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사무엘상 12, 로마서 10, 예레미야 49, 시편 26, 27
묵상구절
29:1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
29:2 의인이 많아지면 백성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하느니라
29:3 지혜를 사모하는 자는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창기와 사귀는 자는 재물을 잃느니라
29:4 왕은 정의로 나라를 견고하게 하나 뇌물을 억지로 내게 하는 자는 나라를 멸망시키느니라
29:5 이웃에게 아첨하는 것은 그의 발 앞에 그물을 치는 것이니라
29:6 악인이 범죄하는 것은 스스로 올무가 되게 하는 것이나 의인은 노래하고 기뻐하느니라
29:7 의인은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 주나 악인은 알아 줄 지식이 없느니라
29:8 거만한 자는 성읍을 요란하게 하여도 슬기로운 자는 노를 그치게 하느니라
29:9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가 다투면 지혜로운 자가 노하든지 웃든지 그 다툼은 그침이 없느니라
29:10 피 흘리기를 좋아하는 자는 온전한 자를 미워하고 정직한 자의 생명을 찾느니라
29:11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억제하느니라
29:12 관원이 거짓말을 들으면 그의 하인들은 다 악하게 되느니라
29:13 가난한 자와 포학한 자가 섞여 살거니와 여호와께서는 그 모두의 눈에 빛을 주시느니라
29:14 왕이 가난한 자를 성실히 신원하면 그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29:15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행하게 버려 둔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29:16 악인이 많아지면 죄도 많아지나니 의인은 그들의 망함을 보리라
29:17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
29:18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29:19 종은 말로만 하면 고치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가 알고도 따르지 아니함이니라
29:20 네가 말이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
29:21 종을 어렸을 때부터 곱게 양육하면 그가 나중에는 자식인 체하리라
29:22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성내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
29:23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29:24 도둑과 짝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미워하는 자라 그는 저주를 들어도 진술하지 아니하느니라
29:25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29:26 주권자에게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으나 사람의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느니라
29:27 불의한 자는 의인에게 미움을 받고 바르게 행하는 자는 악인에게 미움을 받느니라
매튜헨리/옥스퍼드
(1) 29:1-14
서론
● 사악한 자의 완고함(잠언 29:1)
- 많은 악인이 사악한 행실을 고집하고 있다는 것은 크게 통탄할 일이다. 그들은 "자주 책망을 받느니라." 부모나 친구, 통치자나 목사, 하나님의 섭리나 자신의 양심이 숱한 견책을 퍼부으며 그의 죄를 눈 앞에 나열해 두고 그 죄의 결과를 따끔히 경고해 주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그들은 "자신의 목을 곧게 하느니라." 그들은 아무 소용이 없다. 그들은 "자신의 목을 곧게 하느니라." 그들은 아마 휭하니 뛰쳐나가 버리며 참을성 있게 듣지 않을 것이다. 설령 듣는다 해도 힐책받을 죄를 계속 지을 것이다. 또 자기 목을 굽혀 멍에를 받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자들은 벨리알의 자녀이다. 그들은 책망을 거절하며(10:17) 멸시하며(5:12) 싫어한다(12:1).
- 이런 완고의 결과는 크게 두려워할 만하다. 충고에도 불구하고 계속 범죄하는 자는 "패망을 당하리라." 개심하지 않으려는 자는 파멸밖에 기대할 것이 없다. 채찍이 목적에 부합하지 않으면 도끼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한창 안심하고 있는 중에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치료할 도리가 없을 것이다":원뜻). 그들은 예방하는 치료를 무시하고 범죄하였다. 그러므로 회복시키는 치료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지옥은 구제할 길이 없는 멸망이다. 그들은 "패망을 당하고, 치유함을 받지 못하리라." 하나님이 상처를 입히신 것은 누가 치료할 수 있겠는가?
💡 29:1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
●의인과 악인의 영향(잠언 29:2)
이 같은 말씀은 앞에서도 나온 바 있다(28:12, 28).
- 지배자가 "의인"이냐 "악인"이냐 하는 데 따라 백성은 "즐거워"하거나 "탄식"하게 될 것이다. "의인이 많아지면"(또는 "권세를 잡으면") 죄인은 벌을 받고 억제를 당할 것이며, 신앙과 미덕이 있는 자는 후원을 받고 명성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악이 만발하게 되고 경건한 신앙과 신앙인은 박해를 당하게 될 것이며 통치의 목적은 전도되고 말 것이다.
- "백성"은 자기들의 통치자가 "의인"이냐 "악인"이냐에 따라 실제로 "즐거워"하거나 "탄식"하게 될 것이다. 일반 평민들까지도 미덕과 신앙의 훌륭함에 대한 지각이 너무나 뚜렷하게 그런 긍정적 가치가 우대를 받고 애호되는 것을 보게 되면 기뻐할 것이다. 반대로, 존귀와 권세를 아무리 많이 누리는 자라도 악하고 해로운 "존재라면 그들 "스스로 모든 백성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된다(말 2:9). 백성들은 그런 통치자 밑에 있는 자기들을 불행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 29:2 의인이 많아지면 백성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하느니라
● 지혜와 음란한 욕망(잠언 29:3)
이 말씀의 전후 반점은 모두 여러 번 등장했던 것의 되풀이지만 함께 비교해 봄으로써 그 의미는 확대될 것이다.
- 유덕한 청년이 "지혜를 사모한다"는 것을 관찰하여 그에게 영광이 되게 하자.
그러한 그는 "철학자"이며("철학자"는 "애지자"를 의미하기 때문에), 경건한 신앙은 최상의 철학이다. 그는 악한 교우를 피하며, 특히 음탕한 여인을 멀리한다. 이로써 그는 자기 부모를 "즐겁게 하며," 부모의 위안이 되었다는 만족감을 누리고, 자기 재산을 늘이며 안락하게 살 수 있다.
