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3월 12일 화요일 묵상구절 시편 27편 <다윗의 시>

Jeehyun 2024. 3. 12. 10:49

맥체인성경읽기

출애굽기 23, 요한복음 2, 욥기 41, 고린도후서 11

묵상구절

-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칠지라도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

27:1 <다윗의 시>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27:2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27:3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27: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27:5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27:6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27:7 여호와여 내가 소리 내어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

27:8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27:9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마시고 떠나지 마소서

27: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27:11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시고 내 원수를 생각하셔서 평탄한 길로 나를 인도하소서

27:12 내 생명을 내 대적에게 맡기지 마소서 위증자와 악을 토하는 자가 일어나 나를 치려 함이니이다

27:13 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실히 믿었도다

27:14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매튜헨리/옥스퍼드

서론

 💡한글 개역 성경에서는 본시의 표제가 독립되어 있으나 원문에는 1절의 일부로 나와 있다. 보통 시편의 표제에는 저자, 연주 방식이나 사용된 악기, 저술 시기나 배경 등이 언급되나 본시에는 단지 저자만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본시가 다윗에 의하여 지어진 것은 분명하나 그 외 언제, 어떤 배경하에서 지어졌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혹자는 본시의 배경과 관련하여 다윗이 신복 아비새의 도움으로 블레셋의 장군 아스비브놈의 공격으로부터 벗어난 이후(삼하 12:15-17) 지었다고 추정하거나 다윗 치세 말기에 있었던 압살롬의 반역 당시 지었다고 추정하기도 하나 확인되지 않는다.

따라서 본시는 어떤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염두에 두고 쓰여진 시라기보다는 하나님 중심의 순결한 신앙을 소유한 다윗이 인본주의 세력이 득세하는 이 세상 속에 살면서 겪게 되는 악한 세력에 의한 부당한 도전이라는 삶의 정황 속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하려는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기 위하여 쓰여견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본시를 통하여 일평생 악의를 품고 도전하는 대내외적인 적들과의 끊임없는 갈등과 극한 대립의 상황들 앞에서 다윗이 그 직면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를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가능하였다.

한편 본시는 ‘비탄시'로 분류할 수 었다. 그러나 일반적인 비탄시와는 그 구조가 다소 다르다. 보통 비탄시는 당면한 고통에 대해 하나님 앞에 호소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그러한 상황 속에서 자신을 구원하여 주실 것에 대한 간구로 이어지며, 간구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것에 대한 선취적 확신과 그로 인한 찬양으로 마쳐진다.

그러나 본시는 초월자이신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절대적 신뢰와 확신, 그에 대한 찬양이 먼저 나오고 있으며 뒤이어 구원의 호소와 간구, 그리고 구원에 대한 찬양을 요청하는 선포로 끝을 맺고 있다.

어러한 본시의 특이한 양식으로 인하여 흑자는 두 편의 시가 한 편으로 통합된 시라고 보기도 한다. 즉 여호와 안에서 용기를 가지고 여호와의 전에서 누릴 구원의 기쁨에 대한 자신의 확신을 노래하는 1~6절을 하나의 시로 보고 당면한 고난 가운데서 여호와를 향한 응답과 구원의 간구 및 여호와의 은혜에 대한 확신과 여호와를 사모할 것에 대한 회중의 동참 촉구를 담고 있는 7-14절 을 다른 하나의 시로 보는 것이다.

물론 전반부가 여호와를 3인칭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신뢰시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반면 후반부는 여호와를 2인청으로 표현하며 비탄시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주장은 일면 타당성을 지닌다.

그러나 본시 전반에 걸쳐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에 대한 다윗의 깊은 신뢰가 잘 드러나 있다는 점전반부와 후반부에 동일한 단어들이 자주 반복된다는 점 등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 ‘구원' (1, 9절), ‘대적' (2, 12절), ‘마음' (3, 8, 14절), ‘일어남' (3, 12절), ‘찾다' (4, 8절), ‘생명' (4, 13절) 등이 그것이다(Craigie).

이를 감안할 때 본시는 원래부터 하나의 시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개요

1-3절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에 근거하 여 자신의 대적들로 인하여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담대함을 선언하는 내용.

4-6절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로 말미암아 자신이 원수들로부터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전에서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피력하는 내용.

7-12절

당면한 고난 가운데서 여호와를 향하여 응답과 구원을 간구하는 내용.

13,14절

모든 것을 여호와께 의탁한 후에 선취적 신앙으로 구원을 확신•고백하며 회중을 향하여 여호와를 사모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


다윗의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 신뢰와 확신

한편 우라는 이러한 특이한 앙식을 지닌 본시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다윗의 절대적인 신뢰와 확신을 읽어내야 한다. 즉 다윗은 하나님의 도움에 대한 간구에 앞서 자신의 절대 신뢰와 확신을 먼저 피력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본시에는 ‘살 ', ‘군대’, ‘진칠지라도’, ‘전쟁'전쟁의 이미지를 지닌 표현들이 많이 나온다.

그러나 여기서 전쟁은

  • 비단 대외적인 적국들과의 싸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 다윗 자신과 가까운 관계에 있던 사람들의 배신으로 일어나게 된 싸움과 그로 인한 죽음의 위험까지도 포함한다.

그리고 다윗이 말하고자 하는 전쟁의 위협이 대외적인 것이든, 대내적인 것이든 상관없이,

본시는

  • 자신이 직면한 위험 앞에서 담대하게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선언하며,
  • 구원과 승리에 대한 확신을 견지하는 다윗의 모습이 선명하게 잘 드러난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본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치열한 영적 전투의 현장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확고한 믿음 (시편 27:1-6)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살펴볼 수 있다.

Ⅰ. 다윗은 얼마나 생동하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안에서 개가를  부르고 있으며 그의 거룩한 이름을, 그리고 그가 얻은 유익을 영화롭게 하고 있는가?

💡 본절부터 6절까지에서 다윗은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을 향해 굳건한 믿음으로 서 있는지틀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이 가운데 1-3절에서 다윗은 회중을 향하여 여호와 안에서 가진 자신의 용기를 선포한다.


1. "여호와는 나의 빛이시니이다."

다윗의 신하는 그를 "이스라엘의 등불" 이라 불렀다(삼하 21:17). 그는 사실상  타고 있는  그리고 빛나는 등불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가 달처럼 빌어온 빛에 의해 빛났음을 인정하고 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시니이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던지신 빛이 그들에게 반사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의 빛으로서 그들이 의혹 가운데 있을 때 길을 보여 주시고 그들이 슬픔에 잠겨 있을 때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즐겁게 해주신다. 그들은 지금 그의 빛 가운데서 그들의 길을 행하며, 그의 빛 가운데서 영원히 빛을 보리라는 소망을 갖는다.


💡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 여호와가 누구인지를 밝히는 것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먼저 주목할 것은 ‘여호와'란 신명.

