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사사기 20, 사도행전 24, 예레미야 34, 시편 5, 6
묵상구절
13:1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
13:2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을 누리거니와 마음이 궤사한 자는 강포를 당하느니라
13:3 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13:4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
13:5 의인은 거짓말을 미워하나 악인은 행위가 흉악하여 부끄러운 데에 이르느니라
13:6 공의는 행실이 정직한 자를 보호하고 악은 죄인을 패망하게 하느니라
13:7 스스로 부1)한 체하여도 아무 것도 없는 자가 있고 스스로 가난1)한 체하여도 재물이 많은 자가 있느니라
13:8 사람의 재물이 자기 생명의 속전일 수 있으나 가난한 자는 협박을 받을 일이 없느니라
13:9 의인의 빛은 환하게 빛나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느니라
13:10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13:11 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가고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가느니라
13:12 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거니와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곧 생명 나무니라
13:13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자기에게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받느니라
13:14 지혜 있는 자의 교훈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13:15 선한 지혜는 은혜를 베푸나 사악한 자의 길은 험하니라
13:16 무릇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행하거니와 미련한 자는 자기의 미련한 것을 나타내느니라
13:17 악한 사자는 재앙에 빠져도 충성된 사신은 양약이 되느니라
13:18 훈계를 저버리는 자에게는 궁핍과 수욕이 이르거니와 경계를 받는 자는 존영을 받느니라
13:19 소원을 성취하면 마음에 달아도 미련한 자는 악에서 떠나기를 싫어하느니라
13:20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
13:21 재앙은 죄인을 따르고 선한 보응은 의인에게 이르느니라
13:22 선인은 그 산업을 자자 손손에게 끼쳐도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쌓이느니라
13:23 가난한 자는 밭을 경작함으로 양식이 많아지거니와 불의로 말미암아 가산을 탕진하는 자가 있느니라
13:24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13:25 의인은 포식하여도 악인의 배는 주리느니라
매튜헨리/옥스퍼드
●훈계와 꾸지람(잠언 13:1)
동일한 부모의 자녀들 간에도 일부 자녀는 희망적이나 또 딴 자식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새삼스런 말은 아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다음 사실을 식별하는 가르침을 얻는다.
- 부모를 존경하고 그들에게서 기꺼이 권면과 훈계를 받으려는 자들에게는 큰 희망이 있다. "자기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듣기를 원하고, 그 훈계를 존중하며 그것에 순응하고, 단순히 듣는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경청하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며 더욱 지혜로와질 수 있는 확률이 큰 자이다.
- 참을성 없이 꾸지람을 듣지 아니하고, 다스림에 복종하기를 냉소하고 신실하게 다루어 주는 자들에게 코웃음을 치는 자들에게는 희망이 거의 없다. 잘못에 대한 지적을 받지 않으려 하고 자기들에게 친절하게도 그런 충고를 베풀어 주는 자를 원수처럼 여기고서야 어떻게 잘못을 고칠 수 있겠는가?
💡 13:1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
●복록을 누리는 자와 강포를 당하는자(잠언 13:2)
- 만일 안에서, 즉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선하고 선한 창고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그것은 이익을 가져 올 것이다. 내적 위로와 만족은 매일의 양식이 될 것이며, 더 나아가서 "교훈에 유익한" 교제를 즐거워하는 이들에게는 그것이 끊임없는 잔치가 될 것이다.
- 폭력을 휘두르는 자는 자기 면전에서 그 앙갚음을 당할 것이다. "마음이 궤사한 자"는 악한 계획을 품고 꾸미다가 말이나 행위로 그것을 누설하여 "강포를 당하느니라." 그들은 강포로 저희 배를 가득 채우게 될 것이다.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라"(계 18:6). 모든 자는 자기가 빚은 대로 술을 마시게 될 것이며 자기가 말하는 대로 당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말로써 의롭다고 여김을 받거나 정죄받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마 12:37). 우리의 열매와 같이 우리가 얻을 양식도 그러할 것이다(롬 6:2, 22).
💡 13:2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을 누리거니와 마음이 궤사한 자는 강포를 당하느니라
● 입에 대한 주의(잠언 13:3)
- 입술을 수호하는 것은 영혼을 수호하는 것이다. 신중하여 한 번 말하기 전에 두 번 생각하고, 설사 "악한 생각"이 생기더라도 그것을 억누르기 위해 "자기 입에 손을 대며," 자기 혀에 억센 자갈을 물리고 그 고삐를 엄한 손으로 쥐고 있는 자는 아주 많은 죄와 비탄에서 "자기 영혼을 보전"하고, 자신의 많은 쓰라린 자책과 타인의 신랄한 비난의 고통에서 자신을 구하는 자이다.
