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6월 10일 월요일 묵상구절 시편 119:17-32 <다윗의 시(2)>

Jeehyun 2024. 6. 10. 23:39

맥체인성경읽기

신명기 15, 시편 102, 이사야 42, 요한계시록 12

묵상구절

- 제3연: 규례를 사모하는 자로서 주의 깨우쳐 주심과 계명을 지키는 자로서 주의 보호 간구 (17-24절)

119:17 주의 종을 후대하여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말씀을 지키리이다

119:18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119:19 나는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사오니 주의 계명들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119:20 주의 규례들을 항상 사모함으로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

119:21 교만하여 저주를 받으며 주의 계명들에서 떠나는 자들을 주께서 꾸짖으셨나이다

119:22 내가 주의 교훈들을 지켰사오니 비방과 멸시를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119:23 고관들도 앉아서 나를 비방하였사오나 주의 종은 주의 율례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렸나이다

119:24 주의 증거들은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충고자니이다

- 제4연: 영혼이 눌려 녹는 중에 주의 말씀에 약속된 소성케 하시는 은혜 간구 (25-32절)

119:25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119:26 내가 나의 행위를 아뢰매 주께서 내게 응답하셨사오니 주의 율례들을 내게 가르치소서

119:27 나에게 주의 법도들의 길을 깨닫게 하여 주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기이한 일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이다

119:28 나의 영혼이 눌림으로 말미암아 녹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세우소서

119:29 거짓 행위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고 주의 법을 내게 은혜로이 베푸소서

119:30 내가 성실한 길을 택하고 주의 규례들을 내 앞에 두었나이다

119:31 내가 주의 증거들에 매달렸사오니 여호와여 내가 수치를 당하지 말게 하소서

119:32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면 내가 주의 계명들의 길로 달려가리이다


매튜헨리/옥스퍼드

서론

💡 앞선 1-8절 단락과 9-16절 단락에서는 인생의 복과 행실의 기준인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서언의 사모와 순복의 열정을 피력하였다.

이에 이어지는 본절 이하 48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가 말씀에 의지하여 올리는 간구들이 소개된다.

17-24절

그 가운데 17절에서 24절 단락은 각절이 ‘끼멜’ 로 시작하는 제3연이다.

여기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규례를 사모하는 자로서 주의 깨우쳐 주심과 계명을 지키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간구한다.

즉 시인은

  • 자신이 고단한 나그네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19절) 생명의 위협마저 느끼는 큰 고난에 봉착하여 있음을 (17, 22, 23절) 표현하면서,
  •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하여 주실 것을 호소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구원의 호소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되어 표현된다.

→ 즉 고난을 극복해야 하는 이유, 고난을 어기게 하는 힘과 근거 등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되어 진술된다.

  • 시인은 큰 위기에 빠져 있었지만,
  • 그것으로 인하여 심리적인 공황 상태에 빠지거나 위기에 압도되지 않고,
  •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간절히 붙잡고 그 말씀에 대한 더욱 뜨거운 열정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본연에서 간구의 표헌으로 사용되고 있는 네 개의 명령형 동사 중

  • 둘만이 구원에의 호소이며,
  • 나머지 둘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직접적 간구라는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시인은 큰 고난 가운데에 었으면서도 자신의 마옴이 상하게 된 것은

→ 고난으로 인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열정으로 말미암은 것으로 고백한다(20절).

즉 고난 가운데 있는 시인에게 가장 큰 관심은

  • 고난에서의 구원이 아니라
  • 하나님의 말씀 자체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연은 구원을 간구하는 탄원시적언 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앞선 두 연 못지않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잘 드러내는 연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관대하심(시편 119:17)

1.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의 생명을 하나님의 자비에 맡기라는 것을 배우고 있다.

다윗은 "주의 종을 후대하여 살게 하소서"하고 기도한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우리에게 이러한 삶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관대하심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리고 생명을 지속시키며 모든 부양물을 주고 그 위로를 얻게 하는 것도 같이 관대함이다. 만일 이러한 것들이 보류된다면 우리는 죽게 되거나 그의 유사하게 되고 우리의 생명은 몹시 상하여 지쳐버리게 될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엄하게 정의로 대하신다면 우리는 죽게 된다. 아니 우리는 멸망하고 우리 모두가 멸망하게 될 것이다. 만일 이렇게 박탈당한 생명이 보존되고 연장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고 그의 자비를 따라서 우리에게 관대하게 대하시기 때문인 것이다. 가장 가치있는 삶의 지속은 하나님의 관대하심에 달려 있으며, 우리는 그 관대하심에 끊임없이 의존해야 할 것이다.

2. 그러므로 우리의 일생을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 바쳐야 한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그러므로" 인생은 선택된 자비이기 때문에, 그것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복종할 기회이며 세상이 그를 영화롭게 하는 자가 거의 없어도 그 인생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계기를 갖게 된다. 다윗은 이것을 그의 안중에 두고 있다. "살게 하소서."

부자가 되어 살고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말씀을 지키리이다. 그것을 내 자신에게 오고 오는 자들에게도 전수하리이다. 그리고 내가 오래 살면 살수록 더욱 더 잘 지키리이다.


💡 119:17 주의 종을 후대하여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말씀을 지키리이다

시인이 자신을 칭하는 호칭 = ‘주의 종’

  • 이는 자신이
    • 하나님의 소유된 자이며,
    •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여 사는 자임과 동시에,
    • 주인이신 하나님의 보호와 공급을 필요로 하는 자임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자신에 대한 구원의 호소를 보다 힘힘었게 하고 었다

‘후대하여’

  • 구원을 간구하는 의미.

‘살게 하소서’

  •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없으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 구원을 호소하는 간구.

