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6월 19일 수요일 묵상구절 시편 119:161-176

Jeehyun 2024. 6. 19. 12:47

맥체인성경읽기

신명기 24, 시편 114, 115, 이사야 51, 요한계시록 21

묵상구절

119:161 고관들이 거짓으로 나를 핍박하오나 나의 마음은 주의 말씀만 경외하나이다

119:162 사람이 많은 탈취물을 얻은 것처럼 나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나이다

119:163 나는 거짓을 미워하며 싫어하고 주의 율법을 사랑하나이다

119:164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

119:165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119:166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바라며 주의 계명들을 행하였나이다

119:167 내 영혼이 주의 증거들을 지켰사오며 내가 이를 지극히 사랑하나이다

119:168 내가 주의 법도들과 증거들을 지켰사오니 나의 모든 행위가 주 앞에 있음이니이다

119:169 여호와여 나의 부르짖음이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깨닫게 하소서

119:170 나의 간구가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건지소서

119:171 주께서 율례를 내게 가르치시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하리이다

119:172 주의 모든 계명들이 의로우므로 내 혀가 주의 말씀을 노래하리이다

119:173 내가 주의 법도들을 택하였사오니 주의 손이 항상 나의 도움이 되게 하소서

119:174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사모하였사오며 주의 율법을 즐거워하나이다

119:175 내 영혼을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를 찬송하리이다 주의 규례들이 나를 돕게 하소서

119:176 잃은 양 같이 내가 방황하오니 주의 종을 찾으소서 내가 주의 계명들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


매튜헨리/옥스퍼드

21연(161-168절) : 말씀에 대한 사랑을 토로하고 말씀을 경외하는 자로서 평안을 확신하며 자기 순결을 토로함


 📖 제21연부터 제20연까지 단락인 137-160절에서 시인은 상황을 초극하는 말씀 사모의 열정을 토로하고 말씀에 의지한 소성을 간구하였다.

이제 제21연과 제22연인 161-176절에서 시인은 말씀을 경애하는 자로서 말씀에 대한 열정과 확신을 토로하며 말씀에 약속된 구원과 인도의 실현을 간구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함(시편 119:161)

다윗은 여기에서 우리로 하여금

1. 그가 인간을 두려워함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그의 의무에 용기를 잃었는가를 알게 해 준다.

"방백들이 그를 핍박하였다."

그들은 그들 국가에 대한 반역자와 적으로 간주했고, 그러한 생각 하에 그의 생명을 추구했고 그에게 "가서 다른 신을 섬기라"(삼상 26:19)고 명령했다. 핍박받는 것은 많은 선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운명이 되어 왔다 그런데 방백들이 박해자가 된다면 그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손에 검을 들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을 해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편에 속한 법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정의라는 미명과 구실로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치자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그리고 그를 위해 사용되어져야 할 그 전력이 그에 대항하여 사용되어져 왔다는 사실은 슬픈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전 5:8). 방백들이 그를 박해할 때 그가 그러한 핍박이 이유 없는 것이었다고 진실되게 말할 수 있었고, 그들에게 결코 도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다윗에게는 위로가 되었다.

2. 그러나 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얼마나 그의 의무에 충실했는가를 알게 해 준다.

"그들은 내게 그들을 두려워하게 했고 그들의 말을 무서워하게 하여, 나를 그들이 명하는 대로 행하게 하였으나 나의 마음은 주의 말씀만 경외하나이다. 그리고 누가 나를 불쾌하게 하고 나와 싸운다고 할지라도 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로 결심하고 그와 좋은 관계를 맺기로 작정하였다."

모든 은혜로운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며 그 법도의 권위와 그 경고의 위협을 두려워한다. 그렇게 행하는 자들에게는 인간의 권세와 진노가 전혀 무서운 것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비록 우리가 모든 세상의 언짢은 일에 빠진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인간보다 하나님께 복종해야 하며 하나님의 은총을 확신해 야할 것이다(눅 12:4, 5).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는 마음은 핍박으로부터 유래되는 사람들을 이길 수 있는 무장이다.


📖 119:161 고관들이 거짓으로 나를 핍박하오나 나의 마음은 주의 말씀만 경외하나이다

고관들

  • 당시 사회를 대표하는 지도급 인사들을 가리킨다.

‘거짓으로’ (힌남)

  • 이들이 어떻게 시인을 핍박했는지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으나 하나님의 법을 무시한 자들이었으므로 법 집행에 공정하지 못했던 것 같다.
  • 힌남: ‘까닭 없이, 이유 없이’

불의 앞에서 시인의 태도

  • 이러한 일이 발생할 때 사람둘은 권력자들의 횡포를 두려워하여 그들에게 아부하며 그둘의 악하고 그릇된 일에 동조하기 쉽다. 그러나 시인은 악한 방백을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럴수록 주의 말씀을 경외하였다

나의 마음은 주의 말씀만 경외하나이다

  • 이러한 일이 발생할 때 사람둘은 권력자들의 횡포를 두려워하여,
    → 그들에게 아부하며 그둘의 악하고 그릇된 일에 동조하기 쉽다.
    그러나 시인은 악한 방백을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럴수록 주의 말씀을 경외하였다.

  • ‘경외하나이다’
    • 주로 두려움으로 인한 떨림을 나타낼 때 쓰이지만, 이는 기쁨으로 인한 떨림을 나타내는 데도 쓰인다.
  • 본절 원어문장의 어순은 - ‘자신이 경외하는 대상이 오직 주의 말씀이란 사실’을 강조한다.
    → ‘나의 마음은’
    • ‘마음’ (레브)
      • 일반적으로 ‘마음' 그 자체만 아니라 감정과 의지, 지성까지도 포괄하는 단어이다.
      • 이를 통해 시인은 자신의 마음과 생각, 감정과 외지 등 전인격을 다헤 하나님을 경외하고 소중히 여겼음을 나타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즐거움(시편 119:162)

1.여기에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취한 즐거움이 나타나 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했고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발견케 하시사 다른 나라들이 어두움 가운데 앉아 있을 때에 이스라엘이 말씀의 빛으로 축복받고 그가 말씀을 이해하는 대로 인도되며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게 된 것을 기뻐하였다. 그는 말씀을 읽고 들으며 말씀을 묵상하는 데서 기쁨을 취했고 그가 말씀을 대하는 모든 것이 그에게 유쾌한 것이 되었다. 그는 바로 앞에서 그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였다고 말하고 여기서는 그가 말씀을 즐거워한다고 선언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면 할수록 더욱 그 말씀을 기뻐하게 될 것이다.

