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8 여호야긴이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십팔 세라 예루살렘에서 석 달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느후스다요 예루살렘 엘라단의 딸이더라
9 여호야긴이 그의 아버지의 모든 행위를 따라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10 그 때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신복들이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그 성을 에워싸니라
11 그의 신복들이 에워쌀 때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도 그 성에 이르니
12 유다의 왕 여호야긴이 그의 어머니와 신복과 지도자들과 내시들과 함께 바벨론 왕에게 나아가매 왕이 잡으니 때는 바벨론의 왕 여덟째 해이라
13 그가 여호와의 성전의 모든 보물과 왕궁 보물을 집어내고 또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이 만든 것 곧 여호와의 성전의 금 그릇을 다 파괴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14 그가 또 예루살렘의 모든 백성과 모든 지도자와 모든 용사 만 명과 모든 장인과 대장장이를 사로잡아 가매 비천한 자 외에는 그 땅에 남은 자가 없었더라
15 그가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왕의 어머니와 왕의 아내들과 내시들과 나라에 권세 있는 자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16 또 용사 칠천 명과 장인과 대장장이 천 명 곧 용감하여 싸움을 할 만한 모든 자들을 바벨론 왕이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17 바벨론 왕이 또 여호야긴의 숙부 맛다니야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고 그의 이름을 고쳐 시드기야라 하였더라
매튜헨리/옥스퍼드
💡앞선 1-7절은 남유다 제18대 왕 여호야김의 통치와 그 시대에 있었던 이차에 걸친 바벨론의 유다 침공을 기록함으로써 남왕국에 대한 여호와의 최종적 심관의 기운이 무르익어 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8-17절]
남유다의 제19대 왕 여호야긴 시대에 일어났던 제3차 바벨론 침공과 유다 포로 이송 사실을 다룸.
그중에서도 8, 9절은 여호야긴의 통치 개요 및 기본 평가에 관한 내용이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대해 반기를 들었다가 쇠사슬에 결박된 채 포로가 되어 끌려간 여호야김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유다의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여호아하스가 3개월 만에 애굽의 바로느고에 의해 폐위된 것처럼(23:31)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해 정확하게는 석달 열흘(대하 36:9) 만에 폐위되고 말았다.
이는 그가 바벨론에 반기를 들고 애굽에게 원조를 구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즉 여호야긴의 배반에 대하여 바벨론은 제3차 침공을 감행하였고, 이 때 여호야긴을 포함한 에스겔(겔 1:1, 2)과 모로드개(미 2:6) 등 남유다의 귀족들 대부분이 포로가 되어 바벨론에 끌려가게 되었으며 대규모 공사에 동원될 많은 기술자들도 사로잡혀 가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제2차 바벨론 포수이다.
●포로가 된 여호야긴 왕(열왕기 하 24:8-20)
본문은 여호야긴 왕의 "통치" 역사이다. 그러나 슬프다! 그것은 여호야긴 왕의 "유배" 의 역사에 불과했도다(겔 1:2 참조). 그는 왕관으로 나아갔으나, 그것을 머리에 쓰는 명예를 갖지 못하고 그것을 잃어버리는 수치만을 당했다. Ideo tantum venrt, ut exiet-" 그는 단지 퇴장을 위하여 들어왔다."
💡 8 여호야긴이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십팔 세라 예루살렘에서 석 달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느후스다요 예루살렘 엘라단의 딸이더라
여호야긴: ‘여호와께서 세우신다'
바벨론 느부갓네살의 왕궁에서 발견된 기록에 의하면, 그는 ‘여호와의 맡긴 자’—‘여고냐’(대상3:16) 또는 ‘여호와께서 창조하심’—’고니야’(렘22:24,28; 37:1)로 불림
그의 어머니
그녀는 과거 아하시야의 모친이었던 아달랴처럼 아들의 권력을 힘입어 정치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 것으로 여겨진다(렘 22:26; 29:2). 또한 여호야긴의 외조부로 소개되고 있는 ‘엘라단'은 여호야김 통치 때에 있었던 방백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여호야김의 악정에 일조하면서 당시 남유다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것으로 여겨진다(렘 26:22; 36:12,25). 예레미야서에 나온 기록 등을 참조해 볼 때 본문에 등장하는 느후스다는 정통성을 가진 다윗 왕가의 바른 신앙 계승에 기여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오히려 악영향을 끼쳐 남유다 왕국의 암울한 미래를 짐작게 한다.