'그리하시면 주의 말씀을 지키리이다'

  • ‘그리하시면’
    • 서원의 성격이라기 보다는 기원의 의미.
  • ‘주의 말씀을 지키리이다’
    • 시인의 말씀 중심의 삶을 드러내 주는 표현으로서
      자신의 생명이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기 위하여 있다는 의미
    • 시인은 위기 가운데에서도 자신의 삶의 유일한 목적이
      ⇒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감에 있음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으며 (Calvin), 그러한 의미에서 자신의 생명의 구원을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 ‘주의 말씀을’
    • ‘당신의 종’ 과 긴밀한 관계가 있는 표현.
    • '당신의 종' 곧 그가 하나님의 종됨을 확증하는 것이
      • 바로 ‘당신의 말씀' 을 준행하느냐 준행하지 않느냐에 달려 있음을 추정케 헤준다. 

●하나님의 기이한 것을 간구함(시편 119:18)


 💡 119:18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1. 여기에서 하나님의 "법" 속에 있는 "기이한 것"을 관찰해 보자.

매우 놀랍고 예기치 않았던 일, 그러나 높이 평가되고 가치있는 것이요, 오랫 동안 지혜로운 자에게는 감추어져 왔으나," 이제 "유아에게도 계시된" 그것을 우리는 모두 보고 싶어하고 있다. 복음에는 물론이요, 율법 안에 놀라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이다. 그의 이름은 "기묘한 자"이다. 천사들도 보기를 원했던(벧전 1:12) 것이니, 우리가 그렇게 간절히 보고 싶어하더라도 당연하다.


 💡 ‘기이한 것’

  • 의미
    •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놀라운 일들, 이적,
    • 인간의 이해를 벗어나는 놀라운 자비,
    • 깨닫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스러운 일들.
    ⇒ 즉 이는 말씀만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들의 역사에 친히 개입하셔서 놀라운 이적을 행하시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 그러나 본문에서는 ‘주의 법'이란 표현과 함께 쓰여
    •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경이로운 영적 진리를 나타낸다.

원문의 뉘앙스를 살려 본문을 다시 번역하면 ‘그래서 내가 당신의 율법으로부터 감춰져 있는 놀라운 진리들을 보게 하소서 (NASR that I may behold Wonderful things from Your law)'이다.

시인이 알고 인식하고 있었던 바,

  • 하나님의 율법에 인간의 이성이나 능력만으로는 다 이해할 수 없는 깊고 놀라운 진리들이 담겨 있음을 알고 있었고,
  • 그러한 진리를 깨닫는 것 자체가 커다란 축복이며 은혜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 그래서 그는 여기서 이를 자신이 보다 확고하게 깨닫기를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2. 하나님의 율법과 복음의 기이한 것을 보기를 원하는 자들은 "내 눈을 열어 달라고" 그리고 이해를 하게 해 달라고 그에게 간청해야 한다.

우리는 그의 은총이 우리 눈에서 비늘을 벗길 때까지는 본질상 하나님의 일에 맹목적이라 하겠다. 하나님께서 마음 속에다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신 자들에게도 여전히 더욱 밝아질 필요를 가지고 있으므로 저희의 눈을 열어 줄 것을 하나님께 간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처음에는 사람들을 나무가 걸어가는 것으로 보았던 자들도 모든 것을 분명하게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시면 주실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가운데서 우리가 전에 보지 못했던 기이한 것들을 더욱 많이 보게 될 것이다.


💡 ‘눈’

  • 의미: 영적 인식과 깨달음의 능력

‘눈을 열어달라’

  • 의역하면 - ‘하나님의 계시를 깨닫게 하소서’(민24:4)

시인이 이같은 기도를 올리는 것은,

  • 하나님께서 말씀 속에 - 그가 누릴 수 있는 모든 축복, 그에게 필요한 은혜를 층족히 쌓아두셨음을 믿었기 때문이다.

시인의 확신과 기도의 내용

  • 즉 그는 더 나은 측복을 구하기보다 이미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 속에 은혜와 축복, 구원을 쌓아두셨음을 확신하고,
  • 그것을 누릴 수 있도록 자신의 영적 시각을 열어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나그네 같은 인생의 고백(시편 119:19)

 💡 119:19 나는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사오니 주의 계명들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1. 우리는 여기에서 다윗이 그 자신의 여건을 인식하는 것을 본다.

"나는 땅에서 객이 되었나이다."

우리 모두도 마찬가지이며 모든 선한 사람들도 그렇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왜냐하면 하늘이 그들의 본향이며, 세상은 그들이 잠간 기거하는 주막집이나 순례지이기 때문이다. 다윗은 세상에 관한 많은 것을 알았던 사람이었고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써 그것을 깊이 인식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집을 지어 주셨고 그의 보좌를 설정하셨다. 이방인들이 그에게 복종했고 그가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그를 섬겼다. 그는 위대한 사람들의 이름들과 같이 한 이름을 가졌지만 그는 자신을 객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세상에서 모두 객이며 우리 자신들도 그렇게 불러야 할 것이다.


 💡 ‘땅에서’

  •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장소(창9:11)

‘나그네’가 되었사오니

  • 가난한 자나 고아와 과부들과 더불어 사회적으로 불리하고 곤고한 입장에 처한 자들.

⇒ 따라서 본문은 어방 땅에 거하는 나그네처럼 시인 자신의 인생이 어느 곳에서도 안정을 얻지 못하고 곤고하고 괴로운 처지에 있음을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시인의 곤고한 삶에 대한 표현은

⇒ 원망이나 불평으로 이어지지 않고 오허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간구로 이어지고 있다.

시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 고난의 삶, 정처도 없고 쉴 곳도 없는 나그네 삶을 사는 시인에게 쉼을 주고 위로를 주는 것이었다.
  • 그것은 자신의 어려움을 벗어날 수 있는 디딤돌이면서(22절) 그 자체가 시인을 즐겁게 하는 것이었다(24절).
  • 그래서 시인은 이어지는 하반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구하고 있다.

