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민수기 11, 시편 48, 이사야 1, 히브리서 9
묵상구절
83:1 <아삽의 시 곧 노래> 하나님이여 침묵하지 마소서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시고 조용하지 마소서
83:2 무릇 주의 원수들이 떠들며 주를 미워하는 자들이 머리를 들었나이다
83:3 그들이 주의 백성을 치려 하여 간계를 꾀하며 주께서 숨기신 자를 치려고 서로 의논하여
83:4 말하기를 가서 그들을 멸하여 다시 나라가 되지 못하게 하여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다시는 기억되지 못하게 하자 하나이다
83:5 그들이 한마음으로 의논하고 주를 대적하여 서로 동맹하니
83:6 곧 에돔의 장막과 이스마엘인과 모압과 하갈인이며
83:7 그발과 암몬과 아말렉이며 블레셋과 두로 사람이요
83:8 앗수르도 그들과 연합하여 롯 자손의 도움이 되었나이다 (셀라)
83:9 주는 미디안인에게 행하신 것 같이, 기손 시내에서 시스라와 야빈에게 행하신 것 같이 그들에게도 행하소서
83:10 그들은 엔돌에서 패망하여 땅에 거름이 되었나이다
83:11 그들의 귀인들이 오렙과 스엡 같게 하시며 그들의 모든 고관들은 세바와 살문나와 같게 하소서
83:12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목장을 우리의 소유로 취하자 하였나이다
83:13 나의 하나님이여 그들이 굴러가는 검불 같게 하시며 바람에 날리는 지푸라기 같게 하소서
83:14 삼림을 사르는 불과 산에 붙는 불길 같이
83:15 주의 광풍으로 그들을 쫓으시며 주의 폭풍으로 그들을 두렵게 하소서
83:16 여호와여 그들의 얼굴에 수치가 가득하게 하사 그들이 주의 이름을 찾게 하소서
83:17 그들로 수치를 당하여 영원히 놀라게 하시며 낭패와 멸망을 당하게 하사
83:18 여호와라 이름하신 주만 온 세계의 지존자로 알게 하소서
매튜헨리/옥스퍼드
- 이방 원수들의 음모 고발과 하나님의 광풍파 폭풍의 심판 간구 -
(저자: 아삽, 분류: 버탄시)
서론
💡 본시는 시편 제3권에서 다윗 시대의 3대 시둘의 모옴인 제73-83편까지 이어지는 일 악장 가운데 하나였던 아삽이나 그의 후손들의 시들 가운데 마지막 시입니다.
이러한이 성전 예배용으로 지었거나 편집하여 모은 본시는 이방 나라들이 연합하여 하나님의 선민의 나라를 공격하려 할 때에 대적들을 진멸시켜 주시기를 기원하는 저주시적 성격이 강한 비탄시입니다.
본시의 역사적 배경은 정확하게 단정지어 말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대체적으로 남유다 여호사밧 왕 재위시(B.C. 872-848년)에 모압과 암몬과 에돔이 연합하여 남유다를 침 공한 사건(B.C. 852년경, 대하 20장)을 역사적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대기의 기록에는 세 개 국가만이 연합하여 남유다를 침공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 반면, 본시에서는 열 개 국가 또는 족속이 연합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아마도 역대기 기자가 남유다의 침공에 직접적으로 가담한 나라만 기록한 것과 달리 본시의 저자는 남유다 침공에 직접 가담한 나라에 군사적인 지원을 하 거나 남유다 침공 옴모에 가담한 모든 나라와 족속들을 기록한 데서 비롯된 차이일 것 입니다. 한편 본시가 여호사밧 시대의 사건을 역사적 배경으로 한다던 본시의 저자는 다윗 시대의 아삽이 아니라 아삽 자손 가운데 한 사람일 것입니다.
1-4절
주의 백성을 쳐서 멸하려 하는 원수들의 간계를 하나님께 고발하며 하나님께 침묵하지 마시기를 간곡하게 호소하는 내용입니다.
5-12절
주의 백성을 쳐서 멸하는 음모에 연루된 원수들의 정체를 밝히며 하나님께서 과거 이스라엘의 원수에게 보응하신 것처럼 그들에게도 동일하게 보응하여 주실 것을 간구하는 내용입니다.
13-18절
이방 원수들을 광풍과 폭풍으로 심관하심으로 수치를 당하게 하고 여호와로 온 세계의 지존자임을 알게 하여주실 것을 간구하는 내용입니다.
●원수들의 대한 원망(시편 83:1-8)
하나님의 이스라엘은 지금 위험과 두려움과 큰 환란 속에 있었으나 그들의 기도는 "시 곧 노래라" 불리우고 있다. 왜냐하면 수금이 버드나무에 걸려있지 않을 때라도 시편을 노래하는 것은 시기에 적당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Ⅰ. 시편 기자는 여기에서 피해를 당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이 나타나시기를 청하고 있다(1절).
"하나님이여 침묵치마소서. 그리고 우리를 위해 우리에게 현저히 해를 끼치는 자들을 대적하여 심판하소서."