Ⅰ. 그의 통치는 짧았고, 고려할 가치도 없었다. 그는 불과 3개월을 통치하고는 제거되어 바벨론으로 사로 잡혀 갔다.
아마 그의 아버지가 더 오래 살았더라면 당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여호야긴처럼, 무너지고 있는 집, 몰락하고 있는 왕좌로 나아가는 젊은 왕은 얼마나 불행한 것인가! 그 낳은 아들을 자기 때문에 그리고 자기의 어리석음의 죄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게 하며, 자신의 비참 이외에는 자기 자식에게 아무 것도 남겨 주지 못하는 아버지는 얼마나 비정한 사람인가!
그러나 이 젊은 왕은 자기가 자기의 열조의 죄로 인하여 정당한 징벌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입증할 수 있을 때까지 오래도록 살았다. 그 이유는, 그가 열조의 전철을 밟았기 때문이다(9절). 그 열조가 행했던 바와 같이,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 고 했다. 즉 그는 그 저주의 상속을 중단시키거나 왕관에게 붙어 내려온 짐(transit cum onere-짐은 왕관과 함께 물려진다)을 덜기 위한 조처를 조금도 취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열조들의 죄악도 바로 그의 죄악으로 치부되고 만 것이다.
💡 24:9 여호야긴이 그의 아버지의 모든 행위를 따라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본서의 저자는 본절에서 여호야긴의 통치를 한마디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 라고 평가함으로써, 앞절에서 언급된 그의 짧은 통치 기간의 원인이 — 그의 악한 행위에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본절은 10절 이하에 나타난 느부갓네살의 남유다 침공 사건이 — 여호야긴의 악함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의 성격도 지니고 있음을 암시하는 역할도 한다. 여호야긴은 단지 3개월간 왕으로 있었으나 그는 즉위하기 이전부터 B.C. 627-586년에 활동하였던 선지자 예레미야와 B.C. 612-605년에 활동하였던 선지자 하박국의 심판과 회개의 메시지는 충분히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본절에 나오는 바와 같이 그 부친과 다름없이 악을 행하므로 남유다의 멸망을 재촉하였다.
Ⅱ. 여호야긴이 정권을 잡은 바로 그때부터 그와 그의 족속과 그리고 그 백성에게 재난이 내렸는데, 그것도 매우 가혹한 재난이었다.
1.예루살렘이 바벨론 왕에 의해서 포위되었다(10, 11절).
그는 유다를 파괴하려고 자기의 군대를 보낸 적이 있다(2절). 그런데 이번에는 그가 직접 와서 예루살렘을 포위한 것이다. 이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었다(신 28:49). 즉 "여호와께서 원방에서 너를 치러 한 민족을 오게 하시리니, 그 용모가 흉악하며, (먼저는) 네 토지의 소산을 먹고 (다음에는) 전국(全國)에서 너를 애워쌀 것이다" 는 말씀이다.
💡 24:10 그 때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신복들이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그 성을 에워싸니라
침공의 원인: 정확히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여호야김 시대로부터 계속되어온 바벨론 정책에 대한 응징의 의미로 보인다.
‘그 때에’
이때는 앞절과 연관해서 볼 때 여호야긴이 부친의 악한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자신도 악을 행했던 시기를 가리킨다. 즉 이는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헤 포위당한 사건이 여호야긴이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 것에 대한 징계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된 표현이기도 하다.
‘신복들’만 남유다를 치기 위해 먼저 올라온 것은, 바벨론의 1차 침공을 다룬 1절에서는 바밸론 왕 느부갓네살이 직접 남유다로 올라온 것으로(1 절) 묘사된 것과 다름. 이는 그만큼 바벨론의 국력이 강화되었고 남유다의 국력은 약화되었음을 의미한다.