‘나그네’란 표현을 → 앞선 1연과 2연에서 사용된 길' 이란 표현과 연관하여 생각해 볼 수도 있다.

  • 정착민과 달리 나그네는
    • 늘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며,
    • 길의 선택은 실로 생명과 죽옴의 선택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 그래서 낯선 나라에서 방황하고 있는 나그네에게 안내자의 역할은 결정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마찬가지로 나그네 된 인생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 길의 인도자가 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안내자가 없어 선택하는 길은 불행과 죽음의 길일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시인이 그토록 하나님의 말씀에 열정을 바친 하나의 이유가 발견될 수 있다.

  • 하나님의 말씀은 = 곧 생명이다.
  • 즉 본문의 비유는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2. 그가 하나님께 드린 요청이 여기에 나타나 있다.

"주의 계명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그는 더욱 더 나타내려고 했다. "여호와여 내게 주의 계명을 보여 주소서.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의 결핍을 알지 않게 하시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게 그것과 친숙하게 성장하도록 해 주소서. 나는 객입니다. 그러므로 안내자와 지도자와 동료와 위로자의 필요를 항상 느끼게 됩니다. 주의 계명을 내 시야 가운데 두소서. 왜냐하면 이것들이 내게 전부이며 가련한 객이 갈구할 수 있는 모든 것입니다. 나는 객입니다. 이 땅에서 곧 사라질 것입니다. 주의 계명에 의해서 내가 곧 이사갈(줄을) 준비를 하게 하소서."


💡 ‘숨기지 마소서’

  • 실제로 하나님께서 시인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도록 할 것이라는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 원하는 시인의 간절한 열정을 다른 형식으로 표출한 것.
  • 이러한 간구는 시인이 이방의 나그네로 표현되는 점과 관련해 더욱 절박하게 독자들에게 들려지고 있다.
  • 하나님의 말씀은
    • 나그네 같은 인생이 나아갈 길이며 위로이며 도움인데,
    • 그것이 없다던 그는 어디로 가야 될지 몰라 방황하다 기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상한 마음(시편 119:20)


💡 119:20 주의 규례들을 항상 사모함으로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


다윗은 자기 눈을 열어 주실 것을 하나님께 간구했고(18절), 율법을 열어 줄 것을 간구했다. 이제는 여기에서 지식과 은총에 대한 그의 갈망의 진지한 모습이 나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상당히 뜨거운 기도이기 때문이다.

1. 그의 간구는 조르는 것이었다.

"주의 규례를 항상 사모하므로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 또는 (어떤 사람들이 그것을 해석하는 바와 같이) "주의 규례를 항상 사모하므로 내 마음이 사로잡히고, 완전히 진하였나이다. 그 갈망의 전체적인 흐름은 이 통로로 흘러 내립니다. 내가 하나님의 과 그 방향과 변화와 위로를 원한다면 나 자신이 완전히 깨어지고 파멸되어야 할 것입니다."


 💡 ‘사모함으로’

  • ‘열망, 갈망’ 이라는 강한 의미.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

  • ‘상하나이다’
    • 원형 : ‘으깨지다’ ‘분쇄되다’ ‘꺾어지다’ 라는 한글 번역보다 훨씬 강렬한 이미지.
  • 원문의 뉘앙스를 살려 본문을 다시 번역하면
    • ‘나의 영혼이 으깨어집니다(NASB, My soul is rushed)' or ‘나의 영혼이 찢어집니다(ASV, My soul breaketh)’ 가 된다.
  • 즉 본문은 시인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급함으로 인하여
    • 자신의 존재 중심이 영혼이 으깨지고 찢겨질 정도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2.그것은 끊임없다 - "항상" 사모하는 것이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것은 좋은 생각으로 잠깐 동안 있어질 일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것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일용할 양식처럼 바람은 모든 성화된 영혼의 습관적 기질인 것이다.


💡 ‘항상’

  • 문자적 의미: ‘모든 시간에’

사실 어떤 대상을 향한 인간의 열정은

  • 시간의 흐름이나 여건에 따라 시들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 그러나 시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향해 가진 열정은

  • 시간의 흐름이나 상황에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는 시종여일한 것이었다.
  • 이는 일단 시인 자신의 말씀에 대한 열정이 → 얼마나 확고한 것인지를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본문의 표현은 하나님의 말씀과 규례가

  • 사람들에게 너무나 소중한 것이며
  • 항상 사모하고 갈구해야 할 만큼 절실한 것임을 나타낸 것이기도 하다 

●사악한 자들의 마음(시편 119:21)

 💡 119:21 교만하여 저주를 받으며 주의 계명들에서 떠나는 자들을 주께서 꾸짖으셨나이다

본문은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는 자들을 세 가지로 구분지어 묘사하고 있다.

  • 그런데 이 세 가지는 서로 다른 인간들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동일한 인간의 모습을 세 가지 측면에서 표현한 것이다.

본문에서 제시되고 있는 바 교만과 저주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과의 관계성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1. 여기에 사악한 자들의 야비한 성격이 나타나 있다.

저희의 마음의 기질은 악하다. 그들은 "교만하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들을 과장한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항하여 자신들을 자랑하며 마치 그들의 마음과 혀와 모든 것이 그들 자신의 것인 양 하나님의 뜻에 반대하는 뜻을 설정한다.

모든 의도적인 죄의 밑바닥에는 교만한 어떤 것이 있으며, 그들의 삶의 방침도 그 보다 더 좋은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항상 저희의 마음에 잘못을 행한 것"처럼 "주의 계명에서 떠나는 자들이다." 그들은 판단을 그리치고 주의 계명에 반대되는 원칙들을 채택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실제로 그르치며 선한 행실에서 고의적으로 멀리 떨어져 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것이 그들의 교만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말한다. "우리가 섬겨야 할 전능자가 무엇이냐?" 바로와 같이, "여호와가 누구냐?"고 말한다.