  • 이는 자존하시는 하나님, 언약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강조할 때 사용하는 신명이며 보다 구체적으로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사역과 관련헤 사용되는 신명이라할 수 있다.
  • 이 신명은 에굽에서 압제받는 이스라엘을 이끌어 내어 구원하실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르쳐주심으로 이스라엘에게 계시되었다(출 3:15). 따라서 ‘여호와'라는 이름은 이스라엘을 출애굽시켜 구원하시고, 광야에서 그들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에 대한 기억을 상기시켜 준다.
  • 그런데 본시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지칭하면서 일관되게 ‘여호와'로 호청하고 있다. 이처럼 다윗이 본시에서 ;여호와'라는 신명을 사용한 것은 과거 애굽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자신 역시 구원하여 주실 것에 대한 믿음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나의 빛’

  • 빛 = ‘생명이나 환희’를 상징.
  • 본절에서 다윗이 여호와를 ‘나의 빛'이라고 고백한 것은 그가 처한 어두운 현실, 곧 자신을 대적하여 일어난 불의한 대적들의 포위와 그들로 인해 겪고 있는 갈등과 어려움의 상황을 감안한 표현이다. 이같은 현실적 정황을 다윗은 ‘어둠'으로 상징하고 구원주 하나님을 이러한 어둠을 물리치는 ‘빛'에 비유하고 있다.
  • 빛이 오면 어둠이 사라지듯 하나님이 임하시던 대적들과 그들로 인해 생긴 갈등과 어려움들은 해결된다. 시인은 그러한 의미에서 가장 먼저 하나님을 빛으로 묘사하고 있다.

‘나의 구원’

  • 다윗은 여호와를 ‘나의 구원'으로 선포한다. 다윗이 하나님을 ‘나의 구원'이라고 선포하는 것을 통헤 지금 다윗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어떠한인지틀 자연스럽게 유추할 수 있다.
    → 이는 다윗이 앞서 언급한 빛에 반대되는 어둠의 상황, 곧 절망과 고통의 그늘 아래 처해 있음을 반영한다. 이러한 다윗의 상황은 군대가 진을 치고 전쟁이 일어난 위급한 상황에 대한 묘사(3절)틀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 다윗은 무수한 전쟁을 치러온 장수였으며 전쟁에서 사용되는 전술과 각종 무기들, 그리고 병력이나 지형 등에 대헤서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것을 배제한 채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그분이 자신외 구원이라고 선언한다. 이는 불의한 대적과의 전쟁에서 하나님만이 자신에게 승리를 주실 수 있으며 그분만이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악한 자 들의 공격과 위협으로부터 자신의 생명과 의를 지키실 분임을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여호와가 나에게 빛을 주신다', ‘나에게 구원을 주신다'라고 기록하지 않고 ‘여호와는 나의 빛이시라', ‘여호와는 나외 구원이시라'고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다윗의 여호와에 대한 바른 인식을 보여준다.

  • 여호와께서 외부에 있는 빛이나 구원을 자신에게 가져다주시는 분이 아니라
  • 빛 자체이시며 구원 자체이시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바른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 그는 자신을 대적하는 온갖 대적들이나 엄청난 위협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라는 표현을 통해 누구도 자신을 공포와 두려움, 절망에 빠뜨릴 수 없음을 힘주어 외치고 있다. 

2. "그는 나의 구원이시니 나는 그 안에서 안전하며 그에 의해 구원될 것이다."

3. "그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 위험한 생명의 보호자로서 내가 죽음을 당하지 않게 해 주실 뿐만아니라 내 연약한 생명의 힘으로서 내가 낙심하거나 위축되고 시드는 것을 막아 주신다."

믿는 자의 빛이신 하나님은 그의 생명의 빛이시므로 그는 하나님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고 움직인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우리 자신을 강건케 하도록 하자.


💡 1절, …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난처이며 요새가 되셨기에 - 다윗은 어떤 위기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누구도 무서워할 필요가 없었다. 다윗은 이러한 자신의 마음 상태를 ‘내가 누구를 무서워 하리요’ 라는 수사 의문문으로 나타내고 있다.

다윗은

  • 누구도 자신을 두렵게 할 수 없으며,
  • 어떤 세력도 자신을 공포에 몰아넣을 수 없음을 강조한다.

Ⅱ. 얼마나 담대한 용기를 가지고 그는 그의 대적들을 이기고 있는가? 믿음에서 나온 용기만큼 견인한 것은 없다. 하나님께서 그를 위하시면 누가 그를 대적할 수 있겠는가?

💡 앞선 1절에서 다윗은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그로 인해 어떤 악한 세력도 자신을 두렵게 하고 무섭게 할 수 없음을 힘주어 강조하였다.

이에 이어지는 본절과 3절에서 다윗은

  • 자신의 대적에게 초점을 맞추되 그들이 자신에게 어떤 위해를 가했는지와
  • 더불어 이에 대한 대적의 패망과 자신의 마옴음상태를 밝힌다.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전능자께서 그의 호위자가 되신다면 그는 두려워할 까닭이 없게 된다. 만일 그가 그러하다는 것을 안다면 그는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빛이라면 그는 어두움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그의 구원이실 때 그는 어떤 무기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이미 패주당한 대적들 위에서 개가를 부르고 있다(2절).

그의 대적들은 "그의 살을 먹으려고" 그에게로 에 대하였다. 그리고 그 이상의 성공을 거두리라고 확신하고 왔지만, 그들은 넘어지고 말았다. "그가 그들을 죽여 쓰러뜨린 것"이 아니라 "실족하여 넘어진 것" 이었다. 그들은 매우 당황하고 약화되었으므로 더 이상 그들의 계획을 추진시킬 수 없었다.


 💡 27:2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악인(행악자)’

  •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성품과 뜻을 거슬러 행하는 모든 것을 지칭하는 표현.
  • 그러므로 본문의 ‘행악자'는 다윗을 대적하는 자이기 이전에 하나님을 향하여 악을 행하는 자라는 의미를 지닌다.
  • 그런데 이러한 행악자를 다윗은 ‘나의 대적'과 ‘나의 원수'와 동일시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신정 왕국의 통치자인 자신을 괴롭히는 이들은 결국 하나님에 대하여 악을 행하는 자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이같은 표현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다윗은 하나님 중심적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고 판단하였다.
  • 다윗은 이러한 표현을 통해 -
    • 이들 악인들이 자신을 대적하는 것에 앞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으므로
    • 필경에는 파멸에 이를 수밖에 없음을 암시하고 있다.

악인들이 접근한 목적 = ‘내 살을 먹으려고’

  • 다윗이 고발하는 바 : 신정 왕국의 통치자로 하나님께서 직접 세운 자신을 파멸시키려는 데 있음.
  • 이들의 악한 목적 + 그들의 잔인함과 냉혹함.

악인들의 실패 =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 그러나 이들 다윗의 대적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결코 성취하지 못한다. 악인들의 파멸은 결정적이다. 

이처럼 한 마디 말로써 그리스도를 잡으려고 왔던 자들은 비틀거리며 땅에 엎으러졌다(요 18:6).

하나님 백성들을 대적하던 어떤 사람들의 멸망은 그 대적자들 모두가 완전히 정복되리라는 전조이다. 이들이 넘어졌으므로 따라서 그는 나머지 대적들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비록 그들이 무수하여 무리를 이루고 있을지라도 -그들이 대답하고 그들의 공격이 위협적일지라도-한 사람을 대항하여, 즉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칠지라도-그들이 나에 대항하여 전쟁을 벌일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로다. 천군의 주님이 우리를 보호하시면 어떤 군대들도 우리를 해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신다는 확신 속에서 내가 안연하리로다."