- 혀를 제어하지 못함으로 인해 파멸하는 자들은 많다. quod in buccam venerit-최초로 나오는 말이 무엇이든 토설하여 "자기 입술을 크게 벌리고," 떠들며 호령하기를 좋아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하나님과 사람을 무시할 정도로 자유 분방하게 말하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그것은 그의 명예에 대한 멸망일 뿐만 아니라 그의 세력(이익)과 위로, 그의 영혼에 대한 영원한 멸망이기도 할 것이다(약 3:6).
💡 13:3 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부지런한 자와 게으른 자(잠언 13:4)
- 여기에는 게으른 자의 수치와 불행이 언급되어 있다.
게으른 자는 얼마나 어리석고 모순된 자인지 살펴 보라. 그들은 부지런한 자가 얻는 소득을 원하면서도 그들이 하는 수고는 싫어한다. 그들은 탐낼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탐내면서도 해야할 일은 하나도 하지 않으려 드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 결과는 수중 무일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수고하지 않는 자는 굶고 "먹지도"말라 하셨다(살후 3:10). "게으른 자의 소원은" 그를 흥분시키는 것으로 그에게는 고문이나 다름 없이 고통을 주는 것이어서, 그를 분망하게 만들고 언제나 불안하게 만들어 수고로 인한 노고보다 사실상 더 큰 고역이 되는 것이다.
- 부지런한 자의 행복과 명예.
그들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 부지런한 자는 풍족하고 안락을 누릴 것이며, 자신의 근면의 열매로 더욱 많은 것을 향유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특히 영적인 일에 있어서도 타당한 이치이다. 즉 게으른 소원 속에 안주하는 자들은 신앙의 특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나, 이에 반해 하나님께 대한 봉사로 고심참담하는 자들은 그 즐거움과 이익을 아울러 얻게 되는 것이다.
💡 13:4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
● 거짓말과 악한 행위(잠언 13:5)
- 은혜가 지배하는 곳에서 죄는 보기 싫은 흉악한 존재이다.
"거짓말을 미워한다"는 것은(무슨 죄이든 다 거짓이며 특히 상업이나 처신에서 나타나는 모든 사기와 허위를 가리킨다), 모든 "의인의" 의심할 나위 없는 특성이다.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 할 뿐만 아니라 거짓말을 증오하기도 한다. 이는 그의 기저에 깊이 뿌리박은 지배 원리, 곧 진리와 공의에 대한 사랑, 하나님께 대한 순응에서 우러난 것이다.
- 죄가 다스리는 곳에서는 "사람이" 보기 싫은 "흉악한" 존재가 된다.
그의 눈이 열려 있고 양심이 개어 있다면 그는 자신에게 흉악한 존재가 되어 "자신을 싫어하고 티끌 속에 앉아 재를 뒤집어 쓰며 회개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그는 하나님 및 모든 선한 자들에게도 흉악한 존재이다. 이것은 특히 그가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며, 또한 거짓말보다 더 가증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잠간동안은 그가 대담하게 거짓을 내세우려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나 결국 그는 "부끄러움을 입게"되고 천대를 받게 될 것이며, 그 얼굴을 들어 내놓고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다(단 12:2).
💡 13:5 의인은 거짓말을 미워하나 악인은 행위가 흉악하여 부끄러운 데에 이르느니라
●의와 악의 결말(잠언 13:6)
- 파멸로부터 안전한 성도들. 이들은 "행실이 정직한 자"들로서 모든 행동 속에서 정직하게 지향하며, 신성하고 영원한 공의의 법칙을 양심적으로 고수하고, 하나님과 인간 모두에게 성실하게 대하는 자들이다. 이런 자는 자신의 성실성이 사탄의 유혹에서 지켜줄 것이며 사탄의 유혹은 이런 자에게서는 성공을 거두지 못할 것이다. 또 저희 성실성은 악인의 치욕과 해로부터도 그들을 지켜 줄 것이니, 악인의 악행도 그들에게는 달라 붙지 못하며 어떤 실질적 해도 가하지 못할 것이다(시 25:21).
His murus aheneus esto, nil coinscire sibi -즉 네 의식적 순결을 계속 보존하려거든 이것을 네 금성 철벽으로 삼아라.
- 파멸이 확실한 죄인들. 악인에게는 그들 자신의 악이 결국에 가서 자기들을 엎드려지게 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들은 그 동안에 그 악의 줄에 묶이게 될 것이다. 그들은 징계를 받는가? 멸망을 당하는가? 이처럼 그들을 징계하고 멸망시키는 것은 바로 그들 자신의 악이다. 그들 혼자 그것을 감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13:6 공의는 행실이 정직한 자를 보호하고 악은 죄인을 패망하게 하느니라
● 가난한 자와 부한 자(잠언 13:7)
이 관찰은 다음 사실에 적용할 수 있다.
💡 13:7 스스로 부한 체하여도 아무 것도 없는 자가 있고 스스로 가난한 체하여도 재물이 많은 자가 있느니라
Ⅰ. 인간의 세상적인 재산에 대하여.