💡 ‘교만하여’

  • 원형 ‘제드’ :
    •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어 순종하지 않는 것(85절),
    • 하나님의 말씀을 고의로 거슬러 악을 일삼는 것(19:13) 등을 지칭할 때에 사용되기도 한다.

‘저주를 받으며’

  •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신 27:26)는 말씀을 상기시키는 본문의 표현.
    → ‘주의 계명에서 떠나는 자를’ 이 ‘저주받은 자들’ 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떠나는 자를’

  •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잘못된 인생의 길을 걸어가는 것.
  • ‘길’ 과 관련된 상징적 표현
    • 1,2절과 반대되는 악인들의 모습.
    • 결국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불순종함으로 저주와 심판의 구렁텅이로 떨어질 것임을 함축적으로 전달한다. 

2. 여기에 그런 자들의 불행한 경우가 있다.

그들은 확실히 저주를 받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기" 때문이다. 율법의 명령을 던져 버리는 자들은 자신들을 저주 아래 두게된다.(갈 3:10). 하나님은 이제 "그들이 멀리 떨어진 것을 보면서" 그들에게 간단하게 말할 것이다. "가라, 너희는 저주받았다." 교만한 죄인들은 자신들을 찬양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저주하신다. 이러한 저주의 가장 무서운 결과는 저 세상에서 나타날 것이지만, 그들은 종종 이 세상에서도 혹독한 책망을 받기도 한다. 섭리는 그들을 방해하며 괴롭게 한다. 그들이 교만하게 대하는 곳에서 하나님은 그들 위에 나타나신다. 그리고 이러한 질책은 더욱 악화될 징조이다. 다윗은 질책이 교만한 자들에게 임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더 가까이 접근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계명에서 떠나지" 않도록 진지하게 기도하게끔 만들어 주었다. 이와같이 성도들은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 더욱 선해질 것이다.


 💡 주께서 꾸짖으셨나이다

  • ‘꾸짖다’ (’까아르’)
    ⇒ 단순히 말로 이루어지는 질책의 의미가 아니라 그릇되고 악한 행위를 저지시키며(말 3:11), 생명을 멸하시는(9:5) 하나님의 엄위하신 심판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 때로 이러한 심판은
    •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으나,
    • 궁극적으로 최종적 심판의 날에 완전히 이루어질 것이다(계 20:12-15). 

●악에서 떠날 것을 간구함(시편 119:22)

1.다윗은 여기에서 인간의 비난과 멸시가 "그에게서 떠나가게." 또는 "물러가고 지나가게" 되기를 기도한다.

이것은 그들이 다윗을 공격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의 위대함도 그의 선함도 그가 모욕을 받고 비방받는데서 구제할 수 없음을 나타내 주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다윗을 경멸했고 그를 비천하게 만들려고 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를 훼방했고 그를 증오거리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선을 행하는 많은 사람들이 종종 비방되어 왔음은 사실이다.

또 이것은 그들이 그를 무섭게 공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섭고 더러운 언어들이 어떠한 뼈도 부수지 못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부드럽고 슬기로운 정신을 크게 침해하는 것이다. 그런고로 다윗은 기도한다. "여호와여, 그들을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그리하여 나의 의무와 그것에 대한 용기를 멀리하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은 모든 인간의 마음과 혀를 그의 안에 두시며 거짓을 말하는 입술을 침묵하실 수 있으며, 굴욕 속에 짓밟힌 선한 이름을 들어 올리신다. 우리는 그에게 정의의 옹호자로서, 악의 심판자로서 임하실 것을 호소해야 한다. 그러면 그의 약속에 의거하여 그는 우리의 의를 빛같아"(37:6) 분명하게 드러내실 것이다. 훼방과 멸시는 우리를 겸하게 하고, 우리에게 유익을 끼치고, 그리고는 결국 떠나게 될 것이다.

2.그는 하나님의 말씀과 법도에의 끊임없는 고수(固守)를 호소한다.

"내가 주의 증거를 지켰사옵나이다."

그는 자기의 무죄를 호소할 뿐만 아니라 부당하게 비난받았다는 것을 밝히고 나서,

(1) 그가 선한 행실로 인해 조롱받았다고 호소한다.

그는 그의 종교에 대한 철저성과 정열 때문에 경멸되고 모욕을 받았다. 그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므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 주실 것을 더욱 큰 확신으로 간청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백성의 훼방은 - 그것이 아직 떠나가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 갑자기 큰 영광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2) 또한 그는 선한 행실에도 불구하고 조롱받았다고 탄식한다.

"여호와여 그것을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주의 증거를 지켰사옵나이다." 우리가 심판날에 우리의 성실을 여전히 지키고 있다면 우리는 그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리라고 확신한다.


💡 119:22 내가 주의 교훈들을 지켰사오니 비방과 멸시를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시인의 고백

