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 성경 읽기
창세기31, 마가복음2, 에스더7, 로마서2
묵상 구절
24:10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그의 어머니는 이스라엘 여인이고, 아버지가 이집트 사람인 한 사람이 나가서 어떤 이스라엘 사람과 진영에서 싸웠다.
24:11 그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고 저주하므로 사람들이 그를 모세에게 데려왔는데 그의 어머니 이름은 슬로밋으로 단 지파 디브리의 딸이었다.
24:12 그들은 여호와의 뜻이 밝혀지기까지 그를 감옥에 가두었다.
24:1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24:14 "너는 그 저주한 자를 진 밖으로 끌어내어 그 말을 들은 모든 사람이 그의 머리에 안수한 다음 온 회중이 그를 돌로 쳐라.
24:15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라. 누구든지 자기 하나님을 저주하는 자는 자기 죄를 짊어져야 할 것이다.
24:16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니, 온 회중이 그를 반드시 돌로 쳐야 한다. 거류민이든 본토인이든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죽여야 한다.
24:17 만일 어떤 사람을 쳐 죽인 자는 반드시 죽여야 한다.
24:18 가축을 쳐 죽인 자는 생명을 생명으로 보상하여야 한다.
24:19 어떤 사람이 만일 자기 이웃에게 상해를 입혔으면, 그가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해야 한다.
24:20 골절은 골절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하며, 사람에게 상해를 입힌 자는 그에게도 그대로 갚아야 한다.
24:21 짐승을 죽인 자는 그것을 변상해야 하고, 사람을 죽인 자는 죽여야 한다.
24:22 거류민에게든 본토인에게든 너희에게 그 법은 하나이어야 한다. 이는 내가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24:23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니, 그들이 그 저주한 자를 진영 밖으로 끌어내어 돌로 그를 쳐 죽였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그대로 하였다.
매튜 헨리/옥스퍼드
●불경죄의 처벌 (레위기 24:10-23)
악한 행실이 좋은 율법을 낳는다는 말이 있다. 어떤 무명 이스라엘인 혼혈아가 그런 나쁜 행실을 범한 기사와 그 결과로 좋은 율법이 생겨나게 된 기사를 여기서 엿보게 된다.
Ⅰ. 그 범행자는 이스라엘인인 어머니와 애굽인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한 아들이었다(10절). 그의 어머니는 단 지파 사람이었다(11절). 그러나 그 아들과 그의 아버지 이름은 밝혀져 있지 않다. 단지 그의 어머니-이스라엘 여인의-이름이 나와 있을 뿐이다. 여기에서 그의 부모들이 특별히 기록된 것은,
- 그 아들이 휘말려든 싸움이 왜 일어났는가 하는 것을 암시해 주기 위해서 인지도 모른다. 유대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는 그의 어머니의 권한이 미치는 단 지파의 진중에다 자기의 장막을 치려고 했다. 그러나 그 지파의 어떤 사람들이 정당하게 반대를 했다. 그는 그의 아버지가 애굽인이므로 그에게는 그 진을 차지하거나 제비를 뽑아 몫을 차지할 권한이 없으며 자신을 이방인과 다름없이 생각해야 한다고 알려 주었다" 고 한다.
- 그렇지 않으면 그러한 잡혼이 보여주는 일반적인 실제악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자손이 우상을 숭배하고 악의에 가득 찬 애굽인과 결혼을 한다면 그 결혼의 열매는 불경죄를 범하는 자 외에 무엇을 기대하리요? 그러므로 그러한 자식들은 무엇이든 악한 면을 본받으려는 경향이 있고 또 이스라엘인 어머니의 기도와 찬양을 배우기보다는 애굽인 아버지에게서 신성 모독을 더 빨리 배우려고 한다.
Ⅱ. 범죄의 원인은 다툼이었다. 그가 "한 이스라엘 사람과 싸웠다" 고 했다(10절). 애굽인의 많은 잡종들이 이스라엘인을 따라왔었다(출 12:38). 그들은 여러 가지로 이스라엘에게 해를 끼쳤는데 이번 일도 그 중의 한 사례이다. 그들은 종종 싸움의 장본인이 되었었다.