- "지혜"를 미워한다는 것은 악한 청년의 치욕이 됨을 살피자.
그는 그의 영혼과 육체를 모두 파멸시키게 되는 추문 높은 여인들과 "사귀느니라." 그는 자기 부모를 번뇌케하며 탕자처럼 "창기를 사귀어" 자기 부모의 생계를 삼켜 버린다. 음란한 욕망보다 더 빨리 알거지로 만드는 것도 없다. 그러나 "지혜"는 파멸의 앞잡이인 음욕에 대해 가장 효과적인 방부제가 된다.
💡 29:3 지혜를 사모하는 자는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창기와 사귀는 자는 재물을 잃느니라
●공의와 뇌물(잠언 29:4)
- 선한 통치 하에 사는 백성의 행복.
위정자의 관심사는 "나라를 견고케 하는"것이 되어야 한다. 기본법을 유지하고 국민의 사상을 확립하며, 국민의 편안을 도모하고 자유와 재산권을 보장하여 번영으로 이끌며, 부족한 재화를 개발하여 분배하는 것이 바로 통치자의 주된 임무이다. 그는 이러한 일들을 "공의로" 수행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이런 목적을 효과적으로 이룰 수 있게 하는 지혜로운 계획과 정실을 배제한 항구적 사법권의 행사에 의해 이 일을 수행해 나가야 한다.
- 악정 하에 신음하는 백성의 불행.
온 나라에 세금을 부과하는(난외주) 위정자, 거룩한 것을 모독하거나 미신을 믿는 위정자, 사울이나 웃시야처럼 제사장의 직분을 침해하는 지배자, 돈밖에 노리는게 없어 많은 뇌물만 받으면 아무리 극악한 자도 묵인하여 또 뇌물을 바라서 무죄한 자를 못살게 구는 통치자 등등, 이런 자들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자들인 것이다.
💡 29:4 왕은 정의로 나라를 견고하게 하나 뇌물을 억지로 내게 하는 자는 나라를 멸망시키느니라
● 아첨의 폐해(잠언 29:5)
선이(선한 행위든 선한 소유든) 실제로는 그 사람에게 존재하지도 않거나 또는 존재한다고 해도 그들이 표현하는 만큼 선한 것도 아닌데 칭찬하고 찬사를 던지는 자들은 그 "이웃에게 아첨한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는 자기 이웃에 대해 존경심과 애정을 품고 있지 않으면서 그것을 고백하는 자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그의 발 앞에 그물을 치는" 자들이다.
- 자기 이웃의 발 앞에 그물을 치는 "아첨".
그 아첨에는 악한 의도가 들어 있다. 그들은 칭찬을 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 단지 이웃을 이용해 먹기 위해 아첨으로 칭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첨하는 자를 만나면 그들이 우리에게 은밀히 함정을 파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그에 따라 경각심을 높이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다.
또 아첨은 아첨받는 악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아첨을 받으면 사람들은 으쓱대고 교만해진다. 아첨은 그들을 잘난 체하게 만들고 자신만만하게 만들어서 죄에 얽혀들게 하는 그물이 되는 것이다.
- 아첨군 자신의 발 앞에 그물을 치는 아첨.
이렇게 해석하는 자들도 더러 있다. 자기가 아첨하면 남도 답례로 자기에게 찬사를 던져 주고 비위에 맞는 말을 되돌려 줄 것으로 기대하여 알랑거리는 자는 바로 그 아첨받는 자에게까지 우스꽝스럽고 밉살스런 자로 취급받을 뿐이다.
💡 29:5 이웃에게 아첨하는 것은 그의 발 앞에 그물을 치는 것이니라
●악인과 의인의 길(잠언 29:6)
- 위험한 죄의 길.
이 길은 종착점에는 물론 형벌이 도사리고 있으나 그 도중에는 "올무"가 있다. 한 가지 죄는 또 다른 죄를 유혹한다. 악한 자에게는 그들이 한창 범죄에 빠져있을 때 환란이 "올무"처럼 갑자기 임한다. 아니, 흔히 범죄 그 자체에는 괴로움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그들의 죄가 곧 자기들의 형벌이되며 그들은 "자기 죄에 줄에 메이느니라"(5:22).
- 즐거운 경건의 길.
"악인의 범죄"에 있는 올무는 그들의 모든 환락을 망쳐 놓지만, 의로운 자는 이들 올무에서 보호를 받거나 구출을 받는다. 그들은 마음대로 행하며 안전한 가운데 걷는다. 그러므로 "노래하고 기뻐하느니라." 하나님을 자기들의 주된 기쁨으로 삼는 자들은 그를 자기들의 최상의 즐거움으로 지니게 된다. 따라서 "늘 기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기들 자신의 잘못이다. 천국 이편에도 참된 기쁨이 있다면 천국에는 생활하는 자들이 소유하는 기쁨이야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 29:6 악인이 범죄하는 것은 스스로 올무가 되게 하는 것이나 의인은 노래하고 기뻐하느니라
● 가난한 자에 대한 보살핌(잠언 29:7)
sud forma pauperis-즉 극빈자로서 소송을 제기하는 자 모두가 정당한 소송을 재류하진 않는다는 사실은 유감된 일이다(가난안 사람이 옳다고 주장할 만한 사유를 지니지 못한다면 그는 어느 누구보다 변명의 여지가 없게 된다). 성서는 사건에 대한 청취를 공정히 해야 할 것과, 재판관이 죄인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가난한 자에 대해서도 신중해야 함을 너무나 잘 규정하고 있다.
