역될 수 있는 본문은 ‘자식을 향하여 강렬하게 표출되는 본능적인 강한 모성애'를 나타낸다. 이러한 마음은 결코 작위적으로 생겨날 수 없는 것이다. 아이 를 반으로 가르라는 솔로몬의 예상 밖의 명령이 친어머니로 하여금 바로 이러한 본능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게 한 것이었다.
산 아이의 어미는 어러한 자신의 요청이 아이의 양육을 포기하는 행위일 뿐 아니라 아이를 훔치고 무고한 자를 고소한 죄를 스스로 인정하는 행위가 됨을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자신이 죽게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았을 것이다(신 24:7).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은 아이를 위해 아이의 양육권은 물론 자신의 생명까지도 버릴 각오로 본문과 같이 말하였던 것이다.
다른 한 여인의 반응
-앞서 언급된 여언의 행동과는 대조적으로 다른 한 여인은 솔로몬의 무자비한 판결을 그대로 시행할 것을 주장한다. 이는 이 여인의 잔인함과 비정함을 잘 나타내면서 이 여인이 살아 있는 아이의 친어미가 아님을 매우 극적인 형태로 드러내고 있다. 친어미는 어찌해서든지 이 아어의 죽음을 면케 하려고 갈급한 심정을 드러냈음에 반해서, 이 여인은 영원히 되돌릴 수 없는 아이의 죽음을 획책하였던 것.
-‘나누게 하라’ → 탄원이 아니라 왕의 명령을 수행하는 신하들에 대한 종용.
즉 이 여인은 단순히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왕의 명령을 빨러 수행하라는 의미로 본문과 같이 말하였던 것이다. 이는 친어미가 보일 수 있는 모성애와는 거리가 먼 잔혹한 대답이었다. 결국 이러한 비인간적인 대답은 이 여인이 처음에 보였던 접착이 진정한 아이에 대한 사랑이 아닌 단순한 질투와 소유욕으로부터 발생된 것임을 잘 보여준다.
"사건은 명확하다. 더 이상 무슨 증거를 필요로 하리요" 라고 솔로몬은 말했다. 곧 "이 여인에게 산 아이를 주라. 여러분이 모두 보는 바와 같이, 이 거짓없는 모성애로 보아 이 여인이 그 애의 어미이다" 라고 했다.
💡이러한 재판 결과 솔로몬은 당시 경륜이 짧고 젊은 자신을 신뢰하지 못했던 모든 이에게 왕으로서의 확실한 인상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부모들이여 어린애들을 잘 보살펴서, 특히 그들의 영혼을 잘 보살펴 줌으로써 자기들의 사랑을 보여 주도록 하되, 특히 거룩한 그 폭력으로 그들을 타는 불 속에서 끄집어낸 부지갱이처럼 여기고 사랑하라. 자녀들에게 의무를 다하는 사람들은 자녀들에게 위안을 주는 사람과 같은 사람이다. 사탄은 사람의 마음을 유혹하여 하나님과 나누어 가지는 것을 기뻐하는 거짓된 자임을 알 수 있으나, 그 마음을 의로운 주권이 지배하는 자는 마음을 통째로 가지든가 아니면 아예 가지지 않는다.
Ⅳ. 이러한 일과 솔로몬의 지혜의 여러 가지 사례로 인하여, 솔로몬은 자기 백성들에게 큰 명성을 얻어 그의 나라를 평안하게 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그들은 왕을 두려워하였다" (28절).
💡 ‘온 이스라엘이 .. 듣고’
-본문은 ‘솔로몬의 친자 소송 판결 소식이 즉시 온 이스라엘에 퍼져 모두가 알게 되었다' 라는 의미를 지닌다. 솔로몬은 난해한 이 사건을 명쾌하게 해결함으로써 1)그의 지혜의 신적 권위를 드러내었고, 2) 큰 명성을 얻었음은 물론 3) 왕권을 보다 확고하게 다질 수가 었었다.
즉 솔로몬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통해 훌륭한 통치자의 자질을 만천하에 입증하게 되었고,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신 지혜의 증인이 되었던 것이다.