💡 27:3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다윗은 그가 처한 상황의 긴박성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 싸움을 앞두고 대치하고 있는 이러한 상태는 군인의 마음을 더욱 긴장하도록 만든다. 즉 대처 상태에 있는 군대는 실제 충돌 상태에 있는 군대보다 더 큰 공포심을 갖게 한다.
  • 이는 예상되는 재난의 그럼자가 어떤 이에게는 재난 그 자체보다도 더 큰 불안을 느끼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굳센 믿음은 어러한 모든 불안으로부터 참 자유와 평안을 누리게 한다. 

💡이같은 확신은 다윗이 자신을 위협하는 대적들보다 강하고 능하신 하나님의 도움을 신뢰한 데서 나온 것이다. 다윗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미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것, 안개처럼 희미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경험을 뿌리로 한 믿음에 기초를 둔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승리의 현장인 것이다.

다윗은 2절과 달리 3절에서 ‘미래를 나타내는 미완료형 동사’를 쓴다.

  • 과거 그의 삶 속에서 구원의 역사를 베푸셨던 하나님께서 미래에도 그같은 하나님의 구원을 주실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나타낸다.
  • 다윗은 전쟁의 급박한 상황과 그 속에서 누리는 자신의 평안의 상태를 선명하게 대조시킴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강한 신뢰를 나타내며 간접적으로 하나님께서 얼마나 완전한 도움을 베푸시는지를 찬양하고 있다. 

그는 다음 두 가지 사실을 확신하고 있다.

1. 그는 안전할 것이다.

"하나님이 나의 구원이시라면 혼난 날에 나를 비밀히 지키시고 나를 위험과 그 두려움이 벗어난 곳에 두시리라."

하나님은(렘 36:26 에서 처럼) 환난의 날에 그의 백성들에게 피난처를 마련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가 친히 그들의 은신처가 되실 것이다(32:7). 그의 섭리가 그들을 안전케 할 것이며, 적어도 그의 은혜가 그들을 편케 해 줄 것이다. 그의 이름은 곧 그들이 믿음으로써 달려가는 견고한 망대이다(삼상 18:10). "여호와께서 나를, 엔게디 요새(삼상 23:29)가 아닌 장막 은밀한 곳에 숨기시로다."

하나님의 은혜로운 임재, 그의 능력 그의 약속 기도를 들으시려는 그의 준비 그의 백성의 마음속에 있는 성령의 증거-이러한 것들이 그의 장막 은밀한 곳이며, 이 속에서 성도들은 그들을 편히  거하게 하는 거룩한 보호와 마음이 평정을 발견한다.  이것은 그들을 흔들리지 않는 바위에 두며 그들은 거기서 그들의 소망에 대한 튼튼한 발판을 발견한다. 즉 그것은 그들을 "바위 위에 높이"두며 거기서는  폭풍우 부는 바다의 거센 파도도 그들을 건드리지 못한다. 그것은 "우리보다 높은" 바위이다(61:2).

2. 그는 승리할 것이다(6절).

"이제 내 머리가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그들의 창이 그곳에 들리울 것이다."

다윗은 여기에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에 의해 승리 앞에서 개가를 부르고 있다. 그리고 월계수뿐만 아니라 면류관도 이미 자기 머리 위에 씌어진 것처럼 그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


💡 1-3절과 4-6절의 차이는 공간적 배경을 통해 더욱 분명하게 구분된다.

먼저

  • 1-3절이 전쟁터와 원수들과의 대처 상태 등을 공간적 배경으로 하는 반면,
  • 4-6절은 주로 여호와의 집, 여호와의 전, 하나님이 그를 보호하기 위해 허락하신 초막, 하나님의 장막 등을 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내용은 전혀 상관없는 내용을 나열한 것으로 볼 수 없다. 약 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 1-3절 단락이 :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신뢰에 근거한 담대함과 용맹, 승리를 서술한 것이라면,
  • 4~6절은 : 그러한 용기와 능력의 근원이 하나님의 집에서 받은 은혜에 근거한 것임을 밝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Ⅲ.  얼마나 정중하고 진지한 모습으로 그는 거룩한 규례 속에서 하나님과 꾸준히 교제하기를 간구하고 있는가?(4절)

그가 하나님의 의무를 행하고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 질 수 있는 그의 고유의 영역 속에 있었을 때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그의 신뢰를 크게 격려했다. 우리가 그 어느 피조물보다도 하나님을 더욱 기뻐했다는 사실을 우리 마음이 증거할 수 있을 때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를 의지하도록 격려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자신의 것으로 여기시어 보호하시는 자들 가운데 우리가 속해 있다는 표시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을 이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즉 그는 그를 둘러싸고 있는 대적들로부터 안전하기 위해 여호와의 집에 거하기를 원했다. 그 자신이 위협적인 무리들에게 둘러싸여 있음을 발견했을 때 그는"나의 안전을 위해,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은 내가 그러한 무리들과 겨룰 수 있는 군대를 갖고자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하거나, "그러한 성읍이나, 그러한 성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하지 않고 "나로 여호와의 집에 거하고자 하는 것이며, 그것으로 나는 만족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 27: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다윗이 구하는 ‘한 가지 일’

  • 다윗이 구하는 ‘한 가지 일’은 - 여호와의 전에서 누릴 구원의 기쁨이었다.
  • ‘구하리니’ = 단호한 결단과 더불어 이를 이루기 위한 행동의 의미까지 포함한다.
  • 본문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 품은 거룩한 소원을 단호하고도 지속적으로 성취하고자 몸부림치고 있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1.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여호와의 집에 거하는 " 것이었다. 다윗은 여호와의 전 뜰에 묵었던 제사장들 가운데 속하기를 원했다. 하나님의 사역자를 매우 경시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역대의 가장 위대하고 가장 훌륭했던 왕들 가운데 한 사람 이었던 다윗은 기꺼이 그들과 함께 운명을 나누고자, 기거하고자 했다. 또한 오히려 그는 다른 충실한 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 매일매일 요구되는 의무에 따라 하나님의 성전 봉사를 합당하고 꾸준하게 해나가기를 원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당시에 참여하고 있던 전쟁이 끝나기를 원했다. 그것은 그 자신의 궁전에서 편히 살기 위해서가 아니었고 하나님의 전을 일정하게 섬길 수 있는 여유와 자유를 갖기 위한 것이었다. 다윗의 성실한 아들, 히스기야도 보좌 위에 오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기"위해 그의 건강이 회복되기를 원했다(사 38:2).

하나님의 모든 자손은 하나님의 전에 거하기를 바란다. 그들이 거할 곳이 그 외에 또 어디 있겠는가? 단지 하룻밤을 위해 잠시 체류하는 나그네처럼 그곳에 거하거나, 영원히 그 집에 살지 않는 종처럼 잠시 동안만 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그들 생의 모든 날들을 그곳에 거한다. 거기에 아들(그리스도)도 영원히 거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찬미의 하나님이 우리의 영원한 축복이 되시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그것을 우리 생전 동안의 일로 삼아야만 한다.