- 본문에서는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주는" 것이 "의로운" 재판관의 특징으로 되어 있다.
불쌍한 자를 살피는 것은 모든 사람의 의무지만(시 41:1), 그들에 대한 재판은 재판 석에 앉은 자들이 살펴 주어야 할 것이다. 재판관은 시비를 가리는 데 있어서 부자의 사건뿐만 아니라, 가난한 자의 소송에서도 마찬가지의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판사와 변호사는 가난한 자의 소송에 최대의 이익이 걸려 있기라도 한 양 정의감의 발로에서 그 일에 무던히 애쓰고 부지런히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 득될 것이 조금도 없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 하여 그 진상에 대해 "알아 줄 지식이 없느니라"(원뜻:"알기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느니라")고 하는 것은 "악인"의 특징이 되고 있다. 악인은 그 가난한 자의 송사를 옳게 되든 그르게 되든 상관하지 않는다(욥 29:16 참조).
💡 29:7 의인은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 주나 악인은 알아 줄 지식이 없느니라
●모만한 자와 슬기로운 자(잠언 29:8)
- 누가 일반 대중에게 위험한 존재인가?
그것은 바로 "모만(侮慢)한 자"이다. 이런 자들이 국가의 일에 종사하고 있다면 사무처리를 경솔하게 할 것이다. 그들은 신중히 생각하는 일을 우습게 알고 심사숙고하나 협의할 시간적 여유를 갖지 않으려는 자들인 까닭이다. 그들은 법률과 헌법에 제약받는 일을 무시하기 때문에 불법적이고도 조리에 닿지 않는 일을 자행할 것이다. 그들은 자기의 약속에 얽매이는 것을 우습게 여기기 때문에 신의를 잃게 될 것이며 국민을 즐겁게 하는 일을 경시하기 때문에 그들의 감정을 사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그들은 자기들의 비행으로써 "성읍을 요란케 하거나"(또는 "올무에 걸리게 하거나") "성읍을 불붙게 하느니라"(난외주는 그렇게 되었음). 그들은 시민들 사이에 불화를 심어 s호고 그들을 환란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 넣는다. 경건한 신앙을 비웃고, 양심의 의무와 딴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경건하고 진실한 것이면 무엇이나 다 희롱하는 자들이 바로 "모만한 자"이다. 이런 자들은 그 시대의 염병이다. 한 나라의 심판을 임하게 하고 인간들끼리 분쟁하게 하며 따라서 모든 것을 뒤죽박죽이 되게 하는 자들인 것이다.
- 한 나라의 축복이 되는 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은 곧 "슬기로운 자"들이다. 그들은 참 지혜인 신앙을 장려함으로써 하나님의 "노를 그치게 하며," 사려깊은 계책으로써 분쟁하는 파당을 화해시키고 분열이란 해로운 결과를 미연에 방지하는 자들이다.
교만하고 어리석은 자들이 지른 불은 지혜롭고 선량한 자들이 끄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 29:8 거만한 자는 성읍을 요란하게 하여도 슬기로운 자는 노를 그치게 하느니라
● 지혜자와 우매자의 다툼(잠언 29:9)
지혜로운 자는 자기의 슬기를 우매한 자에게 적용하고 그와 논쟁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권면을 받고 있다. 어리석은 자와 토론을 벌임으로써 그에게 이치를 깨닫게 하겠다거나 그로부터 시인을 받겠다고 생각지 말라는 권고이다. "지혜로운 자가 지혜로운 자와 다툰다면" 그는 이해를 바랄 수도 있고 자기 편에 타당한 이유와 정당함이 있는 한 목적을 달성할 희망이 있으며, 적어도 쟁점을 수긍시켜 우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랄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미련한 자와 다투면 그침이 없느니라." 그는 그 다툼의 끝을 보지 못할 것이며 어떤 만족도 얻지 못할 것이고 다만 계속 불안할 것을 각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미련한 자인 경우.
"노하든지 웃든지, 지혜로운 자의 말을 성내면서 받아들이든지 냉소하며 받아들이든지", 욕설을 하든지 조롱을 하든지 미련한 자는 이 두 가지 일 중 하나밖에 모른다. 그러므로 이 다툼은 "그침이 없느니라." 어떻게 처신해도 오해로 받아 들여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지혜로운 자가 미련한 자와 다툰다면 그는 욕을 먹거나 조롱을 당하는 것은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똥더미와 싸움을 벌이는 자는 이기든지 지든지 간에 더러워지지 않을 수 없다.
- 지혜로운 자의 경우.
지혜로운 자가 "노하든지," 웃든지 "우매자를 진지하게 대하든 쾌활하게 대하든 그에게 근업하든 유연하든 매를 가지고 나아가든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든(고전 4:21) 그것은 모두 매 한 가지이며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가 너희에게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았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않았도다"(마 11:17).
💡 29:9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가 다투면 지혜로운 자가 노하든지 웃든지 그 다툼은 그침이 없느니라
●살인자의 행패(잠언 29:10)
- 악한 자들은 자기들의 가장 좋은 친구도 미워한다.
그들은 "피흘리기를 좋아하는 자"이다. 그들은 모두가 "태초로부터 살인자였던" 옛 뱀의 자손들이며, 여자의 후손에게 대한 적의를 상속받은 자들이기에 "온전한 자를 미워하느니라." 그들은 선한 자들이 악한 세상을 정죄하고 그를 쳐서 증거하기 때문에 그들의 멸망을 도모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제자들에게 그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피에 굶주린 자들은 특히 정직한 위정자들을 미워하는데, 이는 이 관원들이 악인을 검속하여 개선시키고자 하며 그들에게 대적하는 법을 실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은 이들이 그들에게 친절을 베풀고자 하는 친구인 것이다.
