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신명기23, 시편112-113, 이사야50, 요한계시록20
묵상구절
119:145 여호와여 내가 전심으로 부르짖었사오니 내게 응답하소서 내가 주의 교훈들을 지키리이다
119:146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증거들을 지키리이다
119:147 내가 날이 밝기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119:148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
119:149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내 소리를 들으소서 여호와여 주의 규례들을 따라 나를 살리소서
119:150 악을 따르는 자들이 가까이 왔사오니 그들은 주의 법에서 머니이다
119:151 여호와여 주께서 가까이 계시오니 주의 모든 계명들은 진리니이다
119:152 내가 전부터 주의 증거들을 알고 있었으므로 주께서 영원히 세우신 것인 줄을 알았나이다
119:153 나의 고난을 보시고 나를 건지소서 내가 주의 율법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
119:154 주께서 나를 변호하시고 나를 구하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리소서
119:155 구원이 악인들에게서 멀어짐은 그들이 주의 율례들을 구하지 아니함이니이다
119:156 여호와여 주의 긍휼이 많으오니 주의 규례들에 따라 나를 살리소서
119:157 나를 핍박하는 자들과 나의 대적들이 많으나 나는 주의 증거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119:158 주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는 거짓된 자들을 내가 보고 슬퍼하였나이다
119:159 내가 주의 법도들을 사랑함을 보옵소서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살리소서
119:160 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이오니 주의 의로운 모든 규례들은 영원하리이다
매튜헨리/옥스퍼드
19연:
💡 본시의 제18연인 앞선 137-144절에서 시인은
- 하나님의 말씀의 의로움에 대하여 찬탄하고 이에 대한 사모의 열정을 토로하며 말씀에 입각한 삶을 간구하였다.
이에 이어지는 본절에서 152절까지의 단락은
- 각절이 ‘코프’ 로 시작하는 제19연으로서,
-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시언의 부르짖음과 말씀에 대한 절대 신앙의 선언이 소개된다.
이러한 본연의 내용은
- 자신이 직면한 현실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 암울한 상황에서 구원하여 주시기를 간구하는 비탄시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부르짖는 기도(시편 119:145,146)
Ⅰ.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자비를 구하는 다윗의 선한 기도를 본다.
그는 여기에서 자랑하거나 어떤 공적을 신뢰하지 않고 기도에 대한 위로를 생각하면서, 그가 위로에로 이르는 정한 길을 택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주목해 보자.
📖 119:145 여호와여 내가 전심으로 부르짖었사오니 내게 응답하소서 내가 주의 교훈들을 지키리이다
1.그는 기도 중에 은밀히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
그는 "전심으로" 기도했다. 마음이 함께 수반되는 기도가 가장 잘 용납될 것이다. 입술의 노동, 그것이 전부라면 노동의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 ‘전심으로’
- 본절에서 시언은 자신이 하나님을 향하여 전심으로 부르젖었움을 밝힌다.
- ‘전심으로'에 해당하는 ‘베콜 레브'
- ‘레브’ : 원래 ‘심장'(삼하 18:14)을 의미한다.
- 그러나 이 단어는 ‘영혼', ‘정신', ‘생명', ‘지성', ‘감정', ‘의지’ 등 육체와 대비되는 인간의 모든 측면을 포괄하여 나타내는 데도 사용된다.
- 여기서도 시인은 ‘모든'이란 의미의 ‘콜’ 과 함께 자신의 생명을 다하고 지•정•의를 총동원하였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어 단어를 사용하였다.
2.그는 하나님께 기도로 졸랐다.
그는 진지하게 애정의 열정과 거룩한 걱정과 갈망의 활력을 가지고 "부르짖었다." 그는 "전심으로 부르짖었다.' 그의 영혼의 모든 능력이 그의 기에도 참여하고 가담되었을 뿐만 아니라 끝까지 전력을 다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 이같이 전력을 다해 분투하고 씨름해야 할 것이다.
💡 ‘부르짖었사오니’ (’카라티’)
- 원형 ‘카라’
- 말하는 내용이 아니라 말하는 자세에 초점을 둔 표현,
- 조그마한 소리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을 나타낸다.
- 특히 하나님과 관련하여 이 단어가 사용될 때는
⇒ 갈급한 마음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나타낼 경우가 많다(4:2; 22:3; 34:7; 69:4). - 여기서도 시인이 큰소리로 간곡하게 부르짖었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이 표현이 사용되었다.
이것은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신(히 5:7)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의 기도를 떠오르게 한다.
- 이러한 시인의 간구는 물론 일차적으로는 자신이 처한 고통스런 상 황으로부터의 구원을 요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그러나 이는 이어지는 하반절의 ‘내가 주의 율례를 지키러이다'와 관련지어 이해해야 한다.
- 이를 감안하면 본문은 단순히 위기에서 건져달라는 탄원의 의미만 아니라 말씀의 가르침대로 살기 위한 시인 자신의 간절한 갈망이 함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3.그가 그의 기도를 하나님께로 향했다.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옵니다." 어린아이가 어떤 것이 그를 괴롭힐 때 그의 아버지 이외에 어디로 가겠는가?
4.그가 간구한 가장 큰 것이 구원이었다.
"나를 구원하소서." 간단한 기도이지만(우리는 우리가 많은 것을 말해야 들어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함축적인 기도이다. "나를 파멸에서 구출해 주실 뿐만 아니라, 나로 행복하게 하소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50:23)과 "구원에 가까운 것"(히 6:9) 이외의 다른 것을 구할 필요가 없다.
5.그는 응답을 열심히 기다렸다.