2.그 즐거움의 정도가 나타나 있다.

"사람이 많은 탈취물을 얻은 것처럼 즐거워하나이다."

이것은 적들에 대한 승리를 생각하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는것"은 많은 대적을 통해서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복의 기쁨과 영광 외에도 즐거움을 더해 주는 전쟁터의 전리품에 의해 얻어지는 큰 이득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정복자, 즉 말할 수 없이 많이 획득한 자들보다 더 크게 될 것이다.


📌 119:162 사람이 많은 탈취물을 얻은 것처럼 나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나이다

앞선 161절에서 시인은 주의 말씀에 대한 자신의 경외감을 토로하였다.

이제 본절에서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자신의 삶의 태도를 토로한다.

  • 즉 시인은 율법의 교훈을 어떤 재물보다도 참된 보화로 보았던 앞선 여러 구절들(14, 72, 127절)과 유사하게 여기서는 생사가 엇갈리는 전쟁에서 승리한 군사가 그 얻은 전리품으로 누리는 기쁨을 주의 말씀으로 인해 얻은 기쁨에 비유하고 있다.

탈취물을 얻는 것은 = 승리의 영광을 가리킨다.

  • 따라서 전쟁에서 이긴 자들이 원수의 탈취물을 취하는 것은
    ⇒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기쁨 가운데 하나이다.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 위해 전쟁을 하는 것 같은 분투를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깨달음을 얻었고, ⇒ 거기서 얻은 기쁨을 전쟁에 승리하고 많은 전리품을 얻었을 때의 기쁨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전쟁에 승리한 군사가 전리품을 얻는 기쁨에 빗대어 말씀을 즐거워한다고 표현한 데에는 → 그 말씀을 통해 승리를 구가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시인의 확신이 함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의 대상으로(161 절) 여길 뿐 아니라 승리의 기쁨으로 묘사한 시인은

하나님에 말씀에 대한 진정한 가치를 알고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미워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시편 119:163)

사랑과 증오는 인간의 주요 감정이다. 만일 그것들이 올바르게 고정된다면 나머지는 따라서 움직인다 .우리는 다윗에게서 그것들이 고정되어 있는 것을 본다.

1. 그는 죄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죄를 생각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내가 거짓을 미워하며 싫어하나이다"

그것은 모든 죄에 적용되는 것이며 우리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불성실하게 대하고 우리 자신들을 기만하는 것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위선은 거짓이다. 거짓된 교리도 거짓이다. 배신(背信)도 거짓이다. 교제와 대화에 있어서의 거짓은 모든 사람이 미워하고 싫어하는 죄이며 미워하고 또 갑절이나 증오하는 죄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즉 "거짓된 혀와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잠 6:16) 등의 일곱가지 죄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자기에게 거짓을 말하는 것을 미워한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하기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짓을 말하는 것을 더욱 미워해야 할 것이다.


 📌 119:163 나는 거짓을 미워하며 싫어하고 주의 율법을 사랑하나이다

  • 거짓 : 거짓 종교, 거짓된 도덕적 교훈.
  • 거짓된 종교와 거짓된 교훈이 결과적으로 거짓말하는 습관까지도 가져오므로 여기에는 거짓된 삶도 포함될 수 있다.

거짓에 대한 시인의 태도: ‘미워하며 싫어하고’

  • 그런데 시인은 이러한 거짓을 미워한다고 말할 뿐만 아니라 싫어한다고 말한다.
  •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는 자는
    • 거짓을 혐오하고,
    • 그것과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것어다. 

2.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뿌리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

  • 그러므로 그는 거짓을 싫어하였다.
    → 왜냐하면 거짓은 하나님의 모든 법에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 그가 하나님의 법을 사랑한 이유는
    → 그 진실 때문이었다.

우리가 진실의 온아(溫雅)한 아름다움을 보게 되면 될수록 우리는 거짓의 밉살스러운 흉한 모습을 더욱 보게 될 것이다.


●끊임없는 찬양(시편 119:164)

다윗이 이 시편에서 많은 탄식을 하였지만 그것들이 그의 찬양을 밀어제칠 수 없었고 그에게서 찬송이 떠나게 할 수 없었다. 하나님의 자녀는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간에 찬양할 소재를 결핍당하지 않으며, 그러므로 마음이 갈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본다.

1. 다윗은 "하루에 일곱 번씩"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는 아주 빈번하게 매일 찬양할 뿐만 아니라 하루에도 여러 번 찬양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한 주일에 한두 번 예배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지만 다윗은 적어도 하루에 일곱 번씩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은 우리가 상당히 풍부하게 해야 할 의무이다. 우리는 매 식사 시간마다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며 모든 경우에 그에게 찬양을 돌리고 모든 일에 그에게 감사해야 한다. 우리는 하루에 일곱 번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왜냐하면 찬양할 주제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며 우리의 애정이 지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62절 참조)


📌 말씀을 경애하는 자로서의 - 그 열정이 찬양으로 표출됨.

→ 이는 시인이 자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았음을 보여준다.

7번: 자신이 계속하여 매우 빈번하게 하난미을 찬양하고 있음을 나타냄.


2. 그가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하였는가?

"주의 의로운 규례를 인하여"찬양하였다.

우리는 공평하고 선한 그의 법도를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며 그의 약속과 경고가 그의 섭리 가운데서 수행되는 것을 인하여 찬양해야 한다. 우리가 은총을 통하여 고난에 의해 유익을 얻게 된다면 우리의 고난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것이다.