이처럼 여호사밧은 침입을 당했을 때(대하 20:11), "이제 저희가 우리에게 갚는 것을 보옵소서. 저희가 와서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주의 기업에서 우리를 쫓아내고자 하나이다"하고 기도했다. 때로 하나니은 그의 백성에게 가해진 부당한 처사를 묵인하시는 듯이 보인다. 그는 그것을 관찰하시지 않거나 그거에 관심이 없었던 자처럼 침묵하신다. 그는 그가 엄정한 중립 상태를 지키며, 그들로 하여금 끝까지 싸우도록 만드시는 것처럼 잠잠하신다. 그는 조용히 계시며 그의 백성의 원수들을 훼방하거나 반대하지 않으시며 "놀란 자처럼 또는 구원할 수 없는 강한 자처럼 무관심한 태도를 취하시는 것처럼 보인다. 그때에, 그는 여기에서처럼 우리로 하여금 그를 이렇게 청하도록 허락하신다. "하나님이여 침묵치 마소서. 주여 우리의 두려움에 대해 우리를 격려할 수 있는 말씀을 선지자들을 통해 우리에게 하소서"(그가 침입에 관련하여 행하셨던 것처럼. 대하 20:14 이하). "주여 주의 섭리로써 우리를 위해 말씀하시고 우리의 원수를 대적하여 말씀하소서. 우리를 건지시고 그들을 실망시킬 말씀을 하소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그가 행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말씀하시는 것과 행하시는 것이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 83:1 <아삽의 시 곧 노래> 하나님이여 침묵하지 마소서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시고 조용하지 마소서
- 시인은 상황에 대한 그 어떠한 설명도 없이 침묵을 중단해 주시기를 세 번 반복하여 호소함.
하나님이여(엘로힘)
본절 서두와 말미에서 각기 2회에 걸쳐 하나님을 부르고 있다. 한글 개역 성경은 본절에 나오는 두 번의 신명을 모두 ‘하나님이여’ 로 번역하였으나 원문을 보면 그 둘은 서로 다르다.
즉 원문에는 본절 서두에 창조주로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반영하는 ‘엘로힘'이란 신명이 사용된 반면 말미에는 ‘힘'을 의미하는 명사의 압축형으로써 ‘강한 자'(겔 32:21), ‘권능자'(29:1), ‘능력' (창 31:29)으로도 번역되며 하나님의 강하심을 반영하는 '엘'이란 신명이 사용되었다.
이렇듯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강하심을 나타내는 신명이 한 본문 내에서 번갈아 사용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강하심에 힘입어 임박한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인의 절박한 심정을 잘 보여준다.
침묵하지 마소서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시고 조용하지 마소서
- 원문을 통해 보면 ‘침묵’ ‘잠잠’ ‘조용’하지 마소서 - 세 표현의 의미가 어느정도 구별됨.
- ‘침묵하지 마소서’
- 시인이 이와 같은 강한 의미의 단어를 사용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마치 죽은 신인 양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음에 대한 답답함이 너무나 컸기 때문일 것이다. 즉 본절 상반절에서 언급되고 있는 침묵은 죽은 자가 외부의 작용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전반적인 하나님의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 ‘잠잠하지 마시고’
- 원형 : 주로 기도의 응답이 없는 것.
- 기도에 대한 무응답을 염두에 둔 표현.
- 본문에서 시인은 자신을 비롯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도하는데도 불구하고 귀를 막고 계시거나 못들은 척하지 마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 ‘조용하지 마소서’
- 이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며 하나님께서 아무런 도움도 주시지 않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즉 시인은 이러한 단어를 통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도와주실 것을 간구하는 것이다.
시인은 ‘엘로힘’, ‘엘’ 신명을 사용하고, 부정어 ‘알’로 시작되는 3개 문장을 병행. 3중 반복.
→ 하나님의 응답을 강력하면서도 간곡하게 요청하고 있다.
Ⅱ. 그는 여기에서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이웃 나라들의 강한 동맹에 대해 설명하면서 하나님께 그것을 꺾으시고 그 계획을 헛되이 되게 하실 것을 청하고 있다.
이제 여기에서 다음을 살펴보자.
1. 이 동맹은 누구를 치기 위해 결성되었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치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실상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것이었다. 이처럼 시편 기자는 그들이 하나님을 위하면, 하나님도 그가 그들을 위하신다는 사실을 나타내실 것이며 그렇게 되면 그들은 그들의 모든 원수들을 무시할 수 있게 되리라는 사실만큼은 의심치 않고서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들의 사유에 관심을 가지시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위하시면, 누가 그들을 대적할 수 있겠는가? "주여"그들은 말하고 있다. "그들은 주의 원수들이며 주를 미워하고 있습니다. "모든 악한 백성들은 하나님의 원수들이며("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은 하나님께 대적이 된다"), 특히 악한 핍박 자들이 그러하다. 그들은 신앙적으로 하나님을 숭배하는 자들을 미워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신앙과 그에 대한 숭배를 미워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즉 그들이 하나님과 싸우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에 대해 매우 분노하게 만들었던 일이었다. "저희가 주를 대적하여 서로 언약하나이다(5절)." 우리의 이권이 옹호되기만 한다면 우리는 더 참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 자신이 공격당할 때, 그것은 우리가 "주여 도우소서. 하나님이여 침묵치 마소서"하고 외쳐야 할 때이다. 그는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서로 언약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께 가깝고 귀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주의 장자, 주의 소득, 주의 기업의 분깃을 이처럼 대적하기 때문이다. 그는 진실로, 내 자손을 멸하고자 하는, 내 가문을 근절시키고 내 가산을 멸망시키고자 하는 나의 대항하여 싸우고 계신다고 말해질 수 있다. "주여" 시편 기자는 말하고 있다. "그들은 주의 원수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께서 숨기신 자를 치려고 모의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가 감추신 자들이다. 즉
(1) 은밀하게 감추신 자들이다. 그들의 생명은 "하나님 안에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어져 있다. 따라서 "세상은 저희를 알지 못한다. "만일 그 원수들이 그들을 알았다면, 이처럼 그들을 미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2) 안전하게 감추신 자들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은 그의 특별한 보호 아래 두시며 그의 손 오목한 곳에 숨기신다. 그러나 하나님과 그의 능력에, 그리고 그의 백성들을 안전케 하시겠다는 그의 약속에 도전하여 그들은 그 백성을 멸할 의논을 할 것이며, 그들을 "그 높은 위에서 떨어뜨리기를"(62:4), 그리고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택하신" 자(4:3)들을 희생시키기를 꾀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존하시고자 결심한 자들을 멸하기로 작정한다.