이 세상은 하나의 커다란 속임수인데 세상일 뿐만 아니라 이 세계의 인간 역시 그런 것을 벗어나지 못한다. "모든 사람들은 다 거짓말쟁이이다." 여기에는 해 아래서 일어나는 두 가지 쓰라린 폐단이 실례로 등장한다.
- 실제로는 가난한 자가 부자로 인정되고 싶어하고 또 그렇게 생각되는 경우가 있다. 그들은 부자도 아니면서 돈이 많기라도 한양 물건을 사고 팔며, 또 낭비를 해 가면서 크게 법석을 떨고 금송아지를 숨기고 있거나 하듯 크게 허세를 부리는데, 그들은 아마 빛을 갚고 나면 동전 한푼도 갖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죄악이며 또 수치가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자기 가정을 망치고 경건한 신앙에 먹칠하는 자가 부지기수이다. 이처럼 분수 이상으로 사는 자들은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려 하기보다 자기의 자만심에 따르려고 작정한 자로서, 그 결국도 그에 따라 마쳐질 것이다.
- 어떤 자는 실제로 부자이면서 가난한 자로 보여지기를 원하고 또 그렇게 생각되는 경우가 있다.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주신 것보다 누추하고 초라하게 살며, 받은 것을 이용하기보다 묻어 두려고 하기 때문이다(전 6:1, 2). 이렇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배은망덕하고 자기 가족과 이웃에게 부당하며 가난한 자에게 무자비한 것이다.
Ⅱ. 그들의 영적 상태에 대하여.
은혜는 영혼의 재산이다. 그것은 참다운 부(富)이다. 그러나 인간들은 고의든 실수나 무지함 때문이든 간에 흔히 자신을 그릇 표현하고 있다.
- 세상에는 주재넘은 위선자가 많다. 실제로는 은혜에 궁하고 전혀 그것을 갖고 있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부한 것으로 여기고 자신의 빈궁을 깨닫지 않으려 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스스로 부유한 듯 가장하고 자신의 가난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자들도 있다.
- 반면에 세상에는 매우 소심하고 벌벌떠는 그리스도인도 많다. 그들은 영적으로 풍부한 부자이고 은혜가 충만한데도 스스로 가난한 자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부자라는 것을 믿으려 들지 않거나 최소한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의심과 두려움, 불평과 근심으로 인해 그들은 "스스로를 가난하게 하느니라." 전자의 잘못은 그 결국에 멸망이 되며, 후자는 그 중간이 불안정하게 된다.
●재물의 해(잠언 13:8)
💡 13:8 사람의 재물이 자기 생명의 속전일 수 있으나 가난한 자는 협박을 받을 일이 없느니라
우리는 인간의 행복을 (최소한 이 세상에서의 행복에 대해) 그들의 부귀로 판단하기가 쉽다. 즉, 그가 이 세상 재물을 많이 소유하느냐 적게 소유하느냐에 따라 그의 행복의 크고 작고를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솔로몬은 본문에서 그것이 얼마나 큰 실수인가 하는 것을 보여 주어 우리로 하여금 가난한 환경에 적용할 수 있게 하고 재물을 탐내거나 풍족하게 소유하고 있는 자들을 부러워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 부자는 자기들의 부 때문에 일부 사람에게는 존경을 받는다고 하여도 이에 반하여 또 딴 사람들에게서 시기와 공격을 받아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며, 그로 인해 자기 재산으로 몸 값을 치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재물을 밭에 감추어 두었으니 우리를 죽이지 말라"(렘 41:8). 어떤 독재자들 밑에서는 너무 부유하다는 게 죄악으로 되는 경우도 있다. 재물이, 그것이 없었더라면 아무 일도 없을 자기 생명의 속전으로서의 쓸모밖에 없다면 그 부자가 자기 재물에게 입고 있는 덕은 얼마나 사소한 것이겠는가?
- 가난한 자들은 설령 일부 친구들에게 멸시당하고 간과된다고 하더라도, 반면에 만약 그들에게 빼앗길 만한 물건이 있었다면 원수가 될지도 모를 딴 사람들에게도 무시되고 간과되어 버린다. "가난한 자는" 부자처럼 "협박을 받을 일이 없으며," 비판을 당하기나 비난을 받거나 고소를 당하지 않으며, 부자와 같은 곤란한 일에 처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들을 거들떠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유한 유대인들이 바빌론으로 포로가 되어 이송되었을 때 "빈천한 자는 그 땅에 남아 있게"되었던 것이다(왕하 25:12). 칠년마다 한 번씩 아무 것도 반가히 맞지 말라. Cantabit vacuus coram latrone viator-즉 길손이 강도를 만나면 그는 많은 재물을 휴대하지 않았음을 기뻐할 것이다.