📌 ‘주의 의로운 규례’

율법

  • 율법은 하나님 자신의 의로운 성품을 반영하는 것이다.
  • 그것은 죄인들에게 대헤서는 형벌로 드러나며 의인들에 대해서는 구원과 상급으로 드러난다.
  • 세상의 법, 세상의 의라는 것은 불완전하고 불공정하게 적용되는 예가 적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의 율법은 하나님의 완전한 의로우심에 근거하며 거기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완전무결하다.
  • 시인은 이를 확신하고 있었으며 그처럼 의로운 하나님의 규례가 자신을 구원으로 이끌 것을 믿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하나님의 의로운 규례를 찬양한다는 것

= 결국 그에게 구원을 베푸실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표현과 동일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말씀이 주는 평강(시편 119:165)

여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랑의 원칙에 의해 지배받고 그것을 저희의 규범으로 삼고 그로 말미암아 지배받는 선한 사람들의 행복의 결과가 나타나 있다.

1. 그들은 평안하여 거룩한 평강을 가진다. 그들보다 더 기쁘게 해 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며”,

저희의 의무를 행하는 데에 풍족한 만족이 있고 그것을 생각하는 데에 기쁨이 있다. "의의 공효는 화평이며"(사 32:17), 세상이 주거나 빼았을 수 없는 화평이다. 그들은 커다란 고난 중에 있게 될지 모르나 그 안에 큰 평화 sat lucis intus - 즉 내부의 빛의 풍성함을 즐거워하게 될 것이다.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은 큰 평화를 갖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저희의 기대를 능가하며, 그 안에서 저희가 확실한 발판을 취하기 때문이다.


📌 119:165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말씀을 사랑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복 = ‘평안’

  • ‘안전’ ‘번창’ ‘건강’ 등의 의미.
  • 즉 이는 분쟁이나 다툼이 없는 상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형통과 번영, 건강 등 신체적으로 영적으로 흔들림이 없는 견고하고 안정된 상태를 의미한다.
  • 이러한 완전하고 확고부동한 상태는 → 결코 인간의 힘만으로는 얻을 수도 유지할 수도 없다.
    • 즉 본문에는 하나님이 말씀을 사랑하는 자에게 ‘솰롬'을 선사하셨다는 의미가 함측되어 있다
  • ‘큰 평안’
    • 특히 시인은 그 단어 자체만 가지고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 ‘솰롬'에 이어 ‘큰' , 풍성한' , ‘충족한’ ‘많은’ 등의 의미 형용사를 첨가하여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는 자가 누리는 평안이 얼마나 확고부동하며 완전한 것인지를 강조한다. 

2. 그들은 안전하여 거룩한 보장을 갖는다.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어떠한 것도 그들에게 불명예나 올무나 걸림돌이 되지 못하며 그들을 죄나 비탄으로 몰아 넣지 못할 것이다. 어떠한 섭리의 사건도 저희에게 이겨내지 어려운 시험이나 참을 수 없는 고난이 되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저희의 사랑이 그들의 온전함을 굳게 붙잡을 수 있게 하며 그들의 평온을 보존할 수 있게 햊 룰 것이다. 그들은 최선을 다할 것이며 하나님이 행하시는 어떤 것과도 다투지 아니할 것이다. 어떤 것도 그들을 막거나 상하게 할 수 없으며 모든 것이 그들에게 유익을 위해 일할 것이므로 그들에게 기쁨이 오고 그들은 그것과 화합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거룩한 사랑으로 다스리는 자들은 쓸 데 없는 의심으로 당혹케 되지 않으며 그들의 형제를 공격하지도 않게 될 것이다(고전 13:6, 7)


📌 ‘장애물’

  • ‘방해물, 장애, 유혹, 우상’ — ‘거리끼는 것’
  1.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넘어지는 것,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고 그들로 하여금 평안을 잃게 하는 요소를 하나님이 제거하셨다.
  2. 그들 스스로 자신을 실족케 하며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평안에서 멀어지게 하는 우상어나 모든 죄악된 요소들을 제거하였다.

⇒ 본문은

  • 하나님께서
    • 그들이 지속적이고 완전한 평안을 누리도록 그들 삶에 거치는 것이나 넘어지게 하는 것들을 제거해 주셨을 뿐 아니라,
  • 그들 스스로도
    •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들의 삶을 돌아보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거나 범죄케 하는 요소들을 제거했다는 의미를 전달한다. 

●구원에의 희망(시편 119:166)

여기에 인간의 모든 의무가 나타나 있다.

1.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의 목표로 주시할 것을 교훈받고 있다.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바랐나이다. 현실의 구원뿐만 아니라 영원한 구원까지 바랐나이다. 나는 그것을 나의 행복으로 희망하며, 거기에 나의 보화를 쌓아두기를 바랐나이다. 나는 그것을 주의 것으로, 주의 준비하심과 약속하심의 행복으로 바랐나이다. 그것은 주와 함께 존재하는 데에 있나이다. 이러한 희망은 나를 세 상위로 들어올렸으며 나의 모든 짐을 희망으로 지탱케 하였나이다."

2.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규범으로 주시하라고 교훈받고 있다.

"내가 주의 계명을 행하였나이다. 즉 내가 모든 일에 주의 뜻을 내게 일치시키려고 노력하였나이다."

하나님께서 이 둘을 어떻게 함께 결합시켰는지를 관찰해 보라. 인간이 그것을 따로 떼어서 둘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그의 계명을 행하려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좋은 자리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희망할 수 없다(계 22:14). 그러나 그의 계명을 진지하게 행하려고 노력하는 자들은 구원의 좋은 희망을 보존해야 한다. 그러한 희망은 계명을 행함으로써 마음을 거기에 관여하게 하며 크게 고무시킬 것이다. 희망이 살아 있으면 있을수록 복종도 더욱 생동력있게 될 것이다.