⇒ 저자는 이제 남유다가 바벨론의 신복들과도 제대로 맞설 수 없는 최후 상태에 이르렀음을 남유다를 침공한 주체를 1차 때와 달리 기술함으로 밝힘.
24:11 그의 신복들이 에워쌀 때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도 그 성에 이르니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온 시점,
본문의 내용으로 미루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우선 그의 신하들에게 군사들을 붙여 남유다 침공을 시작하게 한 이후에, 신복들의 군대가 전세를 충분히 장악할 무렵 남유다의 수도인 예루살렘에 도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즉 느부갓네살은 우선 선발대로 하여금 예루살렘성을 장기간 포위하게 하여 성내 식량과 식수 부족 현상을 유발시킨 후 자신은 남유다 왕 여호야긴이 스스로 항복하려는 시점에 예루살렘에 이른 것이다. 이처럼 바벨론 왕이 처음부터 나서지 않고 나중에 출현하는 여유를 보일 수 있었던 것은 — 남유다가 에굽의 원조를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열악한 상황에 있었기 때문이다(7절).
병행 구절인 대하 36:10에 의하면, ‘세초' 에 느부갓네살이 군대를 파송하여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압송했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바벨론에 남겨전 기록에 의하면, 바벨론이 남유다를 최종 점령한 정확한 시기는 B.C. 597년 3월 16일이었다. → 바벨론의 남유다 침공이 여호야긴 즉위 직후에 시작되었음을 감안할 때, 바벨론 군대의 예루살렘 최종 함락은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다른 어떤 이유보다도 더 이상 남유다를 사하기를 즐겨하시지 않은(4절) 여호와의 섭리의 결과였다.
2.여호야긴은 즉시 무조건 항복을 했다.
바벨론 왕이 몸소 그 성을 치러 왔다는 말을 듣자마자 당시 그의 이름은 이미 매우 무서운 공포를 주었다-여호야긴은 담판을 제의하고 그에게로 갔다(12절).
여호야긴이 만일 하나님과 화해를 구하고, 이와 비슷한 경우에 히스기야가 행했던 그 방법을 취했더라면, 바벨론 왕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며, 나아가 용감하고 영예롭게 저항하여 마침내는 성공했을지도 모른다(한 사람이 천 명을 능히 징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스라엘 사람으로서의 신앙과 경건심이 없었으므로, 역시 인간다운, 군인다운, 그리고 왕다운 결단력도 없었던 것이다. 그와 왕족들, 그의 어머니와 아내들, 그의 종들과 방백들은 전쟁 포로가 되어버렸다. 이것이 그들이 죄의 종이 된 결말이었다.
💡 24:12 유다의 왕 여호야긴이 그의 어머니와 신복과 지도자들과 내시들과 함께 바벨론 왕에게 나아가매 왕이 잡으니 때는 바벨론의 왕 여덟째 해이라
바벨론 군대에 포위를 당한 여호야긴은 그 성을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음을 깨달았을 것이며, 게다가 이어지는 느부갓네살의 도착 소식은 그로 하여금 더 이상 버텨봐야 좋을 것이 없다는 판단을 내리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느부갓네살에게 순순히 항복함으로써 그의 환심을 사서 그의 봉신이 되고자 느부갓네살에게 투항하기 위해 나아갔던 것.
‘왕에게 나아가매’
여호야긴은 항복 의사를 표시하기 위해 예루살렘 성안에서 느부갓네살 왕이 진치고 있는 성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느부갓네살의 조치는 냉정하였다. 그는 예루살렘 2차 침공시 여호야김에게 한 바처럼, 어떤 혜택도 여호야긴에게 베풀지 않았고, 오히려 그와 그의 모친과 아내들 그리고 왕자들과 시중들을 바벨론으로 잡아갔으니, 이는 예레미야를 통해 에언되었던 말씀이 그대로 실현된 것이었다(렘 22:24-30).
여호야긴뿐 아니라 태후(모친)과 신복들까지 함께 느부갓네살에게 나아갔음
→ 이는 본문의 사건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측면과 관련해 악한 왕 여호야긴만 아니라 그에게 악한 영향을 끼치고 또한 이에 동조했던 자들까지 심판의 자리에 떨어졌음을 지적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이는 궁극적으로 남유다 전체의 심판을 암시하는 사건으로 풀이될 수 있다.
