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출애굽기 32, 요한복음 11, 잠언 8, 에베소서 1
묵상구절
21:11 <유다 왕의 집에 내린 벌> 유다 왕의 집에 대한 여호와의 말을 들으라
21:1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다윗의 집이여 너는 아침마다 정의롭게 판결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자의 손에서 건지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의 악행 때문에 내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서 사르리니 능히 끌 자가 없으리라
21: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골짜기와 평원 바위의 주민아 보라 너희가 말하기를 누가 내려와서 우리를 치리요 누가 우리의 거처에 들어오리요 하거니와 나는 네 대적이라
21:14 내가 너희 행위대로 너희를 벌할 것이요 내가 또 수풀에 불을 놓아 그 모든 주위를 사르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매튜헨리/옥스퍼드
Ⅱ. 그는 왕과 방백들에게 잘못을 고치고 선을 따르며 자기 직분에 충실하라고 권면한다.
이는 그에게 전갈을 보낸 자는 왕이었기 때문이다. 그 답변에는 왕의 집에 대한 특별한 말이 들어있어야 할 것이다. 이는 그들을 칭찬하거나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것이아니라(그들이 선지자에게 사람을 보내 경의를 표했으니만치 아첨이나 찬사는 선지지가 할 일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건전한 교훈을 하기 위한 것이다. "너는 아침마다 공평히 판결하라." 주의깊게 그리고 부지런히 판결을 행하라는 말씀이다. 자기 의무를 다하고자 하는 행정관들은 일찍 일어날 필요가 있다.
너는 판결을 빨리 행하라. 너는 네게 들어온 호소에 대해 주저하지 말고 공정한 판결을 하며 너희가 행했듯 불쌍한 청원자들을 지치게 만들지 말라. 전날 숙취를 늦잠으로 해결하려고 아침나절에도 잠자리에 누워 있지 말며(방백들처럼, 전 10:16) 신체를 편안히 하는 데 아침을 소비하지 말고 신속한 일 처리에 아침 시간을 소비하라. 너는 너를 압제하는 자의 손에서 구출받기를 원하였고 하나님이 이 일로 네게 공의를 행해 주신 것을 기대하였다. 그렇다면 너도 네게 의뢰하는 자를 공정하게 대해 주어야 한다는 것쯤은 알아야 한다. 너는 그들을 압박자의 손에서 건지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대하여 내 노가 특정한 방법으로 불같이 일어나서 사르리니 극히 잘 모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너희는 너희 악행으로 인하여 최악의 낭패를 당하게 되리라." 다음 사실을 주목하자.
1. 이 말씀은 그들이 의무 이행에 태만했으므로 이 모든 파멸이 초래됐다는 것을 암시한다.
하나님의 분노의 불길을 점화시킨 것은 그들의 악행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명백히 그는 왕의 집부터 다루고 있다. 왜냐하면 선지자의 기도에 의한 혜택을 입고자 하는 자는 선지자의 책망을 감사히 받아들여야 하는 때문이다.
2. 이 말씀은 그들에게 국가적 개혁을 위한 올바른 방법을 제시해 준다.
위정자들이 먼저 본을 보이고 나면 민중도 개혁할 마음이 생기게 될 것이다. 방백들이 잘못된 것을 벌하는 데 권력을 사용해야만 백성도 어쩔 수 없이 잘못된 것을 고치게 될 것이다. 선지자는 그들이 다윗의 집 사람이기에 다윗의 발자취를 따라야 한다고 상기시켜 준다. 다윗은 자기 백성에게 공평히 판결한 왕이었던 것이다.
3. 이 말씀은 평안이 연장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지도록 그들에게 용기를 복돋아 준다(단 4:27).
그들이 만약 어떤 일로 파멸 직전에 회복이 된다면 바로 이 때문이리라.
Ⅲ. 선지자는 그들이 개선을 계속하지 않는 한 그들의 모든 소망이 헛되다는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준다(13.14절).
예루살렘은 사방이 산으로 방어되는 골짜기의 거민이었다. 골짜기는 군대가 접근하기 곤란한 천연의 요새였다. 그것은 평원의 반석이어서 적군이 기습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그들이 하나님의 권능이나 약속보다 더 신뢰한 것은 이런 지형상의 이점이었다. 이런 점에서 자기들의 성을 난공불락의 요새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은 "누가 와서 우리를 치리요?" 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심판을 무시했다. "어느 이웃도 우리를 감히 엄습하지 못하며 설사 우리를 공격하더라도 누가 우리의 거처에 들어오리요" 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들이 이런 자신을 갖게 된 데에는 다소 구실이 있었다. 왜냐하면 인근 나라들은 어떤 대적도 예루살렘 입성을 감행할 수 없다고 인식하던 것같이 보이는 때문이다(애 4:12). 그러나 극히 안전한 줄로 믿는 자들이 극히 안전도가 낮다는 데 주목하자. 하나님께서는 "나는 네 대적이라" (13절)고 말씀하시는 가운데 "누가 내려와서 우리를 치리요?" 라는 호언장담의 무익함을 드러내신다. 하나님이 친구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려고 하셨을 때 그들은 사실 그들의 악함으로 그 성에서 하나님을 몰아내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수로서 그들을 대적하러 오시자 그들은 그 성채로서도 원수들의 접근을 막지 못하였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 8:31)
그러나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대적하시면 누가 우리를 위하여 도움을 줄 수 있으리요?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원수로서 대적하러 오시는 것이 아니라 심판관으로 대적하러 오신다. 원수에게 저항하는 것은 합법적이고 당연하며 또 성공의 가능성도 있지만 심판관에게는 항거할 수가 없다. "내가 너희 행위대로 벌할 것이다" (14절). 하나님께서는 정당한 법적 경로를 밟아 벌하신다. 그는 그들의 광과(功過)와 그들의 직접적인 취향대로 그들을 벌하신다. 그들에게 임할 것은 죄의 자연스런 산물이다. 아니, 하나님은 원수의 분노와 재판관의 정의감을 품고 오실 뿐만 아니라 다 태워버리는 불길의 힘도 가지고 오실 것이다. 이 불길은 재판관들이 이따금씩 베푸는 동정심도 품고 있지 않으며 도중에 걸리는 것은 닥치는 대로 다 불살라버린다. 예루살렘은 여기서 숲이 되고 있다. 하나님은 그 수풀에 불울 놓으실 것이며 그 불은 자기 앞에 놓인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릴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기 때문이다(신 4:24; 9:3; 히 12:29). "주께서 한번 노하실 때 누가 주의 목전에 서리이까?" (시 7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