2. 이 모의는 어떻게 조종되고 있는가. 마귀가 그 밑바탕에 있다. 따라서 그것은
(1) 매우 열렬하고 과격하게 수행될 것이다.
"주의 원수가 훤화하나이다"(2절). "열방이 분노한다"(2:1). "이방인들이 분노한다"(계 11:18). 그들은 그들이 크게 비방하는 소리로써 기를 죽이고자 하는 그 백성들을 대하여 소란을 떤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침묵해서는 안 되는 이유로서 제시되어 있다. "원수들은 허풍을 떨며 많은 말을 합니다. 주여 저희로 모두 말하도록 내버려두지 마시고 주께서 분을 발하여 진노하소서"(2:5).
💡 83:2 무릇 주의 원수들이 떠들며 주를 미워하는 자들이 머리를 들었나이다
- 시인은 원수들이 요란하게 달려드는 것은 눈에 보이는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개입하셔야 된다고 간구하고 있다.
(2) 매우 자신만만하고 무례하게 수행될 것이다.
"그들이 머리를 들었나이다." 그들의 성공을 확신하는 가운데 그들은 마치 지존자를 능가하고 전능자를 위합할 수 없는 것처럼 득의만면하다.
(3) 매우 교묘하고 수단 좋게 수행될 것이다.
저희가 "주의 백성을 치려하여 간계를 꾀" 하였다(3절). 옛 뱀의 간교함이 그들의 처사 안에 나타나며 그들은 그것이 아무리 야비하고 아무리 악한 것일지라도, 그들의 목표를 획득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획책한다. 그들은 마치 무한하신 지혜자를 능가할 수 있는 것처럼 "살륙 죄에 깊이 빠져" 있다.
💡 83:3 그들이 주의 백성을 치려 하여 간계를 꾀하며 주께서 숨기신 자를 치려고 서로 의논하여
‘주의 백성’, ‘주께서 숨기신 자’
- ‘숨기신’ (‘차판’)
- 이 단어는 ‘하나님의 보물들’이란 의미로도 이해된다.
- 이러한 표현을 통해서 시인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특별하신 보호와 사랑을 받은 자들이며 하나님께서 ‘아주 귀중히 여기셔서 거룩하게 구별하시고 안전하게 보호하시는' (27:5; 31:21) 백성임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 시인은 주를 대적하는 원수들이 지금 이스라엘을 치려 하는데, 이스라엘은 곧 주의 백성이요 하나님께서 아끼시는 백성이므로 저들이 이스라엘을 치려 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라는 논리로 하나님께 도우심을 호소한다.
- 주변의 많은 나라들이 힘을 모으고 이스라엘을 치기 위하여 모색하고 있어서 이스라엘이 고립무원의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나내고, 그러한 모의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시인은 이스라엘을 도울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계시지 않음을 통감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aside>
(4) 만장일치로 수행된다. 그들이 서로 어떤 상충된 이권을 갖고 있든지 간에,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치기 위해 "간계를 꾀하며"(5절) 또 "사탄의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지는" 않는다. 이처럼 거룩하지 못한 전쟁을 밀고 나가기 위해 그들은 그들의 머리를 함께 두며, 그들의 나팔과 마음도 역시 함께 둔다. "원수도 교훈을 줄 수 있다." 교회의 원수들이 교회를 멸하기 위해 한 뜻으로 행하는가? 열왕들은 한 마음이 되어 적 그리스도에게 그들의 권세와 영예를 주는가? 교회의 친구들은 주의 세력을 돕기 위해 일심단결하지 않을 것인가? 헤롯과 빌라도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기 위해 친구가 된다면, 반드시 바울과 바나바, 바울과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에 합세하기 위해 친구가 될 것이다.
💡 83:4 말하기를 가서 그들을 멸하여 다시 나라가 되지 못하게 하여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다시는 기억되지 못하게 하자 하나이다
- 고대 사회에서 ‘이름' 은 단순히 호칭을 나타내는 의미를 넘어서 그 이름으로 불리는 존재의 본질이나 그 자신 전부를 나타낸다. 따라서 본문의 표현은 선민을 이 땅에서 영원히 없앨 뿐만 아니라 선민이 선민이 되게 하는 본질적 요소인 여호와 신앙까지도 뿌리뽑아 없애버리고자 하는 대적들의 열망이 그대로 담겨 있다. 즉 주변의 10개 동맹국둘이 힘을 모아 고림무원의 이스라엘을 향해 마치 성난 파도와 같은 맹렬한 기세로 덮쳐오는 와중에 그들이 드러내놓고 모의한 의도는 이스라엘을 단순히 겁주거나 박해하는 차원을 넘어서 존재 자체를 소멸시키는 데 있었던 것이다.
-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 시인을 포함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느꼈을 절박감과 황망함은 극에 달하였을 것이다. 그러한 절박함을 안고 시인은 지금 하나님을 바라보며 도움을 간구하는 것이다.