그는 그것이 어떻게 되었는가를 보기 위해서 기도 중에 찾아보고, 기도 후에도 살펴 보았다.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소서. 나로 하여금 주께서 내게 응답하셨다는 것을 알게 하소서."
💡 ‘내게 응답하소서’
- ‘응답하소서’ :
- ‘큰소리로 외치다’
- 특히 본절에서처럼 이 단어가 하나님과 관련하여 사용되면 기도의 응답으로서 ‘말씀을 발하다'란 의미가 된다(창 41:16; 신20:11; 삼상 9:17).
- 그러나 실상 이는 음성으로서의 응답을 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의 간청이 현실에서 이루어지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기률 바란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
‘여호와여’
- 이 신명은 기도 응답을 바라는 시인의 마음을 반영하고 있다.
- ‘여호와’ :
- 특히 당신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을 성실하게 이루시는 하나님의 면모를 반영하는 신명.
- 시인이 여기서 이러한 신명을 사용한 것은
- 자신의 간구에 응답하여 달라는 이 기도가 -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한 기도임을 보여준다.
Ⅱ. 그가 자비를 추구했을 때 자신을 의무에 결속시키려는 다윗의 선한 결심을 본다.
"내가 주의 율례를 지키리이다. 나는 주의 은총에 의해서 지킬 것을 결심하였나이다. "우리가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잠 28:9) 우리는 우리의 기도에 대한 평화의 응답을 기대할 수 없다. 이러한 결심은 겸손한 간청으로 사용되었다(146절). 나의 죄, 나의 부패, 나의 시험, 나의 길에 놓여있는 모든 장애물로부터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증거를 지키리이다." 우리는 우리가 구원의 즐거움과 위로를 갖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욱 더 즐겁게 하나님을 섬기는 기회를 얻기 위하여 구원을 위해 부르짖어야 한다.
📖 ‘주의 율례를 지키리이다’
- 본절에서 시인은 하나님을 향하여 구원해 주시기를 간구한 이후 자신에게 구원을 베푸시면 주의 율례를 지키겠다고 서약한다.
이는 구원을 베푸시는 조건하에서 하나님의 율례를 지키겠다는 의미로 보아서는 안된다.
이는 시인이 구원을 간구하는 목적이
- 자유롭게 신앙의 의무를 행하고,
- 하나님의 모든 규례를 지키기 위함어이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본절 전체의 내용은
- 시인이 구원에 입각하여 하나님의 율례들을 세밀하게 연구하고 이해하며,
- 그것이 모독받지 않도록 변호하며,
- 자신의 마음 깊숙이 간직하고 지키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하는 내용인 것이다.
이는 신앙 생활의 진정한 방향과 목적,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지향하는 바 그 귀결이 무엇인지를 확고하게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단지 성도가 어려움 가운데서 벗어나 평안한 생활을 하는 데 있지 않다.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지향하는 바 가장 궁극적이면서 함당한 삶의 자세는
-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고,
- 그 계명을 묵상하며,
- 순종하는 삶을 지속하는 것이다.
📖 119:146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증거들을 지키리이다
●새벽과 야경에 부르짖는 기도(시편 119:147,148)
다윗은 여기에서 그가 기도의 의무를 충분히 이행한 것과 그의 위로와 은택과 이 관계를 계속 나타내고 있다. 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즉 하나님께 매우 진지하게 경건하고 열심있는 애정을 드렸다. 다음의 사실들을 주목해 보자.
Ⅰ. 그의 헌신의 보조적인 덕(德). 그의 기도에 도움이 되었으며 그의 기도에 수반되었던 두 가지 커다란 작용은
1.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희망이었다.
비록 응답이 즉시 오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그 희망은 그에게 계속 기도할 수 있는 용기를 복돋아 주었다. "나는 부르짖었고 마침내 내가 도움을 받을 것을 희망하였다. 왜냐하면 환상은 정한 때에 이뤄지며 결국 그것은 말해질 것이며 거짓을 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주의 말씀을 바랐사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2.또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묵상이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친밀해지면 질수록 우리는 더욱 우리의 생각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거하게 할 수 있으며, 우리가 우리 자신의 언어로 하나님께 잘 말할 수 있게 되면 될수록 우리는 우리가 기도해야 되는 것에 관해서 더욱 잘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말씀을 읽는 것은 족하지 않을지 모른다. 우리는 오히려 말씀을 묵상해야 할 것이다.
📖 119:147 내가 날이 밝기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반드시 새벽에 일어났다는 의미가 아니라 시인이 아침을 기다릴 수가 없었으며 그로 인해 한밤중에 기도하기 위해서 깨었거나 아직도 어둠이 깃들었을 때에 새벽 기도를 시작하였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시인이 다른 사람들이 잠자는 시간에 깨어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은
- 하나님을 만나며 주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자 하는 갈급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란 표현은
- 무엇보다도 주의 말씀에 대한 소망이 강했다는 의미이다.
- 소망은 무엇보다도 기도에 있어서 힘을 주는 강력한 요소이다.
- 시인의 소망은 → 하나님의 말씀에 있었다.
- 그것은 확실한 닻과 같다.
→ 말씀에 소망을 두고 시인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기도하는 데 부지런하였다.
이는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시인의 소망이 얼마나 확고 하고 풍성한 것인지를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Ⅱ. 그의 헌신의 시간을 보자. "그는 아침의 새벽을," 아니 "야경을 기다렸다."
- 여기에서 다윗이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었던 것을 볼 수 있다. 아마도 그것이 그의 고귀함에 기여한 것 같다. 그는 "아직 좀더 자자"고 말하는 자들에 속한 사람은 아니었다.