● 의인과 악인의 빛(잠언 13:9)
💡 13:9 의인의 빛은 환하게 빛나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느니라
- 번성하고 지속적인 선한자의 위로.
"위인의 빛은 환하게 빛나고"(혹은 "기뻐하고"), 그 빛이 더욱 증가하여 그들을 즐겁게 만들어 준다. 그들의 외적 번영도 그들의 기쁨이 되며, 더욱이 그들의 영혼에게 환히 비취는 은사와 은혜와 위로는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들은 "점점 빛이 나느니라"(4:18). 성령께서는 그들의 빛이시며, 그들에게 완전한 기쁨을 주시고 "그들에게 유익을 베풀어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 시들고 죽어가는 악인의 위로. "악인의 등불"은 침침하게 타다가 사그라진다. 그것은 항아리 속의 가는 초와 같이 맥없이 보이며 곧 꺼져서 완전한 암흑이 될 것이다(사 50:11). 그러나 의인의 빛은 태양과 같아서, 가리우거나 구름이 끼일 수는 있어도 계속 빛날 것이다. 악인의 빛은 그들 자신이 점화한 등불과 같아서 곧 소멸되어 버리며 쉽사리 꺼질 것이다.
●교만과 겸손(잠언 13:10)
💡 13:10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 어리석은 자만심은 큰 화근이 된다.
여러분은 "전쟁과 싸움이 어디서 오는지"알고 싶은가? 그것들은 이 자만심이란 쓴 뿌리에서 나오는 것이다. 분쟁에서는 딴 정욕이(격분이나 시기나 탐심 따위) 어떤 참견을 하든지 간에 자만심이 가장 큰 요인을 지니고 있다. 분쟁이 스스로 불화의 씨를 뿌리고 아무런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바로 자만심이다. 교만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의 의견이나 바라는 일에 반대되는 것을 못참으며, 경쟁이나 적대 의식을 참지 못하고, 모욕이나 하찮게 보이는 어떤 것도 가만히 보고 있지 못하게 된다. 또한 상대편에서 볼 때는 확실히 정당하고 진실한 생각을 추호도 양보하려거나 일보도 물러서지 않으려 하게 된다. 여기에서 친척과 이웃간에 다툼이 일어나고 국가와 왕국 간에 분쟁이 야기되고 교회와 기독교의 사회 내에 분열이 나타난다. 인간은 교만하기 때문에 복수를 당하며 용서하려 들지 않는 것이다.
- 겸손하고 화평스러운 자들은 지혜로우며 "권면을 잘 듣는 자"이다.
충고를 구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려는 자나 자기 양심과 성서, 목사, 친구와 협의를 하고 어떤 일도 경솔히 행하려 하지 않는 자는 딴 여러 가지 일뿐만 아니라 이 점에 있어서도 지혜로운 자이다. 그들은 스스로 낮추고 꾸부리며 복종하여, 평온을 본하고 분쟁을 예방하려 드는 자들이다.
●올바른 재물의 획득(잠언 13:11)
💡 13:11 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가고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가느니라
💡 13:11 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가고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가느니라
이 말씀은 재물이란 획득하고 엮어나가는 대로 유지됨을 나타내 주고 있다.
- 그릇되게 획득한 것은 오래 가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그런 재물에는 피폐하게 하는 저주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에 작용하는 죄스러운 획득 방법을 택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 부패한 기질이 또한 죄스러운 낭비의 길로 기울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망녕되어 얻은 재물은" 헛된 일에 소비될 것이고 그렇게 되어 "줄어 가느니라." 합법적이 아니거나 그리스도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로 얻어진 것은 다만 자만심과 사치만 충족시키는 것일 따름이며, 노름이나 무대에서 얻은 것은 사기나 거짓말로 얻은 것이나 진배없이 "망녕되이 얻은" 재물이라고 말할 수 있으므로 "줄어가느니라." De male quoesitis vix gaudet tertius hoeres-즉 부당하게 얻은 재물을 삼대까지 누리기가 힘들다.
- 그러나 근면과 정직으로 얻은 것은 줄기는 커녕 더욱 불어날 것이다. 그런 재물은 계속 유지되고 상속되며 풍족한 재물이 될 것이다. "자기 손으로 일하며 수고하는 자는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으리만치 "늘어가게" 될 것이다(엡 4:28). 재물이 그러한 정도에 이르면 그 재물은 더욱 더 많아지게 될 것이다.
●소망의 성취(잠언 13:12)
💡 13:12 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거니와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곧 생명 나무니라
- 비록 기대한 일 자체가 완전히 숲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성취 시기가 지연됨으로써 기대했던 것에서 실망을 느끼는 것보다 더 비통스러운 일은 없다.