- 선량한 사람들은 극히 악한 원수들까지도 사랑한다(우리 성서와 상이함).
피에 굶주린 자들에게 미움을 받으면서도 "정직한 자는 그들의 영혼을 찾으며" 그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고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는 어떤 일도 기꺼이 행하고자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여! 저희를 용서하소서!"라고 하는 교훈을 우리에게 남기셨다.
"정직한 자는 그의 생명," 즉 피흘리기를 좋아하는 자들이 미워하는 온전한 자의 "생명을 찾느니라"(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통례이다). 그들은 그 생명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려고 피흘리기를 좋아하는 자의 손에서 구원하려고 노력하며 그들에게 복수하려고 애쓴다.
💡 29:10 피 흘리기를 좋아하는 자는 온전한 자를 미워하고 정직한 자의 생명을 찾느니라
● 신중함의 지혜(잠언 29:11)
- 너무 공개한다는 것도 하나의 약점이 된다.
"자기 노(또는 마음 의사)를 다 드러내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다. 그는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전부 다 말해 버리며,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든 즉시 입 밖에 내놓고 어떤 의향도 지니고 있지 못하는 자이다. 화제가 어디서 시작되었든지 간에 재빨리 자기 밑천을 다 털어 놓아 버리며 호가 나면 맨 먼저 떠오르는 생각을 그대로 뇌까리고 그로 인해 누구의 체면이 손상되든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다. 어떤 일에 대해 말해야 할 경우가 생기면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전부 다 얘기하면서도 그는 결코 충분히 말한 것으로 생각지 않는다. 그 말을 택하든 말든, 그 말이 알맹이든 껍데기는, 적절하든 적절하지 않든 다 들어야 한다는 식인 것이다.
- 심중에 보류해 두고 삼가는 것은 일종의 지혜이다.
"지혜로운 자"는 "마음"에 있는 것을 즉시 "다 드러내지 않고" 재고해 볼 시간적 여유를 가지거나, 자기 의도에 부합하기 쉬운 보다 적절한 때를 위해 현재의 생각을 보류해 두려고 할 것이다. 그는 딱딱한 어조로 계속 말하려 하지 않고 쉬어가면서 자기의 의사를 전달할 것이니 이는 반대하는 의견이 있으면 들어 보고 응답하기 위함이다. Non minus interdum arat orium et tacere quam dicere-즉 진정한 융변은 이따금씩 휴지(休止)를 요구한다(플리니 서간 7:6).
💡 29:11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억제하느니라
●통치자의 거짓말(잠언 29:12)
- "거짓말을 신청한다는"것은 큰 죄이다.
누구든지 다 그렇지만 특히 통치자의 경우가 그렇다. 지배 계급에 있는 자들이 거짓된 말을 귀담아 듣게 되면, 자기들이 믿는 거짓말에 따라 사람이나 일에 대해 그릇된 판결을 내리게 될뿐더러 그릇된 제보자들을 고무시키는 셈이 된다. 거짓말에 귀를 기울이는 자들에게는 거짓말을 하려는 자가 자꾸 나타날 것이다. 이 경우에 있어서 그것을 듣는 자는 도둑질하는 자만큼 악한 것이다.
- 거짓말을 경청하는 자는 "다 악한 하인"만 거느리게 될 것이다. 그들의 하인은 모두악한 자로 여겨질 것이다. 그들이 거짓말을 듣는 것은 바로 이 하인들 한테서이기 때문이다.
또 하인이 자기 주인에게 거짓말을 할 것이기 때문에 그들도 악할 것이다. 그들의 귀는 온통 비방과 악평과 거짓된 표현으로 꽉 메워지게 될 것이다. 만일 백성과 마찬가지로 위정자들도 속으려 한다면 누구라도 그들을 속이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릇된 정보를 제공한 하인들에게 자신들이 내린 오판의 죄를 뒤집어 씌울 수 없으며 자기 수하인들의 죄를 같이 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에게는 그와 같은 오보를 장려하고 후원하며 경청했다는 비난의 아우성이 들리게 될 것이다.
💡 29:12 관원이 거짓말을 들으면 그의 하인들은 다 악하게 되느니라
● 하나님의 섭리의 공평함(잠언 29:13)
크신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매우 상이한 기질과 기능과 상태의 사람들을 통하여 자기 섭리의 계획을 아주 지혜롭게 이룩하신다.
- 서로가 반대인 자들로써.
어떤 자는 가난하여 꾸어서라도 살지 않을 수 없다. 또 어떤 사람은 부자여서 "불의한 부"(이것은 "속이는 재물"이라고 불리운다)를 아주 많이 소유한다. 그들은 채권자나 고리대금업자이다. "가난"하지만 정직하고 부지런한 자가 있는가 하면 게으르고 "속이는"(우리성서:"포학한") 부자도 있다. 그들은 이 세상의 일에서 함께 만나며 서로 거래를 한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눈에 다 빛을 주시느니라." 그는 이 양자에게 다 자기 해를 비취우시며 이 생의 안락한 것을 양쪽한테 다 주신다. 그 중 어떤 자에게는 그의 은혜도 주신다. 가난한 자에게는 인내심을 주셔서 저희 눈을 밝히시고 부자에게는 삭개오처럼 회개하는 마음을 주셔서 속이는 눈을 밝혀 주신다.
- 도저히 살려 둘 수 없다고 생각되는 자들로써.
우리는 "가난한 자와 포학한 자"(또는 "속이는 자")를 섭리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들조차 자기 계획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시는 데 이용하신다. 그는 지혜로운 목적이 있으셔서 우리에게 언제나 가난한 자들을 남겨 두실 뿐만 아니라, "속는 자와 속이는 자도" 용납하신다. 이 양자가 다 "그에게" 속해 있어서(욥 12:16) 그를 찬양받도록 하는 것이다.