- 그는 하루를 하나님과 더불어 시작하였다. 그가 다른 일을 허락하기 전에 아침에 제일 먼저 한 일은 기도하는 것이었다. 그때에 그의 마음은 가장 신선했고 가장 잘 움직였다. 만일 아침에 우리의 처음 생각이 하나님에 관한 것이 된다면 그것은 하루종일 우리를 두려움에서 지켜 주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 그의 마음은 하나님으로 충만했으며 그의 종교에 대한 관심과 기쁨으로 가득찼다. 적은 잠이 그의 성격을 형성했다. 그가 처음 잠에서 깨는 "야경"에서라도 그는 다시 자려는 것보다 묵상하고 기도하는 편을 좋아했다. 그는 자신의 필요한 휴식보다 "하나님의 입의 말씀을 더 높이 평가했다." 우리는 우리의 "일정한 음식"(욥 23:12)만큼 귀히 여기지 않고 있다.
- 그는 경건의 훈련을 위한 시간을 구하고자 했다. 그는 하루종일 일로 가득찬 사람이었지만 그것이 비밀의 헌신을 배제하지는 않았다. 다윗이 행한것처럼 기도할 시간을 찾지 못하는 것보다 잠에서 시간을 찾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우리가 밤에 기도할 때 그 기도는 우리의 위로가 된다. 우리는 때를 얻지 못하고 은혜의 보좌에 결코 나아갈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때를 가리지 말고 거기에 접근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바알은 잠자고 있을지 모르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결코 잠을 자지 않으며 그가 말씀하시지 않는 때가 없는 것이다.
📖 119:148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
‘새벽녘에’
- 해석하면, ‘내 눈들이 경점들에 깨었습니다’
- ‘경점’
- 히브리인들은 저녁 여섯 시부터 시작하여 다음 날 새벽 여섯 시까지를 네 시간씩 구분하여 경점이라 불렀다(애 2:19; 삿 7:19).
- 그렇다면 내 눈들이 경접들에 깨었다는 표현은
⇒ 다른 사람들이 잠을 자는 이 삼경의 시간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깨어 있었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 그리고 이 부분을 앞선 147절의 상반절과 관련시킨다면 새벽이라 불리는 제3경, 즉 오늘날로 오전 2-6시의 시간에 잠에서 깨어났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입장을 취하든 본문은 시인이 잠을 자야 할 시간에 잠을 자지 않고 깨어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 된다.
시인이 이처럼 다른 사람들이 잠자는 시간에 깨어 있었던 것은 ⇒ 주의 말씀을 묵상하기 위해서이다.
이처럼 잠조차 자지 못하고 일찍이 깨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했다는 본문의 표현에도
- 지금까지 여러 가지로 강조된 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시인의 열의가 녹아 있다.
- 아울러 이처럼 주의 말씀을
- 열성적으로,
- 그리고 계속적으로 묵상함으로
- 그는 언제,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를 알았던 것이다.
●구원을 향한 기도(시편 119:149)
1.다윗은 여기에서 은총과 위로를 위해서 상당히 장엄하게 하나님께 헌신하고 있다. 그는 그의 소리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을 간청한다. "여호와여 주께 할 말을 가지고 있나이다. 저는 은혜로운 알현(謁見)을 허락받을 수 있나이까?" 그렇다면 그가 무엇을 말해야 할까? 무엇이 그의 간구이며 무엇이 그의 요청인가? 그것은 긴 것이 아니며 오히려 상당히 짧은 것이다. "여호와여, 나를 살리소서. 나로 선한 것에 동요케 하시며, 나를 원기왕성하게 하시고 살아 있게 하시며, 그것을 기뻐하게 하소서. 은총의 기질이 행동에서 나오게 하소서."
2.그는 그의 요청이 받아들여질 것을 희망하면서 스스로 격려한다. 왜냐하면
(1)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선하시다. 그러므로 그는 내게 선대하실 것이며 나는 그의 자비 안에서 희망한다. 그의 인자하심은 내게 알려졌고 그것이 나를 소성케 하며 내게 생명을 넣어 줄 것이다.
(2) 하나님의 "규례," 즉 그의 지혜(그는 내가 필요로 하는 것과 내게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시며 따라서 나를 소성케 하실 것이라) 혹은 그의 약속, 그가 하신 말씀과 세 계약에 의해서 보장된 자비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그 계약의 방침에 "따라 나를 살리소서."
📖 119:149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내 소리를 들으소서 여호와여 주의 규례들을 따라 나를 살리소서
- 시인은 지금 풍성한 영적 생명과 육적 활력을 향유하게 되기를 간구하는 것
시인이 이처럼 하나님을 향하여 담대하게 직접적으로 이를 간구할 수 있었던 것은?
- 시인은 하나님의 백성이 이러한 축복 가운데 거하는 것이
- 주의 규례에 약속된 바이며,
- 그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시고 자비로우신 은혜를 감안할 때 마땅한 것임을 확신하였기에.
●환난 속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시편 119:150,151)
Ⅰ. 다윗이 그의 적들로부터 처한 위험에서의 불안이 있다.
📖 119:150 악을 따르는 자들이 가까이 왔사오니 그들은 주의 법에서 머니이다
- 본절에서는 시인이 하나님을 향하여 간곡하게 기도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 무엇인지를 생생하게 밝히고 있다.
- 이는 악을 쫓는 자가 가까이 왔기 때문이다.
‘악’
- 하나님의 법에서 멀어진 인간의 도모는 대부분의 경우 부정적이다.
‘따르는 자’
- 단순하게 따르는 자가 아니라 열심히 추종하는 자.