💡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는 것’

다윗의 마음

  • 직역하면 ⇒ ‘나의 생명이 있는 모든 날에’
  • 여호와의 집에 거하기를 원하는 다윗의 갈망이 일시적인 것이거나 감정적인 결정이 아니라 그의 숨이 다하는 날까지 지속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이었음.

‘여호와의 집’ (뻬베트 예흐와)

  • 임시적 초막이나 장막과 구별되는 영구적 처소.
  • 그런데 다윗 시대는 아직 성전이 건축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과 당신의 백성 사이의 언약의 상징인 언약궤가 있는 성막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빼베트’의 원형 ‘빠이트’ - 천막(미쉬칸; 오헬)이 아닌 ‘빠이트’란 단어를 사용한 이유.
    • 건물로서의 ‘집’ 뿐만 아니라, ‘가족’을 지칭하는 표현으로도 사용.
    • 다윗은 하나님의 집의 일원으로 영원히 남겨지길 바라는 자신의 염원을 전달한다. </aside>

2. 그는 얼마나 간절히 그것을 갈망하고 있는가?

"이것이 바로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이며, 나는 그것을 구하리이다."

만일 그가 하나님께 한 가지만 부탁하기로 되어 있었다면 그는 틀림없이 이것을 청할 것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이것을 그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것을 하나의 좋은 것으로서 청했다. 그는 여호와께  그이 선물로서 그리고 그의 은총의 표정으로서 그것을 청했다. 그리고 필요한 한 가지로서 그것에 그에 열망을 고정시켰기 때문에 그는 그것을 구했다. 그는 하나님 전에 거하기 위해 계속 기도했고 그렇게 할 자유와 기회를 얻기 위해 그의 일들을 계획했다. 진심으로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원하는 자들은 온갖 힘을 기울여 그것을 구할 것이다.

3. 그는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그가 하나님의 집에 거하려는 것은 제물로 잔치를 베푸는 그곳의 풍성한 즐거움이라든가 그곳에서 불리워지는 음악과 좋은 노래 때문이 아니라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었다.


💡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바라보며’ (앙망하며)

  • 한 개인이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는 대상에게 시선을 고정시키는 것.
  • 다윗의 심경
    •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으로 인해 황홀해하며 거기에 빨려들듯이 몰두하는 시인의 심경

‘여호와의 아름다움’

  • 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선하심, 인자하심.

‘그 성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

  • ‘사모하다’ 란 말은 - 오히려 ‘묻다’란 의미로 더 많이 사용된다.
  • ‘묻다’ 에 내포된 의미
    • ‘묻다'라는 행위 안에는 그 대상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전제되어 있다.
  • 묻거나 사모하는 대상
    • 하지만 문맥으로 볼 때 이는 여호와임이 분명하다.
    • 즉 본문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집에 거하는 것”과 -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실행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하나님께 묻는 것”을 밀접하게 연관시키고 있는 것이다.

 

다윗의 소망의 초점

이러한 다윗의 소망은 궁극적으로

  • 하나님을 더 깊이 사랑하고
  • 하나님의 뜻을 더 깊이 아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 이는 율법의 기본 요구와 상응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의 삶의 강령으로 주신 율법의 가장 기본적인 정신을
⇒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해 당신을 사랑하는 것' 이라고 규정하셨다(신 6: 4, 5).

그런데 다윗은 본절 전체를 통해 자신의 유일하고도 간절한 소원이 하나님과 함께하며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에 주목하며 하나님을 더 깊이 사랑하고 사모하는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감안할 때 율법의 핵심적인 요구와 본절에 나타난 다윗의 소원은 일맥 상통하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본절에 언급된 다윗의 고백은 다윗이 자신의 소원을 하나님의 요구와 일치시키는 것으로 다윗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과 성품에 얼마나 충실한 삶을 살고자 했는지를 전달하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결국 다윗에게 이러한 일념이 있음을 아셨기에 하나님은 그를 가리켜 ‘내 마음에 함한 사람' (행 13:22) 이라고까지 칭하셨던 것이다.


그가 하나님의 전을 섬기고자 하는 것은 다음 두 가지를 위한 것이었다.

(1) 하나님을 묵상하기 위해서,

그는  여호와의 아름다움, 거룩한 존재와 완전함에 대한 무한하고도 초월적인 온아함을 알고 있었다. 즉 그의 거룩함이 그의 아름다움이며(110:3) 그의 선하심이 그의 아름다움이다(슥 9:17). 그의 모든 속성의 조화가 그이 성품의 아름다움이다.

우리는 믿음과 거룩한 사랑의 눈으로 즐겁게 이 아름다움을 보여 그 속에서 사랑스럽고 경탄스러운 것을 더욱 더 살펴 보아야 한다.

생각을 고정시키고 열렬한 감정에서 나온 거룩한 불꽃을 갖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탁월성을 관조하여 우리에 대한 그의 특유한 은총의 표시를 즐거워해야 한다.

다윗이 여기에서 열망하고 있는 것과 이러한 면에서의 여호와의 아름다움이며, 그것은 그의 규례 속에서 보여질 것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규례를 통해서 그 자신은 나타내시기 때문이다.

(2) 그의 의무에 대해 가르침을 받는 만족을 위해서,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전에서" 그것을 "사모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여호와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이 두 가지 일을 위해 그는 한 가지, 즉 "그의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렇게 하는 자가 복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이야기하고 그로부터 듣는 가운데 항상 주를 찬송할 것이다(84:4).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기 위해 그의 발밑에 앉아 있었을 때 그리스도는 그것을 "필요한 것"이며 "좋은 편"이라고 하셨다.


4. 그는 그것으로 인한 어떤 유익을 그 자신에게 약속하고 있는가?

(1) 그가 하나님의 전에 자리 잡기만 한다면 그는 그 곳에서 평안할 것이다. 여기서는 그가 은밀한 곳에 숨겨질 것이므로 환난이 그를 찾지 못할 것이다. 그가 높은 곳에 있을 것이므로 환난이 그에게 미치지 못할 것이다.(5절).

다윗의 후손 가운데 한 사람인 요아스는 여호와의 전에 육년 동안 숨겨져 있어서 칼로부터 보호받았을 뿐만 아니라 면류관을 보유할 수 있었다(왕하 11:3). 느헤미야는 또한 성전을 도망하기에 안전한 장소로 생각하였다(느 6:10). 그러나 믿는 자들의 안전은 성전의 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전의 하나님 안에 있으며, 그들의 위로는 하나님과의 교제 안에 있는 것이다.


💡 27:5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다윗이 4절과 같은 마음을 열망하는 이유

= 하나님께서 환난 날에 자신을 완전무결하게 지키시는 절대적인 보호자이시기 때문.