  • 시인은 자신이 객관적이고 공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여 행복과 번영이 보장된 자임을 고백하고 있는 것.
  • 이는 일면 시인 자신이 멸시와 훼방을 받을 만한 범죄를 행치 않았으며, 그러한 핍박과 고통이 죄와 상관없이 이루어진 무고한 것임을 나타낸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비방과 멸시를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 어떤 비방과 멸시일까?
    • 시인이 사회적으로 비난과 조소의 대상이 되어 많은 고통을 받고 있음을 나타낸다.
    • 상반절의 하나님의 증거를 지켰다는 내용을 감안할 때 이는 말씀을 준행함에서 오는 비난과 멸시일 가능성도 있다(Spurgeon).
  • 사실 "이러므로 너희가 저희와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저희가 이상히 여겨 버방하나''(벧전 4:4)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자들은 불경건한 자들의 무고한 공격 대상이 되어 왔으며 그들에게 늘 핍박과 고난을 받아왔다.
    → 이러한 측면에서 본문의 간구 성격은,
    • 단순히 시인이 자신의 고통을 빗어나기 위해 올리는 호소로만 이해될 수 없다.
    • 자신에 대한 비난과 멸시는 걸국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이 아끼시는 그의 친백성을 향한 모독이기에 이를 그치게 해달하고 요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이러한 의미로 이해하지 않더라도 본문은 최소한 악한 무러들이 무고하게 시인을 대적하여 비난하고 조소하였음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란 점은 매우 분명하다. 말씀을 준행하는 시인이
  • 이러한 비난과 조소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은
    • 복된 삶이 ⇒ 아무런 굴곡이 없는 평탄한 삶이 아닐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 그러나 시인이 이러한 삶의 굴곡을 통하여 더욱 성장하게 되었음을 고백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의 준동까지도 의인들을 바르고 굳건하게 세우며 당신의 선하신 뜻을 이루는 방편으로 사용하기도 하신다.
  • 이는 일면 말씀을 준행하며 사는 삶에
    • 외견상으로 고난과 슬픔이 뒤따라서 험겨워 보이기도 하지만,
    • 궁극적으로는 그 삶이 가장 복된 삶이라는 진리를 확인시켜 주는 것이기도 하다.

‘떠나게 하소서’

  •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당한 수치를 벗겨주심을 나타낼 패도 사용된 표헌어기도 하다(수 5:9).
  • 시인은 이처럼 생생한 역사적 기억을 상기시키는 희화적 표현을 사용함으로 과거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선하신 도움으로 애굽의 속박을 완전허 떨쳐 버린 것처럼 자신을 향한 대적들의 비난과 멸시가 완전허 사라지기를 간구하고 있다. 

●높은 자들이 주는 비난(시편 119:23)

 💡 119:23 고관들도 앉아서 나를 비방하였사오나 주의 종은 주의 율례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렸나이다


1.다윗의 성격과 처지를 잘 알고, 더 대했어야 했을 높은 사람들에게서까지 다윗은 비방받았음을 보여 준다.

"방백들도 앉아," 의회에 앉아 심판대에 앉아서, "나를 훼방하였사옵니다." 비록 방백들이 말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심판이 이렇게 고민으로 변하고, 무죄한 자의 보호자가 되어야 할 자들이 저희의 반역자가 될 때에는 슬픈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다윗은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고"(고전 2:8) 비방한 이 세상의 방백들이기 때문이다.


💡 ‘고관들도’

= 자신에게 해를 가하는 대상.

  • 누구?
    • 권위와 권세를 가진 자, 사회적 정치적으로 큰 영향력을 가진 이들.
    • 앞선 21절의 시인에 대한 비난과 멸시가 일반 백성들의 비공개적이며 음성적인 공격이었다던,
    • 본문에 표현된 시인에 대한 훼방은 권세자들에 의해서 공개적이고 공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앉아’

  • 고관들이 시인을 댖거하여 머리를 맞대고 공모하여 상의함을 나타내는 의미.

이처럼 방백들이 시인을 비난하고 조소하였을 뿐만 아니라 함께 공모하여 시인을 공격하였다는 사실이 보여주는 바,

  • 그 주변에 너무나 많은 대적자들, 악인들이 존재하였음을 나타내줌과 동시에,
  • 시인이 얼마나 절박하고 위태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전달한다.

특히 이처럼 시인을 고통스럽게 하는 자들 가운데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 권력자들이 공적으로 시인을 대적하였다는 것은 -

  • 시인이 어떤 인간적인 도움을 구할 수조차 없는 절망적 상황에 처하였음을 잘 보여준다. 

2.그가 어떤 방법으로 이러한 조롱 아래서 자신을 편하게 했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

그는 "주의 율례를 묵상하였고," 그의 의무를 계속 수행했으며, 그들을 주시하지 않았다. 마치 귀 먹은 사람처럼 그는 전혀 듣지 않았다. 그들이 비방하였을 때 그는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자신에게 말할 것과 자신을 위로할 것을 발견했으며, 이러한 것들 중 아무 것도 그를 요동치 못했다.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서 기쁨을 갖는 자들은 쉽게 사람들의 훼방을, 심지어는 방백들의 훼방일지라도 쉽게 경시할 수 있을 것이다.


💡 주의 종은 주의 율례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렸나이다

시인이 여기서 자신을 ‘주의 종' 이라 지칭하는 것은

  • 자신이 하나님의 뜻에 복종해야 하는 하나님의 소유된 자로서 말씀을 철저 하게 준행하였다는 의미와 함께
  • 자신이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을 자격이 있음을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 고대 근동 사회에서 종
    • 주인에 대하여 절대 층성을 다하여야 하며 주인은 종의 생계를 보장하고 어려움과 위험에서 목숨을 보호헤야만 했다.
    본문의 ‘아브떼카'란 표현에는
    • 이러한 하나님과의 관계와 하나님의 보호에 대한 확고한 신뢰가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 그래서 시인은 심히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여 있었으나 인간적인 방법으로 주어진 어려움을 극복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더 착념하였다.

한편 대적둘이 준동하며 비방과 조소를 일삼으며 공공연히 모여서 모의하며 자신을 훼방하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율례룰 묵상한다는 것은 일견 납득이 되지 않는다.

대개의 사람들은 상황이 이쯤되면 무언가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을 찾아보고 자기 편의 사람들을 모으며 나름의 필요한 전략을 강구하게 마련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취하는 이러한 자세에 비춰볼 때 본문의 시인의 대처는 마치 자신의 운명을 포기하고 문제에 직면하기보다 희피하는 나약한 태도로 오해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결코 현실 도피적인 자세라 치부될 수 없다.