이처럼 악을 추종하는 자들이 가까이 왔다는 것은
- 성결한 삶을 살려는 시인에게 있어서 위기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이 시인에게 접근한 이유는
- 분명 자신들과 다른 삶을 사는 시인을 무고하게 핍박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1.그들은 매우 악독하여 그들의 악한 계획을 수행하는 데에 전념하였다.
그들은 "악을 좇는 자"들이었고 그들은 다윗이나 그의 친구들에게 할 수 있는 악을 좇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다윗을 해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어떤 추적도 실패하지 않으려고 했다.
2.그들은 매우 불경건하여 저희의 눈 앞에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저희는 주의 법에서 머니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그 확신과 명령에서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있으려 했다. 하나님의 백성을 박해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빛을 그렇게 만들어 버린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대항하는 그의 백성의 편이 되실 것을 확신할 수 있다.
3.그들은 다윗을 가까이 따랐고 그는 거의 저희의 손에 잡히려 하였다.
"저희가 가까이 왔나이다. 전보다도 더 가까이 왔나이다." 그리하여 저희가 그를 짓밟으려고 했다. 그들은 그의 발꿈치를 따랐고 바로 그의 등 뒤를 따랐다. 하나님은 때때로 그의 백성들을 압도하는 박해자들에게 고난을 주신다. 그러므로 다윗은 "저희와 사망의 사이는 한걸음뿐이니라"(삼상 20:3)고 말하였다. 아마도 이것은 다윗이 너무 기도에 열중한 연고로 여기에 나타났을 것이다(149절). 하나님은 그가 야곱에게 행하신 것같이 우리를 긴박한 위기로 몰아 넣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야곱과 같이 축복을 위해 씨름해야 할 것이다.
Ⅱ. 다윗은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실 것을 확증했다.
나를 해치려고 '저희가 가까이 왔사오나, 여호와여 주께서 가까이 계시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그들보다 나를 더 강하게 하사 나를 도와 주시며 그들보다 더 가까이 임하사 나를 도우신다. 환난이 가까울 때 하나님께서 가까이 하시는 것은 성도들의 행복이며 어떠한 환난도 저희와 하나님의 사이를 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는 결코 멀리서 찾아지지 않고 오히려 우리의 부르짖음 안에 거하시며 하나님의 은혜는 그의 부르심 안에 있는 것이다(신 4:7). "주의 모든 계명은 진리니이다." 적들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폐하려고 생각했지만, 그는 그것이 저희의 능력 밖에 있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나님의 약속은 신성하여 침범할 수 없을 정도로 진실하며 틀리는 일이 없이 수행되어질 것이다.
📖 119:151 여호와여 주께서 가까이 계시오니 주의 모든 계명들은 진리니이다
‘주께서 가까이 계시오니’
- 이는 시인이 하나님을 ‘당신' 이라 호칭할 만큼 친근하게 생각한다는 사실과 더불어 하나님은 가까움 그 자체란 의미를 전달한다.
- 즉 앞선 150절에서 시인은 동일 어조의 동사 ‘카레부'를 사용하여 악을 쫓는 자들이 가까이 접근하는 것으로 묘사하지만 본절에서는 형용사 ‘카로브'를 사용하여 하나님이 이미 시인에게 가까이 와 계신 상태임을 묘사하는 것이다.
한편 시인은 하반절에서도 동사를 사용하지 않음으로 주의 모든 계명이 진리 그 자체임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의 계명이 진리라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너무나 자명하고 확고부동한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서 굳이 이 사실을 밝허는 어유는 무엇 때문인가?
- 그것은 앞선 상반절과 관련해 이해되어야 한다.
앞서 시인은
- 하나님이 자기 곁에 가까이 계심, 즉 함께 하심을 분명하게 체험하였다.
→ 이처럼 하나님께서 당신을 경외하는 자, 당신의 말씀을 사랑하고 준행하는 자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을 구원하시는 것은
- 하나님의 계명에 약속된 바이기도 하다.
- 이를 감안하면 본문은 단순히 하나님의 계명이 지닌 성격을 무의미하게 반복하거나 나열한 것이라 할 수 없다.
- 도리어 이는
- 계명을 통해 약속된 바들, 즉 성도와 함께 하시며 그들을 보호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 시인 자신이 친히 경험하고,
-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삶에 실제적으로 이루어진 사실을 확신과 감격에 찬 어조로 외치는
●진실한 주의 계명(시편 119:152)
이것은 그가 앞에 나온 구절에서 "주의 모든 계명은 진리니이다"라고 말한 것을 확인해 주고 있다. 그는 계약, 즉 하나님께서 수천대에 이르기까지 명하신 말씀을 나타내려고 하고 있다. 이것은 변치 않는 것이며 진리 자체와 같이 진실한 것이다. 왜냐하면
1. 하나님께서 그것을 그렇게 세우셨기 때문이다.
그는 그것이 영원까지 타오르도록 하셨다. 그 본질이 그러하며 만물에게 그렇게 명하셨다. 그러므로 그것은 확신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약속은 "영원히 세우신 것"이며 천지가 없어진다고 할지라도 약속의 일점일획도 변치 않게 될 것이다(고후 1:20)
2. 다윗도 그것을 그렇게 세웠다.
그는 그의 마음에 일어난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로 말미암아(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에 완전히 설복되고 충만한 만족으로 말씀을 의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로 말미암아 그가 기대했던 것을 초월하는 약속이 성취되었기 때문에 말씀을 영원히 세웠다. 이와 같이 그는 그의 소년시절부터 그가 하나님을 향해 바라보기 시작한 이래로 연로하였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이 그의 모든 것을 거기에 내걸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확증은 그 자신의 일생의 관찰과 경험에 의해서 확인된 것이며 그 앞에서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 살다간 많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얻어진 것이다. 하나님을 대하며 그를 신뢰한 모든 자들은 저희가 하나님께서 신실하시다는 것을 알았노라고 고백하게 될 것이다.