📌 119:166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바라며 주의 계명들을 행하였나이다

  • 본절에서 시인은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신명인 ‘여호와'를 강조하고 있다.
  • 그리고 그의 구원과 계명을 이어 배치함으로 언약의 하나님과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의 계명이 불가분의 관계임을 나타낸다.
  • 마지막으로 하나님 앞에서 또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과 계명에 대한 자신의 자세와 행실이 어떤 것인지를 반복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내가 주의 구원을 바라며

  • ‘바라며’ 의 원형
    • 희망과 인내를 가지고 ‘기대하다’ ‘소망하다’ 고대하다’ 등의 의미.
    • 사람이 오랫동안 환난과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그가 가진 소망도 쉽게 퇴색하고 심지어 절망과 낙담에 빠지기 쉽다.
    • 그러나 시인은 자신의 기대와 소망을 꺾지 않았다.
      • 그는 희망과 인내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구원을 바라고 소망하였다.
      • 아울러 그는 단지 기다리고 소망하였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행하였다.
    본절에 동사로 표현된 시인의 이러한 삶의 자세와 태도
    1. 하나님의 구원을 인내와 소망을 가지고 기대하며,
    2. 하나님의 계명을 역동적으로 지켜 행하는 자세.
    = 성도의 신앙과 삶을 지키고 세우는 2개의 축.

●하나님 앞에 선 인간(시편 119:167,168)

다윗의 양심이 하나님께 증거한다.

Ⅰ. 그의 실행이 선했다는 사실이다.

1.그는 하나님의 증거를 사랑했고 그것을 굉장히 사랑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최고도 의 사랑이 되어야 할 것이다(우리는 그것을 이 세상의 재물과 쾌락보다 더 사랑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정욕과 육체적 사랑을 굴복시키고 근절시킬 수 있는 승리의 사랑이 되어야 할 것이다.

2.그는 주의 증거를 지켰고 그의 영혼이 그것을 지켰다. 육체의 연습은 경건에 약간 유익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심령의 활동으로 삼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영혼은 성화되고 새로워져야 한다. 그리고 말씀의 틀로 구원되어야 한다. 영혼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 쓰여져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으로 예배받으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법도와 증거를 지켜야 하며 복종으로써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신뢰로써 그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


📌 119:167 내 영혼이 주의 증거들을 지켰사오며 내가 이를 지극히 사랑하나이다

  • 앞선 165,166절에서 말씀을 경애하는 자로서의 평안의 확신을 피력한 시인은,
    본절과 168절에서는 말씀을 경애하는 자로서의 자기 순결의 확신을 피력한다.
  • 특히 본절에서 시인은 자신이 주의 증거를 지켰으며 이에 대한 한결같은 사랑을 가지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다.

‘내 영혼이’

  • ‘영혼’ 의 의미.
    1. 생명력, 생명 그 자체
    2. 육신
    3. 인간의 다양한 감정.
  • 그러나 ⇒ 본문에서는 전인격체로서의 자신을 의미함.
    시인은 자신의 전인격을 다하여 계명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음을 피력하고 있다.

‘내가 이를 지극히 사랑하나이다’

  • 하반절에서 시인은 자신이 하나님 말씀에 대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 즉 그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되,
    • 강제나 의무감으로가 아니라,
    • 깊은 애정과 사랑에 근거한 자원하는 마음으로 지키고 행한 것임을 나타낸 것이다.

이러한 시인의 고백은 성도의 바른 삶의 자세가 무엇인지를 함측적으로 드러낸다.

  •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규정되며,
  •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되, 하나님과 그 계명에 대한 뜨겁고 지극한 사랑에 기초해 지켜 나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Ⅱ. 그가 여기에서 선한 원칙에 의해서 지배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내가 믿음으로 항상 내게 대하시는 주의 눈길을 보았기 때문에 주의 법도를 지켰나이다. 나의 모든 행위가 주의 앞에 있음이니이다. 주는 내가 걷는 모든 발걸음을 아시며 내가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을 엄격하게 관찰하시나이다. 주는 내가 말하며 선행하는 것을 모두 보시며 용납하시나이다. 주는 내가 경망되게 말하며 행동하는 것을 모두 보시며 싫어하시나이다."

하나님의 눈길이 항상 우리 앞에 있다는 이러한 생각은 우리로 하여금 그의 계명을 지키는 모든 일에 있어서 매우 주의 깊게 해준다는 사실을 주시하자(창 17:1).


📌 119:168 내가 주의 법도들과 증거들을 지켰사오니 나의 모든 행위가 주 앞에 있음이니이다

‘법도들과 증거들’

  • 167절의 ‘주의 증거’와 동의적 표현.
  • 굳이 세분해서 표현한 이유
    • 자신이 오로지 하나님의 계명에 근거해서 그 말씀 하나 하나를 성실하게 지켜왔음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

‘나의 모든 행위가 주 앞에 있음이니이다’

  • 하나님에게는 아무것도 감출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기에 거룩한 생활을 하도록 힘썼다는 의미이다.
    • 즉 시인은 자신의 행위가 하나님의 면전에 있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 단지 사람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일을 행하였으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행사가 다 드러날 것임을 알았기에 그는 하나님의 뜻을 성실하고 온전하게 이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본문의 표현은 구약 시대 그리스도의 예표적 인물 중 하나인 요셉의 삶을 상기케 한다.

  • 그는 이방 땅 애굽에 종으로 팔려갔지만 거기서도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 그는 무수한 시련과 흑득한 고난, 그러고 견디기 힘든 죄된 유혹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하시며(창 39:2, 3) 그 자신 스스로도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었기에(창 39:9) 범죄로부터 자유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본문은 주의 법을 신실하게 지킨 것에 대한 최상의 증인은 -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을 뿐 아니라,
  • 하나님을 면전에 두고 항상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행하도록 힘쓴 이러한 시인의 신본주의적 삶
  •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도 귀감이 되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22연:

●구원의 말씀(시편 119:169,170)

Ⅰ. 우리는 여기에서 듣는 자를 위한 반복되는 일반적인 탄원을 본다.