  •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고난의 상황을 이길 힘과 능력을 불어넣어주며,
  •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궁극적인 승리를 보장해 주는 것임을 확고히 신뢰하는 믿음에 근거한 행동이라 할 수 있다.
    → 따라서 이는 시인이 작위적으로 취하는 그 어떤 자세보다 적극적이고 확고한 대처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이는 그가 얼마나 굳건히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였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율례를 즐거이 묵상함(시편 119:24)

여기에서 다윗은 방백들이 앉아서 그를 비방할 때 자신에게 사용한 하나님의 율례에 대한 그의 묵상(23절)을 설명해 주고 있다.

1. 그 고난이 그를 슬프게 했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그를 위로했고 그것이 그의 "즐거움"이었으며 그것은 그의 궁성이나 진영, 도성이나 나라 안에서 얻을 수 있었던 어떠한 기쁨보다도 더 큰 그의 기쁨이었다.

때때로 그것은 다른 위로들이 상하게 될 때 하나님의 말씀의 위로가 은혜로운 영에게 가장 즐거운 것이 된다는 것을 입증시켜 준다.

2. 그것이 그를 당케 하였는가?

방백들이 그를 비방할 때 그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몰랐는가? 하나님의 율례가 그의 "모사"였다.

→ 모사들은 그가 그러한 역경을 인내로써 참을 것을 조언해 주었으며, 그의 모든 분을 하나님께 맡길 것을 가르쳐 주었다. 하나님의 "증거"는 방백에게나 개인에게나 모두에게 가장 좋은 모사가 될 것이다.

원문의 뜻은 "저희는 내 뜻을 가진 자들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많은 모사에게 의하는 것보다 그들에게 맡기고 뜻을 묻는 것에서 더욱 좋은 안정감과 만족을 찾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증거를 기쁨으로 삼으려고 하는 자들은 모든 문제를 그들의 모사에게 가서 그들에 의해 충고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 문제들을 가지고 모사에게 가는 자들은 결국 위로를 찾은 걸음으로 저희의 기쁨을 찾기 위해서 그들에게 가야 할 것이다.


💡 시인의 현실

  • 자기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에게 비난과 질시의 대상이 되어 낙심이 되었 으나
  • 말씀 속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었다.
    → 이에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안위를 느끼고 대적들에 대한 승리를 확신하였다는 의미도 함축되어 있다.

시인은 주어진 상황을 능히 극복할 수 있는 영혼의 힘

  • 말씀 속에서 찾았으며,
  • 결국 그 말씀을 인하여 자신이 승리할 것을 확신하였고,
  • 그로 인해 이처럼 기뻐하고 있는 것이다.

‘주의 증거’ ‘나의 즐거움’ ⇒ 모두 복수형

  • 이는 시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 많이 더 깊어 묵상할수록 더 큰 확신을 갖게 되었고 그로 인해 더 많은 기쁨을 얻었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나의 모사니이다’

  • 모사 = ‘나에게 조언을 주는 사람들’ ‘나에게 모략을 주는 사람들’
    •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 인간들의 비방과 비난, 그리고 공격을 능히 피할 수 있는 길을 보여주었고
      • 그 모든 공격을 물리치고 승리케 할 수 있도록 하는 충분한 지혜를 주었다는 의미를 함측한다.
  •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는
    • 고난을 능히 이기게 해주는 능력과 비결이 담겨 있기에
    • 시인은 고난의 상황에서 더욱 하나님의 말씀에 착념한다고 고백한 것. 

●구원을 향한 다윗의 탄식(시편 119:25)

💡 (3연) 앞선 17-24절 단락에서

  • 시인은 주의 규례를 사모하는 자로서 주의 깨우쳐 주심과 계명을 지키는 자로서 주의 보호틀 간구하였다.
  • 이러한 시인의 간구가 주조를 이루는 앞선 단락은
    • 비탄시적인 성격이 없지 않지만
    • 그 저변에는 말씀에 대한 시인의 열정과 확신이 짙게 깔려져 있옴을 확인할 수 있다.
  • 이러한 열정과 확신은
    • 하나님의 말씀이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자 비결이라는 시인의 굳건한 믿음과 연결되어 있다.

(4연) 25-32절 단락

  • 본단락 역시 하나님을 향해 올리는 구원에의 간구를 주로 다루고 있다.
  • 3연과는 달리 4연에서는
    • 시인이 과장법적 은유를 사용,
      • → 자신이 매우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옴을 강조하여 표현하고 (25,28절),
      •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 자신의 구원을 호소하고 있다.
    • 즉 시인은 영혼이 눌려 녹는 중에도 기도하며 주의 말씀에 약속된 소성의 은혜를 간곡하게 구하고 있는 것이다.
  • 이와 더불어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깨달음이
    • 인간의 지성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임을 인정하며
    말씀에 대한 가르침을 거듭 간구하고 있다.

Ⅰ. 여기에 다윗의 탄식이 있다.

우리는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그의 영혼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는 자신을 일컬어 "내 영혼이" 진토에 구를 뿐만 아니라 "진토에 붙었사옵나이다"라고 탄식한다.

1.그것은 그의 타락에 대한 탄식이다.

그의 세상과 육체에 대한 경향성(세상과 육체는 진토이다)이 거룩한 의무들에 대해 죽는 결과를 가져 왔다. 그는 "선을 행하고 싶었으나 악이 그에게 있었다." 하나님께서 "너는 흙이라"(창 3:19)고 말씀했을 때, 그것은 아담이 죽을 존재일 뿐만 아니라 죄로 가득찬 존재임을 나타냈다. 여기에 나타난 다윗의 탄식은 바울 자신이 지니고 있었던 죽음의 몸에 대한 탄식과 유사하다. 안에 거하는 타락의 잔재들은 은혜로운 영혼을 크게 해치는 짐이 된다.

2.아니면 이것은 마음의 고난이나 외적인 고난이건 간에, 그의 곤고한 상태에 대한 탄식이다.