‘왕이 잡으니 때는 바벨론 왕 팔년이라’
당시 국제사회에서 바벨론의 위치는 남유다보다 월등히 높았을뿐 아니라, 두 사람의 관계가 왕과 왕의 관계가 아니라 왕의 포로의 관계가 되었음을 드러낸다.
⇒ 본절은 바벨론의 연대 표기에 의해 남유다 역사를 규정하는데 이는 남유다 역사가 점점 바벨론에 귀속되는 양상을 반영한 것.
3.느브갓네살은 교회와 국가의 내폐고를 약탈했다. 즉 두 곳의 금은을 가져갔다(13절). 그리하여 이사야를 통해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었다(20:17). 즉 "너의 집에 있는 모든 것이 바벨론으로 옮겨지리라" 는 말씀이다.
느브갓네살은, 솔로몬이 만들어서, 낡은 그릇이 못쓰게 되면 쓰려고 보관해 두었던 성전 그릇들까지도 산산조각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중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본 후, 그 그릇들을 자기가 사용하려고 보관했었다. 벨사살 왕이 성전 그릇으로 술을 먹은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단 5:2, 3)
💡 24:13 그가 여호와의 성전의 모든 보물과 왕궁 보물을 집어내고 또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이 만든 것 곧 여호와의 성전의 금 그릇을 다 파괴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통일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 솔로몬’이 만들었던 바로 그 금기명들이 바벨론에 의해 훼파되었다. 솔로몬 왕국 번영의 절정을 상정하는 성전의 금이(왕상 10장) 이방인의 군대에 의하여 훼파되고 있옴을 밝힘으로써, 솔로몬의 물질적 유산 위에 세워진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의해 완전히 짓밟히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묘사.
이는 하나님께서 솔로몬 시대부터 시작된 왕국의 잘못된 유산을 바벨론을 사용하셔서 철저히 청산하시고, 다윗의 언약 위에 하나님께서 온전히 통치하시는 신정 국가를 다시 새롭게 세우시기 위함이다. 남유다에 바벨론의 군대를 파견한 주체가 여호와이시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2절), 이와 같은 함축적 의미를 충분히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본문과 같은 상황을 통해서, 열왕기 저자가 언약 준수에는 불성실한 반면 금과 같은 재물을 축적하는 일에는 혈안이 되어 있었던 솔로몬에 대해서 왜 그토록 비판적이었는지를 이제 보다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바벨론은 성전 안의 각종 기명들을 ‘다 파괴하였음’
바벨론 군대가 이처럼 성전 기명에서 금을 분리한 것은 금을 작은 부피로 만들어 쉽게 운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처럼 이방인에 의해서 여호와의 거룩한 성전이 더럽혀진 것은 남유다의 패역에 대한 공의로우신 여호와의 엄정한 징계이며, 이는 사 39:6과 렘 15:13의 예언에 대한 성취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그릇된 길로 같 때 당신의 임재의 상징인 성전의 훼파를 통해서라도 그들을 돌이키려 하셨다. 또한 그들이 계속 그릇된 길을 가면 심판이 있을 것을 당신의 종 선지자들을 통하여 거듭 예언하셨다. 그러나 그들이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름으로 드디어 심판의 채찍을 드셨던 것이다.
4.그는 예루살렘을 약화시키려고, 그 대부분의 주민들을 데려갔다. 그것은 자기의 지배권을 실제로 확고히 하며, 그들의 반란을 방지하며, 자기의 재산을 늘이고 일손을 덜기 위한 조처이기도 했다.
이보다 8년 전, 즉 느브갓네살 재위 제1년이며 여호야김 재위 제3년에도 유배되어 간 자들이 있었고, 그들 중에는 다니엘과 그의 동료들이 있었다(단 1:1, 6 참조). 그들을 포로로 잡아간 것이 결국 잘한 일이라는 것이 판명되자, 이 교활한 왕은 욕심이 생겼다.