  • 초막, 장막, 바위 ⇒ 하나님과의 교제가 인간에게 제공하는 피신과 안보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사용된 단어들
  1. 자신을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는 분
    • 초막 = 본래 초막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임시로 거처하기 위해 나뭇가지나 잎으로 지은 가건물을 나타내는 데에 사용된 단어.
    • 성경에서 ‘여호와의 보호 또는 피난처'를 나타내는 상징
  2. 그 장막 은밀한 곳에 숨기시는 분
    • 성막에서 숨은 장소, 은밀한 장소는 어디?
      • 지성소’로 풀이됨.
    • 지성소
      • ‘지성소'는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일년에 한 차례 대속죄일에 대제사장 한 사람만이 출입이 가능한 곳이다. 만약 이러한 법을 어길 경우 지성소에 들어간 사람은 죽음을 면하지 못한다. -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 은밀한 장소인 지성소에 다윗을 숨겨주시기만 한다면 그곳보다 더 안전한 피난의 장소는 없을 것이다.
      • 또한 ‘지성소'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 따라서 그 장막 은밀한 곳에 숨기신다는 것은 단순히 다윗을 숨겨주시는 것만 아니라 그와 함께하시며 그와 더불어 교제를 나누시며 은혜와 능력을 공급하실 것이란 의미를 함축하는 표현이라 하겠다
  3. 높은 바위 위에 두시는 분
    • 바위 = (본문에서) ‘요새’를 의미함.
    • 높은 지대에 었는 반석 위에 세워진 요새는 대적들의 공격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장소이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러한 바위 위에 높이 두실 것이라고 고백한다.
      → 이는 앞선 본문에서 하나님의 보호와 관련해 언급한 ‘비밀히 지키시고', ‘숨기시고’ 란 표현과 대응을 이루는 내용이다.
    • 앞선 두 가지 항목이
      • 하나님의 숨기심과 보호를 중점적으로 찬양한 것이라면,
    • 세번째 항목인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는
      • 그를 보호하실 뿐 아니라 대적의 공격을 파하고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라고 할 수 있다.

⇒ 이처럼 반복되는 표현, 그러면서도 점차 강해지는 의미를 지닌 표현들을 연결시킴으로 다윗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얼마나 완전하고 확고한 것언지를 힘주어 노래하고 있다.


(2) 또한 그는 그곳에서 즐겁고 유쾌할 것이다. 거기에서 그는 기쁨의 제물을 바칠 것이다(6절).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업이 그 품삯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그는 노래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우리의 기쁨의 대상이 되는 것은 모두 찬미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거룩한 의식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섬길 때 우리는 매우 기뻐하고 찬미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도를 찬송해야 하는 것은 곧 그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우리 대적들 위에 높이 드실 때마다 우리는 찬미로 그를 높여야 한다. "항상 우리를 이기에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후 2:14).


💡 27:6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 하나님의 철저한 보호의 결과.

  • 다윗의 원수들이 다윗을 겹겹이 에워싼 다윗이 처한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은 하나님의 보호와 도우심으로 극적 반전을 이룬다.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 전쟁에서 상대를 굴복시키고 승리하는 것.
  • 다윗의 확신 = 하나님의 보호로 인해 위기에서 건짐 받을 뿐 아니라 필연적으로 자기를 위협하는 대적들에 대하여 승리할 것.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에워싼 원수들로부터 승리를 거둔 결과 자신이 행할 일 ⇒ 하나님의 보호 - 승리 - 감사의 제사의 연결성

  • 제사를 ‘드리겠고’ = 자기 권고, 자발성을 강조하는 표현.
  • ‘즐거운 제사’
    • 여기서 의미 : ‘승리의 환희로 가득 찬 감사 제물’ 이란 표현.
    • 적들에게 에워싸인 일촉즉발의 위기 중에도 승리의 개선 때에 하나님 앞에 드리게 될 감사와 환희의 제사를 내다본 것이다.
  • ‘그의 장막에서’
    • 5절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보호하시는 장소로 언급한 ‘그 장막’이 → 승리의 제사를 드리는 장소로 변모되었다.
      • 이는 다윗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보호가 얼마나 완전하며,
      • 그에게 약속하신 승리와 구원이 얼마나 확실한 것인지를 반증.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 본절에 기술된 다윗이 드리는 예배의 장면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의미를 재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 이는 오늘날 성도둘이 드리는 예배 역시 동일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 예배는
    • 사단이 왕 노릇하는 이 세상에서 힘겨운 싸움을 하다가
    •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도우심으로 승리한 성도들이
    • 기쁨의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행하는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과 승리에 대한 함성이며 축제이다.
  • ‘노래하며’ ‘찬송하리로다’ 는 비슷한 의미. ⇒ 거의 유사한 의머의 단어를 반복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 역사를 증거하고 싶어하는 다윗 자신의 굳은 다짐과 뜨거운 열의를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함

●소망과 기도 (시편 27:7-14)

💡본시의 후반부인 7-14절에서 다윗은 당면한 고난 가운데서 여호와를 향하여 응담과 구원을 간구하며 여호와의 은혜에 대한 확신과 여호와를 사모할 것에 대한 회중의 동참을 촉구하고 있다.

이처럼 본시는 본절에 와서 분위기가 급반전된다.

  • 전반부의 충만하고 당당한 어조는 사라지고,
  • 후반부의 안타까운 상황에서 올려 드리는 다윗의 애절한 외침이 울려 퍼진다.

자신의 처지에 대한 탄식과 구원의 간구로 시작되는 비탄시의 전형적인 형식을 염두에 둔다면 후반부에 나타난 간구의 내용은 사실 전반부의 내용보다 시간적으로 선행되어야 논리적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이하게 간구 부분을 뒤에 배열한 것은

  •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강한 신뢰와 확신을 보다 강조적으로 나타내기 위한 시인의 의도에 다른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Ⅰ. 여러 가지 탄원 속에 나타난 하나님께 향한 그의 열망.

지금은 여호와의 집으로 올라갈 수 없을지라도 그는 어디에 있든지 간에 은혜의 보좌로 가는 길을 기도를 통해 발견할 수 있었다.


💡 27:7 여호와여 내가 소리 내어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

  • 7절에서 다윗은 응답을 비는 비탄시의 전형적인 형식으로 기도를 시작한다.
  •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시작하는 다윗의 이러한 부르짖음을 통해 성도가 위기 상황에서 간절히 찾고 구해야 할 대상이 -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재삼 확인하게 된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데에 전제된 심령

  • 이처럼 하나님 앞에 매달리고 부르짖으며 탄원하는 행위는 결코 나약하거나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다.
  • 자기 자신의 능력만을 내세우는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믿음이 전제되어 있다.

사람은 누구나 한계를 가지고 있다. 사람은 현실적으로 억울한 일 ,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로 인해 힘겨워할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이다. 이 경우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된다면 그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부르짖을 때에 .. 응답하소서’

  • 응답하소서
    • 단순히 귀로 듣는 것만이 아니라,
    • 들은 것을 마음으로 수용하고 이에 적합한 행동을 취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
  • 여기에는 자신의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도우심을 간구하는 다윗의 간절함이 엿보인다. 

1. 그는 겸손히 청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은혜로운 청종을 얻으리라는 것을 확고하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여, 내가 마음으로 뿐만 아니라, 간곡히 원하는 자로서 소리로 부르짖을 때에 들으소서."