교회의 평화를 유지하는 유일한 길은 교회의 순결을 보존하는 것이다. 이 싸움에서 그는 악한 말을 늘어놓았다. 싸움이 시작되면, 그 싸움이 끝나기 전에 어떠한 불행을 초래할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며, 작은 불꽃이 언제나 큰 산을 불태우고 마는가를 우리가 모르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사람의 감정이 격화되면, 이성도 신앙도 모두 잊어버리기 쉽다. 이것이 우리가 남에게 분노를 유발시키거나 자신이 분노해서는 안 되며, 싸움은 시작되기 전에 개입하지 말고 미리 그만두어야 할 훌륭한 이유이다. 왜냐하면 싸움의 시작이란 것은 이미 제방에 물구멍이 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Ⅲ. 그 범죄는 신성모독과 저주이었다(11절). 그가 주장하는 소리가 재판관들에게까지 들렸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재판관들은, 그의 아버지가 애굽인 이었으므로, 그에게는 이스라엘인으로서의 특권이 없다고 결정했다. 그래서 그는 그 선고에 몹시 화를 내었던 것 같다.
- 그는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했다." 그는 그 이름을 모독했다. 즉 어떤 성품이나 모양으로가 아니라 이름으로 알려지시는 그 하나님을 모독한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은 많은 이름 중의 단순한 한 이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었다. 본문에는 "여호와의" 라는 말이 들어 있다. 이것이 히브리 원문에는 분명히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위엄에 대한 보다 큰 경외감을 나타내는 것이다. 여호와의 이름 자체가 모독되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은, 그 자체가 실로 하나의 수치이다. 그래서 "이 일을 가드에도 고하지 말라" 고 했다(삼하 1:20).
그의 불경죄란, 단지 여호와라는 이름을 부른 것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미신적 신앙을 가진 유대인들이 생각해 낸 분별없는 망상이다. 그들은 이 이름을 입에 오르내릴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이름으로 자신을 알리신 하나님께서 그 이름으로 자신을 부르지 말라는 경고는 하시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 범죄자는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구별한 그 하나님의 명령에 불만을 느끼고 고의적으로 그 율법과 율법 창시자를 비난하고 모욕한 것 같다.
- 그는 하나님을 직접 저주했거나(그렇다면 그의 저주 역시 신성 모독이다) 자기와 싸운 그 사람을 저주했을 것이다. 남의 불행을 빌면서 저주하는 것은 근본부터 악의에 찬 것일 뿐만 아니라 성급한 감정의 소산인 소름끼치는 언어이다. 그리고 그는 자기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린 그 재판관을 저주했을 것이다. 그는 법정에 달려가서, 그 판결에 대해 야유했다. 그래서 그 결론은 죄에 죄를 더한 것이었다.
Ⅳ. 그는 이러한 죄를 범하지 말라는 주의(경고)를 계속 받았다. 증인들 또는 하급 재판관들이 그를 모세에게 끌고 가서 고소했다(이 것은 다소 특별한 데가 있다)(11절). 그것은 이미 정해진 규정에 따른 것이었다(출 18:22). 그러나 모세는 직접 지체 없이 판결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그 범인을 하나님의 신탁(信託)이 있기까지 가두어 두라고 했다. 재판관들은 신중해야 함을 잊지 말자. 재판하는 사람이나 선고를 내리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들의 할 일을 성실히 생각하고 아무것도 서둘러하지 말아야 한다.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일" 이기 때문이다(신 1:17). 그리고 하나님의 법정에는 재심(再審)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여호와의 생각" 이 무엇인지를 알려고 기다렸다. 그는 하나님께서 법관들의 손으로 처형되기를 바라는지 또는 하나님의 심판에 맡기고 버려두어야 할지-" 부모를" 저주한 자만이 그렇게 하라고 했기 때문이다(롬 1:30)-또는 중범인 고로 보다 더 가혹한 처벌로 죽여야 할지를 몰라서 기다렸다고 볼 수 있다.