"소망이 더디 이루게 되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나니," 마음은 번빈하게 되고 초조하고 역정나게 된다. 더욱이 완전히 산산조각이 난 희망은 마음을 죽이며, 기대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 좌절감도 더욱 더 커지는 법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도록 하려면 피조물로부터 큰 일을 기대하지 말아야 하며 이 세상의 어떤 헛된 희망으로도 우리 자신을 배불리지 않는 게 상책이다. 우리가 희망하는 일에서 실망을 느끼지 않도록 미리 대처하자. 만약 그 일이 잘 안 된 것으로 판명된다 하더라도 우리의 준비로 인해 그 일은 한결, 편하게 느껴질 수 있도록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 우리가 오래도록 동경하고 바라던 일을 마지막에 가서 즐길 수 있다는 것보다 더 고마운 일은 없다.
"소원이 이루게 되는" 것은 사람을 일종의 낙원, 곧 즐거움의 동산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니 이는 그것이 "생명 나무"이기 때문이다. 악인의 소망이 좌절된다는 것은 그들의 영원한 불행을 더 악화시킨다. 반면에 성도들이 천국을 자신의 소망의 면류관으로서 간절히 동경한 사실은 그들이 천국의 행복을 더욱 기뻐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것이다.
●말씀과 계명의 준수(잠언 13:13)
💡 13:13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자기에게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받느니라
- 여기 멸망하도록 정해진 자의 특성.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그 말씀을 존중하지도 않으며 존경하지도 않고 그 지배를 받지 않는 자는 정녕 "패망을 이룰"것이니, 이는 그가 파괴적 질병의 유일한 치료 수단을 경시하고 어김 없이 자기 멸망을 갖다 줄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미운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교훈보다 세상적인 권모 술수를 더 좋아하며, 하나님의 위로와 약속보다 세상과 육의 유혹을 우선적으로 받아들이는 자는 그의 말씀을 멸시하고 그 말씀과 경쟁 관계에 있는 것들에게 우선권을 주는 자들이다. 경고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그들은 자신의 패망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 틀림 없이 행복하게 될 자의 특성.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늘 하나님을 경의하고 그의 권위에 경의를 표하며 그의 말씀을 존중하는 자이다. 그는 하나님을 노엽게 해드리고 계명에 부기되 있는 벌금을 물게 될까봐 걱정하는 자로서, 패망을 피하게 될 뿐만 아니라 그 경건한 두려움에 대해 "상을 얻느니라." "계명을 지키면 큰 상이 있느니라."
●지혜있는 자의 교훈(잠언 13:14)
💡 13:14 지혜 있는 자의 교훈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우리는 본문에서 "지혜롭고" 의로운 자의 "교훈"에 의하여 지혜자가 자기 규제의 근거로 삼는 원리와 규칙(이것은 전부가 하나로 귀일된다)을 깨달을 수 있거나, 그들이 딴 사람들에게 주는 교훈(이것은 그들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법과 같이 되어야 마땅하다)을 깨달을 수 있다. 만일 그들의 교훈이 그와 같이 될 때에는 다음 두 가지의 특징이 나타나게 된다.
- 지혜있는 자의 교훈은 생수의 시냇물을 분출시키는 "생명의 샘" 같이 위로와 만족이 부단히 나오는 셈이 될 것이다. 우리가 그 규칙을 더욱 더 열심히 지켜 나아가면 우리는 자신의 평화를 더욱 효과적으로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 그 교훈은 사탄의 유혹에서 늘 보호해 주는 것이 될 것이다. 이 법의 명령에 따르는 자들은 죄의 올무에서 멀리 떨어져 있게 되며, 따라서 지혜로운 자의 교훈을 저 버리는 자들이 뛰어드는 "사망의 그물"을 벗어나게 될 것이다.
●선한 지혜와 궤사(잠언 13:15)
💡 13:15 선한 지혜는 은혜를 베푸나 사악한 자의 길은 험하니라
우리가 종착점뿐만 아니라 그 길을 비교해 본다면 경건한 신앙에는 유리한 점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 성도의 길은 즐겁고 유쾌하다.
"선한 지혜"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은혜"를 얻게 한다. 우리의 구주께서는 "지혜를 더해" 가셨을 때 그 은총 속에서 자라나셨던 것이다. 모든 일에서 슬기롭게 행동하며 저희 언행을 올바로 정하고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롬 14:17, 18).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잘 이해되고 용납되는 그 사람은 이 세상을 얼마나 편안히 지나가겠는가!
- 죄인의 길은 거칠고 불편하며, 타인들에게 용납받지 못하는 까닭에 자신에게도 즐겁지 못한 길이다.
그 길은 "험하느니라." 타인들도 그 길이 험해서 불평을 늘어 놓지만, 그것은 죄인 자신에게도 험한 길이어서 그들이 온 인류에게 달갑지 않은 일을 행하는 동안 즐거움이라고는 거의 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죄를 행하는 것은 완전히 노예 생활이며, 지옥에 이르는 길은 저주의 산물인 엉겅퀴와 가시로 뿌려져 있다. 죄인은 바로 그 불 속에서 고생하고 있는 것이다.