📖 119:152 내가 전부터 주의 증거들을 알고 있었으므로 주께서 영원히 세우신 것인 줄을 알았나이다
본절 전체를 우리 말 어법에 충실하게 다시 번역하면
- ‘당신의 증거들로 인하여 나는 오래 전부터 당신어 그것들을 영구허 세우신 것을 알았습니다(NASE Of old I have known from Thy testimonies. That Thou hast founded them forever)'
‘알고 있었으므로’
- 원형 ‘야다으’
- 추론을 통한 단순한 지적인 앎이 아니라 경험을 통한 생생한 앓, 그 대상의 본질 그 자체에 이를 정도로 확실하게 아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
- 즉 시인은 경험을 통하여 또는 의심할 여지 없이 너무나 확고 부동하게 주께서 주의 증거들을 영원히 세우셨음을 확신하였던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자증성
시인이 주의 증거들을 통하여 확고히 알게 된 것은
- 주께서 당신의 증거들을 확고ㅎ; 세우셨다는 것이다.
시인이 이러한 사실을 말하는 것은 주님의 증거들이 영원한 기초를 가졌으니만큼 그것을 전복시킬 힘은 세상에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이처럼 시인이 하나님의 증거가 영원하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행하셨던 일을 지금도 행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신케 한다.
과거에 일어났던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다시 일어날 수 있다. 과거의 신앙적 체험이 우리의 미래에 대한 확신까지 지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다.
20연: 주의 규례와 인자에 기초하여 자신을 소성케 해주시기를 간구하는 내용
📖본시의 제19연인 앞선 145-152잘 단락에서 시인은 말씀을 사모하는 부르짖음과 말씀에 대한 자신의 절대 신앙을 선언하였다.
이제 본절부터 160절까지 이어지는 단락은 ‘레쉬'로 시작하는 제20연으로서 주의 규례와 인자에 기초하여 자신을 소성케 헤주시기를 간구하는 내용이다.
이 부분 역시 앞선 제19연과 마찬가지로 암울한 상황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비탄시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지닌다.
→ 이러한 사실은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러운 상황에서 소성의 역사, 생명의 역사를 구하는 호소가 반복적으로 되뇌어지는 것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었다(154.156절).
즉 시인은 여호와의 긍휼하심과 성실하심을 통절한 심정으로 간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앞선 제19연처럼 본연도 하나님 말씀의 영원함에 대한 자신의 확신을 피력함으로 끝맺는다.
- 이는 하나님 말씀의 영원함이 시인이 처한 문제의 궁극적 해결의 실마리아며 방향이며 능력임을 분명히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즉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고 확고부동한 것으로 그것을 믿는 자에게 흔들림 없는 견고한 소망을 제공하고 있음을 암묵적으로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구원에 대한 확신(시편 119:153,154)
Ⅰ. 여기에서 다윗은 고난 중에 구원을 위해 기도한다. "고난당하는 자가 있습니까? 그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라." 그로 하여금 다윗이 여기에서 하는 것같이 기도하게 하라.
1.그는 하나님의 긍휼을 보고 있다. 그리고 "나의 고난을 보소서"하고 기도한다.
"주의 생각에 그것을 두소서. 그리고 그 모든 생황을 보소서. 무관심한 자와 같이 앉아 있지 마소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의 고난을 결코 잊지 않으시며, 오히려 우리를 "기억나게" 하실 것이다(사 43:26). 우리의 처지를 그 앞에 나타내면 긍휼히 여기시는 생각으로 그의 지혜 가운데서 그것을 제하실 것이며 그의 때와 뜻에 따라 적당하게 고려하여 주실 것이다.
2.그는 하나님의 권능을 보고 "나를 건지소서"하고 기도한다. 그리고 또 반복하여 "나를 건지소서"하고 기도한다.
"나의 고난을 보시고, 나를 그로부터 건지소서." 하나님의 구원을 약속하셨다(시 50:15). 우리는 그의 뜻에 대한 복종으로 그리고 그의 영광에 대해서 구원을 간구할 수 있으며 그러면 우리는 그를 더욱 잘 섬길 수 있게 될 것이다.
3.그는 하나님의 의를 보고 "나의 원한을 펴소서"라고 기도한다.
"주는 나의 후원자요 지지자이시며 나를 주의 상담자로 삼으시니이다." 다윗은 정당한 사유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의 대적자들이 많고 강하여 그는 그들에 의해서 파멸될 위험 속에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께 그의 성실함을 명백히 해 주실 것과 저희의 거짓된 송사를 침묵케 해 주실 것을 간구한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의 원한을 펴시지 않는다면 누가 펼 것인가? 그는 의로우시며 그의 백성들은 그에게 자신들을 맡긴다. 그러므로 그는 그것을 행하실 것이며 충분하게 그것을 행하실 것이다(사 51:22; 렘 50:34).
4.그는 하나님의 은총을 바라보고 기도한다.
"나를 소성케 하소서. 여호와여, 나는 약하여 나의 고난을 참을 수 없나이다. 내 영혼이 시들고 수그러지려고 하옵니다. 오! 구원이 이뤄질 때까지 주께서 나를 살리시며 위로하시는도다!"