재판정에 앉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진심으로 갈망해야 하며, 기도와 그 밖에 모든 선한 수단을 다하여 "여호와의 생각을 알려고" (롬 11:4)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들은 "여호와를 위해 재판하기" (대하 19:6) 때문이요, 저들은 하나님께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Ⅴ. 하늘과 땅의 의로우신 재판장이 직접 그 범인에게 선고를 내리셨다. "온 회중이 그를 돌로 치라" (14절). 하나님은 직접 하늘에서 천벌을 내려 그를 죽일 수도 있었지만 하나님은 이 세상에 주신 당신 자신의 영광이신 그 판결 제도를 지지하고 변호해 주시기 위해 그 제도를 이용하셨다. 그래서 그 제도를 존귀케 하고자 하신 것이다.
그러면 다음 사실을 관찰해 보자.
- 형 집행 장소가 지정되었다. "그를 진 밖으로 끌어내라" 고 했다. 그들은 저와 같은 범행을 증오한다는 뜻에서, 한 가증스러운 나뭇가지처럼 그 범인을 진밖에 던져 버려야 했다. 그래서 그를 부정한 것처럼, 그리고 이스라엘의 진영 내에는 있을 자격이 없는 물건처럼 자기들과는 분리해 놓아야 했던 것이다.
- 집행자도 지정되었다. "온 회중이 돌로 치라" 고 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저들의 열의를 보이는 것이었다. 하나님께 대한 훼방에 동참하지 아니했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은 돌을 들어서 하나님을 모독한 자를 치라고 했다(시 69:9). 그리하여 그 회중은 더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그리하여 일단 신성모독 자에게 돌을 들었던 사람들은, 신성모독과 비슷한 모든 일, 그렇게 보이거나 그를 염려가 있는 모든 일은 두려워하게 되었을 것이다.
- 형 집행의 엄숙성. 회중이 범죄자에게 돌을 던지기 전에 증인들이 "그의 머리에 안수해야" 하게 되어 있었다(14절). 유대인들의 말에 의하면 모든 범인들의 형 집행에 있어서 이런 방식을 쓴 것이 아니라, 다만 신성모독 자에게만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에서 다음과 같이 말을 하면서 형을 집행했다는 것이다. "그 피는 그 자신의 머리로 돌아갈지니, 그 자신이 그 일을 자초하였음이니라. 아무도 율법과 재판관과 배심원과 증인들에게 책임을 돌리지 말지어다. 네가 거만하면 네 홀로 해를 당하리라(잠 9:12).
Ⅵ. 이것이 계기가 되어 신성모독 자는 돌로 치라는 것이 영원한 율법으로 되어 있다(15,16절). 재판자들은 두 개의 법판을 지키는 호위병들이니, 하나님의 영예를 위하여 질투심을 발휘하여 하나님의 존재와 통치를 경멸하는 자들을 대적하며, 공공의 평화와 안전을 교란시키는 자들을 쳐부수고 공공의 평화와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
- 이 율법은 상당히 강조되어 있어서, 결코 예외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그를 돌로 칠 것이니라" 고 했다(16절). 하나님의 명예를 경솔히 여긴 자들은, 사람이 말 한마디로 범죄자가 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을 경솔히 여긴 말을 결코 가벼이 생각지 않으심을 알려 주시고자 하셨다. 그런 말은 그런 말을 한 자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거역하는 악의가 깃들어 있어서 거기에서부터 유출된 것이며 그것은 큰 죄가 됨과 동시에 그런 말을 듣는 자들에게 심한 치욕을 주는 것이다.
- 이 율법은 그 땅에서 출생한 자들에게는 물론이요, 자기들과 함께 유하는 외국인들에게도 적용된다고 했다. 하나님은 결코 외국인들에게 할례를 받으라고 강요하는 율법을 주시거나 그들이 유대인의 신앙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요하신 적이 없다(강제로 개종자들을 만들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하시지는 않으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욕하는 말은 외국인이라도 삼가라고 하는 율법을 주셨다.
- 신성모독 죄로 사형을 받는 자는 "자기 죄를 담당한" 것이니 곧 자기 죄의 벌을 받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죄를 대신 담당할 아무런 희생 제물도 있을 수 없으니, 자기 자신의 머리를 하나님의 정의에 대한 희생제물로 바쳐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희의 혀가 저희를 해함이라" (시 64:8). 신성모독자의 혀는 가혹한 벌을 가져온다.
Ⅶ. 이 새로운 율법에 대해 몇 가지 다른 율법들이 반복해서 첨부되고 있다.