●슬기로운 자와 미련한 자(잠언 13:16)
💡 13:16 무릇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행하거니와 미련한 자는 자기의 미련한 것을 나타내느니라
- 신중한 것도 지혜이다.
"무릇" 분별있고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모든 일을 행하며(스스로는 심사숙고하며 다른 사람들과 상의한다), 신중히 행동하고 자제한다. 그는 자기가 지식을 갖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끼어들지 않도록 주의를 하고 정통하지 않은 사업에는 착수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는 신용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지식"을 갖지 못한 상대자와는 거래를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는 자기가 가진 창고를 늘이기 위해 계속 지식으로 행하고 있다.
- 쥐뿔도 모르는 것을 말하려고 들먹거리고 맡을 길도 재간도 없는 주제에 일을 맡겠다고 호언하는 "미련한 자"처럼 성급한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미련한 자는" 그렇게 하여 "자기의 미련한 것을 나타내며," 스스로를 조소받게 만든다. "그는 역사를 시작하였으나 능히 이룰 수는 없었도다."
● 악한 사자와 충성된 사신(잠언 13:17)
💡 13:17 악한 사자는 재앙에 빠져도 충성된 사신은 양약이 되느니라
- 신뢰를 배신하는 자의 나쁜 결과.
어떤 일을 담판하러 가서 자기를 보낸 이를 배반하고 그의 계획을 누설시키고 그의 목적을 낭패하게 하는 "악한 사자는" 잘 되기를 기대할 수가 없을 것이며, 이런 저런 "재앙에 빠질"것이 틀림 없다. 신뢰를 받은 자가 배반하는 것보다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밉살스러운 일이 없기 때문에 그는 발각되어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 충실한 자의 복된 결말.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충성스럽게" 이행하고 자기를 부리는 자의 이익을 충족시키는 "사신은 양약이 되느니라." 그는 자기를 고용한 자나 자기가 보내어진 자들에게 양약이 되어 그들 간의 이견을 고쳐 주며 양해를 보존하도록 해 준다. 그는 자신에게도 양약이 되는데 이는 그가 자신의 이익을 확보하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사자요 사신인 목사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그리스도와 사람들의 영혼에 대해 악하고 거짓된 자들은 재앙을 입히다가 "재앙에 빠지나" 충성된 자들은 온전한 말씀을 찾아 자타 모두를 고칠 수 있는 말씀이 되게 한다.
● 훈계를 지키는 자와 저버리는 자(잠언 13:18)
💡 13:18 훈계를 저버리는 자에게는 궁핍과 수욕이 이르거니와 경계를 받는 자는 존영을 받느니라
- 너무나 교만하여 가르침 받기를 조소하는 자는 정녕 천하게 될 것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선한 "훈계를" 마치 자기의 명예에 대한 치욕이나 자기의 자유를 축소시키는 것이라도 되는 듯이 "저버리는 자에게는 궁핍과 수욕이 이르느니라." 그는 알거지가 되어 수치 속에서 살다가 수치스럽게 죽을 것이다. 누구든지 다 그를 어리석고 고집불통이며 거느릴 수 없는 자로서 멸시할 것이다.
- 매우 겸손하여 잘못을 말해 주면 제대로 받아들이는 자는 틀림 없이 높아질 것이다.
누가 자기에게 견책을 내리든 간에 "경계를 지키며" 잘못이 제시될 때 그것을 고치려 드는 자는 지혜롭고 솔직한 자로서 존경을 얻게 된다. 그는 자기에게 수치가 될 일을 피하며, 중요한 자로 될 수 있는 전도가 유망한 자이다.
● 교훈을 거부하는 자의 미련함(잠언 13:19)
💡 13:19 소원을 성취하면 마음에 달아도 미련한 자는 악에서 떠나기를 싫어하느니라
이 말씀은 교훈을 거부하는 자의 미련함을 나타내 보이는데 이런자는 행복하게 될 수 있는데도 그것을 원하지 않는 자인 까닭에 미련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 그들은 행복할 수 있다.
인간에게는 행복에 대한 강한 욕구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욕구가 성취될 수 있도록 예비해 주셨고, 그 소원 성취는 감각의 즐거움이 육욕만 만족시켜 줄 뿐임에 반하여 "마음(혹은 영혼)에 달" 것이다. 선한 자들이 하나님의 은총과 신령한 축복에 대해 품는 "소원은 저희 마음에 단"것을 얻는다. 우리는 체험으로써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자들을 알고 있다(시 4:6, 7).