- 더 나아가 시인은 그들의 그러한 의도가 결국 이스라엘이 추구하는 여호와 신앙을 근절시키려 하는 것임을 지적하며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더더욱 이 일에 침묵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고하고 있는 것이다.
83:5 그들이 한마음으로 의논하고 주를 대적하여 서로 동맹하니
‘한마음으로 의논하고’
- 여기에는 단지 어떤 목적만을 두고 하나가 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나가 되었음을 나타내는 명사 ‘레브' 가 덧붙여져서 사용되고 있다.
- 이는 이미 그들 모두가 이스라엘을 끊어버리자는 동일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의논 자체도 아무런 걸림 없이 일사천리로 그 방향을 분명히 확정하였음을 보여준다.
- → 이러한 의논은 즉각 어떤 결과틀 도출하였는데 그것은 하반절에 잘 나타나고 있듯이 주를 대적하는 일을 위하여 언약을 체결한 것이다.
‘주를 대적하여 서로 동맹하니’
- 이를 통해 시인은 이들 열방의 연합과 도모가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임을 분명하게 표명한 것이다. 이스라엘을 끊어버리자는 저들의 공모는 결국 이스라엘을 공고히 세우는 여호와의 신앙을 근절시키려는 데 있으며 이는 결국 여호와를 대적하는 행위라 아니할 수 없다.
3. 이 모의에 들어있는 의도는 무엇인가.
그들은 기브온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동맹한 것처럼, 이렇게 바람직한 결탁으로써 그들 자신을 강하게 하기 위해 의논하지는 않았다. 만일 그랬었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지혜로운 일이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날개를 자르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그들의 새로운 점령지를 회복하고 승리의 팔의 성장을 저지시키기 위해, 그들과 이스라엘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힘이 엄청나게 자라나는 것을 막기 위해 의논한다. 그러나 이것은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계획하는 것은 이스라엘을 완전히 멸망시키고 근절시키는 것보다 결코 적은 일이 아니었다(4절). "저희가 가나안의 일곱 나라를 끊었던 것처럼, 가서 저희를 끊어 다시는 나라가 되지 못하게 하자. 저희로 뿌리나 가지를 남겨두지 못하게 하고 저희 나라로 완전히 황폐케 하여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다시는 기억되지 못하게 아니, 역사에 기록되지 못하게 하자." 왜냐하면 이스라엘과 함께 그들은 저희의 성경책을 멸하고 저희 모든 기록을 태워 버리려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이 여자의 후손에 대한 그 뱀의 후손의 적대감인데, 하나님의 교회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 또한 인간들 가운데 이러한 것이 신앙이 없게 되는 것이 많은 악인들의 은밀한 소망이다. 그들 자신의 마음에서 그것에 대한 지각을 추방해 버렸으므로, 그들은 온 땅에서 그것이 제거되는 것을, 그 모든 율법과 의문이 폐지되고, 그 모든 제자와 의무가 팽개쳐지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전하거나 고백하거나 실천하는 모든 사람들이 끊어지는 것을 기꺼이 보려한다. 그것이 그들의 능력에 미치는 일이라면, 그들은 그렇게 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자가 저희를 웃으실 것이다."
4. 이 의논에 끼어든 자들은 누구인가. 이 동맹에 들어온 나라들이 여기에 언급되어 있다(6-8절).
에돔인과 이스라엘인은 모두 아브라함의 혈통을 이은 자들인데도, 그 선두에 서 있다. 왜냐하면 교회에서 나간 배신자들이 교회의 가장 가혹하고 해로운 원수임을 쥴리안(Julian)은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들이 이스라엘과 혈연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으나.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동맹에 가담했다. 핍박하는 영 이외에는 그것을 끊을 만큼 강한 자연의 굴레는 없다. "형제가 형제를 죽는 데에 내어 줄 것이다."
모압과 암몬은 의로운 롯의 자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근친 혼인을 할뿐만 아니라 타락한 족속이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는 매우 성가시게 구는 긴 가시었다. 다윗 시대에 이스라엘과 굳게 동맹했던 두로의 거민들이 어떻게 그 원수들 가운데 들어오게 되었는지 나는 모르겠다. 그러나 "앗수르도 저희와 연합하는" 것은 또는(단어 그대로) "롯 자손의 팔"이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교회의 원수들이 항상 얼마나 많았었는가를 보라. "여호와여, 교회를 괴롭히는 자들이 어찌 많아지는지요!" 하나님의 산업은 무늬 있는 매와도 같았다. 모든 "매들이 그에 에워싸고" 있으며(렘 12:9), 그것은 세상과 지옥의 결합된 세력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서 교회를 보존시키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높이 드러낸다.
💡 83:6 곧 에돔의 장막과 이스마엘인과 모압과 하갈인이며
83:7 그발과 암몬과 아말렉이며 블레셋과 두로 사람이요
83:8 앗수르도 그들과 연합하여 롯 자손의 도움이 되었나이다 (셀라)
6-8절까지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언약을 체결한 동맹국들의 목록을 나열한다.