- 살인자는 죽여야 한다(17절, 그리고 21절에 다시 나와 있다). 이것은 노아 시대에 주어졌던 옛 법과도 일치한다(창 9:6). 게다가 자연법 자체에도 그대로 들어맞는 것이다(창 4:10).
- 남의 신체에 피해를 입힌 자는 보복법에 의해서 같은 피해를 입어 불구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19,20절). 그러나 이럴 경우에 당사자가 직접 복수를 할 것이 아니라 법관들에게 호소하라고 했다. 이들 법관들은 피해자들이 자기들이 입은 피해에 따라 적당하다고 생각될 수 있는 만큼 가해자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피해자들에게는 보상을 받도록 해야 한다.
이 율법은 이미 앞에서 본 바가 있다(출 22:4, 5). 또한 이 율법은 지금 우리들에게 작용하고 있는 그 율법 곧 신약 성서의 율법보다는 구약 성서의 율법에 더욱 어울리는 것이다. 즉 구약 성서의 율법은 그 율법의 근엄성을 말해 주고 있고 죄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대가가 무엇인가를 잘 말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신약 성서의 율법은 복음의 은총과 죄의 용서를 계시해 주고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주께서는 이 율법을 폐기했었다(마 5:38, 39). 그러나 예수께서는 법관들에게 공중의 정의를 집행하지 말라고 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적 피해를 보복하려 하지 말며 우리가 용서받기를 바라는 희망을 지닐 수 있고 또 용서받을 수 있듯이, 우리도 남을 용서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말씀해 주심으로써 폐기하신 것이다.
- 이웃 사람의 육축에게 고의로 피해를 끼친 자는 보상해야 한다고 했다(18,21절).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율법은 인생들의 생명뿐이 아니라 그들의 재물까지도 보호해 주시게 되었다. 특정 개인에 속하지 아니하고, 영국의 법률이 말하는 대로 ferae naturae-즉 야생의 짐승에 속하는 것들을 죽이는 것은 율법도 허락하는 바이다. 그러나 어느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짐승을 죽이는 것은 율법이 허락하지 않는다. 과연 하나님은 소까지도 돌보시는 도다! 그렇다. 하나님은 소까지도 우리 사람들 때문에 돌보시는 것이다.
- 이스라엘인은 물론 외국인들에게도 이 율법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했다. 즉 그들도 악을 범해서는 안 되며 악을 범했을 때에는 이 율법에 따라 그와 같은 정도의 형벌을 당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제 율법 속에 그 말이 끼어들어 있는 것을 보면 이스라엘인과 마찬가지로 외국인들도 신성모독의 죄를 범하면 같은 식으로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뜻인 것 같다. 이스라엘인이나 외국인들이 범한 죄에 대하여는 똑같은 처벌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제 율법을 재인식해 두어야 할 이유도 있었던 것 같다. 즉 하나님은 이러한 율법을 통해서 곧 사람에게 손상을 끼친 자들을 처벌함으로써 인간의 안전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어떤 조처를 취하고 계시는가를 보여주려고 하시며, 법관들은 이런 이유 때문에 질투심까지 품으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사수해야 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한 자들을 철저히 처벌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인간들의 평안을 위하여 염려하고 계시다면 인간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당연히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Ⅷ. 신성모독자의 처형.
말하자면 모세는 신성모독자의 처형에 관한 정당성의 근거를 확립한 셈이다. 모세는 그렇게 하라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였다" 고 했고, 그들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했다" 고 했다(23절). 이 사실은 죄의 삯은 죽음이요, 특별히 신성모독 죄는 "재판자들에 의하여 처벌받아야 하는 죄" (公的 범죄라는 뜻. 욥 3:11)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을 그렇게 모독한 자들이 사람에 의한 처벌은 혹시 피할 수 있다 하더라도, 주 하나님의 의의 심판을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신성모독자가 모세의 율법에 의하여 사형된 첫 죄인이다. 스테반은 복음을 위하여 죽임을 당한 첫 사람이다. 그런데 바로 그가 이 율법(신성모독 금지의)의 악용에 의하여 처형된 것이다. 순교자와 범인이 같은 죄목의 죽음을 당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 간의 차이점이 얼마나 지대한가를 간과하지 말자.