그는 또한 화평의 응답을 청하고 있다. 그런데 그가 기대하고 있는  것은 그 자신의 공로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에서 나오는 응답이다. 즉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7절). 우리가 기도하고 믿는다면 하나님은 은혜롭게 들어주시고 응답하실 것이다.

2. 그는 하나님께서 이 의무를 행하도록 그에게 보내 주신 친절한 초청을 포착하고 있다(8절).

우리가 부름 받지도 않고서 왕들의 왕이신 자가 계신 곳으로 가는 것은 무례한 일이며, 그가 "우리에게 긍휼을 드시지" 않는 한 우리는 그곳에 확신을 갖고 가까이 갈 수 없다. 그러므로 다윗은 기도를 드리려 할 때 그의 생각을 하나님께서 은혜의 보좌로 그를 부르신 것에 두고, 관례대로 그에게 내밀어진 긍휼의 끝을 경건하게 만지고 있다.

"내 마음이 주께 말하되" 또는 주에 "대해" 말하되"저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였나이다."

그는 그것에 대해 먼저 숙고한 다음 그것을 다시 자기 자신에게 가르치고 있다(그것은 가장 훌륭한 가르침이며 하나님이 한 번 말씀하시는 것을 두 번 듣는 것이 된다)즉 "주께서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시나이다"(그것을 이렇게 보충할 수도 있다). 주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을 묵상하고 난 뒤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라고 경건하게 결단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다음을 살펴보자.


💡 27:8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찾다’

  • 히브리어에는 찾는 행위에 있어서 유사한 표현이 여러가지가 있다.
    본절은 ‘빡카쉬’
    • 이는 단어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강한 의미가 내포된 표현.
    • 숨겨져 있는 것이나 잘 밝혀지지 않는 것을 집요하게 찾는 경우와 어떤 사물에 대해 깊이 있는 지식을 추구하고 본질까지 파헤치는 것.

주의 얼굴을 찾는 올바른 태도

  • 하나님의 은총과 긍휼을 찾기 위하여 집요하게 노력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 본절에서 이 단어를 쓴 것은
    • 인간이 하나님을 찾을 때 건성으로 찾아서는 안되고,
    • 마음과 뜻과 성품, 지혜를 모두 동원하여 생명을 다해 찾아야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 본절은 하나님께서 이를 명령하셨고 다윗 또한 이를 다짐하고 실제로 그렇게 해왔음을 나타내준다.

(1) 신앙적인 경배의 참된 본질.

  • 그것은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율 속에 있다-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그 자신을 위해 그를 찾도록 만드실 것이고, 그의 은총을 우리의 주요 선으로 삼도록 하실 것이다.
  • 그리고 이것은 곧 성도들의 목적이며 소망이 된다.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그리고 그 외의 것은 아무 것도 따르지 아니하리이다." 주가 손을 펴 실때 모든 생물의 소원이 만족케 될 것이다(145:16). 그러나 살아 있는 영혼의 소원을 만족케 하는 것은 그의 얼굴에서나 오는 빛뿐이다.(4:6, 7)

(2) 이 의무에 대한 은혜로운 하나님의 친절하신 초청.

"주께서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시나이다." 이것은 허락일 뿐만 아니라 계율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찾으라는 그의 명령은 발견하게 되리라는 약속을 내포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매우 친절하시므로 "나를 헛되어 구하라"고 말하시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에게로 전향하고 그와 더불어 대화함으로써 그의 얼굴을 찾도록 권고하신다. 그는 그의 성령이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와 더불어 속삭이도록 하심으로써 우리가 그의 얼굴을 찾도록 하신다. 즉 그는 그의 말씀으로, 그를 섬기기 위한 정해진 기회로, 그리고 인자하며 동시에 쓰라린 특별한 섭리로써 우리를 부르신다. 우리가 어리석게도 허탄하고 거짓된 것에 아첨할 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그에게서 우리 자신의 긍휼을 찾도록 부르고 계신다.

(3) 이 초청에 대한 은혜로운 영혼의 기꺼운 응락.

그 부르심은 즉시 응답된다. "내 마음이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그 부르심은 일반적인 것이었다.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리이다"하고 적용시켜야 한다.

그러나 이 말은 우리가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가시킬 때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으며 우리는 그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그 요청은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는 것이었고 그 응답은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라고 표현되어 있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보소서. 우리가 주께 왔사오니"(렘 3:22)라는 응답이 있다. 하나님의 권능의 부르심을 기꺼이 반향하는 것이다.

3. 그의 요청은 매우 독특하다.

(1) 그는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고 있다. 그것은 그가 그것에서 도외시당하지 않기 위한 것이다(9절).

"여호와여, 주의 계명에 순종하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그러하오니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나로 주의 은총이 소생되는 것을 느끼지 못하게 하지 마소서. 나를 사랑하시고 주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려 주소서.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그는 그가 하나님의 역정을 받을 만하였다는 사실을 시인하고 있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징계하시는 한이 있더라도 그를 그의 존전에서 버리지 말기를 간청하고 있다. 그에게서 버림당하는 것이 곧 지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27:9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마시고 떠나지 마소서

다윗이 당면한 위기 상황의 긴박함과 처절한 부르짖음.

  1. 숨기지 마시고
  2. 버리지 마소서
  3. 나를 버리지 마시고
  4. 떠나지 마옵소서

다윗이 이처럼 위기의 상황에서 다른 대책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절박하게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1. 자신의 기억
  2. 불변의 확신
  • 지금까지 다윗이 모든 위기와 어려움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던 것이 오로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도우심의 은총 때문임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으며, 지금의 문제 해결도 하나님의 은총으로밖에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다윗은 인간적인 방법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본문에서와 같이 절박하고도 처절한 기도를 올려 드렸던 것이다.
  • 과거 자신을 변함없이 돌보시고 보호하신 구원 역사를 기억하며.
    이러한 기억을 돌이켜 볼 때 하나님이 변함없이 자신을 도우시며 보호하신다는 것은 추호도 의심할 수 없는 사실임을 더욱 확고하게 믿게 되었을 것이다.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 도움 = ‘군사 원조’의 의미의 ‘구출과 구원’이란 의미로 쓰임.
    • 전쟁에서 원조는 생명과 직결된다. 누구로부터 원조를 받느냐에 따라서 전쟁의 승패가 결정된다.
    • ‘도움'을 제공하는 근원은 다양할 수 있지만 가장 위대한 구원의 근원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시다.
      따라서 다윗도 본절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며 다시금 하나님에 대해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라고 부른다.

(2) 하나님께서 계속 그와 함께 사실 것을 구하고 있다.

"주는 이전에도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그러하오니, 내가 주께로 가지 않고 어디로 가겠습니까? 나를 버리지 말고 떠나지 마옵소서. 주의 능력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그렇게 되면 나는 힘이 없어질 것입니다. 주의 선하신 의지의  표적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그렇게 되면 나는 위로를 잃게 될  것입니다.”

(3) 거룩한 길잡이의 혜택을 구하고 있다(11절).