💡 29:13 가난한 자와 포학한 자가 섞여 살거니와 여호와께서는 그 모두의 눈에 빛을 주시느니라
●통치자의 의무(잠언 29:14)
- 통치자의 의무.
즉 사람과 사람 간의 판결을 신실하게 하고 자기 앞에 제출된 모든 안건을 진리와 공평을 따라 결정하며, 특히 "가난한 자"를 돌보되 가난하다고 해서 부당한 일에 저희를 두둔하지 말며(출 23:3) 가난한 자가 정당한 이유를 갖고 있다면 저희 가난 때문에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신경을 쓰는 것이 곧 치리자의 도리이다. 부자는 자기 힘으로 자기 주장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는 왕이 수호해야 하며(시 82:3) 신원해야 하는 것이다(31:9).
- 의무를 이행하는 통치자의 행복.
그들의 재판석인 존귀한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이같이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면 하나님의 은총을 확보하고 백성의 사랑을 획득하는 가운데 자기 세력을 한층 강화하게 될 것이다. 이 두 가지는 그들의 권세를 확립시켜 줄 것이며, 그 권세를 후손에게 전하고 자기 가문의 영속적 전유물로 만드는 데에 이바지할 것이다.
💡 29:14 왕이 가난한 자를 성실히 신원하면 그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2) 29:15-27
💡서론
● 지식에 대한 징계와 방임(잠언 29:15)
부모는 자녀의 교육에서 다음 사실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 합당한 징계의 유익함.
부모는 자녀에게 무엇이 선이며 악인지 가르쳐 주어야만 되며 필요한 경우에는, 즉 선한 일에 태만하거나 악한 일을 행할 때에는 꾸짖고 징계하여 바로잡아야 한다. "채찍"없이 "꾸지람"으로 말을 잘 들으면 다행이다. 그러나 "채찍"은 이치에 맞고 근엄한 "꾸지람" 없이는 결코 사용해선 안 된다. 당장에는 징계가 아비와 자식에게 불편한 마음을 안겨다 준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지혜를 줄"것이다. Vexatio dat intellectum-즉 괴로움은 이지(理智)를 예리하게 만든다. 징계받는 자녀는 경고를 받아들일 것이며 그래서 "지혜"를 얻게 될 것이다.
- 부당한 방임의 해약.
제동을 걸지 않거나 책망하지 않고 아도니야처럼 자기의 취향을 따라 "임의로 하게 내버려 두는" 자식도 자기가 하려고만 하면 건전하게 행동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일 그가 그릇된 길로 간다면 아무도 그를 막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런 경우는 천에 하나이지만 그는 자기 가문에 치욕이 되며, 자기를 귀여워하여 멋대로 하도록 비위를 맞춰 준 자기 "어미를 욕되게"하고 가난하게 하고 비난받게 하며, 아마 그 스스로도 그녀를 학대하며 욕설을 퍼부을 것이다.
💡 29:15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행하게 버려 둔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악인과 범죄(잠언 29:16)
- 죄인이 많으면 많을수록 죄도 많게 될 것이다.
악인이 권세자의 두 눈을 받아 무수하게 불어나 사면팔방으로 활개치고 다닌다면 "죄가 많아진다"고 하여 이상스럽게 여길 것은 없다. 전염병은 거기 접촉하는 자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더욱 더 창궐하게 된다. "범죄"가 보다 파렴치해지고 대담하게 되며 대형화하여 위협적으로 되는 것은 죄를 비호하는 자가 많을 때이다. 옛 세상에서는 "사람이 많아지기 시작한" 때부터 사람들이 타락하고 서로를 부패시키기 시작했던 것이다.
- 죄가 많아지면 멸망의 위협도 한층 급박해진다.
죄와 죄인이 증가한다고 하여 "의인"의 믿음과 소망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자기 손을 헛되이 깨끗게 하였다"거나 "하나님이 땅을 버리셨다"고 말하지 말고 인내로써 기다리라. 범죄자들은 멸망할 것이며 저희불의의 말(斗)은 가득 차게 될 것이다. 그 때는 저희가 존귀하고 권세있는 자리에서 떨어져 수치와 멸망 속으로 굴러 떨어질 것이다. 반면에 "의인"은 "악인이 끊어질 때에 목도"하게 되는 만족을 누릴 것이며(시 37:34), 그들의 멸망을 이 세상에서도 구경하게 될 것이지만 저 큰 심판 날에는 틀림 없이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 때에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지 못할 원수들의 몰락이 영화로운 성도들의 기쁨과 승리가 되리라(사 66:24; 창 19:28).
💡 29:16 악인이 많아지면 죄도 많아지나니 의인은 그들의 망함을 보리라
● 부모의 위안이 되는 자녀(잠언 29:17)
- 자녀가 부모의 위안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복된 일이다.
착한 자녀는 부모의 위로가 된다. 그들은 "부모를 평안하게 하고" 휴식을 얻게 해 주며, 편하게 해 주고 자기들에게 대해 품던 많은 근심 걱정에서 해방시켜 준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
자기 자녀에게 베푼 선한 교육의 결실이 이처럼 복됨을 보게 되면 부모는 즐겁다. 그들이 이 세상뿐만 아니라 영원한 세상을 위해서도 다 잘 해나갈 것 같은 전망을 엿보이게 되면 부모는 여간 즐거운 것이 아니다. 이런 자녀의 축복을 받아본 사람이 아니고는 누구도 그 즐거움을 모른다. 자녀에게 대해 품었던 관심에 비례하여 그 즐거움도 커지는 것이다.
