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출애굽기 33, 요한복음 12, 잠언 9, 에베소서 2
묵상구절
22:10 <살룸 왕에 대하여 말하다> 너희는 죽은 자를 위하여 울지 말며 그를 위하여 애통하지 말고 잡혀 간 자를 위하여 슬피 울라 그는 다시 돌아와 그 고국을 보지 못할 것임이라
22:11 여호와께서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곧 그의 아버지 요시야를 이어 왕이 되었다가 이 곳에서 나간 살룸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그가 이 곳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22:12 잡혀 간 곳에서 그가 거기서 죽으리니 이 땅을 다시 보지 못하리라
매튜헨리/옥스퍼드
●살롬과 여호야김의 운명(예레미야 22:10-19)
우리에게는 권세자들이 신과 같은 존재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역시 한갖 인간에 지나지 않아서 그들도 범인 같이 죽을 것이다(시 82:7). 본문단에 나타나는 내용은 바로 그런 것을 말해 준다. 여기에는 연이어 예루살렘을 통치한 두 왕에 대한 사형 선고가 내려지고 있다. 이 두 왕은 형제지간이었고 매우 경건한 한 아버지의 자식들이면서 둘다 패덕한 자였다.
Ⅰ. 먼저 살룸의 운명이 나오는데 이자는 두 말할 나위도 없이 여호아하스와 동일 인물이다. 왜냐하면 그는 유다와 요시야의 아들 곧 그 아비 요시야를 이어 왕이 된 자이기 때문이다(11절).
여호아하스는 장자가 아니었지만 백성들에 추대로 왕이 된 자이다(왕하 23:30; 대하 36:1). 요시야의 아들중에는 살룸이란 자가 있었는데(대상 3:15) 이는 여호아하스와 다른 인물이다. 아마 백성들이 여호아하스를 그의 형보다 더 좋아한 것은 그가 보다 민첩하고 담대한 청년이어서 통치자로서는 그의 형보다 적격이라고 생각되었던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얼마되지 아니하여 그들에게 그런 불공평한 처사의 어리석음을 보여 주시고 그 일이 형통할 수 없음을 알려 주셨다. 왜냐하면 삼개월이 지나자 애굽 왕이 그에게 올라와서 그를 폐위시키고 그를 포박하여 애굽으로 데리고 갔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경고하신 일이었다(신 28:68). 이 기사는 열왕기와 역대기에도 나온다(대하 23:34; 36:4). 백성이 그와 함께 포로로 잡혀간 것 같지는 않다. 이제 다음 사실을 살펴보자.
1.백성들은 그 아비 요시야보다 그를 위해 애도하라는 말을 듣는다.
죽은 자를 위하여 울지 말며 요시야를 위하여 더 이상 애통하지 말라. 예레미야 자신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 누구보다 참으로 요시야 왕의 죽음을 애도하였고 백성에게 그를 위해 애곡하라고 촉구하던 인물이었다(대하 35:25).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요시야가 죽은지 석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요시야에게 대한 애도를 끝내고 다른 일로 눈물을 흘리라고 그들에게 권한다. 그들은 오로지 애굽으로 가 여호아하스를 위해 애곡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여호아하스의 나포로 일반 대중에게 커다란 손실이 있기 때문에 하는 말씀이 아니다. 그의 부왕 요시야의 경우라면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말씀은 여호아하스이 처지가 훨씬 더 비탄스러울 것임을 의미한다. 요시야는 평안과 존귀 가운데서 세상을 떠났고 이 세상에서는 장차 올 재알을 보지 않도록 조치받았고 저 다른 세상으로 옮기워서 복락을 누리도록 되어있었다.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울지 말고 그의 불행한 아들을 위해 울라는 말씀이다. 즉 그는 수치와 불행 속에서 살다가 죽을 것이었다. 그는 비참한 포로로 여생을 마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죽어가는 성도가 선망의 적(적)이 될 수도 있다는 데 주목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오늘날 시대적 전망은 너무나 음울하여 요시야나 예수님 같은 사람을위한 눈물을 억제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우리 자신이나 자녀를 위해 눈물을 흘릴 수 있도록 예비해 두기 위해서이다(눅 23:28).
2.여기에 제시된 이유는 그가 자신이나 백성의 기대와는 달리 다시는 포로 생활에서 돌아 오지 못할 것이며 거기서 죽으리라는 것 때문이다.
그들은 이 예고를 믿으려 들지 않았으므로 "그가 다시 돌아오지 못하리라" (10절)는 말씀이 거듭 반복되고 있다. 그는 결코 자기 고국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는 고국의 모습을 보는 기쁨으로 다시는 맛보지 못하고 고국이 황폐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끊임없이 슬퍼하게 될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나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솜할 것이다(11절). 그는 잡혀간 곳에서 죽게 될 것이다(12절). 이 일은 그가 자기 아버지의 선한 모범을 따르지 않고 자기 형의 궈리를 빼앗은 데 대한 결과였다. 이스라엘의 방백들을 슬퍼하여 지어 부른 에스겔 선지의 애가(겔 19:5 이하)에서 이 여호아하스는 한 마리의 새끼 사자로 묘사되고 있다. 즉 여호아하스는 식물 움키기를 곧 배웠으나 붙잡혀서 애굽으로 끌려간 사자 새끼였다. 그는 사슬에 묶여 애굽으로 끌려갔고 거기서 환국하기를 학수고대했지만 그의 기대는 허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