"나의 부르짖음이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 그리고 다시 반복하여 "나의 간구가 주의 앞에 말하게 하소서"했다. 그는 기도의 열심과 격정을 나타내는 그의 기도를 "부르짖음"이라고 부르고, 기도의 겸손을 의미하는 기도를 "간구"라고 부르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문간에 동냥을 구걸하는 거지들과 같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다윗은 그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있으며 그에게 가까이 이르기를 관심했고, 그가 믿음으로 과 힘을 기도를 올리는 열심에 의해서 은총과 힘을 받고자 했다. 그리고 어떠한 죄도 그의 기도를 중지하지 못하기를 원했고, 그와 하나님 사이를 분리하지 못하도록 힘썼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은혜롭게 받아 주시며 그의 기도를 알아 주실 것을 깊이 관심했다. 그의 간구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기를 원했던 그의 기도는 자신이 무가치하다는 은 감정을 나타내 주며 그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달하는 데에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경외심을 나타내 주고 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변자로서 하나님에게 접근시켜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께 달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 119:169 여호와여 나의 부르짖음이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깨닫게 하소서

  • 시인은 자기의 부르짖음을 의인화하여 일어나 하늘로 올라가서 하나님 앞에 자신의 처지를 고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 이러한 본문의 표현은 그의 간구하는 바를 더욱 강조하며 간곡한 것으로 만들어 준다. 이처럼 시인이 올리는 바 간절한 간구의 모습을 통해 시인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절박하고 고통스런 것인지 유추할 수 있다. 즉 그는 너무나 혹독하고 심각한 고난 중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구하며 간곡하게 기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인이 간곡하게 간구하는 바 구체적인 기도의 내용

= ‘주의 말씀대로 나를 깨닫게 하소서’

  •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판단력을 주실 것을 간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아마도 시인은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올바른 삶을 살므로써 대적들로부터 여러 가지 고난과 박해를 받았을 것이다(Keil).
  • 그러나 그는 이러한 핍박이나 환난에 굴하지 않았다.
    자기의 형편이 어렵고 대적돌의 압제가 거세면 거셀수록
    그는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살기를 다짐하였고
    하나님의 도움과 은혜를 더욱 간절히 구하였던 것이다. 

Ⅱ. 그가 이같이 진지하게 제시한 두 가지 특수한 요청이 여기에 나타나 있다.

📌 119:170 나의 간구가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건지소서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의인들, 당신을 의지하는 자들이 고난 가운데서 부르짖을 때 그들을 구원해 주실 것을 약속하는 내용이 여러 곳에서 표현되는데(50:15; 91:15) 본시의 저자인 시인의 간구도 이같은 하나님의 약속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이처럼 시인의 기도는

자신의 어려운 상황과 관련해서만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올려지는 것이었기에 분명한 효력을 지닌 것이라 할 수 있다.


1.하나님께서 그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그에게 고난 중에서도 자신을 잘 행하도록 하기 위해 지혜를 주실 것을 요청한다"나를 깨닫게 하소서." 그는 그의 행실을 이해할 수 있는 신중한 분별의 지혜를 원했다. "나로 하여금 주님과 나 자신과 주께 대한 나의 의무를 알게 하소서."

2.하나님께서 그의 섭리로 말미암아 그를 그의 고난으로부터 구원해 주실 것을 요청한다. '나를 건지소서. 즉 시험으로 피할 길을 내어 주소서"(고전 10:13).

Ⅲ. 이러한 요청들을 강하게 해 주실 것을 같은 방법으로 일반적인 간구를 드린다.

  • "주의 말씀대로." 이것은 그의 갈망을 조정하며 제한한다. "여호와여, 주께서 내게 약속하신 이해(총명)를 주시며, 주께서 약속하신 구원을 주소서. 나는 다른 것을 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의 신앙과 기대에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여호와여, 주께서 약속하신 것을 내가 간구하였는데, 주는 주의 말씀과 같이 선하시지 않으시나이까?"

●하나님의 은총과 영광(시편 119:171)

📌 119:171 주께서 율례를 내게 가르치시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하리이다

  • 171-172절
    • 하나님 말씀에 담긴 의와 은혜에 대한 찬양을 결단함.
  • 본절에서는 앞선 169절의 기도가 응답되어 주께서 율례를 자신에게 가르쳐주심을 확신하며 자신이 할 일을 말한다. 시인이 자신의 할 일로 제시하는 것은 자신의 입술로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다.

‘찬양하리이다’

  • ‘용솟음쳐 오르다’ ‘넘쳐흐르다’
    • 샘에서 물이 올라오는 것에서 취해 온 비유적 표현이다.
    • 즉 시인은 하나님의 응답하심으로 인하여 자신의 입술에서 샘이 솟듯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넘쳐흐르게 할 것임을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입술에서 찬양이 넘쳐나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 그것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당신의 율례를 자신에게 가르쳐 주셨기 때문이다.
  • 즉 시인은 율법의 가르침을 받은 것에 비례해서 ⇒ 하나님에 대한 찬양 역시도 넘쳐나게 됨을 나타내고 있다.
  • 사실 찬양은 = 하나님을 아는 자의 마땅한 본분이며 자연스런 반응이다.
    •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아는 만큼 - 우리는 더욱 진실되고 감격적인 찬양을 올려드릴 수 있는 것이다.

1.여기에 다윗이 하나님께로부터 기대하는 커다란 은총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율례"를 그에게 가르쳐 주실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 시편에서 이것을 자주 기도했으며 여러 가지의 표현으로 열심히 간청했다. 이제 그는 이 시편의 마감을 향하면서, 그것을 당연히 주어진 것으로 말하고 있다. 야곱과 같이 겸손하게 하나님께 은총을 열심히 간구하며, 영적인 축복으로 축복해 주시지 않는 한, 그를 놓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는 자들은 그들이 그렇게 조르던 것을 마침내 얻게 될 것을 겸손하게 확신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들이 그에게 간청하는 것들을 저희에게 은혜로 주실 것이다.

2.그가 그러한 은총을 갖게 될 것을 약속받고 감사한 감정을 나타내 주고 있다. "주께서 율례를 내게 가르치심으로 내 입술이 찬송을 발할지니이다."