- 이를 위해 자녀는 엄한 규율 하에서 양육되어야 한다.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허용해서는 안 되며 잘못 행동할 때 견책없이 내 버려 두어서도 안 된다. 그들의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어리석음은 자녀가 어릴 때에 채찍으로 몰아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자녀가 장성했을 때 그 미련함이 폭발하여 그들 자신과 그들의 부모에게 치욕을 입힐 것이기 때문이다.
💡 29:17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
●묵시의 유의함(잠언 29:18)
Ⅰ. 확고한 목회 활동이 결여된 백성의 불행.
"묵시가 없다"는 말씀은 율법을 설명할 예언자가 없고 여호와께 대한 선한 지식을 가르칠 레위인이나 제사장이 없으며, 은혜의 수단도 없고 여호와의 말씀이 희소하여 "보이지 않음"을 뜻한다(삼상 3:1). 그렇게 되면 "백성은 방자히 행하게 되느니라." "방자히 행한다"는 단어에는 여기에서 여러 가지 의미로 적용되고 있다.
- "벌거벗게 된다."
장신구와 옷가지를 벗게 되면 수치가 드러나고 무기와 갑옷을 벗어던지게 되면 위험에 노출된다. 성서와 목회자가 없는 곳은 얼마나 벌거숭이 지역인가! 그곳은 아주 쉽사리 영혼의 원수들에게 먹이가 되고 마는 것이다.
- "반역한다."
하나님께 뿐만 아니라 위정자에게 해한 반란도 자행하게 된다. 훌륭한 설교를 사람들을 훌륭한 국민으로 만들어 준다. 그러나 그것이 결여되면 백성은 난폭해지고 파쟁을 일삼게 되며 "통치권을 무시하게" 된다. 그들은 이보다 더 나은 길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 "게으르다," 또는 "논다."
그것은 선생님이 안계실 때 학생들이 놀기 쉬운 것과 같다. 그들은 선한 목적을 지닌 일은 전혀 행하지 않고 하루 종일 빈둥거리며 저자 바닥에서 논다. 이것은 무엇을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를 훈계하지 않은 때문이다.
- "목자 없는 양떼처럼 흩어진다."
무리들을 소리쳐 불러 모으는 주인이 없기 때문에(막 6:34), 백성은 하나님으로부터 흩어져 나가고, 변절하여 자기 의무에서 떠나가며, 분열로 인해 서로에게서 흩어진다. 하나님이 노하시면 심판으로 그들을 흩어지기도 한다(대하 15:3, 5).
- "멸망한다."
그들은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호 4:6). 그러나 우리에게는 풍성한 묵시가 공개되어 있어서 우리는 그것을 누리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다.
Ⅱ. 확고하고 성공적인 목회를 누리고 있는 백성의 지극한 행복.
"율법"을 들으며 "지키는" 백성은 복되며 그들에게는 경건한 신앙의 최상의 것이다. 그런 백성과 그런 개개 인사는 "복"이 있다. 우리가 복된 자가 되려면 율법을 소유하고 있는데 그쳐서는 안 되며 그 율법에 복종하고 그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 29:18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 악한 종의 특성(잠언 29:19)
여기에는 무익하고 게으르고 악한 종, 즉 양심이나 사랑에서 우러나 섬기는 게 아니라 순전히 무서워서 섬기는 노예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이런 종을 둔 자들은 괴로움을 참는 인내를 가지고 스스로 동요를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런 종의 특징을 살펴 보자.
- 그에게는 어떤 합리적인 말도 소용이 없다.
이들은 "고치지 아니하려 하고" 개선을 싫어하며, 자기 일을 하지 않으려 하고 정당한 수단으로는 자기의 게으름과 태만을 고치지 않으며 심지어 험한 "말"로써도 듣지 않는다.
아무리 온화한 주인이라도 이 같은 종에게는 호된 방법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어떤 이치도 그들에게는 쓸모가 없으며 그들을 돌이키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치를 모르는 비이성인이기 때문이다.
- 그들로부터는 어떤 합리적인 말도 얻을 수 없다.
그들은 고집이 세고 퉁명스럽다. 묻는 말을 "알고도 대답하려 하지 않는다."
대답한다는 것은 청종을 의미한다. 주인이 기대하는 바를 아무리 쉽게 설명해 주어도 그들은 잘못된 것을 고치겠다거나 자기 일에 전념하겠다는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물어도 입을 꿀먹은 벙어리 모양으로 봉하고 매를 자청하는 종들의 미련함을 생각해 보라. "좋은 말로 할 때 고쳐서" 매를 피하면 좋으련만 그들은 "고치지 아니하느니라."
💡 29:19 종은 말로만 하면 고치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가 알고도 따르지 아니함이니라
●조급한 자의 결점(잠언 29:20)
솔로몬은 조급한 자를 지혜롭게 만들기란 거의 틀린 노릇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 경솔과 무사려 때문에.
"네가 일에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즉 생각이 경박하고 엉뚱하여, 일을 속히 하는 듯이 보이면서도 어중간하게 마치고, 책이나 학문을 빨리 하는 듯하지만 그것을 소화시킬 여유가 없고, 쉴 시간도 자기 일을 생각해 볼 시간도 갖지 않는 자가 바로 그런 자이다. 민활한 천재적 소질을 지니면서도 고정된 마음이 없는 자보다는 둔하고 굼뜨고 자기 연구에 진도가 느린 자에게 오히려 학자나 현인이 되기를 "바랄" 수 있는 것이다.
- 교만심과 자부심 때문에.