"여호와여 주의 길로 나를 가르치시고, 나로 하여금 내게 대한 주의 섭리의 의미를 깨닫게 하시고 분명히 알게 하소서. 그리고 의혹에 쌓여 있을 때는 언제나 나의 의무를 알게 하시어 내가 실수하지 않고 올바로 행할 수 있도록, 내가 주저함이 없이 확고하게 행할 수 있도록 해주시옵소서."

우리에게 우리 의무의 길을 가르치고 그것을 지키도록 해 주는 것은 수단이 아니라 솔직함(즉 매우 정직함)이다. 그는 "그의 원수로 인하여" 또는 (난외 대로) 그의 "관찰자"로 인하여"평탄한 길로"인도되기를 청하고 있다. 그의 대적들은 그를 칠 기회를 찾기 위해 그가 멈추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사울은 다윗을 주목했다(삼상 18:9). 이것은 그로 하여금 이렇게 기도하도록  촉구했다. "주여 나를 평탄한 길로 인도하소서. 그리하여 그들이 나를 책망할 만한 흠이나, 흠으로 보이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게 하소서."


💡 27:11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시고 내 원수를 생각하셔서 평탄한 길로 나를 인도하소서

‘주의 도’

  • 인생이 걸어야 할 합당한 삶의 노선인 ‘율법을 준행하는 삶’
  • 다윗은 본문에서 자신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 율법에 기록된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흠없이 살아가도록 도우실 것을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

내게 가르치시고
→ 다윗의 마음

  • 하나님의 말씀은
    • 인간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깨달을 수 있거나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를 가르치시고 그대로 살도록 이끄실 때에만 바르게 지킬 수 있다는 의미.
    • 인간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그 뜻을 수행할 수 있도록 능력을 베푸실 때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다윗은 본문에서와 같이 ‘나를 가르치시고'란 기도를 올리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복된 삶을 살 수 있도록 은혜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 어려움을 제거해 달라고 기도하기보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다윗의 신앙이 얼마나 뛰어난 것인지를 보여준다.
이는 다윗이 위기 상황을 올바로 파악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위기 앞에 직면할 때 위기 그 자체에만 몰두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위기를 타개하는 가장 현명한 길은

  • 하나님 말씀의 터 위에 바로 서서,
  • 하나님과 관계를 온전케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자를 하나님은 위기에서 건지실 뿐 아니라 어떤 악의 세력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도록 든든한 반석 위에 세우시는 것이다.


내 원수를 생각하셔서 평탄한 길로 나를 인도하소서

  • 아무 염려와 근심, 어려움이 없는 순탄한 길로 인도해 달라는 의미라기보다는
  • 원수들, 즉 자신에게서 고소할 거리를 찾아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자들에게 고소의 근거를 제공하지 않도록 의로운 길에서 벗어나지 않게 해달라는 의미.

오늘날에도 사단은

  • 본절에서 다윗을 파멸에 빠뜨리려 했던 원수들처럼 성도들에게서 고소할 거리를 찾기 위해 성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집요하게 죄와 탐욕의 미끼를 던져 성도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 처한 성도들은

  • 마땅히 다윗과 같이 ‘주의 길로 나를 가르처소서' 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 성도라 할지라도 사단에게 고소할 거리를 제공하게 된다.
  • 그리고 그 결과 그 자신이 파멸로 치닫게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게 된다.
  • 따라서 성도들은
    • 마지막 순간까지 ‘주의 길'을 따라가고자 하는 결단과 더불어
    •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4) 거룩한 보호의 혜택을 구하고 있다(12절).

"내 생명을 내 대적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여호와여, 그들이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게 하소서. 왜냐하면 그들은 내 생명을, 아닌 그보다 더한 것을 노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의 능력이 그들의 양심을 다스리지 않는 한 나는 그들을 방어할 힘이 없습니다. 위증자가 일어나 나를 치려함이니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나의 명성이나 재산을 빼앗는 것 이상을 노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악을 토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갈구하는 것은 피, 귀한 피 입니다."

여기에서 다윗은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 왜냐하면 거짓 증인들이 일어나서 그를 쳤고 그들은 악을 토하는 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악인의 손에는 넘겨졌을지라도 그들의 뜻에는 맡겨지지 않았다. 그들은 그의 높이 들리우심을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 27:12 내 생명을 내 대적에게 맡기지 마소서 위증자와 악을 토하는 자가 일어나 나를 치려 함이니이다

대적들의 탐욕적이고 사악한 욕망

  • 그들의 사악한 욕망은 다름아닌 다윗의 생명을 해하려는 것이다.
  • 그러나 이러한 욕망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이루어질 수 없다. 따라서 다윗은 대적들의 욕망이 이루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내 생명을 맡기지 마소서..

  • 다윗은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관자란 사실과 인간 각각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당면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인간적인 방도를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도우심을 간구하는 신앙적 대처를 하였던 것이다.

위증자와 악을 토하는 자가 일어나 나를 치려 함이니이다

  • ‘위증자’
    • 의미 : 의도적으로 누군가를 해하기 위해 거짓을 내뱉는 자들. 난폭함과 잔인함이 몸에 배어 있는 자들.
    • 특별히 앞선 ‘위증자' 란 표현을 감안할 때 이는 법정적인 상황을 염두에 둔 표현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는 이들 악인들이 다윗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온갖 거짓 증언을 할 뿐 아니라 치명적인 독설로써 다윗에 대한 증오심을 표출하였으며 폭력에 가까운 저주의 말을 그를 향해 내뱉은 것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본문에 언급된 의인에 대한 악인들의 비방과 중상 모략은 지옥의 병기고로부터 끄집어 낸 낡은 무기와도 같지만 그것은 대단한 위력을 발휘한다.

이러한 무기를 무차별로 휘두르는 것은 사단의 공격 방식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단은 비방하는 자요 거짓의 아비이다.

사단에게서 나오는 이러한 치명적인 공격으로부터 성도들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길은

  • 더욱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지켜 행하며, 하나님을 절대 의지함으로
  • 그분의 보호와 은혜 안으로 인도받는 것 외에는 없다. 

Ⅱ. 그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하나님께 의지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1. 모든 도움과 구조가 끊어졌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도와주시고 구조해 주시리라고 믿고 있다(10절).

"내 부모는 나를 버렸을 때, 내가 이 세상에서 큰 도움을 기대할 수 있는 나의 가장 가깝고 귀한 친구들이 죽거나 멀리 떨어져  있어서 내가 곤경에 처한 때에 도울 능력이 없거나, 또는 내게 불친절하며 관심을 두지 않고 나를 도우려 하지 않을 때, 내가 부모없는 불쌍한 고아처럼 어찌할 수 없을 때, 그때에 불쌍하게 유리하는 양이 보호받아 죽음에서 구해지는 것처럼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그는 그를 의지하는 자들에게 모든 도움이 끊어졌을 때, 그것이 주로 그의 영예와 그들의 위로를 위한 것일 때 그들을 도와주신다. 그에게서 "아비 없는 자들도"그에게서 "자비를 얻으리라." 버림받은 고아들은 거룩한 섭리의 특별하신 보호 아래 있어 왔고, 그것은 사람들이 예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그들을 위로해 주고 친구가 되어 주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세상 부모들보다도, 그들이 될 수 있는 것보다도 더 든든하고 좋은 친구이시다.