"투쟁이" 없는 곳에는 공포가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를 심지어는 "사망의 진토"(22:15)에로 인도한다. 그리고 그의 영혼은 거기에 꽉붙게 되었다.


💡 119:25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영혼이 진토에 붙었다’

  • 이 단어는 고통스럽고 처절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경우를 묘사할 때 종종 사용되는 단어이다. 특히 진토에 붙었다는 표현은 죽어 흙에 묻혔으며 흙의 일부처럼 되었다는 표현이다.
  • 이는
    • 시인이 죽음을 방불하는 극한 좌절의 상황에 처하여 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 자신의 능력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비참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Ⅱ. 여기에는 또한 소생을 위한 그의 간구와 그 간구를 강하게 하는 그의 호소가 있다.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 주의 섭리로 나의 역경을 생명을 주시고 주의 은총으로 나의 고난에 생명을 주소서. 나를 영적인 죽음으로부터 치료하시며, 나로 하여금 생동력있게 예배에 참여케 하소서."

우리가 스스로 미련하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께로 나아가서 그에게 우리를 소생케 해달라고 간청해야 할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생의 수단으로 보고(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에서 그를 소생시켜 줄 희망에의 격려라고 보았다. 그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은총과 위로를 약속받고 특히 다윗에게 주신 은총과 위로를 스스로 취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안내자이며 일상 기도에서의 간구가 되어야 할 것이다.


💡 ‘소성케 하소서’

  • 이는 시인이 얼마나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 그는 자신의 생명과 능력, 삶 그 자체를 하나님의 말씀과 유착시키고 있는 것이다.

‘주의 말씀대로’

  • 의미: ‘당신의 말씀에 따라서’, ‘당신의 말씀에 부합되게’
    • 시인은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 대해 생명을 보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신 30:19) 구원을 간구하고 있다.
  • 이처럼 시인은
    • 죽음을 방불하는 절망의 자리에서도,
    • 하나님의 말씀을 부여잡고, 소망을 잃지 않고,
    • 약속하신 말씀에 호소하고 있다.
  • 결국 시인에게 하나님의 말씀
    • 고난의 상황에서 구원을 호소하는 근거가 되었을 뿐 아니라
    • 고난을 이기는 능력이 되었다. 

●주의 율례와 법도를 배움(시편 119:26,27)

1. 우리는 여기에서 다윗과 그의 하나님 사이에 있었던 커다란 친밀성과 자유를 본다. 다윗은 그의 처지를 드러내 놓고 하나님께 그의 진실한 마음을 열어 놓았다.

"나의 행위를 고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서 주께 감사했고 나의 모든 계획고 기도(企圖) 가운데서 내가 행한 것을 주께 고했다." 이와 같이 "입다는 그의 말을 모두 고했다." 그리고 히스기야는 그의 편지를 "여호와 앞에서"펴고 이렇게 선포했다. "내가 나의 행위를, 나의 행위에서 당하는 무거운 짐과 고난을, 나의 소원을 또는 나의 죄들을 나의 곁길을 고하였다"(나는 그것들에 대한 진실한 고백을 하였다). 그래서 "주께서 응답하셨다. 내가 말한 모든 것을 참고 들으시며, 내 처지를 인식하셨다."

모든 탄식이 은혜로우신 하나님께 용납된다는 그 인자를 생각하는 것은 은혜로운 영혼에게 말할 수 없는 위로가 된다(요일 5:14, 15).



2. 우리는 여기에서 또한 하늘로부터의 환상이나 음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평범한 방법으로 주어진 말씀과 성령에 의해서 그러한 친밀성이 계속되기를 원하는 다윗의 진지한 간구를 본다.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 즉, "나로 하여금 주의 교훈의 법도를 이해하게 하소서." 그가 하나님께서 그의 행실에 대한 그의 선포를 들으셨다는 것을 알았을 때 "여호와여 내게 나의 운명을 말하소서. 나로 하여금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알게 하소서"라고 말하지 않고, 오히려 "여호와여 내게 나의 의무를 말하소서. 나로 하여금 내가 처한 자리에서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지를 알게 하소서"라고 말했다. 모든 행위 가운데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들은 그가 올바른 행실로 그 길을 가게 인도해 달라고 믿음 가운데서 간구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의 교제를 유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의 율례를 배우고 "주의 법도의 길'을 지속적으로 따라가는 길밖에 없다(요일 1:6, 7 참조).



3. 다윗은 하나님의 영광과 다른 사람들의 교화(敎化)를 위해서 좋은 방법으로 이것을 사용하였다.

"나로 하여금 주의 법도의 길을 잘 이해하게 하소서. 내게 하나님의 일들을 분명하고 명백하며 방법적인 지식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확실한 증거로 보다 더 적절하게 주의 기사를 묵상하리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놀라운 기사의 은총과 섭리의 기적과 특히 구속하시는 사랑의 기적을 묵상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법도의 길을 이해하며 그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다윗의 슬픈 탄식(시편 119:28,29)

1. 여기에 다윗의 슬픔의 표현이 나타나 있다.

25절의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옵니다"란 고백과 같은 의미로 ***"나의 영혼이 눌림을 인하여 녹사옵니다"***라고 탄식한다. 인간의 마음의 눌림은 마음을 녹여 소모되는 양초처럼 녹여 없앤다. 회개하는 영혼은 죄로 인한 슬픔을 녹이며, 인내하는 영혼은 고난의 감정을 녹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서 탄원을 토로하는 것은 그러한 관심에서 되는 것이겠다.



2.여기에 또한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그의 요청이 있다.

(1) 하나님께, 그를 그의 고난에서 잘 참아 낼 수 있게 하고 고난 중에서도 자기를 지탱할 수 있게 힘 주실 것을 간청한다.