"네가 언어에 조급한 자를 보느냐?" 그는 무슨 일에서나 자진하여 말을 꺼내며 맨 먼저 말하기를 좋아하고, 말문을 여는 동시에 끝까지 얘기하려 하며, 마치 신탁을 받기라도 한 듯 판결까지 겸하여 내린다. 이처럼 뽐내는 자보다 자기의 무지함을 깨닫고 있는 겸손한 "우매가"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
💡 29:20 네가 말이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
● 종에 대한 적절한 대우(잠언 29:21)
- 종이 사랑스럽고 마음에 든다 하여 과도히 총애하고 너무 빨리 승진시켜 주며 아주 천하게 되도록 허용한다는 것은 주인으로서 생각이 깊지 못한 처사이다. 의식주에 있어서 너무 지나치게 좋은 것을 마련해 주어 곱게 양육하는 것도 좋지 않다. 그는 종이며 이렇게 방임하다가는 때와 장소가 바뀌는 날에 그를 망치게 된다는 사실을 아울러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종은 고생을 견디어 낼 수 있지 않으면 안 된다.
- 자기가 곱게 대우를 받는다고 해서 무례하게 처신한다는 것은 종으로서 은혜를 모르는 짓이나 이런 일은 흔히 볼 수 있다. 겸손해진 탕자는 자가가 "아들이라고 불릴"만한 가치가 없는 자로 생각하고 종으로 되는 것을 족하게 여긴다. 그러나 응석받이로 자란 종은 방자해져서 자신이 종으로 불리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생각하여 "나중에는 아들인 체"할 것이고, 자기의 편안한 자유를 누리려할 것이며, 자기 주인과 동등히 되려고 하고 아마 급기야는 상속을 주장하고 나설 것이다. 주인은 "자기 종에게 공평한 것을 줄지니라." 즉 더도 덜도 말고 종에게 어울리는 것을 주는 것이 공평한 것이다.
이 말씀은 영혼의 종이 되는 육신에도 매우 적합한 말씀이다. 신체를 "곱게 양육하여" 그 비위를 맞춰 주며 과도하게 돌보는 자들은 그 신체가 결국 제 본분을 잊고 "자식인 체하며" 주인, 나아가서는 완전한 폭군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 29:21 종을 어렸을 때부터 곱게 양육하면 그가 나중에는 자식인 체하리라
● 분노의 폐해(잠언 29:22)
여기서는 분노와 혈기와 격정에 사로잡힌 마음에서 어떤 해로움이 유출되는지를 살펴 보자.
- 분노는 사람을 서로 노여워하게 만든다.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말썽이 많고 가정에서나 이웃에서나 언쟁하기 좋아하며, 남의 화를 돋구고 자기와 평화롭고 조용하게 지내기를 원하는 자에게 굳이 사이가 벌어지려고 애쓴다.
- 분노는 하나님께서 노여움을 입게 만든다.
"분하여 하는 자는" 자기의 기분과 격정에 집착하다 보면 "범죄함이 많게" 될 수밖에 없다. 부당한 분노는 여러 가지 많은 죄를 유발시키는 원인이 된다. 사람들은 정당하지 못한 분노로 인해 하나님의 성호를 부르지 못하게 될 뿐 아니라 맹세나 저주나 하나님의 성호를 모독하게까지 되는 것이다.
💡 29:22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성내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
● 교만과 겸손(잠언 29:23)
이 말씀은 다음과 같이 그리스도께서 여러 번 언급하신 것과 일치한다.
- "스스로 높아지고자 하는 자는 낮아질 것이다."
존경을 얻으려는 생각에서 자기 분수에 맞지 않게 스스로 추켜 세우고 표정을 거만하게 하며, 허풍을 치고 외양을 아름답게 하며 자화자찬하는 자는 반대로 경멸을 받게 되고 신앙을 잃게 되며, 자기들을 낮게 해두신 섭리를 욕되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게 될 것이다.
- "스스로 낮아지고자 하는 자는 높아지게 될 것이며" 그 위엄이 든든해질 것이다.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그들의 겸비는 곧 명예가 된다. 겸손은 그들의 진실성과 안전도를 극대화시키며, 지혜롭고 선량한 사람들은 그들을 칭찬하고 존경하게 될 것이다.
💡 29:23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도적과 짝하는 자(잠언 29:24)
죄인의 유혹에 끌려 들어가는 자는 어떤 죄와 어떤 파멸에 몸담게 되는지를 살펴 보자.
- 그들은 아주 많은 죄를 짓게 된다.
강도나 사깃군과 "짝"하며 "그들과 함께 제비를 뽑는" 자(1:11 이하)는 많은 죄를 짓는다. 도둑을 받아들이는 자는 도둑이나 다를 것이 없다. 그에게 이끌려서 범죄에 가담하였으므로 범죄 사실의 은폐에 가담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극히 무서운 위증과 위장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회피할 수 없게 된다. 그들은 진실을 말하겠다고 선서할 때 "맹세함(또는 "저주함")을 들지만," 자백하지는 않을 것이다.
- 그들은 완전한 파멸로 달려간다.
그들은 "자기의 영혼을 미워하기"까지 한다. 자기들의 영혼에 피할 수 없는 멸망을 가져다 줄 일도 일부러 행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죄인들이 범하는 부조리와 모순을 유의하라. 그들은 무엇보다 두려운 죽음을 사랑하고 무엇보다 소중한 "자기 영혼"을 미워하는 것이다.
💡 29:24 도둑과 짝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미워하는 자라 그는 저주를 들어도 진술하지 아니하느니라
● 여호와에 대한 경외(잠언 29:25)
-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의 힘을 두려워하지 말고 통치자의 권세나 군중의 위력도 무서워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고 있다.