(1) 그는 하나님을 찬양할 이유를 가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배우는 자들은 감사해야 할 많은 이유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이것이 모든 영적인 축복 즉 가장 좋은 축복과 영원한 축복의 표징의 근거이기 때문이다.

(2)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법을 알게 될 것이며 찬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배우는 모든 자들은 이 교훈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께서 깨달음을 열어 주시고 마음을 열어 주시며 입술을 열어 주실 때 입은 그의 찬송을 발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배우지 못한다면 결국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게 될 것이다.

(3) "그러므로" 그는 이와 같이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열심히 간구한다. 하나님의 은총을 간구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엡 1:12)


●의로운 말씀을 찬양함(시편 119:172)

📌 119:172 주의 모든 계명들이 의로우므로 내 혀가 주의 말씀을 노래하리이다

  •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은 - 주의 약속 성취를 체험한 성도가 그 받은 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올리는 화답의 노래라 할 수 있다.

본절에서 밝히는 찬양의 이유 = “주의 모든 계명이 의롭다는 것”에 있다.

‘의로우므로’

  • 여기서 ‘의로움'을 나타내는 ‘체데크'는
    • 단순히 인간 상호간의 옳음, 정직함, 거짓이 없옴 등외 의미만 지니는 표현이 아니다.
    • 이는 가장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단어이다.
      → 즉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재판관으로서 지극허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성품의 단면을 나타내는 표현인 것이다(137절; 신 31:4; 사 5:16).
  • 하나님이 이처럼 의로우시기 때문에 그분은 의를 사랑하시고 의를 행하신다.
  • 아울러 이러한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세상에 공의를 구현하는 것, 즉 악인들은 심판에 던져지게 하며 의인은 구원의 자리로 이끄는 것으로 구체화된다. 그런데 시인은 이를 하나님의 계명과 관련하여 사용하고 있다.
    → 이는 주의 계명 즉 올법어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반영하고 구현하는 것임을 함축한다.
    즉 하나님의 계명이 하나님의 의로우신 성품과 온전하심을 반영하며 그 말씀으로 세상에 공의를 세우고 의인은 구원으로 인도하시며 악인은 그 말씀으로 심관하심을 나타낸 것이다.

  •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의롭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하며 구원의 역사, 의의 역사를 이룩하기에 시인은 이를 자기 혀로 노래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 악인들의 불법한 행위로 인하여 큰 고난의 삶을 살았던 시인에게
    — 이 공의의 말씀은 너무나 큰 위로였으며 그렇기에 이를 찬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특히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 일부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이 의로움을 강조하기 위헤 ‘모든' 에 해당하는 ‘콜' 이란 표현을 추가하고 있다.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관찰해 보자.

1.다윗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가졌던 좋은 지식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았기 때문에 최고의 만족스런 상태로 하나님의 모든 계명이 의로울 뿐만 아니라, 의 자체이며 의의 규범이요, 표준이라는 것을 고백하려 했다.

2.또 그러한 지식을 선하게 사용하겠다는 결심이 있다.

"내 혀가 주의 말씀을 노래할지니이다. 그것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찬양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지도하고 교화하기 위해서 그것을 강론하리이다." 그는 스스로 충만하여(마음의 충만한 것으로부터 입이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도 역시 충만하게 되기를 갈망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의 의를 보게 되면 될수록 열심히 다른 사람들도 계명에 친숙해지도록 인도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우리의 대화의 지배자로 삼아 항상 죄된 말이나 죄된 침묵에 의해서 말씀을 범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대화의 주제로 삼아 말씀이 많은 자들에게 먹여지고 "듣는 자들에게 은총을 전하도록" 해야 한다.


●구원의 즐거움(시편 119:173,174)

1.다윗은 여기에서 하나님의 은총이 그에게 작용해 주실 것을 기도한다.

"주의 손이 나의 도움이 되게 하소서." 그는 그 자신의 손이 자신을 위해서 충분한 것이 되지 못하며, 어떤 피조물이라도 어떤 목적으로도 돕는 손이 되어 주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러므로 그는 그를 지으신 손이 그를 도와 주실 것을 희망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본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도우시지 않는다면 피조물익 우리를 도울 수 있겠는가? 우리의 모든 도움은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그의 권능과 그의 관대하심으로부터 올 것을 기대해야 한다.


📌 119:173 내가 주의 법도들을 택하였사오니 주의 손이 항상 나의 도움이 되게 하소서

  • 앞선 171, 172절에서서 시인은 하나님 말씀에 담긴 의와 은혜에 대한 찬양을 결단하였다.
  • 이제 본절 이하 176절에서 시인은
    • 하나님을 향하여 말씀을 사모하는 종에게 일상적인 도움을 주시기를 간구한다.
    • 먼저 본절에서 시인은
      • 율법의 교훈을 자신의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 하나님의 손의 도움이 펼쳐지기를 간구한다.

사실 자유 의지를 가진 인간은 주의 법도를 택할 수도 있고 다른 세속적인 기준을 택하고 이것 을 버릴 수도 있다.

  • 그러나 시인은 — 세속적인 기준을 버리고 주의 법도를 택하였다.
    → 즉 그는 하나님의 법도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 그리고 이처럼 주의 법도를 택하고 순종하였기에
    → 주의 손이 자신을 도울 것을 믿었으며 이를 간구할 수 있었다.


주의 손이 항상 나의 도움이 되게 하소서

  • ‘손’ : 하나님의 ‘능력, 권세, 보호, 인도’
  • 이는 순수한 영이신 하나님을 마치 사람과 같이 신체를 지니신 것으로 묘사하는 신인동형동성론적 표현으로, 하나님의 법도를 택하여 살아가는 시인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보다 구체적이고 생생한 보호와 인도, 안위를 베풀어주시기를 바라는 시인의 염원어 함축된 표현이다. 

2.그는 하나님의 은총이 이미 그에게 그 자격을 주는 보다 더 많은 자비의 보증으로써 나타났다는 것을 말한다. 그는 세 가지 사실을 말하고 있다.