- 이들 모두는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사방에 산재해 있었다. 따라서 여기서 시인이 이들 동맹국들을 나열한 데에는 이들 대적들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그들의 수효가 얼마나 중대한지를 묘사할 뿐만 아니라 사방에서 이스라엘을 향해 조여드는 이들 적대국으로 인해 이스라엘이 느끼는 심각한 위기감을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 역시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언적인 저주(시편 83:9-18)
시편 기자는 여기에서, 교회의 이름으로, 교회를 치기 위해 공모한 무리들의 멸망을 기도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것을 예고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될 수 있기를 바라는 기도는 그것이 그렇게 되리라는 예언에 이르고 있으며, 이 예언은 복음의 교회의 모든 원수들에게 미치고 있다. 그리스도의 나라를 반대하는 자들이 누구든 지간에, 그들은 그들의 운명을 읽을 수 있다. 이 기도는 간단히 말해서 이스라엘을 치려고 의논한 이 원수들이 그들의 모든 시도에 좌절 당하기를, 그들이 그들 자신의 멸망을 증명할 수 있기를, 그리하여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보존되고 영구케 될 수 있기를 발하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사실은 여기에서
Ⅰ. 몇 가지 정례로서 예증되어 있다.
이전에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대적했던 다른 사람들의 파멸로 하여금 그들의 형벌이 되게 하자. 이전의 연합이 패배하였던 일은 하나님께 대한 기도 속에 탄원 될 수 있으며 우리의 믿음과 소망을 위한 격려로서 활용될 수 있다. 하나님은 지금도 옛날과 다름없으시다. 그의 백성에게 한결같으시며 그와 그들의 원수들을 대적하는 데에 한결같으시다. 그에게는 변함이 없다.
1.그는 그들의 군대가 옛 원수들의 군대처럼 멸망 다하기를 기도하고 있다(9,10절).
"주는 미디안 인에게 행하신 것같이 하소서. "저희로 저희 자신의 두려움으로 인해 패주하게 하소서. 미디안 인들도 300명보다 많지 않은 기드온의 군사들에 의해 그렇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시스라의 지휘 아래 있었던 군대에게 행하셨던 것처럼(시스라는 가나안 왕 야빈의 군대장관이었다), 저희에게도 행하소서. 하나님은 그들을 엔돌 가까이에 있었던 기존 강가에서 패하게 하셨던 것이다(삿 4:15). "그들은 땅에 거름이 되었나이다. "그들의 시체는 땅을 기름지게 하기 위해 쌓아놓은, 또는 펼쳐 놓은 쓰레기처럼 던져졌다. 그들은 적지만, 바락의 승리를 거두는 군대에 의해 티끌처럼 짓밟혔다. 그리고 이것은 여기에서 적합한 전례가 되었다. 왜냐하면, 드보라는 그것이 생생했던 때에, 그렇게 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주의 대적은 다 망하게 하소서." 즉 그렇게 그들은 망할 것이다.
💡 83:9 주는 미디안인에게 행하신 것 같이, 기손 시내에서 시스라와 야빈에게 행하신 것 같이 그들에게도 행하소서
‘시스라와 야빈’
- 각각 사사기에 소개된 가나안 북부에 위치한 하솔의 군대 장관과 왕으로서 과거 드보라와 바락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 앞에 패망한 이들이다(삿 4.5장). 이들의 이야기는 앞서 나온 기드온의 승리와 더불어 이스라엘 역사에서 거둔 가장 위대한 승리 가운데 하나였을 뿐만 아니라 시인이 이미 ‘아세'란 표현에서 암시적으로 나타낸 것과 같이 하나님의 개입과 도우심으로 이루어진 기적적인 승리였다.
- 특별히 본절에 나오는 기손 시내는 시스라의 군대들이 패퇴하기 시작한 곳으로 유서가 깊은 곳이었다(삿5:20, 21).
- 이처럼 시인은 자신의 눈앞에 파죽지세의 기세로 힘을 모아 달려드는 대적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도움으로 승리했던 과거의 생생한 역사를 상기하고 있다. 아울러 그는 과거에 이스라엘을 침노하고 괴롭게 했던 대적둘에게 행하신 일을 지금 한가지로 연합하여 당신의 백성들을 위협하고 공격하는 적대국들에게도 행하실 것을 구한다.
- 이러한 간구에는 현재 이스라엘 자손이 처한 난국은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도움과 개입으로만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이 내포되어 있다.
- 삶이 위기에 처하였을 때 이처럼 과거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에게 베푸실 구원을 돌아보고 묵상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위기를 이길 수 있는 용기는 당신의 백성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전능하심에 대한 신뢰에서 나오며, 이러한 신뢰는 과거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원 역사의 묵상을 통하여 커지기 때문이다.
83:10 그들은 엔돌에서 패망하여 땅에 거름이 되었나이다
- 시인이 ‘엔돌’이라는 구체적인 지명을 거명하는 것은 과거 있었던 승리의 사건에 대한 역사성을 보다 선명하게 나타내는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바로 그곳에서 행하신 일을 지금도 해주시기를 강조하는 의미를 갖는다.
2. 그는 그들의 지도자들이 이전처럼 멸망되기를 기도하고 있다. 평민들은, 그들의 방백들이 그들을 선동하지만 않았다면, 그처럼 사악하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특별히 그 방백들을 대적하는 기도가 나오고 있다. 다음을 살펴보자.
(1)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그들의 앙심은 어떤 것이었는가. 그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목장을"(단어 그대로), 하나님의 "즐거워하던 곳을 우리 소유로 취하자"하고 말했다(12절).
이것을 우리는 즐거운 땅이었고 임마누엘 땅이었던 가나안 땅으로, 또는 진정 하나님의 즐거워하던 곳이었던 성전으로(사 64:11), 또는 하몬드박사(Dr. Hammond)의 추측대로, 가축에 물건을 싣고 장사한 이 아라비아 사람들이 특별히 찾아다녔던 그 즐거운 목장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방백들과 귀족들은 이 전쟁으로 그들 자신을 부요케 할 목적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군대는, 그들의 탐심과 야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땅의 거름이 되어야 했다.