- 그런데도 그들은 행복해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자기들의 행복에 꼭 필요한 것은 악이라고 생각하는 악인들은 "악에서 떠나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죄악에서 떠나도록 타일러도 듣지 않으려 하면서 죄를 맛있는 빵처럼 자기들의 혀 밑에 넣은 채 이리저리 굴리려는 자들은 자기들의 영혼에 참으로 단 어떤 것도 기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선한 교우 관계(잠언 13:20)
💡 13:20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
- 선해지고자 하는 이들은 선한 교우 관계를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선해지기를 원한다는 증거가 되며(사람들의 특성은 그들이 선택하는 교우로써 알 수 있다), 선하게 만드는 방편도 되고, 선한 기을 제시하고 그 길로 행하도록 촉진하며 격려하는 수단도 되는 까닭이다. 지혜로와지기를 바라는 자는 지혜로운 자와 함께 동행해야 하며, 그런 자를 자기의 지기로 택해야 하고 그에 따라 그들과 교제해야 한다. 그들에게서 훈계를 구하고 받아야 하며 경건하고도 유익한 대화를 계속 나누어야 한다. "장로들의 담화를 놓지지 말라. 이는 그들 또한 자기 열조에게서 배웠음이니라"(Ecclesiasticus 8:9). "모든 경건한 말씀을 즐겨 들으며, 지혜의 비유가 네게서 도망하지 못하게 할지라"(Ecclesiasticus 동 6:35).
- 악한 친구로 말미암아 파멸에 이르게 된 자들은 부지기수이다.
"미련한 자와 사귀면 꺾어질 것이며"(이런 사본도 있음), "알려질 것이고"(칠십인역에는 그렇게 되어 있음) 우매한 자로 알려 질 것이다. noscitur ex socio-즉 사람은 그의 친구를 보아 알 수 있다. 그는 "그들과 같게 될 것이며"(그렇게 해석하는 자도 있음), "악하게 될 것이다"(딴 이들은 그렇게 해석하기도 한다).
스스로 악하게 하는 자들은 "해를 받을 것"이며 행악자와 사귀는 자들은 타락하여서 망하게 되고 결국 그 때문에 죽음을 당하게 되는 것은 누구에게나 매일반이다.
●죄인의 멸망(잠언 13:21)
💡 13:21 재앙은 죄인을 따르고 선한 보응은 의인에게 이르느니라
- 죄인의 멸망은 얼마나 불가피한 것인가!
하나님의 진노하심과 그 진노하심의 모든 공포가 그들을 쫒아 다닌다. 피의 복수자가 살인자를 추격하듯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간에 "재앙"은 죄인들을 바싹 "따르고" 그러한 그들에게는 도망갈 성읍도 없다. 그들은 도피를 기도하나 그것은 허사이다. 하나님께 추격당하는 자는 틀림없이 붙잡히고 만다. 그들은 잠깐 동안 번영하고 매우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지만 그들에게 대한 저주는 비록 그들이 자더라도 졸지 않고 있는 것이다.
- 성도의 행복은 얼마나 파기 불가능한 것인가!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 "의인에게 선한 보응이 이르리라"고 약속하셨다. 따라서 의인은 그들이 이 세상에서 행한 모든 선과 고초당한 모든 것에 대해 풍부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자신의 의로움 때문에 잃은 자된 사람이 많지만 그들은 결코 그것으로 인해 잃는 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보응이 속히 이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지불 기일이 되면 보상의 세계에서 이루어질 것이며, 그것은 풍부한 보상이 될 것이다.
●선인과 죄인의 재물(잠언 13:22)
💡 13:22 선인은 그 산업을 자자 손손에게 끼쳐도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쌓이느니라
- "선인"의 재산은 어떻게 지속되는가?
그는 "그 사업을 자자 손손에게 끼치느니라." 그가 후손을 위해 배려하며 자기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투자하지 아니하고 자기 뒤에 오는 후손을 위해 돌아보아 주며, 마땅히 받을 자에게 아끼지 않고 분별있고 적당한 검약으로 더해 준다는 것은 그를 칭찬할 일 중 하나다. 그는 자기 자손들도 또한 그 재산을 그 후대에 물려줄 수 있도록 그들을 훈육한다. 특히 그가 정의와 자선으로써 주의깊게 행하는 일은 자기의 소유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을 얻어내는 일과, 받은 그 축복을 자기 자녀에게 상속시키는 일이다. 자녀가 없고 하나님의 축복이 없으면 제 아무리 근면하고 검약한다고 해도 헛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착하고 착한 일을 행하며, 자기 재물로 여호와를 존귀하게 하고 그를 봉사하는 데에 재물을 소비함으로써 "선인은" 재산을 자기 후손에게 확고히 물려 준다. 이 세상의 재화를 많이 남기지 못한다 하더라도 선인의 기도와 훈계와 모범을 최선의 상속이 될 것이며, 언약의 약속은 그 "자자 손손에게" 산업이 될 것이다(시 103:17).