(1) 그가 종교를 신중하고 사려있는 선택물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내가 주의 법도를 택하였나이다. 내가 다른 것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시험해 보았으나 더 좋은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주의 법도를 나의 규범으로 살았나이다." 우연에 의해서가 아니라 선택에 의해서 선하며 선을 행하는 자들은 실제로 선하며 선을 행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법도를 택한 자들은 저희의 모든 예배에서, 저희의 모든 고난 중에서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에 의지한다.

(2) 그의 마음이 하늘에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주의 구원을 사모하였나이다." 다윗은 그가 보좌에 앉았을 때 세상에 머무는 것이 좋다고 할 만한 것을 충분히 경험하고 "여기에 있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먼 곳을 바라보며 저 세상에서의 더 좋은 것을 사모하였다. 거기에는 모든 성도들이 사모하는 영원한 구원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손이 그 길을 향하도록 저희를 도와주실 것을 기도하는 것이다.

(3) 그가 그의 의무를 행함으로써 즐거움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내가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내가 주의 법을 즐거워할 뿐만 아니라 주의 법은 나의 즐거움이요, 이 세상에서 내가 갖는 가장 큰 즐거움이니이다." 복중 가운데서 즐거워하는 자들은 복종 가운데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도움을 주실 것을 믿음으로 간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자들은 그의 법 안에서 즐거움을 취하여야 하며 저희의 희망은 저희의 즐거움을 증가시켜야 한다.


📌 119:174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사모하였사오며 주의 율법을 즐거워하나이다

  1. 성도가 무엇을 갈망해야 하는가?
    • 주의 구원을 사모하였사오며
  2. 성도가 지향해야 할 현재의 만족이 무엇인가?
    • 주의 율법을 즐거워하나이다
    • ‘즐거워하나이다’ = 복수형.
      • 이처럼 기쁨을 복수로 표현한 것은
        주의 법이 시인의 일상 생활 가운데 지속적으로 무수한 즐거움을 공급하였음을 나타내 준다.

⇒ 본절은 구원에 대한 갈망과 율법을 기뻐하는 것이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말해 준다.


●찬양을 위한 기도(시편 119:175)

📌 119:175 내 영혼을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를 찬송하리이다 주의 규례들이 나를 돕게 하소서


다윗의 마음은 여전히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에 고정된다. 그러므로

1.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나님을 찬양할 시간을 주실 것을 기도한다.

"내 혼을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를 찬송하리이다. 즉 내 생애를 연장시켜 주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영광을 위하여 살리이다." 선한 사람이 살기를 갈망하는 이유는 그가 생존의 세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의 영광을 위한 어떤 것을 행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나로 살게 하사, 내 나라를 섬기고 내 가족을 살게 하며 부양하게 하소서"라는 간구가 아니라 "나를 살게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이 갈등과 투쟁의 세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리이다"라고 간구한다. 우리가 죽을 때 우리는 그를 찬양하는 더 좋은 세계에 가기를 원한다. 비록 여기에 더 필요한 것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에게 더 적합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살기를 갈망해서는 아니 된다. "내 혼을 살하소서." 즉, "나를 성화시키시며 위로하소서." 왜냐하면 성화(聖化)와 위로는 영혼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시면 주를 찬송하리이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쓰여져야 하며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에 합당한 은총과 평화를 간구해야 할 것이다.


 📌 ‘내 영혼을 살게 하소서’

시인은 여기서 생명의 공급자되시는 주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는 심경을 피력한다.


2.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찬양할 힘을 그에게 주실 것을 기도한다.

"주의 규례가 나를 돕게 하소서. 모든 법령과 모든 섭리가 나를 돕게 하소서(둘은 모두 하나님의 규례이다). 나로 하여금 더욱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게 하소서. 주의 규례가 나의 찬양의 대상이 되게 하시며 그 일을 위해 나를 합당하게 도우소서.


📌 ‘규례’

  • 이 단어는 하나님 말씀을 나타내는 여러 표현 중 하나이기에 단순히 본시의 핵심 주제인 하나님의 말씀 자체로 볼 수 있으나 여기서는 공의로 세상을 처리하시고 판단하시는 하나님의 면모와 관련해 사용되었다.

특별히 이를 ‘나를 돕게 하소서'라는 표현과 관련해서 이해하면

  • 의로운 삶을 살면서도 고난 중에 처한 시인의 삶에 개입하셔서 시인을 돕고 변호하시며 결국 그에게 공의로운 평결을 내리신다는 의미를 함축한다(10:5; 사 26:8; 겔 5:8).

세상이 아무리 혼돈되고 불의가 난무한다 할지라도 성도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확신해야 한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친다 해도 성도는 눈을 들어 하나님의 판단을 바라보고 거기에서 해결책을 구하여야 한다.

결국 의로우신 하나님은 세상 가운데 당신의 의로우심을 구현하실 것이며 이처럼 당신의 의로우심을 견고히 붙잡고 의로운 판단을 고대하는 성도들에게 도움을 베푸시며 구원을 선사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참회의 기도(시편 119:176)

📌 119:176 잃은 양 같이 내가 방황하오니 주의 종을 찾으소서 내가 주의 계명들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

본시 전체의 마지막 구절인 본절에서 시인은 비록 자신어 잃은 양처럼 방황하였으나 그럼에도 볼구하고 하나님의 법을 잊지 않았다고 고백하면서 주의 종인 자신을 찾아 달라고 간구를 을러며 본시를 마무리한다. 어처럼 시인어 자기를 잃은 앙으로 비유한 것에 대해 혹자는 시인어 자신을 앙무러를 이탈한 자, 즉 죄언으로 고백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시인이 이처럼 유리하게 된 것은 원수들의 맹렬하고 포악한 추격 때문어다. 그로 인해 시인은 큰 두려움 중에 옮겨 다니면서 자신을 숨겨주시고 보호해주시며 인도해주실 목자되신 하나님을 더욱 간절히 찾았던 것이다.

양은 목자의 보호를 받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시언이 자신을 잃은 양에 비유한 것은 하나님의 도움이 없다던 자신은 걸국 어 위기 상황 가운데서 절망과 파멸에 이를 것임을 호소하기 위함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양은 목자에게 매우 귀한 존재이다.