(2) 그들의 분깃은 어떠한 것이 되어야 한다.
그들은 "오렙과 스엡"(그들의 군대가 패주했을 때, 도망하는 중에 에돔 사람들에게 잡히어 살해당한 미디안의 두 방백 삿 7:25) "같게" 될 것이며, 기드온 자신이 죽인 "세바와 살문나(삿 8:21)와 같게"될 것이다. "우리의 이 원수들로 하여금, 그들이 그때 정복자들에게 그렇게 되었던 것과 같이, 우리에게 쉽게 먹이가 되게 하소서. "우리는 하나님께 지시를 내릴 수는 없으나, 그가 우리 열조의 시대의 그의 교회의 원수들에게 행하셨던 것처럼, 우리 시대의 그 원수들을 다루시기를 기도할 수 있다.
💡 83:11 그들의 귀인들이 오렙과 스엡 같게 하시며 그들의 모든 고관들은 세바와 살문나와 같게 하소서
앞선 10절을 야빈과 시스라에 대한 회상으로 마무리지은 시인은 본절에서 9절에서 언급한 바 있는 기드온이 미디안 군대를 물리친 과거 사건을 회고하면서 지금도 그 때처럼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진멸의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이 오히려 그 때와 같은 큰 구원의 승리를 얻게 해달라고 기원하고 있다.
이처럼 9~11절에서 시인이 미디안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하여 미디안에 대한 언급으로 끝나고 그 사이에 시스라와 야빈에 대한 기록을 삽입하는 것은 미디안에 보다 큰 강조점이 있으며 시스라와 야빈은 이에 더하여 보충적으로 언급한 것임을 보여준다.
특히 이 부분에 있어서 시인이 미디안에 대한 사건을 분리하여 앞뒤에 배치시킨 것은 그 사건에 독자들의 보다 많은 시선을 모으기 위해서일 것이다.
‘모든 고관들’
- 본절은 왕이든 귀족이든 가릴 것 없이 모두 과거에 오렙과 스엡, 그리고 세바와 살문나가 맞이했던 것과 같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해달라는 간구이다.
- 즉 시인은 민족 멸절의 위기 앞에서 두려움에 싸여 가까스로 생명을 건져주시기만을 간청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강권적인 개입으로 저들의 모든 지도자들까지 낱낱이 멸절시키는 대승을 거두게 해달라는 기원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 83:12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목장을 우리의 소유로 취하자 하였나이다
원수들의 본절과 같은 말은 단순히 그들이 이스라엘을 침공하고 위험하는 것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때부터 약속하신 바이며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영구히 주시리라 하였던 이스라엘의 기업 즉 가나안 땅 자체를 탐내고 었었옴을 보여주는 것이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문제에 전격적으로 개입하셔야 하는 이유와 당위성을 바로 여기에서 찾고 있다.
즉 본절에서 시인은 가나안 땅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와 계획에 따라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하나님 자신의 땅이므로 하나님께서 어 땅을 지켜주실 이유와 의무 또한 가지고 계신다고 말씀드리고 있는 것이다.
Ⅱ. 그는 그것을 몇 가지 비유로서 예증하고 다음과 같은 것을 기도하고 있다.
1.하나님께서 "저희로 굴러가는 검불 같게" 하시기를(13절), 저희로 끊임없이 유동하게 하며 불안해하고 안정되지 못하게 하며 그들의 모든 계획과 결심 속에서 혼란을 일으키게 하시기를, 그들이 쉽사리 그리고 속히 그들의 멸망으로 굴러가게 하시기를 기도하고 있다. 또는 일부의 견해대로 저희가 그 당시 타작에 사용되었던 바퀴에 의해 낟알이 깨지거나 으깨어지듯이 그들이 깨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이처럼, "지혜로운 왕이 악인을 키질할"때, 그가 "타락하는 바퀴로 그 위에 굴린다"고 일컬어진다(잠 20:26).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은 마음을 견고케 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대적하며 싸우는 자들은 바퀴처럼 고정되어 있지 않다.
💡 83:13 나의 하나님이여 그들이 굴러가는 검불 같게 하시며 바람에 날리는 지푸라기 같게 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 ‘나의 하나님이여'에 해당하는 ‘엘로하이' 로 시작한다.
- 구약 시대 신앙 공동체의 구성원들인 선민들 각각에게 있어서 선민 집단 전체와 개별적 구성원은 별개가 아니라 하나의 공동체라는 깊은 유대감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여기서 ‘나'는 한 개체로서의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한 일원으로서의 자신을 의미한다.
- 아울러 시인은 지금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므로 본문의 ‘나'는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중보하는 자라는 의미도 함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이를 감안할 때 ‘나의 하나님이여' 란 표현은 일차적으로 하나님과 시인 자신을 묶는 것이지만 그가 속한 선민 공동체와 하나님 사이를 묶는 표현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러한 표현에는 하나님께서 자신과 선민 공동체의 하나님이므로 선민 공동체를 위하여 드리는 기도를 반드시 들어주셔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들이 굴러가는 검불 같게 하시며
- 이러한 표현을 통해 시인은 원수들로 하여금 휘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중심 없이 이리저리 휩쓸려 버리는 검불이나 초개같이 무가치하고 허무한 운명을 맞게 해달라는 간구를 올리는 것.