- "죄인의 재물"이 취득됨으로써 어떻게 선인의 재물이 불어나는가를 보라.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쌓아느니라." 착한 사람들은 딴 사람들만큼 세상에 열중하지 않으며 흔히는 선행으로 인하여 손해를 보는 법이다. 그런데 어떻게 부자가 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본문에 나오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쌓은 것을 섭리로써 선인의 수중에 들어가게 하신다는 것이다. "무죄자가 그 은을 나눌 것이니라."(욥 27:16, 17). 이스라엘인들은 애급인의 물품을 취할 거시며(출 12:36) "열방의 재물을 먹을" 것이다(사 61:6).
●경작과 불의에 의한 재물(잠언 13:23)
💡 13:23 가난한 자는 밭을 경작함으로 양식이 많아지거니와 불의로 말미암아 가산을 탕진하는 자가 있느니라
- 적은 재산도 근면으로써 늘어날 수 있으며 따라서 인간은 모든 것을 최선으로 활용함으로써 편안하게 살 수 있다. "가난한 자는 밭을 경작함으로 양식이 많아지느니라." 가난한 농부는 조그만 땅밖에 갖고 있지 않지만 그 적은 것에 수고하며 농사를 잘 짓는다. 많은 사람이 자기들의 게으름에 대한 변명으로 일할 만한 것이 조금밖에 없다느니, 너무 적다느니 하는 것을 내세운다. 그러나 밭이 적으면 적을수록 주인은 기술과 수고를 더욱 많이 들여야 한다. 그러면 아주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궁한 자는 땅을 일구어라. 그러면 그는 구걸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 큰 재산도 무분별함으로써 파산될 수 있다. 아주 많이 가진자가 있으나 "불의로 인하여"(혹은 "판단이 없으므로"), 즉 그 재산의 관리에 분별력이 없어서 "탕패하고" 알거지가 되는 수가 있다. 분수에 넘치는 호화 주택을 짓거나 과하게 물품을 구입하거나, 정도 이상의 교제 범위를 가지며 더 좋은 상을 차리고 더 많은 하인을 두는 자들은 마땅히 사용해야 할 것도 썩히며 최대한 이용해야 할 것도 이용하지 않는다. 직접 돈을 쓰거나 아니면 타인을 위해 보증을 서거나 함으로써 그들의 재산은 탕진되고 가족은 영락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은 "불의로 인하여"("판단이 모자라") 생기는 일이다.
●자녀에 대한 징계(잠언 13:24)
💡 13:24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 선한 일로 자녀를 교육하는 데에는 잘못된 일에 대한 따끔한 징계가 필요하다.
우리의 모든 자녀는 아담의 후손이므로 그 마음에는 아담과 같은 어리석음이 뭉쳐 있어서 책망을 요구하며 다소간 지혜를 가져다 주는 막대기와 징계를 필요로 한다.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부모의" 막대기이다. 부모의 매는 지혜와 사랑으로 가리키는 것이며 선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에 종의 몽둥이와는 다른 것이다.
- 악습으로 굳어지기 전에 자녀를 악으로부터 금하게 하는 필요 조처를 때 맞춰서 시작하는 것이 유익하다. 가지는 연할 때 쉽사리 휘어지는 법이다.
- 자식을 엄한 규율 아래 두지 않는 것은 자식을 사랑한다고 자부하더라도 실제로는 미워하는 것이다. 온갖 적당한 방법을 다 동원하여, 온화한 방법으로 통하지 않으면 엄한 법을 써서라도 자기 잘못을 깨닫게 하며 범죄를 두려워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는 부모는 자기 자녀를 최대로 흉악한 원수에게 넘겨 주며, 극히 위험한 질병에 방치해 두는 부모이다. 그러므로 그런 부모는 자기 자식을 미워하는 셈이다.
따라서 자녀들은 자기들의 선하신 부모가 주시는 징계에 순응하여야 할 것이다. 그 징계는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오 그들의 유익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히 12:7-9).
●의인의 충족과 악인의 궁핍(잠언 13:25)
💡 13:25 의인은 포식하여도 악인의 배는 주리느니라
- 의인은 충분한 것을 가지게 될 것이며 언제 충분히 가지게 되는지를 안다는 것은 의인의 행복이다. 그들은 과식하기를 원하지 않으나, 저희 욕구가 적당히 채워지면 그들은 곧 만족을 느끼게 된다. 자연스런 본능은 조금이라도 만족하지만 은혜는 더욱 적은 것으로도 만족한다. 그것은 잔치와 진배 없이 충분하다. 생명의 떡을 먹으며 약속으로 잔치를 삼는 자들은 그로써 풍부한 영혼의 만족을 누리게 되며, 먹고, 배를 불린다.
- 총족을 모르는 욕망으로 인해 언제나 궁핍한 것은 악인의 불행이다. 그들의 영혼이 세상과 육에 만족을 느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저희 "배"조차도 "주릴 것이다." 그들의 감각적 욕구는 언제나 기갈들려 있다. 지옥에서는 한 방울의 물도 그들에게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