📖 119:153 나의 고난을 보시고 나를 건지소서 내가 주의 율법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
- 시인은 자신이 너무나도 고통스런 상황에 처해 있었지만,
- 결코 하나님 말씀을 잊거나 그것을 의심한 적이 없다는 의미를 함축적으로 전달한다
Ⅱ.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이 신뢰와 그 지시에 대한 그의 복종적인 태도에 대해서 말한다.
'주의 약속의 말씀대로 나를 건지시며 소성케 하소서. 내가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규범과 우리의 거처로 삼아 거기에 가까이 접근하면 할수록 우리는 적당한 때에 구원을 이루게 된다는 확증을 더욱 가지게 될 것이다.
📖 119:154 주께서 나를 변호하시고 나를 구하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리소서
‘나를 구하사’(우게알레니)
- 이는 ‘무르다', ‘가장 가까운 친척이 되다', ‘배상하다’, ‘복수하다' 등의 의미를 지닌다.
- 이는 율법에 기록된 바 친족이 지닌 의무와 깊은 관련을 지닌 단어이다.
- 율법에서는 기업이나 몸을 팔아야 할 만큼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하거나 원수에게 신체적 상해를 당하거나 목슴을 잃게 되었을 경우 가장 가까운 친족이 나서서 그 경제적 손실을 보상하거나 신체적 상해 내지는 목숨을 잃은 것에 대해 보복의 의무를 수행할 것을 명하고 있다.
- 즉 가장 가까운 친족이 자신의 혈육을 보호해야 함을 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시인이 여기서 이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 이는 두말할 나위도 없이 하나님을 자신의 피붙이와 같은 구원자로 확신했던 시인의 믿음을 반영한다.
→ 마치 가장 가까운 친족이 자신의 혈육을 위헤 구원자로 기꺼이 나서는 것과 같이,
→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그러한 구원자로 친히 나서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나를 살리소서’
- 이는 시인이 현재 죽은 자와 방불할 정도로 흑득한 고난 중에 처하였음을 함축하는 표현이다.
- 그런데 이처럼 소성케 헤달라고 간구하면서 시인은 ‘주의 말씀대로'라는 표현을 덧붙인다.
- 이는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생명의 근원이며 생명을 소생케 하는 역사를 일으키는 능력이 됨을 확신하는 시인의 믿음을 반영하는 표현이다.
●구원받을 수 없는 악인들(시편 119:155)
1.여기에 사악한 다들에 관한 서술이 나타나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례를 행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구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례에 가까이 하지 않으려 하고 저희의 의무를 알고자 갈망하지도 않으며 그것을 행하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법을 생각하지 않는 악한 자들은 실로 그것을 묻지도 않고 넓은 길에서 살기로 결심하고 저희의 마음의 방편대로 살아가려고 한다.
2.악한 자들의 운명을 보라.
"구원이 악인에게서 머니이다." 그들은 어떤 좋은 자리에서도 일상적인 구원도 약속받을 수 없다. "저 사람으로 하여금 여호와께 속한 어떤 것도 받을 수 있다고 생각치 말게 하소서." 번영 중에 있을 때 주의 율례를 구하지 않는 자들이 어떻게 저희가 곤경 중에 있을 때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는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러나 영원한 구원은 확실히 저희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 그들은 때가 가까워서 저희가 하늘에 가려고 속임수로 아첨한다. 그러나 저희는 실수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도달할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져있다. 그들이 죄가운데 머물러 있으면 있을수록 구원은 더욱 멀어져 간다. 아니, 구원이 저희에게서 멀어지는 동안에 저주가 가까이 임한다. 그것은 결코 지나가는 것이 아니다. '보라, 심판자가 문 앞에 서 있다."
📖 119:155 구원이 악인들에게서 멀어짐은 그들이 주의 율례들을 구하지 아니함이니이다
악인은 하나님의 율례를 탐구하지도 않고 지키기 위하여 힘쓰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고의적으로 악을 추구하며 범죄를 일삼고 하나님 말씀을 따르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는 의인들을 고통스럽게 한다.
●하나님의 은총을 감탄함(시편 119:156)
1.다윗은 여기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감탄한다.
"여호와여, 주의 긍휼이 크옵니다." 하나님의 성품의 인자하심은 그것이 그의 영광인 것과 같이 모든 성도들의 기쁨이 된다. 그의 자비는 부드럽다. 왜냐하면 그는 연민의 정으로 충만하시기 때문이다. 주의 자비는 모든 자에게 자비로 풍요케 하신다. 다윗은 사악한 자들의 비참성을 말했다(155절). 그러나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하신 분이다. 하나님에게는 풍부한 긍휼이 있고 저희가 "긍휼의 풍성함을 멸시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구원하신다. 죄인의 운명으로부터 구원받은 자들은 영원히 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자비의 위대성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2.그는 하나님의 은총을 간구한다.
"주의 규례를 따라," 즉 새로운 계약의 방침에 따라(그가 그 은총을 시여하기 위해 세운 규칙에 따라0 혹은 그의 방법과 습성과 사용에 따라 그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에게(132절) 은총을 베풀어 주실 것을 간구한다.
📖 119:156 여호와여 주의 긍휼이 많으오니 주의 규례들에 따라 나를 살리소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약속해 주신 유일한 이유는?
- 하나님 자신의 본성에 기인한 풍성한 긍휼하심 때문이다.
- 그것을 철저히 깨닫는다면 우리는 조금도 주저하거나 의심하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긍휼하심을 믿고 나아오는 자를 기꺼이 받아주시기 때문이다.
- 그것을 철저히 깨닫는다면 우리는 조금도 주저하거나 의심하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주의 긍휼이’
- ‘긍휼
- 본래 ‘자궁’이란 뜻이나, 많은 경우 ‘긍휼, 사랑, 연민’ 이란 의미로 쓰임.