(1) 그래서 그는 그 젊은 왕은 물론이요 그의 가족들을 데리고 갔다(15절). 그 왕은 37년 동안 죄수노릇을 한 사실을 볼 수 있다(25:27-29).
(2) 그리고 여호야긴 왕의 중요 자리에 있던 자들도 끌고 갔다. 즉 관리들이었는데, "그들은 재물을 지켰으나 그것이 자기에게 해가 된" 자들이요(전 5:13), 그 원수들에게 그들을 먼저 먹으려는 유혹을 준 자들이 되었다.
(3) 모든 군인들을 끌고 갔다. 즉 "힘센 용사들" (14절)과 "나라의 권세 있는 자들" (15절)과 그리고 "싸움에 능하고 강한 모든 용사들" 을 잡아갔다(16절). 이들도 자기 자신들을 방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정복자는 그들에게 자기들의 나라를 방어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그들을 데려다가 그의 일을 시켰던 것이다.
💡 15절과 16절의 내용은 14절의 내용을 단순히 반복한 것처럼 보이지만, 각각 저자의 다른 강조점을 드러낸다.
14절 — 바벨론으로 끌려간 포로의 대상을 남유다 ‘전체’로 규정, ‘모든 것이 하나도 남지 않고 바벨론으로 옮겨질 것' (20:17) 이라는 예언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었음을 입증하는 데 강조점.
15절 — 포로된 대상이 왕을 포함하여 왕족, 왕과 가까이 있는 신하들이었음을 지적. 이들은 예루살렘 궁전에 거하던 자들로서 예루살렘의 일반 백성들과는 구분되는 신분이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역시 무기력하게 바벨론으로 끌려 갈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
16절 — 바벨론에 힘으로 대항할 수 있는 유다의 군사력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라는 점과 끌어가는 주체가 바벨론의 왕임을 강조한다.
⇒ 이처럼 저자는 강조점이 다른 유사한 내용의 반복을 통해서, 남유다 사회 전반이 바벨론에 대항할 수 없는 완전 무기력 상태에 이르렀음을 독자들에게 거듭 각인시키고 있다.
(4) 전쟁 무기를 만들던 모든 기술자들과 대장장이들이 끌려갔다. 느브갓네살은 그들을 데려감으로써, 사실상은 블레셋 사람들의 정략대로(삼상 13:19), 예루살렘을 무장해제시켰다.
이렇게 끌려간 포로들 중에는 에스겔 예언자(겔 1:1, 2)와 모르드개(에 2:6)가 있었다. 그리고 이 여호야긴 왕은 또한 "여고냐" (대상 3:16)라고도 불리웠는데, (그의 포로가 예언되었던 예레미야 22장 24절에서는) 경멸조로 "고냐" 라고 불리웠다.
💡본문에서와 같어 정복국이 패전국의 국민들 다수를 포로로 잡아가서 자국의 영토에 재배치하는 일은 당시 고대 중•근동에서 전쟁 승패 여부와 관련해 일반적으로 시행되던 관습이었다. 이는 승전국이 패전국에게 조공이나 배상금을 요구하는 방식의 처분보다 훨씬 잔혹한 정책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다수의 정복민들을 포로로 붙잡아 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1.정치적인 목적에서 반란이나 저항 세력을 일소하는 한편 그들의 세력을 분산시키는 데에 그 첫째 목적이 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북이라엘의 포로됨과 관련하여 확연하게 이해할 수 있다. 북이스라엘의 경우 사마리아 성의 함락으로 인한 패망과 동시에 백성들 대다수가 앗수르 여러 지역으로 끌려가는 조치를 당하였는데(17:6) 이 조치로 인하여 북이스라엘 왕국이 다시는 역사적으로 재기하지 못한 것 이다. 남유다 역시 바벨론에 이러한 포로 유수를 당하였고 이러한 조치로 인해 남유다 역시 오랜동안 재기하는데 무척이나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2.경제적인 목적과 관련하여 이러한 조치를 이해할 수 있다. 당시 대제국을 건설한 경우 지금의 형편과 달리 영토는 광활하고 넓지만 인구는 극히 적은 지역이 많았다. 이런 경우 본국의 경제적 유익을 위해 패전국에서 유용한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와서 그 땅을 개척하고 경작•개발하게 함으로 자국내의 효과적인 발전을 도모했던 것이다.