2.그들이 바람에 날리는 초개나 겨같이 쫓겨나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다.
"바퀴는 끊임없이 구르지만 그 굴대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로 바람에 급히 불려가나 아무도 그것을 구하려 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가벼운 것처럼 고정되어 있지 않게 하소서"(1:4). 이처럼 "악인은 그 악으로 인해 몰락하고, 징계를 받아 세상에서 멸절되리라."
3.그들이 삼림을 사르는 불과 같이 또는 상에 있는 덤불과 가시, 고사리나무와 가시금작나무에 붙는 화염같이 소멸되기를 기도하고 있다(14절).
초개가 바람에 불려갈 때, 그것은 결국 어떤 상을 아래에서, 어떤 도랑에서 쉴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들이 초개처럼 불려갈 뿐만 아니라 초개처럼 불살라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악인의 마지막이(히 6:8), 특히 하나님의 교회의 모든 원수들의 마지막이 될 것이다. 이 비유에 대한 적용을 우리는 볼 수 있다(15절). "주의 광풍으로 저희를 쫒으시며, "저희를 완전한 멸망으로 쫒으시며, "주의 폭풍으로 저희를 두렵게 하소서. "죄인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되는가를 보라. 하나님의 진노의 폭풍은 그들 마음에 두려움을 일으키므로 그들은 완전히 비참하게 된다. 하나님은 그의 공의에 도전한 가장 교만하고 가장 대담한 죄인을 다루실 수 있으며, 그로 하여금 메뚜기처럼 두려워하게 만드실 수 있다.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는 것은 마귀의 고문이다.
💡 83:14 삼림을 사르는 불과 산에 붙는 불길 같이
- 시인은 작은 숲을 태우는 산불에서 시작하여 큰 산림을 삼키는 대형 산불까지 포괄하는 표현을 사용하여 점층적으로 고조되는 하나님의 진노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사 9:18,19; 겔 20:47).
- 이처럼 숲과 삼림 전체를 살라 없애는 불은 그야말로 공포스러운 것 , 두려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표현 역시도 이스라엘을 혐공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두렵게 하는 이방인들의 위협적인 공격과 그들의 공격을 능히 파하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염두에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 즉 시인은 현재의 위기와 이방인들의 공격의 수위, 그들이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들인지를 파악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공격을 능히 파하시고 그들을 공포와 두려움에 내던지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던 것이다. 이처럼 시인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기에 그 믿음에 근거해 본절과 같은 간구를 올릴 수 있었다.
83:15 주의 광풍으로 그들을 쫓으시며 주의 폭풍으로 그들을 두렵게 하소서
Ⅲ. 그는 저들의 낭패의 그 좋은 결과로써 예증하고 있다(16-18절).
그는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두려움으로 채우신 후 수치로 그들의 얼굴에 가득케 하시어 그들의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그들의 적개심을 부끄러워하도록(사 26:11), 전능하심 자체와 그들의 참된 유익을 대적하여 행하는 그들의 어리석음을 부끄러워하도록 만드시기를 기도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수치스럽게 하기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했다. 그러나 그 치욕은 결국 그들 자신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 앞선 13-15절에서 시인은 생생한 수사학적 기교를 사용하여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이방 원수들의 몰락과 패주를 간구하였다.
이제 본시 전체를 마무리하는 본절 이하 18절까지에서 시인은 이방 원수들이 단순히 몰락하고 패주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당한 수치의 극심함으로 인햅ㅈ 여호와를 찾을 뿐 아니라 이 일로 인헤 온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높으심과 위대하심이 널리 전파되기를 바라는 간구로 본시를 끝맺고 있다. 즉 본시의 마지막 단락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압제하던 대적들과 모든 열방이 하나님을 인정하는 이상적인 결과가 도래하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시인은 먼저 본절에서 비교적 간략하게 요약하여 간구하고 17, 18절에서 다시 동일한 내용을 반복하는 듯하면서도 좀더 심화된 간구를 드리고 있다.
1.이러한 수치를 느끼기 시작하는 것은 그들이 개심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여호와여 저희의 시도가 깨어지고 낭패케 되어 저희로 수치를 당하게 하소서. 그들을 정지시키시어 그들이 잠시 여유와 이성을 되찾아 그들이 지금 싸우고 있는 상대방이 누구인가 하는 것과 그들이 그에게 얼마나 상대가 안 되는 적수인가를 생각할 수 있게 하소서. 그리하여 그들이 그들 자신을 낮추고 복종시키며 평화의 상태를 원하게 하소서. 그들로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게 하소서. 그러면 아마도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주의 이름을 찾게 만들 것입니다. "우리의 원수들과 핍박 자들을 위해 우리가 하나님께 간곡히 원하고 청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회개케 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위해 그들의 굴욕을 원해야 한다. 즉, 그들이 개심으로 향해 한 단계 오를 수 있게 하는 목적 이외에는 그들이 수치 당하는 것을 원해서는 안 된다.
💡 83:16 여호와여 그들의 얼굴에 수치가 가득하게 하사 그들이 주의 이름을 찾게 하소서
시인의 열망
- 시인은 여기에서 원수들까지도 하나님께 그 이름의 영광을 구하게 되리라는 열망을 품고 있으며 그러한 미래를 기원하고 있다.
지금까지 시인은 하나님의 창조주되심과 전능하심을 강조하는 ‘엘로힘’이란 신명을 사용하여 왔다. 즉 지금까지 시인은 10개 동맹국이 위협하는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주의 백성을 치려는 원수들의 궤계를 꺾고 그들에게 패배를 안겨주실 분은 천지를 창조하는 무한하신 능력을 지니신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며 바로 이러한 면모로 하나님께서 임하여 주실 것을 요청한 것이다.