💡 27: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 본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사랑을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크고 헌신적이라 할 수 있는 부모의 사랑에 비교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변함없는 것인지를 부각시킨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라는 말은 → 문자적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 그것은 다윗이 실제로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단지 이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친밀한 관계에 놓여 있는 부모라 할지라도 한계가 있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에서 사용된 표현이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 이는 마치 부모의 돌봄이 절대적으로 펄요한 어린아이를 두고 떠나버리는 부모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 실제로 다윗의 생애 가운데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는 -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유난히 많은 배신과 공격을 당했다는 것이다.
    • 그가 사랑으로 정성껏 섬겼던 사울 왕과 아들 압살롬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 사랑하는 사람들의 배신과 버림은
    • 외적인 위협보다도 한 사람의 마음과 영혼에 씻을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긴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 그러나 다윗은 그같은 일을 당할 때마다 -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픔과 상처를 싸매어 주셨던 분으로 자신의 곁에 계셨음을 상기한다.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 원형 ‘모으다’ - 본문은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나룰 모으실 것이다'로 직역할 수 있다.
  •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 자신을 그분의 보살핌과 보호 가운데로 이끄심을 나타낸다.
    • 이는 마치 부모에게 버려져서 헐벗음과 굶주림 가운데 유기된 고아가 따뜻한 처소로 인도되어 평안히 쉬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인간적인 사랑을 초월한다.
    • 즉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지고 지순한 사랑으로 여겨지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 큰 것이다.
  • 이러한 하나님의 자에로우심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다윗은 절망적언 상황 속에서도 희망과 확신이 넘치는 기도를 올려 드리고 있는 것이다(1-6,10,13,14절).

믿었던 친구들, 심지어 사랑하는 가족으로부터 배신과 모멸을 당한다 해도 - 절망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어떤 순간에도 우러를 버리지 않고 돌보신다는 사실이다.
  •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이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사 49:15).

2. 합당한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볼 것이라고 믿고 있다(13절).

그는 "산 자의 땅에서 여호와의 은혜를 볼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면 그는 고통 속에서 "쓰러졌"을 것이다. 가장 훌륭한 성도들까지도 그들의 고통이 심하고 괴로울 때는 쓰러지기 쉬울 것이며, 그들의 영은 압도되고 몸과 마음은 지쳐버릴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때에는 믿음이 특효 있는 활력제가 된다. 그것은 그들이 고통 가운데에서 낙심하지 않도록 하고 위로가 끊겨 실망하는 일이 없도록 해 준다. 그리고 계속 소망을 갖고 기도하고 기다리게 해 주며, 하나님께 대해 선한 생각을 유지하고 스스로 편안한 즐거움을 갖도록 해 준다.

그러면 다윗이 쓰러지지 않도록 해 준 것은 무엇에 대한 믿음이었는가? 그것은 지금은 멀리 있는 것같이 보이는 "여호와의 은혜를 볼것"이라는 것이었다. 믿음으로 여호와의 은혜 가운데 행하는 자들은 합당한 때에 그 은혜를 보는 가운데 행하게 될 것이다. 그는 이것을 산 자의 땅에서 보기를 원하고 있다.

(1) 즉 이 세상에서 보기를 원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그는 고통을 극복하게 될 것이며, 그 속에서 파멸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산 자의 땅을 보게 되리라는 것은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리라는 것 못지 않게 그의 위로가 되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은혜로운 영혼에 대한 육체적 쾌락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2) 가나안의 땅, 그리고 생명의 지성소가 있었던 예루살렘에서 보기를 원하고 있다. 죄 가운데 죽어 있었던 이방 나라와 비교해 볼 때 이스라엘 땅은 "산 자의 땅"으로 불리운다는 것은 매우 합당할 것이다. 거기에서 하나님이 알려지셨으며, 다윗은 그 곳에서 그의 은혜를 보기를 바라고 있다(삼하 15:25, 26  참조).

(3) 또한 천국에서 보기를 원하고 있다. 이것은 진실로 산 자의 땅이라 불리울 수 있는 유일한 땅이다. 그곳에는 더 이상 죽음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땅은 죽은 자의 땅이다. 우리를 이 현재의 모든 재앙에서 질식하지 않도록 지켜 주는 데에는 영생에 대한 믿음의 소망, 그 영광에 대한 통찰, 그리고 그 즐거움에 대한 예상 이상의 것은 없다.


💡 27:13 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실히 믿었도다

다윗은 자신 앞에 직면해 있는 환경 때문에 낙심하지 않았고 그 사건과 환경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계획과 은혜를 바라보며 희망에 벅차 있었다.

바로 이것이 성숙한 믿음이다. 이러한 성숙한 믿음을 지닌 성도는 다윗과 같이 감격 속에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으며 어떤 시련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갈 것이다.


 

3. 그 동안에 그가 그의 고통을 참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하게 되리라는 것을 믿고 있다(14절).

그가 그것을 자기 자신에게 말하든 아니면 그의 친구들에게 말하든지 간에 그것은 모두 마찬가지며 그것이 그를 격려해 주고 있다.-즉 그가 네 마음을 강하게 하실 것이며 그 영을 부축하실 것이다. 그러면 그 영은 연약함을 뒷받침해 줄 것이다.


💡 27:14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수1:8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 다윗은 이 언약의 말씀을 상기하마 자기 스스로를 권고한다. 즉 다윗이 스스로를 독려하는 표현이지만 언약의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명령에 순중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 할 수 있다.
  • 따라서 본절에 언급된 다윗의 자기 권고의 내용 가운데는
    인간을 강하게 할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의 원천이 ⇒ 하나님의 말씀에 있으며
     그 말씀에 순종할 때 비로소 흔들림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1) 그 힘으로 하나님과 너의 의무를 철저히 지키라. 믿음과 기도로, 그리고 그의 뜻을 따르려는 겸손한 마음으로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내가 말하노니,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네가 무엇을 하든, 하나님 섬기기를 게을리하지 말라.

(2) 그 힘으로 큰 환난과 곤경 가운데에서 네 영을 지키라. "담대하라." 하나님을 의지하여 네 마음을 견고케 하고 네 마음을 그에게 두라. 그리하여 이 어느 것도 너를 요동케 하지 못하게 하라. 하나님을 바라는 자들은 담대해질 수가 있는 것이다.


결론

💡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본시는 다윗을 대적하여 일어나는 수많은 원수들의 공격과 그러한 공격으로 인해 겪게 되는 고통스러운 환경 속에서도 담대하게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선언하며, 구원과 승리에 대한 확신 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다윗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본시는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만나게 될 환난과 핍박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줌과 동시에 그러한 문제에 직면하였을 때 어떻게 믿음으로 승리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시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백성이 삶 가운데서 구가해야 할 승리는 현실 속에서 만나게 되는 고통스러운 문제를 바라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현실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를 믿음으로 바라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또한 현실의 위기나 문제 그 자체에 집착하기보다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에 착넘하고 자신의 의로움을 계속 견지해 나가야 한다.

이렇게 할 때, 현실에서 만나게 되는 대적의 공격이 아무리 극심하다고 할지라도 넉넉히 이겨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