나의 영혼에 힘을 주시어 "주의 말씀대로 내게 힘을 주소서. 생명의 떡으로써 인간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시련으로 주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견딜 수 있도록 강하게 하소서. 내게 힘을 주시어 의무들을 행하게 하시며 유혹에 항거하게 하시고 고난의 상태에서 주어지는 짐들을 견디게 하시어 영혼이 파멸에 이르지 않게 하시옵소서. 네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신 33:25)라는 말씀을 따라서 나를 강하게 하소서."

(2) 그가 자기의 고난에서 벗어나려고 비합법적인 옳지 못한 수단을 사용하는 일이 없도록 막 아 주실 것을 하나님께 간청하고 있다(29절).

"거짓 행위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옵소서."

다윗은 자기가 이러한 죄를 범하기 쉬운 경향성을 가지고 있음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는 곤궁에 빠졌을 때 아히멜렉(삼상 21:2)을 속였고, 아기스에게 두 번씩이나 속였다(삼상 2:13; 27:10). 중대한 곤란은 경건한 기만과 필요한 자기 방어라는 핑계로써 거짓을 정당화해 주는 유혹을 준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이러한 죄에 더 이상 빠지지 않도록 보호해 줄 것을 간구한다. 그것은 그가 그러한 행실에 정주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거짓과 기만과 위장하는 일은 모든 선한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그의 은총으로 우리를 지켜 주실 것을 간구하는 데에 전념해야 할 것이다.



(3) 그는 항상 하나님의 지배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 아래에 있기를 위해 간구한다.

"주의 법을 내게 은혜로이 베푸소서." "거짓 행위에서 나를 은혜로이 지 켜주소서.”

다윗은 그 자신의 손으로 쓴 율법책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왕은 자기가 사용할 목적으로 그 사본을 베껴 둬야 했다(신 17:18). 그러나 그는 그것이 그의 마음에 씌어지기를 간구했다. 그런데 율법책을 정말로 마음에 새겨두고 있을 그때에만 우리는 좋은 목적으로 그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내게 더욱 더 베푸소서." 하나님의 법을 알고 사랑하는 자들은 그것을 알면 알수록 더 그것을 사랑하기를 갈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것을 내게 은혜로이 베푸소서." 그는 그것을 하나님의 은총의 특별한 징표로써 간청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법을 하나의 베푸심으로, 선물로, 그 가치를 말로 다 할 수 없는 선물로 인식해야 하며, 그것을 위해 간구하고, 따라서 그것에 대해 감사해야 할 것이다. 제도와 율례에 관한 하나님의 법전은 실로 특권의 헌장(憲章)이다. 진실로 하나님은 그의 율법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은혜롭게 만드신 자들에게 은혜로우시다.



●진리의 길을 택함(시편 119:30-32)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주목해 보자.

Ⅰ. 자신들의 종교의 목적에 관한 어떤 것을 하려고 하는 자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진지하고도 신중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다윗은 그렇게 했다. "내가 성실한 길을 택했다."

  1. 거룩한 길은 진리의 길이다. 그것이 기초한 원칙들은 영원한 원칙들이며,그것이 유일하게 행복으로 이르는 진실한 것이다.
  2. 우리는 다른 길을 모르기 때문에 이 길을 걷기로 택해야 할 것이다. 아니, 우리는 그밖에 다른 어떤 선하고 안전한 길을 알지 못한다. 그 길이 비록 좁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걸어야 할 우리의 길을 위해 그 길을 선택하도록 하자.

Ⅱ. 성실한 길을 택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의 행실의 규범으로 삼고 부단히 지시해야 한다.



Ⅲ. 종교를 자기들의 선택과 규범으로 삼는 자들은 신실하게 그것을 고수하려고 한다.

"내가 불변하는 사랑과 흔들리지 않는 결심으로 주의 증거에 밀접하였사옵고, 어느 때나, 모든 시험가운데서도 주의 증거에 밀접하였사옵고, 어느 때나, 모든 시험 가운데서도 주의 증거에 밀착하였나이다. 내가 그 길을 택하였으므로 거기에 밀접하였사옵니다." 선택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견실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이다. 그러나 반면에 우연을 택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바람이 부는 데 따라 방침을 바꾸게 될 것이다.



Ⅳ. 하나님의 말씀을 고수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용납해 주실 것을 신앙 가운데서 기대하면서 기도할 것이다.

다윗은 다음과 같이 간구할 때 바로 이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여호와여 나로 수치로 당케 마소서. 즉 내가 수치를 당하도록 행하는 것을 버려두지 마시고, 내가 가장 큰 혼동에 빠지지 H 나의 예배를 주께서 거부하지 마소서."



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위로를 주실수록 그가 우리에게 기대하는 의무가 더 많다(32절).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의무를 발견한다.

1. 의욕적으로 그의 경건 생활을 계속하겠다는 결의.

"내가 주의 계명의 길로 달려가리이다."

하늘을 행해 가려고 하는 자들은 저쪽으로 서둘러 가야 하며 계속 앞을 향하여 달려야 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시간을 구하고 고통을 감수하며 기쁨으로 우리의 과제들을 계속 행하는 것에 관심하도록 한다. 그 때에 우리는 우리의 의무의 길로 달려가며 만방의 준비를 갖추고 거기서 기쁨을 갖게 되며, "무거운 것을 벗어 내리게 된다"(히 12:1).



2. 그렇게 할 수 있는 은총을 달라고 하나님께 의존해야 한다는 것.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오면 주의 일을 풍부케 하리이다."

하나님은 성령에 의해서 그의 백성들의 마음을 넓히시며, 그들에게 지혜를 주신다(그러므로 그것은 "넓은 마음"이라고 불리워졌다. 왕상 4:29). 그 때에 그는 마음 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넓게 펼치며 거기에 즐거움을 둔다. 우리 여호와의 즐거움은 우리의 복종에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