물론 권력이나 다수의 힘은 가공할 만하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노예적인 두려움은 자신을 "올무에 걸리게 한다." 즉 많은 모욕을 당하게 되거나(겁장이를 무섭게 함으로써 자만을 느끼는 자도 있다), 많은 시험에 직면하게 된다. 아브라함은 사람을 두려워하여 자기 아내를 아내가 아니라고 하였고, 베드로는 자기 주인이자 선생인 그리스도를 부인하였던 것이다. 인간을 두려워하여 자기 하나님과 신앙을 부인하는 자는 부지기수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의 분노를 모면하기 위해 의무의 길에서 위축되거나 죄를 짓지 말아야 하며, 비록 우리에게 맹렬한 노가 닥쳐오는 것을 목도하더라도 두려움으로 불안해져서는 안 되겠다(단 3:16; 시 118:6). 그는 죽어야 할 인간이며(사 51:12) 우리의 몸밖에 죽일 능력이 없는 인간이기 때문이다(눅 12:5).
-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라고 권면받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고통과 시험을 유발하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주실 것이다. 의무의 길에서 보호받고 공급받기 위해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인간의 힘과 또 그 힘에 대한 공포가 미치지 못할 만큼 높이 좌정하게 될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께 대한 거룩한 신뢰로 위대하게 되고 편안하게 되며, 음부와 땅의 극히 무서운 궤계도 은혜스런 눈길로 도외시 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이 내 구원이시니, "나는 의지하고 두려워하지 않으리이다."
💡 29:25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여호와의 권세(잠언 29:26)
- 출세와 부귀와 영달을 얻기 위해 인간이 보통 취하는 경로는 어떤 것인가?
그들은 "주권자에게 은혜를 구하며" 자기들의 모든 일의 작정이 그에 의한 것이기라도 하듯이 온갖 비위를 다 맞춘다. 솔로몬 자신도 주권자였다. 따라서 사람들이 이런 저런 사명을 받아 무척 부지런하게 그것에 몰두하여 열을 올리지만 모두가 자기의 "은총"을 받아서 그런다는 것을 알았다. 권력자에게 운동을 하고 조물주 다음가는 자의 온정으로부터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은 세상의 상도이다. 그러나 통치자의 미소도 불확실한 것이어서 왕왕 실망을 준다. "주권자의 은혜"를 구하려고 "많은" 사람들이 무척 애를 쓰면서도 그의 총애를 얻지 못한다. 또 잠시 동안은 지배자의 의중에 드는 자가 많으나 그의 총애를 계속 보지하는 자는 드물다. 결국 이런 저런 우여곡절로 그들은 그의 노여움을 사게 된다. 많은 자가 주권자의 총애를 얻고 그것을 계속 유지하지만 그것은 자기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는다. 그들은 당연히 얻게 될 것으로 기대하던 이익을 얻지 못한다. 하만은 "주권자의 은혜"를 얻었으나 그것은 아무 유익이 없었던 것이다.
-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 취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길은 어떤 것인가?
행복을 원하는 자는 하나님을 우러러보며 주권자 중의 주권자이신 그의 은혜를 구해야 할 것이다. 모든 사람의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은 통치자가 원하는 대로 좌우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총애가 우리를 꼭 행복하게 해 준다고는 할 수 없으며 그의 불쾌한 표정이 우리를 불행하게 하지도 못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결정된다. 모든 피조물과 우리의 관계는 하나님이 만드시는 대로이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는 제일 원인(First Cause)이시고 모든 제2 원인, 즉 인간은 그에게 의존하는 존재다. 그가 돕지 않으시면 누구도 도울 수 없는 것이다(왕하 6:27; 욥 34:29).
💡 29:26 주권자에게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으나 사람의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느니라
● 불의한 자와 의로운 자(잠언 29:27)
이 말씀은 빛과 어두움, 불과 물이 화합하지 못하듯 덕과 악 사이에 존재하는 본유적 모순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간에 항상 있어 온 묵은 원한(창 3:15)도 나타내고 있다.
- 성별하심을 입은 모든 자는 악과 악인에 대해 뿌리 깊은 혐오감을 품고 있다.
그들은 모든 사람의 영혼에게 호의를 품고 있다(하나님도 선한 의지를 진고 계셔서 누구도 망하지 않기를 바라신다). 그러나 하나님께 불경건하고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자들의 길과 행위를 증오한다. 악인에 대해 듣거나 얘기하는 때는 꼭 거룩한 분노를 느낀다. 그들은 불경건한 자와 부정직한 자의 모임을 싫어하며 조금이라도 그들을 두호할 생각이 날까봐 두려워한다. 그들은 악인의 악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한다. 이와 같이 "불의한 자"는 스스로 의인에게 미움받는 존재가 되며, 그가 선한 자들에게 배겨나지 못한다는 것은 그의 현세적 수치와 형벌 중 일부분이 되는 것이다.
- 성별받지 못한 자들은 모두 경건한 백성에 대해 마찬가지의 뿌리깊은 반감을 품고 있다. 즉 말과 행동을 양심적으로 하는 자는 "그 행사가 정직한 자"로서 "악인에게 미움을 받느니라."이러한 악인의 악은 아마 정직한 자의 정직 때문에 억제되고 억압 받으며 수치를 당하고 정죄될 것이다. 자기 "아비 마귀"에게서 난 가인도 이와 같았다. 악인이 하나님께 사랑하시는 자를 미워한다는 것은 저희의 악함이다. 뿐만 아니라 곧 영원한 행복과 존귀한 중에 있게 되고 "아침에 저희를 다스리게" 될 자들을 미워한다는 것은 저희의 불행이 아닐 수 없다(시 49:14).
💡 29:27 불의한 자는 의인에게 미움을 받고 바르게 행하는 자는 악인에게 미움을 받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