- 이는 어머니의 자궁어 아기를 보호하여 키우며 성장시키듯이 하나님의 마음 속에 있는 사랑과 불쌍히 여김이 우리를 보호하고 위로하고 성장시키는 탯줄이며 양분임을 보여준다.
‘많으오니’
- 이는 하나님의 자비하심, 긍휼하심이 많고 충족할 정도로 채워져 었으며 넘치도록 풍성한 것임을 나타낸다.
- 특히 그 자체의 의미만으로도 층족함과 풍성함을 나타낼 수 있음에도 이를 복수형으로 표기한 것은
-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의미를 강조적으로 전달하기 위함으로 여겨진다.
- 하나님의 긍휼은 약한 자와 고통 당하는 자에게
→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크고도 많게 나타난다.
주의 규례들에 따라 나를 살리소서
- ‘규례’ = 본시의 핵심 사상, 주제인 하나님의 말씀
- ‘나를 살리소서’ 라는 시인의 간구의 근거.
‘주의 규례들에 따라’ 가 앞뒤 표현 사이에 둔 것은 의미 심장하다.
- 크고 풍성한 하나님의 긍휼,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한 구원의 은혜가 바로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임을 의미한다.
- 즉 하나님의 말씀은
- 하나님의 백성둘이 은혜를 구하는 통로이며 구원을 향해 나아가는 생명의 길이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 시인은 이러한 표현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 외에 다른 어떤 방편으로도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하거나 체험할 수 없음을 표현한 것이다
●시편 속에서의 신앙(시편 119:157)
1.다윗은 곤경과 위기로 둘러 싸였다. "나를 핍박하는 자와 나의 대적이 많사옵니다." 사울왕이 그의 핍박하는 자이며 놀라운 대적이었을 때 그 외에도 많은 적들이 있었다. 대다수가 남용된 권위의 악독한 행실을 따랐다.
다윗은 공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에 많은 적들이 있었지만 동시에 그를 사랑하고 그가 잘 되기를 원했던 많은 친구도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다윗은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의 모형이었다. 대적들과 박해자들이 그리스도와 교회에도 수 없이 많았다.
2.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의무의 길을 정했다. '그러나 주의 증거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나는 내가 하나님의 증거를 고수할 때 하나님은 내게 향하신 것을 알았나이다. 그런데 누가 나를 대적하리요." 대적이 많더라도 자기의 의무의 길을 꾸준히 지키는 사람은 아무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 119:157 나를 핍박하는 자들과 나의 대적들이 많으나 나는 주의 증거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 앞선 153-156절에서
- 시인은 주의 말씀의 약속대로 자신을 소성시켜 주기를 간구하였다.
- 이제 본절 이하 159절에서
- 시인은 대적자들 앞에서도 굿굿이 주의 범을 사랑하고 있음을 고백하고 다시 하나님을 향하여 소성케 하여주시기를 간구한다.
- 이러한 내용은 자신을 핍박하는 자와 대적이 많다는 본절의 고백으로 시작된다. 지금까지 시인은 핍박자와 적대자가 많다고 직접 표현하기보다는 암시적으로 표현하였다(22.23.51,61절).
- 그러나 본절에서는 이를 직접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자신의 곤고한 처지와 더불어 이러한 암울한 상황 가운데서도 주의 증거를 떠나지 않았음을 부각시키고 있다.
‘나를 핍박하는 자들과 나의 대적들이 많으니’
- 대적들이 자신을 그저 포위하고 둘러싼 정도가 아니라 겹겹이 자신을 둘러싸고 숨조차 쉴 수 없을 정도로 압박해 들어오는 듯한 뉘앙스.
- 그러나 시인은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주의 증거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다고 선언한다.
- 시인이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지 않을 수 었었던 것은
- 강하고 온전해서가 아니었다.
- 이는 전절에서 밝힌 바와 같이 하나님의 긍휼이 크기 때문이었다.
- 즉 그가 의지하며 확신하는 바, 그리고 그에게 베풀어진 바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너무나 컸기에
무수한 대적들의 공격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 아울러 이는 시인이 그 모든 핍박자들, 무수한 대적들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던 유일하고도 효과적인 방편이었다. 그는 결코 자신 혼자 힘으로 대적들을 상대할 수 없었다.
- 그러나 그는 자기 혼자 힘으로 페할 수밖에 없는 대적들이었지만,
하나님의 증거의 말씀, 은혜의 말씀을 의지함으로 승리할 수 있음을 확신하였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말씀을 의지하고 거기서 떠나지 않은 것이다.
●악한 자를 보는 슬픔(시편 119:158)
1.여기에 악한 자들의 사악한 성격으로 인한 다윗의 슬픔이 나타나 있다.
그가 본국에서 주로 지냈지만 때때로 외국을 보았을 때에도 모든 측면에서 악한 자의 행실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저희의 죄가 모든 사람들 앞에 공개된 "궤사한 자들을 보았다." 그는 저희가 하나님을 모독하고 사탄을 섬기며 세상을 타락시키는 것을 보고서 "슬퍼하였다." 그는 저희가 자신들의 영혼을 파멸시키며 또한 그 궤사한 자들의 수가 무척 많고 무모하며 경망스러우며 불안한 영혼을 저희의 올무에 걸려 넘어지게 꾀하는 것을 볼 때 슬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인류의 복지를 존중하는 어떤 자들에게도 슬픔이 되지 않을 수 없다.
2.그러한 슬픔의 이유를 보자.