그 결과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자들은 남유다에서 유력한 자들이었고, 부나 권력을 소유하지 못한 평민들만 유다 땅에 남게 되었다. 이는 남유다 땅에 바벨론에 맞설 수 있는 세력이 없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상징적 표현이다.
Ⅲ. 바벨론 왕은 여호야긴의 대리로 그 후계자를 지명했다. 하나님은 그가 무자(無子)하다고 기록했다(렘 22:30). 그러므로 그의 삼촌이 그 정부를 위임받게 된다.
바벨론 왕은 요시야의 아들 맛타니야를 왕으로 삼았다. 그리고는 그가 바벨론 왕 자신의 피조물이라는 것을 본인과 온 세상에 알게 하기 위하여, 그의 이름을 바꾸어서 "시드기야" 라고 불렀다(17절).
때때로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저희가 왕을 세웠으나, 내게서 말미암지 아니하였다" 고 책망하셨었다(호 8:4). 그리고 그것을 벌하기 위하여 바벨론 왕이 그들의 왕을 세우게 하셨다. 그들이 하나님의 권위에 대항하여 자기들 마음대로 사용하고 주장하던 그 자유를 상실하고 말았다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이 시드기야는 유다의 마지막 왕이었다. 바벨론 왕이 그에게 주었던 그 이름은 "여호와의 정의" 를 뜻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멸망을 통해서 하나님의 정의가 영화롭게 되리라는 한 조짐이었다.
💡 24:17 바벨론 왕이 또 여호야긴의 숙부 맛다니야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고 그의 이름을 고쳐 시드기야라 하였더라
본절은 느부갓네살이 여호야긴을 포로로 잡아가면서, 대신 맛다니야를 유다의 왕으로 세운 사건을 기록.
과거 앗수르가 북이스라엘을 침공한 후 사마러아 사람들을 포로로 잠아가면서 그곳에 이방 족속들을 이주시키는 정책을 펼친 반면에, 바벨론은 남유다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가면서 이주 정책 대신 바벨론 왕의 추종자를 왕으로 임명하는 정책을 택하였다. 즉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긴을 폐위하던서 새로운 남유다 왕으로 자신의 눈에 된 맛다니야를 임명하였는데, 그가 바로 남유다의 마지막 왕이었던 시드기야였다. 남유다 제20대 왕 시드기야의 본래 이름인 ‘맛다니야'의 뜻은 ‘여호와의 선물' 이며, 그는 남유다 제16대 왕 요시야의 아들로서 여호야긴에게는 삼촌.
→ 본문은 남유다의 왕권이 바벨론 왕의 손에서 좌지우지되고 었지만, 그래도 다윗 혈통의 명맥이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었다.
이는 하나님께서 남유다를 징계하시는 과정 속에서도 ‘다윗의 위를 영원히 존속시키겠다' (삼하 7:15)는 약속을 신실하게 이행하고 계심을 나타낸다.
[느부갓네살이 이름을 바꾼 이유]
당시 어떤 대상에게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지배권이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이에 바벨론에 예속된 봉신 국가의 왕으로서 종주인 자신에 대한 완전한 복종을 표하도록 한 것.
‘시드기야’ = ‘여호와는 나의 의’
이러한 이름으로의 개명은 시드기야가 여호와를 신앙하는 자이며 여호와의 의를 통처 어념으로 삼는 것처럼 보이기 위한 정략적 차원일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시드기야를 남유다의 합법적인 왕으로 인정받게 하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남유다 백성들은 느부갓네살에 의하여 세워진 시드기야를 정통성이 있는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계속 여호야긴만을 왕으로 인정했으며 그가 포로로 잡혀간 후에도 계속 그의 통치 연대를 사용하였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괴뢰 정권인 시드기야 정권을 앞세워 남유다를 원활허 조정하려 하였던 느부갓네살의 정책은 성공적이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같은 느부갓네살의 정책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단락과 본서를 마무리하는 25장에서 구체적으로 다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