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3월 25일 화요일 묵상구절 렘22:20-23 <예루살렘에 대한 탄식>

Jeehyun 2025. 3. 25. 15:57

맥체인성경읽기

출35, 요14, 잠11, 엡4

묵상구절

22:20 너는 레바논에 올라 외치며 바산에서 네 소리를 높이며 아바림에서 외치라 이는 너를 사랑하는 자가 다 멸망하였음이라

22:21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나니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

22:22 네 목자들은 다 바람에 삼켜질 것이요 너를 사랑하는 자들은 사로잡혀 가리니 그 때에 네가 반드시 네 모든 악 때문에 수치와 욕을 당하리라

22:23 레바논에 살면서 백향목에 깃들이는 자여 여인이 해산하는 고통 같은 고통이 네게 임할 때에 너의 가련함이 얼마나 심하랴


매튜헨리/옥스퍼드

옥스퍼드 주석

●유다의 황폐와 여고냐의 운명(예레미야 22:20-30)

이 예언은 고니야 또는 여호야긴의 불명예스러운 비정(秕政)을 지목하는 것처럼 보인다. 고니야는 여호야김의 아들로서 부왕을 계승하여 통치하였다. 그러나 그는 재위 삼개월만에 바벨론으로 끌려가 그곳에서 다년간 살았다(52:31). 우리는 여기 다음과 같은 내용의 예언과 접하게 된다.

Ⅰ. 왕국의 황폐에 대하여(20-23절).

왕국의 멸망이 급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본문이 언급하는 것은 예루살렘과 유다이며 유다국을 하나의 개인으로 말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유다국의 세 가지 특성을 발견하게 된다.

1. 평화와 안전의 시기에는 몹시 거만하였음(21절).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고 내 종들과 선지자들을 통하여 책망과 훈계와 계책을 말하였으나 네 말을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나는 주의하지 아니하리가 하였으니 너는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않았으며 또 청종치 않기로 결심하였고 뻔뻔스럽게도 내게 그렇게 말하였느니라." 편안히 사는 자들은 다반사로 하나님의 말씀을 경멸하며 살아간다. 여수룬은 살찌자 발로 찼다(신 32:15). 설상가상으로 그들은 천성이 그러하였다." 그들은 모태에서부터 패역한 자라는 칭함을 입었다(사 48:8).

2. 환난의 경보가 울리며 매우 겁이 많음(20절).

"네가 너를 사랑하는 자가 다 멸망하는 것을 보며 네 우상들이 너를 도울 수 없음을 깨달으며 네 외국 동맹들이 너를 실망시킨다는 것을 깨달을 때 너는 레바논으로 올라가 파멸당해 모든 것을 포기한 자처럼 외치게 될 것이며 아주 비통하게 울부짖을 것이다. 너는 '도우소서. 도우시지 않으면 우리는 망하나이다'하고 외칠 것이다. 너는 두 높은 산 레바논과 바산 위에서 네 소리를 높이며 놀란 비명 소리를 높일 것이다. 너는 높은 지형을 이용하여 네 목소리를 들리게 하려고 이와 같이 행할 것이다. 너는 모압 지경의 유명한 산 아바림에서 외치게 될 것이다. 너는 통로(通路)에서 외치게 될 것이니 이는 길에서 곤경을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너는 굉장히 놀라는 사람들이 하듯 네 주위에 있는 모든 자에게 외칠 것이나 그것은 헛될 것이다. 왜냐하면 네 목자들이나 치리자는 다 바람에 삼키울 것이기 때문이다. 꽃봉오리가 황랑한 한풍에 지듯 너를 보호하고 인도하고 네 안전을 도모해야할 자들이 풍비박산하며 영락하고 초개처럼 되어버릴 것이다. 열매가 바람에 낙과하듯 그들은 갑자기 삼키울 것이다. 너를 사랑하는 자들은 사로잡혀 가리라. 네가 의지하고 애착하던 자들은 너를 구원하기는 커녕 자기 자신도 구할 능력이 없으리라."

3. 무겁고 지속적인 환란의 압력으로 유순해짐(22절).

"네 동맹들로부터 아무런 원군도 나타나지 않고 네 제사장들이 망연자실할 사람들이 막다른 궁지에 몰리기까지는 자기 죄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의하자. 우리가 곤경을 통해 자신의 죄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의하자. 우리가 곤경을 통해 자신의 죄를 부끄러워하게 된다면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본문은 유다국을 레바논에 거하는 자라고 명명하는데 이는 유명한 레바논 삼림이 그들의 지경내에 있었고(23절) 레바논의 천연적 부강처럼 그들의 전국토가 비옥하고 수비하기 좋았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너무 거만하고 오만하였다 . 그래서 그들은 백향목에 깃들이는 자라는 말을 듣는다. 그들은 어떤 위험도 자기들에게 미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으며 주위의 모든 자를 업신여겼다. "그러나 고통이 네게 임할 때 너의 가련함은 얼마나 심하랴! 그때 너는 하나님 앞에서 겸비할 것이며 개과천선을 약속하게 될 것이다. 네가 돌짝밭에서 엎어질 때는 형통시 청종하지 않으려던 이 말들을 기꺼이 들으려고 할 것이다(시 141:6). 그 때에는 네가 이전에 경시하던 하나님께 열납되려고 노력하게 될 것이다." 진정한 경건심을 지니고 있지 않는 자들은 고통이 지나간 뒤에야 경건의 고통을 느끼게 된다는데 주목하자. 또 달리 해석하는 자도 있다. 가타커(Gataker) 선생은 "네 모든 사치와 허세와 부귀가 네게 무슨 소용이 되느냐? 네가 이런 환란에 처할 때는 그 모든 것이 어떻게 될 것이며 너는 무슨 위로를 얻을 것인가? 이는 여인의 해산하는 고통과 같다. 해산하는 동안에는 여인이 고통과 두려움에 가득 차서 자기의 장식물로부터 아무런 위안을 받지 못한다" 고 해석한다. 여러 가지 세상적인 이점을 지니고 있다고 자랑하는 자들도 고통이 엄습하면 자기들의 모든 아름다움을 상실하게 되며 그때는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보일런지 한 번쯤 생각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