그는 저희가 그에게 해를 끼쳤기 때문에 슬퍼한 것이 아니라 저희가 하나님을 거역하기 때문에 슬퍼하였다. "저희가 주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였다." 진정으로 죄를 미워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법을 범하고 그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을 죄로 여기고 미워한다.
📖 119:158 주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는 거짓된 자들을 내가 보고 슬퍼하였나이다
‘주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는 거짓된 자들;
- 현재 속임과 약탈, 범죄를 자발적으로 행하고 있는 모든 악인들을 지칭한다. 이들은 마땅히 경멸과 멸시, 저주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시인은 이들을 보고 슬퍼하였다.
‘슬퍼하였나이다’
- 한글 개역 성경만을 가지고 보면 이들 악인들의 악행을 보고 연민을 느끼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표현한 것으로 보언다.
- 물론 이러한 의미도 함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 그러나 본문에 함측된 지배적인 의미는
- 이보다는 이들의 악행,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지키지 않고 멸시하는 것에 대한 의로운 분노의 감정을 발한 것이 더 가까운 표현이다.
- 다른 번역본,
- ‘혐오하며, 심히 불괘하옵니다, 참으로 역겹습니다’로 번역.
본문을 통해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는 성도가 가져야 할 자세가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 그것은 범죄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만 아니라,
- 하나님 말씀이 훼손되고 무시받는 현실, 그러고 그러한 악을 저지르는 이들 앞에서 의로운 분노를 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윗의 호소(시편 119:159)
1.다윗은 여기에서 하나님의 법도를 사랑하고 있음을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다.
"여호와여 주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내가 주의 법도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그것을 보시고 주께서 주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대하시는 대로 나를 대하소서. 주는 무엇보다 주의 이름을 크게 하셨나이다." 그는 "내가 주의 율례를 얼마나 성취하였는지 보소서"하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여러 점에서 부족했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다. 오히려 "내가 주의 법도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소서"하고 말했다.
2.그 후의 그의 간구를 보자.
"나를 소성케 하소서. 원기로 나의 의무를 향하게 하시며, 나를 살리소서. 내가 주의 말씀을 사랑하였지만 나의 공적을 따라서나 아니라 오직 주의 인자하신 대로 나를 살게 하소서."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아니 생명 그 자체보다 더 좋은 것을 간구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소성케 하실 것이라는 사실 이외의 다른 것으로 소성케 되기를 갈망할 필요가 없다.
📖 119:159 내가 주의 법도들을 사랑함을 보옵소서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살리소서
- 앞서 시인은 자신이 궤사한 자를 보았다고 한 데 이어,
↔ 여기서는 하나님을 향하여 궤사한 자와 대조되는, 주의 법도를 사랑하는 자신을 보아달라고 간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간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로 사랑하는 자가 아니면 드러기 어려운 대담한 간구이다.
내가 주의 법도들을 사랑함을 보옵소서
- 율법에서는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가장 첫번째 항목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명한다.
- “이스라엘아 들으라•••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4,5).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그를 사랑하며"(신 10:12).
- 이같은 말씀에서 가르치듯이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향하여 가장 먼저 당신을 사랑할 것을 요구하신다.
-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어떻게 증명될 수 있을까?
- 이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증명된다.
-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자는 그 계명을 지킨다고 말씀하셨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것이 곧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인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있는 것을 들어 →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증명하고 있다.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살리소서
- 본문의 표현은 시인이 생사의 기로에 있을 만큼 흑독한 고난 중에 있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 이를 감안할 때 앞선 상반절은 더욱 감동적으로 둘려진다. 즉 시인은 이처럼 혹독한 위기와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기 위해 몸부럼쳤던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 그러나 그는 그것을 근거로 자신의 목슴을 구해 주시기를 구하지 않는다.
그가 구원과 소성을 간구하면서 그 근거로 내세우는 것은
= ‘주의 인자' .- 즉 그는 자신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우심, 긍휼의 풍성하심을 근거로 소성과 회복의 역사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 그가 비록 하나님을 진실하게 사랑하였고 온전히 사랑했지만, 그것은 결코 내세울 만한 것이 아니며 그것으로 구원이 보장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 그래서 그는 오로지 하나님의 인자에 근거해 구원을 요청하는 것이다.
- 즉 그는 자신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우심, 긍휼의 풍성하심을 근거로 소성과 회복의 역사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시편 119:160)
다윗은 여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신실하심으로 자신을 위로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격려가 거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1.그것은 지금까지 항상 신실한 것으로 발견되어 왔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생명을 내건 어떤 자도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태초로부터 진리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자녀들에게 자신을 계시하기 시작한 이래로 그가 하신 말씀은 모두 진실되며 신뢰를 받았다. 교회는 그 시초부터 이 반석 위에 세워졌다. 교회는 많은 나라들과 같이, Quod initio non valet, tractu temporis convalescit - 즉 처음에는 타당성을 결여했던 것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것을 획득했다는 서슬과 관용법을 최선의 청원으로 삼는 많 은나라들과 같이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그 타당성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시초부터 진리였다." 그의 나라는 확실한 기초위에 세워졌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앙과 사랑으로 받아들인 모든 사람들은 그 안에 있는 "모든 말씀이 신실하고 모두 받아들이기에 극히 가치있는 것"임을 발견했다.
2.그것은 의로운 것이기 때문에 끝까지 신실한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주의 의로운 모든 규례가 영원하리이다." 그것은 인간들의 영원한 운명을 조정하면서 번치 않고 영속적인 의무로 나타날 것이다.
📖 119:160 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이오니 주의 의로운 모든 규례들은 영원하리이다
- 하나님의 말씀은 태초부터 진리였으며 영원히 변치 않는 규례이기 때문에 우리 인간들은 이에 의존하여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