왕을 두려워 함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이 왕의 판결 소식을 들었고 그 결과 온 이스라엘이 적극적으로 다윗을 이어 신정 왕국의 통치자로 세워진 솔로몬을 왕으로서 존경하며 경외하게 되었음. ⇒ 솔로몬의 주권과 권세가 세워지는 과정.
이런 신적 지혜를 바탕으로 세워진 솔로몬의 권위는 이전 지도자들이 군사적 승리를 통해 세웠던 것과 전혀 다른 평화와 번영의 시대에 적합한 권위라고 할 수 있다(삿6:12, 14; 삼상11:1,15; 17:27,28) (그리스도의 왕권과 권의, 지혜로운 통치…)
또 높이 받들어, 그를 거역하는 일은 감히 하려고도 못하고, 불의한 일은 두려워서도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솔로몬 앞에 나타나면 모든 것이 분명히 드러나게 됨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지혜가 그(솔로몬) 속에 있음을 알았으니," 곧 그 지혜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것이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 ‘판결을 할 수 있는 하나님의 그 지혜가 저희 속에 있음을 그들이 보았다.’
-이 재판을 통해 솔로몬이 하나님께 구한 바 올바른 판결을 위한 지혜가 그의 안에 있음을 모든 백성들이 깨닫게 되었음.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만이 위로부터 오는 참된 권위를 부여 받는다고 생각하였다(수 1:17; 삼상 11:6, 7) . 따라서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증명하는 이러한 지혜로운 판결은 백성들로 하여금 솔로몬 왕의 지위와 권위를 인정하고 그를 신뢰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것이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였다" (전 8:1). 이는 그에게 있어서 "병기보다 나았다" (전 9:17). 이로 말미암아 그는 백성들에게 두려움과 사랑을 다같이 받았다.
💡 하나님의 함께하심으로 나타나는 지혜
-하나님의 함께하심으로 나타나는 지혜는 신약에서도 영적 지도자가 갖춰야 할 요건으로 동일하게 취급되고 있다(행 6:3).
-또한 이는 하나님을 알기 위해, 마음의 눈이 밝혀지기 위해, 또한 부르심의 소망과 성도에게 베푸신 능력의 크심을 알게 되기 위해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들이 구해야 될 기도의 제목으로도 소개되고 있다(엡1:17-19).
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결국 성경은 지혜가 특별한 지위에 있는 사람 뿐 아니라 주께서 주신 소명과 성도로서의 올바른 삶을 위해서 모든 성도들이 간절히 구해야 될 가장 소중한 영적 자원임을 가르치고 있다.
솔로몬의 말년..
-그런데 솔로몬은 이러한 신적 지혜를 가지고 있었으나 불행하게도 말년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리에서 벗어남으로써(11:3-11) 대적자들로부터 나라 안팎으로 환난을 겪어야 했고(11:14- 40), 이로 말미암아 그의 사후에는 이스라엘이 남북 왕국으로 분열되는 비극이 발생하고 말았다(12장).
*하나님을 떠난 지혜는 무의미하다는 사실과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만이 참된 지혜임을 잘 보여준다(잠 15:33).
15:3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솔로몬은 참된 지혜의 근본이시요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함
💡 9,11,28절 ‘재판(와파트)’ / 9,11,12절 ‘분별(삔)’ / 12,28절, ‘지혜(호크마)’
-이 단어 모두는 그리스도의 강림을 고대하는 사 11장에서도 언급되어 있다.
11: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11:3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11:4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이처럼 사 11장에서 그리스도의 면모를 나타내는 단어로 사용된 ‘지혜', ‘총명' , ‘심판'에 해당하는 ‘호크마' , ‘삔' , ‘와파트'는 본장에서도 주요 단어로 사용된다.
⇒ 이는 본장에서 이상적 왕의 전형으로 묘사되고 있는 솔로몬이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본장에서 솔로몬으로 예표되고 있는 참된 지혜의 근본이시요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그 백성된 우리 성도 역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복종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