따라서 시인이 여기서 이처럼 자신을 하나님의 잃어버린 양에 빗대는 것은

  • 그가 여전히 하나님의 눈에 귀한 존재이며,
  • 회복될 소망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시인은 자신의 목자이신 하나님을 향해 자신을 찾아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시인은 이처럼 자신을 찾아달라고 구하는 근거, 곧 구원을 베풀어주시기를 바라는 근거로써

→ 자신이 주의 계명을 잊지 않았음을 밝히고 있다.

‘잊지 않았다’ 는 말은

  • 단지 말씀을 기억 속에 간직하였다는 의미만을 지니는 표현이 아니다.
  • 이는 말씀을
    • 마음에 간직하고
    • 묵상하며
    • 항상 사모하였으며
    • 지켜왔다는 의미를 함축한다(15, 20, 40절).

시인이 잊지 않은 하나님 말씀 가운데는

  •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이 위기 가운데 빠졌을 때 버리지 않고 보호하신다는 내용도 있을 것이다.
    → 그러므로 이러한 하나님 말씀에 근거한 시언의 간구는 더 큰 설득력을 지닌다

1.여기에 참회의 고백이 나타나 있다.

"내가 유리하였나이다." 혹은 이리저리 방황하여 '잃은 양같이" 되었나이다. 회개하지 않은 죄인들이 잃은 양과 같은 것과 마찬가지로(눅 15:4) 불안정한 성도들도 잃은 양과 같이 연약하다(마 18:12, 13). 우리는 양과 같이 방황하기 쉽다. 그리고 우리가 곁길로 갔을 때 그 길을 다시 찾기란 매우 어렵다. 우리가 곁길로 감으로써 우리는 푸른 초장의 위로를 상실하고 수 천의 불행에 직면하게 된다.

2.믿음의 간구가 나타나 있다.

선한 목자가 유리하는 양을 데리고 오기 위해 찾아 나서는 것처럼(겔 34:12) "주의 종을 찾으소서. 여호와여, 내가 양들이 곁길로 갔을 때 내 양을 찾았던 것처럼 나를 잦으소서." 왜냐하면 다윗은 전에 상냥한 목자였기 때문이다. "여호와여, 나를 주의 것으로 소유하소서. 내가 유리하는 양이라도 주의 표징을 가지고 있나이다. 나를 관심하시며 말씀과 양심과 섭리대로 보내소서. 주의 은총으로 나를 되돌려 보내 주소서. 나를 찾으소서. 즉, 나를 발견하소서." 하나님은 결코 쓸 데 없이 찾지 않으신다. "내게 돌리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가리이다."

3.복종하는 간구가 나타나 있다.

"내가 곁길로 갔다고 할지라도 사악하게 멀어지지 아니하였나이다. 내가 주의 계명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 그는 이와 같이 이 시편을 그의 죄에 대한 참회의 심정과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믿음의 의지로써 결론 맺는다. 열심있는 그리스도인은 이와 같이 그의 의무를 완수하며 그의 생애를 결론지어야 할 것이다. 그는 회개하며 기도하며 살기를 원하고 또한 그렇게 죽기를 원한다.

(1) 저희의 확신으로 기뻐하며, 저희의 결심에 완전히 정착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잊지 않는 것"은 선한 백성들의 특징이다.

(2) 은총을 통해서 저희의 의무를 상기하는 자들도 저희가 여러 경우에 그로부터 유리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3) 저희의 의무에서 이탈된 자들은, 저희가 그것을 계속 상기한다면 저희 자신들을 겸손한 신뢰를 가지고 하나님의 은총의 보호하심에 맡기게 될 것이다.


결론

📌 히브리어 알파벳 첫 글자언 ‘알렙'부터 마지막 글자인 ‘타우' 까지 아우르며 전22연으로 되어 있는 본시는 담관체 시의 정수이다.

흑자는 본시를 지나치게 인위적으로 내용을 늘려 형식을 짜맞추려 하였으며 한 번만 기록해도 될 내용들을 불필요하게 반복한 지루하고도 부자연스러운 시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본시는 형식의 층족을 위한 불펄요한 반복이 걸코 아니다.

본시의 반복은 형식 이전에 사상의 발전과 강조를 위한 탁월한 시적 기교이다.

따라서 이러한 반복적 표현 속에 내재된 사상의 변호와 발전, 그리고 각각의 연들의 유기적인 관계를 파악한다면 본시에서 경이로움조차 느끼게 된다.

176절이나 되는 본시의 내용 전체를 통해

  • 하나님의 말씀의 아름다움과 소중함,
  • 그리고 그것을 중심으로 살아가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의 삶의 모든 면모를 세밀하게 다루는 섬세함과
  • 말씀을 향한 사랑과 열정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이를 감안하고 본시를 보게 되면 전22연으로 된 각각의 내용들, 그리고 그 안에 포함된 176절에 달하는 각각의 구절들, 심지어 그 구절들 안에 포함된 표현들 하나하나까지도 인위적이거나 무의미한 반복이 아니라 생동하는 표현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그 각각의 표현들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숨쉬고 그 말씀에 담긴 은혜를 누리며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시인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들 각각의 표현들이 이를 읽는 성도들 각자의 삶과 무관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야말로 본시는 히브리어 알파벳 첫문자인 ‘알렙' 부터 마지막 문자인 ‘타우'까지 이어진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성도의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끝이 됨을 확인시켜 준다.

그리고 이 시를 읽는 성도들은 자신의 삶이

  • 말씀으로 시작되어야 하고,
  • 말씀을 통해서 의미를 발견해야 하고,
  • 말씀에 의지해 힘을 얻어야 하고,
  • 말씀을 중심하며, 말씀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어야 함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본시는 오고오는 모든 세대 하나님의 백성들, 하나님 말씀을 따르며 순종히는 것으로 - 그 삶이 규정되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

  • 그들 자신들의 정체성과 삶의 자리,
  • 그리고 나아가야 할 목표틀 확인시켜주는 기준이며, 틀이 되며 푯대가 되는 고귀한 시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