그러나 대적들이 회개하며 하나님을 인정하게 되기를 간구하는 본절의 문맥에서는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을 신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의 면모룰 강조하는 ‘여호와’ 즉 ‘예흐와’ 란 신명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지금 시인이 누구든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구하면 만날 것이라는(신 4:29) 하나님의 언약을 신뢰하고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에 의지하여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 83:17 그들로 수치를 당하여 영원히 놀라게 하시며 낭패와 멸망을 당하게 하사
- 시인은 원수들이 전쟁에서 전혀 예기치 못한 패배를 당케 해주실 것을 간구한다.
- 저들의 패배는 말 그대로 수치와 낭패다. 저들이 힘을 모아 이스라엘을 치러 올 때에는 그 교만한 기세가 하늘을 찔렀으나, 이제 하나님의 심판으로 패주하는 저들의 모습은 너무도 처참하고 부끄러운 것이었다.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이런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
2.만일 그것이 그들의 개심을 위한 방법이 되지 못했다면, 그것이 완전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영예에 크게 이바지할 것이다. 만일 그들이 부끄러움을 느끼고 회개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들로 낭패와 멸망을 당케 하소서. 그들이 괴로워하면서 돌아선다면 그것은 곧 그들의 모든 고통을 행복하게 해결시켜 줄 것이지만 그들이 그렇게 하려 하지 않는다면, "저희로 영원히 놀라게 하시며"결코 평안을 얻지 못하게 하소서. 만일 그들 자신이 "여호와 (이 말은 입에 오르내려서는 안되는 이름은 아닐지라도 말로 할 수 없는 이름이다)라 이름하신 주만 온 세계의 지존자"이시라는 것을 알고 시인하려 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그것을 알고 시인하도록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될 것이다(18절). 하나님과 그의 교회의 원수들의 대한 하나님의 승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명백히 증명해 줄 것이다.
(1) 그는 여호와라는 이름대로 스스로 있으면서 스스로 충족한, 즉 그 자신 안에 모든 능력과 완전함을 지니신 자이시다.
(2) 그는 지존하신 하나님, 만유의 주재, 모든 신들 위에 계시며, 열왕들 위에 계시고, 스스로를 들어올리면서 높은 체하는 모든 사람들 위에 계시는 자이시다.
(3) 그는 이스라엘 땅에서뿐만 아니라, 온 "세계"에서도, 즉 그를 모르거나 시인하지 않는 세상의 열방들에게도 그러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나라는 모든 것을 다스리기 때문이다. 이것은 위대하면서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진리이지만, 사람들은 거의 그것을 알려하거나 믿으려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는 어떤 사람들의 멸망이 다른 사람을 회개케 할 수 있는 것이 되기를 기도하고 있다. 위대한 날에, 하나님의 모든 원수들의 최종적인 멸망은 천사들과 사람들 앞에서 이것을 충분히 증명할 것이며 그때에 죄인들이 받는 영원한 수치와 경멸은(단 12:2), 복수를 담당하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영예와 찬미에 이바지할 것이다.
💡 83:18 여호와라 이름하신 주만 온 세계의 지존자로 알게 하소서
이 문장에는 동사나 전처사 등이 없어 번역이 곤란하기는 하나 원문의 뉘앙스를 살려 굳이 번역하자면 ‘당신의 이름이 여호와인 당신 (NIV, you, whose name is the Lord)’ 이 된다.
생략해도 전체적인 의미 전달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단어들을 굳어 장황하게 나열한 것은 일차적으로 온 세계의 유일한 지존자가 바로 자신이 간구를 드러는 ‘당신’ 이란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더 나아가서 이러한 ‘당신'은
- ‘여호와’ 란 이름에 걸맞게 당신의 백성인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에 신실하셔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대적의 공격으로부터 이기도록 지켜주시는 분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즉 시인은 본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하나님으로 하여금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을 보호하셔서 원수들을 패주케 함으로 인하여 모든 세상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지존자이심을 드러내시기를 간곡하게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
💡 이상 시편에서 12희 나오는 아삽의 시 가운데 마지막 시인 본시는 수많은 대적들에게 둘러싸인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지어진 비탄시이다.
여기서 시인은 10개국의 대적들이 동맹을 맺고 이스라엘을 치려는 순간에도 침묵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현실을 탄식하며, 어제 침묵을 깨시고 이방 원수들을 심판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고 있다.
이러한 본시에는 이스라엘을 치려는 대적들을 단지 이스라엘의 원수로만 파악하지 않고 하나님의 원수로 파악한 하나님 중심적인 시인의 인식과 하나님만이 이들을 심판하실 수 있다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대한 시인의 신앙이 돋보인다.
뿐만 아니라 적의감에 가득 차 이방 원수의 패망만을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 역시 주 여호와를 인정하기를 간구하는 시인의 태도에서 성숙한 신앙인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믿는 자라도 삼키려는 사단의 세력과 끊임없이 영적 전투를 벌이는 오늘날 성도에게도 하나님만을 의지하면 승리를 구가할 수 있다는 굳은 신념을 준다. 이러한 내용에 더해 비록 지금은 사단의 하수인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원수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하나님의 권능과 위엄 앞에 굴복하고 하나님을 인정하게 될 날이 오도록 기도해야 함을 교훈한다(딤후 2:2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